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성면-용천리(龍川里)
용천리(龍川里)
용성면의 소재지에서 남동쪽으로 5킬로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하였다. 마을의 남북은 산으로 막혀 있으며 사이 골짜기에 들이 이루어져 있다. 행정구역상으로 1.2리가 있는데 1리는 용천, 2리는 도산이라 부른다.
1400년 무렵에 경주 김씨가 처음으로 개척하였다고 한다. 마을 입구에는 효자각이 있는데 조선 선조 무렵 효자 김정우(金正佑) 선생의 덕을 기리기 위하여 당시의 자인 현감이 세운 비각이다.
마을에 전해 오는 전설로는 용강초등학교 남동쪽에 있는 흰둥바위와 북서쪽에 있는 검은 바위가 있다. 학이 날아 들어 둥지를 튼 형국의 흰둥바위와 검둥개가 학이 그리워서 바위 위에서 짖는 형국을 한 검은 바위가 있다. 두 바위가 서로 마주 보면서 짝을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에 마주 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전설에 따라서 흰둥바위 앞에 나무를 심어서 가리고 있다고 한다. 나무를 베어버리고 두 바위가 서로 마주 보면 마을 전체에 큰 동요가 일어난다고 전해 온다.
::굼벌.구부리.구불.구화리(仇火里.求化里).용천(龍川).용천동::
본래 자인군 하동면의 지역으로서 굽이 진 곳에 벌판이 있다고 하여 굼벌이라고 하였다가 뒤에 달리 구부리.구불.구호리 또는 구룡산 밑이 되므로 용호.용천이라고 하였다.1914년 행정구역을 통합 할 때 도산리를 병합하여 용천동이라 하여 용성면에 들게 되었다고 한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1400년 경 조선조 초기에 경주 김씨 일가족이 비명현(飛鳴峴)의 칡덩굴을 걷고 들어와서 정착하였는데 지대가 평지이며 수리 시설이 좋아 근방에서 가장 큰 마을이 되엇다. 그 뒤 하천에서 용이 승천하였다 하여 용천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김황원(남, 74) 외 5명 제보)
::도산(道山.島山)::
용천동 남서쪽에 있는 마을이며 섬처럼 물이 양쪽으로 흘러 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약 200년 전에 대구에 살던 서중관(徐重觀)이 피난차 현재의 용천동에 들어 와 김씨 문중의 서당 훈장 선생으로 있으면서 아래쪽 맞은 편에 집을 지어 마을 이름을 도산이라고 불렀다.<김황원(남, 74) 외 5명 제보>
::구미재::
용천동 산굽이의 서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과거에 마을들이 이루어진 흔적은 없으나 산굽이를 돌아서 마을로 들어오게 되므로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김황원(남, 74) 외 5명 제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