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나주 덕룡산 운흥사
운흥사(雲興寺)는 나주시의 동남단에 우뚝 솟은 덕룡산(德龍山) 동쪽 골짜기에 자리한 사찰로서, 옛적에는 해남 대둔사(大屯寺)의 큰 절이라 불릴 만큼 가람의 규모가 컸던 유서깊은 곳이다. 아울러 조선 후기에 우리나라 차의 대가인 초의선사(草衣禪師)의 출가처로 널리 알려져 있다.
따라서 운흥사를 찾는 길은, 초의스님이 초립동으로 출가하면서 겪은 번민의 마음과 사색의 마음이 갈등하는 구도(求道)의 길을 생각케 한다.
스님이 출가할 당시 뱃사공의 화두가 그의 어린 마음 가득 심금을 울렸듯이, 운흥사를 쫒아 굽이굽이 들어가는 덕룡산은 할방과 할망의 장승이 그 표석을 일러주지 않으면 자칫 헤매게 되는 나주평야 깊숙한 곳에 자리한다.
석장승의 인도를 따라 해탈문을 들어서면, 가늘게 흐르는 실개천이 동안골과 남안골을 형성하며 두 개의 가람을 분리하고 있으며, 초의선사의 출가처답게 야생차밭이 눈앞에 펼쳐진다. 경내의 곳곳에는 380여 칸의 웅장함을 자랑했던 옛 사세를 말해주듯 축대와 초석과 당간지주들이 산재해 있다.
운흥사 석장승
운흥사 석장승
중요민속자료 제12호
운흥사 초입에 세워진 남녀 한 쌍의 돌장승으로, 무섭다기보다 인자하고 재미있는 우리네 할머니ㆍ할아버지의 형상을 하고 있다. 그 역할은 부처님의 성전과 성역의 부정을 막고 잡귀의 출입을 물리치고자 세워진 수문신(守門神)의 역할과 함께, 절의 경계에 서서 절을 찾는 신도들을 안내해 주고 소박한 마을민들이 소원성취를 비는 기도의 대상이기도 하다.
해탈문 밖 사찰 초입에 길을 마주보고 서 있는데 좌측은 남자, 우측은 여자의 모습이다. 남장승과 여장승은 전면에 ꡐ상원주장군(上元周將軍)ꡑㆍꡐ하원당장군(下元唐將軍)ꡑ이라는 음각명문이 새겨져 있으며, 여장승의 뒷면에는 1719년(강희 58)에 화주승(化主僧) 변학(卞學)과 별좌(別座) 김노즉윤(金老卽尹)이 장승을 세웠다고 새겼다.
남장승인 상원주장군은 높이 270㎝, 두께 34㎝, 너비 60㎝로 자연석 화강암에 조각되었으며, 8자형 수염과 문인석의 복두형 탕건을 쓰고, 두드러진 코, 동그랗고 쌍꺼풀진 눈, 합죽한 입, 양 볼 가득한 광대뼈 주름 등 위엄은 있으나 온화하고 인자한 노인의 표정을 담고 있다.
여장승인 하원당장군은 높이 201㎝, 두께 35㎝, 너비 73㎝로 얕고 넓은 판석형 화강암에 조각되었으며, 전체적으로 상원주장군과 유사한 인상에다 동그란 눈동자 가로 쌍꺼풀처럼 선을 두른 합죽한 할머니의 모습을 담고 있다.
두 장승 모두 절대연도가 파악되는 중요한 민속자료로서 인근의 불회사 장승과 조각수법 및 형태가 흡사함을 알 수 있다.
운흥사 해탈문
해탈문내 사천왕상
해탈문내 사천왕상
운흥사 전경
운흥사 대웅전
운흥사 괘불대
운흥사에는 총 16기의 8쌍으로 구성된 조선후기 석조 괘불대 및 지주가 남아 있다. 이는 동안골과 남안골로 구분되는 구법당과 신법당 마당에 있으며, 그 용도는 자세하지 않다. 지주의 크기는 높이 148㎝, 두께 14㎝, 너비 72㎝로 넓은 판석형 화강암에 조각되었으며, 간공은 상단이 네모꼴이고 하단이 원형인 모습이다. 운흥사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지주의 파편이 이 외에도 많은 곳에 산재해 있으며, 원래는 각 전각마다 두 쌍씩 배치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운흥사 금동여래입상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260호
광배와 대좌까지 모두 갖춘 금동제 여래입상으로 대좌와 불신, 광배가 연결되는 중공식 주조기법의 고식 불상이다. 머리는 민머리(素髮)에 자그마한 육계가 솟아 있고, 얼굴은 둥글고 팽창되었으며, 지그시 감은 눈과 입가에 머문 은은한 미소는 매우 정적인 분위기를 주고 있다. 이 금동불은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상호와 연화대좌의 단순하면서 순박한 세부 표현에서 백제 조각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이외에 주형거신광 광배와 세부 선조의 세련된 수법에서 삼국시대 금동불에서 살필 수 없는 특이한 장엄수법을 보이고 있어, 소형 금동불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2000년 운흥사지 대웅전 시굴 당시에 발굴된 것으로, 현재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260호로 지정되어 있다.
건물 내부는 중앙 어칸에 불단이 자리한 일반적인 형식이 아닌 동쪽 측벽에 불단이 붙은 특이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불단 상부에는 운흥사 금동여래입상을 확대한 높이 185㎝의 대형 금동여래입상과, 현공 박상희씨가 그린 아미타후불탱이 봉안되어 있다. 이외에 불단 좌측의 신중단에는 2002년 만화 박정자씨가 그린 신중탱을 비롯하여 지름 91㎝의 대형 금고가 있다.
운흥사 삼성각
운흥사 요사채
운흥사 삼성각내
운흥사 팔상전
운흥사 석조여래좌상
석조여래좌상은 1968년 동강면 옥정리에서 발굴된 것으로, 용운사에 봉안된 것을 2001년에 운흥사로 옮겨온 것이다. 고려후기 불상으로 석불 조성의 내력과 그 봉안위치는 자세하지 않으나, 영산강변에서 바다를 항해하는 어민들의 민불로 조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주형광배를 갖춘 이 불상은 소발의 머리에 육계가 솟아 있으며 상호는 상하가 균형을 유지하여 조화를 이루고 있다. 광배는 주형거신광에 보상화문과 안동당초문을 정교하게 장엄하고, 주연으로는 화염문을 시문한 장엄적 수법이 돋보이는 불상이다. 그러나 형식적인 삼도와 두터운 U자형 통견의 등 부자연스러운 치장수법과 항마인을 결한 듯한 파손된 양손의 수인에서, 불신의 조각솜씨가 석불의 장엄수법에 뒤쳐지는 부조화를 보여준다. 크기는 현고 179㎝에 무릎 폭 104㎝의 중형불상으로 조성연대는 고려 후기로 추정된다.
운흥사 관음전
운흥사 관음전내
운흥사 찾아가는 길
나주시내에서 남평방면 1번 국도를 따라 화순 쪽으로 진입하다가 신제 삼거리에서 818번 지방도로를 따라 다도면으로 접어든다. 그곳에서 화순 도암면 방면으로 난 818번 지방도로를 타고 가다가, 장암교에서 암정리 강정마을로 들어서는 진입로를 따라 약 3.5㎞ 지나면 강정저수지와 운흥마을이 나오고, 마을을 조금 지나친 곳에 석장승이 좌우로 서있는 운흥사를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