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Image? 통상 2가지~
절대자, 심판관으로서, 치부책을 들고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보고 자잘못을 기록하고 계시는 분, 우리의 잘못 하나 하나에 그 에 상응하는 벌을 내리시고 응당의 댓가를 치르게 하시는 분!
구약의 하느님 같은 이미지다.
또 다른 Image!
자비와 사랑의 하느님으로 아무리 잘못을 하고 심지어 죄를 지어도 끝없이 용서하시는 하느님이다. 잘못생각하면 요즘 참교육이라는 드라마에 나오는 촉법소년들처럼 철면피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는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자비와 용서는 회개를 목적으로 한 인내와 기다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느님에 대한 이미지를 우리가 어떻게 가지고 있느냐와 관계없이 하느님은 분명 정의의 하느님이시자 동시에 자비의 하느님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느님이시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의 전례를 통해 우리가 묵상해보아야 할 점은 이것이다. 신앙생활안에서 주어진 모든 규정과 법규들은 인간를 구원하시기위해 배려하고 기다려주시는 하느님 사랑의 관점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태 7, 9-11
“너희 가운데 아들이 빵을 청하는데 돌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생선을 청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좋은 것을 얼마나 더 많이 주시겠느냐?”
안식일에 밀이삭을 따 먹었다고 벌하실 분이 분명아닌데, 주님을 마치 감독관 심판관 처럼 설정하여 뜯어먹은 자를 죄인 취급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당신을 위해 무언가 희생기를, 무언가 좋은 것을 바치기를, 흠숭 받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오히려 우리가 잘 되기를, 행복하기를 바라는 어머니 같는 마음으로 함께 하심을 일깨우고자 한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너희가 알았더라면, 죄 없는 이들을 단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늘 1독서도 회개를 촉구하는 경고를 받고 눈물흘리며 통회하는 히즈키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다. 자, 내가 너의 수명에다 열다섯 해를 더해 주겠다. 그리고 아시리아 임금의 손아귀에서 너와 이 도성을 구해 내고 이 도성을 보호해 주겠다.”
이 얼마나 인간을 아끼는 마음이신가!
주님은 우리 편이시다.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를 변호하고 용서하며 자비를 베푸시고 필요한 은총을 더해주시는 분이시다. 이런 하느님의 사랑을 누릴 수 있는 단 하나의 조건은 회개이다. 이런 사랑을 받으면서도 회개하지않으면 ‘자업자득’ 곧 그 행실대로 기워갚게되는 심판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그러니 오늘 바리사이처럼 구원에로 나아가는 주변 사람들을 단죄하고 까래피며 방해하려들지 말고 오히려 도와주고 편들어주는 자로 살아가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구원의 여정을 함께 걷는 동반자로서의 우리의 태도요 자세이기 때문이다.
오늘 예수님은 바리사이에게 혹은 바이사이처럼 살려 하는 우리에게 이런 메시지를 주고자 하시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인간의 행실은 희망이란 비젼으로 다가가고, 하느님의 사랑은 회개의 노력으로 답하도록 하자.‘ 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