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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춘천성시신문에 연재한 자료입니다.
젊은 신학도 정원화 전도사가 워드로 쳐주어
이곳에 옮겨둡니다.
2014년1월27일 <김기태>
江原道, 基督敎傳來, 略史
춘천중앙감리교회 김기태 장로
강원도 기독교전래 약사(略史) (1)
김기태 장로(전 삼척도서관장)
2002년은 강원도 기독교전래 1백년이 되는 해
우리나라의 기독교 전래는 중국에서 선교사와 의사(醫師)로 활약하던 미국 장로회소속 알렌이 1884년 9월 20일 고종황제의 시의와 외교고문으로 일하기 위하여 들어온 날을 기점으로 보는 이들이 있으나 당시 정부의 허가를 받은 미국 감리회 소속 아펜젤러 목사와 미국 북장로회 소속 언더우드 목사가 입국한 날을 공식적인 개신교 전래일로 보는 것을 정설로 삼고 있다. 그 이유는 그들이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아침에 인천항을 거쳐 한국땅에 선교목적으로 최초로 입국한 안수 받은 목사들이기 때문이다.
그때의 시대상황은 이조 말 고종황제가 쇄국정책을 펴던 때여서 선교사들에게 “학교와 병원사업”에 국한하여 활동하되 서양종교를 적극적으로 포교하는 것을 말리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두 선교사는 소속교단의 선교정책에 따라 감리회는 의료, 교육에 치중하여 병원과 학교를 설립하였으며 북장로회는 전도 선교에 열정을 다하여 구령사업에 힘썼다.
강원도에 복음이 전해진 것은 1888년 8월 아펜젤러 목사와 존시 목사가 선교대상지역 답사를 위하여 강원지방을 순방하였고 그 후 성서보급을 위한 매서인(賣書人;성경판매자)들이 1900년 철원과 춘천을 다녀간 기록이 있으나 신자들이 모이고 교회가 세워지기는 1902년 5월 24일 강릉중앙감리교회와 같은 해 10월 30일 춘천중앙감리교회 였으며 강원도에 최초의 기독교 전래는 1902년으로 보아 내년이 강원도 기독교 전래와 교회창립 1백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이다.
선교지 분할과 타교단의 입성
한국의 선교가 간헐적(間歇的)으로 허용되자 수년 후에는 미국 남장로회(1892년) 캐나다장로회(1897년) 미국남감리회(1901년) 안식교회(1904년) 성결교회의 모체인 동양선교회(1907년) 영국구세군(1908년) 등 타 교단들이 선교 사업을 목적으로 속속 입국하였다. 초기 선교는 서울을 중심한 중부권을 감리회에서 맡고 남북 여러지역을 장로회가 맡았으며 특히 강원도의 경우, 원산 이남 강원도 철원이북은 미국 남감리회, 원주이남 지역은 미국 북감리회 구역으로 나누어 선교가 시작되어 원주제일교회가 1905년 4월 15일 설립되었다. 1907년 장, 감 선교구역 협정이 있은 후 감리회는 영변, 태천, 진남포, 평양, 해주, 공주, 원주, 춘천과 제천, 충주지역으로 선교지가 확정되었고 장로회와 타교단은 남쪽과 북쪽으로 자유롭게 전도지역이 인정되었다. 이러한 선교구역 지정으로 인하여 강원도에 감리교가 먼저 정착하게 되었으며 지형적 여건으로 동해안을 거쳐 울진 평해까지 감리교 선교사들의 발걸음이 옮겨졌으며 내륙지방으로는 철원, 춘천, 횡성, 원주, 충주, 제천 등지로 선교사들이 전도를 하였다. 장로교는 1905년 철원읍에 최초로 교회가 창립되었다가 선교구역협정으로 감리교에 통합되었고 1936년 광주에서 개최된 장로회 총회에서 장, 감 선교구역을 철폐하기로 결정하여 장로교단에서는 그 해 1939년 5월7일 춘천에 소양장로교회(46년 제일·동부교회로 별도설립)를 창립하여 강원도 선교의 첫 길을 열었다.
성결교회, 성공회, 순복음교회 및 타교단의 정착
복음전도가 본격화되자 각 교단에서는 지역에 교회설립을 위한 기초를 다지게 되었다. 성결교단은 한국선교 7년만인 1914년 철원에 최초로 교회를 세웠으나 일제말기 종교탄압으로 폐쇄되었고 현재의 춘천중앙성결교회가 1934년 7월 3일 죽림동에 설립되었고 1933년에는 성공회가 중앙로에 세우졌고 6·25전쟁 이후 1953년 춘천침례교회, 1955년 구세군영문, 1972년 춘천순복음교회가 설립되었다.
1958년 통계에 의하면 강원도내에는 감리교 148교회(32,571명) 장로교 73교회(14,400명) 성결교 26교회(5,063명) 침례교 26교회(2,273명) 구세군교회 3개 개소(1560명) 안식교 30개소 천주교 60개소 55,989명의 신도가 있었으며 춘천지역에는 38개소의 교회와 11,002명의 신도들이 있었다. 기독교 전래 99년이 된 현재, 강원도내에는 18개 교파에 1,188교회와 183,937명 만이 기독교인이었다.(천주교 및 이단교회 교인 수 제외) 강원도민 1백5십6만4십3명의 11.8%가 기독교인임을 감안(勘案)하면 우리에게는 전도의 대상이 많다는 것을 인식하여 새로운 선교전략을 세워야 할 것이다.
《다음호는 교회창립 역사를 소개합니다》(2001년 4월)
(교회역사)
강원도 기독교전래 약사(略史) (2)
김기태 장로(전 삼척도서관장)
강원동부 해안지역 복음전래
강원도는 우리나라 중부지방의 동쪽에 위치하여 높은 산과 해안으로 구성되었고 태백산맥이 북에서 남으로 뻗어 금강산, 설악산, 진부령, 대관령 등의 영을 업고 있어 영상(嶺上)을 기점으로 영동과 영서로 생활권이 나누어 있는 특별한 지역이다.
그러므로 백여년 전 당시 교통의 불편으로 복음 전도는 원산에서 영동 해안지방으로 내려가는 기로와 서울의 북동쪽인 춘천과 남동쪽인 원주를 경유하여 충청도로 이어지는 세 갈래 선교의 길이 있었기 때문에 강원도의 3대 도시인 춘천, 원주, 강릉에 감리교회가 먼저 세워졌으며 장로교단은 1930년대 후반부터 강원도에 선교되었음으로 강원도 기독교 전래 약사는 우선 감리교 중심의 역사를 살펴보게 되는 것이다.
전회(前回)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1885년 감리회와 장로회가 서울에 들어와 학교와 병원사업을 시작하면서 기독교 본래의 복음전도 목적을 다하고자 선교의 터전을 넓히던 중 1887년 10월 9일 서울 정동에 한국 최초의 감리교회인 정동교회(벧엘예배당)를 세우고 3년 후인 1890년 1월 21일에 동대문교회를 개척한 후 서울을 중심한 동쪽 중부지역의 선교에 임하게 되어 강원도의 북쪽인 함경도 원산에 선교사를 파송하였고 감리회 선교사들은 미개척지인 해안지방 선교 차 양양, 강릉, 삼척, 울진, 평해 지방을 순행하여 교회설립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다.
철원과 양양의 교회설립 기록
「동부연회사」와 「기독교관련 자료」에 따르면 하디(Hardie. Robert. A. 1865-1949: 한국명 하리영)는 남감리회 선교사로 서울에서 진료소와 시약소를 운영하다가 더 넓은 선교지역을 맡아 1901년 강원도 철원 지경터집회를 하고 15명에게 세례를 주었으나 독립된 교회를 설립하지 못하였고 동해안으로 내려와 양양지역의 선교를 하였다고 하며 현재 양양감리교회(28대 담임 김한구목사)의 간략한 연혁에는 창립연도가 1901년 10월 5일이며 현 이재풍 장로의 옛날 기와집에서 유시국 전도사가 초대 담임자로 교회를 설립하였다고 하나 이 부분의 역사적 고증이 미흡하여 기록 확인을 일단은 미룬다.
만일 이 기록이 정확하다면 강원도의 기독교 전래와 최초의 교회 창립 연대는 1901년으로 정정되어야 할 것임을 첨언해 둔다.
강릉중앙교회 창립과 타 교단 교회 개척
「자료에 의하면」 강원동부 해안지역의 교회는 1902년 5월 24일 강릉중앙교회, 1910년 11월 5일 주문진교회, 1912년 4월 19일 삼척제일교회, 1913년 5월 4일 북평제일교회, 1927년 5월 17일 속초교회 순으로 설립되었다.
1992년에 刊行(간행)한 江陵中央敎會(강릉중앙교회) 90年史는 초대 이동식(李東湜 1896-1944年) 목사와 남감리회 하리영(河鯉泳) 순회선교사가 현 강릉시 명주동의 명국성(明國聖)이라는 敎人의 8칸집에서 첫 예배를 드리고 “강릉기도처”라 한 후 1921년 5월 건평 62평의 건물을 짓고 “강릉예수교 미감리교회당”이라 하였다가 1935년 교회 소재지 명칭을 따서 “강릉금정교회”로 개칭하였고 8·15 해방과 더불어 “강릉중앙교회”로 바꾸어 오늘에 이르렀으며 유아교육을 위하여 1915년 5월에 모리이스(Morris)선교사가 의숭(義崇)유치원을 설립하여 개화문명과 유아교육의 선도적 역할을 담당하여 오늘의 강릉중앙유치원으로 성장발전 시켰다고 기술하였다.
불교와 유교사상이 뿌리 깊은 고장에서 박해와 시련을 겪으며 성장한 강릉중앙교회는 현재 제18대 담임 심상영(沁相永)목사가 始務하고 있으며 교인수 6,035명으로 강릉 인구 233,814명의 2.6%가 강릉중앙교회의 성도이다.(2000년도 감리회통계자료 근거)
타교단의 영동지역 교회창립 역사는 3.1만세운동, 신사참배강요 등으로 교회성장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하던 1935년 초 “강릉금정교회”(현 강릉중앙교회)의 일부 성도가 따로 대화정교회를 설립하면서 후일 강릉예수교장로회로 바뀐 것을 시초로 하여 장로교, 성결교회가 들어오게 되었고 8.15해방과 6.25사변 이후 많은 교단들이 교회를 개척하여 현재 강릉지역에는 12교단 152개 교회에 20,450명의 기독교인이 등록되어 있다.
▲교회창립 20주년 되는 1921년 5월에 건축한 “강릉 예수교 미감리회당”(68평)과 교회창립 85주년인 1988년 5월에 봉헌한 현재의 “강릉중앙감리교회”(1,100평)은 강릉지역 복음화의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2001년 5월)
강원도 기독교전래 약사(略史) (3)
❶ 춘천의 최초, 감리교 전도자는 리덕슈(李德洙)
춘천은 맥(貊)이라는 부족국가 였다. 신라 때는 우수주(牛首州) 고려 때는 춘주(春州) 이조중기에는 춘천(春川)으로 존재하였으며 지형적 여건으로 이조에 이르기까지 많은 전란을 겪었고 특히, 이조중엽 이후에는 주자, 성리학(朱子,性理學)으로 시민의식이 젖어있는 봉건적 고장이었다. 1881년 춘천의 유생들이 위정척사론(偉正斥邪論;이조말기에 주자학(유교사상)을 지키고 천주교를 물리치자고 내세운 주장)을 펴며 나라에 상소문을 올려 그 일 때문에 새남터에서 사형을 받았다(春州誌參照). 춘천 뿐 만 아니라 전국의 많은 도시민이 봉건적 사고방식으로 살고 있었기 때문에 초기 감리교 선교사들은 선교전략으로 먼저 성경을 파는 매서인을 보내 지역상황을 파악하고 뒤따라 선교사들이 직접 말을 타고 다니며 전도하는 방식을 취하였으니 춘천의 경우도 이와 유사하였다. 그 무렵 춘천은 상소문 사건 이후 20여 년의 시간이 흘러 이조말 개화기에 차츰 외세를 이해하는 추세가 되어 선교사들은 강원도의 수부 춘천을 좋은 선교 대상지로 꼽았었다.
춘천중앙감리교회의 연혁을 살펴보면 1902년 순회 전도자 김기순(金基純)이 권서인(勸書人)으로 다녀갔고 그 해 10월에 공식 파송을 받은 전도사가 교회를 설립 하였다고 하였다. 이를 뒷받침하는 기록으로 당시 춘천구역과 철원지경터 구역을 맡은 무스(JR,Moose)선교사가 조선 남감리회 30주년 기념회보에 쓴 보고서를 읽어보면 『고량포 교인 중에 ‘리덕슈’라는 信者가 있어 교회에서 진심사역(盡心使役)하므로 내종에 전도사가 되야 춘천으로 파송 밧아 사역하다가 一九0九年 四月에 別世하야 유해는 春川邑 東便邱上(동쪽언덕위)에 安葬되얏거니와...』위 기록에 따라 춘천에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창립한 최초의 감리교 전도자(者)는 李德洙傳道師임이 확인되었다.
춘천중앙교회의 변천사를 보면 1902년 현 봉의동에 다섯칸 초가집을 얻어 10여 명이 첫 예배를 드렸고 6년 후, 48칸 함석집으로 옮겼다가 1925년 요선시장 부근에 ㄱ자 모양의 2층 선교관을 지어 유치원, 요리강습소, 양재실과 예배 처소로 사용 하였으나 6.25전쟁으로 불타 1953년 수복 후 옥천동의 미국 남감리회 병원 건물을 예배당으로 개축하였다. 1971년 등대모양의 최신형 교회를 건립하여 30년을 사용하였고 2001년 1월, 춘천시 퇴계동 212-2에 춘천중앙교회 창립 백주년 기념 예배당 2천평을 준공하여 춘천지역 개신교의 모교회로서의 위용을 갖추고 있다(現 담임 權五瑞목사).
❷ 춘천, 성결 복음의 첫 씨앗은 김의용(金義鎔)전도사
한국성결교단은 1907년부터 동양선교회라는 선교단체로 시작하여 강원도에는 1914년 철원에 교회를 세웠으나 폐쇄되었고 춘천에는 1934년 7월 3일 경성성서학원을 졸업한 김의용 전도사가 뜨거운 열정으로 개척지를 춘천으로 정하여 요선동 12번지에(현,도청옆)에서 기와집을 얻어 첫 예배를 드렸다. 당시는 일제의 종교탄압으로 전도의 여건이 어려운 때였지만 성결교의 전도 표제로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을 전하던 중 일제경찰에 구금되어서 대운형무소에 투옥되고 교회는 강제 해산되는 등 수난을 겪었다. 조국광복 후, 김규호 목사가 제2대 교역자로 부임하여 교회재건에 힘써 현재는 춘천의 지도적 위치에 서는 춘천중앙성결교회로 성장하였다(現 담임 尹喆重목사).
❸ 춘천의 최초, 장로교 전래는 한뿌리(同祖同根)
강원도 철원에 1905년 장로교회가 최초로 설립되었으나 감리교 선교구역임으로 감리교회로 편입되었고 장로교회에서 첫 신앙을 담은 사람들이 춘천에 왔지만 1930년대 까지는 어쩔 수 없이 감리교인으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같은 고향인끼리 외로움을 달래면서 장로교회를 세울 움직임을 갖고 있던 중, 1936년 9월 전남 광주에서 개최된 장로교 총회에서 선교지역제 폐지가 결의되어 강원도에 장로교회를 세우는 운동이 일게 되자 춘천에 생활기반을 잡은 제중한의원 의사 박홍식과 박성봉, 김조길 등이 1939년 5월 1일 교회창립을 결의하고 5월 7일 제중한의원에서 11명의 신도들이 첫 창립예배를 드렸다.
1939년 9월 신의주 제2교회에서 열린 조선예수교장로회 제28회 총회에 청원하여 황해도 관할구역인 황동노회에 소속하기로 하고 조택수(趙澤洙)목사를 초대 담임자로 파송받아 교회 이름을 “소양장로교회”라 명명하였다. 교세 확장에 따라 1941년 4월 교회를 신축하여 이전하면서 “춘천장로교회”로 개명하였고 해방 후, 1945년 11월 교회를 춘천시 운교동으로 이전하면서 제2대 김유찬 목사는 교회명칭을 “춘천동부장로교회”로 개칭하였고 교단 소속을 장로교 통합측으로 하였으며(現 담임 林信永목사) 교회이전 무렵 춘천장로교회로 환원한 일부 신도들은 방효정 목사를 청빙하여 1947년 2월 춘천시 낙원동에 교회를 신축하고 “춘천제일장로교회”로 개칭한 후 경기노회에 가입하여 장로교 합동측 교단 소속이 되었다(現 담임 林相浩목사).
원래 춘천에 장로교회를 시작한 것은 하나였으나 장로교단이 통합측과 합동측 교단으로 나누어 진 후 제일장로교회는 1989년 11월 새 성전을 건립하였고 동부장로교회는 2000년 11월에 새 성전을 완공하여 두 교회가 나란히 춘천의 복음 전도에 크게 이바지 하고 있다.
(다음호 ; 강원영서중부지방 복음전래...원주, 횡성교회를 중심으로)
김기태 장로(전 삼척도서관장)
(2001년 6월)
(교회역사)
강원도 기독교전래 약사(略史) (4)
김기태 장로(전 삼척도서관장)
선교사 무스와 원주읍교회 설립
강원도의 기독교 전래 경로(經路)는 원산을 기점으로 한 동해안과 강원북부지방 춘천권, 강원중부지방 원주권 등 3개 방향이라는 것은 전회에서 밝혔지만 서울과 가까운 원주권 선교는 서울 주변지역 선교에 힘쓰다 보니 선교대상지역으로는 일찍 선정되었지만 실제적으로 교회가 설립되고 복음 전도가 시작된 시기는 타지역 보다 늦은 1905년이다.
원주제일 교회사와 원주기독교 100년사에 의하면 아펜젤러 목사가 우리나라 입국 3년 후인 1888년에 존스선교사와 함께 충북 제천으로 전도하러 내려가는 도중 원주감영(監營;당시는 원주에 監司가 있었음)에 하룻밤 묵으면서 관찰사의 호의적 반응을 보고 교회설립을 생각하였으며 그 다음해인 1898년에 의병으로 활약하다가 예수를 영접한 張春明권서(성경매서인)가 고향인 경기도 이천과 충주 제천을 비롯하여 강원도 원주까지 권서활동을 하여 원주에 신자들이 생기게 됨으로 1905년 4월 15일 선교사 무스(J.R.Moose.무야곱)의 인도로 한치선씨 가정에서 장서환, 김봉규, 안인혁씨 등이 예배를 드리게 되었고 선교부의 보조로 원주시 일산동 115번지에 4칸 반 초가집을 구입하여 예배처소로 삼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1914년 감리교 연회록에 보면 “원주읍에 회당을 건축할 일이 매우 급하오며 소학교를 위하여서 교실도 건축여야겟으며”를 볼 때 교회를 중심한 선교와 성인 교육을 위한 배려가 컸음을 알 수 있다.(교육부문은 추후 연재 예정).
인접지역 횡성, 영월, 충북 제천의 교회 창립
서울지역 선교 책임자로 강원도와 충청도의 선교여행을 다닌 무스 선교사의 보고(1905년)에 의하면 당시 춘천순회 구역은 75개 처의 신앙공동체가 있으며 매서인들이 곳곳에 다니고 있다고 기록으로 홍천, 횡성 지방도 이에 포함되었을 것으로 추정하며 횡성교회라는 공식적인 이름이 기록된 것은 1913년에 발행한 “그리스도인 회보”에 있다. 「-강원도 횡성읍 교회는 일반 교우들이 열심히 四백원을 원죠하야 회당 十칸을 건축고...... 불피풍우고 다니며 전도므로 불과 一년,에 교우가 百여명에 얏고......후략-」를 살펴보면 당시의 교회성장을 더듬어 알 수 있다. 횡성교회의 창립일은 1906년 4월 6일로 확인되었으며 강원중부권의 남쪽인 영월지역은 충북 제천의 영향을 많이 받은 지역으로 1907년에 교회가 창립된 제천교회의 전도의 영향으로 1912년 영월중앙교회가 설립되었다.
원주지역의 타교단 교회 설립
1930년대 장로교, 감리교의 선교구역제 폐지로 원주권에는 성결교단이 먼저 입성하여 1933년 6월 원주읍 상동리에서 30여 명의 교인이 첫 예배를 드렸고, 장로교회는 8.15 해방 다음해인 1946년 9월에 18명의 성도들이 첫 예배를 드렸으며 6.25사변 후 많은 교단이 교회를 설립하였다. 현재 원주지역에는 전체 인구의 13.4%인 35,355명이 기독교인이며 281개소의 교회가 설립되어 있고 그 중 감리교회가 82교회(29.2%) 감리교인이 18,019명(51.0%)를 차지하고 있어 감리교세가 우세하며 기독교대한감리회 본거지인 東部年會本部(감독;박상혁, 태장교회 목사)가 원주시 일산동 161-13번지에 위치하고 있다.(다음호, 일제시대 강원도 기독교 현황)
◀초대교회(1910년경)시절의 원주읍교회
(현 원주제일감리교회)
-갓, 중절모, 학생모자와 두루마기 등 다
양한 옷 매무새 모양이 특이하다.
(2001년 7월)
(교회역사)
강원도 기독교전래 약사(略史) (5)
김기태 장로(전 삼척도서관장)
일본의 한국침략과 기독교 박해(1910∼1945년)
19세기 말 우리나라와 주변국가의 상황을 개관(槪觀)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392년 태조(이성계)가 이씨조선을 건국하여 왕조시대를 지내는 동안 백성들은 유교(儒敎)와 사대사상(事大思想)에 젖어 있었고 정치인들은 사색당파로 권력투쟁에 바빠 외국문물을 받아들이지 않는 쇄국정책을 펴 문명세계의 고립국가로 있었다. 다행히 이조 제26대 고종임금이 1876년 일본과 수호통상조약을 맺고 그 후 미국, 영국, 독일, 불란서, 러시아 등 세계 각국에 문호를 개방하기 시작하여 이 여파로 1885년에 기독교(개신교) 전래가 이루어지게 되었고 이제까지 양반, 상놈의 계급사회에 평등과 박애의 기독교 정신으로 민중계몽이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개화의 물결이 일기 시작하던 무렵, 세계 여러 열강국들은 은둔의 나라 대한제국(大韓帝國; 고종高宗30년 1897년에 制定한 國號)을 침략하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상황에서 이웃나라 일본이 1910년 8월 29일(제27대; 순종 임금 4년) 한일합방이라는 명분으로 우리나라를 강제 침탈(侵奪)함으로 이씨조선은 제27대왕 519년으로 막을 내려 나라를 빼앗긴 부끄러운(國恥) 역사를 갖게 되었다. 이때 25년 전에 기독교가 전래되어 곳곳에서 교회창립 및 선교, 교육, 의료사업과 민중계도가 활발하게 전개되자 침략국 일본은 기독교의 성장을 두려워하였다. 1919년 3월 1일 기미년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던 때는 기독교인들이 애국운동을 이끄는 선봉이 되었고 이에 당황한 일본제국은 우리나라를 일본화하기 위하여 1930년 초부터 일본의 우상인 신사참배를 강요하고 구약성경 읽기를 폐지시키고 사도신경과 찬송가를 개편하고 예배를 금지시키며 교회를 군수공장으로 징발하는 등의 기독교 신앙 말살정책을 펴기 시작하였다. 이에 반대하여 기독교인들은 우상숭배 배격과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운동으로 순교자가 많이 생겼다. 그후 일본정부는 우리나라 기독교의 각 교단을 해체, 통폐합하여 <일본 기독교 조선교단>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땅에 국토의 회복과 신앙의 회복을 이루어 주셔서 1945년 8월 15일 해방의 기쁨을 우리에게 허락하셨다.
일본 통치하의 강원도 기독교현황(8.15해방 까지)
1931년 6월 10일은 강원도를 중심한 감리교 선교구역이 확정된 날이다. 조선감리회 제1회 연합예배가 황해도 개성에서 개회되어 동부연회, 중부연회, 서부연회를 조직하고 동부연회는 강원도 일원과 충청서북부 일원과 함경도이남 일원을 맡도록 하였다. 당시의 동부연회 소속 지방은 춘천, 원주, 강릉, 철원, 원산의 5개 지방으로 구성되었으며(춘천 지방은) 춘천, 화천, 가평 등 6개 구역 24교회가 있었고 (원주지방은) 원주, 충주, 영월, 횡성 등 7개 구역 30교회 (강릉지방은) 강릉, 삼척, 울진, 평해 등 5개 구역 18교회 (철원지방은) 철원, 김화, 연천 등 9개 구역 40교회 (원산지방은) 양양, 고성, 안변 등 10개 구역, 51교회가 있었다. 일제말기 일본은 우리나라 국민을 황국신민으로 만들고 교단통합 운동을 펴기 위하여 1945년 7월, 해방 한 달 전에 교단통합을 하였고 이로 인하여 동부연회는 일본의 전시체제에 맞게 혁신되면서 사실상 해체되었다. 강원도내의 장로교 선교 역사는 강원도가 감리교 선교지임으로 1935년 강릉중앙감리교회에서 일부 성도가 장로교회로 명칭을 바꾼 현 예수교장로회 강릉중앙교회와 1939년 춘천소양장로교회(현 제일, 동부교회의 모체)만이 장로교회의 창립역사이며 성결교회는 1923년 3월 경성성서학원(현, 서울성결신학대학교) 전도대가 지방전도 실습을 나와서 활동한 것이 기점이 되어 강릉시 용강동에 조선야소교동양선교회 강릉성결교회를 창립하게 되었으며 1933년 6월에는 원주성결교회가 창립하였고 1934년 7월에는 춘천중앙성결교회가 창립되었다. 기타 교파의 교회는 1933년 5월 춘천성공회창립, 1940년 7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춘천중앙교회가 창립하는 등 일제통치하의 강원도 내 교파는 감리교, 장로교, 성결교, 구세군 등 5개 교파가 있었다.
(다음호는 8.15해방부터 6.25사변 이후까지의 현황을 요약합니다.)
(2001년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