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漢南正脈이란
경기도 안성시 칠장산(七長山)에서 북서쪽으로 뻗어 김포시의 문수산(文殊山)에 이르는
한강 이남으로 형성된 13정맥중에 하나다
백두대간상의 속리산 천황봉에서 가지를 쳐나온 한남금북정맥(漢南錦北正脈)이 끝나는 칠장산에서
북서로 해발고도 200m 내외의 낮은 산들이 이어져 한강 본류와 남한강 남부유역의 분수령을 이룬다
이 산줄기를 이루는 산들은 도덕산·국사봉·상봉·달기봉·무너미고개·함박산(函朴山)·학고개·부아산
(負兒山)·메주고개·할미성·응봉(鷹峰)·형제봉·광교산(光敎山)·백운산·수리산(修理山)·소래산(蘇來山)·
성주산(聖住山)·철마산·계양산(桂陽山)·가현봉(歌弦峰)·필봉산(筆峰山)·학운산(鶴雲山)·것고개·문수산
등이고 도상거리 약190km로 이어진다
산경표에는
<백운산 안성 동쪽10리,양성 남쪽12리>-<구봉산 양지 남쪽30리,죽산 서북쪽 25리>- <대,소곡돈현>-
<성륜산 양지 남쪽40리>-<수유산>-<부아산 용인 동남쪽20리>-<보개산 용인 동남쪽13리(일명 석성산)>-
<석성산>-<객망현>-<광교산 광주 서남쪽50리,수원 동북쪽30리,용인 서쪽20리>-<사근현>-
<오봉산 광주 서쪽60리>-<수리산 일명:견불산 또는 태을산>-<오자산 안산 서쪽10리>-
<소래산 인천 동쪽20리>-<성현 인천부 동쪽>- <주안산 인천 북쪽15리(11리)>-<원적산 부평 서쪽15리>-
<경명산>-<북성산 김포군 남쪽1리>- <가현산 김포 서쪽15리>-<약산 통진 남쪽24리>-
<문수산(문수산성) 일명:비아산 통진부 북쪽10리 (서쪽으로 갑곳진에 이른다> 로 기록 되어있다
개성 김포 인천 안양 수원 용인 안성 1/5만 지형도
한남정맥 1구간
보구곳리-문수산-12번 군도-56번군도-고인돌-48번 국도(것고개)-도수동고개-송마1리
◀개 요▶
한남정맥은 능선 자체가 100~200m대의 낮은 야산지대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현재의 수도권에 인접해 있다보니 수도권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대도시의 개발들로 그나마의 맥이 인위적으로 파괴되어 있어 그 맥을 찾아가기란 쉽지 않을뿐더러 능선에
주재하고있는 많은 부대들로 인해 때로는 마루금을 비켜나서 지나가야도 하는등 여러 어려움이 존재하는 그런 정맥이다
첫 구간으로 잡은 상기 구간이야말로 예전 군사정권 시절이라면 지나갈 엄두조차 낼 수 없었던 곳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전방 지역에다가 곳 곳에 산재한 해병부대들,
첫 걸음을 떼는 보구곳리마을에서 능선을 바라보면 대강 어디로 올라야 할 것인지 감이 잡혀올 것이며 일단 능선으로 붙으면
뚜렷한 등로와 표지기들을 볼 수있다
처음으로 주의해야할 곳은 문수산 정상에서 내려서면서 몇 분 후 뚜렷한 산길을 버리고 왼쪽으로 꺽어지는 정맥의 마루금을
잘 찾아야하고 내려서면 만나는 군도에서 “쌍용대로” 라고 이름 붙여진 군 작전도로를 잘 따라갈 일이다
작전도로가 끝난 x105m봉을 내려선 후 처음 만나는 군부대 철조망 이 후 “김녕 김공” 무덤위 x80m봉에서 56번 군도롤
내려설 때 마루금을 잘 찾아야한다
56번 군도상에서 당연히 숲이있는 산을 마루금으로 생각하며 찾으려면 큰 오산이다
마루금은 시멘트 도로를 따르며 “에덴농축”이라는 간판이있는 마루턱에서 도로를 버리고 숲으로 오르고 이 후 공장들이
보이는 능선을 지나가고 12번 군도롤 내려선다
12번 군도상의 금파가든 뒤 고인돌을 지나 다시 군부대 철조망을 따르며 진행하다보면 통신탑이 있는 봉우리에서 초병들의
제지를 받게되며 이 곳에서 완전히 마루금을 놓친체 최대한 마루금을 가까이한체 가시숲길을 헤치며 빙 빙 돌아 진행하다보면
군부대와 아파트의 철조망을 죄 지은 사람 마냥 숨어서 넘어 진행하면 48번 국도상의 것고개 다
청룡부대 정문이 위치한 것고개를 조심스럽게 건너서 건너편 마루금으로 붙으면 또다시 군부대의 철조망을 지나 △72.8m봉
이후 마루금을 잘 찾아야하며 공동묘지를 지나 나타나는 공장들이 밀집한 도수동고개에서는 “금성공압”앞의 산길로
접어들어야한다
그러나 다시 시멘트길이 나타나고 정맥은 철망이 가로 막으니 철망안으로 진행해야 마루금이 제대로 진행되는 것이니
유념할 일이다
이 후 사현마을앞까지 진행할 때도 능선은 가시넝쿨과 잡목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철망 너머 밭 지대로 마루금을 놓치지
않으며 진행할 일이다
사현마을앞 도로에서부터는 마루금은 차도를 따라 송마1리까지 이어지니 유념할 일이다
◀산행 후기▶
2003년11월9일 (일) 날 씨 : 흐 림
홀로산행
사실 한남정맥을 가겠다고 생각만했지 어디서 어떤 교통편을 이용해야 하는지 조차도 토요일 오전까지 전혀 아무것 도 모르는
막연하게 약간의 상식뿐,
이틀동안 추절거리며 내리는 비도 그렇고, 여전히 일요일에도 비가 내릴거라는 예보도 한남정맥에 첫 발을 디디는 것을
썩 마음에 내키지않을 정도로 혼란스럽다
전혀 준비도 안된 상태에서 지도만 챙겨서 던져두고 토요일 밤까지 몇 병의 술에 헤롱(?) 거리다가 잠에 빠져들었고 아침에
눈을 떠보니 06시가 넘었으니 가야하나 말아야하나 그래도 첫 발을 내디딜 보구곳리가 서울에서 먼거리가 아니기에
대충 배낭에 옷만 꾸리고 목적지까지 태워주겠다는 아내에게 신촌터미널까지만 태워달라고만 했는대도 다행히 강화행
07시 버스를 탈 수 있었고 1시간만인 08시 김포대학 입구에서 하차한다
동네 수퍼에서 빵 몇 개와 캔 맥주 하나 작은 식수병 하나 챙기고 1km거리의 성동검문소 쪽으로 발길을 옮기는데 이 동네에
뭐 등산할 산도 없을텐데 배낭메고 걸어가는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건 지나가는 차량들도 그렇고 하기야 수퍼마킷의 주인도
의아해한다
☞직행버스를 이용했다면 김포대학앞에서 내린다 산행이 시작되는 보구곳리
잔뜩 찌푸린 하늘인데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고 검문소도 지나고 성동리로 향하는 길목에는 간간이 차량이 다니기는 하나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태워주지 않는다
왼쪽 바다 건너로 강화도와 군부대의 철조망등이 찌푸린 하늘과 함께 을씨년스럽게 보이니 내 한남정맥의 첫걸음은 그렇게
경쾌하지만은 아닌 것 같고 잠시 후 마침 달려오는 버스에 몸을 실으니 금새 오늘의 첫 목적지 보구곳리 마을에 내려준다
마을앞에서 동쪽의 산쪽을 바라보며 최대한 지능선이 뻗어내려간 쪽으로 향하다보니 “전망대가든”도 지나고 달라붙기
좋은 지능선으로 치고 오르니 족적은 나타난다
그렇게 내 한남정맥 종주산행의 첫 걸음은 어슬프고 이상하게 시작되었고,(08시30분)
잠시 후 눈에 익은 몇 개의 표지기를 보자니 제대로 올라붙은 것 이 틀림없고 십 수년생 소나무들과 노간주 그리고 굴참나무
군락들이 빼곡한데 산행시작 15분 여 후 올라선 사방이 확 터진 전망대에서
얇은 옷으로 갈아 입으며 강 건너 북쪽을 바라보니 개성의 송악산이 너무도 뚜렷히 바라보이니 분단의 아픔 운운 할 수
밖에없다
☞ 산행시작 얼마 지나지 않아 북쪽을 바라보면 한강 건너 개성의 송악산이 보인다
09시 치고 오르니 참호가 있는 두 번째 봉우리에 오르니 남쪽으로 문수산이 뚜렷하고 서쪽 강화교가 내려다 보이는
갑곳진이다
◀갑곶나루 선착장 석축로▶
지방기념물 제108호
월곶면 성동리271-22번지에 소재한 갑곶나루선착장 석축로(石築路)는 지방기념물 제108호 로서 성동리와 강화군 갑곶리
사이를 배편으로 연결하던 나루터이다
갑곶이라는 명칭은 고려 23대 고종이 몽고군의 침입을 당하여 강화도를 몽진 할 때 이곳이 대안과의 거리도 짧고 수심이
얕아서 군사들이 갑옷을 벗어 쌓아놓고 건널 수 있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이곳은 정묘호란(丁卯胡亂) 당시에도 인조임금이 건넜던 사실이 있고 병자호란(丙子胡亂)당시에는 봉림대군이 수어했던
곳이기도 하며 병인양요(丙寅洋擾)때에는 격전을 치루었던 역사적 실전의 현장이기도 한 곳이다
처음에는 나루터 시설이 없이 이용되다가 조선초기 박신에 의하여 1419∼1432년 사이에 최초로 석축로가 축조되어 일제때
까지 약 500년간 사용되어 오다가 그후 교통수단의 변천으로 1920년경에 성동리와 강화 선정리에 새로운 나루터가 신설되어
옛나루터는 폐쇄 되었고 해방후 옛나루터 부근에 선박으로 자동차를 나르는 나루터가 생겨 이용되다가 1969년 강화대교가
건설 개통후 두 나루터도 모두 폐쇄되었다
☞ 강화대교가 내려다 보이고 그 건너는 강화도 다
첫 번째 봉우리에서 잠시 내려서면 다시 살작 올랐다가 뚝 떨어져 내리면 소나무가 무성한 사거리 안부에 내려선 후 문수산
정상을 향한 오름이 시작된다
09시32분 전위봉에 오르니 문수산성이 시작되고 부부산행객들과 인사를 나눈다
문수산성
문수산(376m)에 소재한 문수산성은 사적 제139호로서 조선19대 숙종20년(1694)에 바다로 들어오는 외적을 막고 강화도
방어를 위해 쌓은 성으로 축성 당시에는 북문, 서문남문이 있었으나 병인양요때 북문, 서문, 남문이 병화로 소(燒)되었으며,
북문을 93년부터 복원에 들어가 95년도에 복원을 끝냈으며, 현재 성곽 복원을 진행중에 있으며 성의 총길이는 6㎞이며현재
남아있는 성의 길이는 4㎞이다.
구한말 외세의 침략에 저항한 산 교육장으로 의의가 깊은 곳이며,
가까이엔 신라 진성여왕 때 창건하였다는 문수사가 있다」.
☞문수산 정상일대와 처음 산행이 시작된 보구곳리 위쪽 능선과 강 건너 북한땅
잠시 평탄한 산성에는 석문이 보이고 40분 오른 봉우리에는 군 시설물로 출입금지 철조망으로 이루어져 있어 우측으로 휘돌아
오르다보니 09시55분에 정상에 오른다
잔디가 좋은 넓은 헬기장의 정상에는 문수산21,1981년 재설의 삼각점이 설치되어있고 일단의 산행객들이 아침부터 정상주를
마신다고 난리들이다
하기야 아침도 먹지않는 나도 캔 맥주 하나와 빵조각으로 잠시 요기를하고 동쪽으로 내려서는 문수산 정상을 출발한 시간이
10시03분 인데 저 멀리 남쪽으로 가물거리며 바라보이는 산이 시설물이 있는 인천의 계양산인 것같다
가파르게 내려서다가 7분 여 후 조심해야할 곳이 있는 것같다
무심코 잘 난 등로를 따라 내려서다보니 방향도 이상하고 평야지대쪽로 내려서는 것같아 다시 되돌아 오르니 굴참나무
군락사이로 날등이 형성되어있고 그 사이로 족적과 표지기들이 설치되어 있으며 곧이어 바위지대가 나타난다
정맥의 날등을따라 삐삐선을 설치되어있어 따라 내려서니 10시23분 폐 타이어로 교통호가 설치된 넓은 길이나타나며
부드러운 송림숲이 펼쳐지고 곧 이어 차량이 다니는 2번 군도 다
☞문수산에서 내려보면 정맥은 끊어질 듯 이어지고 처음 만나는 22번 군도
시멘트 군도를 건너면 산위로 황토가 드러난 넓은 군 작전도로가 펼쳐져있는데 쌍용대로라고 쓰여있고 한동안 이 길을 따라
진행된다
양쪽 아래로 마을들이 가까이 내려다 보이고 북동쪽으로 애기봉도 확실히 조망되는 이 곳에서 고집스럽게 날등을 따라
가보지만 이내 작전도로로 내려서고 말게된다
10시50분 교통호가있고 군 삼각점이 설치된 x105m봉에 올라서 10분간 주저앉아 주위를 살핀 후 저 아래 군부대 철조망
쪽으로 내려서는데 제대로 내려서다가 뭐에 홀린 듯 다시 올라서서 다른 쪽의 능선을 살펴보나 역시 조금전 내려섰던 곳으로
진행하는데 이런일은 오늘 구간에서 자주 나타나는데 모호한 구간에서 자꾸 내자신을 믿지못하는것에 기인한다
철조망을 따라 내려서다보면 좌측으로 많은 묘지들이 바라보이고 다시 전면으로 오르니
11시10분 “숙부인 한양조씨 김녕김공”무덤위의 x80m봉으로 올라서는데 이 곳에도 군삼각점 이 설치되어 있는데
잡목이 빼곡하고 족적이나 산길이 모호해서 약 20분 정도 뱅뱅돌게 된다
결국은 봉우리 좌측으로 약간은 평탄한 듯한 족적을 살피며 떨어져 내리니 56번 군도로 내려서는데 때마침 무슨 마라톤행사를
하는지 차량이 통제되고 교통순찰차와 차량들의 옥신각신하는 모습들을 목격한다
☞군작전도로인 쌍용대로(?)와 x105m봉에서 올려본 문수산
정맥은 한동안 남동쪽 “가마골”쪽으로 이어지는 시멘트도로를 따라가야하는데 솔직히 남의 자료를 준비해오지 못한 관계로
무조건 산이 형성된쪽으로만 살피게되니 진행할 곳을 한동안 찾지못해 커다란 지형도와 나침반을 열심히 보는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던 교통경찰이 뭐하러 다니느냐고 물어온다
이 곳에서도 많은 시간을 뺏기고 시멘트도로를 따라서 진행하다보니 12시 에덴농축 간판이 보이는 마루턱에서 도로를 버리고
능선의 숲으로 들어서니 퀴퀴한 냄새가 진동하고 온갖 생활쓰레기를 마루금 곳 곳에 버려놓았는데 그 깟놈의 돈 몇 푼
아끼자고 너무한 짓들이다
골프연습장의 그물망도 보이고 사람들과 개들도 보이는 민가를 지나서 전면의 봉우리로 오르고 (약x90m봉)
12시15분 기독교인들 묘지를 지나 내려서니 우측으로 붉고 푸른 지붕들의 공장들이 나타나고 제일 위쪽 공장을 지으면서
마루금을 마구 훼손한 흔적이 보인다
좌측으로 “고척동”으로, 우측은 바로 공장지대로 내려서는 뚜렷하고 큰길을 지나서 오른다 다시 교통호 시설이있는 봉우리에
올라섰다가 내려서니 개들이 요란하게 짓어대는 민가를 지나 길 건너 “금파가든”의 간판이 보이는 12번 군도에 내려서니
차량들이 씽씽 달려간다
☞56번 군도에서 시멘트도로를 따르면 에덴농축간판 정맥은 공장건설로 파헤쳐지고
음식점은 많은데 옷닭등 혼자서 먹을 음식들이 아니라서 그냥 진행하려다가 저 아래 남정골 방향으로 칼국수집이 보여서
칼국수 한 그릇에 소주 한병까지 마신체 다음 여정에 들어간다
다시 금파가든앞에서 정맥을 시작하는 시간이 13시03분이고 잠시 후 “고정리 지석묘” 에 올라서서 사진도찍고 재정비 할일로
잠시 지체하는데 옆의 해병부대에서 우렁찬소리 들리고
「통진면 고정리 산62에 소재한 고정리 지석묘(支石墓)는 지방기념물 제91호로서 선사시대(先史時代)에 해당하는 청동기시대
(靑銅器時代)에 살았던 사람들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으며 돌맨(DOLMEN) 또는 고인돌이라 불리고 있다
총 3기의 고인돌이 있는데, 이 가운데 1기는 탁자식 고인돌이고,
나머지 2기는 받침돌 부분이 땅속에 묻혀 정확한 구조를 확인하기 어렵다
확인이 가능한 탁자식 고인돌의 덮개돌 길이는 약 2.3m이며, 두께는 0.83m이다」
13시15분 고인돌을 출발하고 바로 돌계단을 내려섰다가 올라서니 우측으로 부대철조망을 끼고 오르니
슬쩍 내려서면 억새와 폐 타이어로 교통호가 조성된 지역을 지나 오름길이 이어지고 올라서면 다시 전면을 가로막는 부대의
철조망이다
☞ 12번 군도상의 금파가든앞 고정리 지석묘(고인돌)
철조망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꺽어지며 철조망을 우측으로 끼고 진행한다
12시38분 좌측의 좋은 길을 버리고 그대로 철조망을끼고 남족으로 휘어져 올라가니 통신탑이 서있는 봉우리에서 3명의
초병에 의해서 진행을 제지당한다
사정해봐야 안된다는 것을 안다 그동안 많은 정맥종주자들을 이들은 보았을 것이다
다시 잠깐 뒤로 돌아내려선후 사면을치고 옆으로 돌다보니 교통호도 보이고 잡목과 가시의 저항이 만만치않은 이 일대에서
많은 시간을 뺏기며 헤메인다
군부대와 아파트가 접경을 이루는 지역을 지은죄도 없는데 숨듯이 이리저리 진행하며 아침에 버스를 타고 지나갔던
청룡부대 정문이있는 “것고개”도착이 14시가 되어버렸다
14시20분 왼쪽 아래로 청룡사라는 사찰이 보이는데 짇은 송림숲아래 푹신한 갈비가 기분좋게 밟힌다
14시50분 군 삼각점이있는 봉우리에 올라서고 동쪽으로 슬그머니 내려서니 좌측 아래로 역시 군부대를 끼고 지나니 과수원과
우측 아래로 민가가 보이고 군부대의 철조망에는 육군 제9166부대장의 경고판이 붙어있고 서쪽으로 넓은 능선으로 오른다
☞마송리 아파트가 바라보이는 48번 국도 것고개 과수원에서 내려보이는 민가
15시10분 “김포 409 1987년 재설” 삼각점이있는 △72.8m봉에 올라선 후 다시 이쪽 저쪽 상당히 헤메며 20 여분을 지체한 후
정맥의 가닥을 잡아나가는데 개사육장이 있는 듯 요란하게 개소리가 들려오고 또 한동안 철조망을 따라 진행한다
15시45분 공원묘지를 내려서니 공장들이 나타나고 차도를따라 잠시 오르니 도수동고개 인데 “금성공압‘ ”신성스텐리스“등의
공장에 보이는 사람들에게 현재의 지명을 물으니 외지 사람들이라 지명을 모른다
하고 나이먹은 노인이 지나가기에 물어보니 우측의 저 아래 마을이 “절골”이라하니 지도와 일치해보니 도수동고개가
틀림없다
“금성공압”앞 전면의 정맥의 숲으로 올라선 것이 16시이고 13분 후 우측으로 진행하다 내려서니 시멘트 길이 나타나고 전면에
철조망이 막아서있다
이 곳에서도 한참 오락가락하다가 왼쪽에 새로지은 공장뒤쪽과 오른쪽으로 철망을끼고 잠시 진행하니 철망이 없어지며
다시 능선으로 붙을 수있었는데 잘 조성된 “전주이씨 가족묘“에 다달하니 많은 표지기를 볼 수 있었고 이 가족묘를 지나며
또 혼동에 빠진다
☞ △72.8m봉의 삼각점과 공장들이 밀집한 도수동고개의 금성공압
분명 정맥이라고 생각하며 진행해야할 능선으로는 온통 가시넝쿨과 잡목들로 도저히 빠져나갈 수가 없어서 이 곳 저 곳
헤메이느라 시간을 뺏기고만다
참으로 웃기는게 능선 날등의 우측으로 철조망이 있었는데 그 쪽은 밭으로 조성되어 있고 민가가 있어 철조망을 넘으면
안되는 것으로 생각하며 다른 길을 찾았던 것이다
하기야 그 쪽으로 표지기들만 달려있었어도 그런 헤메임이 있었을 것이며 사전에 선답자들의 산행기만 제대로 메모해
갔던들 오늘 같은 헤메임은 덜 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헤메다가 “사현마을”앞의 도로를 따라 “국도기계”공장앞의 고개 꼭대기 까지 진행하니
17시가 넘어서고 있었고 벌서 어둠이 찾아온다
문제는 어둠속에서 전면의 숲 어디엔가 표지기를 찾느라 많은 시간을 뺏긴 것이다
산행은 여기서 접는다 하더라도 다음번 들머리라도 알아놓아야한다는 생각에 랜턴을 켜서 숲 사이 여기저기를 비추어 보는데
표지기가 나타날 일이없다
☞전주이씨 가족묘에서 능선을 잘 찾아야한다 사현마을을 지난 도로
지나가는 차량들에서 나를보고 뭐하는 사람일까 의문이 일었을거다
결국은 표지기를 찾지못하고 도로를 따라 저 아래 불빛이 많은 곳으로 털레 털레 걷는다
사실 선답자들의 산행기만 제대로 인용했더라면 내가 털레 털래 걷는 이 도로가 마루금 이라는 것을 알았을텐데 불빛이
비치는 동네에 들어서서 우선 큰 가계에서 캔 맥주 하나를 사서 마시며 킬문님게 전화를 하며 주인아주머니께 동네 이름을
물어보니 “송마1리” 팔거리라니 킬문님과의 전화통화와 내 평소 조금씩 알고있던 지식을 합해보니
아 ~니! 내가 게속 한남정맥의 마루금을 따라온 것 일진데 나는 그 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갑자기 튀어나가 일대를 살펴보니 “수산나 요양원”의 입간판이 보인다
17시30분 까지 난 한남정맥의 마루금을 나도 모른체 걸어왔던 것이다
휴일날은 대중교통편이 없다는 아주머니의 말에 대곳리 택시를 이용해서 대곳리에 도착하고 한참을 기다려서 김포행 버스에
오르니 웬! 동남아 근로자들이 절반이 넘는 버스안이다
그리고 다시 신촌행 버스로 갈아타고 집으로 귀가해도 모두가 잠이깬 상태이니 한남은 역시 서울이나 수도권 산꾼들의
나와바리(?)임에는 틀림없는 것같다. -狂-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