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비
<조현자>
내 그리움
빠알간 석류처럼
파~!
터지는 날
그대 그리움
아찔한 밤송이 처럼
아~!
버는날
내 안에 젖지 못할
그대 안에 젖지 못할
가을 햇살
눈물 뿌리누나.
*******
그녀는 키가 크다
180 의 큰 키와 팔 다리는 너무 가늘어 금방이라도 부러질듯 연약하다
실명한 왼쪽 눈 . 오른쪽 눈 마져 안경으로도 시력이 0.5를 넘지 못하는, 고통스런 삶속에서도 진주처럼 맑은, 영혼이 아름다운 시인이다
'말판증후군' 이라는 이름도 생소한 병으로 몸의 기관들이 이미 제 기능을 잃어 심장 수술과 실명이라는 아픔속에서 매일 항응고제를 복용해야 한다
항응고제를 복용하지 않으면 몸속의 혈액이 흐르기를 거부하여 점점 굳어지고 과다 복용하면 혈액이 너무 묽어져 몸속 일부에 출혈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녀의 의연한 태도로 인해 외모만 아니라면 불치병을 앓는 여인이라고 짐작조차 할수 없을 만큼 그녀에게는 청량한 바람 소리가 난다
'키다리 조현자 시인'
그녀를 알게된 것은 인터넷 카페에서 만난 좋은 님 을 통해서였다
처음 그녀를 만났을때 '키가 크구나'라고 생각했을뿐 그녀의 안경 너머 보이는 실명한 눈이 아니라면 전혀 장애인이라 생각을 할수 없을 만큼 그녀는 밝고 의젓했고 건강했다
자리에서 일어났을때 생각보다 큰 키와 반 소매위로 드러나는 서너살쯤의 계집 아이처럼 유난히 가느다란 팔과 다리,그리고 긴 손가락에 잠시 내 마음이 주춤거렸다
'말판 증후군' 이란 병의 증상이라는 것을 그녀의 설명을 통해 알게 되었을때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저토록 맑고 고운 젊은 여인에게 어찌하여 불치병을 주셨는지 안타까웠다
그녀는 맑고 순수하고 의젓하다
현대 의학으로도 고칠수 없는, 사악한 악마처럼 몸속 깊이 뿌리를 내린 병마와 싸우다 보면 삶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을텐데 그녀의 맑고 순한 표정의 얼굴 어느곳에서도 병마와 싸워 지친 흔적을 찾아 볼수가 없었다
7년이라는 긴 시간을 지독한 절망과 싸우던중 심장 수술을 받으며 차라리 깨어나지 않기를 바랬던 그녀였기에 지금 이 시간이 천금을 주어도 사지 못할 소중하고 아름다운 시간들이리라
언제 또 다시 재 수술을 해야 할지 예측할수 없는 미래에 어찌 불안하지 않겠느냐만 그녀는 밝게 웃고 있었다
그녀는 멋쟁이다
어깨에 닿는 긴 생머리는 흐트러짐 없이 언제나 곱고 가지런히 빗겨져 있고 반듯하게 다려진 브라우스와 바지는 그녀의 갈끔한 성격을 짐작할수 있었다
그녀는 차분한 목소리로 소곤 거리듯 이야기하며 가끔씩 높지 않은 소리로 유쾌하게 웃는다
그녀가 웃으면 나도 웃고 세상이 함께 웃는다
그녀의 시 속에서 만나는 언어들은 말갛게 헹궈진 빨래들이 가을 햇살 아래 가지런히 널려진 것처럼 정갈함이 느껴진다
바람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따라 나서
따뜻한 봄날엔 연둣빛 새싹 되고
무더운 여름날엔 뜨겁게 달아 올랐다가
쓸쓸한 가을엔 고독한 시간이 되는 거야
겨울엔 뉘 집 창가의 성에가 되기도,
벌거벗은 한 그루 나무가 되기도 하지
<그녀의 시 -길 위에 부는 바람- 전문에서 옮김>
나는 그녀의 시집을 읽으면서 감동했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절망과 고통속에서 한올 한올 정성스럽게 써 내려간 시 속엔 어떤 절망도 어두움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바람이 되어 그리운 사람에게 닿고 싶다고 염원할 뿐이었다
오늘이 끝이어라
내일은 없으리라
빈 술잔에 넘쳐 흐르는 고통
허우적거리는 외다리 인생
손 내밀어 보지만 잡히는 건
울며 울며 지쳐버린 시간들
-중략-
내 마음 깊은 곳에
예쁜 꽃씨 하나
싹을 틔우네.
<-겨울 햇살 -중에서>
고통속에서 울며 울며 지쳐버린 시간들속에도 그녀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가슴속에 희망의 꽃씨를 심고 겨울 햇살 뒤로 찾아 올 봄을 기다렸던 것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시린 물 뚝뚝 듣는 파란 하늘가
한점 구름이고 싶다
<-하늘을 보다 -중에서>
누군가에게 한점 구름이고 싶다는...
앞으로도 많은 절망과 싸워야 하는 그녀가 조금은 덜 힘들었으면 좋겠다
잔잔한 호수 같은 그녀가 깔깔 거리며 여름 햇살과 동무 했으면 좋겠다
가끔씩은 소주잔을 들이키며 죽은 심장을 깨워 가슴에 불을 질렀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 딸과 이모, 조카 부르면서 오랫동안 함께 했으면 좋겠다
그리움 머금은 푸른 여백
흔들리는 초록잎 사이로
맑은 바람처럼 스치는...
절망을 딛고 일어나
아름다운 언어로 삶을 가꾸는 그녀가
그녀의 시처럼
뜨겁게
뜨겁게
활화산처럼 솟구쳐 올라
슬픔을 살라먹고
절망을 태워
마르지 않는 희망의 강줄기 하나
그녀 가슴에 흐르다 보면
어느새 세월은 저 만큼 뒤로 물러서 구경꾼이 되어 있겠지...
햇살 따사로운 3월의 봄날에
그녀의 맑고 투명한 영혼을 만나던 날
나는 행복 하였네...
***
지난 봄
그녀에게 반가운 소식이 전해왔다
결혼을 한다고 했다
어찌나 반갑고 고마운지 당장 달려가서 마음껏 축하해주고 싶었지만
현실이 그리 녹녹치 않으니 그저 말로만 축하하려니
참으로 미안했다
올 가을에는 그녀가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이라도 전해 들었으면...
***
말판증후군 (Marfan syndrome)
말판증후군은 1896년 의사 장 말팡에 의해 처음 보고된 질환으로 거미의 다리모양으로 긴 손가락과 발가락 관절의 과신전, 큰 키, 눈의 수정체의 이탈, 심장의 대동맥의 확장을 주요 특징으로 하는 결체 조직의 질환이다 .
이후, 이러한 증후군을 그의 이름을 따서 마르판증후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
흔한 임상증상으로는 골격계 이상으로 몸통보다 하지가 긴 큰 키, 긴 손가락과 발가락, 편평족, 척추의 측만, 흉곽모양의 변화(새가슴, 또는 오목가슴), 좁은 얼굴 등을 들 수 있다
외형상 가장 눈에 띄는 신체적인 특징은 세장형의 체형과 몸에 비해 사지가 비정상적으로 과성장되어 나타나는 모습이다 .
환자의 약 3/4에서 하절이 상절보다 길며, 양 팔을 좌우로 펼친 길이가 신장보다 길게 된다.
또한 약 80%의 환자에서 거미같이 가늘고 긴 손가락 및 발가락 모양이 관찰된다
근육의 발달이 저하되어 있고 피하지방이 매우 적은 것도 외형상 볼 수 있는 특징이다
첫댓글 그녀가 사랑 받을 수 있고 사랑 할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네요 ................
좋은 분들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분들을 많이 알고 잇네요...저도 송화님을 알게 되어서 기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