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음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1. 왜 의료인들에게 죽음 교육이 필요한 것일까? 죽음 교육은 교육 분야에서는 꽤 새로운 분야이다. 따라서 우리는 죽음 교육이 건강관련 의료인들에게 왜 필요한지를 검토해야 한다. 이 점에 관해 나는 5 가지 사항을 지적하고자 한다.
1) 죽음 교육은 건강관련 의료인들로 하여금 보다 나은 말기 간호(care)를 가능케 한다. 말기 환자들을 위한 적절한 간호에서 간호하는 사람들은 죽음 교육을 필요로 한다. 임종과 죽음에 대한 교육을 통해 의료인들은 말기 환자들이 바라는 것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그들을 위해 적절한 간호를 베풀 수 있다.
2) 죽음 교육은 사람들로 하여금 여러 종류의 죽음의 비극을 보다 잘 대처하게 만든다. 건강관련 의료인들은 종종 다양한 죽음의 현장에 직면하게 된다. 따라서 그들은 그런 상황에서 죽는 사람들과 그들의 가족을 대면하는 것에 대해 준비해야 한다. 예를 들어 나는 2001년 9월 11일 뉴욕에 있는 성 빈센트 병원에 있었는데 이 병원은 세계무역센터에 가까이 있었다. 무역센터가 공격을 받고 붕괴됐을 때 수분 내에 이 병원의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원목들이 병원 앞에 모여 현장에서 오는 사망자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조금 뒤가 되자 이번에는 사망한 사람들의 가족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 이 의료진들이 사망자들과 그 가족들을 다루는 방법을 접하고 매우 큰 감동을 받았다.
내가 겪은 또 하나의 예는 1995년 1월 17일에 일본 고베에서 겪은 지진이다. 이때 6천 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다. 다양한 죽음은 테러라든가 비행기 추락(충돌), 자연 재해(지진, 태풍, 홍수 등)으로 일어난다. 이런 재해에 제대로 대비하기 위해서는 죽음 교육이 필요할 것이다.
3) 죽음 교육은 자살 예방을 위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훈련시킬 수 있다. 건강관련 의료진들은 가끔 자살 환자들을 만날 수 있다. 이때 사람들이 왜 자살을 하고 싶어하는가를 이해한다거나 그런 환자들을 돕는 방법을 알면 자살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4) 죽음 교육은 친지를 잃은 슬픔(애도)에 대해 교육시킬 수 있고 그런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일본에서 나는 종종 학교 당국에게 건강관련 의료진들을 불러 학생들에게 죽어감과 죽음에 대해 강연하게 하라고 요구한다. 그럴 경우 학생들은 병원이나 호스피스 센터에서 임종자들과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말을 잘 경청한다. 이 강연자들은 학생뿐만 아니라 일반 청중들에게도 임종과 죽어감, 상실, 슬픔(애도) 등과 같은 주제에 대해 효과있는 강연을 할 수 있을 것이다.
2. 죽음 교육의 열다섯 가지 목표
1) 첫 번째 목표는 삶의 마지막 단계에 있는 환자들에게 가장 최선의 도움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죽어가는 환자에게 무엇이 필요하며 어떤 다양한 문제에 봉착하고 있으며 죽음의 과정이 무엇인가를 이해 할 수 있도록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이다.
의사가 더 이상 도움을 줄 수 없는 단계에 있는 환자에게 가장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은 친구와 친척들이다. 의료적인 치료보다도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인간이 가까이 있으며 따뜻함을 주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가까운 친척일수록 죽어가고 있는 환자들에게 그들이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충분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일본, 미국, 독일에서 많이 발견했다.
마찬가지로 일본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이 가장 필요한 순간에 죽어가는 환자를 기피하는 친척들이 있는 것을 보았다. 죽어가는 환자를 기피하게 되는 이유는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 죽어가는 환자를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삶의 마지막 여정을 함께 해주는 것이다. 죽어가는 사람에게 영적인 지원을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또한 가능한 것인가 하는 것을 깨닫는 것이 죽음 교육의 중요한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언젠가 죽음에 직면하고 있는 친구나 친척들과 대면하게 되는 것은 모든 인간의 공통적인 사정이다.
스위스의 여의사 고(故)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죽음의 과정에 대한 연구를 한 유명한 학자 중의 한사람이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여사를 나는 미국에서 여러 차례 만나서 이야기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이 사람은 미국의 200명의 환자를 관찰하고서 다섯 단계의 이론을 만들었던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우리의 설명을 위해 이 이론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보자. 그 첫 번째는 부정하는 단계이다. 죽을 수밖에 없는 병에 걸렸을 때 가장 먼저 부딪치는 모습은 ‘나는 죽지 않을 것이다. 설마 죽음이 나에게 다가왔겠느냐’라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이 부정이라는 것은 일시적인 자기 방어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에 곧 이 단계는 부분적으로 죽음을 수용해야 하는 단계로 넘어가게 된다. 우리가 죽음에 부딪칠 때 인간의 기본적인 자세가 내 자신을 보호해야 된다는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죽어가는 과정을 부정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두 번째 죽어가는 과정에 부딪치는 단계는 분노의 단계이다. ‘왜 내가 죽어야 되느냐’ 이런 거부의 반응이 지나가면서 그 다음 단계에 오는 것은 분노를 느끼거나 유감으로 생각하거나 또는 시기하는 등 복잡한 감정과 질문들에 부딪치게 된다. 이때에는 의사나 간호사나 가족들이 분노의 대상이 되곤 한다. 환자는 대개 환자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잘못해서 이렇게 되었다고 불만 불평을 토로하게 되는 것이다. 환자가 불만 불평을 털어놓고 공격할 때 그것을 개인적으로 자신에게 공격한다고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것은 환자가 단순히 죽음에 대한 화를 내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환자가 일으키는 분노라는 것은 당신을 향해서 내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죽어가는 과정에 대해 지식이 없고 자신도 이 상황에서 어쩔 수 없다는 공포 때문에 생기는 반응일 뿐이다. 환자가 분노를 터뜨릴 때는 환자와 이야기를 나누기가 대단히 어렵다. 이때는 잘 참아야 된다.
세 번째 단계는 타협을 하려고 하는 단계이다. 환자는 어떻게 해서든지 생명을 조금 더 연장하기 위해서 신과 타협을 해보려고 한다든가 의사와 타협을 하려고 한다든가 자신의 운명과 타협을 해서 생명을 연장하려고 한다. ‘몇 달만 더 살게 해 주신다면은,,,’ 혹은 ‘이번 여름까지만 살게 해준다면 하나님 제가 술도 안마시고 담배도 안 피겠습니다’ 이런 약속들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어머니들은 죽기 전에 ‘우리 딸 결혼식까지만 살게 해 주십시오’ 이런 식의 타협을 하게 되는 것이다.
분노를 느끼는 단계에서는 환자와 의사소통을 하기가 어렵지만 이렇게 타협을 하려고 하는 환자와는 의사소통하기가 쉬워진다. 이 세 번째 단계의 환자를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이 인생을 어떻게 살았느냐 하는 것을 다시 한번 성찰하고 반성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대개 이 단계에 처한 환자들이 발견하는 것은 자기가 인간관계에 있어 큰 잘못을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 세 번째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환자로 하여금 용서하는 마음을 갖게 하고 남을 용서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용서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생애를 성찰하는 치료(life review theraphy)에서 중요한 기회라고 볼 수 있다. 이 단계에 있어서 어려운 문제는 아직 내가 끝내지 못한 과업이 있다든가 아직 내가 해결하지 못한 인간관계가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내가 미국의 호스피스 프로그램에서 경험한 것인데, ‘아침이나 저녁에 개인문제에 봉착했을 때 그것을 녹음해 두었다가 나에게 전달해 달라’는 부탁을 하면 대개 환자들이 밤 12시 이후에 녹음을 해서 나에게 전해 주곤 했다. 미국에서 에이즈에 걸린 아버지 환자의 경우를 보았는데 이 에이즈에 걸린 아버지는 물론 동성연애자였고, 부인이 남편을 거부해 버리고 고등학교에 다니는 두 딸들도 아버지를 거부해 버렸다. 그래서 자원봉사자들은 어머니와 두 딸들을 설득해서 환자를 찾아보도록 요청을 하고 또 용서하라고 격려를 해서 이 세 식구가 죽어가는 가장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이 환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부인과 두 딸들로부터 용서를 받는 세 번째 단계였다. 네 번째 단계로 우울증에 걸리게 되는 단계이다. 환자가 이제 더 이상 회복의 가능성이 없다고 느낄 때 빠지는 감정은 우울증이나 절망이다.
퀴블로 로스의 다섯 번째 단계는 수용하는 단계이다. 네 번째까지의 단계를 다 지나게 되면 환자는 이제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나는 여기에 한 단계 추가해서 여섯 번째 단계로 기대를 하고 소망을 갖는 단계라 이름을 지었다. 여섯 번째 단계에 들어간 환자들은 회복될 수 있다고 하는 희망을 갖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 그리고 내가 사랑했던 사람과 다시 만날 수 있다고 하는 소망에 대한 기대를 갖게 되는 것이었다.
내가 일본의 NHK TV 방송국 요청에 의해 뉴욕에서 암으로 치료가 불가능하여 죽게 된 40세의 여자 환자와 인터뷰를 하게 되었는데 그녀에게는 병원에 남아 있으면서 화학요법을 받을 수도 있고 또 호스피스에 갈 수 있다는 선택권이 주어졌다. 이 의사에게 있어서 놀라운 것은 그가 환자에게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는 것이다. 이 의사는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보다 더 여러 가지가 준비된 특별한 곳으로 갈 수 있게 마련해 준 것이다. 대화를 나눈 과정 가운데 이 여자는 갑자기 ‘나는 지금 대단히 행복하다’고 말했다. 왜 행복하냐고 물었더니 2주일 이내에 부활절을 맞이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 부활절은 그녀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날이라고 이야기 했다. 기독교 배경을 가진 사람들은 금방 무슨 뜻인지 알겠지만, 이 환자가 이번 부활절에 죽게 되면 죽은 남편을 다시 만날 수 있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말한 것이다.
내가 일본에 다시 돌아왔을 때 일본의 NHK TV에서 이 인터뷰를 방송하였다. 그러면서 죽어가는 암환자가 ‘나는 행복하다’라고 하는 말까지만 보여주고 그 다음이 부활절이라고 하는 것은 잘라버린 프로그램을 보여 주었다. NHK TV에서는 부활절이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이 부분을 잘라버리면 40세의 이 환자가 왜 행복하다고 말했는가 하는 의미가 전달이 안 될 것이다.
물론 모든 환자가 이 여섯 번째 단계 다시 말하면 기대와 희망의 단계에 도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 천국에 갈 것이다’라는 희망과 기대를 가진 환자가 분명히 있는 것이다. 그때 우리는 그 각각 다른 기대와 희망을 존중해 주고 격려해 주어야 할 것이다. 일본에서는 죽은 후에 다시 생명을 얻는다는 것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좀 우스개 이야기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내가 일본의 어떤 중년 부인을 동경에서 만났을 때 ‘기독교 신앙을 가지면 당신은 죽은 남편을 천국에서 다신 만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 중년 부인은 심각한 얼굴을 하고 묻기를 ‘내가 만약 기독교인이 된다고 하면 그 지긋지긋한 남편을 또 만나야 되느냐?’고 되물었다. 죽음의 교육이 중요한 것은 이렇게 각각 다른 단계에 처해있는 환자를 적절하게 도와주어야 된다고 하는 사실에 있다.
2) 죽음 교육의 두 번째 목표는 사람들로 하여금 죽음을 좀더 깊이 생각하게 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죽음을 준비시키고 자기 자신의 죽음이 얼마나 특수한 것인가 하는 특성을 실현시킬 수 있게 도와주는 데 있다.
현대 문명에 있어서 가장 큰 위협 가운데 하나는 죽어가는 과정 자체를 개인적인 특성이 완전히 무시된 대중 생산의 과정으로 만들어 죽어가는 개인의 특성을 살리지 못하게 하는 데 있다. 실존철학자들이 계속 지적하는 것은 모든 인간은 각각 자기 자신의 삶을 살아야 되고 동시에 죽어갈 때 각각 자기 자신의 죽음을 죽어야 된다고 하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지적했듯이 죽는 것은 단순히 수동적인 고난의 자리에 들어가는 것이 아닌 적극적인 과제인 것이다. 일생동안 죽음을 가르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죽음을 특수한 개인적인 죽음으로 준비하도록 도와주는데 있다. 중세에는 죽어감을 예술(라틴어로 ars moriendi= art of dying)로 간주했다. 즉 죽어감이란 사는 동안 연마해야 할 예술이라는 것이다. 죽음 교육은 이와 같이 현대식으로 죽는 예술을 발견할 수 있다.
내가 실제 경험한 사례를 하나 말하면 동경대학 법학부의 우에모또 우사무라고 하는 24세의 학생이 죽어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강연에 와서 직접 한 것이다. ‘당신처럼 젊은 나이에 죽은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당신이 꼭 알아야 될 것은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을 당신은 이제부터 경험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당신이 나의 선생이 되었다.’ 나는 그 학생을 850명이 청강하는 동경 상지대학 세미나에 와서 강연을 하도록 요청했다. 그는 “나는 아주 행복하다. 나는 무엇인가 할 수 있었고 또한 가르칠 수 있었다고 하는 사실에 대해 행복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24살로 1월에 사망했다. 나는 이 청년이 자기 자신의 죽음을 죽었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남에게 죽음을 가르칠 수 있었고 또 타인의 죽음에 대해서 도와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3) 죽음 교육의 세 번째 목표는 슬픔(애도) 교육이다. 가족이나 친구나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비슷한 환경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 줄 수 있을 것이다. 이 면에 대해서는 별도의 주제(제2주제)가 있기 때문에 그때 더 자세하게 하기로 한다.
자기 자신이 죽기 전에 사람들은 대개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을 경험하게 된다. 일본여자들의 90% 이상이 자기가 살아있는 동안에 사랑하는 남편의 죽음을 경험한다. 아마 이 통계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전 세계 여자가 남자보다 강하기 때문인 것 같다. 친척이나 가족이 죽게 되면 소위 슬픔의 과정을 지나가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것을 경험한 이후에 너무 많이 슬퍼하다가 병에 걸리는 사례를 많이 보게 된다. 그렇게 때문에 슬픔의 교육이라고 하는 것은 예방 의학과 같은 것이라고 볼 수가 있다.
4) 죽음 교육의 네 번째 목표는 인간들이 지나지게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가지게 되어 심리적으로 필요 없는 짐을 지는 것으로부터 해방시켜주는 것이다.
여러 나라에서 조사된 결과에 의할 것 같으면 사람들이 죽음이나 죽어가는 과정에 대해서 지나치게 공포감을 가지고 있어 고통을 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것은 죽음이 금기시되어야 할 사항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은 죽음의 교육 과정을 통해서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고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그와 아울러 필요 없는 공포심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들을 발견해 냈다.
내가 동경에 있는 상지대학에서 죽음 교육에 대한 과정을 가르친 후에 이 과정을 들은 학생들이 불합리하고 필요 없는 죽음에 대한 공포심으로부터 많은 고통을 느꼈다가 여기에서 해방되는 체험들을 했다고 알려주었다. 많은 학생들이 자진해서 내게 와서 ‘제가 가지고 있던 심리적인 큰 짐을 선생님이 덜어주셨습니다’고 고백했다.
지금껏 연구된 것을 보면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도 미국의 내과 의사들이 상당하게 강한 죽음 공포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Herman Feifel) 건강관련 의료진들이 강한 죽음 공포를 갖고 있으면 임종환자들과의 소통에서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여러 다른 종류의 죽음 공포를 찾아내고 분석함으로써, 또 이런 공포들에 대해 긍정적으로 대면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제시하는 것을 통해 우리는 과다한 죽음 공포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많은 환자들의 경우 그들은 과도한 죽음 공포 때문에 정서가 마비되기도 하고 결과적으로 그들이 죽음의 과정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막히게 된다. 따라서 환자들을 간호하는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환자들의 과도한 공포를 알아내야 하는 책임이 있을 뿐만 아니라 환자들로 하여금 그 공포를 극복할 수 있게 도와주워야 한다.
5) 죽음 교육의 다섯 번째 목표는 죽음에 대해서 금기시 하는 것을 저지함으로써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거기에 관련된 문제나 죽음에 관련된 정서적인 것들을 해결해 나가도록 도와주는 데 있다.
옛날에는 성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금할 때가 있었지만 그때는 죽음에 대해서든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최근에는 성에 대해서는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죽음은 오히려 금기시 되어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하거나 생각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고 임종자들과 공개된 방법으로 의사소통하는 것이 차단되어 있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데에 게으르다. 이와 같이 죽음 교육은 죽음의 금기적인 면을 없애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내가 동경에서 경험한 것 가운데 하나를 소개한다. 자원봉사자 한 명이 양로원에서 봉사하고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매주 한명씩 죽었다. 그러나 아무도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았다. 내 밑에서 공부하는 학생이 자원봉사자로 거기에 가서 봉사할 때 거기 사는 노인들이 ‘너는 무엇을 연구하느냐’라고 질문했다, 이 학생은 ‘죽음의 철학과 죽음 준비 교육을 연구한다’고 대답했다. 그 이야기를 한 다음부터 이 학생에게 노인들이 계속 찾아와서 ‘내가 당신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고 나의 장례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꺼냈다. 죽기 전에 우리가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금기시 해왔지만 그러나 이제는 이것을 이야기 할 수 있게 되어져야겠고 또 이것을 아주 폭넓게 토론해야 될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6) 죽음 교육의 여섯 번째 목표는 암에 걸린 환자들에게 사실을 알려주는 문제이다. 이것은 죽어가는 환자와 더불어 의사소통을 하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암환자들에게 진실을 말하는 여부에 대해서는 시대적으로 큰 변화가 있었다. 예를 들어 1961년 미국의 경우 의사들을 대상으로 한 결과에 90%가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을 반대했다. 그러나 1977년에 있었던 조사는 급격한 변화를 보였다. 97%의 의사가 진실을 이야기했다고 말한 것이다.
그러면 진실을 알려주는 것과 관련해서 이러한 급격한 변화는 왜 생긴 것일까? 그 대략적인 이유를 들어보자. (1) 진실을 아는 것은 인간의 존엄과 밀접하게 관련된 기본 인권이다. (2) 환자와 의사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 필요하다. (3) 환자가 지속적인 의심이나 의문, 불신을 갖고 의사와 자신의 건강상태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없다는 것은 환자의 심리 상 해가 된다. (4) 환자들은 자신의 수명이 제한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그들에게는 자신의 생의 마지막 몇 개월이 더 소중해질 수 있다.
우리는 기쁜 일이 있을 때 의사소통하기를 원한다. 기쁜 일을 나눌 수 있게 되면 그 기쁨이 두 배로 증가된다. 또 우리가 의사소통을 해야 할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는 고통과 고난을 당할 때 고난과 고통을 서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동정심을 가진 사람이 이것을 들어주게 되면 이 고통은 2분의 1로 줄어들게 된다. 기쁨을 나누면 기쁨이 두 배가 되고 고통을 나누면 고통은 반으로 줄어들게 된다는 격언이 있다.
우리가 암 환자에게 진실을 말해준 다음 해주어야 할 중요한 것은 그 이후에 어떻게 돌보느냐, 다시 말하면 영적으로 어떻게 지원하느냐에 관한 것이다. 물론 환자가 고칠 수 없는 암에 걸렸다는 나쁜 뉴스를 들었을 때 실망 할 수도 있지만, 이것을 새로운 도전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7) 죽음 교육의 일곱 번째 목표는 죽음에 관련된 윤리적인 문제를 가르치는 것이다.
이런 예로 가장 전형적인 것은 생명을 연장하는 일 대(對) 죽는 과정을 연장시키는 일이 있고 또 소극적 혹은 적극적인 안락사 문제, 그리고 도움 받아 행하는 자살, 사전유언장, 환자의 바람을 따라야 하는 의사의 의무 같은 것들이 있다.
현재 의사들은 일방적으로 죽어가는 환자의 육체적인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에만 관여해 왔다. 물론 이것은 대단히 중요하지만 우리는 신체적인 생명 연장에만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인 생명, 사회적인 생명, 문화적인 생명을 연장시켜주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 생명을 연장한다는 것은 물론 육체적인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지만 인간 전체의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내가 유럽, 미국, 호주의 호스피스에서 많이 관찰한 것은 인간 생명의 길이를 연장하는 것보다는 인간 생명의 질을 높이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방법으로 음악치료법, 미술치료법, 독서치료법 이런 것이 나오는데 뉴욕에 있는 갈보리 호스피스 센터는 200개의 침상을 가지고 있는 곳으로 거기에는 한명의 전문 음악치료사가 고용이 되어 있다. 음악치료법은 효과가 많은데 특히 신체 고통을 줄여주는 데 효과가 좋다. 음악치료법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의식을 확장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환자는 고통을 당하고 죽음을 직면하고 있지만 음악은 과거에 행복했던 날을 생각할 수 있게 도와주어 과거를 재발견할 수 있게 해주고 또 미래를 볼 수 있게 만들어 준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3차원에 산다. 현재가 있고 과거가 있고 미래가 있는데, 과거는 단순한 과거일 뿐만 아니라 과거에 경험한 것들이 하나의 보물로서 현재의 내게 축적되어 있는 것이다. 어린이들의 노래를 들으면 어머니를 생각한다. 어떤 음악을 들으면 첫사랑을 생각하게 되고 혹은 졸업식 생각을 하게 된다.
죽어가는 환자의 삶의 질을 높여주기 위해서 미술치료법도 유용하다.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어떤 호스피스에 갔을 때, 그 곳에서는 화가들이 죽어가고 있는 환자들의 그림을 그리는 치료법이 사용되었고 벽에는 죽은 사람들이 마지막 그린 그림이 붙어 있었다. 이 호스피스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은 전부 자기가 6개월, 6주 혹은 2주 이내에 죽는다는 것은 안다. 그렇지만 이 사람들은 죽기 위해서 그 곳에 간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시간에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나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뭔가 창조적인 것을 남겨준다”는 그런 자세를 갖게 된다.
8) 죽음 교육의 여덟 번째 목표는 의학법적인 문제에 대해 친숙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죽음의 정의와 어떻게 죽음을 결정하는지에 대한 것, 뇌사 문제, 장기 이식, 자기의 신체를 의학 연구를 위해서 내어놓는 일, 신장을 기중하는 일, 안구 은행, 유서를 남기는 일 등에 관계된 의학법적인 지식에 익숙하게 해주는데 있다.
말기 환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법적인 잇슈는 유언장을 쓰는 것이다. 나는 일본에서 임종자가 유언장을 써놓지 않아 사후에 재산을 놓고 싸우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건장관련 의료진들은 이런 문제가 안 생길 수 있게 환저 가족들에게 유언장을 쓰게 하는 기회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9) 죽음 교육의 아홉 번째 목표는 자살을 방지하는 데에 있다.
즉, 죽음 교육은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도와주며 또 그들을 도와주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데 있다. 많은 사람들이 살아있는 동안에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우리가 자살 예방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갖고 있다면 친구들 가운데 자살하려고 하는 사람의 생명을 구해줄 수 있을 것이다.
일본 사람들은 전 세계 사람들 중에서 가장 오래 사는 사람들이다. 동시에 그 오래 사는 일본여자들이 세계에서 가장 자살률이 높다(한국인들도 자살율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뒤지지 않는다고 들었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자기 어머니가 자살하는 것을 경험하는 것인데 일본 동경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 경험을 하고 있다, 그렇게 때문에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자살할 위험에 직면했다고 할 때 그들을 도와줄 수 있는 길을 죽음의 교육을 통해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다.
10) 죽음 교육의 열 번째 목표는 장례식의 역할에 대해 설명하고 자기 자신의 장례식을 스스로준비하고 그 방법을 선택하도록 도와주는 데 있다. 한국 장례식은 내가 잘 모르지만 일본의 장례식은 아주 의례적이고 형식적인 것이다. 오래 전에 ‘장례식’이라고 하는 영화가 일본서 만들어졌는데, 지나치게 형식적인 부분을 비판적으로 그려낸 영화로서 당시 일본에서는 굉장한 인기를 끌었다. 나는 삶의 마지막 순간은 이런 형식적인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개인의 취향에 맞게 자신의 것으로 구성된 장례식이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예를 하나 들자면 미국에 있는 어떤 간호사가 암에 걸렸다. 그녀는 호스피스의 도움을 받으면서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일을 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장례식 순서를 짜놓고 죽은 것이다. 그녀는 자기의 장례식 순서를 직접 썼다. 자기가 좋아하는 찬송가를 선택해서 넣고 자기가 좋아하는 신약성서를 봉독하도록 넣고 흔히 신부님이나 목사님이 설교를 하도록 되어 있는 것을 빼고 자기 자신이 스스로 설교를 해서 녹음을 해놓았다. 그래서 장례식에 온 참석자들이 갑자기 이 간호사가 설교하는 것을 듣게 만들어 놓고 설교 끝에 ‘이 장례식이 끝나면 즐거운 파티를 하도록 하십시오’하면서 끝을 맺었다는 것이다.
마지막 순서에는 ‘여러분 이 장례식에 참석해 주신 것을 감사드리고 하느님께 찬양한 것을 감사드립니다’고 썼다. 그리고 한줄 더 ‘내가 여러분이 하늘나라 집에 오는 것을 먼저 가서 기다리겠습니다’고 썼다. 그리고 끝에 ‘꽃을 기증받는 것을 사절합니다’라고 쓰고 ‘꽃을 가져오시려면 여러분 가정의 정원에 있는 꽃만 받겠습니다’고 썼다. ‘장례식에 필요없는 비용을 쓰면 안 됩니다’ 이렇게 써놓고 ‘시간과 돈은 내가 속해 있는 스타 호스피스 센터에 기증해 달라’고 썼다. 나는 이 간호사가 마지막 이야기한 것을 녹음한 것을 가지고 있는데 그 안에 그 간호사 주위에 계신 한분 한분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녹음해 놓았다. 이것은 인생의 끝에 있어서 누구에겐가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가 하는 것을 말해준다. 죽음 교육에서는 바로 이 간호사처럼 되라고 가르친다. 이 간호사는 죽음을 통해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11) 죽음 교육의 열한 번째 목표는 시간의 소중함을 발견하게 하고 가치관의 재정립, 그리고 인간의 창조성을 자극하는 데에 있다.
우리는 위의 예를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 아브라함 매슬로우가 한 말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심장발작을 겪고 그가 겪은 것을 이렇게 남기고 있다.
“죽음과 대면하고 거기서 빠져나오자 모든 것이 귀중하고 성스럽고 아름답게 보여서 나는 그 어떤 때보다 그 모든 것을 사랑하고 감싸고 내가 그것에 의해 압도됐으면 하는 강한 충동을 느꼈다. 강은 이전에는 저렇게 아름답지 않았다.... 죽음, 그리고 그 죽음이 현재 존재한다는 사실은 사랑, 그것도 열정적인 사랑을 더 가능케 했다. 나는 우리가 열정적으로 사랑할 수 있을지, 혹은 망아경이 가능이나 한 것인지, 우리가 결코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가 모두 궁금했다.(Rollo May, Love and Will, p. 99에서 인용)
심리학자인 매슬로우의 노련한 눈으로 죽음을 대면한 체험을 적은 것이다. 이 체험은 그로 하여금 매우 강한 강도로 보고 듣고 느끼고 사랑하게끔 만들었다.
12) 죽음 교육의 열두 번째 목표는 노인 환자들에게 죽음에 대해 가르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함으로써 나이가 많이 들어가는 시기를 더 풍성하게 해줄 수 있다. 그것은 죽음의 기술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배우게 만드는 데 있다. 죽음의 기술이라는 것은 인구의 노령화에 대한 연구 및 노인학에서 중요한 측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삶의 질을 높이는 것과 죽음의 질을 높여간다는 것 사이에는 대단히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 사람들도 수명이 점점 길어지고 있는데 특히 은퇴한 후에도 사람들이 장수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나이가 드는 것은 피할 길이 없다. 죽어가는 과정과 죽음을 통해서 우리는 생명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어떻게 하면 더욱더 의미 있게 사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13) 열세 번째 목표는 개인으로 하여금 죽음의 철학을 추구하는 데 있다.
개인으로 하여금 사적으로 자기의 죽음과 죽어가는 과정을 스스로 이해하면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격려한다. 또 교육적인 배경이나 문화적인 배경이 다른 것에 의해서 제약이 된 죽음에 대한 이념적 개념이나 사회적 개념으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켜주는 데 그 목표가 있다고 하겠다.
우리 모두는 많은 경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제한된 경험을 바탕으로 죽음에 관련된 문제나 가족이나 그 주변의 의견에 따라 죽음에 대해 이해를 하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에 우리들의 죽음관은 너무나 일방적이거나 편견에 차있고 혹은 잘못된 예를 따른다. 죽음 교육은 죽음에 대한 태도가 역사적으로 다른 시기나 다른 문화권, 철학, 종교에 따라 각각 다양했었다고 하는 점을 보여준다.
이렇게 죽음과 죽어가는 과정, 죽음 이후의 생애에 대해서 각각 다른 해석과 이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우리는 죽을 때 나 자신의 철학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향유하게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12개 나라에서 살아보았기 때문에 각기 다른 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다르게 생각하는가 하는 사고방식의 차이를 잘 안다. 그렇게 때문에 이것을 서로 비교하고 그 중에 제일 좋은 것을 선택하면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된다.
14) 열네 번째 목표는 죽음과 죽어가는 과정에 대한 종교적인 해석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이다.
세계의 많은 종교들은 죽음과 죽어가는 과정, 그리고 사후생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갖고 있다. 종교를 갖고 있지 않은 건강관련 의료진들은 환자들의 종교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종교들의 죽음관을 알 필요가 있다.
많은 종교들 가운데 불교의 경우를 보면 인간의 고난과 죽음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기독교 역시 가장 중심 되는 관심이 죽음에 있을 뿐만 아니라 예수의 부활에 있다. 개인적으로 종교를 가지고 있던 그렇지 않던 간에 종교가 제시해주는 바른 해석을 알게 되는 것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고난이나 죽음, 사후의 생명에 관한 지식을 넓히는 것은 필요하다.
15) 이제 마지막 점이다. 열다섯 번째 죽음 교육의 목표는 죽음 이후의 생명의 가능성에 관한 사실을 생각하도록 격려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죽음이 닥쳐왔을 때, 사랑하는 사람이 죽음에 처했을 때 특별히 인간의 현재 생활의 의미에 대해 찾게 되는데 그 특별한 의미는 미래의 근본 희망과 관련되어 있다. 죽는다고 하는 것은 극단적으로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고난을 당한다는 것은 조금 더 견딜 수 있는 것인데 특별히 고난 가운데서 그 고난의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 더욱 그렇다.
나는 여러 나라에서 연구하면서 많은 죽어가는 환자들로부터 배운 것은 특히 죽은 후의 생명에 대한 희망을 가진 환자들은 크게 도움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죽은 후, 미래의 생명에 대해서 종교적으로 신앙을 갖거나 철학적으로 이것을 왜 사람들이 받아들이게 되는가에 대한 이유를 추구할 만한 가치는 분명하게 있다. 죽음은 새로운 생명을 향해 나아가는 하나의 과정이므로 인류역사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았던 것이다. 가장 고통스러운 죽음의 과정을 경험하고 있는 환자에게 영적으로 가장 크게 도움을 주는 것이 영원한 미래에 대한 소망이라고 말할 수가 있을 것이다.
3. 죽음 교육의 네 가지 단계
1) 정보를 전달하는 지적인 단계 이 단계에서의 죽음 교육은 학생들에게 죽음학(즉 죽어감과 죽음의 과학)의 여러 주제에 대해 학제간적인 접근법에 대해 알려준다. 여기에 해당되는 전형적인 예는 죽는 과정, 말기 간호(care), 고통 조절, 임종환자의 요구나 그들과의 소통, 죽음에 대한 불안, 죽음의 철학, 각기 다른 종교와 문화에 따른 죽음관이 다른 것 등과 같은 것들이 포함된다.
2) 정서적이고 감정적인 단계 두 번째 단계에서 죽음 교육은 죽음에 대한 정서적이고 감정적인 태도를 다룬다. 학생들로 하여금 죽음 교육이 단지 지식을 늘이는 데에 목적이 있지 않다는 것을 알리는 것은 중요하다. 의사들이 말기 환자들에게 충분한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경우는 지식의 부족이 그 주된 원인일 때가 많다. 그러나 종종 정서적인 문제에서 같은 것이 발생한다. 만일 의사가 환자에게 암이 걸린 사실을 알리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면 그것은 환자를 위해 그런 것보다 의사 자신의 죽음 공포에서 비롯되는 경우도 많다.
3) 가치적 단계 인간이 죽는 방법에 대해 가치관 정립을 새롭게 하는 것이 이 단계의 목적이다. 의사들은 말기 환자의 육체적 생명을 연장시키는 데에 관심이 있을 수 있겠지만 환자는 삶의 질도 똑같이 중요하게 생각할 것이다. 따라서 환자를 돌보는 사람들은 환자의 소망에 맞추어 가치의 우선순위를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이다.
4) 기술 훈련 단계 네 번째 단계에서는 죽음 교육과 연관해서 기본적인 기술이 가르쳐져야 할 것이다. 기술을 배우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죽어가는 사람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것이다. 죽음교육자들은 각각의 말기 환자들이 모두 특수하며 특별한 요구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의료진들은 이 환자들의 말을 잘 경청하고 그 특수한 요구를 알아차려야 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기술 훈련 단계의 측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