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대구광역시 동구 도장길 29
유기란 무엇인가?
우리나라에서는 청동기시대부터 유기를 사용하였는데 현재 출토되고 있는 각종 청동기 유물에서 당시의 유기 제조기술을 짐
작해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청동기문화는 시베리아의 ‘미누신스크-스키타이’청동기문화와 관련이 있는 북방계의 ‘오르도스-
요령지방’청동기문화의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청동기시대 초기에는 비파형동검(琵琶形銅劍)과 조문경(粗文鏡)을 제작
하였고, 후기가 되면 세형동검(細形銅劍)을 독자적으로 주조하여 전성기를 이루었으며, 세문경(細文鏡), 방울, 의식구를 비롯한
각종의 도구를 제작하였다.
그 후 철기시대가 되면 청동기는 얼마동안 철기와 공존하다가 점차 사라지게 되며, 삼국시대부터 다시 발달하기 시작한다. 백
제의 경우 일본에 제련 및 세공기술을 전해주었음이 『일본서기(日本書紀)』에 기록되어 있으며, 무령왕릉(525)의 왕비 머리 부분
에서 출토된 금동제 대발(大鉢)은 청동으로 제작한 발우이다. 또한 『삼국사기』기록에 의하면 신라에는 경덕왕(742~765) 이전부
터 철유전이라는 기관을 두고 철과 유석을 관장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에는 금속의 재료 면
이나 기술면에서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온 때였다. 당시의 뛰어난 제조기술은 백률사 약사여래상, 상원사 동종(725), 성덕대왕
신종(771) 등 많은 불교미술품 등을 통해 볼 때 짐작할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빛깔이 고운 ‘고려동’을 생산하여 중국과 교역을 하였다. 제작기술도 발전하여 불상이나 각종 불교용구, 생활용
기, 동활자를 비롯하여, 말기에는 화포 등 다양한 종류의 기물을 제작하였다. 왕족과 귀족은 방자기법으로 제작한 얇고 질긴
청동그릇을 식기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고려시대에는 빛깔이 고운 ‘고려동’을 생산하여 중국과 교역을 하였다. 제작기술도 발전하여 불상이나 각종 불교용구, 생활용
기, 동활자를 비롯하여, 말기에는 화포 등 다양한 종류의 기물을 제작하였다. 왕족과 귀족은 방자기법으로 제작한 얇고 질긴
청동그릇을 식기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초기부터 국가에서 채굴에 힘을 썼으며, 『경국대전』에 의하면 국가에서 쓰는 유기를 만드는 유장(鍮匠)을 중앙
장인인 경공장(京工匠)으로 공조(工曹)에 8명, 상의원(尙衣院)에 4명을 두었고, 지방관아에 필요한 유기를 만드는 외공장(外工
匠)도 상당수 배치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는 숭유억불정책의 영향으로 불교적 색채를 띠는 금공품이 많지 않았던 반
면 담배함, 화로, 향로, 반상기 등 단순하면서도 소박한 느낌을 주는 형태의 생활용품과 민예품이 많이 제작되었다. 자기를 대
중적인 식기로 쓰던 시대였음에도 유기는 고려시대에 이어 상류층에서 식기로 사용하였으며,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도 생
활 용구로 사용되어 전국 각지에서 생산되고 시장을 형성하였다.
근대 말에는 일본에 의한 유기 공출이라는 명목으로 각 가정에서 소유한 거의 모든 유기들을 수탈당하였다. 그 후 1945년 해
방과 더불어 유기는 다시 성행하기 시작하였으나 6·25 이후 연탄을 사용하면서부터 연탄가스에 변색되기 쉬운 놋그릇 대신
스테인리스 그릇을 선호하여 유기는 점차 사라졌다. 그러던 것이 최근 각종 실험을 통해 병원균 O-157 살균기능, 농양성분
검출기능 등이 밝혀지면서 부각되고 있으며, 현재 악기, 제기, 식기 및 각종 생활용품 등으로 제작되고 있다.
방짜유기
(Process of production of brassware with an uneven surface)
방짜유기는 정확히 구리 78%와 주석 22%의 합금을 용해하여 원형 물판에 부어 금속과(일명: 바둑)를 만들고, 다시 불에 달
군 금속과를 11명이 1조가 되어 망치질을 되풀이해 가며 얇게 늘려 형태를 잡아가게 된다.
These items are made of melted copper(78%) mixed with tin(22%). A metal ingot is made by pouring melted copper
into a mold. A group of eleven workers take turns to finalize their shapes in a process of hammering the heated m
etal ingot. They are not easily bent or broken. They feature traces of hammering.
1. 용해(Melt copper and make a metal ingot)
방짜유기 제작에 기본인 놋쇠 괴(塊)를 똑같은 용량으로 여러 개를 만드는 주조과정으로 합금→용해→용탕 붓기 순서
로 진행한다.
2. 네핌질(Spread the metal ingot)
‘바둑’을 가열해 늘이는 작업을 반복하고 협도로 가장자리를 정리하는 과정이다. 작업은 ‘모루’를 중심으로 가장자리에
둘러 앉아 한다.
3. 우김질(Form a desired shape)
네핌질이 끝난 바둑에 가열과 메질을 반복해서 한꺼번에 여러 개의 형태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반복 과정에서 같은
크기로 늘어난 기형을 10개 정도 겹치게 하는데 이를 ‘우김질’이라 한다.
4. 냄질(Separate pieces)
우김질한 바둑을 u자형의 그릇 모양으로 겹치게 하는데 이것을 하나씩 떼어내는 작업을 ‘냄질’이라고 하며 떨어진 각
각을 ‘우개리’라고 부른다.
5. 닥침질(Heat and form a desire shape)
냄질이 끝난 우개리를 불에 달구어 형태를 바로잡는 작업으로 6명이 ‘닥침망치’를 이용하여 같은 동작으로 서로 잡아
닥치며 바닥을 문지른다.
6. 제질 및 담금질(Put pieces in cold water for heat treatment)
닥침질이 끝난 기형을 불에 달구어 가면서 성형하는 과정을 ‘제질’이라 하고, 가열한 놋쇠의 강약 질을 잡아 강도를 높
여주기 위한 작업을 ‘담글질’이라 한다.
7. 벼름질(Reshape pieces deformed in the process of heat treatment)
담금질한 기물은 찬물에 넣는 순간 일그러지게 되므로 원래의 형태대로 잘 잡아주는 작업을 ‘벼름질’이라고 한다.
8. 가질(Cut the surface to finalize the shape and polish to produce a beautiful luster)
완성한 기물의 산화피막을 제거하고 표면의 메자국도 없애 놋쇠의 본색이 잘 드러나 광이 나게끔 하는 과정이다.
구리와 주석을 합금한 후 용융된 쇳물을 일정한 틀에 부어 주조한다고 일명 “붓백이유기”라고도 한다. 주물유기는 합금이 자
유롭고 규격과 모양이 같은 일정한 제품을 다량 생산할 수 있으나 단조(鍛造)가공은 불가능하다. 합금하는 재료의 배합 비율
과 금속의 성분에 따라 그 색깔, 품질이 서로 다른 특성을 지니며 장인의 기술에 따라서 다양한 형태의 제품을 만들 수 있다.
안성의 주물유기가 다른 지방보다 유명한 것은 서울의 사대부나 지방 부호들의 그릇을 주문 받아 제작하였기 때문이다. 안성
의 주물유기는 두 가지로 제작하는데 일반 기성제품인 “장내기”와 주문 생산으로 제작하는 “마침(맞춤)”이 있다. 주물유기 기
능 보유자로는 중요무형분화재 제77호 김근수 유기장이 지정되었으며 현재는 그의 아들이 보유자 후보로 전승하고 있다.
주물유기 제작과정(Process of casting brassware)
주물유기(Process of production of brassware with a casting surface)
구리와 주석을 합금한 후 용융된 쇳물을 일정한 틀에 부어 주조하는 기법을 말한다. 제작과정은 번기 만들기와 쇳물 붓기가
주공정인 부질작업과 표면을 깎고 색을 내는 가질 작업으로 나뉘며 광내기와 장식 작업이 더해진다.
These pieces are made by pouring melted copper mixed with tin into molds. Forging is not included in this proces
s. This process allows mass production of delicately designed items.
1. 갯토 만들기(Make foundry sand)
‘갯토’는 조수가 교차할 때 가라앉은 갯벌 흙이다. 이 흙에는 소금기가 있어 점성과 탄력이 좋아 ‘번기’를 만드는 데
적합한 매몰재가 된다.
2. 주형(鑄型, 番器) 만들기(Make a mold)
쇳물을 준비하는 동안 부질대장은 쇳물이 들어갈 번기의 형태를 만든다. 갯토판 위에 틀을 놓고 갯토를 골고루 두텁
게 뿌린 후 갯토를 다지기를 한다.
3. 무집 만들기
암틀 한 쪽에 무집이라 하여 쇳물이 들어가는 길을 만든다.
4. 암틀과 수틀 만들기
수틀에 물을 묻힌 후 암틀의 홈에 맞추어 씌우고 다시 갯토를 뿌려 수틀을 완성한다.
5. 그을음질
쇳물이 잘 스며들고 번기의 외벽을 단단히 말리기 위해 암틀을 엎어 그을음질을 한다.
6. 쇳물 붓기(Pour melted copper into the mold)
구리 1근에 주석 2냥~1냥 반을 도가니에 넣고 용해하여 완성한 암수틀의 주입구인 무집에 쇳물을 서서히 붓는다.
7, 가질(Cut the surface to make it smooth)
기물의 표면을 깎고 다듬어 유기의 본색을 내는 것을 말한다. 회전축에 머리목을 고정시킨 후 주물을 끼워 질나무
를 지렛대 삼아 가질 칼로 표면을 다듬어 완성품을 만든다.
8. 광내기 및 장식(Polish to produce a beautiful luster)
유기를 완성하면 광을 낸 후 기물의 장식을 달거나 문양을 새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망치로 두드려 놋그릇을 만드는 우리나라/국내 최고의 유기 장인으로 손꼽히는 유기장 이봉주/아들에 손자까지 3대에 걸쳐 가업을 잇고 있다/부산mbc 121130방송
노리개(Korean Traditional Ornaments)
저고리 고름이나 치마 허리에 차는 부녀자들의 장신구로 이 노리개는 주체가 되는 패물이 3개 달린 삼작노리개이다.
바늘집(Packet of Neddle)
바늘을 넣어 보관하는 주머니로 침낭(針囊)이라고도 한다. 은 ‧ 백동 등 금속으로 만든 것과 비단에 자수를 놓아 만든 것이
있으며, 은에다 칠보를 입힌 화려한 것도 있어 노리개 삼아 차기도 하였다.
비녀(Ornamental Hairpins)
비녀는 부녀자의 쪽진 머리를 고정시키기 위하여 꽂거나 관이나 가체를 머리에 고정시키기 위하여 꽂는 장식품의 하나이다.
가마요강((Chamber Pot)
여성들이 가마 안에 넣어두고 사용한 크기가 작은 요강으로 소변 누는 소리를 없애기 위하여 요강 안에 왕겨나 천조각을 넣
어 사용하였다.
요강((Chamber Pot)
요강은 야간에 방안에 넣어두고 용변을 보던 실내용 변기로 옛날에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었기 때문에 중요한 혼수품 중
하나였다.
타구(Spittoon)
타구는 가래나 침을 뱉는 그릇을 말하며 다양한 모양의 타구가 사용되었다.
담배합(Tobacco Casket)
조선시대에는 담뱃잎을 잘게 썰어 이를 담뱃대에 넣어 피웠기 때문에 썬 담배를 담는 그릇이 필요했다. 따라서 나무, 옥, 주
석이나 백동 등 다양한 재료를 이용하여 담배합을 만들었다.
담뱃대후비개(Picker)
백동으로 만들어진 담뱃대후비개로 담뱃대 안의 연도에 막힌 담배 찌꺼기를 제거하는 데 사용하는 도구이다.
반 방짜 유기 제작과정(process of semi forging brassware)
1. 갯토만들기(Make foundry sand)
2. 기본형만들기(Make a fundamental form)
3. 궁구름질(Form a desired shape)
4. 가질(Cut the surface to make it smooth)
5. 광내기(Polish to produce a beautiful luster)
조선시대부터 방짜유기 제조업으로 유명했던 평북 납청은 정주읍과 박천읍 사이에 있는 산골마을로 이곳을 사람들은 납청
이라 불렀다. 서울에서 평양을 거쳐 의주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이며 유기 제조연료인 질 좋은 소나무 숲이 많이 생산되었기
때문에 유기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납청에서는 방짜공장을 놋점이라고 하여 주물 유기의 퉁점과 구분하였으며 방짜유기를
우리말로는 놋성기, 북한에서는 양대(良大)라고 부른다.
1926년경에는 유기공장의 수와 규모도 상당히 커져 납청의 놋점들은 1년에 180~240톤의 놋쇠를 소비하여 질 좋은 생활유
기와 악기 등을 만들었으며 전국적인 유기 판매량이 형성되어 멀리 만주, 평양, 사리원, 서울에서도 판매가 이루어졌다. 이
렇게 발전 되었던 납청의 유기는 일제강점기 말, 놋그릇 공출로 인해 공장들이 사라졌다가 8.15해방 이후 다시 재개되어 생
산 및 판매가 시작하였으나, 또 다시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납청대장들은 남한으로 피난 내려와 공장을 개업하였다. 이들 중
납청 방짜유기를 50년 동안 지키며 활성화 시킨 장인이 이봉주 유기장이다.
방짜유기 제작도구(製作道具)
Tools used to make brassware with an uneven surface
용해용 공구 - 화덕, 도가니, 도가니 집게, 물판,
닥칠, 제질, 벼름질 공구 - 닥침망치, 제질망치, 황새망치, 제질집게, 물항아리, 물부리게, 제 질집게, 협도.
네핌질, 우김질 공구 - 화덕, 초잽이, 중잽이, 함쟁이, 각종망치,
가질대 - 머리목과 질나무.
석기시대(石器時代) stone age
사냥이나 어로, 채집과 더불어 초기 농경의 형태가 나타나고, 하천 유역을 주된 생활터전으로 삼던 신석기시대가 되자 잉여
생산물의 저장을 위해 토기가 처음 만들어졌다. 진흙으로 그릇을 빚어 말린 뒤 600~800℃ 정도의 불에서 구워내어 사용하였
다. 채집 혹은 생산물을 담아 움집 바닥에 반쯤 묻어 보관할 수 있도록 밑바닥이 뾰족한 형태로 제작된 “빗살무늬토기”가 많
이 사용되었다.
청동‧철기시대(靑銅‧鐵器時代) Bronze Age ‧ Iron Age)
청동기 시대에는 본격적으로 농경이 시작되어 수확한 곡식을 안정적으로 저장할 수 있는 토기가 필요해 졌다. 또한 생활터
전이 구릉이나 평야로 확대됨에 따라 토기 모양도 변해 밑바닥이 좀더 평평한 토기를 만들었다.
청동기 시대에는 표면에 아무 무늬가 없는 ‘민무늬토기’를 많이 사용하였으며, 초기철기시대가 되면 ‘덧띠토기’를 사용하게
되는데 중국으로부터 물레 사용기술이 전래되고 가마를 사용하기 시작하여 보다 더 단단한 와질(瓦質)로 다양한 토기를 만
들게 되었다.
삼국‧통일신라시대(三國‧統一新羅時代)
Three Kingdoms ‧ Unified Silla
삼국시대는 상 ‧ 하층으로 구분된 사회제도와 농업기술의 발달로 식기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가마 축조기술 발달로 불의 온
도를 보다 높여 그릇을 단단하게 구워낼 수 있었으며, 이전의 와질(瓦質)토기에서 도질(陶質)로 발전하였다. 그릇의 형태도
굽다리접시 ‧ 그릇받침 ‧ 항아리 ‧ 병 등 더욱 다양한 종류의 식기를 제작하였다. 상류층은 기호에 따라 금은기(金銀器 ‧ 도금
기(鍍金器) ‧ 청동기 ‧ 칠기류 등을 사용하였다.
고려시대(高麗時代) Goryeo
고려시대에는 중국의 영향으로 자기를 처음 만들기 시작하여 전성기인 11~13세기에는 세계 최고의 청자 예술품인 ‘비색청
자(순청자)’와 ‘상감청자’를 만들었다. ‘상감기법’이란 그릇표면에 음각으로 무늬를 새긴 후 그 안을 백토나 자토로 메우고 구
워낸 것을 말한다.
일반 평민들은 대량 생산이 가능했던 투박하고 단단한 질그릇과 도기류 등을 주로 사용하였다. 그릇‧병‧술잔‧찻잔‧주전자‧유
병 등은 자기로 만들었고, 물‧쌀 등을 담는 큰 저장용기 또는 술‧양념 등을 담는 단지는 질그릇으로 만들었다. 상류층은 청동
대야‧청동그릇‧제기‧불기 등 청동제품을 실생활용으로 제작하여 사용하였다.
조선시대‧근대(朝鮮時代‧近代) Joseon ‧ Modern
조선시대가 되면 회색 또는 회흑색 태토에 백토를 분장하여 유약을 발라 굽은 분청사기(粉靑沙器)인 백자(白瓷)를 사용하다
가 임진왜란 이후 분청사기는 거의 사라지고 백자를 많이 사용하게 된다. 청자와 함께 고려 초부터 만들기 시작했던 백자는
유교의 영향을 받아 검소하고 질박하던 문화적인 경향을 띄었던 사대부를 중심으로 선호하였기에 조선시대 자기의 주류를
이루었다. 일반 평민들이 주로 사용했던 질그릇은 모양에 있어 분청사기나 백자를 모방하였으며, 생산물 중에는 특히 단지
와 병 종류가 많아 서민 사이에서 필수품으로 큰 사랑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목기류로는 작은 그릇, 함지박, 바가지, 각종
제기 등이 있다.
양반 가정에서는 유기그릇을 자기와 함께 식기로 사용하였는데, 조선 후기에는 일반가정에서도 유기의 수요가 늘어나자 방
짜유기 대신 대량생산이 가능한 주물유기도 생산하였다.
서울‧경기지역의 놋그릇들
서울지역 놋그릇(Brassware from Seoul)
안성지역 놋그릇(Brassware from Anseong)
경상도지역 놋그릇들
김천지역 놋그릇(Brassware from Gimchoon)
봉화지역 놋그릇(Brassware from Bonghwa)
경주지역 놋그릇(Brassware from Gyeongju)
안동지역 놋그릇(Brassware from Andong)
경산지역 놋그릇(Brassware from Gyeongsan)
대구지역 놋그릇(Brassware from Daegu)
충청*전라지역의 놋그릇들
전라도지역의 놋그릇들(Brassware from Jeolla-do)
충청도지역의 놋그릇들(Brassware from Chungcheong-do)
징(Jing, 鉦)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애서 가져옴
다른 말로는 대금(大金), 금(金), 정(鉦), 쟁(錚), 동고(銅鼓), 금고(金鼓), 대영, 대양, 울징, 태징
개설 : 징은 군영의 신호용 악기였으나, 군영음악의 확산으로 농악이나 무속음악 등의 기층음악에서부터 종묘제례악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오늘날 농악, 무속음악, 불교음악, 대취타(무령지곡), 종묘제례악 등 다양한 장르에 사용되고 있다. 징은 전통사회에서는 대금(大金), 금(金), 정(鉦), 쟁(錚), 금고(金鼓), 동고(銅鼓) 등의 명칭으로 불렸으나, 오늘날에는 이 악기들이 징으로 통합되어 전승되고 있으며, 무속, 불교 등 음악 장르에 따라 달리 불려지기도 한다.
연원 및 변천 : 징은 금(金), 정(鉦), 쟁(錚) 등으로부터 변천·전승된 악기이다. 금(金)은 고려 문종(1019∼1083)때부터 기록이 나타나고, 정(鉦)은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나 『세종실록』 오례 등에 나타나며, 쟁은 『세종실록』이나 조선후기 각종 읍지 기록에 나타난다. 징이 금(金), 정(鉦), 쟁(錚)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보는 근거는 악기 형태의 유사성과 명칭의 혼용 때문이다.
『세종실록』에 “금(金)은 동(銅)으로 만드는데, 몸체는 둥글고, 혹 크기도 하고, 작기도 하다(以銅爲之體圓或大或小)”고 했다. 『악학궤범(樂學軌範)』에는 징 형태의 악기를 대금(大金)이라 했다. 『국조오례의서례(國朝五禮儀序例)』 군례 형명도설에는 『운회(韻會)』를 인용하여 정(鉦)과 탁(鐸)을 금(金)이라 한다고 했다. 또 『세종실록』에서 금(金)을 설명하는 가운데 『운회』에 쟁(錚)을 정(鉦)이라 한다고 했다.
이와같이 금, 정, 쟁은 서로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유사성이 있다.
또 실제 사용에 있어서 군영의 훈련시 정수(鉦手)에게 “명금이하(鳴金二下)” 하라고 명하여 연주자 명칭과 악기 명칭이 일치하지 않고, 선유락에서는 정수(鉦手)에게 ‘명금이하(鳴金二下)’라고 호령하고 쟁(錚)을 두 차례 친다(鉦手 鳴金二下 號令 打錚二次)라 하여 연주자 명칭은 정수(鉦手)이지만, 지시하는 악기는 금(金)이고, 실제 연주하는 악기는 쟁(錚)으로 되어 있다. 항장무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보인다.
한편 금(金), 정(鉦), 쟁(錚)을 한글로 기록할 때도 『연병지남』에 금(金)을 ‘쟁’ 혹은 ‘증’으로 표기해 놓았고, 『(무신)진찬의궤』 등 각종 의궤에 취타내취가 사용하는 징을 정(鉦)이라 표기했고, 조선후기 각종 읍지의 지방군영 취타악대의 악기 중 징 계통 악기는 쟁(錚)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와같이 징 계통 악기의 명칭이 다양한 것은 형태와 명칭이 서로 유사한 까닭이라고 본다.
금(金)과 정(鉦)의 형태는 『세종실록』이나 『국조오례의』 등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모두 둥근 형태에 끈이 달린 형태이고, 서로 유사하여 변별하기가 어렵다.
금과 정은 서로 별개의 악기였으나, 점차 동일한 악기로 변화·전승되고, 쟁은 금 혹은 정의 다른 이름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궁중에서는 노부에 금(金)을 북[鼓]과 함께 편성하여 사용하였고, 군영에서는 금(金)과 정(鉦)의 기능을 구분하여 사용하였는데, 『병학지남연의(兵學指南演義)』에는 정(鉦)은 진퇴를 명하는 악기로, 금(金)은 진퇴를 금하는 악기라고 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징이미지 1
징이미지 2
징이미지 3(징에 대한 설명)
징 Jing(Gong)
징은 고려 공민왕(1351~1374) 때 명나라에서 전해진 것으로 알려진다.
취타, 불교음악, 종묘제례악, 무속음악, 농악 등에서 매우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는데, 종묘제례에 사용될 때에는 ‘대금’이라
고 불렀다.
징은 사용 용도에 따라 서로 다른 종류의 징이 사용되기도 하였다. 예컨대 전쟁 시 군사들을 불러 모으거나 신호를 하기 위
해서 사용하는 징은 크기가 크고 무거운 ‘대징’을 사용해 소리가 멀리까지 울려 퍼지도록 하였다. 또 무당이 굿을 할 때 사
용하는 징은 비교적 크기가 작고 가벼우면서도 소리가 큰 ‘광징’을 사용하였다.
Jing(Gong) is known to have been transferred by the Ming Dynasty to Goryeo during the reign of King Gongmin(r.
1351~1374). This instrument was widely used in such occasions as chwita(pipes and drums) music performances,
Buddhist music, Jongmyo Jeryeak(Ceremonial music of the Royal Ancestral Shrine of Joseon). shaman music, and
farmers music. When it was used in Jongmyo Jerye (Royal Ancestral Memorial Rite). it was called daegeum.
There were several types of jing according to purposes, For instance, large and heavy jing were used to call troops
together or give signals in war as their sounds could resonate far away.
Also, shamans used small and light jing when performing their rituals.
특대징 Brass Gong
‘대징’이란 불교에서 사용하는 쇠북으로 법당에 걸어놓고 의식을 시작할 때 치는 징이다. 이 징은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77
호 유기장 이봉주의 작품이다. 지름이 161cm, 무게가 98kg으로 세계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며, 소리의 울림과 퍼짐이 맑고
웅장한 걸작품이다.
This gong is beaten with padded sticks to announce the commencement of a ceremony at a Buddhist temple. Mea
-suring 161 centimeters in diameter(the largest of its kind in the world) and weighing 98 kilograms, it was made by
a master brassware craftsman(Intangible Cultural Heritage No.77) named Lee Bong-ju. It is a masterpiece featuri-
ng an elegant, clean and Magnificent sound.
자바라 Jabara((Small Cymbals)
자바라는 놋쇠로 만든 2개의 원반을 마주쳐서 소리를 낸다. 인도에서 만든 악기라고 전하며, 중국 송나라 사신이 쓴 <고려
도경>에 자바라와 비슷한 ‘요발’에 관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에서도 오래전부터 써 온 악기임을 알 수 있다.
자바라는 불교의식과 관련 있는 악기로 여겨지며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불교가 전파되었던 중국, 일본의 불교문화에서도
자바라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자바라는 대취타에 사용될 때에는 ‘자바라’, 절에서 부처님께 향을 올릴 때에는 ‘동발’. 궁
중에서 음악에 맞춰 춤을 출 때 사용하던 크기가 작은 자바라는 ‘향발’, 무속음악을 연주할 때 쓰는 자바라는 ‘제금’이라
고 용도에 따라 다르게 불렀다.
Jabara makes sounds by clapping two cymbals. Jabara is said to originate in India, and according to Gaoli tujing
(Illustrated Account of Goryeo) written by an envoy from the Song Dynasty, yobal, which are similar to jabara,
is described, and given this, Jabara seems to have long been used in Korea. Jabara is believed to be an instrume
-nt related to Buddhist ceremonies and it can be found not only in Korea, but also in Buddhist ceremonies in Chi
-na and Japan. Jabara has several names according to their purposes : jabara when used in daechwita(great win
-ds and percussion) music : dongbal used when burning incense before Buddha at temples :hyangbal, a small on
-e used when dancing to court music : and jegeum, which is used when playing shaman music.
바라(Bara Smail Cymbals),
태안사 대바라(보물 제956호)를 재현하여 만든 작품이다.
제77호 유기장 중요무형문화재 이봉주 공방
생활도구 유기
자물쇠(Lock)
ㄷ자형자물쇠는 시기를 막론하고 가장 대중적으로 사용된 형태이며, 물고기형 자물쇠는 조선후기에 주로 사용되었다. 물고
기는 잘 때에는 눈을 뜨고 자는 습성이 있어 보안을 상징하며, 또한 다산을 하는 동물로 풍요를 상징하기도 하여 뒤주 등의
자물쇠 장식으로 주로 사용되었다.
먹물통(Portable Ink Pot)
먹물을 휴대하고 다니면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휴대용 먹물통으로 주로 놋쇠나 백동으로 제작하였다.
안경 ㆍ 안경집(Glasses ㆍ Glasses Case)우리나라에는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중국으로부터 안경이 처음 전래된 것으로 여겨
진다. 안경태는 주로 쇠뿔로 만들어진 것이 많지만 이 안경태는 놋쇠로 만들어졌으며 안경집은 어피로 제작된 것이다.
호롱형 등잔(Lamp-Oil Container)
등잔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사용되기 시작하였으며, 촛대와 함께 대표적인 실내 조명기구이다.
심지가위(Wick Scissors)
심지가위는 초나 심지를 자를 때 사용하는 가위로 양날에 있는 반원형의 받침을 초를 자를 때 부서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
이다.
지역별 유기
지역별 유기(Brassware products made in various regions)
우리나라 유기를 지역별로 살펴보면 이북 산간지방에서는 주로 크기가 큰 놋동이, 놋양푼, 놋요강, 놋주전자 등을 만들었으
며 안성 지방에서는 식기류와 잔그릇인 반상기와 제향(祭享)에 필요한 제기 등 일상생활의 생활용구를 많이 만들었다.
납청(Napcheong)
조선시대부터 유기 제작으로 유명하였던 곳이 평안북도 정주군 마산면 청정동인데 사람들은 이곳을 ‘납청(納淸)’이라고 불
렀으며, 마을사람 대부분이 유기 제조업에 종사하였다. 일제시대 초기만 해도 납청은 주로 대형 생활유기, 악기류 등 방짜
유기 제조로 크게 발전하였으며 유기 도매시장으로서의 역할도 수행하였다.
안성(Ansung)
안성은 영남과 호남 문물이 모여드는 경제 요충지로 조선 중엽부터 주물방식으로 유기를 제작하고 판매하였다. 안성의 유기
가 유명한 이유는 서울 명문 사대부 집안에서 그릇을 맞춤으로 주문받아 제작하였기 때문이다. 안서에서는 주로 식기류와
제기류를 제작하였다.
익산(Iksan)
익산은 옛날부터 호남평야의 농산물 집산지이자 상업도시로 발달하면서 평야지방에 식기를 공급하는 유기산업도 함께 발달
하였다.
봉화(Bonghwa)
봉화는 5백 년 전부터 관가에서 유기를 제작하였으며, 1840년부터는 삼계리 일대에 유기 제작을 전문으로 하는 동네가 형
성되어 경기도 안성과 함께 주물유기 생산지로 명성을 얻었다.
대구(Daegu)
대구에서도 유기를 많이 만들었지만 정확한 유래는 알 수는 없다.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에 남아있는 기록을 보아 1800년
이전부터 대구에서 유기를 생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1926년 동아일보 기사에 보면 대구ㆍ경북지방의 23개 유기생산
시군 가운데 대구에서 가장 많은 생산을 한다고 나와 있어 대구가 중요한 유기의 생산지임을 알 수 있다.
순천(Sunchon)
순천에는 주로 작은 식기나 오목주발, 요강단지 등을 만드는 독특한 반 방짜유기 제조기법이 전해지고 있다.
운봉(Unbong)
운봉은 옛날부터 유기가 성행하였는데 그 중 농악기는 소리가 좋기로 유명하였다. 주물유기와 방짜유기를 함께 만들어 왔으
나 해방이후에는 주물유기만 생산하고 있다. 현재는 동면 상우리
유기촌에서 유기를 제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