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의 주제적, 연출적, 관객체험적 발현
지정 영화 <사울의 아들> 감상문
영어교육과 2021190262 임찬호
영화를 보면서 입이 텁텁한 느낌이 드는 것은 처음이었다. 시체처리반이라는 주인공의 특성과 영화 속 시공간적 배경으로 인해 찜찜한 감정은 색감 연출에서의 뿌연 화면 구성으로 인해 심화되어, 입 속에 재가 쌓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영화는 관객을 사울과 같은 하나의 ‘존더코만도’로서 체험을 하게 하는데, 색감으로 인해 잿더미 사이에 있는 듯한 감각을 부여하는 것뿐만 아니라, 화면에 피사체를 꽉 차다 못해 가둬놓는 듯한 구성(그것이 화면 비율 때문이든 촬영 각도 때문이든), 자주 나오는 얼굴 클로즈업, 그리고 사울의 여정을 따라가는 카메라의 시선으로 이를 가능하게 한다. 이를 통해 수용소의 폭력성과 그곳에 존재하는 극단적인 도덕적 딜레마를 체험할 수 있게 한 것이 아닌가 싶다.
영화 속 배경은 비극적이다. 인간성은 상실했고, 사람들은 자의가 아닌 외부적 압력에 의해 일을 한다. 시체를 ‘토막’이라 부르며, 인간의 존엄성은 찾기 힘들다. 영화 초반에 인간의 존엄성 상실의 대표적 장면으로, 의사가 소년의 숨을 끊어버리고 아무렇지 않게 처리하는 모습이 나온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소년의 시신을 제대로 매장하려는 마음을 먹는 사울의 행위는 메말라버린 인간성을 회복하려는 시도일 수도,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아보려는 시도일 수도 있다. 사울의 의도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부조리’ 상황에서 겪는 실존적 갈등의 해소 시도로 볼 수 있다. 카뮈에 의하면 부조리의 감정은 “습관에 의해 가려져 있던 세계가 인간에게 낯섦을 노출시키는 데에 기인한다.” 부조리를 하나의 불일치로 본 카뮈의 이야기처럼, 사울은 자신의 내면과 그를 둘러싼 비극적 세계 간 부조화를 경험하고 그 괴리로 인해 갈등을 겪는 인물이다. 그가 마주치는 사건과 랍비, 포로 등의 인물들도 그를 괴롭게 하는 부조리의 일부분이다. “세계의 일부분임에도 자신의 운명을 의식할 수 있다는 형벌을 받은 인간은 세계의 비합리성에 대한 몰이해로 인하여 스스로에게는 물론이고 타인들에게조차 낯선 존재가 된다.” 이 갈등 속에서 사울은 잿빛 세상을 헤쳐나가며 자신의 내면과 세계를 일치시키려는 여정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행동은 더욱 필사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영화는 이러한 필사적인 사울의 행위를 담담하게 보여주는 연출을 사용함으로써 관객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배경음악보다는 소리를 극대화하는 것과, 앞서 언급한 제한적 화면 구성이 이러한 연출의 예시이다.
연출적 특성에 집중하다보니 영화가 가진 또다른 주제와 철학적 논의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바로 ‘초점의 제한’과 ‘인간의 인식세계’에 관한 논의이다. 카메라를 통해 전달되는 제한된 시야 안에서 관객은 사울이 보는 것만을 따라가야 하며, 그 밖의 세계와 상황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그의 선택을 지켜보게 된다. 영화 내내 카메라는 사울의 후방이나 측면에 고정되어 그가 보고자 하는 것과 보지 않으려는 것을 함께 보여준다. 카메라의 시야는 사울의 움직임과 감정에 따라 변화하며, 그의 얼굴에 초점을 맞춘 채 다른 모든 요소를 배경으로 흐릿하게 처리하는 경우가 많은데, ‘토막’으로 불리는 시체들이 주변에 있을 때가 그 예시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라는 복잡하고도 비참한 환경에서 관객은 그 곳에서 목적성을 잃고 일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의 상황으로 전락하여, 전체적 상황을 파악하기 어려워 할 수밖에 없다. 즉, 영화 속에서 관객은 자신의 인식이 제한되어 있다는 것을 체험하게 되며, 인간이 경험을 통해 파악할 수 있는 정보의 한계를 깨닫게 된다. 사울이 보고 듣는 것 외에는 거의 모든 정보가 배제되는 방식은 인물과 배경 사이의 단절을 극대화한다. 앞서 카뮈의 ‘부조리’ 상황인 ‘자아’와 ‘세계’의 단절이 영상 연출을 매개로 하여 관객 체험으로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나아가, 이러한 제한된 초점은 사울이 죽은 소년을 향한 목적에만 집중하게 하는데, 이는 현실을 어느 정도 배제하고 주관적인 목표만을 좇는 그의 절박함을 더욱 부각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사울이 바라보지 않는 곳에서 수많은 참상이 일어나고 있지만, 그는 오직 소년을 묻는 일에만 몰두하며,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과 외면해야만 하는 고통을 감수하려 한다. 인간이 극한 상황에서 특정 목표를 중심으로 모든 인식을 제한시키는 행위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한다.
논제
1. 아우슈비츠 같은 비극적 상황에서 인간은 본인의 행동에 의미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가?
2.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에 있어서, 자신 내면 또는 시야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가? 세상을 파악할 수 있는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출처
김세리. (2008). 알베르 카뮈의 미학. 한국학술정보.
계급과 사회라는 파도를 뚫고
자유 영화 <로마> 감상문
영어교육과 2021190262 임찬호
먼저 본격적인 감상을 쓰기에 앞서 이 영화를 고른 이유를 쓰자면 감독 알폰소 쿠아론의 작품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전작인 <칠드런 오브 맨>(2006)과 <그래비티>(2013)를 감명 깊게 본 기억이 있었고, 이 감독의 최근작을 보면서 이전 영화들과 비교하고 싶은 면도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에 약간의 감탄을 했고, 전작에서 보여준 연출방식과 주제를 드러내는 방식과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었다.
이 영화는 1970년대 멕시코시티의 중산층 가정에서 일하는 가정부 클레오의 삶을 중심으로 한 흑백 영화이다. 흑백으로 영상을 처리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인 것인데, 감독의 의도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주인공 클레오와 그녀의 감정을 묵묵하게 담아내는 영화의 전체 흐름, 그리고 시대적 배경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는 의도로서 색감을 최소화한 것이 아닌가싶다. 실제로 영화 속에서 배경음악의 사용도 절제되는 모습으로 보아, 클레오의 삶과 이야기에 대한 담담한 시선을 유지하려는 의도가 있어 보인다.
이 영화는 클레오와 그녀의 주변 사회와의 관계를 통한 철학적 논의가 가능하다. 먼저, 클레오와 소피아 가족 간의 관계를 통해 ‘계급’에 대한 이야기를 다룰 수 있다. 클레오는 중산층 가정에서 가정부로 일하며 가족의 일원처럼 보이지만, 그와 동시에 명확한 계급적 경계가 존재한다. 그녀에게 대하는 소피아의 태도나, 소피아 자녀들과의 관계는 당연하게도 완전한 가족이라기보다는 분명한 선이 있는 계급적 차이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 그녀는 소피아 가족을 위해 헌신하지만, 가정부로서의 위치는 그녀를 끊임없이 타인처럼 느끼게 한다. 일상의 미묘한 장면들이 이를 보여주는데, 예를 들어 클레오가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지 않거나, 집 안에서 혼자 침실이 아닌 옥외에 가까운 공간에서 지내는 모습이 있다. 특히 하녀라는 직업 특성상, 그녀의 노동은 중산층 가정의 안정과 편안함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지만, 그녀가 노동자로서의 위치를 벗어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 이중적 모습이 돋보인다. 그녀는 가족을 위해 헌신하면서도 그들로부터 항상 ‘타인’으로서의 거리를 유지하게 되는데, 이는 곧 클레오의 진심어린 마음이 계급적 위치에 의해 제한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래서 결국 클레오의 진심은 계급적 위치에 굴복당하고, 이에 클레오는 감정을 감추고 행동에 제약을 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이 계급에 의해 인간성이 어떻게 억압되면서도 동시에 회복될 수도 있다는 희망적 메시지도 보여준다. 클레오는 영화 속에서 때로는 자기 자신을 포기한 듯한 모습도 보이고 낙담한 표정을 자주 짓지만, 자아를 잃지 않고 자신의 방식으로 인간적인 감정을 표현한다. 예를 들어 그녀가 임신과 이별이라는 개인적 고통을 겪으면서도 가족의 일에 헌신하고, 나아가 위험을 무릅쓰고 아이들을 구해내는 모습은, 그녀가 계급적 한계에 굴복하지 않고 잠시나마 인간성의 회복을 드러내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클레오는 소피아 가족보다 넓은 범위에서 사회와도 관계를 맺고 있다. 격동의 70년대 멕시코라는 시공간적 배경 속 소피아가 경험하는 사건들은 당시 정치적 격변과 평행적으로 전개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클레오가 아이를 잃는 병원 장면과 동시에 도시에서는 학생 시위가 폭력적으로 진압되는 모습이 있다. 이처럼 개인의 삶과 역사적 사건이 얽히는 방식이 드러나는 플롯 구성으로 거대한 역사적 흐름 속 개인의 고통이 존재하는 양상을 다룬다. 정치적 격변 외에도 사회적 분위기에 대하여 다루자면, 영화는 클레오와 소피아로 대변되는 여성들이 겪는 억압과 동시에 그들 나름의 자유와 강인함을 보여준다. 소피아는 남편이 떠난 뒤 혼자 가정을 책임지며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지만,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극복하려 한다. 클레오 또한 임신, 페르민으로부터의 상처, 아이의 죽음을 겪으면서도, 이를 통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강인함을 보여준다.
이처럼 개인은 그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영향을 받으며, 이를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따라 삶의 양상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주인공 클레오는
외적, 내적 고통과 상실 속에서도 자신의 방식으로 삶을 선택하고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이를 통해 이 시대 속 우리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한다. 우리도 그녀처럼 파도를 뚫고 나아갈 수 있을 것인가.
논제
1. 우리 사회의 계급은 어떤 방식으로 인간성을 제한하는가? 인간성을 회복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2. 개인이 사회에 의해 좌절되는 경우 이를 극복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