集姓村
位置: 全南 寶城郡 福內面 詩川里 시래마을
入鄕祖: 朝鮮 제15대 광해조 10年 參判公 諱:珹(성)
現在戶數: 3戶
水沒前世代數: 70餘戶
主要施設物: 詩川部落遺墟碑, 德山精舍
마을전경(水沒 前, 1980년대 사진-이하 사진은 첨부파일 참조)
시천부락 유허비: 수몰 당시 부락민이 세운 비석 낙천처사유적비:덕산정사 앞
德山精舍(덕산정사) 漢學者 松潭 栢淳 先生(1930.9.9~2012.1.15)
集姓村略記
시래 마을은 朝鮮 제15代 광해조 10년에 星州李氏의 先祖 參判公 諱:珹(성, 12世)이 서울에서 南下하여 이 마을 內詩川에 터를 잡아 살았고, 그 婿郞이었던 廣州李氏의 先祖 進士 李公敏臣이 함께 살았으며 그 뒤로 이 兩李의 子孫이 거의 全村을 占居하였고 그 외에 약간의 他姓이 參居하였다. 德山精舍(덕산정사)는 樂川 敎川(21世)선생과 그의 孫子 松潭 栢淳(23世)선생이 후학들을 교육하던 곳으로 송담선생 생존 시 전국의 많은 한학자들이 모여 수학하였다.
이 마을은 山水가 아름답고 人心이 敦厚하여 禮義바르기로 보성군 내에서도 손꼽히는 名村이었으며 人物이 續出하여 最近까지도 大學者가 연이어 남으로써 郡內에서는 물론이요 먼 외지까지도 名聲이 난 마을이다.
시래 마을은 外詩川(외시천- 밭시래), 內詩川(내시천- 안시래), 多樂洞(다락동- 다락골), 芳築洞(방축동- 방죽골)의 4개 자연부락으로 形成되어, 북으로는 天鳳山의 落脈이 십여리를 뻗어왔고 남으로는 정자천이 백여리를 흘러와 굽이쳐 감도는 아늑한 70여호의 마을이었는데, 1983년 부터 주암댐을 건설하는 바람에 全村이 거의 물에 잠기게 되어 부득이 조상 때 부터 世居해 온 정든 고향을 떠나 서울, 광주 등 전국으로 이주를 하여 현재는 수몰지역 경계선 위쪽으로 3호가 거주하고 있는 실정이며 실향민들이 마을유허비를 세웠다.(자료제공 상덕 24세, 교사)
집성촌2.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