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피살에 어떤 비밀이 있을까. 북한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었고,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3월 4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북한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장남이자 현 최고 권력자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 피습 미스터리를 다뤘다.
지난 2월 1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어디선가 나타난 두 여성이 한 남성의 앞과 뒤를 동시에 공격했다. 그는 30분 거리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사망했다. 그리고 말레이시아 경찰은 다음날 사망한 남자가 평양 태생 김철이라고 밝혔다. 그의 정체는 김정남이었다.
사진|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영상 갈무리
용의자는 인도네시아 국적의 아이샤와 베트남 국적의 흐엉이었다. 처음엔 다국적 청부살인이 의심됐다. 그러나 북한 국적 리정철이 잡히며 상황은 반전됐다. 여기에 말레이시아 당국은 인근 식당에서 모든 과정을 보고 있던 북한 국정의 네 남성 리지현, 홍송학, 오종길, 리재남이 용의자이며 이미 말레이시아를 떠났다고 밝혔다. 추가로 공개된 용의자 역시 현광성 북한대사관 2등 서기관이었다.
국정원은 이번 암살이 이미 5년 전 김정은이 내린‘스탠딩 오더’가 실행된 것이라 분석했다.
용의자 흐엉은 이번 암살이 몰래카메라인 줄 알았다고 진술했으나 현지 겸찰은 그들이 범행 전 훈련을 받았다고 결론냈다.
이수정 교수는 “몰래카메라라면 얼굴에 향수를 묻히는 순간 주변의 촬영 타이밍 등을 확인한 상태로 접근했을 것”이라며 “하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들어 거의 2초 만에 목적을 달성하고 뛰어갔다”고 설명했다.
흐엉이 범행 당시 묵었던 호텔 직원에 따르면 흐엉은 처음 긴 머리였으나 가위를 빌렸다고 밝혔다. 흐엉은 다음날 단발머리를 하고 김정남을 암살한 공항으로 향했다.
또 흐엉은 범행 전 5일간 세곳의 호텔을 이용했다. 호텔 직원은 “와이파이 신호가 약하다고 불평하며 숙소를 옮겼다”고 밝혔고 흐엉은 체포 당시 세 대의 휴대폰을 이용하고 있었다고 알려졌다.
범행 직후 말레이시아를 떠난 용의자 리지현은 흐엉과 관계가 있는 인물이었다. 리지현은 흐엉과 같은 날 말레이시아에 입국했으며 숙박비도 계산해줬다. 흐엉이 와이파이에 집착한 이유는 리지현과와의 비밀연락 때문이었을까.
범행에 사용한 독극물은 신경작용제인 VX였다. VX는 아주 적은 양으로도 사망에 이를 수 있을 정도로 독성이 강하다. 몸 속 근육을 마비시키다 심장까지 멎게 만든다. 하지만 흐엉과 아이샤는 맨손에 독극물을 묻힌 채 범행을 저질렀다. 그들은 어떻게 VX를 맨손으로 만지고도 무사했을까?
경찰은 두 사람이 범행 후 화장실로 재빨리 가서 손을 씻었다고 밝혔다. 유성호 서울대 법의학과 교수는 “피부는 생각보다 강력한 보호기능을 하고 있다”며 “빠른 시간 내 손을 여러 차례 씻는다면, 혹은 해독제를 맞게 될 경우엔 증상이 없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정남은 콧속, 입술, 눈 점막 등까지 VX가 작용해 빠른 시간 안에 사망에 이르렀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말레이시아 경찰과 이수정 교수는 입을 모아 “체포한 리정철은 단순 운반자”라며 “이미 공항을 떠난 4인이 진범”이라고 추론했다.
이수정 교수는 “(현재 체포된 용의자들은) 사건의 핵심적인 내용을 잘 파악하고 있지 않은 인물들이다. 살인의 고의성과 입증 절차가 어려운 사람들만 장소에 남겨둔 것”이라고 말했다.
현지 기자는 현광성 북한대사관 2등 서기관을 배후로 지적했다. 기자는 “(현광성이)말레이시아 대사관으로 몇 달 전에 들어왔다. 그가 특별한 임무로 여기에 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스탠딩 오더가 아니라 부인과 함께 시작된 짧은 작전이었던 것은 아닐까.
김정남의 동선을 너무 잘 꿰고 있다는 점도 의문이다. 김정남은 늘 경호원들과 함께 있었으나 이날은 혼자였다. 그는 지난 6일 말레이시아에 입국해 8일간 머물렀다. 8일간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실제로 용의자들은 마치 김정남의 동선을 알고 있는 듯한 입출국 일정을 보였다. 김정남을 말레이시아로 불러들여 피살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마카오가 주 활동지인 김정남이 말레이시아에 온 이유는 뭘까. 제조와 운반이 어려운 VX를 신속하게 동원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낮다는 점도 ‘계획 범행’을 시사한다.
뿐만 아니라 이번 방문에 사용한 여권은 ‘김철’이라는 이름의 외교 여권이었다. 이 여권은 지난 2월 6일 말레이시아 방문에 처음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식 박사는 “외교여권을 제공한 사람 또는 그 여권을 이용해 말레이시아에서 어떤 비즈니스가 있었는지 조사해야 한다. 공작된 것이라고 한다면 (여권 전달책이) 김정남의 동선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것”이라고 말했다.
사냥을 위해서는 미끼가 필요하고 미끼를 물었다는 사실을 알려줄 방울이 필요하다. 제작진은 문제의 여권을 방울로 생각했고 이 여권을 미끼로 건넸을 가능성이 높은건 현광성이라고 추측했다.
사진|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영상 갈무리
이야기는 김정남의 살해동기로 넘어간다.
김정남 피살 이틀 후 김정은은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냈고 표정은 마치 넋이 나간듯 보였다. 제작진은 김정은 위원장의 지시에 의한 살해라고 한다면 범행 동기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세습을 유지하는 북한에서 혈통은 매우 중요하다. 어머니가 재일교포인 김정은이 혈통면에서 장남인 김정남에게 피해의식이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김정남 이모 성혜랑이 쓴 ‘등나무집’에 의하면 김정일과 고영희 사이에서 김정은·김정철이 태어난 이후 김정남은 사실상 후계구도에서 물러난 상태였다. 이런 김정남을 이제 와 혈통을 이유로 살해했을까.
김정남은 2001년 당시 위조여권으로 일본에서 추방돼 망신을 준 바 있지만, 2007년 베이징에서 포착되기도 했다. 일부 언론은 아버지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북한의 대외 업무를 맡게 됐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고모부 장성택의 비자금도 김정남이 관리했다는 설이 있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소 연구위원은 “장성택이 살아있고 김정일이 살아 있을 때 뒤를 봐주던 세력들이 있긴 하지만, 김정남이 평양 내에서 어떤 권력을 지향하면서 세력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김정남 지지 세력은 모두 정리됐다는 것이다.
정욱식 대표는 “미국 정보기관이나 북한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김정은 체제가 안정화됐고 권력 강화에 성공했다’고 분석하는데 왜 이런 시점에 범행을 저질렀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수정 교수는 “김정남 살해만이 아닌, 온 세계에 이 장면이 보도되는 것도 역시 또 다른 목적 아닐까”라고 말했다. 공정식 박사는 “내부보다 외부에 있는 사람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해외 탈북민 중심으로 거론되고 있는 망명정부의 수장으로 김정남이 거론됐기 때문은 아닐까. 단체 관계자는 김정남에게 세 차례 (망명정부의 수장직을)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고 밝혔다. 또 김용현 교수는 “망명정부는 특별히 부각되거나 구체적으로 이야기된 바도 없고, 북한 내부적으로도 그런 말이 나올 정도로 불안정하지 않다”고 말했다.
정성장 박사는 “김정남을 북한으로 조기 소환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을 수 있다. 이에 김정남이 북한으로 들어가는 대신 망명을 진지하게 검토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김한솔이 대학을 졸업한 뒤 북한 소환 명령이 있었다는 설도 있다.
한편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국가안보회의(NSC)를 두 차례나 열고 이번 테러로 우리정부와 국민을 대상으로 한 테러가능성까지 발표했다. 김용현 교수는 이러한 태도에 “이해할 수 없다. 차라리 북극성 쐈을 때 해야지. 한국 정부가 뭔가 정치적 의도가 있지 않나 오해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확하진 않지만 지금까지의 내용만 종합적으로 분석해보면 김정남의 암살은 국정원이 밝힌 것처럼 스탠딩 오더로 보기가 어렵다. 암살의 이유가 김정은의 이상 성격 때문이라는 국정원의 설명도 적절한지 따져봐야 한다. 단순 암살이 아니라 테러 성격을 띈 것으로 볼 때 북한의 메시지가 무엇인지 밝힐 필요가 현재 황교안 권한대행 등은 사드 배치 등을 급박하게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제작진 측은 내부 암살을 국가안보의 위기와 연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논지를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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