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이 덩실 어깨가 덩실! 풍물굿패 어울림
★어울림의 창단
현재의 풍물굿패 어울림은 1998년 가을 성주문화원 주최로 열렸던 풍물강습이 끝난 후 풍물에 관심이 있는 여러 사람들이 헤어짐을 아쉬워 하던 중 현재 회장으로 있는 최병국 회장님의 제안을 받아 몇몇 사람들이 다시 모이게 되었다.
풍물패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모르는 것이 많고 기량이 부족한 편이라 이름도 없는 풍물동호회로 모여서 연습하며 냉기 가득한 성주 체육관을 신명으로 채웠다.
회원의 구성도 공무원에서부터 농사를 짓는 사람들로 각기 일하는 곳을 달랐지만 풍물에 대한 애정은 넘쳤으며 더 나은 기량을 갖고자 하는 마음들은 한결 같았다.
그러나 성주 체육관내의 연습도 그리 오래 가지는 못하였다. 저녁시간에 치는 악기 소리가 주변 주택가에 시끄럽게 들려 그만두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그만둘 회원들이 아니었기에 새로운 장소를 모색하여 99년의 봄에는 성밖숲 근처에 있는 과일 저장 창고로 연습장소를 옮겼다. 물론 그 사이 회원들의 목마름을 채워줄 강사도 모셨다. 현재 성주군청에서 근무하시는 백두현 강사님으로 대구의 중요 무형문화제로 지정되어있는 날뫼 북춤·비산 농악에서 오랜 기간을 풍물을 접하였던 분이셨다.
어울림은 비산농악의 12마당을 배우게 되고 10월에 있을 성주 문화제에 참가하기 위해 연습에 매진하였다. 그 과정에서 풍물패의 이름을 짓게 되고 모든 사람들이 어울어져 놀 수 있는 판을 만들 수 있는 풍물패가 되자는 이유로 어울림이라는 이름을 짓게 된다. 99년 7월에 농업 경영인 수련대회 개막공연을 어울림에서 하게되어 지역의 풍물패로 첫 선을 보였으며 이후 8월의 월항면 경로 잔치의 찬조공연을 하면서 어울림의 존재를 지역에 확대시켜 나갔다. 10월의 문화제 참석이 불가능해져 어울림만의 독자적인 제 1회 정기 공연을 기획 99년 10월 9일 성밖숲에서 군수님까지 참석하여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정기공연을 하게 되었다.
이 공연에서 약 13명의 정회원들이 참석하였으며 강습회원들의 공연도 함께 진행되었으며 회원들에게는 자신감을 더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며 지역적으로는 어울림 풍물패의 존재를 확실히 인식시켰다. 정기공연후 수련면의 경로잔치에 참석하여 또 다시 공연을 펼침으로 어르신들과의 신명난 난장판을 펼쳤다.
★풍물굿패로의 전환과 어려움
정기공연 후 어울림은 또 다시 연습실을 옮겨야 했다. 비워두었던 저장창고를 사용하여야 한다는 주인의 말에 여러 곳의 장소를 물색하였지만 30명의 인원이 연습할 정도의 큰 공간을 확보하기란 쉽지 않았다. 다행이 회원중의 농업기술센터에 일하고 있는 사람이 있어 농업기술센타의 이전을 위해 가건축을 해 놓았던 곳에서 현 농업기술센타가 지어지기 전까지 연습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그렇게 어울림은 99년의 한고비를 넘기고 있었다. 그 고비를 넘기면서 어울림은 12월 풍물동호회가 아닌 좀더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기량을 통해 성주군민들을 만나고 성주 군내에서 우리의 사라져 가는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고 군내 풍물굿을 재건하고자하는 더 큰 목표를 가지고 풍물굿패로 전환하였다.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희망으로 준비하였던 2000년.
어울림 또한 군의지원을 받아 밀레니엄 축하 2월 정월 대보름 행사를 주최하여 성주 읍내의 곳곳을 다니며 지신밟기를 진행하였고 저녁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성밖숲에서 대불놀이 통해 사람들의 소원성취를 기원하였다. 정월대보름 행사 이후 어울림은 공연 행사보다는 자체 연습과 강습을 통하여 지역 내 어울림을 알리는데 주력하였으며 어울림 소식지를 발간하여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 발송하는 작업들을 진행하였다. 그렇다고 공연을 아주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성주읍의 농업경영인 개관식과 금수문화마을의 개관식, 어버이날 축하 공연 등을 다녔으며 우리밀서리 축제, 성주문화예술회관 기공식 판굿에도 참여하는 등 작은 공연들 다녔다.
그렇게 2001년이 다가오고 어울림은 또다시 어려움을 맞게 되었다. 연습공간으로 쓰고 있던 농업기술센타 부지에 공사를 진행해야 함으로 비워 달라하여 우리는 또다시 적당한 연습공간을 찾아야 했다. 이 과정에서 회원들의 활동력은 떨어져 몇몇은 회원을 그만두는 일이 생겼다. 회원들이 많이 줄어들어 마땅한 공연을 하기도 어려웠지만 연습 공간마져 안정화되지 못하니 연습을 계속 진행하기란 힘들었다. 그렇게 몇 달을 쉬면서 연습 공간을 찾던 중 성일웨딩 사장님의 배려로 일주일 1회 저녁시간을 활용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그러나 회원들의 참여가 저조하여 새롭게 강습생들을 받게 되었지만 강습생들도 그렇게 오래 가지는 못했다. 이시기가 어울림 최대의 위기였던 것 같다. 때로는 4,5명의 인원이 연습에 참석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시기에 최병국 회장님은 개인적 기량을 높여 성주의 어린이집 등을 다니며 강습을 진행하였으며 풍물이 필요한 곳이면 주저 없이 달려가 도움을 많이 주었다. 회원들 중에서도 초전의 신바람 풍물패의 강습을 지속해 나갔으며 자체적으로는 어울림의 새로운 모색을 위하여 강사 또한 대구에서 활동하는 김진규씨로 전문강사를 초빙하였다. 김진규씨의 현란한 꾕과리 소리와 장구소리에 눈이 휘둥그레진 회원들은 따라하기 조차 버거웠지만 그래도 열심히 연습에 임했다.
2002년에도 거의 단체활동 보다는 회원 개인들이 강사로서 활동을 많이 나갔으며 사무실이 없이는 어울림의 안정화가 어렵다는 생각에 민족극 한마당에서는 사무실 마련을 위한 5일 주막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많은 수익을 내지 못하여 공간 마련에 대한 꿈은 접어 두어야 했다.
★어울림의 새로운 출발
성일웨딩에서 연습하다가 때로는 금수문화마을에서 연습을 하는등 연습장소를 옮겨가며 연습에 임했지만 몇 남지 않은 회원들의 생각은 하나였다. 바로 성주군내 이렇다할 풍물패가 없는 실정에서 어울림마져 없어져서는 안된다는 책임감과 어울림이 현재는 어렵지만 이 어려움을 견디어 내면 반드시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을 어울림이 될 것이라는 각오였다. 본디 깊은 물에 더 큰 배가 뜨듯이 깊은 절망 속에 더 큰 희망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2003년에는 금수문화마을에서 연습을 안정화 시켜나갔다. 회원들도 많이 충원을 시켰으며 이전에 나오지 않던 회원들도 합류를 하였고 강사 김진규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하여 강습을 그만두게 됨으로 대구의 전문 풍물굿패인 매구에서 대표로 활동하고 있던 차재근 강사님을 모셔와 달성다사 12차 농악을 배우게 되었다. 회원들의 기량도 한층 높아져 월항 농협과 대가 농협에서 진행하는 풍물강습을 어울림에서 맡아 진행하면서 면 단위별 풍물패를 만드는데도 힘썼으며 최병국 회장님은 공립어린이집의 강습과 경북과학대학 민속박물관의 체험학교 시에 풍물을 맡아 강습을 진행하기도 하였다.
벽진중학교 풍물패와 긴밀한 교류를 통하여 벽진 중 풍물패를 어울림의 청소년 단원으로 영입하고 2003년 11월 13일 성주문화예술회관에서 제2회 정기공연인 풍물굿 어울 한마당을 개최하게 되었다. 이 정기공연은 어울림에게 새로운 희망을 안겨 주었으며 길고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와 오랜만의 햇살을 선사해주는 듯한 공연이었다. 준비하면서 힘들고 고되었지만 공연 뒤의 회원들이 만끽한 감동은 말로 설명할 수 없었다.
그렇게 2003년을 보내고 새롭게 맞이한 2004년!
그동안 하지 못했던 성주읍내의 지신밟기를 다시 시작함으로 한해를 시작하였다. 마음은 성주관내 자체 정월대보름을 준비하고 싶었지만 아직은 역량이 부족하다는 자체 판단으로 그 마음을 잠시 뒤로 매주 목요일 금수문화마을에서 정기 연습을 진행하였다. 2회 정기공연 후 강습회원들이 또다시 많이 늘어나던 것을 보면 정기공연의 감동이 우리만의 것이 아니었구나하는 생각에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자체강습에서도 회원이 늘어났지만 벽진에도 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한 풍물패를 만들어 강습을 진행하고 초전에도 큰울림 풍물패의 강습을 맡아 진행하였다. 우리의 청소년 단원들이 포진하고 있는 벽진중학교에도 어울림이 강습을 나가고 선남초등 등 특기적성교육에도 어울림이 그 한 몫을 담당하고 있다.
5월에는 성주군의 큰 행사인 성주 참외축제가 열렸었다. 이때에도 어울림은 가만히 있을수가 없었다. 참외아가씨 선발대회의 길놀이와 막걸리 축제의 한부분으로 진행된 주막을 통해 지역내 어울림이 건재하다는 사실을 인식시켰으며 아울러 사무실의 마련을 위해 재정의 확보를 노려보았지만 사무실 마련에 드는 비용이 워낙 커서인지 쉽게 재정을 마련하지는 못했다. 금수문화마을과 함께 준비한 무천 대불놀이는 비가 오는 와중에서 어울림 회원들의 살신성의로 인하여 어울림에 반했다는 사람들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참으로 흐뭇한 공연이었다. 8월에는 전국민족극 한마당에서 그 시작을 알리는 길놀이를 하였으며 9월에는 성주군 관내에 있는 풍물패들과 함께하는(성주문화원 주최) 풍물 큰잔치에서 면 단위별 풍물패인 선남, 용암, 월항, 초전, 벽진 농악단과 어울림이 경연을 치러 1등을 하는 영광을 안기도 하였으며 그 결과로 10월 4일 경북농악경연대회에 참가하여 19팀 중 우수상을 수상하였다.
이제 어울림은 경상북도에서도 뒤떨어지지 않는 실력을 지닌 풍물패로 거듭났으며 성주군의 자랑 꺼리가 되었다.
농악경연대회 후에도 농업기술센타의 농촌지도자 활력화 대회에 풍물공연을 하였으며 구미 가산면에서 도시민들과 농촌주민들과의 직거래 장터에 초청공연을 하였다.
이제 어울림은 11월 30일 성주문화예술회관에서 제3회 풍물굿 어울 한마당을 준비중에 있다. 매년 더 노력하는 모습으로 성주군민들에게 다가가고 호흡하고자 한다. 변하지 않는 흙의 마음으로...
★어울림의 한마디
어울림이 창단된지도 7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되돌아보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었지만 후회없이 보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아쉬움이 있다면 끝끝내 올해도 연습실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지금까지의 어울림이 있기까지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며 더욱 옹골찬 어울림이 되고자 노력할 것이다. 가장 시급한 연습공간의 문제와 함께 풍물꾼으로서의 역량을 더욱더 높이고 군민들에게 더욱 큰 발걸음으로 성큼성큼 내딛을 것이다. 어울림이 성주군민들에게 덩실덩실 어깨춤을 출 수 있는 신명 꾼으로 다가갈 때까지 지금과 같은 많은 후원과 배려를 부탁드리며...
어울림은 앞으로도 지속적인 강습사업과 공연 굿으로 여러분들의 성원에 보답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의 신명이 강물 되어 넘칠 때까지....
첫댓글 헉스 7년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