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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음악 : 작자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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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샘의 시창작강의 (30) : 비유는 시창작의 원리(A)
명절 준비 잘들 하고 계시는가? 젊은 습작생 여러분, 즐거운 설연휴 보내시기 바란다. 필자도 오늘 직장일을 잘 마무리 하고 일찍 퇴근해서 명절연휴 준비로 들어섰다. 우리 협회 엄회장님께서 오늘오후 여섯시 비행기로 귀국하시는데 마중을 못나간 점을 ‘잘다녀오셨는지?’전화로 인사드리고 부모님 용돈 드리며 ,설날 차례지내고 안식일날 교회가서 기도하고 두 여동생내외가 경남 밀양과 충청도 대천 시댁들에서 설을 잘보내고 곧 외할머님,외할아버님 뵈로 필자에게 들이닥칠 것이다.^*^
언제보아도 귀여운 조카에게 명절날만 되면 나는 좀 머리가 띵하다. 영어공부를 잘해서 학교 앞 문방구 장난감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초등학교 5학년 개구쟁이가 인터넷 서핑으로 영문을 읽으니 해외의 최고가 장난감 매뉴얼만 보고 다닌다. 필자랑 같이 보았더니 “우와 필자가 봐도 저게 장난감인지 예술인지 모를 정도로 어마어마한 것들도 있었다...무선조종으로 풀장에서 잠수도했다 떠올랐다 어뢰도 쏘는 핵잠수함, 무선조종 에어버스380 여객기, 진짜하고 똑같은, 아주 조그마한 무선조종 제트엔진...구경만 해도 기가 막힌다....그런데 그런 것은 우리 돈으로 평균 몇백만원이 넘어간다. 재벌도 아니고 구경만 하고 말았다....^*^
비록 장난감이지만 인간의 과학, 창의력, 상상력은 상상을 초월한다...하도 녀석이 좋은 장난감만 찾으니 필자의 00계정이 빠듯하다...하지만 도봉구 전체 어린이 영어경시대회에서 전체 2등을 하고 삼촌이 일하는 회사의 엄청난 경쟁율이 있는 “어린이 소년기자”를 노리고 있는 녀석이다. 필자는 조카가 장래, 기자나 언론인이 되기를 원하지도 않고 결과야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하여튼 때마다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건강하게 최선을 즐겁게 다하는 습관을 배우는 일은 어릴 때부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조카녀석을 생각해서 만약 필자가 장난감을 사주지 않으면 자기임무를 다한 어린 조카에게 외삼쫑으로서 직무유기가 되지 않겠는가?
뭐 자랑이면 팔불출이지만 필자의 조카녀석은 유아기부터 공부를 잘해 5살 때인가 필자가 일본산 전기기차, 초등학교 입학때는 M1 에이브람스 무선조종 탱크, 2학년때는 제 아버지로부터 은빛 무선조종 포르쉬 자동차, 피코즈 헬기, 지난 명절에는 할머니로부터 어른들이 조립하는 스웨덴산 레고 우주선을 얻었다...다른 일반적 장난감보다 다소, 많이 비싸서 제 엄마는 늘 울상이지만 필자의 조언대로 제 원하는 장난감을 사기위해 친구들과 같이 학교 앞에서 나쁜음식 안사먹고 참고 아끼는 버릇을 들여 저금하는 습관을 만들었다..
그래서 다 구입한 것들이라 뭐라 나무랄수도 없고 예쁘기만 하다. 그렇다고 친구들에게 인색하지도 않다. 평소에 저금하고 꼭 쓸때는 효과적으로 쓰는 습관....좋은 습관이다. 유일하게 받는 사교육인 태권도를 좀 더 열심히 해서 뚱뚱한 살만 좀 빼면 될터인데...제 학년에는 건드리는 아이가 없다. 그랬다가는 녀석에게 맞는다...^*^ 다른 아이를 절대 먼저 건드리지도 않지만 학교 어린이 축구대장이기도 하고 동네 아이들 싸움말리기, 최종 해결사이기도 하다고 들었다. 제 엄마가 어려운 아동들을 돕는 ‘시 아동 복지전문가’이기도 한데 씩씩한 것도 좋지만 이제부터는 어렵고 약한 친구들도 도울 줄 아는 좀 더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도록 하는 교육에 신경을 쓸까한다.
이번에 또 전과목 만점이라 나는 피를 보며^*^ 녀석이 원하는 약간의 세배돈과 무선조종 RC F16전투기를 일본에서 주문 구입했다. 전기기차만 해도 예전 필자가 태어난 고향에서는 초등학교시절 전 시의 모든 어린이가 구경하는 故육영수 여사께서 지으신 부산 어린이회관에나 가야 볼 수 있었는데 그만큼 우리나라 경제규모와 성장, 국력이 신장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 윗세대 어른들께서 이루신 국가적 공로다. 자유 글로벌 대한의 위대한 문화, 경제융성 황제국가가 낳은 세계적 작가, 시인들이 되어야 할 여러분들은 어디서나 항상 우리 윗세대 어른들을 사랑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가져주셨으면 한다.
요즈음 젊은 세대들의 취직난이 장난이 아니며 국가적 과제이기도 하다만 그럴수록 자신의 재미있는 일에 정열을 다하시기 바란다. 이 문제는 반드시 해결될 것이다. 조카 장난감을 쌌던 돈 때문에 머리가 약간 띵하긴 하지만 공부 잘하고 귀여운 녀석에게는 무얼 해주어도 아깝지가 않다...^*^ 하여튼 삼쫑 책임을 다했으니 필자도 기분이 좋다. 필자가 영어공부를 너무 일찍 시키거나 모르는 다른 이들은 사교육을 시켰나? 하고 믿기 어려울테지만 우리 집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누구도 사교육을 해 본적이 없다.. 국립S대를 졸업한 매제와 여동생의 아주 돈안들이고 효과적인 어린이용 “자기주도 학습법”때문일 것이다....물론 그 가족 교육용 만화그리기 프로그램의 제작에 일부분은 필자도 관여했다... 다른 것은 아니고 공부는 처음부터 끝까지 본인 스스로 “재미와 즐거움”이 있어야 하며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바로 재미있는 상상력이 중요한 것인데 사람의 생각, 글에 있어서 풍부한 상상력을 제공하는 것이 바로 문학이고 창작이며 그 중에서도 ‘시’다. 지식만 공부하면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누구나 물론이다. 그러나 그것에 하고 싶은, 재미있는 감정이 붙으면 어떻게 되는가? 바로 엔진없는 스포츠카에 최강의 심장,엔진을 다는 일이다. “에게 겨우 시속 130KM?” “노우, 우리는 시속 300KM 이상을 달리는 최강의 스포츠카”를 만들고 시승해 보시자. 미래 필자는 그런 ‘메이든 인 코리아 빛광차’를 타고 자유민주로 통일된 북한은 물론, 저 만주와 우스리스크를 거쳐 유럽까지 질주하고 싶다.
모든 하기싫은 억지공부에 그 엄청난 심장인 엔진을 다는 일이 바로 자기정서와 감정에 스스로 ‘재미’를 붙이는 일이다. ‘시 창작’도 마찬가지다. ‘시’를 제대로 공부하면 다른 모든 장르의 글들도 풍부하게 쓸 수 있다고 본다. 여러분이 지금 즐겁게 열심히 공부하면 나중 필자의 나이가 되었을 때, 명절날 쓸쓸하게 아무도 찾는 이 없는 직업이 달랑 ‘시인’하나인,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추운 겨울의 골방 베짱이로 허접한 자기 넋두리만 뱉는 이가 아니라 멋있는 직업도 있고 어린 조카에게 멋진 선물도 줄 수있는 최고의 삼쫑, 더하여 큰 문학상 ^*^도 받은 멋진 지성적 시인, 예술가가 될 수 있지만 어떤 일이든 흐지부지 한다면 한같 꿈만 꾸다가 인생을 낭비할 것이다.
어떤 선택이 중요할까? 당연히 전자다. 젊은 글로벌 자유대한의 미래 詩大家 여러분, 저에게 시를 배우는 여러분은 비록 여러분이 처한 여러가지 환경이 어렵고 힘들며 비참하더라도 그것에 절대 굴복하지 말고 전공공부, 문학,시 공부 모두 성공하시기 바라며 반드시 좋은 직장도 얻거나 원하는 바를 거두는 승리의 쾌거를 이루시기 바라며 건투를 빈다.
현재의 상황은 결코 여러분의 아름다운 참모습이 아닐 것이다. 현재에 속지 마시기 바란다. 만약 여러분들 중에 어려운 처지의 친구가 있다면, 현재의 힘들고 비참한 상황이나 처지는 결코 여러분의 것이 아니다. 비록 현실이 그렇더라도 남모르는, 여러분만의 즐겁고 황홀한 아름다운 미래, 즐겁고 훌륭한 상상들의 꿈들이 바로 여러분을 어려움을 극복한 위대한 인간으로 만든다. 즐거워 미쳐서 정열적으로 하는 일과 공부는 여러분의 앞날을 반드시 빛나고 밝게 축복할 것이다.
왜그러냐구요? 필자는 무슨 인생성공이 어쩐다 하는 남의 말을 빌어 하는 사람이 아니다. 필자도 20대시절 골방에서 책과 사투하고 막노동을 하는 등 빈몸으로 바닥에서 시작하는 여러분들같은 그런 어려운 시절을 통과해 보았다...인생이 달라지는 중요한 점은 그런시절 희망도 포기하고 자신의 아무런 대안도 없이 넋두리만, 사회증오만 퇘퇘 뱉은 친구는 아직도 그모양 그꼴이지만 그 힘든 중에서도 밤에 비록 별과 달만 보더라도 아름다운 나의 미래 상상을 늘 간직하며 하나하나 준비하며 실천해 나가는 사람은 반드시 인생이 달라진다..^*^ 요즈음 필자 졸시가 그런 것들이 몇 수있는 것은 그 시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금도 필자는 그 여정에 있다.
왜 없는 시간까지 내어 이 강의를 하냐구요? 아, 이유 있으니까 하지요....^*^ 남들은 필자를 이해못할 또라이라 하지만, 필자는 좀 또래이는 또래이인데 그들의 또래이가 아니다. 이 강의가 끝나고 올 여름즈음에 곧 필자는 다시 미국을 거쳐 유럽으로 갈 것같다. 나는 여러분 미래의 아름답고 황홀한 그림을 보자니 지금도 가슴이 쿵쾅거린다. 물론 미국이나 유럽이 필자그림의 모든 것은 아니다. 나는 그 발전된 문화,예술 인프라를 충분히 신나게 이용할 것이다. 그러나 창조적인 나의 그림은 나의 가슴과 머리에서 나온다. 그 모두 시와 음악, 미술,문학과 예술과 우리지성에 관련된 것이며 생각지도 못한 어마어마한 비즈니스도 포함되어 있다. 지금까지 인고의 17년 세월, 나만의 모든 지나왔던 일들과 실력, 경험들이 그 기초와 토대가 될 뿐이다. 지금까지 보지 못한 그림이기도 하다. 비밀이기도 하지만 얼마나 신이 나는 일인가?
되도록 필자는 경험한 말을 하는 것을 중요히 여긴다. 그렇다고 필자가 위대한 인간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도 필자는 솔직히 배가(정신적으로)고프고 진짜 위대한 인간도 될 것이다. 여러분은 어떠신가? 필자보다 더 낳은 인간...그것이 되겠다. 그정도는 되어야 필자도 가르킨 보람이 있지 않을까? 나는 충분히 우리가 할 수 있다고 보는 사람이다. 자, 그럼 오늘도 즐겁게 공부를 해 보실까? 오늘은 시창작에서 가장 중요한 “비유”에 대해서 공부를 시작해 보시자.
*비유는 시창작의 원리
비유(比喩)는 수사적 기교나 장식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 창작의 원리이다. 왜냐하면 시인은 비유를 통해서 자신이 발견하고 창조해 낸 의미나 진실, 그리고 새로운 세계를 시적 공간에 형성해 놓기 때문이다. 비유는 시인의 상상력과 직관에서 나오는 불꽃이며 빛이다. 이 비유의 빛이 사물에 가 닿을 때 사물은 숨기고 있던 새로운 모습을 드러내며 우리들에게 인지의 충격과 경이감을 준다. 또한 세계와 인생 속에 숨어있던 진실을 우리로 하여금 발견하도록 만든다.
비유를 모르는 시인은 결코 참다운 시인이 아니며, 비유없는 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래서 시인을 판단하는데는 그가 사용한 비유의 힘과 그 독창성에 의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까지 나오는 것이다. 시는 비유의 덩어리로 되어 있다! 시 창작의 핵심과 본질을 이루는 이러한 비유, 그 정체를 알아보자.
1. 비유란 무엇인가?
비유란 무엇인가? 그것은 어떤 대상의 모양,성질,특성,상태 또는 추상적인 의미나 관념 등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그것과 유사한 다른 대상에 비교하여 표현하는 언어적 방법이다. 즉 서로 다른 두 사물을 비교라는 방법으로 결합시켜서 구체적인 이해나 인식을 얻는 언어적 표현인 것이다. 비교는 우리가 어떠한 사물을 이해하고 인지하는데 있어 가장 효과적이면서도 필수적인 수단이 된다. 왜냐하면 미지의 사물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사물과의 비교를 통해 구체적인 인식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시인은 대상에 대한 비교행위를 통해서, 즉 비유적 언어를 통해서 자신만이 새롭게 발견하고 창조한 사물의 모습과 의미를 드러내 놓는다. 여기에는 상상력과 개성과 독창성이 바탕이 되므로 비유야말로 시 창작의 가장 중요한 원리가 된다고 할 수 있다. 리처즈는 비유를 주지(主旨, 원관념, tenor)와 매체(媒體, 보조관념, vehicle)의 결합구조로 설명하고 있다. 주지는 시인이 본래 드러내려는 사물을 가리키는 것이며, 매체는 주지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비교하는 다른 사물을 가리키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주지와 매체를 일반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원관념과 보조관념이라는 용어로서 통일하자. 이러한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결합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비유의 기본구조이다. 우리들에게 아주 친근한 시 한 편을 들어 간략히 설명해 보기로 하자.
내 마음은 湖水요
그대 저어 오오
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
玉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라.
내 마음은 燭불이요
그대 저 門을 닫아 주오
나는 그대의 비단 옷자락에 떨며, 고요히
최후의 한 방울도 남김없이 타오리다.
내 마음은 나그네요
그대 피리를 불어 주오
나는 달아래 귀를 기울이며,
호젓이 나의 밤을 새이오리다.
내 마음은 落葉이요
잠깐 그대의 뜰에 머무르게 하오
이제 바람이 일면 나는 또 나그네같이, 외로이
그대를 떠나오리다. -----김동명,<내 마음>全文----
위 시를 보자. 내 마음은 원관념이요, 호수, 촛불, 나그네, 낙엽은 보조관념이다. 원관념에 여러 가지 보조관념을 결합시켜 비유를 형성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비유를 이루는 원관념과 보조관념은 각기 다른 이질적인 대상들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이처럼 서로 다른 대상들이 어떻게 해서 서로 결합할 수 있는지, 즉 서로 결합할 수 있는 근거가 바로 동일성 내지 유사성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각기 다른 사물의 이질성 속에서 발견한 동일성 혹은 유사성이 비유의 원리가 되는 것이다.
위 시 1연을 살펴보자. 원관념인 ‘내 마음’과 보조관념인 ‘호수’는 분명 이질적인 대상이다. 그러나 이 두 대상 사이에서 우리는 동일성, 유사성을 유추해 낼 수 있다. ‘내 마음’은 관념적이면서도 주관적인 것이다. 그것은 고정의 틀에 박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수시로 변화한다. 그래서 불꽃같이 타오르는 느낌이 드는가 하면 때로는 잔잔하고, 맑고, 고요하고, 깊고, 푸른 느낌을 갖게 된다. 이러한 주관적인 느낌들이 ‘호수’라는 사물에서 받는 인상과 서로 닮았다. 즉 서로 동일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동일성의 발견은 과학적 법칙을 찾아내는 것처럼 객관적 논리에 기초하지 않는다. 상상력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비유의 바탕에는 반드시 상상력이 깔려 있게 된다.
비유는 시적 장식이나 기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시인의 성숙한 정신과 상상력으로 무질서하고 복잡한 세계를 새로운 질서로 형성하고 사물과 세계를 새롭게 조명하고 창조해 내는 유일한 방법이며 힘이다. 이렇게 시창작에서 중요한 비유도 좀 괜찮은 살아있는 비유와 죽은 비유가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살펴보시자.
2. 죽은 비유와 살아 있는 비유
좋은 시는 우리에게 인지(認知)의 충격과 경이감을 던져준다. 우리의 체험과 삶을 활성화시키고 풍요롭게 하며 우리들 자신을 신장시켜 나가도록 만든다. 우리들 일상은 대부분 고정되고 관습화되고 자동화된 인식에 길들여져 있다. 사물의 피상적인 모습을 보고 우리들은 그것을 앎의 대상으로 여긴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이고, 이해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주위의 모든 사물들은 더 이상 호기심을 자극하지 못하며 새로움을 주지 못하는 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무덤덤하고 낯익고 진부할 따름이다. 그러나 시인의 눈은 이러한 관습적인 태도와 자세에서 벗어나 사물이 숨기고 있는 미지의 부분을 찾아내고 그것들을 우리 앞에 처음으로 제시한다. 이때 우리들의 타성에 젖은 관습적 인식은 깨어지고 사물의 새로운 모습과 의미 앞에서 경이감과 충격을 받는것이다. 앞에서도 말했거니와 비유는 시인이 자신만의 독특한 인식과 상상력에 의해 미지의 사물을 우리 앞에 드러내는 가장 중요한 시적 원리이며 표현방법이다. 이 비유를 통하여 사물의 새로운 모습과 새로운 발견, 새로운 의미, 새로운 인식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런데 모든 비유가 이러한 창조적인 역할을 수행해 내는 것은 아니다. 비유를 이루는 원관념이나 보조관념의 결합이 상상력을 필요치 않는 상식수준이거나, 습관화된 인식 속에서 나온 것이거나, 너무 낯익어서 진부한 것들은 더 이상 우리에게 세계와 사물에 대하여 그 어떠한 경이감과 충격을 자아내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비유를 죽은 비유라고 하는데, 즉 비유로서의 생명을 상실했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이 죽은 비유를 일상생활 속에서 많이 만나게 되는데 예를들면 ‘세월은 유수같다’, ‘세월은 쏜살 같다,’ ‘인생은 아침 이슬 같다’, ‘샛별같은 그녀의 눈동자’, ‘백옥같은 살결’, ‘앵두같은 입술’, ‘목석같은 사나이’, ‘여자는 여우’, ‘남자는늑대’, ‘쟁반 같은 달’, ‘사랑은 불꽃’ 등이 모두 죽은 비유에 속하는 것들이다. 이런 것들을 쓰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써 보았자 진부해서 누가 거들떠 보겠는가? 이러한 비유들은 이미 우리들의 의식속에서 습관화되고 상투화 되었기 때문에 사물과 세계의 의미를 새롭게 보여주지 못한다. 그래서 시에서는 이런 죽은 비유를 멀리하고 배척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시에 생명을 주는 비유만이 시에서는 진정한 비유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창조성을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기는 시에서는 시인의 독창성에 의해서 탄생한 비유만이 진정한 비유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먼
해와 달의 속삭임
비밀한 울음
한번만의 어느날의
아픈 피흘림
먼 별에서 별에로의
길섶 위에 떨궈진
다시는 못 돌이킬
엇갈림의 핏방울
꺼질 듯
보드라운
황홀한 한 떨기의
아름다운 靜菽
펼치면 일렁이는
사랑의
湖心아. ---- 박두진,<꽃>全文-----
위시에 나타나 있는 ‘꽃’의 모습을 보자. 우리 일상 생활 속에서 아름다움, 정열, 사랑, 황홀 등 자동적 관습적으로 받아들였던 꽃의 모습이 아니다. 시인의 눈에 의해서 발견된 ‘속삭임’, ‘울음’, ‘핏방울’, ‘정적’, ‘호심’ 등의 비유는 우리가 예전에는 체험하지 못했던 꽃의 새로운 모습을 드러내며 새로운 의미들을 탄생시키고 있다. 그리하여 이때 솟아나는 정서적 충격과 황홀한 경이감이 우리들의 삶의 지평을 확대시키고 타성에 빠진 우리들의 시각을 깨뜨리게 한다. 이러한 현상, 이러한 힘이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그것은 당연히 시인이 독창적으로 만들어낸 살아있는 비유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 비유에 관한 강의는 하도 시 창작에서 중요한 부분이라 국내 정상급 다른 강의도 좀 소개하고자 한다. 자 여기서 필자의 강의를 잠시 멈추고 고려대학교 시창작 강의에서 강의된 이창배 교수님의 시 창작 특강 중 ‘비유’에 관련된 내용을 좀 소개하고자 한다. 이창배 교수님은 한국영어영문학회 회장과 한국 T. S. 엘리엇학회 초대 회장직을 역임. 주요 저서로는 [20세기 영미시의 이해], [20세기 영미시의 형성], [예이츠시의 이해], [T. S. 엘리엇 연구], [T. S.엘리엇 전집](역서), [현대 영미시 해석], 등의 많은 역서와 논문들이 있다.
<1. 일상어에 쓰이는 비유
손쉽게 신문 한 장을 펴들어도 수많은 비유적 표현을 보게 된다. "얼어붙었던 남북관계에도 화해의 움이 트기 시작했다", "정당의 수뇌들 전국의 표밭을 누비다"와 같은 기사에서 '움이 트기 시작하다'라는 표현, '수뇌들', '표밭', '누비다' 같은 어구들은 잘 생각해보면 그것이 아주 자연스럽게 쓰이는 비유임을 알게 된다. 우리 일상용어에는 비유로써 표현되는 말이 얼마든지 있다. [쟁반 같은 보름달], [신선놀음에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른다], [태산같이 믿었던 자식] 같은 비유는 옛날부터 써내려오고 있는 비유적 표현이고, [빙산의 일각], [천정부지의 물가], [고속도로의 병목 현상] 같은 말들은 아주 근자에 와서 쓰이는 비유적 표현이다. 비유는 두 가지 사물이나 체험이 연결되고 거기에 유사성이 내재한다는 조건에서 성립된다.
일상 쓰이는 비유는 일상적인 비근한 사물이나 체험끼리가 관련되지만, 시에서와 같이 감정이 세련된 사람,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들이 쓰는 비유는 아주 동떨어진 것끼리가 결합되어 듣는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비유법을 설명하는데 있어 직유(simile)와 은유(metaphore)로, 구분하여 "~와 같이, ~처럼(as, like)"이란 말을 써서 비유의 주체와 객체가 관련지어진다면 그것은 직유이고, 그 양자가 동일화되면 은유라고 한다.
그러나 그 구분은 사실상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쟁반 같은 보름달"이라는 표현은 '쟁반'과 '보름달'의 두 가지 사물이 외견상의 유사성을 바탕으로 연결된 직유이다. "하해 같은 은혜"라고 하면 '은혜'아 '하해'의 외견상 유사성이 아니라 은혜라는 말의 질적인 의미가 바다의 양적인 면과 연결되어 추상적인 의미를 구체적 이미지로 파악할 수 있도록 표현된 직유이다. 이런 직유를 은유로 바꾸어 "보름달이 쟁반이다", "은혜는 바다다"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화해의 움이 튼다"라는 은유를 "움이 트듯이 화해의 징조가 보인다"라고 직유로 바꾸어 말할수 있고, "그는 생활이 신선놀음 같다"라는 직유를 "그의 생활은 신선 놀음이다"라고 은유로 바꾸어 말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비유를 은유니 직유니 하고 구별하여 직유는 단순히 두 가지 사물의 유사성을 강조하고, 은유는 비유의 관계가 내포되어 있어 의미가 훨씬 심원하다는 식의 구분은 단순한 생각이다. 직유와 은유는 때로 혼동되어 구분이 불가능한 것이니까, 그런 구분보다는 비유 자체가 우리의 언어 기법에서 어떤 기능을 갖는가를 생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비유의 기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비유를 통하여 두 가지 동떨어진 사물 혹은 경험이 연결되어 추상적이고 막연한 의미가 구체적인 체험으로 바뀌기도 하고 새로운 의미가 창출되기도 하는 점이다.
"인생은 일장춘몽이다"라는 표현은 일상 쓰이는 말이지만 비유적 표현이다. "인생"이라는 개념을 봄날 잠이든 사이에 스쳐간 꿈과 합일시킴으로써, 인생이라고 하는 개념적이고 막연한 생각이 구체적인 일상체험으로 바뀌어 인생은 순간적이고 허망하다는 새로운 의미를 체험하게 한다. "유수 같은 세월", "초개 같은 목숨"등의 비유도 같은 기능을 갖는다.
비유는 또한 두 가지 사물을 대비함으로써 과장하거나 은근히 야유하거나 희화화하는 구실도 하여 대화의 묘미를 더한다. "한끼 굶으니 해골이 다됐다"라는 표현은 일종의 은유인 바 여기에는 과장적인 뜻이 드러나 있고, "샛별 같은 눈동자", "우뢰 같은 박수 소리", "구슬땀을 흘린다" 등의 비유는 과장조이지만 미화의 효과를 드러낸다. 반면 "얼굴에 철판을 깔고", "변덕이 죽 끓듯 한다", "뱁새눈에 하마 같은 입을 하고"와 같은 비유적 표현들은 야유조이거나 희롱조이다.
이런 예를 들자면 한이 업다. 우리가 쓰는 일상어, 특히 다소라도 감수성이 발달한 사람이 쓰는 말을 잘 귀담아 들어보면 비유적 표현이 풍부한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런 표현은 직감적인 호소력이 있어서 이해가 쉽고, 대화에서 권태를 느끼지 않게 한다.
본래 인간의 언어는 감각에서 연유하는 단순한 어휘로부터 출발하여 점차 복잡하고 추상적인 표현으로 발달되어 왔다. 그것은 어린아이가 쓰는 말과 어른이 쓰는 말, 덜 배운 사람과 배운 사람이 쓰는 말을 비교해보면 잘 알 수 있다. 인간의 사고가 복잡해지고 문화가 고급화되어감에 따라서 언어는 점점 추상화되게 마련이다. 그럴수록 의사전달의 수단도 발달하여 말이 더 많이 수사에 의존하여, 다양하고 깊이 있는 비유적 표현을 쓰게 된다. '병모가지', '책상다리' 같은 일상용어도 원시문화 시대에는 없었던 꽤 발달한 언어 생활에서 쓰이게 된 일종의 비유적 표현이다.
박지원의 [양반전]에서 보면 "눈은 코 끝을 내려보면서 얼음 위에 조롱박을 굴리듯 <동래전의>를 읽어야 하느니라...... 젓가락을 절구질하듯 놀려서는 못쓰며"(이가원 역)라는 대목이 있다. 여기에 쓰인 비유들은 너무 고풍스러워 이젠 쓰이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마라", "예술은 자연을 비추는 거울이다", "하나님 아버지(God the Father)" 같은 구절에서 "옳은 일과 길", "예술과 거울", "신과 아버지" 등은 모두 철학적 종교적 의미를 담고 있는 고급 사유의 경지에서 생겨난 비유적 표현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비유는 결코 시에만 쓰이는 특수한 수사법이 아니고 우리이 언어 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쓰이는 일종의 언술의 기법이다.
시는 일상 쓰는 말과 크게 다를 바 없는 특수한 언술이기 때문에, 시에 쓰이는 비유도 우리의 일상어에서 쓰는 비유적 표현과 똑같은 원리로 생각해야 한다. 다만 시는 아주 세련되고 심화된 언어 표현의 일종이라고 보아야 한다.
2. 잘된 비유와 잘못된 비유
일상어에서 쓰이는 비유와 시에서의 비유는 그 본질과 기능에는 다를 바 없지만, 우리가 일상 쓰고 있는 비유는 그것이 자주 쓰이는 동안에 신선미와 탄력성을 상실한 점에서 생명력이 끊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비유를 '죽은 비유(dead metaphor)'라고 말한다.
언어도 일반 도구와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사용하면 신선도가 떨어지거나 변질되어 시대에 맞지 않고 전달 효과가 줄어든다. 앞서 예로 들은 "얼음 위에 조롱박을 굴리듯이"나 "젓가락을 절구질하듯하다"라는 표현에서, 조롱박이나 절구가 없어진 현대인의 생활에서 그 비유는 이미 설득력을 상실한 '죽은 비유'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세월이 유수와 같다"라는 표현은 사람들이 너무 많이 사용하여 냄새가 날 정도로 진부한 비유여서 그것 역시 죽은 비유이다. 시인은 사물과 세상을 남달리 새롭게 그리고 독특하게 체험하는 감수성을 지닌 사람이다. 그는 다른 사람의 말을 모방하거나 되풀이하기를 싫어한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통해서 같은 주제의 시가 거듭 쓰여왔지만 표현이 같은 시는 거의 없다. 잘된 비유와 잘못된 비유는 독창성과 신빙성에 달려 있다. 잘된 비유는 남이 쓰지 않은 참신하고 믿음이 가는 비유이면서 그것이 시의 주제를 심화시키는 작용을 해야 한다. 다음에 인용하는 시편에서 비유가 잘되었는가 잘못되었는가를 살펴보고 그 이유를 따져보자.
너(수선화)처럼 우리가 머무를 시간은 순간이다 봄은 아주 짧아서 성장하자마자 시들고 만다, 너나, 어떤 것이나 모두. 우리는 죽는다 네 목숨이 다하여, 말라 버리듯이 여름비 마냥 또는 아침 이슬 방울처럼 다시는 볼 수 없이 된다.
We have short time to stay, as you, We have as short a Spring, As quick a growth to meet Decay, As you, or anything. We die, As your hours do, and dry Away, Like to the summer's rain; Or as the pearls of morning dew Ne'er to be found again.
이 시는 로버트 헤릭(Robert Herrick)이 수선화꽃을 바라보며, 그 꽃이 아침나절 피었다가 한나절도 되기 전에 시들어버리는 것을 안타까와 하면서 인간도 그와 마찬가지로 성장하자마자 죽고만다는 생각을 노래한 가벼운 가락이다. 이 시에서 시인은 인생은 짧고, 청춘은 더욱 짧다는 생각을 피자마자 시들고 마는 수선화에, 그리고 여름날의 비와 이슬에 비유하였다. 이 비유 자체가 잘못된 비유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것은 이미 동서고금 너무 자주 쓰여서 거의 죽은 비유에 가깝다. "화무십일홍(花無十一紅)"이니 "인생은 초로와 같다"와 같은 비유를 썼다고 하면, 누가 그 시를 거들떠보겠는가. 오든(W H Auden)은 다음 시연에서 헤릭의 시와 유사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한층 세련되고 독창적인 비유의 수법을 쓰고 있다.
[어느 날 외출했을 때](As I Walked Out One Evening)라는 꽤 긴 시의 한 연에서 인생을 구멍난 물그릇에 비유하여, 그 그릇에서 부지불식간에 물이 새어나가듯이 근심 걱정 속에서 인생은 늙어간다고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근심과 걱정 속에서 알지 못하게 인생은 새어나간다, 그리고 '시간'님은 환상을 가지리라 내일이니 오늘이니 하고. In headaches and in worry Vaguely life leaks away And time will have his fancy Tomorrow or today.
위의 시연에서 "인생이 새어나간다"라는 구절은 은유적 기법인에, 비유의 객체, 즉 구멍난 물그릇을 드러내지 않고서 거기에서 물이 새어나가는 속성만으로 비유를 성립시켰다. 한편 '시간님'이라고 번역한 것은 시간에 대한 의인화로서 그 절대성이 암시되어 있다. 절대적 존재인 시간이 주는 오늘이니 내일이니 하는 환상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은 깨진 그릇에 담긴 물처럼 목숨이 점점 줄어들어 간다.
미래에 대한 희망적인 환상 속에서 자기도모르게 줄어들어가는 목숨을 이어가는 인생이란 얼마나 아이러닉한 존재인가. 다음 시는 셰익스피어가 한 소중한 친구에게 노경에 접어든 자기의 처량한 처지를 그리면서 그 우정에 하소연한 시이다. 이 시에 제시된 유사한 비유의 예들을 놓고 그것이 잘되었는가 아닌가를 살펴보자.
당신은 내게서 찬바람에 흔들리는 가지에 단풍잎이 아예 없거나 몇 잎 매달린 그런 계절을 보리라. 그것은 얼마전까지 노래하던 새들 떠나버린 텅 빈 황량한 성가대석. 당신은 내게서 하루 해의 황혼을 보리라. 지는 해가 서녘으로 사라진 뒤의. 검은 밤이 서서이 그 석양을 가져가버리지, 만물을 휴식으로 감싸는 죽음의 분신 그 밤이. 당신은 내게서 젊음이 타버린 재 위에 아직 남은 환한 불길을 보리라. 그것은 타던 불이 그 위에서 꺼져야 할 죽음의 침상, 그 불은 스스로 타서 그 위에서 꺼져버리나니. 당신이 이것을 알면 사랑하는 마음 더하여 머지않아 하직해야 할 이 사람을 더 사랑하리라.
이 시에서 시인은 늙어가는 자신의 처지를 세 가지 비유로써 형상화하고 있다. 첫째는 그것을 낙엽지는 가을철에, 그 다음엔 황혼에, 그리고 마지막으로 꺼져가는 불에 비유하였는 바, 늙어가는 인생을 겨울을 앞둔 늦가을의 황량한 계절에 비유한 것이라든지, 해가 지고 난 뒤의 황혼에 비유한 것, 또는 젊음이 타고 남은 재 위에 아직 남아 있는 불길에 비유한 것 등은 결코 참신하고 독창적인 비유라고 하기 어렵다.
우리말에서도 '인생의 황혼기'라는 비유는 일상적으로 쓰이는 말이고, ''추안 秋顔'이란 늙은 얼굴을 말하는 것이니 그런 표현은 이미 '죽은 비유'에 속한다. 다만 "찬바람에 흔들리는 가지"를 "텅 빈 황량한 성가대석"에 비유한 것만은 매우 독창적이다. 성가대원들이 다 떠나버린 쓸쓸한 성가대석을 연상시키면서 이 성가대석엔 얼마전까지만 해도 '고운 새들'이노래했었는데, 지금은 '노래군들'도 없이 황량하게 노출된 상태라고 하니 그 이미지가 "가지 위에 단풍잎이 몇 잎 매달린" 늦가을의 황량한 계절적 이미지와 잘 부합되고 나아가 그것이 황혼기에 접어든 시인의 처지를 선명하게 반영한다. 다음 시는 김광균의 [秋日抒情]이다. 이 시에도 가을과 관련되는 여러 개의 비유가 쓰여 있는 바 그 타당성을 살펴보자.
낙엽은 폴 - 란드 망명정부의 지폐 포화(砲火)에 이즈러진 도룬 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게 한다. 길은 한 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배연기를 내어뿜으며 새로 두 시의 급행열차가 들을 달린다. 포플라 나무의 근골(筋骨) 사이로 공장의 지붕은 흰 이빨을 드러내인 채 한가닥 꾸부러진 철책이 바람에 나부끼고 그 우에 셀로판지로 만든 구름이 하나 자욱 - 한 풀벌레 소리 발길로 차며 호올로 황량한 생각 버릴 곳 없어 허공에 띄우는 돌팔매 하나 기울어진 풍경의 장막 저쪽에 고독한 반원을 긋고 잠기어 간다.
이 시에서 낙엽을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에 비유한 것은 은유에 해당하고, 한 줄기의 길을 풀어진 넥타이에 비유한 것은 직유에 해당한다. 시인은 이와 유사한 몇 가지 비유를 써서 도시 근교의 가을 풍경을 스케치하면서, 마지막 5행에서 자신의 황량한 심정을 허공중에 돌팔매질하는 이미지로 드러내보인다. 지폐, 넥타이, 급행열차, 셀로판지와 같은 도시문명적인 이미지는 김광균 이전의 시에선 보기 드문 것들이어서 시가 매우 현대적이고 참신한 느낌을 준다. 이런 유의 시는 1910년대 영미시단에서 유행했던 사상파 시인들의 영향에서 생겨난 것으로서, 시에서 이미지 제시와 감정 노출의 억제에 주력한 점이 특징이다.
비유를 통하여 풍경 묘사에 주력한 이런 시의 경우 정확한 이미지는 시의 생명이다. 정확한 이미지는 신빙성 있는 비유에서 생겨나는 것이니, 비유의 주체와 객체의 결합에 타당성이 없을 경우 그 비유는 신빙성을 잃는다. 이 시의 첫 행 '낙엽'과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의 결합은 어떤가. 우선 생명이 끊어진 낙엽과 쓸모가 없어진 망명 정부의 지폐는 일견 유사성이 있어 보이지만, 이 시의 주조를 이루는 가을철의 황량한 감정 면에서 볼 때 그 유사성이 의심스럽다.
낙엽에서 느껴지는 "떨어지고 흩어지는" 스산한 감정과 지폐와는 너무 동떨어진 느낌이다. 다음으로 "길은 한 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의 시행에서도 꾸불꾸불 뻗어있는 시골길의 이미지와 풀어진 넥타이의 이미지는 유사성이 있긴 하지만, '구겨진'이란 수식어로써 그것이 흐려진 느낌이다. 다음 연에서 "한 가닥 꾸부러진 철책이 바람에 나부낀"다는 표현도 철책과 바람의 결합은 납득이 가지 않고, "셀로판지로 만든 구름"의 이미지도 그것이 매우 기발혹 참신한 메타포이긴 하지만, '하나'라는 말을 차라리 '둥실'이란 말로 바꾸었더라면 양자가 지닌 무중력 상태의 느낌이 좀더 정확하게 전달되었음직하다.
3. 비유는 상상력에서 이루어진다.
비유는 상상력의 산물이다. 상상(imagination)이란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말한다. 달리 말하면 실제로 있지 않은 것, 경험한 일이 없는 것을 마음속에 어떤 모양으로 형상화하는 능력을 말한다. 그뿐 아니라 상상력을 통하여 관련 없는 체험이나 사물들이 연결되기도 한다. 이런 능력은 인간에게만 부여된 위대한 창조력의 원천이다. 천재적 과학자들도 새로운 원리를 발견할 때는 시인과 똑같은 상상력에 의하여 결정적인 단서를 얻는다. 뉴튼이 한 알의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의 원리를 암시 받은 것도 따지고 보면 그의 탁월한 상상력의 작용이다.
인간은 상상력에 의하여 마음속에 천사도 악마도 그릴 수 있고, 유사한 체험을 연결지어 새로운 의미로 발전 확대시키기도 한다. 상상력을 체계적으로 설명한 S T 코울리지에 의하면 상상력이란 상반되는 것들을 동화하고 종합하는 능력이다. 더 자세히 말하면 그것은 서로 다른 것끼리, 예를 들면 일반적인 것과 구체적인 것, 관념과 이미지, 개별적인 것과 대표적인 것, 새롭고 신기한 것고 일상적인 것을 융합시키는 작용이다. 코울리지이 이론에 따라 상반되는 것끼리 결합하는 패턴을 보면 사물과 사물의 외양의 유사성을 바탕으로 결합되는 경우도 있고, 정서나 감정이 이미지로 연결되는 경우, 사상 혹은 이념 같은 것이 이미지와 합쳐지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결합의 양상도 가지가지이다. 앞에서 인용한 블레익의 시에서 범과 양의 이미지는 상반되는 것끼리가 대조의 방법으로 결합된 것이고,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에 제시된 국화와 인고의 여인상의 결합은 유사성을 통한 동일화의 예이고, "삭풍은 나무 끝에 불고, 명월은 눈속에 찬데 만리 변경에 일장검 짚고 서서..."의 시조에서는 삭풍, 찬 눈, 만리변경 같은 유사한 이미지들이 병치의 수법으로 결합된 경우이다.
4. 정서와 이미지의 결합
서정시의 경우 정서나 감정은 시의 전부라 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정서라는 것은 모양도 없고 냄새도 없는 것이어서 개념적으로는 표현이 불가능한 성질의 것이기 때문에, 시인들은 그것을 이미지로 파악하여 제시하고 독자도 그 이미지를 통하여 받아들인다.
다음 인용은 이장희의 [靑天의 乳房]의 전문이다. 시인은 이 시에서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느끼는 동경과 희구의 정서를 어머니의 유방의 이미지에 결합시켰다. 그러니까 "청천의 유방"이란 푸른 하늘에 유방이 붙어 있다는 뜻도 아니고, 청천이 유방과 유사하다는 뜻도 아니다. 청천에서 느끼는 정서와 어머니의 유방에서 느끼는 정서가 동화 융합되었다 함이 옳을 것이다. 어머니 어머니라고 어린 마음으로 가만히 부르고 싶은 푸른 하늘에 따스한 봄이 흐르고 또 흰 별을 놓으며 불룩한 유방이 달려 있어 이슬 맺힌 포도 송이보다 더 아름다워라. 탐스러운 유방을 볼지어다,
아아 유방으로서 달콤한 젖이 방울지려 하누나 이때야말로 哀求의 정이 눈물 겨웁고 주린 식욕이 입을 벌리도다 이 무심한 식욕이 복스러운 유방...... 쓸쓸한 심령이여 쏜살같이 날라지어다. 푸른 하늘에 날라지어다. 햇볕이 쏟아지는 푸른 봄 하늘을 바라보며 시인은 그 신비스런 푸른 하늘에 빨려들 듯한 막연한 그리움에 사로잡힌다. 그 정서가 어머니에 대한 사모의 감정으로 동화되고, 나아가 따스한 봄볕이 쏟아지는 푸른 하늘이 어머니의 유방의 이미지로 바뀌며 거기에 달콤한 젖이 뚝뚝 듣는 이미지로 연결된다.
그리움이라고 할 수 있고, 동경이라고 할 수도 있는 그 정을 그는 우리가 어머니의 유방에 대해서 느끼는 본능적 욕구로써 느낀다.
푸르디 푸른 봄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아득하고 순수한 것을 향하여 달려들고 싶은 충동적이고 본능적인 욕구를 느낀다. 그 눈물겹도록 절실한 욕구를 그는 "애구의 정"이라고 부르고, 그것이 본능적이라는 뜻에서 "무심한 식욕"이라는 비유로 표현하였다. 이 욕구는 따져보면 아득한 것 순수한 것을 찾는 일종의 낭만적 욕구이기 때문에 끝내 채워질 수 없는 것이어서 시인의 '심령'은 쓸쓸할 수밖에 없다. 다음 시는 영국의 여류시인 크리스티나 로제티(Christina G. Rossetti)의 [생일날 A Birthday]이라는 시이다. 이 시에서 생일날이 다가올 때의 황홀한 감정이 어떻게 이미지로 바뀌었나를 살펴보자.
내 마음은 노래해는 새 같아요물오른 가지에 둥지를 튼,내 마음은 사과나무 같아요과일이 듬뿍 매달려 가지가 휜.내 마음은 무지개빛 조개 같아요평온한 바다 속을 헤엄치는,내 마음은 이런 것보다 더 기뻐요,내 사랑이 오니까요내게 비단과 솜털로 단(壇)을 세워줘요.거기에 얼룰 무늬와 자색 털발울을 매달고,비둘기와 석류를 세겨 넣어주어요,백 개의 눈이 달린 공작도.금빛 은빛 포도알을 새겨 넣고잎사귀와 은빛 백합 문양도,왜냐하면 내 목숨 태어난 날이다가오니까요, 내 사랑이 오니까요.
생일날은 우리의 마음을 찬란하게 해주는 즐거운 하루다. 케이크에 촛불을 밝히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는 순간은 분명 행복한 시간이다. 이 날 애인이 꽃다발을 들고 찾아온다면 더 말할 나의 없는 기쁨이다. 시인은 생일날의 이러한 화려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그것을 가지에서 노래하는 새, 과일이 매달린 사과나무, 고요한 바다에서 헤엄치는 무지개빛 조개, 그리고 각종 장식으로 꾸며진 단 등의 이미지와 합일시켰다. 그 이미지들은 거기에 각종 아름다운 수식어들이 덧붙여져서 시 전체가 영롱한 색채와 화려한 이미지의 물결로 충만되어 있다. 이 시가 비록 소박한 동시류의 소품이지만 시인의 감정은 이미지들로써 구체적인 파악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다음은 미국의 여류시인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의 시이다. 시인은 이 시에서 크나큰 마음의 아픔을 겪고 난 후의 무감각 상태를 적절한 이미지로써 형상화하였다.
큰 고통이 있고 나선 감정이 굳어진다 -신경은 무덤처럼 무뎌지고.굳은 심장은 묻는다 - 그것을 견딘 것이 그였던가?어제였던가 - 아니면 몇 백년 전이었던가?기계적인 발은무관심해진 채로흙은 밟는지 공기를 밟는지 무얼 밟는지딱딱한 길을돈다.돌 같은 투명한 만족.혹시 살아남으면 생각나는납 같은 시간이다,동사하는 사람들의 눈에 대한 회상처럼 - 처음엔 오싹하다가 다음엔 마비, 그리곤 가버리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별 같은 큰 충격적인 일이 있은 후엔 우리의 마음이 만사에 무관심해질 뿐 아니라 감각이 무뎌져서 망연해진다. 시인은 이 무뎌진 감각 상태를 아주 독창적인 비유로 제시하는 바, 감각이 이미지와 동화된 경우라 하겠다. 제1연에서 "신경이 무덤처럼 무뎌진다"의 직유는 놀라운 비유이다. 무덤은 그 앞에 누가 와서 흐느껴 울어도 반응이 없는 가장 무감각한 존재이다. 굳어진 신경과 무덤과의 결합, 그리고 정신이 나간 사람의 경우를 "그것을 견딘 것은 그였던가" 또는 "어제엤던가 - 아니면 몇 백년 전이었던가" 등의 자문의 형식으로 표현한 것도 시의 구체성을 더한다.
제2연에서 무신경한 상태가 되어 발이 움직여도 그것으 흙은 밟았는지 공기를 밟는지, 어디나 딱딱한 길을 빙빙도는 느낌이라는 표현도 놀랍고, 그런 상태를 "돌 같은 투명한 만족"이라고 한 이중 비유적 표현도 시인의 투명한 감수성을 보여주는 구절이다. 그 말은 무신경의 상태에서는 만족도 불만도 없기 때문에 그것은 돌 같은 상태이며 한편 수정처럼 아무것도 비쳐지는 것이 없는 무색 투명의 경지인 셈이다.
제3연에서는 이 굳어버린 감각의 상태가 "납의 시간"에, 그리고 눈 속에서 동사하는 사람이 겪는 감각의 마비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경로로 비유되어 이다. 마치 자기의 신경조직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서 그 미세한 움직임까지 파악하는 듯한 섬세한 감수성을 보여주는 비유들이다. 다음 시 역시 같은 시인의 유사한 시이다.
겨울 오후의비껴드는 햇살그것은 압력을 준다사원의 오르간 소리의 무게와 같은.그것은 우리에게 거룩한 아픔을 주다,상처를 볼 수는 없지만,그러나 내부에선 다르다그 안에 의미가 있다.아무도 그것에다 무얼 가르칠 순 없다그것은 비밀이고, 절망-하늘에서 우리에게 보내온절대적 고통.그것이 나타나면 풍경도 귀 기울이고,그림자들도 숨을 죽인다.그것이 가버리면, 죽음의 면상에서느끼는 거리만 하다.
남달리 감성이 여리고 섬세하여 한 잎의 오동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가을을 느끼고, 스쳐가는 바람결에도 가슴이 설레는 사람이 있다. 에밀리 디킨슨은 겨울날 비껴드는 한줄기 햇살에서 마음의 아픔을 느낀다. 그녀는 그 감각의 반응을 아주 적절하고 참신한 비유적 이미지로 그려내고 있다. 여름날 햇볕은 쏘아댄다고 할 수 있겠지만, 겨울날 햇볕은 약해서 마음에 와 닿는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시인은 그 와 닿는 아픔을 '압력'이라고 표현했고, 교회당 옆을 지날 때 들려오는 오르간 소리에 비유하여 그 '압력'이 유사함을 느끼게 한다.
다음 연에서 그 압력이 "거룩한 아픔을 준다"고 말함으로써 그녀가 과연 종교적 체질의 시인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 아픔이 가슴속엔 파문을 일으키겠지만 겉에 상처를 주는 것은 아니다. 이 아픔은 말하자면 마음 속의 파문이라 하겠는데, 그 파문에 흔들려 감상에 빠지지 않고 종교적 경지로 직결되는 것은 그녀의 감수성이 종교적으로 세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녀는 마음속에 일으킨 파문, 그 상처에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시인은 마음속에 느끼는 이 거룩한 고통을 순수하고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에다 무엇을 가르쳐 어떤 영향을 줄 수도 없고, 그 '압력'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거기에서 의미를 찾는다. 그것을 한마디로 설명하면 '비밀'이고 '절망'이다. 절망은 종교인만이 이해할 수 있는 일체를 신에게 내맡긴 상념의 상태다. 이 절망의 상태에서 신앙은 깊어진다.
마지막 연에서 시인은 '거룩한 아픔'의 순간이 닥쳐왔을 때와 사라질 때에 느껴지는 마음의 상태를 비유적 이미지로 제시한다. 거룩한 순간이 닥쳐올 때엔 심중에서 절대적인 고요와 만상의 정지를 체험한다는 것을 "풍경도 귀 기울이고 / 그림자들도 숨을 죽인다"라고 표현하였다. 디킨슨에게서만 볼 수 있는 놀라운 비유이다. 그 순간이 지나가고 평상의 심경으로 돌아오면 지나간 체험이 까마득하게 멀리 느껴진다는 것을 "죽음의 면상에서 / 느끼는 거리만하다"라는 직유를 써서 표현하였다.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바라보면 이승과 저승의 건널 수 없는 거리를 느끼게 된다. 이 또한 놀라운 비유라 하겠고, 이런 시구를 읽을 때에 비로소 시를 읽는 기쁨을 체험하게 된다.
5. 사물과 사물의 결합
시에서 사물과 사물이 그 외견상이 유사성을 바탕으로 결합되어 비유를 이루는 예는 가장 흔하고 이해하기 쉽가. 영국시인 존 키츠는 그의 유명한 [희랍 항아리 송시 Ode on a Grecian Urn]에서 희랍 항아리를 '순결한 신부'와 그리고 '시간의 양아'와 그 다음은 '삼림의 역사가'와 동일화시켰다.그대 항상 순결한 정적의 신부여,그대 고요와 서서히 흐르는 시간의 양자여,삼림의 역사가여, 너는 과연 이렇게우리의 가락보다 더 아름답게 꽃다운 얘기를 표현할 수 있구나.이 시에서 키츠는 희랍의 옛 항아리를 보면서 그 아담한 자태와 표면에 무늬 새겨진 목가적인 그림에 황홀한 찬미의 노래를 보내고 있다. 시인이 이 항아리에서 느끼는 것은 우리가 고려청자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과 다를 바 없다. 우리는 이런 옛날의 도자기를 보면서, 그것을 한낱 흙으로 빚어진 조형물로 보지 않고 살아 숨쉬는 인격체로 보게 마련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오랜 세월의 흐름과, 그 세월의 우여곡절을 내면에 간직한 채 침묵을 지키는 초연한 모습을 본다. 시인 박종화가 석굴암 대불을 보면서 [천년을 지키는 침묵]이라고 했을 때에도 같은 느낌을 읊은 것이다.
키츠는 항아리를 말없이 앉아있는 순결한 신부라고 부르고, 다시 그것을 침묵과 서서히 흐르는 시간이 길러낸 아이(양아)라고 부른다. 이것은 침묵과 시간을 의인화한 일종의 비유이다. 처음 비유에서는 주로 항아리의 아담하고 정결한 느낌을 이미지화한 것이고, 두 번째 비유에서는 오랜 시간의 흐름과 침묵의 느낌을 이미지화한 것이다. 세 번째로 시인은 항아리를 숲속에서 일어나는 목가적인 얘기를 들려주는 '역사가'라고 부른다. 그것은 항아리 표면에 새겨진 그림을 보고서 하는 말이다. 그 그림에는 목가에 나오는 요정들과 선남선녀들의 로맨스 장면이 새겨져 있다. 시인은 항아리가 그 꽃다운 얘기를 우리의 시보다도 더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음을 강조하는 뜻에서 '삼림의 역사가'라는 비유로써 부른다. 우리나라 시에서도 아주 흡사한 비유의 예를 볼 수 있다. 시인 조지훈은 '달빛에 젖은 탑'의 모습을 키츠와 마찬가지로 여인의 몸매와 동일화하여 생각한다. 이것 역시 사물과 사물의 유사성을 통한 비유이다.
물에서 갓나온 女人이옷 입기 전 한때를 잠깐 돌아선 모습달빛에 젖은 塔이여!온몸에 흐르는 윤기는상긋한 풀내음새라검푸른 숲 그림자가 흔들릴 때마다머리채는 부드러운 어깨 위에 출렁인다.희나 흰 얼굴이 그리워서조용히 옆으로 다가서면수줍음에 놀란 그는흠짓 돌아서서 먼뎃산을 본다.재빨리 구름을 빠져나온달이 그 얼굴을 엿보았을까어디서 보아도 돌아선 모습일 뿐永遠히 얼굴은 보이지 않는塔이여!
불교 문화의 정수인 탑은 한국적 정서를 대변한다. 생각과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기보다는 그것을 내면에 간직하고 은근히 견디며, 차라리 돌아서서 수줍어하는 한국적 정서는 전통적인 한국의 여인상에서 느끼는 함축적인 아름다움이다. 시인은 달빛을 받으면서 서 있는 탑에서 한국 여인의 그 은근한 멋을 찾고 거기에 매료되어 있다. 탑은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얼굴을 볼 수 없으니 항상 돌아서 있는 모습이고, 몸에 걸친 것 없으니 알몸으로 서 있는 모습이다. 그 몸에 은은한 달빛이 흐르니 흡사 물에서 갓나온 여인의 윤기나는 몸체가 잠시 뒤돌아선 모습이다. 시인은 이 여인의 젊은 육체, 백옥 같은 얼굴을 상상하면서 그 느낌을 '상긋한 풀내음새', '검푸른 숲', '희나 흰 얼굴' 등의 이미지로 파악한다.
6. 사상과 이미지의 결합
사상이나 이념, 주의 주장 같은 것은 마땅히 산문으로 써야 격에 맞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내용에 따라 시가 되고 안되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시적 운율을 갖는 것이냐 아니냐, 그리고 그것이 이미지로 체험할 수 있는냐 없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같은 주장이나 사상도 그것을 딱딱하고 지루한 논문으로 읽는 것보다 시로 읽으면 전달 면에서도 독특한 효과를 갖는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경구, 격언, 표어 등은 모두가 시적 원리가 적용되어 있기 때문에 잊혀지지 않고 깊이 마음에 새겨져 있는 것이다. 다음 시는 김형원(金炯元 1900~1950)의 [벌거숭이 노래]의 일부이다. 시인은 이 시에서 반 문화주의, 본능적 생명존엄사상을 벌거숭이의 이미지로 표현했다.
나는 벌거숭이다.옷 같은 것은 나에게 쓸데없다.나는 벌거숭이다.制度 因襲은 古人의 옷이다.나는 벌거숭이다.시비도 모르고, 선악도 모르는,나는 벌거숭이이다. 그러나 나는두루마기까지 갖추어 단정히 옷을 입은제도와 인습에 추파를 보내어 악수하는썩은 내가 물씬물씬 나는 구도덕에 코를 박은,본능의 폭풍 앞에 힘없이 항복한 어린 풀이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미국시인 월트 휘트먼의 시를 번역하고, 그의 사상에 크게 영향받은 김형원은, 인간은 평등하고 선하고 행복한 상태였는데, 후천적으로 인습과 제도에 얽매이고 도덕률의 굴레를 쓰므로써 불행해진다는 낭만적 생명예찬론을 시로 썼다. 그는 제도와 사회적인 인습과 도덕률에 묶이지 않은 본능적인 인간을 벌거숭이의 이미지로 파악하고 인간을 구속하는 제도, 인습, 도덕률들을 옷의 이미지로 파악하였다. 다음 시는 윌리엄 워즈워드의 유명한 시 [영원불멸 송가 Ode:Intimations of Immortality]의 일절이다. 그는 영혼의 영원불멸 사상을 별, 구름, 하늘, 빛 등 주로 천제의 이미지, 그리고 여행과 감옥 등의 이미지로 파악하여 매우 감동적인 어조로 노래하고 있다.
우리의 태어남은 한낱 잠이나 망각에 불과하다.우리와 함께 솟아오르는 영혼, 우리의 생명의 별은어딘가 딴 곳에 지고서멀리서 온다.완전한 망각이 아니고,전적으로 알몸으로 온 것이 아니라,우리의 고향, 신으로부터의영광의 구름의 옷자락을 뒤에 끌고서 우리는 온다.우리의 유년기는 천국에 에워싸여 있다!감옥의 그림자가 에워싸기 시작한다.성장하는 소년을,그러나 그 소년은 빛을 보고, 그 빛이 흐르는 데서그것을 보고 기뻐한다.매일 동쪽에서 멀어지는 청년은길은 가야하지만, 항상 자연의 사제이고,가는 도중 찬란한 비전이그를 수반한다.드디어 어른이 되어 그 빛은 꺼지고일상의 빛 속으로 사라져버림을 본다.
이 시는 인간의 영혼은 영원한 것이고 영혼의 나라는 축복의 세계이며, 우리가 태어나서 성장하여 어른이 되는 과정은 그 영혼의 나라에서 벗어나서 불행한 일상의 세계로 옮겨가는 것이라는 사상을 여행의 과정에 비유하여 설명한다. 워즈워스는 영혼과 천국과 자연을 동일시해서 생각한다. 즉, 영혼은 곧 천국이고, 천국은 곧 자연이기 때문에 인간이 아직 자연의 품안에 있는 동안에는 천국의 축복을 받지만, 성장하여 자연 상태에서 멀어져 일상 세계에 들어서면 그 축복의 빛이 꺼져버린다는 것이다.
시인의 생각에 의하면 태어난다는 것은 우리가 천국의 나라에서 살다가 잠시 이 세상으로 옮겨오는 것이다. 그러니까 현재의 생은 잠들어서 전생의 생을 망각하는 것과 같다. 시인은 영혼을 별(태양)에 비유하여 우리가 영혼을 갖고 태어나는 것을 신생의 별이 떠오르는 것이라고 했고, 그 별은 과거의 별이 일단 지고서 먼데서 새로이 떠오른 별이라고 했다. 그러나 전생의 별이 지고서 새 별이 떠오른다 해서, 과거의 생을 완전히 잊어버리는 것도 아니고 그 영향에서 벗어나는 것도 아니다. 태어나서 소년기를 거쳐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은 우리의 고향인 그 축복의 나라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것을 의미한다. 빛의 근원에서 멀어지니까 인간은 성장할수록 신의 축복의 빛이 점점 줄어드는 결과가 된다. 어릴 때에는 신의 영광된 구름을 옷자락처럼 이끌고 천국의 빛에 에워싸여 있다가, 소년기에 접어들면 불행이 감옥의 그림자처럼 에워싸게 된다고 비유적으로 표현한다. 그렇지만 불행의 길에 들어선 소년도 자기가 떠나온 그 빛의 나라를 생각하면 마음이 기뻐진다.
어린 아이가 소년이 되는 것은 빛의 원천 동쪽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소년은 신의 축복을 등지고 이승의 길을 가야만 한다. 그러나 아직 소년은 자연 상태 그대로이고 자연을 찬미하는 사람이어서 마음(비전)의 축복이 따른다. 이윽고 소년기를 벗어나 어른이 되면 그는 그 축복의 빛이 꺼져서 일상생활의 빛 속에 파묻혀버리는 것을 보게 된다. 이 시에 제시된 워즈워스의 사상은 플라톤적인 사상이다. 플라톤에 의하면 이성(영혼)은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도 존재한 영원불사적인 것이며 혼탁됨이 없는 선한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이 세상에 탄생하여 육체 속으로 들어오면 이데아(이성)의 인식을 망각한다. 그러다가이 세상에서 그 이데아의 영상을 지닌 것들, 즉 어린 아이라든가 아름다운 꽃 같은 것을 보면 선함과 아름다움의 본질인 이데아를 상기하게 된다는 것이다.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은 결코 새로운 것도 아니고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사상도 아니다. 그러나 그 사상을 구체적인 이미지를 사용하여 시로 표현해 놓음으로써, 워즈워스는 그 까다롭고 추상적인 사상을 아주 친근하고 감동적인 체험으로 바꾸어 놓았다. 다음 시는 로버트 헤릭의 [아가씨들에 대한 충고 Counsel to Girls]라는 시이다. 충고, 교훈, 주장 같은 내용도 비유를 통해서 전달하면 그것이 독자의 정서에 와 닿기 때문에 한층 전달의 효과가 크다.
제때에 장미봉오리를 따라시간님께선 자꾸만 도망가신다오늘 미소짓는 이 꽃도내일이면 시든다.하늘의 찬란한 등불, 태양은높이 올라갈수록더 빨리 가는 길이 끝나고더 가까이 석양에 다가선다.젊은 나이 때가 제일이니라젊음과 피가 뜨거운일단 그 때가 지나면 점점그만 못한 세월로 바뀌느니라.그러니 수줍어 말고, 시간을 선용하라,그리고 제때에 시집가라,일단 한창때가 지나면영영 지체되리리.
이 시는 처녀들에게 적령기에 결혼해야 하며, 여자가 일단 때를 놓치면 영영 지체될 것이라는 교훈적 주장을 몇 가지 비유로써 뒷받침한다. 지금 아름다운 꽃도 내일이면 시들고, 찬란한 태양도 중천에 솟아오르면 석양에 다가서게 마련이라는 등의 비유는 인생의 전성기를 선용하라는 교훈이 이미지로 제시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비유들이 참신하거나 독창적인 것은 아니지만 일상적인 가벼운 교훈적 내용이 경쾌한 리듬과 정형적인 시의 틀을 통하여 서정시로 받아들여진다.---- 이창배 교수님의 시창작 강의 중에서.....>
역시 핵심적이고 훌륭한 강의시다. 필자가 보기에 다른 A급 대학 강의를 보더라도 거의 비슷한 내용인데 학교 브랜드만 낳았지 시창작의 순수한 눈으로 보자면 교수님의 강의는 다른 강의의 매우 간단하고 빈약한 메타포, 비유에 관한 설명강의보다 성실하시다. 필자도 어려운 내용을 보다 더 이해하기 쉽도록 쉽게, 풍부하게 쓰는 철학을 좋아한다고 밝힌바 있다. 읽어 내시느라 고생하셨다. 자, 다음시간에는 이 보다 좀 더 쉽게 필자의 “비유의 힘과 효과”, “비유의 종류와 활용” 편이 이어지니 기대 하시라...! 또 몇몇 강의와 이론들을 참조해 보충할 것이며 특히 필자의 강의는 위와같은 전통적 강의에 더하여 "빤스가 날아간다(노벨 문학상 수상작들소개 시리즈)에서 밝힌 옥타비오 파스의 생각도 소개될 터인데 그것은 "시의 행과 연"편에서 다루어 질 것이다. 오히려 비유의 종류와 활용편을 먼저 강의하고 교수님의 강의도 소개할 것을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하루라도 빨리 여러분의 좋은 시가 창작되기를 바라면서 이만 오늘 강의를 마친다....즐거운 설 명절 연휴 보내시기를 바란다.....!
*감상음악 : 작자미상
클릭 : http://cfile6.uf.tistory.com/media/24352F50513366820A2F2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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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개울가
맑은 샘
참 맑은 별빛
산등성이 사이 헤적이네
고통을 통과하지 않은 영혼(靈魂) 있으랴
지금도
시냇물 언사이 흐르고
별들은 저멀리 은하(銀河)에 반짝인다
사랑할 날들 묻혀있네
고통의 뜨거웠던 날 부를수록
네 이름
참 맑은 달빛
나무사이 풀어 적셨네
가난을 몰랐던 사랑 있으랴
아직도
나무아래 빈 의자
달님은 영롱히 짙은 밤 반짝인다
고왔던 날들 새겨있네
그리운 연가(戀歌) 부를수록
네 이름
눈 녹으면 만나서
언제나 한몸되어 흐르는
저 맑고 시린 사랑
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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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ream in winter
Indeed clear starlight
Be placed between the ridges
Any soul could not go through the pain?
Now
Stream, flowing between ice
Stars twinkle in the distant galaxy
The lovely days buried in snow
Hot part of the day, the more pain
Your name
Indeed clear moonlight
Release ever got a man among the trees
Anyone did not know poverty, love her?
Still
Empty chairs under the trees
The moon glitters a dark night,
thanks days came and carved
Good old sing better
Your name
Nice snow melts
One body is always flowing
Clear that ache of love
L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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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courant en hiver
Starlight effet clair
Être placé entre les arêtes
Toute âme ne pouvait pas passer par la douleur?
maintenant
Stream, qui coule entre la glace
Les étoiles scintillent dans la galaxie lointaine
Les beaux jours enterrés dans la neige
Partie chaude de la journée, plus la douleur
votre nom
En effet clair de lune clair
Sortie jamais eu un homme parmi les arbres
N'importe qui ne savait pas la pauvreté, l'aimer?
encore
Chaises vides sous les arbres
La lune brille par une nuit sombre,
jours de grâce sont venus et sculptés
Bon vieux mieux chanter
votre nom
Fonte des neiges de Nice
Un corps est toujours fluide
Effacer cette douleur de l'amour
regardez
*다음(31)강 예고 : 비유는 시창작의 원리(B)
비유의 힘과 효과 , 비유의 종류와 활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