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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역 |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장전리 / 대화면 하안미리 | ||
지명종류 |
산 |
고시일자 |
2003-03-08 |
고시지명 |
주왕산 |
한 자 |
住王山 |
유래 |
대동여지도에 ‘住王山’으로 표기되었으나, 일제 때 ‘王’자가 일본식 ‘旺’자로 변하고 ‘住’자도 中‘으로 바뀐 것을 원래의 지명으로 환원함 |
인왕산 지명변경 이후 발왕산, 중왕산, 가리왕산의 旺자도 일제잔재란 이유로 發王山, 住王山, 加里王山이 되었다(2002년, 2003년3월). 아직 旺자가 붙어있는 산은 金旺山, 火旺山, 烈旺山이다.
일제시대에 발행된 지도(大正4년=1915, 정선)를 보면 中旺山(1376.1)로 표기가 되어 있고, 대동여지도에는 住王山이다. 인왕산과 달리 그런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의 주장에 딱 들어맞는다.(인왕산은 거꾸로 일제 지형도에는 仁王山이고 후에 우리정부가 발행한 지형도에 仁旺山이다)
대동여지도를 자세히 짚어보면 현재의 주왕지맥. 즉, 평창강과 남한강의 합수점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에서 주왕산은 옆으로 비껴나 있다. 대동여지도의 주왕산이 있는 산줄기는 합수점으로 가는 주맥의 동쪽 건너편 산줄기인 것이다. 물론 대동여지도를 현재의 지형도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는게 사실이나, 어디에서든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주장에다 비슷한 모든걸 끌어 맞춘다.
그 주장이 “분명히 잘못된” 주장이 아닐 경우, 그 목소리는 그대로 힘을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일제잔재”를 털어 낸다는데 누가 감히 반대할 것인가. 그렇더라도 개정의 근거로 대동여지도를 내세웠으면, 바로 옆의 가리왕산은 “가리산(加里山)”이 되어야 하는것인데 이는 또 그냥 넘어갔다. 오로지 그들의 타겟트는 “일본왕 = 旺”이었다.
“旺 = 日+王” 일본의 왕을 뜻한다는 논리. 참으로 어리석고 무지한 해석이다. 어느 백성이 자기의 왕을 “왕”이라 칭하는가. 우리 조선사람들이 우리의 임금을 “조선왕”이라 불렀는가. “일본왕”이란 우리 조선사람들이나 중국에서 일본의 왕을 비하해 부르는 호칭이다. 그들의 천황을 그들 스스로 “일본왕”이라 칭할 수 있다고 보는가. 구족을 멸하고도 남을 일이다.
어찌되었든,
일제가 그랬는지 아닌지는 물려두고라도, 그렇게 어렵사리 찾은 민족정기가 어찌하여 그때뿐 인지가 궁금하다. 지리정보원의 고시변경만 그러할 뿐, 오늘현재 강원도나 평창군의 어디를 찾아봐도 중왕산은 있는데 주왕산은 없다. 현지 정상에도 중왕산으로 적혀있던 양철판에 중자의 받침 ‘ㅇ' 을 지운 낙서판 같은 정상표지판이 바닥에 나뒹굴 뿐이다.
행정절차가 마무리 되었다면 의당 제대로 된 정상석 하나 놓고 변경이 된 안내문도 걸고, 군이나 도의 관련자료들도 정비를 해야 모든 백성이 그런줄로 알 것 아닌가. 법절차 완료하고 메스컴에 한건 올린것으로 그들의 성과는 달성되었음인지 그걸로 끝이다. 애초 시작부터 제대로 된 고증도 없이 벌린 일이라 더 이상의 딴소리 나오기 전에 얼른 마무리 짓고 말았는지도 모를 일이다만, 어쨌거나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국가에서 고시를 했으니 "주왕산"으로 가기는 한다마는 씁쓰레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리본들은 모두 가리왕산으로 가고, 지맥은 그 우측이다. 신나게 떨어진다만 눈이 깔려 있어 조심스럽다. 내림이 다하면 기복없이 고원분지 같은 길이다. 눈에 보이는건 앙상한 나무와 하얀 눈 뿐이다. 산죽밭인데도 산죽은 잎도 보이질 않으니, 눈 두께가 적어도 50cm는 되겠다. 그렇다면 우리는 눈이 없을 때 보다 지표면에서 50cm 위쪽을 걷고 있다는 말이 된다.
×1,235봉을 지나고는 삐죽삐죽한 바위들이 연이어 나온다. ×1245봉과의 중간쯤에 우측으로 절벽을 이루고 하안미리 일대가 다 내려다보이는 조망바위가 있다. 역시나 날이 맑으면 더 없는 조망대이겠지만 상당히 아쉽다.
어떤 바위에는 하얀 돌꽃이 피어 마치 바닷가 갯바위에 따깨비가 붙은 것처럼 보인다. 특이한 것은 바위가 하나의 덩어리로 이루어진 화강암이 아니라 작은 여러조각들이 붙어 큰 바위를 이루고 있어 크게 흔들리면 우수수 떨어져 내릴 것도 같다.
벽파령까지 ×1235, ×1245, × 1241봉이 일정한 간격으로 벌어져 있어 하나를 넘을 때 마다 남은 거리와 시간이 쉽게 짐작이 된다.
×1,241봉을 넘으면 더 이상 오르막은 없다. 나무사이로 벽파령 오르는 임도가 언뜻언뜻 보이고, 암릉을 좌우로 피해 돌아 내려가면 송전철탑이 보인다.
(대화면 하안미리)
(남병산)
(벽파령)
벽파령 (碧波嶺 993m)
산이 높아서 산상에서 주위를 바라보면 크고 작은 산들이 중중첩첩하여 마치 푸른 파도와 같다는 뜻으로 벽파령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이름도 벽소령과 닮아, 임도가 넘어가는 고개쯤 되겠다 짐작했는데 겨우 사람하나 지나다닐만한 묵은 고갯길이다.
지도에 좌우로 임도가 보이는데, 직선거리로 왼쪽(동)은 200m, 우측(서)은 400m쯤 된다. 가리왕산 조림 안내도에도 있듯이 이 일대는 대단위 조림지역이라 임도가 온산을 휘감고 있다. 우리는 우측 하안미리로 내려간다.
불행히도(!) 임도가 마루금을 넘지는 않기 때문에 산길을 좀 밟아야 임도에 내려서겠는데, 그런대로 길 흔적은 뚜렷하다. S자로 이리저리 휘돌며 13분 내려오니 임도에 떨어진다. 임도바닥은 눈이 깔려있어 그렇지 상태는 양호한 편이라 승용차도 무리없이 올라오겠다.
100m 아래에 차단기가 설치되어 있으나 파이프가 휜채로 재껴져 있다. [입산통제] 안내문에는 현위치 영암사로 되어 있는데 절은 어디쯤 있는지 모르겠다. 임도를 따라 차단기에서 20분 내려가니 우측에 [몽골캠프] 팻말이 있는 삼거리를 지나고, 다리 건너 더 내려가니 버스가 보인다.
하안미리 마을 상단 (580m)
상수도 취수시설과 나무로 지은 별장 한 채가 있다. 여장을 풀고 있으니 위쪽 다리 옆에 대놨던 봉고트럭이 내려 오길래, 트럭주인한테 다음구간 벽파령 근처까지 트럭으로 택배를 예약했다. 6만원에 합의했는데 다소 비싼거 같다만 “지역경제에 일조하자”로 뜻을 모았다.
시간이 늦어, 목욕은 생략하고 평창읍 ‘살구실막국수’에 들러 막국수 한 그릇에다, 오늘 채취한 산삼같은 더덕주 한잔씩 돌아간다.
(벽파령 임도)
(하안미리 마을꼭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