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매일 기획특집
이재창 시인, 남도문학 현장을 가다 (27) 소설가 이삼교
귀향의식 환기로 인간성 회복 시도
고향과 도시의 대비로 서민 애환 그려
현실비판과 통일 지향의 소설
'돌맹이와 까마귀'통해 문학적 변모
농촌 사회 붕괴·교육재단 비리·민족 분단 아픔 다뤄
혼란과 격변의 역사속에서 살아남기
인간성 회복 시도와 현실비판, 통일 지향의 소설
고향과 도시 대비 평범한 서민들 꿈과 좌절 그려
탄탄한 언어와 문장에 짜임새 있는 구도 돋보여
2003. 12.10(수) 00:00
소설가 이삼교(64)씨는 문단에 늦깎이로 등단한 작가중의 한 명이다. 학창시절 그의 문학적 열정이 교직에 몸담으면서 한동안 그 빛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매사에 조심성이 많고 꼼꼼하며 돌다리도 두드리고 가는 성격의 소유자다. 한마디로 앞장서기를 싫어한다. 그래서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한 성품을 지녔다. 그러기에 오기나 도전적인 추진력에는 다소 소홀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만큼 탄탄한 언어와 문장, 그리고 짜임새 있는 작품을 발표해 왔다.
어찌보면 그는 참 무미건조한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전라도 말로 맛탱이가 없는 사람이라고 평할 수도 있다. 그가 특별한 취미를 갖고 있지 않고, 바둑 장기는 물론이고 당구도 칠줄도 모르고, 춤도 못추고, 등산이나 낚시질도 그렇다.
아주 친한 친구들도 아직까지 그가 술에 취해 실수를 저지른다거나 횡설수설 말을 함부로 아무렇게나 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누구든지 그와 가까워지면 찐덥진 정을 느낀다고 한다. 한마디로 그는 정이 많은 사람이다. 정이 너무 많아서, 그놈의 정 때문에 늘 손해를 보는 편이다. 게다가 비위까지 약해서 자신이 아무리 어려운 곤경에 처해도 누구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지 못하는 성격을 지닌 아주 조용한 소설가다.
그의 문학은 중·하류층 인간군상들의 소박한 꿈과 그 좌절에 대한 위로의 형식으로 짜여졌다. 그는 짤막한 이야기를 통하여 대개 할아버지-아버지-아들의 3대가 겪는 혼란과 격변의 역사 속에서의 살아남기와 보다 잘살기에 대한 안간힘을 느끼게 만든다. 그에게는 거대한 민족사적 관점보다도 하잘 것 없는 이웃들이나 주변에서 흔히 만나는, 그러면서도 지나치기 쉬운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진국이 더 짙게 배어 나온다.
첫 소설집 ‘아살박’은 그의 초기작의 성향을 잘 보여준다. 그의 초기작은 주로 인간의 본질을 귀소의식 혹은 귀향행위로 제시한다. 즉, 고향공간과 도시공간의 대비적 설정으로 산업사회에서의 평범한 서민들의 꿈과 좌절을 그려내고 있다.
인간 상실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평범한 사람들의 진실된 삶을 제시한다. 또한 상실된 인간성을 치유하기 위해 독자들에게 따뜻한 삶을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그의 초기 소설의 특성은 '뛰어난 자연 묘사', '고향 찾아가기의 구성'이다. ‘뛰어난 자연 묘사’는 그의 전 작품에 드러나는 특성으로 탄탄한 문장과 함께 예술성을 돋보이게 하는 요소이다. '고향 찾아가기의 구성'은 못살게 된 고향 공간에서 도시공간으로의 이동과 도시화 된 삶의 모습에서 다시 고향공간으로 회귀하는 것을 말한다. '날개와 풍향', '가항종점', '비상하는 바위', '안개해빙', '정물점경', '틈입자', '미로의 여름' 등이 이러한 구조를 가진 작품들이다.
초기작 ‘아살박’과 ‘역광’은 가장 치열한 현실성을 보여주며, 분단의식의 부각에는 애매성을 나타내지만 소시민적 고향회귀 의식을 그린 작품은 우리 시대 평균치 인생의 자태를 제시한다.
그의 초기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아살박'에서는 미치광이로 고향에 돌아 온 '형'을 통해 사회적 제약을 간접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할아버지의 고난 이후 '골방'이 갖는 상징성과 말미에 아버지와의 '약조'를 드러냄으로써 현실인식을 암시적으로 처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광'은 남편과 아들을 시국으로 잃은 할머니가 작은아들과 손자인 대학생 '지섭'에 대해 온 신경을 곤두세우는 모습을 통해 역사의식을 암시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특히, 남북 분단 문제를 다룬 '무너지는 밤', '여름의 끝', '그 목선의 계절' 등은 그의 소설적 지향이 현실문제와 역사의식으로의 이행에 앵글을 맞춰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두 번째 소설집 ‘돌멩이와 까마귀’는 사회현실에 대한 인식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첫 소설집이 주로 고향 공간을 배경으로 한 귀향모티브를 다루었다면, 그 이후 작품들에서는 분단의 비극적 한의 차원을 넘어서 분단극복으로 통일을 지향하는 문학적 입장에 접근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소설이 당대의 사회 현실을 반영하고 재현해 내는 예술이라는 그의 문학관과 작가 정신의 치열성에 기인한다. 그가 이 작품집에서 보여 준 현실문제는 주로 광주문제, 교육환경 문제, 농촌이야기, 민족 분단의 아픔 등 적극적으로 현실의 모습에 다가서고 있다.
표제작인 '돌멩이와 까마귀'에서는 사기전과자인 장봉도라는 인물을 내세워 사이비 민주운동가들의 위선과 지식인들의 부패상을 꼬집어내고 있다. 농촌 출신 장봉도는 대학을 나온 지식인이지만 사회 정의와 도덕에 무감각하고 자신의 명리만을 쫓는 인물이다. 결국 사기전과자가 되어 고향에 내려오게 된 장봉도는 민주투사의 가면을 쓰고 농협조합장 선거에 나갈 것을 꿈꾼다. 그래서 순박한 농민인 형의 가보나 다름없는 소까지 팔아 사전 선거 자금으로 쓴다. 하지만, 선거가 연기되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자 고향에서 종적을 감추고 만다. 작가는 장봉도를 통해서 민주화 과정에 있는 우리 사회의 위선적 양상을 꼬집어내면서 농촌을 지키고 있는 순박한 농민들의 인간적 모습을 대비적으로 그리고 있다. '가장(家長) 그리기'는 농촌을 떠나와 도시에서 장갑공장을 차려 부와 명예를 누리고자 했던 아버지가 도시빈민으로 전락하여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나'라는 관찰자를 통해 해학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풀잎과 바람의 기억'은 시골 사립중학교의 교사들에 대한 재단의 전횡과 비리를 다룬 작품이다. 미술교사 장인옥의 시각을 통해 학교재단의 교사 채용과 사표 강요 등 온갖 추악함이 어떻게 자행되는가를 보여준다. 이 작품을 확대 해석하면, 권력을 가진 억압자와 피억압자의 관계를 보여줌으로써 자본주의 사회 구조 속에서의 갈등을 알레고리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광주문제'를 다루고 있는 작품은 '그대 고운 시간'과 '부끄러움을 위하여'이다. '그대 고운 시간'은 11세 소년인 '나'가 겪은 광주항쟁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광주의 현장에서 그의 가족이 맞닥뜨린 상황을 세밀하게 보여 주고 있다. '나'에게는 5.18 당시 스무 살 나이로 행방불명된 누나에 대한 기억이 정지된 시간으로 남아 있다. '부끄러움을 위하여'는 광주민중항쟁이라는 사건을 중심으로 '나'와 박상민이라는 두 인물의 시국관과 현실관의 대립과 갈등을 그리고 있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단지 '80년 광주'를 다루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역사관의 문제에까지 확장시키고 있다. 아버지의 유품을 통해 아버지가 친일파의 앞잡이였음을 안 '나'는 뒤늦게 부끄러움을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나'는 성민이 광주의 후유증으로 죽었다는 사실을 신문에서 읽고, 성민의 고향이며 자신의 고향인 채우도를 찾는 것으로 결말을 내고 있다. 이 두 작품은 '광주'의 진실을 통해 역사를 보아야 한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와 같은 작품은 '광주 문제'에 대한 소설적 접근 태도로서 매우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왜냐하면, '광주 문제'는 진실을 밝혀야 할 부분과 역사적 맥락에서 평가해야 할 부분을 소설미학적 장치 속에 수용할 때에만 문학으로서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년의 여름'과 '백두산에서 만난 사람'은 6.25 전쟁의 아픈 체험, 남북분단, 이민, 이산가족 문제 등을 제기한 소설로 통일을 지향하는 작품이다. '유년의 여름'은 6.25 전쟁의 생생한 체험을 재현하여 독자로 하여금 전쟁이 가져다준 아픔과 민족 통일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깨닫게 해 준다. '백두산에서 만난 사람'은 민족 분단으로 인한 이민, 고국에 대한 그리움, 동포애 등을 형상화하여 우리 민족이 통일을 지향해야 하는 당위성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원래 무모하게 큰 변화를 시도하거나 꿈꾸지 않는다. 대학을 졸업하고 얻은 국어교사 자리에서 한 번도 직장을 옮기지 않고 같은 학교에 계속 머물러 있다거나, 남들은 몇 번을 옮겼을지 모를 삼십여년 동안 그가 분가해 마련한 집에서 지금까지 붙박이로 눌러살고 있는 것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것이 그의 장점이며 일상생활 속에서 일단은 신뢰해도 될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지도 모른다.
그는 한번 얻은 것은 절대 놓지 않으며, 그것을 더욱 확실하게 자기 것으로 하려고 한다. 그의 소설도 그렇다.
“소설이 무어냐고 물으면 아직도 꼬집어 대답할 수 없다고 실토하는 작가들이 있음을 보았다. 나도 마찬가지다. 내게 두고 인생은 불가사의다. 그 다양한 양태와 실타래 같은 사고의 씨줄과 날줄. 단지 분명한 하나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하고, 살되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담쟁이 덩굴이 담을 타고 뻗어가듯이.”
“생각하면 소설은 내게 있어 너무나 외로운 사랑이다. 그 명도와 열량까지를 포함해서 말이다. 작가는 작품이 그의 언어다. 언어는 살아있음으로 가능하다. 살아갈 날들을 위하여, 살아온 날들이 부끄러우면 부끄러울수록 더욱 성찰과 자성의 기회를 갖지 않으면 안된다. 소설집을 내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에게 한때의 소망은 소설을 쓸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싶은 것이었다. 할수만 있다면 직장을 그만 두고 정심없이 소설쓰는 일에만 전념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도 이젠 정년퇴임을 하고 쓸쓸한 날을 보내고 있지만 이제부터 그의 문학이 새롭게 태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그가 늘 소망했던 대로 한국소설문학에 확실한 지표가 될 수 있는 좋은 장편소설이 조만간 태어나 한국의 독자들에게 선을 보였으면 하는 바램이다.
법학도에서 국문학도 변신 소설공부
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늦깎이 등단'
소설가 이삼교씨는 1938년 전라남도 완도군 신지면 월양리에서 태어나, 후에 광주로 이거하여 성장했다. 해방과 전쟁의 어려웠던 시절에 5남매의 넷째로 성장했다.
그는 광주 중앙초등학교에 다니면서부터 책을 가까이 하면서 글쓰기를 좋아했다. 조대부중, 조대부고 시절엔 국어교사인 하성례 선생님을 만나 문학에 대한 나름대로의 꿈을 키울 수 있었다. 하선생님은 늘상 그의 글에 대한 격려를 아끼지 않았고, 그러면서부터 문단 등단에의 꿈을 갖기 시작해 신춘문예나 문학잡지에 투고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우여곡절끝에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0년 조선대 법정대학에 입학했다. 법학과 학생이 국문학과 강의를 들으면서 국문학과 학생들하고만 어울려 지냈다. 그러면서도 그의 가방 속에는 법학서적보다는 늘 소설책이 들어 있었다. 그렇다고 문학하는 티는 내지 않았다. 그 무렵에는 작품집도 쉽게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대학 도서관이나 광주에 하나밖에 없는 시립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읽었다. 그리고 더러는 황순원이나 김동리의 작품집을 통째로 베끼는 노력으로 소설공부를 했다.
그는 이것 저것 닥치는 대로 읽었던 문학서적들과 문학에 대한 향수 때문에 법학을 포기하고 1962년 법학과를 휴학했다. 휴학기간에도 그는 국문학과 강의실에서 무단 청강을 하면서 소설가 문순태를 만나 각별한 교유관계를 유지 했다. 당시 그는 4.19의거와 5.16쿠데타를 겪으면 사회에 대한 많은 고민과 삶에 대한 수많는 갈등을 겪기도 했다.
1964년 그는 법학과에서 그가 원하던 문리과대학 국문학과 2학년으로 전과하게 된다. 재학중 그는 조대신문사 학생 편집장을 맡았고, 각종 문학활동에도 기웃거리며 활동했다.
그러다 그는 66~69년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해 71년에 졸업한다.
졸업을 몇 달 앞두고 조선대 기획실에 잠시 근무했으나 졸업이후에 첫 근무지인 광주숭일중 국어과 교사를 자리를 옮긴 이후 2001년 8월 30일까 정년퇴임 할때까지 한곳에서만 근무했다.
교직생활을 하면서 그는 소설가 문순태씨와 한승원씨 등이 만날때마다 수시로 소설쓰기를 종용하고 충동질하면서 그가 원했던 소설쓰기를 다시 시작한다.
1980년 40이 넘은 나이게 그는 옛 전남매일신문사 신춘문예 소설부문에 ‘석화포’가 당선되었으며, 이어서 그 이듬해인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대각선’이 당선돼 화려하게 등단하면서 본격적인 문학활동을 하게 된다.
그는 그 해에만 4편의 단편을 각 종 문예지에 발표하는 등 패기를 보여주어 늦깎이 출발을 만회했다. '백자'(전남문단, 1981), '환상의 못'(소설문학, 1981), '무너지는 밤'(한국문학, 1981), '그 목선의 세계'(문학사상, 1981)가 그것이다. 그 이후에도 '비상하는 바위'(소설문학, 1982), '정물점경'(주간조선, 1983), '틈입자'(월간문학, 1983), '미로의 여름'(전남문단, 1984), '안개해빙'(소설문학, 1984), '여름의 끝'(지역문화, 1985), '가항종점'(월간문학, 1985), '아살박'(한국문학, 1985), '역광'(현대문학, 1986), '종이칼'(한국문학, 1986), '날개와 풍향'(소설문학, 1986) 등 화제작을 꾸준히 발표함으로써 각종 문예지 월평에서 평론가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아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1986년에 등단 이후 발표한 단편 16편을 묶어 첫 소설집 ‘아살박’(도서출판 산하)을 내놓았다.
또한 문단에 나온 지 10년, 첫 소설집을 낸 지 5년만인 1991년 두 번째 소설집 ‘돌멩이와 까마귀’(황토)를 출간했다. 이 작품집은 첫 소설집 ‘아살박’(도서출판 산하, 1986) 이후 각종 문예지에 발표한 작품 중 단편 13편을 묶었다.
그에게는 두 권의 소설집 외에 공저로 출간한 8인 수필집 ‘황토에 부는 바람’(세종출판사, 1983), 한국현대작가걸작선 ‘괜찮게 생긴 여자’(다락원, 1987), 교육소설집 ‘누이를 위하여’(실천문학사, 1987), 광주항쟁 10주년 기념 작품집 ‘부활의 도시’(인동출판사, 1990), 4인꽁트집 ‘네 사람이 쓴 일흔두 편의 짧은 이야기’(세종출판사, 1999) 등이 있다. 한국문인협회, 한국소설가협회, 광주·전남 소설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1991년 제5회 광주문학상을 수상했다.
글 ; 이재창 문화부장 겸 편집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