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郡界 산행기 스크랩 경남도계 04 (도솔암~실상사)
조은산 추천 1 조회 149 15.05.06 12:2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경남도계(慶南道界) 4구간

 

2015. 4. 30(목)

산길 : 도솔암~실상사

사람 : 객꾼 학봉 조은산

거리 : 14.5 km / 07:40

 

 

 

영원사입구~1.6~도솔암~1.0~도계능선~2.1~영원재~2.0~빗기재~1.1~상무주암~0.9~문수암~0.8~삼불암~3.0~약수암~2.0~실상사

Cartographic Length = 14.5km Total Time: 07:40

 

 

경남도계04(도솔암~실상사).gpx

 

 

 

 

경남도계 4구간은 삼정산 능선에 있는 7암자코스로 간다. 지난 3구간을 토끼봉에서 의신마을로 하산 했으므로 토끼봉부터 4구간을 시작해야 맞는거지만, 아직 지리산 산방기간이 끝나지 않았고 그렇다고 지난번 처럼 몰래 숨어드는 일도 성가신 일이라 적당히 건너 뛰면서 소위 지리산 명품코스라 하는 '칠암자 길'을 택했다.

 

토끼봉부터 명선봉, 연하천산장, 삼각고지에서 좌틀해서 별바위등을 지나 도솔암 갈림길까지 5.6km는 건너뛰게 되는데 이 부분은 숙제로 남겨놓든지 하기싫음 말든지, 이미 서너번은 댕긴 길이라 세삼스러울것도 아쉬울것도 없다. 가능하다면 당재에서 출발하여 산중에서 하룻밤 자고 실상사까지 연속해서 종주를 하면 칼클맞게 지리산을 넘게 되는데 시간도 맞추기 힘들지만 체력도 예전같지 않아 박짐을 지고 지리산을 넘어가는건 언감생심 옛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칠암자길은 2007년 이맘 때, 객꾼 삼규와 셋이서 갔던 길인데 그 때 곰을 만나 죽기살기로 달라뺀 기억만 남아있다. 점잖은 곰이었든지 아니면 국공파 이야기대로 훈련을 받은 곰인지 사람에게 달려들지 않은게 다행이었는가 모르겠다. 그런 추억으로 혹시나 한번 더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과 또 만나면 어쩌나 하는 우려가 반반인데, 아무래도 우려보다는 기대쪽이 더 컸을 것이라.

 

사람이 묘한것이 죽을 줄 알면서도 감행을 하고, 설마 나는 괜찮겠지 하는 자만감. 또 자만인줄 알면서도 달려드는 속성이 있다. 결국은 평범하고 안이한 일상 보다는 짜릿한 스릴이나 감동을 더 우선 순위로 여기는 모양이라. 그렇다고 죽기 아니면 살기라는 완전한 무대뽀는 아니다. 도솔암 오르면서도 서로에게 묻기를, "아직 등산객이 지리산 곰한테 당했다는 소리는 몬 들었재?" 설마, 그런 첫 사례가 될는지는 모르겠다만...

 

 

지리산 칠암자 길은,

연하천 뒤 삼각고지에서 북쪽으로 갈라진 능선, 삼정산이 있어 삼정능선이라고도 하고 중북부능선이라고도 하더라만 어쨌든 경상남도와 전라북도를 가르는 도계능선이다. 이 능선상에 자리잡은 일곱 암자를 순례하는 코스인데, 영원사에서 시작을 하여 도솔암 상무주암 문수암 삼불사 약수암을 거쳐 실상사까지 일곱 사찰 또는 암자를 말한다.

 

출발점인 영원사가 900m 고지이고, 도솔암부터 삼불사까지는 천 고지가 넘는 능선 바로 아래에 있다. 약수암은 산허리께에 있어 570 정도이고, 마지막 실상사는 도로변이라 해발고도는 거의 없지만 GPS에는 320m가 찍힌다. 영원사까지 차가 들어가므로 출발은 어렵지 않고 도솔암과 그 뒷편 능선상에 오르기까지 다소 힘이 들지만 능선길은 순탄하다. 상무주암, 문수암으로 이어지는 길을 가다보면 능선상에 있는 삼정산(1,156.2m)은 지나치고 마는데, 지형도상의 표기지점과 실제 삼정산으로 말하는 봉우리가 다르다.

 

일전에 한번 둘렀던 길이기도 하고, 도솔암 들머리가 영원사 올라가는 도중에 있어 순차적으로 한다면 영원사 들렀다가 올라왔던 길을 도로 내려와야 하는지라, 택시를 탄 채 영원사를 찍고 내려와도 되지만, 오늘따라 날씨도 답답하고 애써 올라간다고 반가이 맞아줄 사람이나 중이 있는 것도 아닌 터라 영원사는 생략하고 도솔암부터 찾기로 한다.

 

 

 

 

 

 

 

 

 

08:30 삼정리 도솔암 들머리

09:12 도솔암

10:12 도계능선

11:08 영원재

11:17 ?1,169.4m

11:48 △1,290.5m

12:15 빗기재

12:45 상무주암

13:35 문수암

14:05 삼불암

14:37 도계능선 합류

15:45 약수암

16:15 실상사

 

 

 

 

05시 출발 하기로 했는데 해가 길어선지 날이 일찍 밝는다. 좀 일찍 출발했더니 학봉이 감을 못 잡았는지 내서IC에서 10분 기다렸다. 진주 중앙시장으로 직행해서 4,000원짜리 시락국밥으로 아침을 먹었다. 24시간  영업을 하는 시장 안쪽에 있는 제일식당. 그리 크진 않지만 빈 자리가 없이 빽빽하다. 식당 문 앞에 술에 취한 인사가 고성을 질러댄다. 이런 놈은 그냥 못 본체 하는게 상수인데 이야기를 받아주는 사람이 있으니 더 기고만장하는기라.

 

 

남의 식당앞에서 아침부터 술주정이다.

 

 

진주 중앙시장 제일식당

전에도 여러번 들렀던 제일식당이다. 여기서 아침을 먹고 시장 더 안쪽에 있는 떡집에서 김밥으로 점심을 챙겼는데, 오늘따라 김밥이 떨어져 떡으로 대체했다. 그집 김밥도 맛이 꽤 괜찮았는데. 길바닥 양쪽으로 펼친 난전에는 봄나물이 대세다.

 

 

 

진주시 대안동 새벽시장

 

 

서진주IC로 차를 올리고, 생초에서 빠져나가고, 마천면을 지나 실상사에 닿았다. 이른 시각이라 매표소는 아직 문을 안열었네. 게으른 직원 덕분에  4,500원 건졌고, 그것보다 차를 실상사 대문 앞에 까지 넣을 수 있었다. 해우소를 본 김에 근심을 내려놓고 이빨까지 닦았다. 친환경 해우소는 발 밑이 훤히 뚫려있어 고소증을 느낄만 하다. 자세가 푸근해야 근심이 술술 풀리는데 이리 불안해서야 나오던 근심도 도로 들어가겠다.

 

 

낮에는 여기까지 차를 못 넣는다.

 

 

실상사()

신라 구산선문 중 처음으로 문을 연 사찰이다. 암자인 약수암과 백장암의 문화재를 포함하여 국보 1점과 보물 11점 등 넓은 경내가 비좁으리만치 단일 사찰로는 가장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신라 흥덕왕 3년(828)에 홍척 증각대사( )가 창건하였는데, 홍척은 도의()와 함께 당나라에 유학한 뒤 남원으로 들어와 이 절을 세우고 실상산문()을 개산()한 분이다. 이후 2대조 수철(, 817~893)을 거쳐 3대조 편운()에 이르러 절이 중창되었으며 선풍도 떨쳤다.

정유재란 때  폐사되다시피 하여 근 100년을 지내오다 숙종 16년 크게 중창되었다. 이후 순조 21년(1821)에도 중건되었으나 고종 20년(1883) 함양 출신 양재묵, 민동혁 등이 불을 질러 아까운 사찰 건물들이 불타버리는 수난을 겪은 뒤 이듬해에 여러 승려들의 힘으로 10여 채의 건물이 중건되어 오늘에 이른다.

천왕봉을 바라보며 지리산 여러 봉우리를 꽃잎으로 삼은 꽃밥에 해당하는 자리에 앉은 실상사는 여느 지리산 자락의 산사와 달리 평지에 들어서 있어 분위기가 색다르다. 사역을 따라 담장을 낮게 두르고 담 안쪽으로 키 큰 나무들을 둘러 세운 풍광이 푸근하고 고즈넉하다.

 

 

 

해우소 /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발 아래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실상사 대문 앞에 차를 대놓고 마천택시를 불렀다. 기사님 더러 실상사 안쪽에 까지 들어오라 부탁을 했는데도 객꾼과 학봉은 큰 길가로 걸어 나간다. 짧지 않은 길인데 저 인간들이 왜 저러나 싶었더만, 수퍼에서 막걸리를 너댓통이나 배낭에 넣고 있다. 그러면 그렇지, 지난번에 선언한 '무알콜 산행'은 딱 한 판만에 공염불이 되는고나.

 

마천면에 유일한 택시다. 여러번 이용한 적이 있는 RV형 4륜구동이라 지리산 웬만한 언덕이라도 거침없이 올라간다. 그래서 그런지 돈 만원 하면 될줄 알았는데 이만 삼천원을 달란다. 지정이나 비지정이나 코스별 들머리를 훤히 꿰차고 있고 국공파의 동태까지 알려준다.

 

 

 

도솔암  들머리

 

 

도솔암 들머리 (820m)

백무동 갈림길인 송알삼거리를 지나 삼정리로 들어가면 명색이 도로번호까지 1023번을 달고있는 지방도로지만, 임도나 다름없는 울퉁불퉁한 길이 영원사까지 들어간다. 벽소령 갈림길을 지나고도 한참을 더 올라 영원사 500미터 못 미친 지점. 작은 다리를 건너자 말자 왼쪽 산죽 밭에 [출입금지] 팻말이 있다. 택시를 보내고, 젖은 산죽숲에 대비해 아랫도리를 비옷으로 갈아 입는다. 비는 내리지 않지만 젖은 풀숲에 들어가면 금새 젖을게 뻔하기 때문이다.

 

 

 

금낭화

 

 

 

 

 

 

[출입금지]가 곧 [여기가 길이요] 이기 때문에 곧바로 알아보고 간판 뒤로 올라간다. 방수바지 입은 둘이 앞세우고 몇걸음 올라가다보니 도솔암 트랙과  맞질 않는다. 10여m 올라가다가 불러 세웠다. "여기가 아닌가벼~,  빠꾸다. "

출입금지 간판 뒤로 나있는 길은 아마도 도솔암을 거치지 않고 능선으로 바로 붙는 길이지 싶다.

 

도솔암 들머리는 [출입금지] 간판 뒷쪽이 아니고, 왼쪽 개울가로 내려가면 개울 건너편에 넓은 길이 나온다. 도솔암까지 길이 넓게 확보되어 있어 방수바지 입을 일도 없었던 것이다.

 

 

도솔암 가는 길

 

 

 

도솔암

 

도솔암(1,148m)

싸립문에 [결제 중 입니다. 출입을 금지합니다] 팻말이 걸려있다.

결제란 음력 4.15~7.15, 10.15~1.15 년중 두 번의 공부(참선)하는 기간을 말하며 이 기간중에는 바깥 출입을 금하면서 공부에 정진한다.  시작하는 날 4.15과 10.15은 입제일,  기간의 마지막 15일은 해제일이라 한다. 나머지 중간의 두 3개월은 자유롭게 공부하는 기간으로 산철이라 한다.

 

 

 

 

결제중이라 그런지, 잠이 든건지 모르겠다만 음산한 분위기의 절간은 적막강산이다. 혹시나 방해가 될까 숨소리도 죽여가며 살짝 둘러보고 내려왔다. 싸립문 바깥까지 니와서 비로소 숨 크게 들이쉬고, 좀 앉았다 갈까 했더니 둘이는  막걸리를 꺼낸다.

 

 

아침부터 수작이다

 

 

 

 

 

 

 

현호색

 

 

 

도계 능선

 

 

도계능선(1,383m)

영원사 입구 들머리에서 2.6km에 1시간 40분이 걸려 경남도계 능선에 '어프로치' 했다. 남쪽 별바위등(×1,399 .5m)에서 600m 북쪽이 되는데, 별바우고 달바우고 온통 구름속이라 눈에 뵈는게 없다. 그나마 빗방울 떨어지지 않는게 다행이다. 오늘 구간 최고봉으로 이제 내려갈 일만 남은건가.

 

 

 

별바위등(?1,399.5m)

 

 

 

 

바로 여기여~,

 

 

북으로 내려가면서 이제부터 온 정신은 곰에 집중된다. 전에 그놈을 만났던데가 여긴가 저긴가. 그놈이 이직 살아 있다면 여덟살이나 더 묵었을낀데 그동안 식구를 불렸을까. 숲속에 씨커먼 뭐가 보이기만 하면 촉이 빠짝 선다.

 

 

 

그 때 그 자리. 저 안쪽 나무 뒤에 곰이 있었다. (2007.4.28)

 

그 곰도 우리를 발견하고는 우리쪽으로 다가오더라. 볼것도 없이 걸음아 나살려라 토낄밖에...

객꾸이와 삼규는 무거운 카메라 목에 건 채 뛰다보니 나보다는 한참 처질밖에,

한 삼십여분 후 달리다 겨우 정신을 차리니 "행님 인간성 그런줄 몰랐심더~"

그노무 곰쌔끼로,  인간 조은산의 성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말았으니...

 

 

진달래가 아직 성성하다

 

 

 

 

로프 구간

 

 

로프가 걸린 비탈을 조심스레 내려간다. 바위고 흙이고 빗물에 젖어 아주 미끄럽다. 숙달된 조교라면서 시범을 보이며 먼저 하강하던 객꾼이 쭈울떡 미끄러지더니 손가락 겁떼기가 까졌다.

 

로프를 잡고 내려가고 10분 더 내려가니 우측 영원사로 내려가는 길이 보인다. 여기가 영원재인 모양이라. 산죽 사이로 왼쪽 와운마을쪽으로 내려가는 길도 희미하게 보인다. 쉬어가려 했으나 편하게 앉을 자리가 못되어 그대로 지나간다.

 

보도블럭이 깔린 폐 헬기장터를 지나 올라선 1169.4봉에 앉을만한 자리가 있어 배낭을 내리니 학봉이 방울 토마토를 꺼낸다.  

 

 

매화말발도리

 

 

 

?1,169.4m

 

 

아까부터 객꾼 전화가 계속 울려댔는데, 전화를 받은 객꾼의 표정이 심상찮다. 저그회사 보스의 전화로, 조용히 할 얘기가 있으니 저녁에 좀 보자는 것이었는데 우리와 같이 있다니 함께 오라는 전갈이다. 저그 보스와는 북알프스에 함께 갔다온지라 나와 모르는 사이도 아니다.

 

학봉과 둘이 통빡을 굴리기를,

천날만날 싸돌아 댕기더니 이제 올것이 온 모양이다. 통화내용에 인건비  어쩌고 했는데 아무래도 이제 방을 빼라는 통보 일끼라. 서이 같이 오라는걸 보면,  너그 서이서 산이나 열심히 댕기라는 그런게 아닐까... 한마디로 "객꾸이 인자 짤?다" 로 우리끼리 결론을 냈다. "그래도 고향에 땅이 있으니 고사리만 심어도 밥은 묵는다~" 노후대책까지 수립해 준다.

 

 

×1,290.5m

 

×1,290.5m

지형도에는 삼각점 표기가 없는데 현장에는 운봉306번 삼각점이 있다. 지형도가 잘못된건가 지리원에 알아봐도 검색이 되지 않는걸 보니 용도폐기된 삼각점이다. 또 지형도에는 '영원령’ 표기가 있는데, 고개도 아닌 봉우리에 령이라니, 아까 지나온 헬기장터 직전의 고개에 표기되어야할 지명이  봉우리에 잘못 표기된 것으로 보인다. 조망이 훤할 봉우리다만 사방은 구름바다다. 이 봉우리를 지나고는 길이 거침없이 훤하게 넓어졌다. 마치 우리가 오는걸 환영이라도 하는 듯 일부러 벌초를 한 흔적이 뚜렷하다.

 

 

말끔히 정비된 산길

 

 

 

 

삼정리 양정마을

 

 

 

 

 

 

 

 

 

빗기재

 

 

빗기재 (1,110m)

영원사에서 보면 운봉306번 삼각점이 있는 뒷산(1,290.5m) 능선으로 오르는 최단코스가 되겠다. 지형도의 '영원령' 표기가 영원사에서 볼 때 중간에 있는 가장 높은 봉우리에 표기된게 영 생뚱맞아 이 봉우리 전후의 고개에 영원령 이름을 붙이는게 맞겠는데 영원사만 염두에 두면 이 고개가 더 영원령 이름에 걸맞아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능선 넘어 전라도쪽을 보면 산내에서 달궁으로 들어가는 길목인 내령리에 빗기재 마을이나 빗기재폭포 지명이 있다.

 

다른데서도 흔히 고개이름과 마을이름을 같이 쓰는곳을 종종 봐왔듯이, 여기도 아랫쪽 마을이름을 보건데 고개 이름 역시 빗기재가 더 타당해 보인다. 영원령(재) 이름은 삼각점봉 남쪽에 영원사로 내려가는 고개이고, 여기는 빗기재가 맞겠다. 그리고 보면 삼각점이 있는 1,290.5봉이 이름을 갖지 못한게 더 아쉽다.

 

 

 

 

 

 

우리 나온쪽으로 로프가 쳐져있고 [출입금지] 팻말이 걸렸다. 이미 빠져 나온 우리에게 [출입금지]는 관심사도 아니고,  왼쪽 나무에는 [상무주암] 팻말이 달려있는데, 쎄짧은 학봉이 그걸 제대로 못읽고  상주무, 상무암...한다

 

 

 

 

 

 

5분쯤 더 가니 얼레지가 하나 둘 보이더니 아예 밭을 이루고 있다.  지리30-02 구조목이 있고 (영원사1.0km, 약수암4.7km) 션찮은 똑딱이로 열심히 얼레지에 촛점을 맞춰대며 봉우리를 넘어가니 대가리가 뭉퉁하고 아랫부분이 잘록한 역삼각형의 선바위가 있는데 바위 윗부분에 매화말발도리가 한 웅큼 자리를 잡았다

 

 

 

 

 

 

 

 

하나 보다는 둘 그림이 낫다.

얼레지 꽃말은 생긴 그대로 '바람난 처자'란다.

그 치마 속을 조금이라도 더 들여다 볼끼라고, 배를 깔고 각을 낮춰보지만. 

 

 

 

삼정산 능선/ 저 우측 아래 상무주암이 있다.

 

 

 

선바위

 

 

 

 

 

 

상무주 갈림길

능선길은 정면으로 올라가고, 칠암자길은 우측 사면으로 들어간다. 삼정산 정상을 찍고 칠암자길을 가려면 직진해 올라갔다가 여기로 도로 내려와야 된다.

 

 

 

능선길을 피해 옆길로 스며들면,

 

 

 

소나무 널찔까봐~?

 

 

 

 

 

 

 

 

상무주암

 

 

 

 

 

 

상무주암(1,161m)

툇마루 한 가운데 노스님이 앉아 계시고 마당에는 보살과 처사 몇분 분주한 모습이 밥상을 채리는 모양이다. 문득 나타난 길손들이 아주 못마땅한 모양이라 스님은 쳐다보지도 않고 분주한 처사는 “그쪽으로 가시면 안됩니다, 사진을 찍으면 안됩니다” 얼렁거리지 말고 퍼뜩 사라지라는 투다.

 

지형도에는 삼불암으로 표기되었다만, 上無住. 위에 머무름이 없다...?

上無住 편액 아래 좌우로 기둥마다 걸린 문구 -주련(柱聯)이라 한다- 중에 눈에 걸리는 글이 있다. 다른 줄은 대충 겐또를 때리기도 하고 혹은 너무 어려운 글이라 ‘통과’하기도 하는데 이 글은 너무 쉬우면서도 언뜻 해석이 안되는 글이다. ‘前三三與後三三’ 與(줄 여)자를 가운데 두고 앞삼삼, 뒤삼삼이라니? 우삼삼 좌삼삼은 어디서 들어본거 같다마는 앞뒤로 삼삼은 생전 처음이다. 서이서 별 요망한 소리들을 해대다가 드디어는 ‘슬로우 슬로우 퀵퀵’까지 나온다.

 

절집 앞에서 오도방정을 떨어도 너무한게 아닌가 싶지마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동네 인근도 아니고 천고지가 넘는 산꼭대기에 사람이 와야 얼마나 온다고, 그것도 첫 손님 일텐데 아는척도 안하냐 말이지. 상무주에 계시는 저 스님은 저 아래 큰 절에서 주지를 하시다가 물러나 여기로 오셨다는데 너무 큰 스님이라 우리같은 미물들은 사람으로 보이질 않는건지, 그 주위를 따르는 신도들 역시 큰 스님의 지침대로 미물들 ?아내기 바빴으니, 우린들 조은소리 하겠나.

 

누가 재워 달래나, 밥을 달래나. 머물러봐야 수삼분이다. 그걸 못 참고 사래를 치는거 보니 道로 말하자면 나만큼도 못되는 신도들이다. 혹은 학봉이 짐작대로, 저그끼리 오붓하게 식사하면서 반주 한잔 할라하다가 우리한테 들켜 얼른 ?아 낸건지도 모르겠다.

 

 

 

다랭이 텃밭

 

 

 

 

 

 

 

 

금낭화

 

 

"전삼삼후삼삼"은 중국 당나라에서 전해 온 불교 설화에 나온다. 문수보살과 무착선사의 대화중에서 문수보살이 던진 화두(話頭)인데, 해설해 놓은 글을 읽어봐도 그 깊은 뜻을 헤아리기가 어렵다. 그걸 내가 한방에 알아낼 정도면 상무주 마루에 앉아있지 이렇게 떠돌아 다니것나?

 

앞으로 삼삼, 뒤로 삼삼 하면 원래의 그 자리 아닌가... 하나 마나한 소린가?

그것보다 배꼽시계 운지가 오래되었다. 민생고부터 해결을 하자. 학봉이가 꺼내 놓는 떡 그릇이 셋이다. 흠, 떡삼삼인가...?

(12:50~13:15 점심식사)

 

 

여기도 좋고,

 

 

 

 

셋이 앉기는 여기가 더 좋네

 

 

 

 

 

점심

 

배가 고팠든지 술이 고팠든지, 장유유서도 없이 헐떡거리며 집어먹더니 트름을 하고서야 고시레를 안했다나. 서로 니미락 내미락, 하나 남은 떡조각을 고시레 한다. 이것들이 산신령 알기를 흑싸리 쭉디기로 아나...

 

 

 

 

 

 

 

 

지리산자락은 어디든 물이 많아 좋다

 

 

 

문수암

 

 

 

 

창암산

 

 

 

 

 

 

문수암 (1,077m)

혹시나 또 퇴짜 맞을까봐 뒷꿈치 바짝 들고 살금살금 올라가니 문 마다 자물통이 걸려있는 빈집이다. 지난번에 왔을 때 조금은 날라리끼가 보이는 스님 한분이 계셨고, 팔려고 내놨다는 소리를 들은거 같다. 아직 가격 흥정이 안된건지 어쩐지 모르겠다만, 깨끗한 마당이나 앙증맞게 정리된 텃밭을 보니 빈집은 아니고 잠시 출타중인 모양이다. 입구에 깊게 뚫린 굴은 지도에 '천인굴'로 표기되어 있다.

 

 

 

 

천인굴

 

 

 

 

 

 

 

 

 

현호색

 

 

 

당귀

 

 

지리산 천연당귀인지라 새잎 한 조각만 씹어도 입안 콧구멍까지 싸아하다. 참당귀가 맞다는 객꾸이 말을 믿어도 되나? 삼규한테 무심결에 쇠뇌된게 있어 -상무주암 주변에 개두릅이 많다는- 씹으면서도 입이 돌아갈까 마비가 될까 불안, 불안하다.

 

 

 

 

 

 

 

 

 

 

삼불암 넘어가는 길목에 비구니 스님이 고사리를 뜯고 있다. 앞서가던 학봉이 "스님, 도, 도, 도라지 뜯씸미껴?"

사람이 극도로 긴장하거나 도를 넘은 흥분에 이를 때, 말을 더듬거나 헛말이 튀어 나오는 법인데, 평소 학봉 답지 않은 모습이 나온다. 더듬 더듬에 고사리를 보고 도라지라니. 이 친구 이쁜 스님을 보더니 각중에 필이 꼽혔나~!

고사리를 충분히 뜯었음인지. 손님을 맞을 요량인지 스님도 일어나 함께 삼불암으로 간다.  

 

 

삼불암

 

 

삼불암 (995m)

저 안쪽으로 넘어가는 길이 있나 둘러보고 쉬어가자 싶어 자리잡고 앉으니 스님이 차를 내온다. 매실차다. 스님은 옆에서 당귀며 나물을 물에 헹구면서 이것저것 물어 온다. 저쪽 절에 스님 잘 계시더냐고... 문수암 스님과 어떤 관계인지 물어볼 말은 아니다만 궁금증이 살짝 돈다.

 

왕산 필봉이 정면으로 보이고 그 우측으로 능선상에 삐죽 튀어나온 함양 독바위가 보인다. 차 값은 해야 안되것나...  불전에 삼배 올리고 거금 1만냥 보시했다. 내 나름의 적당한 보시값(찻값)은  2천원인데, 지갑에 잔돈이 없다. 카드결제가 되는 집도 아니고, 거스럼을 달라 하겠나. 일전에 지하철에서도 아주 딱해 보이는 애기를 업은 아줌마에게 무심코 지갑을 꺼냈다가 잔돈이 없어 거금 1만냥을 고스란히 갖다 바친 적도 있는데, 우째 결정적인 순간마다 내 지갑에는 천원짜리가 없는걸까.

 

 

 

매실차

 

 

 

 

 

 

 

 

 

우야든동, 우리 아들 딸 공부 잘하고 마누라 건강하고...

 

 

 

 

 

마천면 / 정면으로 왕산, 필봉이고 우측 능선에 함양독바위가 보인다

 

 

 

원추리밭

 

 

 

GPS트랙은 삼불암을 가로질러 내려가는 듯한데, 스님이 아래로 40미터 내려가 왼쪽으로 가면 능선을 타게 된다고 일러 주신다. 우리 의도를 훤히 꿰뚫고 있는걸 보니 도가 경지에 이른듯 하다. 스님 말씀대로 40미터 내려가니 갈림길이고 전봇대에 이정표 팻말이 붙어 있다.

 

 

 

객꾸이 손가락은 마천을 가리키나, 왼쪽이 도계능선이다.

 

 

 

 

 

도계능선

 

 

10여분 사면길을 따라 돌아 도계능선에 합류했다. 아랫쪽으로 약수암을 [약사암]으로 적었다.

 

 

 

 

 

진주강씨 묘터

 

 

비석에 [삼정산 실리봉 하 정승재 진주강씨 은렬공파 묘동]이라 새겼다. 실리봉은 어디를 말함인지, 지형도의 정성재는 정승재가 맞는건가? 三丁里와 三政山의 정字가 다른데, 여기도 의신 윗동네 처럼 정승 셋이 나왔는가.

 

 

바래봉과 덕두산, 일성콘도가 있는 산내면이 훤하고, 다음구간 삼봉산과 백운산까지 넓게 조망된다.

 

 

바래봉

 

 

 

산내면

 

 

 

삼봉산, 백운산

 

 

 

정승재가 어딘지 콕 짚지를 못하겠는데 좌우튼 정승재 아랫쪽은 완전한 웰빙 숲길이다. 금강송 못지않는 쭉쭉 뻗은 소나무 울창한 숲길에서는 더 느리게 걸어야 힐링이 되겠구만, 선두대장 객꾼은 지 역할에만 충실하고 있다.

 

경남도계는 ×767.9봉에서 동쪽으로 갈라지는 지능선을 타야 하는데, 들어갈 만한 길도 보이지 않는 울창한 숲이다. 뚜렷하게 나있는 약수암 길은 도계에서 왼쪽으로 벗어나게 된다. 나중에 차를 타고 마천으로 나가면서 살펴봐도 도계를 따라서는 진행할 수 없는 비탈이더라.

 

 

약수암 안부

 

 

 

×767.9봉에서 한참 쉬었다가 15분 더 내려오니 아래로 절집이 보이는 약수암 안부다. 왼쪽 바로 아래 약수암 지붕이 보인다만 줄을 쳐놓고 들어오지 말란다. 들어오면 안되는 이유 세 가지까지, 기어이 내려오면 기어이 되올려 보낸단다. 이거는 또 어느나라 부처님의 가르침인고?

 

예전에도 절마당으로 내려섰다가 개가 짖어대는 바람에 이 집 중과 크게 다툰 기억이 있는데, 아직도 그 중이 그대로 근무를 하는지, 아니면 더한 중이 왔는지, 등산객을 적군으로 취급을 하는구나.

 

 

 

 

~그래도 기어이 내려 오시면, 기어이 되올려 보내겠습니다~

무공을 좀 더 연마한 후에 내려가야 겠다.

 

 

 

보광전(왼쪽)

 

 

약수암 아미타 목각탱화

약수암에는 목조 팔작지붕으로 된 보광전과 목조 요사채가 있다. 보광전 안에는 1782년(정조 6)에 만든 보물 제421호인 아미타목각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목각탱화는 불화의 내용을 부조상으로 표현한 것으로 조각기법과 불화기법이 혼용된 것이다. 이러한 목각탱은 조선 후기에 유행한 것으로 현재 문경 대승사, 상주 남장사, 예천 용문사, 서울 경국사에도 남아 있다. 약수암의 목각탱은 하단부에 "건륭사십칠년임인십일월방장산실상사"라는 기록이 있어 1782년에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약수암

 

약수암

약수가 있어 약수암이 되었다는데, 그 약수 한 모금 마음대로 못하게 울타리를 둘렀으니, 금수암으로 이름을 바꾸는게 좋을듯 하다.

 

 

 

 

 

임도를 타고 내려가다가 무한정 돌기가 싫어 중간에 질러 내려갔다.

 

 

실상사

 

 

 

 

백운산, 금대봉

 

 

 

 

 

 

 

 

 

 

 

 

 

 

 

 

 

 

실상사 석등 (보물 35호)

 

 

 

 

 

실상사 동서 삼층석탑 (보물 37호)

 

 

이 절에는 "일본이 흥하면 실상사가 망하고 일본이 망하면 실상사가 흥한다"는 구전이 있는데 이는 천왕봉 아래 법계사에서도 전해지고 있어 흥미를 끈다.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실상사 경내의 보광전 안에 있는 범종에 일본 열도의 지도가 그려져 있는데 스님들이 예불할 때마다 종에 그려진 일본열도를 두들겨 치고 있다. 이는 앞서 언급했듯 우리나라와 실상사가 흥하면 일본이 망한다는 구전에 의한 것으로 여겨진다.

스님들이 이 속설에 따라 범종의 일본지도를 많이 두드린 탓에 범종에 그려진 일본지도 중 훗카이도와 규슈지방만 제 모양으로 남아 있을 뿐 나머지 열도는 희미해져 가고 있다. 최근의 독도 영유권에 대한 일본의 망언이 있는 오늘날 한일관계를 두고 볼 때 보광전의 범종에 얽힌 사연이 갖는 의미는 우리에게 많은 점을 일깨워주기에 충분하다. 이 같은 전설과 구전들을 살펴볼 때 실상사는 일본에 대한 호국사찰이며 불교문화의 큰 도량임을 알 수 있다.

 

 

 

 

 

실상사 세면장에 샤워가 되겠나 알아보러 간 새에 둘이는 잽싸게 내려가더니 막걸리병을 따고 앉았다.

세면장은 탬플스테이 회원들 전용이라면서, 못하게 하더라.

 

 

 

 

옛 진주역 근처에 있는 부산물회

 

 

 

객꾼회사 보스의 부름을 받고 찾아간 진주에 있는 부산물회집. 객꾼의 신상을 염려했더만 더 큰 경사가 발표되었다.

 

백두대간 상의 미생물을 연구하는 국내 최초의 프로젝트가 수립되었고 그 일원으로 객꾼을 차출했다는... 혹 필요하면 긴급구조요원(학봉)과 GPS 길잡이 요원도 찾아 달라는 부탁을 넣고 먼저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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