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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25차 (20구간)
<화방재(어평재)~함백산~매봉산~피재(삼수령)>
처형과 함께 하는
사니조은 부부 산행기
<산행 일시>
<산행 거리 / 시간>
거리 : 약 21.45 km
시간 : 11시간 05분 <휴식 40분 포함>
<교통편>
갈때 : 동서울터미널
태백역à 화방재(어평재) 택시 : 15,000
올때: 피재(삼수령) à 태백역 택시 : 5,000
<준비물>
먹거리: 점심 + 간식(과일 약간,초코파이 10개,쑥떡,삶은계란 6개)
물 : 약 4.5 리터 (1000 ml 3병 + 500 ml 3병)
휴대품 : 수건,장갑,스틱,지도(1:50000 조선일보 백두대간 제공)
기타 :비상약품(대일밴드+스프레이파스,신경근육이완제),렌턴3+디카
건전지(핸폰,디카,헤드렌턴),1회용 우비,휴지,비닐봉지(쓰레기)
<소요경비> 약 16만원
고속버스 12만(21,000+19,000)*3인) + 택시비(14000+5,000)
아침식사 15,000 / 저녁 6,000(라면)
택시기사
<주요 지점별 산행 시간/거리(포항 셀파 산악회 실측거리 기준)>>>>
화방재(어평재)
수리봉
헬기장
만항재
함백산
헬기장
제3쉼터
제2쉼터
은대봉
두문동재
금대봉
비단봉
휴식
풍력발전기
매봉산
낙동정맥분기점
피재(삼수령)
<산행기 >>>>>>>>
“
최근의 다른 산행기에 읽어 보니 화방재~피재 구간에서
야생화 보호 구역으로 통재를 한다고 해서 걱정거리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이를 또 어찌 넘어야 하나???
이에 대한 해결책을 여러 모로 궁리해 둔 결과
첫번째 해결책은 공무원 출근 시간 전에 넘는 방법,,,
이 방법은 새벽 야간 산행해야 하는 부담이 있고,,,
두번째 해결책은 화방재에서 출발하여 두문동재에 간 뒤
통제로 못 가게 될 경우 택시로 피재로 이동,두문동재로 역주행하는 방법,,,
두가지 방법 모두 처형이나 마눌에겐 잘 통할 지
자신없어 일단 비밀로 해 두었고
일단 부딪혀보자라는 생각으로 출발합니다.
어렵게 날 잡은 대간길,,,
이번 대간길에서는 태백의 꾸불꾸불한 도로를 전에
경험한 적이 있어 차를 가져 가기를 포기하고 기차를
이용할 계획이었지만 예약을 못해 동서울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가니 고한에서 승객을 우르르 쏟아내곤
5~6명의 승객을 싣고는 다시 태백역으로 갑니다.
고속버스 정거장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태백역 주변은
기차승객을 탑승하려는 택시만 길게 줄이어 있을 뿐
식당,편의점 모두 문을 닫혀있읍니다.
새벽이라 여기서 날새기를 기다리자니 춥고,,,
잠시 난감한 상황,,,
택시기사에게 물어보니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24시간 식당이 문을 열고 있다고 해서 택시를 타고 가 보니
불과 400여미터(?) 떨어진 곳에 기사 식당이 있더군요.
거리가 전등으로 환한 거리,,
태백역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입니다.
택시비 아까봐라,,,,
충분히 걸어와도 될 거리를,,,,
기사 식당답게 맛있는 해장국으로 시장기를 풀고
그러나 방은 따근하고 쉬고 싶고 졸리지만
잠은 오지 않아 마냥 있는 것 자체가 더 힘이 듭니다.
일어나 일단 가보자.
택시를 타고 화방재에 도착하니
잠시 볼일도 보고 머믓 머믓거리는 처형과 마눌을
어둠의 산속으로 밀어 놓습니다.
▽ 새벽 2시의 태백역.설렁합니다.
▽ 새벽 4시 전 화방재.추워 날새기를 기다리다 포기하고 천천히 올라가 보기로 합니다.
<<어평재(화방재)~함백산 <
화방재(어평재)
수리봉
헬기장
만항재
함백산
어평재에서 출발한 대간길은 어둠속에서도
등로가 너무도 또렷합니다.
야간 산행에 겁을 먹고 날이 밝으면 가자던
처형과 마눌이 자신있게 앞서 나가기 시작합니다.
평탄한 등로길이 갑자기 가파라 지더니
춥다고 껴입은 옷들을 벗으며 40여분 진행하다 보니
깜깜한 어둠속에 커다란 표지석이 나타나 보니
수리봉이라 표기되어 있습니다.
같은 봉우리,산 이름이 왜 이리 많은 지,,,
잠시 쉼을 하고 다시 진행하니
오래 동안 편안한 등로가 길게 이어집니다.
날은 밝아 오고 신선한 바람,공기,풀냄새 가득한 찐한 흙냄새,
이름모를 새들의 소리가 어우러진 길을 가니 즐거운 마음입니다.
“그래, 바로 이 맛이야.”
이런 분위기 속에 40여분 진행하니 철조망이 있는
시설이 나오고 헬기장 하나도 나타 납니다.
더 진행하자 길 앞으로 도로가 보입니다.
만항재.
포장된 도로 중 가장 높은 곳이라고 하는 곳.
도로에 이르니 왼쪽 위로는 휴게소 건물이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가야 할 함백산이 보입니다.
화방재에서 만항재까지는 거리로는 3.45km,
시간은 1시간 반이 소요되었습니다.
이번 대간길은 가야 할 길들이 뻔히 보입니다.
별로 길 잃어 버릴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될 정도.
함백산 가는 길은 화원 길입니다.
온갖 예쁜 풀과 싱그러운 잎사귀 들이 눈을 즐겁게 해주는,,,
그래서 걷는 동안 지루하지 않는 편안한 길입니다.
진달래와 철쭉이 공존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사실 그 동안은 태백산,함백산 등은 겨울산에 와야
제대로 구경 할 수 있는 산인 줄만 알고 있었지만,,,,
온통 화원인 이 곳은 그러한 선입관을 확 지우게 합니다.
함백산으로 들어 가는 초입에는 이동식 화장실과 이정표가 있고
만항재와 연결된 414번 도로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편안한 등로가 끔직한 돌덩어리 계단길로 바뀌면서
고도를 올리기 시작합니다.
함백산 가는 길에 가끔 보이던 노랑무늬붓꽃도
무리를 지어 있고 진달래,개별꽃,얼레지 등등등,,,
이름 모를 꽃들도 많습니다.
한바탕의 땀을 흘리고 올라가니
함백산 정상이 나옵니다.
함백산
평지에 위치해 있는 줄 알았는데
몇 덩어리의 커다란 바위 위에 올려져 있습니다.
함백산의 조망은 너무 좋아 간식시간을 즐기며 더 있고 싶지만
추워서 오래 있지 못하고 다시 출발합니다.
▽ 수리봉
▽ 만항재 가기 전 헬기장
▽ 만항재 포장 도로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차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이라고 합니다.
<<함백산~두문동재 <
함백산
헬기장
제3쉼터
제2쉼터
은대봉
두문동재
함백산 정상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헬기장이 있어 잠시 쉼하기로 합니다.
다른 곳과는 달리 바닥이 콘크리트가 아닌 철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곳은 태백산과 마찬가지로 살아 천년,죽어 천년이라는 주목들이
운치를 발하지만 저쪽 한 켠으론 스키장(?) 건설로 인한 훼손이 심하기도 합니다.
그 규모가 상당합니다.
함백산 정상에서 은대봉을 가는 길은 뛰어 가도 좋을 만큼 편안하고 쉬운 길입니다.
그래도 시간 여유가 많아 천천히 대간 길을 만끽하며 진행합니다.
다른 산행기에서도 중함백이 어딘지 모르고 지났다고 했는데
우리도 중함백이 어딘지도 모르게 지나쳐 어느 듯 은대봉에 도착합니다.
함백산에서 2시간 12분이 지난 시각
은대봉에 이르니 이젠 두문동재에서의
초소를 지나칠 걱정이 점점 현실화 됩니다.
헬기장이 있는 은대봉에서 잠시 앉아
쉼을 하면서 간식거리를 먹고 다시 출발.
은대봉이 가까워 지자 은대봉과 금대봉 사이의
두문동재 오르는 꾸불꾸불한 두문동재 오르는 도로가 보이고
좀 더 걷자 초소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초소를 몰래 우회할 계획으로 숲에 몸을 숨긴 채
대기 모드로 들어가 상황을 살펴봅니다.
그런데 초소 앞에 두 사람이 도란도란하고 있는
이야기가 쉬이 끝날 기색이 안 보입니다.
마눌이 설득하여 길을 열어 보겠다고 나섭니다.
말려볼 뜸도 없이 나서기에 할 수 없이 따라 나섭니다.
그래.
한번 설득해보고 안되면 사정도 해보고 정 안되면
택시를 불러 피재(삼수령)에 가서 다시 역주행하자,,,라는 생각으로 나섰는데,,,
저 앞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를 발견하자
“아무 걱정하지 말고 내려오세요.”라고 하신다.
이크,,,이거 벌금 물으려고 하는가 속으로 조마 조마,,,
초소에 가니 장부에 이름과 사는 곳,전화번호를 기재하라 하신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그러니 아무런 걱정하지 말라 하신다.
하라는 대로 기재를 하고 금대봉으로 가도 되냐고 했더니,,,ok이란다.
야~~~~~호~~~~~~~~~~
▽ 어느새 은대봉에 도착하고,,,
▽ 근처의 정암사 금탑,은탑에서 유래되었다는 은대봉,금대봉.
▽ 두문동재 오르는 포장도로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 안심하고 내려오란 하신다.
<<두문동재~피재(삼수령) <
두문동재
금대봉
비단봉
휴식
풍력발전기
매봉산
낙동정맥분기점
피재(삼수령)
금대봉으로 출발 하려고 바리게이트를 지나려 하는데,,,,
“잠깐만요”
“네???”(못 가게 하면 어쩌나 하는 우려의 목소리로,,,)
“지금 비가 오려고 하는데 괜찮겠어요”라 하신다.
걱정하지 마시라 하곤 빠른 걸음으로 도망가 듯이 오르는데
그치지 않을 비가 지속적으로 내리고 부부 한 팀이 내려오면서
비가 오고 천둥,번개 걱정에 내려가는 중이라고 하신다.
그래도 우리는 용감하게 진행합니다.
오랜만에 맞보는 비 속의 대간 길입니다.
걱정 하나를 피했더니 또 다른 걱정 거리가 생겨나는군요.
어쩌면 걱정하지도 않아도 될 일을 걱정하니 걱정거리가 되나 봅니다.
처형과 마눌은 우산을 쓰고 나는 모자+비닐로 어깨를 감싸고는 진행합니다.
비는 세차게 내리지는 않아도 쉽게 그칠 비는 아닌 듯합니다.
두분동재에서 32분 만에 도착한 금대봉에는
산불감시 초소와 헬기장이 있는 금대봉에 도착합니다.
두문동재를 기준으로 좌우로 은대봉과 금대봉이 30여분 걸음 사이에 위치해 있습니다.
다시 비단봉을 출발.
금대봉에서 비단봉 가는 길은 걷기 쉬운
편안한 들로로 길게 길게 이어집니다.
이젠 편안하게 대간길을 만끽하며 걸어 갑니다.
내린 비로 더 싱그럽게 보이는 꽃들이 좌우로 즐비한 대간길.
대간의 즐거움입니다.
어느 듯 비는 가끔 찔끔 찔끔,그쳤다 내리기를 반복하다
제 풀에 지쳐 비도 그치고,,,
금대봉을 1시간이 훨씬 지나도 나타 나지 않던 비단봉.
한바탕 땀을 흘리게 하더니 정상도 아닌 어쩡쩡한 위치에
있는 곳에 비단봉이라 쓰인
금대봉에서 1시간 50분 거리의 비단봉.
오르기 힘들어 하던 마눌이 비단봉이 아니라 고단봉이라 하더군요.
비단봉에서의 전망은
태백산에서 함백산,은대봉,두문종재,금대봉,,,
지나 온 대간길이 훤히 보입니다.
“그래, 이제서야 비단봉같으다.ㅎ”
이젠 마지막 매봉산을 향하여 다시 출발합니다.
비단봉을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매봉산
채소밭과 풍력발전소가 빤히 내다 보이는 널찍한 곳에
이르자 쉬어 가기로 합니다.
고생보따리 벗어 놓고 쑥떡,초코파이 등으로 간식을 하고 난 뒤
처형은 온통 널려 있는 민들레를 캐기 시작하고
난 등산화도 벗어 던지고 한숨 자기 위해 누웠더니
선명한 파란 하늘이 한눈 가득 들어옵니다.
“아,,,조~~~~타”
▽ 대덕산,금대봉,,,등산코스 설명.
▽ 초소에서 30분만에 도착한 금대봉
두문동재를 기준으로 30분 거리에 있는 은대봉과 금대봉
▽ 금대봉
▽ 지도상의 쑤아밭령
▽ 비단봉,,,저기를 넘으면 바로 매봉산이 훤히 보입니다.
▽ 오른쪽의 태뱃산,함백산,,지나온 대간길이 훤히 보이는 비단봉에서의 전경
▽ 비단봉에서 15분만에 매봉산이 훤히 보이는 곳에 도착
▽ 대간 다니는 동안 이렇게 시간이 여유로운 적이 별로 없었는데,,,
얼마남지 �은 대간.시간은 이제 12시.
처형은 민들레 나물 듣으시고 나는 달콤한 낮잠 한숨 쉬면서,,,,
선선한 바람에 20여분의 깊은 낮잠을 자고 났더니
몸이 한결 더 가뿐합니다.
대간을 다니는 동안 이처럼 여유롭게 다닌 적이 별로 없었는데,,,
40여분의 휴식을 마치고 얼마남지 않은 대간을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시 이어갑니다.
저 위의 배추밭은 황량한 허허벌판이지만
낮은 쪽은 온통 꽃밭입니다.
배추밭은 바짝 말라 있어 첫번째 풍력발전기를 향해
가장 빠른 지름길을 만들며 갑니다.
첫번째 풍력발전기 뒤에 있는
작은 숲에 표지기가 붙어 있습니다.
풍력발전기의 소리가 위압적이라고 하던데
바람이 그리 심하지 않아 무섭지는 않았습니다.
풍력발전기를 지나 매봉산 초입 입구에서
마눌이 길 옆의 새알을 보라고 합니다.
허리를 숙여 보니 마른풀로 얼기설기
잘 짜인 바구니에 여섯개의 새알이 들어 있습니다.
마눌이 길을 가는 도중 새가 날아 도망가지 않고
종종 걸음으로 자꾸 뒤를 돌아 보며 이상하게 행동을
해서 보니 새알이 있다고 하더군요.
그 새알 �문에,,,모정때문에,,,어미새는 도망가지 못하고,,,
동물의 본등,참 대단합니다.
마눌이 “하찮은 새들도 저러는데 인간이 어찌,,,”
하며 요즘 세태를 안타까워 합니다.
동물의 왕국이나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면
새끼를 낳자마자 알껍질과 부산물들을 먹어
흔적을 없애는 새들도 있고,
키우는 과정에서 새끼가 죽자 그 새끼를 먹어 치우는,
정 떨어지게 하는 새도 있고,,,
참으로 자연은 다양하고도 오묘합니다.
매봉산 정상 가기 전 매봉산과 피재(삼수령)의 갈림길 이정표가 나옵니다.
마눌은 힘들다며 매봉산 정상에 오르지 않고
바로 삼수령으로 가겠다 합니다.
조금만 가면 되는 정상을 가지 않겠다???
그렇게 하게 내버려 둘 내가 아니지.ㅋ
지도를 보니 매봉상 정상을 지나 삼수령으로 가게 되어 있어
이 길을 아마도 샛길이라고 설명하고 다 같이 매봉산 정상으로 향합니다.
얼마 가지 않아 통신 시설이 있는 매봉산 정상에 도착합니다.
별 볼거리 없는,,,단지 볼 것이라고 백두대간에 대해
이해하고 적어 논 안내판이 그나마 볼 만 하더군요.
지나온 길을 다시 백하여 이정표있는 곳으로 되 돌아가
삼수령이라 표시되어 있는 길로 내려 가기 시작합니다.
비닐하우스도 지나고 도로도 만나고 다시 숲으로 들어가
얼마 걸으니 낙동정맥 갈림길 안내판이 나옵니다.
언제, 이 곳에 다시 오려나,,,
아마 다시 온다면 지금의 그 때를 그리워 할 것 같습니다.
다시 진행하자 도로가 나와 이 곳이 피재인줄 알았는데,,,
이정표에는 삼수령 500m라 쓰여져 있고,,,
위로 가야 할 지 아래로 가야 할 지 잠시 갈팡질팡하다
내리막길 도로를 따라 잠시 진행하다 삼수령 300m라는
이정표가 다시 보이고 다시 숲으로 들어 가는 길을 만납니다.
잠시 진행하자 다시 도로와 만납니다.
사진에서 많이 보던 조형물이 바로 보일 것으로 예상했었는데,,,
도로 건너 숲에 가려 잘 보이질 않더군요.
그 것을 볼려면 좀 더 가야 하는데 미리 예약한
택시 기사분이 다음 예약 관계로 가지 못하고 바로 태백역으로 갑니다.
택시비는 6천원인데 5원만 달라 하신다.
기차 시간이 맞지 않아 타게 된 고속버스,
도로가 너무 막힙니다.
그래도 마눌과 처형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그 꾸불꾸불한 태백길을 운전을 하지 않아
편하게 않아 잠을 청합니다.
“아,오늘 하루,조~~~~~~은 하루였다!!!”
▽ 다시 출발합니다.
▽ 이런 길도 지나고
▽ 배추밭이 바짝말라 있어 가파른 지름길을 택해 진행합니다.
▽ 드디어 바람개비를 만나고.
▽ 매봉산 들어가기 전,,
▽ 매봉산 정상
▽ 제 2호 풍력발전기.직경 52m,높이 49m.
▽ 길가의 새알.
▽ 매봉산 정상 가기 전 삼수령 가는 대간길.
매봉산 정상을 볼려면 발품 약간 팔아야 합니다.
▽ 매봉상 정상.
▽ 백두대간 설명이 잘 되어 있습니다.
아직도 대간길에 태백산맥,,,어쩌고 저쩌고 하는 잘못된 설명이 많은데 다행스럽습니다.
▽ 마눌이 무�이 아프다고 합니다.
저는 괜찮은데,,,,오늘은 꺼꾸로 입니다.
▽ 배낭을 나에게 맡기고 절룩절룩 내려 가는 마눌.
▽ 이런 비닐 하우스도 지나고,,,
▽ 도로길도 지나,,,대간길은 저 앞 숲길로 다시 들어갑니다.
▽ 삼수령 500m 전 이정표,,,밑으로 내려 가야 합니다.
▽ 피재(삼수령) 300m 전
화방재(어평재)~피재(삼수령) 산행 참고 사항 >>>>>>>>>>>>>>>>>>>>>>>>>>
1. 거리는 21.45km의 거리이지만 산책로 같은 등로길이 많은 구간.
2. 가야 할 길이 뻔히 보이는 구간이고 표지기와 안내판이 있어 알바의 위험은 별로 없음
3. 함백산 초입에 간이 화장실 이용 가능.
4. 전 구간 탈출구가 많음.
인터넷에 퍼온 자료입니다.>>>>>>>>>>>>>>>>>
함백산
태백시와 정선군 사이에 우뚝 솟은 해발 1573m의 함백산은 조선 영조 때의 실학자 여암
삼국유사에는 함백산을 묘고산이라고 기록했는데 수미산과 같은 뜻으로 대산이며 신산으로 여겨 본적암·심적암·묘적암·은적암 등의 절이 있었다고 한다.
금대봉
한강 발원지 검룡소 품은 산
태백 여행에서 빠뜨리지 말아야 할 곳이 하나 있다면 한강발원지 검룡소인데 바로 이 검룡소를 품고 있는 산이 금대봉(金臺峰)이다.
금대봉은 태백산과 함백산을 달려온 백두대간이 싸리재에 이르러 북서쪽에 일궈놓은 산으로 이웃한 대덕산과 더불어 태백시가 자랑하는 식물의 보고로도 유명하다. 해서 이 산에는 산행뿐 아니라 검룡소를 둘러보고 다양한 꽃과 식물을 촬영하려는 생태탐방객들도 즐겨 찾는 곳이다.
은대봉
강원도 정선군과 태백시의 경계에 있는 산.
높이는 1,442m이다. 함백산의 봉우리인 상함백산, 중함백산(1,505m), 하함백산(1,527.9m), 창옥봉(1,380m) 중 상함백산을 가리킨다. 정암사 절을 세울 때 조성된 금탑, 은탑에서 금대봉(金臺峰)과 은대봉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고 전해진다.(중략)
낙동강의 원류 발생지는 이곳에서 가까운 천의봉의 동쪽계곡에 자리한 너덜계곡으로 공식 인정되었지만, 은대봉의 은대샘에서 태백시 화전동쪽으로 흘러내리는 황지천(黃池川)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산자락에는 태백광업소와 한국 기차역 중 제일 높은 곳(855m)에 위치한 추전역이 있다. 부근에 정암사, 용연동굴이 있다.
매봉산
해발 1230m
우리나라에는 매봉(응봉)이란 산이름이 많기도 하다. 백두대간이 강원도 태백시를 지나는 어름에 솟아있는 매봉산(1303.1m)은 높이로도 으뜸이며, 낙동정맥을 분기하며 남한강·낙동강·오십천을 발원케 한다.
또한 고랭지 여름배추의 최초 산지였으며, 현재도 정상 부근 약 45만 평에 여름배추를 재배하고 있다. 1965년 한미재단에서 화전민정착촌사업으로 30만 평을 개간하여 1가구당 4,500평씩 무상으로 나누어주어 41가구를 이주 정착시켰던 산이기도 하다. 정상은 천의봉이란 무게 있는 이름을 소유하고 있다.(자료 월간산)
태백 매봉산 정상은 사람이 서있기 힘들 정도의 거센바람이 사시사철 불어 닥친다. 매봉산 정상에 우뚝 솟아 있는 풍력발전기는 날개(프로펠러) 직경만 52m에 달하고 발전타워를 포함하면 전체 높이가 무려 75m에 달해 8기가 한꺼번에 돌아가는 모습은 보는이들로 하여금 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태백시가 지난 2003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매봉풍력발전단지 조성사업은 지난 8월말까지 총 135억원이 투자돼 모두 8기의 풍력발전기가 설치됐다.
지난 2004년 12월 첫 가동을 시작한 매봉풍력발전단지는 2005년까지 모두 5기의 풍력발전기가 가동돼 지난해 전력 554만㎾h를 생산, 3억3500만원의 경영수익을 올렸다.
피재(삼수령)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고원도시 태백에서 35번 국도를 따라 북상하면 금방 이 곳, 삼수령에 닿는다. 삼수령은 우리 나라 땅의 큰 등줄기인 백두대간에서 또다른 큰 산줄기인 낙동정맥이 분기하는 지점으로, 이 지점에서 우리 나라 땅은 크게 세 영역으로 나뉘게 된다. 또한 이곳에서 북쪽을 바라보고 섰을 때 서쪽의 함백, 매봉산 쪽 검룡소에서는 서해로 흘러들어가는 한강이, 남쪽의 태백시 한가운데 황지 연못에서는 남해로 흘러들어가는 낙동강이, 그리고 서쪽 산줄기에서는 동해로 흘러들어가는 오십천이 발원하여 각각의 유역을 형성하는데, 이렇게 큰 세 개의 물줄기가 흘러내린다 하여 이름을 삼수령이라 붙인 것이다. '산은 물을 가르지 않고, 물은 산을 넘지 않는다'는 우리나라 전통 지리학의 근본 원리 '산자분수령'의 의미를 너무나 명쾌하게 보여주고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렇듯 남한의 4대 강들 중 가장 큰 2개의 강이 이곳에 발원지를 두고 있는 강원도 태백은 가히 남한의 지붕이라 부를 만 하다.
(참고로, 숲 속 깊이 위치한 검룡소의 힘찬 모습과, 태백시내 한복판의 공원 안에 있는 은은한 황지연못의 모습은 참으로 대조되는 면이 있으나, 이 두 장소 모두는 분명히 첫눈에 매우 비범함을 느낄 수가 있는 곳이다.)
한국의 고개를 찾아서 / 두문동재(싸리재)
세상 문 닫고 돌아앉은 아라리 고개
길은 어디에나 있다. 길을 잃은 곳, 그 곳에도 길은 있다. 사람이란 으레 크고 밝은 길에 모여 저마다의 삶을 다투는 법이지만 더러는 저 아주 좁고 어두운 세상의 뒤안길로 슬며시 등을 돌려 세상과는 아예 몇 겹 담을 쌓고 살기도 한다. 어느 길이든 그저 모두 변함없는 세상의 날들이다. 아! 누가 함부로 길을 잃었다 하는가? 까마득한 무렵, 산과 들에 짐승들이 먼저 길을 내고 사람들 또한 생각 많은 짐승으로 사는 동안, 길은 그렇게 어디에나 있었다. 그리하여 길이란 잃는 것이 아니라 다만 버리는 것이다. 시절이 가고 바람이 차가워져 가지 끝에 걸린 나뭇잎 하나 홀연 몸을 던지듯이.
오랜 옛날, 그렇게 길을 떠난 이들이 있었다. 속절없이 버리고 떠난 뒤에야 다시 얻는 세상의 길을 따라 기약도 희망도 없이 그렇게 시나브로 잊혀져 간 이들이 있었다. 훗날 길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렇듯 어디 닿을 바 없이 멀리 흘러가 버린 그들의 길을 세상에서 가장 사무치는 길이라 믿었다. 생각 같아서는 어찌 그 길만이 또한 외길이랴 묻고 싶지만은 다만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린 길이라면 대체 무엇이 그 앞을 가로막을 수 있었으랴. 지나왔으므로 돌아보면 더러 아련하고 가고 있으므로 끝내 멈출 수 없는 길. 정선 땅에 가면 길은 모두 하나같이 그렇게 속 깊은 아라리 가락을 탄다.
크게 밝은 땅, 크게 어두운 땅
영월에서 해뜨는 쪽으로 40리 밖이 석항(石項)이다. 옛날에 돌항소(乭項所)라는 천민집단 구역이 있었다 하여 그런 이름을 얻었다 한다. 영월을 떠난 태백 가는 길이 그 석항에 닿으면 서로 갈래를 짓고 둘로 나뉜다. 남쪽 길로는 수라리재와 화방재를 넘어 태백에 닿고 북쪽 길로는 정선을 비켜 사북과 고한을 지나 두문동재를 넘어 또한 태백에 닿는다. 진달래와 철쭉이 흐드러진다는 화방재(935m)와 포장 길이 넘는 고개로는 남한 땅에서 가장 높다는 두문동재(1,268m)가 모두 백두대간의 고개이다.
태백이란 이름의 뿌리는 가깝게는 태백산(1,568m)이며 멀게는 민족의 종산 백두산(2,744m)에 이른다. 태백이란 '크게 밝다'는 뜻이니 한밝달이나 한배달로 등장하는 단군의 조국설화(肇國說話)가 그 근원이다. 본래 태백 땅의 지명에는 황지(黃池)와 장성(長省)이 있었다.
황지는 마을 가운데 커다란 연못이 있어 천황(天潢)이라 부르다가 황지로 바뀌었으니 지금도 태백 시내 한복판에 자리한 그 연못은 낙동강의 시원으로 유명한 곳이다. 장성 또한 본래는 장생이라 하여 흔히 일컫는 장승이 많대서 얻은 이름이다. 1981년, 탄광이 날로 인구를 불리면서 황지읍과 장성읍을 모아 태백이란 이름으로 시가 되었다.
태백은 자타가 공인하는 전국 제 1의 광도(鑛都)이다. 일제 무렵, 삼척개발주식회사가 조선총독부 보유 탄전의 광업권을 인수하여 장성의 석탄을 캐낸 것이 탄광의 시작이다. 태백의 연감을 들추어보니 1981년의 광부 수가 무려 19,375명에 달했다 한다. 집계되지 않은 숫자까지 합치면 2만 명을 훨씬 웃돌았다. 1987년 태백의 석탄 생산량은 640만 톤이나 되어 전국 생산량의 30%에 이르렀다. 강아지들마저 지폐를 물고 다녔다는 광산촌의 영화. 그러나 그 영화는 이제 흉물스럽게 버려진 탄광과 빈집을 뒤로 한 채 저마다 진폐를 쿨룩이며 대처로 떠난 광부들의 비극으로 막을 내렸다.
아라리 고을 정선에 부는 바람
정선은 동쪽으로 동해, 삼척, 태백의 3개 시와 만나고 남쪽의 영월군과 서쪽의 평창군, 그리고 북쪽으로 강릉시에 어깨를 걸친다. 사방이 크고 작은 산으로 막히고 골짜기마다 맑은 여울이 흘러 예로부터 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었다.
평창 황병산(1,407m)에서 발원하여 횡계를 지나 남하하는 송천이 정선과 강릉의 경계를 이루는 석병산(1,055m) 위쪽 두리봉에서 발원하여 서쪽으로 굽이치는 임계천과 만나는 곳이 바로 유명한 여량의 아우라지다. 임계천이 아우라지에 닿기 전에 더불어 온 골지천은 강의 하구로부터 가장 먼 거리에서 출발하는 이른바 남한강의 발원지다.
아우라지에서 여울은 아침 햇살과 어우러진 강빛이 더없이 좋다하여 조양강이라 불리면서 오대산에서 내려온
옛글이 한결같이 '토지는 메마르고 기후가 차다'고 적은 정선은 본래부터 먹고 사는 일마저도 아주 고단한 땅이었다. 기껏해야 기장이나 피, 조, 밀보리 같은 밭작물을 심어 그나마도 적게 거두고 나머지는 강이나 산에서 얻는 짐승들의 가죽이나 약재가 고작이다. 다만 땅 위의 삶터가 그렇게 마뜩치 않은 터라 자연이 땅 속에 보물을 숨겼다가 내어주니 숱한 매장 광물들이 바로 그것이다.
『세종실록지리지』정선군 편에는 '금과 철이 많이 나고 옥과 비슷한 돌고드름이 나며, 벼루를 만드는 푸른 돌이 난다'고 적었다. 실재로 정선 땅의 9할이 광물 채굴권에 속한다고 한다. 탄광이 한창이던 무렵에는 '팔도공화국'이란 말이 나돌 정도였다. 그러나 그 잠깐의 좋았던(?) 시절 또한 그렇게 흘러가고 이제 정선에 부는 바람은 자나깨나 오로지 관광이다.
폐광, 그리고 사북, 고한의 운명
사북, 고한 사람 열의 아홉은 으레 탄광을 터전으로 밥을 먹고 살았다. 사북은 사음대(舍音垈, 사음은 마름의 한자음)와 북일(北日)이란 옛마을을 뭉뚱그려 생긴 이름이고 고한은 고토일(古土日)과 물한리(沕汗里)를 합쳐 만들었으니 모두 일제 무렵의 흔적이다. 한때 두 곳을 합쳐 6만여 명에 이르던 인구 덕택에 두 곳 모두 읍이 되었지만 이제 남은 인구는 고작 1만 7천명에 지나지 않는다. 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모두 검은 빛깔로 뒤덮인 석탄 왕국이 저물어 간 것은 불과 2, 3년 전이었다.
떠날 수 있는 사람들은 서둘러 떠나고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은 남았다. 손에 쥔 것 없이 대처로 떠난 이들의 고난도 불을 보듯 뻔한 일이지만 탄광이 문을 닫은 폐광촌에 남은 이들의 살길 또한 막막하기만 했다. 생업이 바닥을 드러내고 인심은 흉흉해졌다. 남은 이들의 몸부림은 참으로 눈물겨운 것이었다. 어딘가 숨어있을 길을 찾아 모두들 두리번거렸지만 끝내 어디에도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관광! 어디에선가 튀어나온 이 낯선 화두에 사람들이 촉수을 곤두세운 것은 바로 그 무렵이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지푸라기라도 잡을 수밖에 없었던 절박한 시절이었다.
물 맑고 산 좋은 고을이라면 굳이 소문을 내지 않아도 으레 인파로 몸살을 앓는 게 이즈음 국토의 현실이다. 그러나 정선도 정선 나름, 아우라지나 정선 소금강쯤은 되어야 그런 말이 어울릴 듯 싶고 정선 최남단의 전형적인 광산촌 사북, 고한에선 그것마저도 꿈같은 얘기다. 달리 마땅한 관광자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나마 있다해도 온통 탄더미로 뒤덮인 흉흉한 폐광촌에 사람 발길 끌어들이기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고원의 비경 414번 지방도로
백두대간은 태백 북쪽의 매봉산(1,303m, 다른 이름은 천의봉이다)에 이르러 슬쩍 방향을 틀면서 함백산을 세우고 다시 태백산을 지나면서 완연하게 서쪽으로 머리를 돌린다. 고한에서 매봉산과 함백산 사이를 타고 넘으면 두문동재고 영월에서 함백산과 태백산 사이를 타고 넘으면 화방재다. 전에는 없더니 화방재 정상에서 만항재를 넘어 고한으로 떨어지는 잘 닦인 지방도로가 있어 넘어보니 참으로 절경이다. 만항재 고갯마루에는 함백산 정상이 부르면 들릴 듯 지척으로 다가서 있었다.
만항재를 넘어 골짜기가 고한에 닿기 전에 만나는 아담한 옛 절이 적멸보궁의 도량 정암사다. 정암사 계곡에는 열목어가 산다. 광산이 한창이던 무렵에도 이 곳은 차고 맑은 물이 더없이 좋던 곳인데 웬일인지 물빛이 예전만 못하다. 정암사에서 오리 남짓 골짜기를 타고 내리면 고한읍에서 두문동재로 오르는 갈래길을 만난다. 이로부터는 골짜기마다 걸린 탄광에서 흘러내린 물이 온통 시커먼 냇물을 이루는 곳인데 탄광들이 문을 닫은 지금은 암회색을 띠고 있다. 갱구에서 나오는 폐수를 정화하기 위해 약품처리를 하는 탓이란다.
지금의 고한에는 오랜 논란 끝에 인근 백운산(1,426m) 기슭으로 결정된 카지노 사업에 대한 이야기만 무성하다. '살다보니 어쩌다가 도박장 따위에 목을 매는 신세'가 되었지만 언감생심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닌 것을 어쩌랴. 아니 그보다도 더욱 절박한 것은 당장 카지노가 밥줄에 보탬을 줄 5년 후까지 버틸 힘이 없다는 것이다.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일마저도 날로 힘겨워지는 지금, 무작정 카지노만 바라보며 다만 2, 3년이라도 견뎌낼 일이 고한 사람들에겐 그저 난감한 지경이다.
세상 문 닫고 돌아앉은 두문동
고한읍에서 20리, 다시 두문동재 정상에서 태백까지 30리. 두문동재는 그렇게 험준한 50리 길을 38번 국도가 되어 넘는다. 두문동으로 오르는 길은 온통 버려진 탄더미가 그대로 산을 이루고 광부 일가들이 두고 간 빈집들이 초췌한 몰골로 즐비하다. 그래도 누군가의 손길이 탄더미가 쌓인 산비탈마다 애써 나무라도 심은 듯 듬성듬성 자라는 초목들이 반갑고 더러 길가에 손 흔드는 갈꽃들은 그 어느 땅보다도 한결 어여쁘다.
두문동(杜門洞)은 본래 북녘 땅 개풍군의 지명이다. 개성 송악산 서쪽 자락 만수산과 빈봉산에 각각 두 곳의 두문동이 있었다. 『개풍군지』를 들추어보니 만수산의 서두문동에는 고려의 문신 72인이 은둔했고, 빈봉산의 동두문동에는 무신 48인이 숨어 살았다 한다. 전설을 따르자면, 회유에 지친 조선의 태조는 끝내 그 두 곳의 두문동에 불을 질렀다. 많은 이들은 그렇게 불에 타 죽고 살아남은 일곱 충신이 흘러간 곳이 바로 정선의 고한 땅이었다. 또한 변함없이 두문불출하였으니 이름 역시 두문동이다.
두문동은 말 그대로 참혹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했다는 대성초등학교는 월요일 오전인데도 아이들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는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교실마다 가득했던 아이들은 이제 고작 10명뿐이란다. 광부인 듯한 중년의 사내 하나가 벌써부터 벌겋게 낮술이 올라 운동장을 서성이며 아무렇게나 삿대질을 해대고 골짜기에는 시커먼 폐수와 함께 버려진 기계에서 흘러내린 녹물이 벌겋게 고였다. 끼니를 걸렀는지 쓰레기 더미를 뒤집는 동네 강아지들을 쫓으며 한 집을 지나면 대여섯 집은 빈집이다. 아뿔싸, 두문동은 이제 더 이상 사람의 삶터가 아니었다.
백두대간에서 갈래치는 낙동정맥
두문동을 나와 무거운 마음을 들고 두문동재를 오른다. 이곳의 이정표는 물론 지도에도 하나같이 두문동재를 싸리재라 적었다. 그렇지만 싸리재는 재 너머 싸리밭에서 호명골로 넘어가는 또 다른 고개라는 게 태백문화원
두문동재 정상에 서면 절대 놓칠 수 없는 볼거리 중의 하나가 바로 매봉산이다. 매봉산의 한 봉우리(1,145m)에서 바야흐로 백두대간과 갈래치는 낙동정맥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매봉산 위쪽의 백두대간 일부와 한 줄로 그어 태백산맥이라 잘못 부르는 그 낙동정맥은 이로부터 부산 땅 몰운대까지의 천리 길을 떠나간다. 그 낙동정맥과 내륙으로 지리산까지 내달리는 백두대간이 벌린 품안이 바로 낙동강 수계의 경상도 땅이다.
낙동정맥이 분기하는 매봉산의 장관을 바라보며 두문동재를 넘어서면 그로부터는 태백 땅이다. 친절하게도 고갯길 중턱에 널찍한 빈터를 만들어 차를 세우고 살아 꿈틀거리는 큰 산 연봉을 바라보며 잠시 쉬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곳이 있다. 아주 급한 길이 아니라면 꼭 한 번쯤 걸음을 멈추어 결코 후회될 바가 없는 곳이다. 그 곳에 앉아 담배 한 대 참이 지나면 백두산에 뻗어내려 국토의 척량을 이루는 장중한 산줄기의 힘이 온몸에 전류처럼 흐른다. 늘 살아 있음으로 또한 힘차게 용솟음치는.
끝내 잠 못 이룬 태백의 밤
그날 저녁, 태백의 한 여관방을 뒹굴면서 나는 끝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낮에 보고 온 그 황량한 두문동 생각이 도무지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희망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아니 희망없음이란 또한 무엇이겠는가. 어린 아들딸들이 공부하는 학교 한 쪽에서 아침부터 술판을 벌이는 무기력한 아비들. 병든 지아비와 철없는 자식들을 버리고 대처로 떠난 무정한 어미들. 진폐보다도 훨씬 더 무섭고 몹쓸 병이 되어 두억시니처럼 마을을 뒤덮고 있는 깜깜한 절망.
새벽 무렵, 까무륵 잠이 들었다가 나는 꿈을 꾸었다. 몇 해 전에 다녀온 적이 있는 베트남 남부의 광활한 벌판이었다. 미군에 의해 무차별 살포된 에이전트 오렌지(고엽제)의 땅. 그 황량한 죽음의 땅에 다시 풀씨가 날고 초목이 새순을 틔워 마침내 지붕보다 높이 자란 열대우림을 보면서 나는 생명에 대한 끝없는 경외와 존경으로 눈물을 흘렸다. 지금은 비록 검고 숨막히는 땅. 틀림없이 저 황폐한, 가도 가도 탄가루뿐인 산천에도 생명의 나무가 다시 자라고 들꽃들이 다투어 피는 봄날은 꼭 오리니, 서러워 말라 두문동이여! 지난 날 춥고 배고팠던 시절, 우리들의 시린 등을 덥혀주던 참으로 따듯했던 한 시대의 온돌이여!
김하돈 글 『함께 사는 길』(97/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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