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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상지 : 악희봉(940m, 충북 괴산)
2. 일 시 : 1997년 3월 16일 날씨 : 맑음
3. 참가자
최동경 이재하 길기현 최재분 오혜옥 김삼중 하창수 이상호 정년기 박종민
현대용 (이찬희) (임덕빈) (이 번) 김정복 전승환 김태욱 신현관 이순명
윤종혁 고창조 (총21명)
4. 운행 경로
(대전 → 증평 → 괴산 → 적석리 →)
입석마을 → 갈림길(좌측) → 안부 → 선바위 → 악희봉 정상 → 안부 →
갈림길 → 입석마을 →
(→ 갈때와 동일한 길 → 대전)
5. 산행 보고
가. 차량 운행
차량은 승용차 5대를 운행하였다. 예정 시각보다 늦게 도착한 회원들이 있어서 먼저 출발한 차량과 후미 차량이 30분의 차이가 났다. 신성동을 출발하여 고속도로로 증평까지 갔으며 갈때 올때 모두 소통이 잘 되었다. 적석리는 입석리라는 조그만 비석이 있는 버스정류장에서 진입하여야 한다.
08:40 신성동 출발. 10:20 적석리 마을 도착. 14:40 입석마을 출발. 17:30 신성동 도착(괴산 막걸리 시음회가 있어서 지연됨).
나. 산행
입석마을로 들어서이 3월 15일부터 5월 15일까지 입산금지라고 붙어있다. 입산통제는 없었으며 주로 관광버스를 이용한 단체산행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때마침 전날 저녁부터 눈이 내려 온산이 눈으로 덮혀 있었으며 하산 도중 Y자 갈림길에 도착할때까지 눈을 밟을 수 있었다. 나무에서 가끔씩 뭉태기로 눈이 떨어지곤 하여 산행을 즐겁게 하였다.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접어들면 5분정도 거리에 수량이 많은 물뜰 곳이 있다. 안부에 올라서서부터는 간간히 바의들이 나타나 산행에 묘미를 더해주었다. 산세는 그리 험하지 않고 아기자기하며 나무와 어울려 운치가 있었다. 휴식을 취할만한 넓은 곳은 동쪽 안부와 악희봉 정상 뿐이다. 정상에서 사진을 찍고 식사를 하였는데 간간히 바람이 불어 출발을 재촉하였다.
정상에서 5분쯤 내려서면 20m정도의 슬랩이 나타나는데 하반부는 크랙으로 되어있고 재미있으나 슬랩에 굵은 끈이 설치되어 있다. 슬랩지대 위의 나무에서 확보를 보며 원하는 회원들을 대상으로 크랙등반을 하였다.
슬랩을 올라서면 바로 안부가 나타나 하산하게 되며 쉽게 입석마을로 가게 된다. 갈림길 부근부터는 눈이 녹아 나타난 낙엽니 쪽 덮어있어 흡사 가을 산행을 연상케 하였다.
6. 장비 보고
공동장비 : 지도, 컴퍼스, 자일 9mm X 45m 1동, 10mm X 45m 1동, 슬링, 카라비너, 너트,
카메라 니콘 FM2 1대, 의약품 개인장비 : 수저, 시에라컵, 보온물통
7. 식량 : 개인 도시락, 보온 물통, 비상식(술), 간식(크래커, 사탕, 영양갱, 초콜릿, 귤
8. 회계 :
가. 수입 :
산악회 보조금 88,000
산행 참가비 5,000원 X 21= 105,000원
합계 193,000
나. 지출
하산주 42,000
차량운행비 20,000 X 5= 100,000
저녁 식사 51,000원 합계 193,000
9. 산 행 일 지
3월 16일 일요일 (날씨 : 맑음)
집결지인 신성동 대림상가 앞에 약속시간인 아침 8시 조금 늦게 도? 幣求?이외로 많은 이들이 모여있다. - 이거 웬 일? 오늘 무슨 경사인가? - 인원점검에 분주한 해수가 오늘 산행인원이 20명이나 된다고 한다. 매우 고무적인 사건으로 뭔가 되 가는 느낌이다. 시간관계 상 모이는데로 승용차에 탑승시켜 출발시킨다. 정복이 형이 마지막으로 도착하여 해수와 작별하고(그는 오늘 특근이란다.) 막차가 출발하니 시각이 8시 40분이다. 어젯 밤 내린 비는 갑자기 뚝 떨어진 수은주 관계로 먼 산의 머리를 하얗게 만들었다. 오늘 잘하면 설경을 보겠구나 하고 벌써부터 기분이 삼삼하다. 중부고속도로로 접어들은 차량이 오창휴게소에서 재집결한 후 동원된 차량 5대가 나란히 달린다. 그러고보니 윤종혁 형님의 자가용이 선망의 무쏘로 썩 괜챦은 놈으로 바뀌었다. 괴산을 거쳐 수안보로 가는 길에 장바위마을 근처의 갈금교라는 교량 오른쪽으로 진행해야 하는데 그 포인트를 못 찾아 잠시 왔다갔다 한 끝에 드디어 입석마을. 좁은 마을길에서 포터를 몰고나오던 동네 분인 듯한 아저씨가 교행하느라 잠시 멈춰있는 동안 퉁명스레 말을 건넨다. "어데 가시오""악희봉에요""돌아가시오 지금은 입산금지요". 아마도 이 한적한 시골에 쓰잘 데 없이 소란스런 외지인이 주는 것 없이 못마땅한 눈치다. 그 눈치에 익숙한 뺀질뺀질한 외지인이 "잘 알았어요 아저씨나 먼저 가세요" 하고 별꼴이야는 투로 대꾸한다. 회장님이 낭패라는 표정이다. 그러나 언제나처럼 국립공원이 아닌 이런 환경부 산하의 작은 산에는 행정력이 못 미치는 터, 배짱으로 불어터진 간을 믿고 진행. 아니나다를까? 「산불방지기간 입산금지」라는 커다란 현수막을 마주하고 마을 어귀 작은 공터에는 큼직한 관광버스가 한 대 주차되어 있다. 이 곳에도 어김없이 배부른 도시인이 떼거지로 논다리 산행을 자주하는 모양이다. 우리도 뭐 별로 다를 것은 없지만 아까 입 나온 아저씨 기분을 조금은 이해할 듯 하여 괜시리 미안스럽다. 아모튼 이런 동네는 자고로 텃세가 심한 터, 부랴부랴 배낭을 들쳐업고 가려운 뒤통수를 연료삼아 부지런히 걸음을 놓는다(10시 30분). 덕분에 속도가 마구 붙는다. 그저 길 따라 주욱 올라가니 얼마 되지않아 산 중이다. 앞 능선을 두고 양 쪽으로 난 계곡으로 길이 갈려 있다. 본격적인 산행들머리에 도착한 셈이다. 이제는 양심이 탈이 된 뒤통수 가려움도 사라지고, 동네어르신 눈총도 안심이다.
10시 55분, 땀 벤 파커들을 배낭에 쑤셔넣고 왼편 길로 드러선다. ? ? 차량운행 내내 먼 산 머리에 이고 있던 흰색 무게가 여기에도 만발이다. 기온이 살 살 오르니 나무머리에 이고 있던 눈들이 녹아 비를 뿌리고 간혹 우수수 몰아치는 골바 람이 또한 때 아닌 눈발을 날린다. 하늘이 수풀에 가려 날씨를 짐작할 수 없어 모두들 이게 정말 빈지 아닌지 긴가민가 하다보니 시야가 트인다. 11시 30분 경 능선 안부에 도착해서야 우리 머리 적시던 것들이 기온의 조화인 것을 안다. 담배 한모금 빨고 있으려니까 오랜만에 참가한 삼중이가 앞장을 선다. 정상까지 능선 머리를 밟고 가는 제법 가파르고 험한 길은 눈으로 덮혀 있는 데, 푹한 날씨 덕에 그다지 미끄럽지는 않다. 가끔 앞사람이 수 없이 문질러 뺀질뺀질해진 스탠스가 신경 쓰일 뿐, 3월에 기막힌 설경을 감상하는 때 아닌 축복을 만끽한다. 모두들 흥겨워 보인다. 네 갈레 능선으로 갈리는 뾰죽한 봉우리에 올라 오른 쪽에 솟은 또 하나의 봉우리를 보니 정상에서 사람들이 "야호" 한다. "저거 사전선거운동인 데, 野好는 야당지지라는 거 아냐?" 창조 형이 우스개소리를 하신다. 야호소리 나는 곳이 바로 악희봉 정상이다. 사전선거운동 안하느라 야호를 따라서 야호 없이 정상에 오른다. 정상 바로 밑에는 6∼7m정도 높이의 바위가 길 한켠으로 남자 거시기처럼 우두커니 서 있다. 그것이 아마도 선바위인 모양이다. 서 있는 폼은 남성인 데 모양은 남근석으로 보기에는 좀 그런 바위다. 야시시한 여성이라면 그걸보고도 관능적인 상상을 할지도 모르지 하고 실없는 생각 속에 정상. 생각이 틀리지는 않았는지 정상의 바위에는 남근석이 있는 곳이면 의례 보이는 알터가 없다. 평평하고 넓은 암반으로 이루어져 있는 정상에는 마을 공터에서 본 관광버스 팀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사진 찍고 너스레하고 있다. 12시 5분 동경이와 정복이 형을 끝으로 모두 모였다. 산세가 마치 중국 계림의 봉우리처럼 뾰죽뾰죽한 것이 한 폭의 잘 그린 동양화를 보는 듯 했다. 게다가 설화까지 만발하니 지난 달 철 늦은 산행 덕에 덕유산의 기막힌 설경을 감상치 못했던 아쉬움을 예서 푸는 듯 너도 나도 독사진 증명사진 찰칵찰칵. 분주한 사진박기는 저팔계를 닮았는지 사진 찍기를 독사만지는 것 마냥 질색하는 최재분양을 찍사로 하여 단체사진 촬영으로 끝낸다. 바람이 그다지 세지않아 이 너른 암반에서 그냥 중식을 하기로 한다. 정복이 형이 처음보는 국산 양주를 꺼내고 종혁이 형님이 또한 동동주를 풀고 기타등등이 쇠주를 풀고 식사하랴 술잔돌리랴 몇 몇은 대단히 분주하다. 주당딱지 뗀 지가 이미 옛날이라 배 고픈 호랑이 쌀밥 쳐다보듯이 심드렁한 데 술잔이 온다. 한잔을 하는 데 옛날처럼 짜르르 하지가 않다. 젠장 이젠 나도 풍류남아 날 샜구나고 김이 팍 샌다.
12시 45분 중식을 마치고 가파르게 떨어지는 능선을 따라 조심스레 내려오다 보니 저 밑에 커다란 바위가 슬라브를 이루고 있다. 회장님이 말씀하신 그 슬랩인 모양이다. 바위 밑에 도착하여 살펴보니 우리의 진행방향으로 곧장 내려가는 우측 골은 그냥 꽂혀 있을 뿐이고, 왼 편은 바위를 한참 우회한다. 초입의 오른쪽 크랙이 조금 까다로운 듯 보이고 바위초입을 해결하면 그 위 약 20m쯤의 슬랩은 별게 아니다. 바위에는 굵직한(지름 약50mm) 동아줄이 늘어져 있다. 그 줄을 잡고 가면 편할 것이나 회장님이 훈련한다고 먼저 올라 자일을 두 동 건다(이 곳에서 한시간의 시간계획을 잡았다고 한다). 회원들이 줄을서서 중간자매듭으로 몸통확보하고 한사람씩 오르는 데 뒷 팀이 떼거지로 들이닥친다. 뭐 이런 데를 이렇게 게겨 하는 투로 어떤 이는 동아줄을 잡고 슬랩에 진출하면 그냥 줄 놓고 막 뛰어 오르고, 어떤 이는 우리가 색 쓰는 크랙으로 확보없이 어찌되겠지 하는 양으로 마구 엉기다가 해결하고나면 메쓰너 폼으로 의기양양 걸어오르고 때 아닌 잔치집이다. 하긴 줄풀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까운 싱거운 바위긴 하다. 그래도 이왕 풀은 줄 줄맛이나 보여야지 어쩌겠나? 북새통이 자고나니 우리도 창조형과 현관이만 남았다. 창조형이 대단히 싱거운 표정으로 오르신다. 남은 한 줄을 사리려 하는 동경이에게 줄값하느라 "어이 나는 어떡해 나도 줄줘"하고 무서운 양으로 엄살을 떤다. 오르고나니 회장님이 "아이 너무 싱거운데요"하고 쑥스러워 한다. 서로 겸연쩍은 표정을 나누면서 시계를 보니 1시 40분이다. 정말 한시간정도 놀았구나. 내려가는 길은 매우 가파르고 눈이 쌓여 조심스럽다. 오를 때 만났던 갈림길을 지나 차량이 주차되어 있는 마을 공터에 도착하니 2시 40분 무척 이른 시간이다. 오늘의 산행은 산 생김에 비해 좀 싱겁다. 그러나 그 설경하나는 기막히지 않은가? 각자 5대의 차량에 분승하여 괴산에서 막걸리 한잔하자고 오는 길에, 교통보고 색시걸음하는 병신승용차를 동경이와 둘이 멋모르고 추월했다가 동경이만 대표로 딱지끊고, 딱지 뗀 경찰이 동행이라는 말에 만원 뇌물도 마다않고 부처님 얼굴 모양내며 그냥 통과시켜 준다. 괴산에서 산행의 여흥을 막걸리 한잔으로 더하고 신성동 대림상가 앞 17시 30분 도착. 선미식당에서 뒷풀이하다(헌범이와 해수가 뒤 늦게 동참함).
3월 18일 이 순 명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