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략전쟁은 왜 발생하고 어떻게 막을 수 있나
전쟁에 대한 최고 이론가이자 전략가로 꼽히는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은 폭력적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장”이라는 명제로부터 출발한다. 사회주의자들은 이것을 확장하여, 모든 전쟁을 특정 시기의 권력들, 해당국가들 내 다양한 계급들이 관련을 맺고 있는 정치의 연장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전쟁을 만들어낸 정치들과 그 전쟁이 만들어내는 정치들에 대한 확고한 지지파 또는 반대파로 남는다.
이러한 열쇠를 통해서만 노동자계급은 자본가계급의 이익을 위해 그들의 용병이 되어 같은 노동자끼리 총구를 겨누거나 자국 자본가계급의 승리를 위해 희생을 강요받는 것이 아니라, 자기계급의 미래이익과 해방을 위한 길로 나아갈 수 있다. 실제 사건들, 역학 관계들과 전쟁의 추진력에 대한 정치적 분석, 그리고 그것들이 지닌 역사적·경제적·계급적 맥락을 이해하고, 각각의 전쟁들에 대한 입장을 결정하는 것이 노동자들의 일관된 관점이어야 한다.
억압받는 민중을 해방시키기 위한 전쟁?
자본가 지배자들은 침략전쟁을 정당화하려고 항상 ‘자유’와 ‘인권’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운다. 그들은 사담 후세인 독재정권, 알카에다 테러리스트, 탈레반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에게 억압받고 있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중동 민중에게 자유와 평화, 인권을 가져다주기 위해 전쟁은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침략자들은 역사 속에서 한 순간도 끊이지 않았던 침략전쟁들에서 항상 이와 같은 주장을 똑같이 반복해 왔다. 그러나 전쟁과 그 결과가 보여주는 실상은 언제나 그 반대였다.
이라크전쟁 개전 42일 만인 2003년 5월 1일, 부시 전 미국대통령은 주요 전투가 종결되었다고 선언했지만, 이라크에서 종파 갈등, 전투와 학살, 테러는 만성화되었고 2009년 5월까지 최대 120만 명의 이라크민중이 살해되었다. 특히 이라크전쟁으로 더욱 강화된 종파집단 간 갈등과 테러로 인한 사망자가 전체 사망자 가운데 33%를 차지하며, 많은 경우 심각한 고문이 동반되고 있다. 또한 해외 난민 200만 명을 포함해 400만 명이 여전히 난민 신세다. 최대 38%에 달하는 실업률 등 빈곤으로 이라크 노동자 민중의 생존이 파탄나면서 200만 명 이상의 어린이가 만성적인 영양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초등학교 취학률은 86%에서 46%까지 뚝 떨어졌다.
2001년 11월, 아프가니스탄전쟁 개전 이후 아프가니스탄 민중의 삶도 마찬가지다. 이 나라에서는 외신을 통한 불규칙한 사망자 보도 외에 실제로 얼마나 많은 민중이 죽었는지조차 확인할 수 없다. 다른 통계들이 보여주는 상황은 이라크 이상으로 심각하다. 평균기대수명 42세, 유아의 1/4이 5살 이전에 사망, 임산부의 1/6이 출산 중 사망, 점령 이전에는 없었던 에이즈(HIV/AIDS)와 같은 질병의 확산, 전체 인구 3천 2백만 가운데 500만 명이 심각한 식량위기상황, 50% 이상의 어린이들이 미취학, 어린이들 가운데 30%가 가족의 생계를 위해 노동, 아편에 중독된 어린이 수가 최소 6만 명.
상황이 이러한데도 침략을 주도했던 각국 지배자들은 아프가니스탄에 더 많은 군대를 파병하려 하고 있다. 한국 자본가정부도 자이툰부대가 현지인들을 진료하고 자동차 정비 같은 기술을 가르쳤으며 학교와 보건소 260여 개를 지어주면서, 주민들에게 ‘신이 내린 선물’이라는 찬사를 받았다고 선전하며 파병을 정당화 한다. 그러나 이러한 선전용 활동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결과 아프가니스탄 민중의 삶이 심각하게 악화되었으며, 한국군이 그러한 침략군의 일부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이것이 지배자들이 말하는 ‘억압받는 국민의 해방을 위한 전쟁’의 실체다.
세계의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한 전쟁?
그들은 다른 한편으로 자유세계를 위협에 빠뜨리는 독재정권과 테러리스트들을 무력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침략전쟁을 치장한다. 자본주의 심장부인 미국 뉴욕에 대한 9·11 테러 이후 미국 지배자들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공습을 단행하며 그렇게 말했다. 이라크전쟁을 개시하면서도 사담 후세인 정권이 중동의 평화를 위협한다며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실상은 그들 자신의 제국주의적 본성과 침략이 오히려 평화를 위협에 빠뜨리고 시민들을 테러의 위협에 노출시키는 근본 원인이다.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이 권력을 강화하고 패권의 야욕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은 반제국주의 정서를 기반으로 들어선 이란 정권을 견제하고 중동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미국 지배자들의 경제적·군사적 지원 덕택이었다. 사담 후세인 정권이 이라크 내 쿠르드족을 학살할 때 미국 지배자들은 이것을 용인해 주었지만, 그들이 미국 지배자들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자 제거해야 할 대상이 되었다. 테러조직의 상징으로 지겹도록 내세우는 오사마 빈 라덴의 알-카에다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점령과 패권에 맞서 미국이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지원한 <마크타브 알-카디마트>라는 조직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리고 1989년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한 이후 오사마 빈 라덴은 고향인 사우디아라비아로 돌아갔지만, 1990년에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자 그 조직망을 이용하여 미국인에 대한 게릴라전과 테러를 시작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을 포함한 무자헤딘 조직들, 레바논의 헤즈볼라,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이집트의 자마아트 이슬라미야 등 수많은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들과 테러조직들은 제국주의 지배자들에 대한 중동민중의 분노를 자양분으로 하여 성장하고 세력을 공고화하고 있는 조직들이다. 이들 세력들이 이슬람민족주의를 내세우며 독재와 테러정치, 신권정치, 여성에 대한 억압정책 등과 같은 억압과 폭력을 정당화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지역 노동자 민중 사이에 저변화한 제국주의에 대한 분노 때문이었다. 마치 북한의 지배자들이 미국의 위협을 근거로 북한민중을 통제하고 권력을 공고히 하는 것처럼, 이들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들은 제국주의의 쌍생아일 뿐이다.
이라크에서 사담 후세인은 제거되었지만,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 정권은 권좌에서 밀려났지만,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은 노동자 민중 사이에서 더욱 심화된 제국주의에 대한 분노를 토양으로 영향력을 확대강화하고 있다. 중동국가들에서는 제한적이고 형식적인 민주주의조차 사라지고 있으며 이슬람 신정정권은 확산일로에 있다. 테러는 세계적인 것이 되었다. 이제 미국·프랑스·영국과 같은 침략 주도국의 민중들뿐만 아니라, 스페인·일본·캐나다·한국과 같은 동맹국의 민중들까지도 테러의 표적이 되었다. 결국 침략전쟁은 세계의 자유와 평화를 위협하며 테러와 전쟁을 세계화하고 있을 뿐이다.
국익을 위한 전쟁?
침략자들은 온갖 대의명분이 거짓일 뿐이라는 점이 밝혀지자, 조금은 더 그럴듯하게 국익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운다. 그들은 독재정권, 이슬람 근본주의세력, 또는 테러집단이 세계 정치경제 체제에 균열을 가하기 때문에, 이들을 무력화시키고 평화로운 사회체제를 만들 때, 안정된 석유공급권 확보, 개발사업 참여 등과 같은 국익을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호주·캐나다와 같은 곳의 동맹자들도 똑같은 주장을 하며 줄을 선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국익이란 각국 노동자 민중의 이익이 아니라, 자본가 지배계급의 이익을 의미할 뿐이다.
이라크전쟁 개전 이후 2009년 5월까지 미군 사망자 수는 4천 3백 명에 달하고, 부상자수는 3만 6천 명을 넘어섰다. 이들 전쟁희생자들 대부분은 자본가계급이 아니라, 괜찮은 일자리가 없어서 죽음의 위험을 감수하며 손에 피를 묻힐 수밖에 없는 군대에 입대한 청년노동자들이다. 또한 전사자 보상, 부상자 치료비와 연금 등 간접비용을 포함하여 3조 달러에 이르는 천문학적 이라크전쟁비용은 전쟁으로 이익을 얻는 자본가들이 아니라 미국의 노동자민중과 한국과 같은 동맹국의 노동자민중에게 세금으로 전가되고 있다. 그 대가로 보잉, 록히드마틴, 레이시온과 같은 군수산업체는 이라크 전으로만 총매출이 두 배까지 뛸 수 있었다. 군사시설 관련 전문기업인 핼리버튼은 193억 달러의 공사를 떠맡았고, 블랙워터와 같은 경호업체들도 엄청난 돈을 긁어모았다. 미국에서 전쟁 산업은 모두 10만 명을 고용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재정과 자원이 쏟아 부어진, 손쉽게 돈을 긁어모을 수 있는 눈먼 산업인 것이다. 또한 세계 제3위 석유매장국가인 이라크에서 전쟁을 통해 영향력을 강화한 미국과 영국의 석유메이저들은 석유개발권을 재분배하여 독식하면서 막대한 이윤을 보장받았다. 이들 석유메이저 자본들은 전쟁을 계기로 원유가격이 투기적으로 폭등하여 노동자민중이 신음하고 있을 때, 엄청난 이익을 긁어모은 자들이다.
한국 자본가정부도 노동자민중의 파병반대투쟁을 억압하며 청년들을 이라크전쟁으로 밀어넣은 대가로 한국석유공사와 SK에너지 등 석유자본들을 위한 석유개발권을 확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또한 건설자본들을 위한 각종 건설사업 수주를 노리고 있다. 그들에게 전쟁은 노동자 민중의 생명을 담보로 한 또 다른 투자일 뿐이다. 반면 한국 노동자 민중은 자본가정부가 강요하는 전쟁비용을 짊어져야 할 뿐만 아니라, 아프가니스탄·이라크에 이어 최근 오만으로 확대되고 있듯이 테러의 직접적인 대상이 되고 말았다. 결국 한국정부도 국익을 파병의 명분으로 내걸고 있지만, 그것은 자본가들만의 이익을 위해 노동자민중을 희생양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미국정부와 다를 게 없다.
자본가 지배계급의 이익을 위해 끊임없이 반복되어 온 침략전쟁
지배자들은 전쟁이 평화적인 자본주의에서 예외적인 사건인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 전쟁은 야만적이지만 매우 자연스러운 자본주의의 일부일 뿐이다. 불과 200년을 넘었을 뿐인 자본주의의 역사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크고 작은 전쟁들로 채워진 역사였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자본주의는 전 세계적 차원에서 경쟁과 갈등을 첨예화시킨다. 민족(일국) 경제의 좁은 울타리를 부순 자본주의는 경쟁을 지구화―상품 판매시장, 전략적 원료물자들, 저렴한 노동자 공급, 투자 판로들과 경제권 구축, 이를 위한 안정적인 지배권 구축 등을 위한 이전투구―시켰다. 그것은 또한 각국 자본가들의 이해를 지키기 위해 권력을 집행하는 기구인 정부들 간의 크고 작은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자본주의 역사상 간섭 없는 평화적 진보와 번영의 시기는 없었다. 반대로 세계적 규모의 갈등과 간섭을 확대하고 강화시켰다. 이러한 갈등의 역학은 그것이 첨예화 될 때, 본격적인 정치군사적 개입과 대량파괴를 만들어낸다. 경쟁하는 지배자들은 인류의 진보를 위해서가 아니라 전리품을 강탈하기 위해 끊임없이 전쟁을 벌여왔다. 19세기 전후의 수많은 식민지쟁탈 전쟁들, 그 대단원인 양대 세계대전, 20세기 중반의 중남미 군사개입, 최근까지 중동에서 이어지고 있는 전쟁들. 이 전쟁들 어느 것에서도 전쟁이 역사적 진보와 노동자 민중의 이해를 위한 선택이었다는 점은 티끌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2차 세계대전에서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는 영국과 같은 ‘부르주아 국가들’에 맞선 ‘프롤레타리아 국가’의 권리를 구실로 삼았고, 나찌들조차 ‘금권 국가’에 맞선 ‘독일인들의 생활권’을 전쟁의 구실로 삼았지만, 그들은 유럽과 중동, 아프리카에서뿐만 아니라 자국에서도 노동자 민중을 대량학살과 핍박, 생존의 파탄과 인간성의 파괴로 내몰았다. ‘대동아공영권’을 주창하며 아시아 국가들을 침략한 일본조차도 ‘산업화’와 ‘일본국민의 생존권’을 명분으로 내걸었지만, 그것은 단지 지배자들의 이익을 위해 일본 노동자 민중을 전쟁에 동원한 것일 뿐이다. 이에 맞서 미국과 영국 등 소위 ‘자유세계’의 지배자들은 ‘민주주의 수호’와 ‘평화’를 내걸었지만, 그들 역시도 자국 자본가들의 정치경제적 이해를 보호하거나 확대하기 위해 전쟁을 벌였을 뿐이다. 그들은 소위 파시스트국가들에 맞선 전선에 식민지 민족들을 동원하기 위해 전후 독립을 약속했지만, 전후 식민지민족들은 그들 제국주의 국가들과 다시 한 번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거친 후에야 독립을 얻을 수 있었다. 이들 사이에는 신흥 강도냐 늙은 강도냐 같은 작은 차이만 있을 뿐이다.
초유의 대량학살과 대량파괴를 만들어낸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에도 침략전쟁은 끊임없이 이어졌으며, 마찬가지로 노동자 민중의 이해를 위한 것이라고는 조금도 찾아 볼 수 없었다. 탐욕스런 자본가들이 권력을 장악하고 노동자 민중을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침략전쟁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무기력한 평화주의 캠페인으로는 전쟁을 막을 수 없다
전 세계 노동자 민중은 지배자들의 이익을 위해 가족, 친구들을 잔인한 학살과 야만적인 전쟁에 동원하며 억압과 핍박으로 몰아넣는 전쟁에 대해 반대해 왔다. 한국에서도 이라크파병에 반대하여 수많은 노동자 민중들이 대규모 집회를 포함한 전쟁반대 캠페인을 벌였다. 북한정권의 위협을 이유로 군사훈련을 진행하며 주민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미군에 대한 반대캠페인도 끊이지 않았다. 전쟁반대 집회에 나선 이들은 자연스럽게 평화를 요구한다. 그리고 통치자들이 노동자 민중의 생명, 자유와 인권을 존중하기를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평화를 요구하는 캠페인만으로는 전쟁을 막을 수 없다.
모든 것들을 이윤축적을 위한 수단으로만 여기는 자본가들과 지배자들은 전혀 그럴 마음이 없을뿐더러, 자신들의 손아귀에 모든 권력을 틀어쥐고 있는 상황에서 반대자들을 공권력으로 쉽게 짓밟을 수 있는 상황에서는 그럴 이유가 전혀 없다. 다른 모든 저항들에 대한 탄압에서도 항상 볼 수 있듯이 그들은 노동자 민중의 요구에 대해 조금도 거들떠보지 않으며, 노동자 민중의 생명까지도 파리 목숨처럼 하찮게 여긴다. 그들에게 노동자 민중은 이윤축적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게다가 야만적이고 파괴적인 전쟁이 만들어낼 수 있는 여러 가지 위험을 감수하며 전쟁을 선택한 상황에서 그들의 의지는 더욱 확고할 수밖에 없다. 결국 전쟁으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잃을 수 있는 상황을 노동자 민중의 저항이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그들은 결코 전쟁을 중단하지 않는다. 저항이 그들의 지배권력에 도전하여 안정적인 착취질서를 위협하는 상황으로 나아가지 않는 이상, 그들이 전쟁을 중단할 이유는 전혀 없다. 더 나아가 착취질서를 끝장내지 않는 이상, 침략전쟁은 끊임없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경쟁과 갈등, 대립이 지배하는 계급사회가 아니라, 연대와 공존, 진정한 자유와 평등이 지배하는 사회를 만들 때 비로소 침략전쟁은 사라지게 된다.
역사는 그것을 증명해준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8년 전후로 노동자 민중은 미국·유럽·일본 할 것 없이 전 세계를 반전운동의 열풍 속으로 몰아넣었다. 수백 수천 만 명이 베트남전쟁을 반대하며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베트남전쟁을 종결시키도록 지배자들을 밀어붙였던 것은 단지 거리로 나선 반전시위대의 규모가 아니었다. 운동에 나선 노동자 민중은 의제를 반전평화에 제한하지 않고 착취질서가 발생시키는 다양한 문제들로 확대시켰고, 근본적인 문제인 권력의 문제를 제기했다. 노동자들은 자본가들의 착취를 문제 삼으며 공장에 대한 자주관리운동을 펼쳤고, 학생들은 지배질서를 재생산하는 교육을 문제 삼으며 자치위원회를 만들어 개입했다. 여성에 대한 차별, 권위주의적 체제와 사회문화, 환경문제, 동성애자 인권문제 등 모든 억압과 착취가 전복해야 할 대상이 되었다. 특히, 관료적 노동조합을 통한 노동자들에 대한 통제는 평조합원 운동과 비공인파업으로 타격을 입기 시작했다. 관료체제의 노골적인 방해에도 불구하고 평조합원 운동은 거대한 총파업을 조직하기까지 했다. 프랑스 총파업에서 보듯이 노동자들은 정부의 최저임금 35% 인상 약속에도 불구하고 노동자통제 요구들과 학생통제 요구들을 포함한 다른 모든 요구들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한 파업을 중단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총파업은 더욱 폭넓게 확대되었고 평의회의 맹아들이 조직되기 시작했다. 두려움을 느낀 드골은 몰래 독일로 도피해야만 했다. 알제리 독립전쟁에 대한 군사적 탄압을 지지했던 사회당과 노동조합 관료들이 파업을 보이코트하며 겨우 평조합원 운동을 약화시킨 후에야 드골은 프랑스로 돌아올 수 있었다. 프랑스에서만큼은 아니지만 독일·영국·미국·일본에서도 상황은 유사하게 전개되었고, 전 세계 노동자 민중은 연대의식으로 지배자들에 맞서 단결했다.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 필요한 국가적 동원은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고, 더 나아가 지배권력 자체가 도전받기 시작했다. 결국 위기에 처한 미국 지배자들은 베트남전쟁 종전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지배자들은 노동자 민중의 저항이 지배권력을 압도하면서 자신들을 궁지로 몰아붙인 후에야 어쩔 수 없이 전쟁 중단을 선포했음을 역사는 증명한다.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
러시아 혁명은 침략전쟁을 완전히 중단시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몰락해 가는 거대한 러시아제국의 지배자였던 짜르가 1917년 2월 혁명으로 물러난 후 그 권력을 이어받은 러시아 자본가계급은 과거 제국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야망까지도 물려받았다. 식민지 확보를 위해 국지전을 벌여왔던 제국주의 국가들은 전 유럽을 전장으로 만들며 총력전을 펼쳤다. 국가의 경제력을 총동원한 전면전에서 독일과의 전쟁이 패색이 분명해졌는데도, 러시아 자본가계급은 끝까지 전쟁을 중단하려 하지 않았다. 거대한 부와 막강한 지배권력을 하루아침에 잃게 될 상황에 처한 자본가계급에게 노동자 민중의 생명이 안중에 있을 리 없었다. 러시아사민당의 개량주의 분파인 멘셰비키들과 개량주의 농민당인 사회혁명당도 부르주아 임시정부를 지지하며 사실상 이에 동조했다. 지배자들은 굶주림과 전염병이 농촌은 물론이고 도시를 휩쓸고 있는 상황에서도 총부리를 겨누며 협박하여 노동자 민중을 자살이나 다름없는 전쟁터로 내몰았고, 개량주의 지도부들도 이것을 거들었다.
반면에 전쟁에 대한 반대를 일관되게 밀고 갔던 이들은 볼셰비키들이었다. 그들은 민족 또는 국가적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전쟁에 대한 오래된 환상을 완전히 거두고, 전쟁은 단지 계급정치의 연속이며 전쟁을 완전히 중단시키기 위해서는 권력을 자본가계급으로부터 빼앗아 노동자 민중의 민주적 통제 아래 두어야 함을 잘 이해했다. 그들은 노동자들이 서로 총부리를 겨누는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착취가 없는 세상을 위해 지배계급에 맞서 국경을 넘어 단결해야 함을 분명히 했다. 그것은 러시아 노동자 민중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결론이기도 했다. 짜르와 반혁명 군대에 맞선 투쟁을 통해 평의회(소비에트)라는 아래로부터의 자발적인 권력을 창출한 노동자 민중은 의회가 결코 전쟁을 중단시킬 수 없음을 수많은 사건들을 통해 깨달았다. 그리고는 직접 권력장악에 나섰다. 노동자 민중의 권력이 수립되고 나서야 기나긴 전쟁은 끝을 맺을 수 있었다. 병사들은 전선에서 군복 입은 독일 노동자들과 총부리를 겨누는 것이 아니라, 어깨를 걸고 우애를 나누었다. 비록 혁명 후에 자본주의 국가들이 군사적 개입을 통해 러시아를 내전으로 몰아갔지만, 스탈린 반혁명이 있기 전까지 혁명러시아는 더 이상 과거의 제국주의 국가가 아니었다. 오히려 식민지였던 국가들에 자결권을 적극적으로 부여했고, 혁명적이고 대중적인 약소 민족의 독립운동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오랜 전쟁과 자본주의 국가들의 간섭·내전으로 혁명러시아는 경제적으로 극도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지만, 노동자권력은 중국·인도는 물론이고 조선을 포함하여 많은 독립운동에 성심껏 지원했다. 짧은 시기였지만 혁명러시아는 노동자권력만이 침략전쟁을 완전히 과거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음을 충분히 증명했다.
침략전쟁을 불러일으키는 착취질서를 분쇄하자!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자본가들은 “기업이 살아야 노동자가 산다”, “국가경제가 살아야 노동자도 산다”며 투쟁을 억누른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안정된 착취질서를 유지하고 엄청난 부를 축적해 간다. 마찬가지로 그들은 전쟁을 벌이며 “국가의 이익을 위해 노동자들이 투쟁을 자제하고 승리를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고 말한다. 북한과의 갈등을 만들어 내면서도 똑같이 말한다. 심지어 전시에는 반국가적 행위라며 노동자투쟁을 온갖 폭력을 동원하여 극악하게 탄압한다. 하지만 결국 전쟁도 자본가계급의 이익을 위해 노동자 민중을 동원하는 것일 뿐이다. 노동자 민중이 전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라고는 전혀 없다. 단지 애국을 명분으로 지배계급을 위해 생명을 내던지라고, 온갖 고통과 핍박을 감내하라고 강요받을 뿐이다.
그렇다면 노동자들이 지배계급만을 위한 전쟁에서 취할 태도는 이런 것이다. 노동자의 생명이 우선이다! 노동자의 생존이 우선이다! 그들을 위해 전쟁에 동원될 수는 없다! 노동자들을 참혹한 죽음으로 내모는 자본주의 착취질서에 맞서 싸우자! 적은 내부에 있다! 자본가권력에 맞서 노동자투쟁을 강화하고 확대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