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승우목사의 성경해석은 거의 독단적이며, 문자적으로서, 자기의 행위구원론을 맞추기위하여 성경을 엉뚱한 방향으로 해석을 한다.
마 5: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변승우목사의 주장을 먼저 들어보자.
- 결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5:20) 그런데 어떤 이들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말미암는 의라고 생각합니다. 즉 예수님의 피의 공로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절대 아닙니다. 분명 예수님은 ‘너희 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이 말씀의 전후문맥을 보면 더욱 명백해집니다. 율법은 폐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지켜야 합니다. 그것이 의입니다. 그런데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문자만 이해하고 있었고 따라서 행동으로만 지켰습니다...... 그것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율법을 몸으로만이 아니라 마음으로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는 결코 십자가 공로가 아닙니다. 그것은 실생활에서 몸과 마음으로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는 것을 가르킵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런 의가 없는 자는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변승우,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68-69쪽)
“서기관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를 갖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 뭐가 필요해요? 너희 의가 필요하다고 그랬어요. 잘 들으세요.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여러분 예수 십자가를 통해서 믿을 때 받는 그 의가 아니예요. 우리가 가지고 있어야 하는 의입니다 . 너희 의가 서기관, 바리새인보다 낫지 못하면 너희가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변승우 목사, 2004년 5월 27일 S교회 집회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변승우목사는 마태복음5장20절의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보다 나은 의”를 “그들보다 더욱 철저하게 지키는 의”라고 해석하며 이렇지 못하면 천국에 가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변승우목사는 성경을 잘못 해석하고 있다.
마 5: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이 성경구절이 과연 무슨 뜻일까?
과연 변승우목사가 주장하듯이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율법의 행함을 잘 지켜야만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뜻일까? 예수님이 이땅에 오셔서 그 제자들에게 과연 바리새인과 서기관보다 율법을 더 잘 지켜야 한다고 가르치셨는가?
한마디로 변승우목사는 신학적인 뿌리가 없으며, 성경적인 지식이 매우 부족한 사람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왜 이런 엉뚱한 해석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되고 있으며, 오히려 2000년 기독교의 정통신학적인 해석을 통째로 비난하는 무모함을 저지르고 있을까?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지는 법이다.
이 성경본문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앞의 구절을 먼저 이해하여야만 한다.
마 5: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왜 앞의 성경본문 19절에서는 지극히 작은 계명 하나라도 버리면 천국을 가지 못하고 지옥에 간다고 말하지 않고,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고 일컬음을 받는다고 하고 있을까?
누구라도 알다시피, 그 당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이 지극히 작은 계명 하나라도 버리면 안된다고 주장하는 철저한 율법주의자들이었다. 바리새인은 가장 엄한 종파 중에 하나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행26:5)
그렇다면 지극히 작은 계명을 버리면 안된다는 엄하고 철저한 율법주의자들은 천국에 가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작은 계명을 버리라고 하며 또 그렇게 가르치는 자들은 (비록 지극히 작다고 일컬음을 받지만) 여전히 천국에 있을까?
만약 지극히 작은 계명을 버리라는 하며 그렇게 가르치는 자들이 여전히 천국에 있을 수 있다면, 지극히 작은 계명이라고 버리지 말라고 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당연히 천국에 있어야만 하지 않는가?
그러나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천국에 있다고 말한 적이 없으며, 그들은 천국 문에 들어가지 않으며 다른 사람도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고 말씀하셨다.
마 23: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오하려 예수님은 회칠한 무덤(마23:27), 지옥 자식(마23:15), 소경(마23:26)이라고 강한 비난을 하셨음을 우리는 알 수가 있다.
과연 누가 바리새인과 서기관보다 율법을 더 철저하게 잘 지킬 수 있는가? 변승우목사는 과연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보다 더 철저하게 율법의 의를 행할 수 있는지 양심껏 이야기하여 보라.
예수님이 그들보다 더 나은 의를 말씀하신 이유는, 율법의 의로는 천국에 갈 수 있는 자가 하나도 없다는 반어법적인 강조적 표현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만 한다.
다시 말하여 예수님의 말씀하시는 가장 중요한 요지는 율법의 의로는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것이며,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의보다 나은 의는 실제로 없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을 거꾸로 해석하여 변승우목사는 더 나은 “율법의 의”를 행하여야만 천국에 들어간다고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변승우목사의 주장대로 하면 단 한명도 천국에 갈 수가 없다는 뜻이 되며, 그는 성경과 전혀 다른 복음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과연 누가 바리새인이며 누가 성경을 엉터리로 가르치는가?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낫지 않으면.....”이란 구절의 뜻이 율법을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잘 지켜야 한다고 해석을 하는 변승우목사는 솔직히 목사의 자격이 없으며, 지금이라도 무릎을 꿇고 그가 미혹한 큰믿음교회 교인들과 한국교회에 공개적으로 사죄를 해야만 한다. 다시 본문을 보자.
마 5: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철저하게 율법을 지키는 엄한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나은 율법의 의를 행하는 자는 아무도 없다. 다시 말하면 그러한 의로는 아무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강조적인 표현을 사용하시고 있다. “결단코”(우크)라는 헬라어는 절대부정을 뜻하는 부정불변사이다.
예수님은 율법의 의로는 아무도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 말씀하는데, 변승우목사는 더 철저하게 행하고 지켜야만 천국에 들어간다고 엉터리 해석을 하고 있다.
변승우목사는 바리새인보다 더욱 엄하고 철저한 바리새인이 되라고 가르치고 있지 않는가?
5장20절의 본문을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하여 앞의 구절을 보자
마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완전케하다”는 “가득차게 하다, 완성하다. 실재가 되게하다. 성취하다”는 의미이다. 본문을 해석하려면, 구약의 말씀을 성취하신 예수님을 이해하여야만 한다.
예수님은 율법을 하나도 빼지말고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 결코 아니며, “플레로오”(to fulfill)라는 단어는 “완전히 지키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다시 말하여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율법의 예표”와 “실재가 되시는 예수의 성취”를 우리는 이해하여야만 한다.
바로 앞의 본문에서 예수님이 곧 율법의 완성이며 실재가 되신다는 뜻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보다 더 율법을 잘 지켜야만 천국에 간다고 해석할 수 없음도 깨달아야만 한다.
우리는 본문에서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서기관이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고 말씀하신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여야 한다. 예수님 자신도 그들이 철저하게 율법을 행하는 자들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계셨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하신 것이다. 우리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보다 나을 수 있을까? 만약 바리새인과 서기관이 그 의로 천국에 갈 수 없다면, 율법의 의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천국에 갈 수 있는 “의”란 무엇일까? 그것을 더욱 철저한 율법의 행함이라고 해석한다면 그는 한심한 소경이다.
우리는 바로 예수가 그림자인 율법을 완성시킨 실재이며 성취라는 것을 깨달아야만 한다. 예수님이 “지극히 작은 계명도 버리지 말라”는 것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보다 더 많은 계명을 지키라는 뜻이 아니다. 예수님은 그림자이며 예표가 되는 “의”가 아니라, 더 포괄적이고 내면적인 “의”를 요구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천국에 갈 수 있는 의는 율법의 의가 아니라는 멧세지를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새로운 계명을 주셨는데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다. 그러한 내면적이고 포괄적인 “의”가 곧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마22:40)이며 가장 큰 첫째 계명(마22:38)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더 좋은 언약의 중보가 되신다.(히8:6)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새로운 언약이시며 의가 되신다는 것을 우리는 잊으면 안된다.
갈 5:4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더욱 철저한 율법의 의를 주장하는 변승우목사는 예수의 십자가를 부정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롬 10: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