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따라 서울구경 그리고 별나라에서 시낭송
6호선 합정역 7번 출구에 나는 40분전에 도착하여 주변을 우선 살펴보았다. 날씨가 아직 10도 안팎이라 쌀쌀한 편이다. 외국인묘역에는 따듯한 곳에 목련과 개나리가 피었다. 카메라에 담았다.
5분전에 출구 앞으로 갔다. 송광세 시인이 청주에서 이미 도착했다. 최현근 회장 채동규 시인 이훈자 시인 나석중 시인 조금 후에 정숙진화백이 도착하여 모두 7인이 되었다. 김순진 김동일 김태호 박순천 시인은 개인사정으로 참석치 못했다.
우리일행은 11시 10분에 출발하여 먼저 외국인 묘역에 접근했다. 외국인 묘역에는 우리나라에 서양문물과 문화를 제일 먼저 들여와서 전파한 사람들이다. 이화 학당, 배재학당,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등이 그 들은 우리나라에 최초로 서양 문화와 문물을 도입한 사람들이다. 아직 초봄이지만 날씨가 쌀쌀하여 모란은 멍울만 트고 언덕에는 산수유꽃이 핀 정도였다. 그들의 헌신적인 서양문화의 도입에 앞장섰던 선인 들을 마음으로 조의 하며 우리는 묘역을 빠져나와 절두산 쪽으로 향해 갔다. 절두산은 천주교 순교지로서 박해에 순교한 선교사들을 모신 곳이기도 하다. 침묵이 도도하게 흐르는 입구에는 비술나무가 늘어져 봄기운을 땅으로부터 끌어 올리고 있었다. 담 쪽에는 적매화가 활짝 펴서 봄을 나란히 정돈해주는 것 같았다.
이곳에서 우리일행은 나란히 서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자동셧터로 놓고 사진을 찍었다. 대개는 옆 사람에게 부탁하여 사진을 찍었으나 이 곳에는 지나가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한적한 곳이다.
절두산성지의 답사를 마치고 강변으로 이동한다. 강변은 멀리 여의도가 바라보이며 희부연 날씨를 보인다. 안개 속에 가라앉은 듯이 강물도 출렁거리며 몇 마리의 갈매기들이 날아가고 있다. 일행은 망원강변 공원지역을 향해 걸었다. 절두산에서 평화공원까지는 약 4km구간으로 1시간가량 소요된다. 봄의 전령 왕버들이 만개하여 노란 털을 몸에 바르고 활짝 피었다. 억새는 메말라서 덤불을 이루며 바람에 쓰러진 흔적을 보인다. 나는 간간히 회원들의 움직이는 사진을 카메라에 담았다. 긴긴 강변을 따라서 걸었다. 한강의 기적을 낳은 우리나라 한강은 아직도 도처에 더 개발하고 보전해야할 것이 많아 보인다. 평화공원에서 강을 가로 질러 교량이 건설 중이다. 새로운 한강다리로 자리매김하여 갈 것 같다.
우리일행은 교량 옆의 원형 순환교량을 따라서 올라 갔다. 직선으로 가면 하늘공원에 오르는 오버브리지가 나오며 이를 건너가면 평화공원이 나온다. 평화공원은 지금 물을 모두 빼고 바닥을 정비하고 공사를 하고 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우리는 농수산물 시장으로 가서 우선 점심을 들었다. 그리고 이동해서 다시 평화공원 쪽으로 왔다. 별자리를 만들어 놓은 은하수의 자리 북두칠성자리에 회원들은 둘러앉아서 시낭송을 하였다. 아름다운 선율과 목소리가 은하의 별을 타고 공간의 영원한 메아리로 흘러간다. 아름다운 시인들의 목소리가 별을 만나서 더 초롱초롱하게 시의 메시지를 전송했다. 하늘은 높고 푸르며 주변의 나무들은 움을 트며 청아한 싹을 틔우고 있다. 만물이 기지개를 피는 봄의 서곡을 알리는 공원의 주변에는 깔끔한 조형물들이 분위기를 돋아주고 있다.
이렇게 보낸 시간이 점점 저녁으로 치닫고 있다. 우리는 다시 농수산시장으로 가서 광어회를 시켜서 7인이 막걸리와 함께 들었다. 입에 짝 다라 붙는 듯이 쫄깃한 미각을 주는 광어회를 먹고 나니 어느덧 오후 4시를 넘기는 기간이 되었다. 송광세 회원은 청주로 미리 자리를 떳다. 우리일행은 차를 마시고 거나하게 먹은 회를 소화 시켰다. 시간은 자꾸 밤으로의 어두움을 꿈꾼다. 성남으로 수원으로 모두 흩어지며 인사를 나눈다. 나와 펄디는 택시를 타고 안방학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15년 전에 처음으로 펄디를 만나서 나는 강남에서 택시를 타고 안방학동으로 간적이 있다. 오늘 또 그러한 분위기로 나는 펄디와 서울 내부순화도로를 타고 정릉을 거쳐 안방학동으로 갔다. 생맥주를 들며 나는 이야기를 나눈다. “펄디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서 60회 이상 연재하였다. 그 후속은 어떠냐는 것이다. 나는 늘 그러한 작품을 생각하는 중 이라했다. 열정과 감성과 정열 그리고 여인에 대한 무한한 동경과 성에 대한 트러블로 엮어지는 이러한 편지류의 메시지를 나는 한 단계 올리는 글을 쓰고 싶다. 더 좋은 경험들이 축적이 되면 나는 거침없이 쓸 것이다. 그러한 글을 못 쓰게 한 내게 차단된 막은 무엇이었는지 생각중이다. 나는 그간 내 몸이 만신창이가 되고 아내를 저세상으로 먼저 보낸 큰 변란을 당했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공허하게 흘러갔다. 2016년 7월에는 내가 써 모았던 시를 정리하여 4권의 시집을 발간하였다. 하나의 획을 긋는 해였다. 80세라는 정점에서 나는 무엇인가를 하고 싶었다. 몸과 영혼이 분리된 흔적을 나는 찾는 중이다. 그 틈에 낀 것들을 나는 찾아 갈 것이다. 그것이 바로 글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