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시: 2020. 1. 30.~31.(목,금)
- 음력(1. 6.~7.), 일몰 17:56, 일출 07:35
●산행지: 호서정맥 5구간 (차동고개~비득재)
●산행코스: 차동고개-고재고개-장학산-성황당고개-천종산-야광고개-서반봉-사점미고개-국사봉-탑봉-칠갑지맥분기점-운곡고개-금자봉-분골고개-효제고개-문박산-(우산)-여우실고개-학당고개-박정고개-오류골고개-일산봉-여주고개-천마산-큰골(매산리고개)-고운식물원 임도-구봉산-오봉산-공덕재-간티재-백월산-다리재(월치)-성태산-행여봉-반고개-구루고개-치앙재-조공산갈림길-마동재-새재고개-거칠고개-월하산-지티고개-월명산-405m봉-큰낫고개-작은낫고개-천덕산-비득재
●먹거리: 생수1,500cc, 치즈크래커2, 초콜릿샌드2, 딸기샌드3, 샤브레2, 크림빵4, 보름달3, 맥스봉3, 사탕, 미니아몬드자유시간5
●준비물: 우모복, 쟈켓, 바람막이조끼, 충전지, 스틱, 헤드랜턴2, 경광점멸등, 손수건, 구급약, 수면용안대, 귀마개, 반장갑, 휴지, 물티슈, 부직반창고, 우의, 예비 양말1, 옷1, 팔토시, 무릎보호대, 방수주머니, 매트
●거리: 약 76Km
●소요시간: 약 28.26h
●누구랑: 나홀로
●경비: 하행13,200, 아산 식사6,500, 유구 택시7,900, 여주재 식사 20,000, 상행고속 11,700, 뒤풀이12,000
●날씨: -6~9도
●산행경과:
- 09:51 : 차동고개
- 11:05 : 장학산 (381m)
- 11:17 : 성황당고개
- 11:33 : 천종산 (409m)
- 11:42 : 야광고개
- 11:53 : 서반봉
- 12:34 : 국사봉 (489m), 수리치골 성모성지
- 13:10 : 칠갑지맥분기점
- 13:52 : 운곡고개
- 14:14 : 금자봉 (370m)
- 14:58 : 분골고개 (마을회관)
- 15:20 : 효제고개
- 15:57 : 문박산 (337.8m, 사각정), 초소
- 16:46 : 학당고개 (모텔, 장례식장, 주유소)
- 17:50 : 오류골고개
- 18:22 : 일산봉 (334m)
- ??:30 : 금북정맥 중간지점
- 19:02~19:45 : 여주고개 식사
- 20:12 : 천마봉 (422.1m), 초소
- 20:38 : 큰골재(매산리고개)
- 21:32 : 오봉산 (498m)
- 22:17 : 공덕재
- 22:36 : 간티
- 23:24 : 백월산(570m)/ 삼면봉 (보령 청라, 청양 화성, 남양)
- 23:34 : 금북갈림길
- 00:00 : 월치(다리재)
- 00:30 : 성태산 천세봉(623.7m)/ 삼군봉 (보령시 청라, 부여 외산, 청양 남양)/ 성주지맥분기봉
- 01:14 : 옥과실고개
- 01:22 : 행여봉 (백세봉)
- 02:24 : 반고개
- 03:00 : 치앙재
- 03:31 : 조공산(402m)갈림길
- 03:36 : 구신이재 (부여고개) 청양-부여
- 03:57 : 마동재
- 05:40 : 새재고개 / 삼면접경 (부여 외산, 내산, 은산)
- 07:36 : 월하산(422.6m)
- 09:47 : 지티고개
- 00:00 : 장군봉갈림길/ 삼면봉 (보령시 미산면, 부여군 내산면, 외산면)
- 11:49 : 월명산(544m), 금지사
- 13:13 : 큰낫고개
- 13:52 : 천덕산 (363m) 삼면봉 (보령시 미산면, 부여군 옥산면, 홍산면)
- 14:15 : 비득재 (부여 홍산 상기리, 보령 미산 도흥리 경계)
- - - - - - - - - - - - - - - - - - - - - - - -
* 호서정맥: 378.2km
- 호서기맥: 69.4~72.8km
- 차동고개~여주재 30.9~32.4km
- 차동고개~학당고개 23.5~24.56km
-. 차동고개~국사봉 9.6km
-. 국사봉~학당고개 13.9km
-. 효재고개~문박산 2km
- 학당고개~공덕재 13.1~14.3km
-. 학당고개~여주재 7.3km
-. 여주재~공덕재 7km
- 공덕재~백월산 2.7km
- 백월산~부시치고개 42km
-. 백월산~새재고개 14.4~15.8km
-. 백월산~지티고개 23.22~24.1km
- 지티고개~부시치고개 16.8~17.3km
-. 지티고개~비득재 9.1km
※ 사전정보
- 장학산 10m
- 성황당고개: 예산군-청양군 군계, 좌측 민가 일곱채
- 천종산: 유구읍-신풍면 경계
- 칠갑지맥분기점: 공주시 신풍면-청양 대치면 경계
- 금자봉 80m
- 분골고개(청양군 운곡면 위라리) 버스정류소, 마을회관
- 우산갈림길: 청양군 청양읍
- 학당고개 (기사식당, 주유소, 모텔, 장례식장)
- 오류골고개 직전 185m봉에서 청양읍-비봉면 진입
- 여주재 직전 290m봉에서 비봉면-화성면 진입,
- 여주재 구봉휴게소, 청양읍-화성면 경계
- 매산리고개 3.4km지나 422m봉에서 청양읍- 남양면 진입
- 백월산 500m 금북기맥 갈림길
- 성태산(천세봉) 80m 만세봉
- 갈림길 조공산 200m
- 갈림길 월하산 100m
※ 식수조달 가능지역 :
- 금자봉 지나 645지방도로 효제골마을,
효제고개 우측 200m 천지인식당, 010-4134-8631, 041-942-2681
- 학당고개 주유소, 기사식당, 장례식장
- 여주재 고덕갈비 010-9006-0068, 041-944-0068
- 공덕재 좌측 신왕리마을 (도보10분)
- 반고개가든 (041-942-7672)
- 구루고개 민가
- 월하산 지나 갈산리 농가
- 월명산 금지사 150m 극락전옆 공양수
※ 서울에서 차동고개 가는 길
* 서울경부-공주 06:05, 1.30h, 11,900
* 서울남부-유구 07:20, 2h, 8,700
* 서울남부-천안 06:55, 1.10h, 6,200
* 동서울-천안 06:00, 06:15, 1.20h, 6,900
* 천안~아산 2,300
* 아산~유구 09시, 4,000, 40분 소요
* 천안~유구 08:20
* 천안~예산 07:35, 5,600, 1.10h 소요
* 유구-차동고개 택시 7,900원
※ 서울 오는길
- 공덕재~화성면(도보 30분)~청양 버스
- 공덕재~청양터미널 택시 15,000
- 041-943-8100, 041-943-2995, 041-943-0404, 청양터미널: 041-943-7345
- 청양터미널~서울 강남, 16:10, 19:40, 10,900, 청양~서대전 19:55, 천안 20:00
- 지티고개 2분, 고갈정류장~부여터미널 (30분 소요), 외산행 21회운행
- 비득재~판교역 25,000 (판교택시, 041-951-5754)
- 비득재 아래 도흥리 자명마을~보령 15:25분발 버스
- 부시치고개~판교역, 판교택시 6분소요 6,000원
- 판교역~영등포역 : 3시간 17분 소요 (무궁화호, ...16:08, 18:09, 19:04... 하루 9회 운행)
- - - - - - - - - - - - - - - -
전날 비가 살짝 내려 먼지도 나지 않고, 얼지도 않고, 질척거리지도 않아 바닥 상태 좋았습니다.
그런데 유구가 교통편이 그리 안좋네요.
조금이라도 일찍 도착할려고 천안, 아산에 가도 서울서 내려오는게 첫차랍니다.
차라리 공주로 가서 유구 가는 버슬 이용하는 건데...
당초 계획은 지티고개고 마음은 부시치까진데 몸이 따르지 않아 비득재에서 멈추고 대천, 보령으로 나왔습니다.^^
이 지역은 지대가 낮아 정맥길이 마을 뒷산을 통과하기도 하지만 시골이라 동리에서 물이나 먹거리를 얻기엔 시간도 부족해 보통 구간 계획으로 뜁니다. 청양은 새벽 온도 -5, 부여는 -2라 부지런히 걸었네요. 백월산 정상에 안개가 몰려들더니 성태산 오름에 보니 산위에 먹구름이 몰려있네요. 성태산 정상에도 곧 눈이 내리지 싶었습니다.
물은 시작전에 1,500cc 준비했고, 학동고개에서 1,000cc 보충하고, 여주재 고덕갈비에서 물을 충분히 마시고 2,000cc 로 출발하고, 월명산에서 월명사로 내려가 1,000cc 보충했습니다.
빠듯하게는 1,000cc로도 되었지만 물구할 장소를 예상할 수 없어 항상 500~1,000cc 더 가지고 다녔습니다.
아홉사리고개 빠지는 곳에서 마지막으로 간식을 먹었는데 이후 비득재까지 트랭글이 작동 하지않아 약간 손해 났어요. ㅋ
- - - - - - - - - - - - - - - -
○ 금북기맥(錦北岐脈) 의 주요 산
(금북정맥 백월산)-성태산(624m)-조공산(399m)-월하산(423m)-월명산(544m)-옥녀봉(38m)-봉림산(346m)-오석산(127m)-남산(147m)-서대산(104m)-중대산(102m)
○ 금북기맥(錦北岐脈) 구간거리 (.도상거리:69.4km+4 .실거리: 78.3km)
- 호서정맥, 호서기맥, 금북정맥, 금북기맥... 명칭에 혼선이 생기는 이유를 어느 정도는 설명이 가능해야 하겠죠.^^
- - - - - - - - - - - - - - - - - - -
♤ 청양군(靑陽郡)
청양군은 충청남도 중앙부에 위치한 군으로 동쪽은 공주시, 서쪽은 보령시, 남쪽은 부여군, 북쪽은 홍성군과 예산군에 접하고 있다. 1읍 9면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군청 소재지는 청양군 청양읍 송방리 100번지이다.
지세는 금북정맥의 여멱이 북동에서 남서로 뻗어 칠갑산(七甲山, 561m)을 중심으로 남동부 정산 방면과 북서부 청양 방면으로 나누어진다. 남동부에는 계봉산(鷄鳳山, 211m), 대박곡산(大朴谷山, 310m), 앵봉산(鶯鳳山, 300m), 만세봉(萬歲峰, 236m) 등 칠갑산의 지맥들이 솟아있다. 북부에는 법산(法山, 459m)국사봉(國師峰, 489m), 북서부에는 문박산(文搏山, 338m), 비봉산(飛鳳山, 280m), 서부에는 백월산(白月山, 560m), 구봉산(九峰山, 485m) 등이 솟아있다. 중앙부에는 사양치(斜陽峙), 대치(大峙, 317m) 등이 있다.
금강(錦江)이 군의 남동부를 흐른다. 지천천(之川川)이 중남부를, 잉화천(仍火川)이 동부를 각각 남류해 금강으로 흘러든다. 또한 무한천(無限川)이 군의 서부 경계를 북류하며, 신양천(新陽川)이 북부 중앙을 북류해 예당저수지(禮唐貯水池)로 흘러들고 있다.
이들 하천 유역에는 비교적 넓은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금강 유역에는 장수평(長壽坪)들이 형성되어 있으며, 지천천 유역에는 고리섬들, 무한천 유역에는 가남평야(佳南平野)가 전개되고 있다.
삼한시대에 마한에 속한 54개국의 하나로 지천유역의 고리섬들에는 구로국(狗盧國)이, 무한천 유역의 용천들에는 사로국이 있었다. 백제 때는 3개 현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칠갑산 동쪽으로는 열기현이, 칠갑산 서쪽으로는 고량부리현(古良夫里縣)이, 비봉·화성면에는 사시량현이 있었다. 신라 때는 웅진도독부에 속해서 열기현이 열성현으로, 고량부리현이 청정현으로, 사시량현이 신량현으로 개칭되었다. 고려 초기에 청정현은 청양현으로, 열성현은 정산현으로, 신량현은 여양현으로 개칭되었다.
고려 성종이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청양군은 하남도의 청양, 정산현으로 감무를 두었으며 여양현에도 감무를 두었다. 1018년(현종 9) 지방제도 개혁에 따라 청양현은 천안부에 속하였고, 그 후 양광도에 속하였다가 공민왕이 양광도를 충청도로 개칭하였다.
조선 초기 1395년(태조 4)에 강무(講武)를 설치하고, 1413년(태종 13) 지방제도 개혁에 따라 현감(縣監)을 두었다. 1664년(현종 5) 정산현과 통합하였다. 1674년에 다시 정산현과 분리, 청양현을 부설하여 조선 말까지 홍주현에 속하였다.
1895년(고종 32) 행정제도 개편에 따라 청양현과 정산현은 청양군과 정산군이 되었으며 청양군은 동상·동하·서상·서하·남상·남하·북상·북하·읍내의 9개 면을, 정산군은 대박·백곡·목동·잉화달·청소·장촌·관현·적곡의 8개 면을 관할하였다.
1914년 전국적인 군 통폐합 때 정산군을 통합하여 청양군이 되었다. 이때 홍주군 화성·여구향·얼방·상전의 4개 면과 공주군 성동면 반곡리·평동·건천리 일부와 공주군 반탄면 진두리와 부여군 도성면 구룡리, 공동면 금강리 일부 및 대흥군 이남면의 일부를 합병하여 읍내·운곡·대치·정산·목·청장·적곡·사양·화성·비봉 등 10면 115개리로 개편, 관할하였다.
1942년 청장면을 청남면으로, 읍내면을 청양면으로 개칭하였고, 1979년 청양면이 청양읍으로 승격하였다. 1987년 적곡면이 장평면으로, 사양면이 남양면으로, 1991년 장평면의 적곡 2리가 도림리로 개칭되었고, 1992년 청양읍이 읍내 5리, 적누 2리, 송방 3리로 분구되었다.
2003년 현재 청양읍과 대치면·목면·비봉면·남양면·운곡면·장평면·정산면·청남면·화성면의 1읍 9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 보령시
충남 중서부에 있는 시. 1995년 대천시와 보령군이 통합해 보령시가 되었다. 중서부 해안의 거점도시로서 각종 자원이 풍부해 발전 잠재력이 무한한 지역이다. 서해안에서 가장 규모가 큰 대천해수욕장을 비롯하여 도서지역을 포함, 9곳의 해수욕장이 있다. 매년 7월 열흘간 열리는 보령머드축제는 보령시의 대표 축제이다. 행정구역은 웅천읍·주포면·주교면·오천면·천북면·청소면·남포면·청라면·주산면·미산면·성주면·대천1동·대천2동·대천3동·대천4동·대천5동 등 1개읍 10개면 5개동이 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옛 보령군(保寧郡)·남포군(藍浦郡)·오천군(鰲川郡)이 하나로 통합되어 보령군이 되었다. 옛 보령군은 백제시대에 신촌현(新村縣:또는 沙村縣)으로 통일신라시대인 757년(경덕왕 16)에 신읍현(新邑縣)으로 개칭, 결성군 영현(領縣)이 되었다. 고려초인 940년(태조 23)에 보령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018년(현종 9)에 홍주의 속현이 되었다가 1106년(예종 1)에 감무를 둠으로써 독립했다. 조선초의 군현제 개편으로 1413년(태종 13)에 현감이 설치되었으며, 1662~65년에 도호부로 승격되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충청도 수군절도사영(水營)이 위치한 충청도 해안 방어의 중심지였다. 지방제도 개정으로 1895년에 홍주부 보령군, 1896년에 충청남도 보령군이 되었다. 1901년에 전에 수영이었던 지역을 중심으로 오천군을 신설해 금신면을 이관했다.
그러나 1914년 군면 폐합 때 보령군의 주포면 일원과 장척면·목충면의 일부를 합하여 주포면으로, 청소면·장척면을 청소면으로, 우라면·목충면을 대천면으로, 청라면·오삼전면을 청라면으로, 남포군의 군내면·신안면·북내면을 남포면으로, 웅천면·고읍면을 웅천면으로, 불은면·습의면을 주산면으로, 북외면·심전면을 미산면으로, 오천군의 천북면은 그대로, 천동면·하남면·하서면을 오천면으로 통폐합하여 면적이 크게 넓어진 새로운 보령군이 되었다. 1963년에 대천면이 읍으로 승격되고, 1986년에 시로 승격, 분리되었다. 1986년에 성주출장소가 성주면으로, 1989년 주교출장소가 주교면으로 각각 승격되었다.
1995년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전국행정구역개편으로 전형적인 농촌지역이던 보령군과 도시기능을 담당했던 대천시가 하나로 통합되어 보령시라는 새로운 형태의 도농통합시를 이루었다. 호서정맥은 점차 낮아져 낮은 구릉을 형성하며, 미산면·청라면·성주면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지역에 비옥한 평야가 펼쳐져 있다. 오서산은 삽교천·무한천·대천천·광천천·진죽천의 발원지이며, 이 하천들은 시내 벼농사의 젖줄이 되고 있다. 남동부 산악지대에는 웅천천·풍산천에 의해 협곡이 형성되었으며, 산간곡저를 따라 평야가 좁게 발달했다. 특히 보령시에서 제일 긴 하천인 웅천천은 성태산에서 발원하여 미산면 중서부를 지나 웅천평야를 이루고 서해로 유입한다. 보령시는 15개의 유인도와 63개의 무인도를 포함하고 있다. 해안일대는 리아스식 해안으로서 간만의 차가 크고(7.2m) 수심이 얕아 어족의 번식에 적합하여 각종 수산물 양식의 최적지이다.
♤ 부여군
충남 남서부에 있는 군. 삼국시대 백제의 마지막 도읍지로 2015년 유네스코 백제역사유적지구로 등재되었다. 백제의 옛 도읍지로 뛰어난 자연경관과 함께 백제문화의 유물·유적이 산재해 있는 문화관광지이다. 행정구역은 부여읍·규암면·은산면·외산면·내산면·구룡면·홍산면·옥산면·남면·충화면·양화면·임천면·장암면·세도면·석성면·초촌면 등 1개읍 15개면 433개 동리가 있다. 지금의 부여군은 1914년의 군면 폐합 때 옛 부여현·홍산현·임천군 전역과 석성현 일부가 통합되어 이루어졌다. 옛 부여현 지역에는 선사시대의 취락지와 많은 청동기 유물·유적이 발견되어 일찍부터 인간의 거주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삼한시대에는 마한의 초산국이 이곳에 있었던 것으로 비정되고 있으며, 백제 때는 소부리현(또는 사비)이었다. 백제는 538년(성왕 16)에 웅진(공주)에서 사비로 도읍을 옮기고 나라 이름을 남부여로 바꾸었다. 이후 660년(의자왕 20)까지 6대 123년 동안 이곳은 백제의 왕도로서 백제문화의 꽃을 피웠다.
백제 멸망 후 신라가 671년(문무왕 11)에 소부리주(또는 사비주)를 두었으며, 757년(경덕왕 16)에 부여군으로 고치고 웅주(공주) 관하에 두었다. 고려시대에는 1018년(현종 9)에 공주의 속현이 되었다가 1172년(명종 2) 감무를 둠으로써 독립했다. 조선초의 군현제 개편으로 1413년(태종 13) 현이 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별호는 여주였다. 지방제도 개정으로 1895년 공주부 부여군, 1896년 충청남도 부여군이 되었다. 1960년에 부여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73년 석성면 현북리를 부여읍으로, 장암면 사산리를 세도면으로 편입했다.
군의 북쪽·서쪽은 충청남도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호서정맥의 말단부에 해당되는 산지이고, 남쪽·동쪽은 금강 유역의 충적평야와 저구릉성 산지로 이루어져 대체로 '북서고남동저' 형태의 지세를 보인다. 북서 산지지역에는 성태산(631m)·월명산(544m)·만수산(432m)·축융봉(455m) 등이 솟아 있다.
이들 산지의 남동사면은 200m 이하의 저산성 산지로 이루어진 구릉지대를 형성하여 주요 전작지대를 이룬다. 군의 남동부 지역에서는 백마강(금강)이 부여읍을 감싸며 군의 남쪽 경계를 이루면서 서해로 흘러든다. 북서산지에서 발원하는 은산천·구룡천·금천·사동천 등이 주변에 충적평야를 형성하며 금강에 합류된다. 특히 금천과 구룡천이 합류하는 구룡면·규암면·남면 일대에 펼쳐진 구룡평야·남면평야는 군내의 대표적인 쌀 생산지이다. 수박·토마토·채소류는 금강 주변에서 주로 생산되며, 임천면은 서천군의 한산과 함께 모시생산으로 유명하다. 임야는 군 전체면적의 51.9%를 차지하며, 충청남도 제1의 밤 생산지이다. 대전-장항을 잇는 국도가 군을 동서로 가로지르고 홍성-김제, 보령-공주를 잇는 국도와 교차한다. 따라서 논산·공주·예산·장항·청양 방면으로의 교통이 편리하다. 또한 논산시를 지나는 호남고속도로를 이용해 서울과 연결되며 서울까지는 3시간 정도 소요된다. 백제시대 유적으로 능산리고분군(陵山里古墳群 : 사적 제14호)·태양리석실고분(太陽里石室古墳) 등의 고분과 성흥산성(聖興山城 : 사적 제4호)·부소산성(扶蘇山城 : 사적 제5호)·청마산성(靑馬山城 : 사적 제34호) 등 다수의 산성이 있으며, 그밖에 쌍북리요지(雙北里窯址 : 사적 제99호)·궁남지(宮南池 : 사적 제135호) 등 많은 유적지가 있다. 불교문화재로는 부여읍의 정림사지(定林寺址 : 사적 제301호)·정림사지5층석탑(국보 제9호)·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국보 제288호)·석불좌상(石佛坐像 : 보물 제108호)이 있으며, 보광사대보광선사비(普光寺大普光禪師碑 : 보물 제107호)·대조사석조미륵보살입상(大鳥寺石造彌勒菩薩立像 : 보물 제217호)·무량사 극락전(極樂殿 : 보물 제356호)·5층석탑(보물 제185호)·석등(보물 제233호) 등이 있다. 유교문화재로는 부여향교(扶餘鄕校)를 비롯한 석성향교·홍산향교·임천향교 등 4개 향교의 대성전과 칠산서원(七山書院)·의열사(義烈祠)·삼충사(三忠祠) 등이 있으며, 그밖에 홍산보부상유품(鴻山褓負商遺品 : 중요민속자료 제30호)·은산별신제(恩山別神祭 : 중요무형문화재 제9호)·내산면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320호) 등이 있다. 전국 10대 관광권 중 하나인 부여군은 널리 알려진 부여8경과 함께 수많은 유물·유적이 있고 금강과 외곽지역의 유서 깊은 절과 명산 등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관광자원이 풍부하다.
- - - - - - - - - - - - - - - - - - - - - -
명우산(鳴牛山/368m)→ (0.9km) → 절대봉(353봉) → (0.9km) → 340봉 → (3.1km) → 차동고개(車洞고개/차령고개/215m) → (1.9㎞) → 고재고개(古峴-) → (2.3㎞) → 장학산(長鶴山/381m)
장학산(長鶴山/381m) → (0.8km) → 성황당고개(373m) → (1.8㎞) → 야광고개 → (2.0㎞) → 사점미재(406m) → (0.8㎞) → 국사봉(國師峰/489m) → (4.1km) → 운곡고개(298m) → (1.2㎞) → 금자봉(金子峰/370m)
금자봉(金子峰/370m) → (2.5㎞) →분골고개(181m) → (1.0km) → 효제고개(와고개/645지방도/275m) → (2.0㎞) → 문박산(文博山/338m) →(3.8㎞) → 학당고개(鶴塘-/29번 국도)
학당고개(鶴塘-/29번 국도) → (3.3㎞)→ 오류골고개 → (1.9㎞) → 일산봉(333m봉/삼각점) → (2.2㎞) → 여주재(36국도/210m) → (0.8㎞) → 천마봉(天馬峰/420m) → (0.8㎞) → 매산리도로(큰골재/235m)
매산리도로(큰골재/235m) → (2.7km)→ 구봉산/오봉산(九峯山/五峰山/498m)→ (2.7㎞) → 공덕재(610번 지방도/240m) → (0.6㎞) → 간티(126m) → (1.0km) → 361봉 → (1.4㎞) → 백월산(白月山/570m)
백월산(570m) → 2.8km → 성태산(623m) → 2.5km → 반고개(210m) → 2.5km → 조공산(390m) → 4.8km → 새재고개(310m) → 3.5km → 월하산(422m) → 3.3km → 지티고개(146m)
지티고개(146m) → 4.4km) → 월명산(544m) → 3.4km → 343봉 → 1.2km → 비득재
- - - - - - - - - - - - - - - - - - - -
주말에 계획을 세웠다가 조금 당겨서 다시 도착한 차동고갭니다.
차동고개에는 저 예전 주유소 관리동 건물만 패잔병처럼 덩그러니 남아 있답니다.
혹시 식수를 보충할 장소라도... 주위에 아무리 둘러봐도 물 구할 곳이 보이지 않네요.
십여일 전에 봐둔 들머리 입굽니다. 우측으로 곧바로 산으로 올라가도 되고 길따라 가도 잠시 뒤에 만납니다.
차잡아먹는 소리가 시끄러운 차동터널입니다. 터널입구에 소음저감장치 설치가 어려운 일일까요?
♤ 차동고개(車洞고개/차령고개/215m)
충청남도 공주시의 유구읍 녹천리(鹿川里)와 예산군 신양면 차동리(車洞里)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남금강(南錦江)의 지류인 유구천(維鳩川)과 북서류하는 무한천(無限川)이 이곳에서 발원하며, 두 하천의 분수령이 된다.
고개의 남서쪽 녹천리(鹿川里)에는 상장천, 하장천 등의 마을이 있고, 동쪽 차동리에는 대촌, 송정, 불모골 등의 마을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차유현(車踰峴)은 서쪽 35리에 있다."라는 기사가 있어 당시 지명을 보여준다. 『대동지지』와 『대동여지도』에서는 차유령(車踰嶺)으로 수록되어 있다. 지명은 옛날 불왕골에 살던 효성이 지극한 차서방이 병든 어머님의 약값을 구하기 위해 산에서 나무를 하다 자던 중 꿈속에 하얀 할아버지가 나타나 "네가 지금 있는 곳에서 동쪽으로 열 걸음을 가면 산삼이 있을 것이다. 산삼을 달여 어머님께 드리면 나을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차서방은 꿈속 할아버지가 계시한 산삼을 캐서 늙고 병든 어머님께 달여 드려 병을 낫게 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바쁘게 가다보니 준비한 자료도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지도 한번 펼쳐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준비한 자료와 지도를 살펴보고 주위를 둘러보는 여유쯤은 가져야 되는데 말입니다.
♤ 고재고개(古峴-)
녹천리(鹿川里)의 고재(古峴)에 있는 고개로 여래미리 윗고재에서 고재를 넘나들던 고개이다. 녹천리는 법화산 끝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전형적인 산촌 마을이다. 마을 중앙으로 하천이 흐르고 있으며, 그 주변에 들판이 조성되어 있다. 자연마을로는 고재, 녹문, 솔모리골, 신촌 마을 등이 있다. 고재 마을은 고재 밑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붙여진 지명이며, 녹문 마을은 장이내의 동문이란 뜻을 따서 이름 붙여지게 되었다. 솔모리골 마을은 마룻들 맞은 편에 있는 마을이며, 신촌 마을은 녹문 서쪽에 새로 된 마을이라 해서 신촌 마을이라 불린다.
장학산 정상에는 아무런 표식도 없습니다.
♤ 장학산(長鶴山/381m)
충남 예산군 신양면 여래미리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381m이다. 산맥이 길고 비학지형이 있어 조선시대 묘를 쓰는데 학이 날아갔다 하여 산의 이름을 장학산이라 하였다. 유구읍 노동리의 남서부·북동부·중서부에는 천봉(千峰/422.3m)·관불산(冠彿山/399m)·장학산(長鶴山/381m) 등을 비롯하여 200~500m의 산들이 둘러싸고 있다. 그리고 유구천(維鳩川)의 지류인 백교천(白橋川) 유역에는 해발 고도 100~200m의 충적 평야가 있다.
성황당고개는 고개이름으로 제일 많지 않을까요? 성황당인지 서낭당인지 원...^^ 당집, 우물, 커다란 당산나무, 돌탑 등등이 있어야 어울리죠. 나무에 설빔같은 오색 옷감을 둘둘 말아둔 경우도 있고요.
♤ 성황당고개
예산군 신양면과 청양군 운곡면의 경계이다. 진행방향 좌측이면 청양이죠, 고개 아래로 민가 여섯채 정도가 보입니다.
천종산 안내표지판은 엉똥하게도 성황당고개 지나 곧바로 오르는 350m봉에 서있네요.
♤ 천종산(409m)
충남 청양군 운곡면 추광리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409m이다. 봉우리가 수없이 많다하여 천봉(千鳳)이라고도 부른다. 천종산 아래 400m 봉이 청양군 운곡면과 공주시 유구읍·신풍면의 삼면봉이다.
고개에 야광나무가 많다던가 한밤중에 빛이 품어져 나는 뭔가가 있는 야광인줄.... ㅎㅎ
♤ 야광고개
충남 청양군 운곡면 추광리(楸光里)에 위치한 임도 고개이다. 추광리는 추동과 야광리가 통합되어 형성된 지명인데 야광고개는 야광리에 속했던 고개이다. 야광고개는 『한국지명총람』에 따르면 노동고개 또는 들괭잇고개로도 불린다. 야광리는 들괭이라고 불리었다. 괭이로 개간한 들판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현대에 들어서는 들광이라 불리고 있다.
서반봉도 공주시 신풍면과 예산군 신양면, 청양군 운곡면의 삼군봉이 아닐까요?
국사봉이 사자산이라니깐... 풍수지리학적으로 주위 형국에 사자 그림이 숨겨져 있는가봅니다.
♤ 사지미재(406m)
운곡면 신대리(사점미 마을)와 신풍면 조평리 사이의 고갯마루로, 예전에는 차라도 넘나들었을 정도의 넓은 임도이다. 벚나무로 보이는 고목나무가 있다. 사점미치(獅点尾峙)는 국사봉에서 바라볼 때 사자의 꼬리 부분에 해당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여기저기 흔히 있는 국사봉에 따라다니는 전설은 아닌지???
♤ 사자산 국사봉(國師峰/489m)
공주시 신풍면 조평리 사자산에 있으며 높이는 489m이다.
옛날 아주 오랜 옛날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는 어느 시대 궁안에서 왕자를 정성껏 가르치던 국사(國師)가 있었다. 국사는 자기의 온 힘을 다하여 나라의 장래와 궁안의 평온을 위하여 왕자에게 학문과 국정을 다스리는 경험을 가르쳤다. 세살난 어린 왕자를 훈도하기 시작하여 15세 되던 7월 무덥던 어느날, 왕자는 갑자기 열이 나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며 증세가 위급하였다. 궁안이 발칵 뒤집혔다. 전의를 부르고 대왕이 친히 나와 왕자를 간호했으나 모두 허사였다. 마침내 왕자는 긴 여름 해가 넘어가는 시각에 별세하고 말았다. 궁에서 왕자만 의지하고 자기의 모든 것을 바치던 국사는 떠나기로 결심했다. 왕은 국사가 떠나려는 것을 보고 국사에게 10년이 넘도록 애써 가르친 왕자가 죽어 궁을 떠나려는 것은 알만하나 그대로 남아서 다음 왕자를 부탁한다고 하였으나 국사는 듣지 않았다. 국사가 왕에게 하직인사를 하자 왕은 국사의 오른손에 금 한닢을 쥐어 주었다. 궁을 나온 국사는 전국 방방곡곡을 두루 떠돌아 다니다가 지금의 국사봉에 와 앉아서 먼 하늘의 구름을 해지는 줄 모르고 바라보고 있다가 앞의 땅바닥을 백일 동안 파고서는 금 한 닢을 넣고 묻었다. 국사는 아무말 없이 하늘만 쳐다보고 있더니 그 곳에 움막을 치고 살았다. 세월이 흘러 백발이 된 어느 날 아랫마을 나뭇꾼이 나무를 하러 산에 왔다가 국사를 만났다. 국사는 나뭇꾼에게 여기에 와서 혼자서 산짐승과 친구하며 산지가 30년이 넘었으며 왕에게서 받은 금을 이 산에 묻어 놓았는데 지금도 크고 있다는 말을 하고는 그 자리에 쓰러져 죽었다. 그 후부터 그 산을 국사봉이라 부르고 있으며 금을 찾기 위해 사람들은 여기저기 다 파헤쳤으나 찾지 못했다. 그 후 일본인들이 들어와 금광을 개설하여 많은 금을 캤다.
여기에 커다란 십자가 모양이 있습니다. 우회해서 옆길로 그냥 지나칠 수도 있어요.
♤ 수리치골 성모성지
천주교 박해시대에 신자들의 은신처 '수리치골'은 한국의 천주교 박해시대 때 천주교 신자들이 살았던 곳이다.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신부인 성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에게 서품을 준 3대 페레올고 주교가 조선에 입국한 후 김대건 신부가 새남터에서 순교하고 미리내(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미산리 소재)에 안장될 무렵인 1846년 11월 2일에 성모성심 심신 단체를 조직하셨던 곳이기도 하다.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의미가 아주 깊은 사적지이다. 1983년 7월 11일에 교황청으로부터 회헌의 승인을 얻어 1984년 2월 2일에 관상과 활동을 겸한 수원교구 소속 방인 수녀회를 설립 교령을 받아 수원교구 미리내 성지에 있던 미리내 성모성심수녀회(Sisters of the lmmaculate heart of Mary of Mirinae)가 수리치골로 옮겨 현재 수리치골 성지를 관리하고 있다.
여기가 마당재로 보였습니다.
이제 공주시 신풍에서 청양군 대치면으로 넘어갑니다.
♤ 칠갑지맥(七甲支脈)이란/ 지천지맥
금북정맥의 국사봉과 금자봉 사이에 있는 해발 416m 봉인 헬기장에서 남쪽으로 분기하여 청양과 공주시의 경계를 따라 내려가다 386m봉에서 동쪽으로 한 가지를 쳐 청양군계 능선을 따라가며 명덕분맥과 앵봉분맥을 떨구고, 남쪽으로 내려가 대덕봉(476.8m), 칠갑산(560m), 삼형제봉(546m), 마재고개, 백토고개, 문드래미고개, 명덕봉(108.7m)을 일구고 청양군 청남면 왕진리 창현마을 앞 지천(之川, 길이 50.4km)이 금강에 합류하는 지점에서 끝나는 도상거리 30.5km의 산줄기를 말한다. 지천의 우측 물막이가 되고 지맥의 최고봉이며 도립공원인 칠갑산에서 이름을 빌려와 칠갑지맥이라 칭한다.
♤ 칠갑지맥 개념도/ 공주시 신풍면과 청양군 대치면 경계
약간 지루한 구간인데 이런 이정표가 그나마 거리를 줄여주네요.
고도는 별 의미가 없고 조그마한 봉우리 하나씩 넘어간다는 생각뿐....
냉정마을은 내려다 보입니다.
♤ 운곡고개(298m)
청양군 운곡면 운곡리에 위치하고 큰 당산나무가 있다. 놋점미 마을과 냉정골을 이어주던 옛길로 길 좌측 냉정골 방향의 산길은 아주 뚜렷한 반면에 놋점미 마을로 이어지는 우측 길에는 쓰러진 나무가 길을 막고 있다.
금자봉 갈림길입니다.
정상에는 아무런 표식도 없습니다.
♤ 금자봉(金子峰/370m)
청양군 운곡면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370m이다. 정상에는 가지 많은 소나무가 한그루 있을 뿐 내세울 것이 없는 좁은 봉우리이다.
분골고개가 조금 남았는데 마을로 내려섰습니다.
조금 아래 버스 정류장도 보이고, 바로옆에 민가가 있어 물인심이 어떤가 들렸는데 아무도 없더군요.
♤ 분골고개(181m)/ 버스정류소, 마을회관
청양군 운곡면 위라리에 있으며 상갑리에서 청양을 잇는 지도상의 96번 도로는 신도로명이 방축길로 변경되었으며 분골 마을을 지나는 고개를 말한다. 우산갈림길에서 청양군 청양읍으로 진입한다. 운곡면 위라리의 내실에는 조선 인조 정묘호란 때의 장군인 박신용의 관복을 보관하는 유의각이 있다.
효제고개 내려서기 직전 이정표에서 천지인식당으로 내려가는 소로길이 보입니다.
밥때가 지나 안에서 문걸어두고 자는건지 주인이 없어 마당 한켠에 수도물만 보충합니다. 수도관이 노후되었는지 약수도 아닌데 물맛이 쇠냄새가 많이 나네요.
만일 여기서 점심을 먹었다면 여주재에서 맛있게 저녁을 먹지 못했겠죠~
도로따라 조금 올라옵니다. 저 아래 보이는 곳이 식당이고 그 아래 주유소, 농기구수리센터도 보입니다.
♤ 효제고개(와고개/645지방도/275m)
와고개는 청양군 효제리에 위치하고 있어 효제고개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충남 청양군 운곡면 효제리 70번 지방도가 지나고 있다. 청양방향에 주유소가 있다. 효제리는 윤형갑, 윤세웅 부자의 효자가 살았다하여 효젯골 또는 효제동이라 하였는데 분골, 소죽골, 지눌, 언묵이, 청계동 등 자연부락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효제1리 질울이 입구에는 아들바위 쉼터가 조성돼 있다.
청양군에서도 나름 정맥길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게 나타나보입니다.
정상석이 없습니다. 정자와 산불감시초소만 보이네요. 하긴 산 같지도 않은 동네 뒷동산입니다.
♤ 문박산(文博山/338m)
문박산(337.8m)은 청양군 비봉면의 주산으로 충남 청양군 운곡면과 비봉면 중묵리 경계에 있다. 예로부터 박식한 인물이 많이 나서 문박산이라 한다. 정상은 숲이 빼곡이 들어차서 전망은 전혀 없다. 정상 표식과 삼각점('청양 382, 79.8 복구')만 없으면 평범한 산길로 착각할 정도이다.
콧노래가 나올 정도로 길이 아주 좋습니다.
♤ 여우실 고개
좌측은 학당리 여우실마을이고 우측은 학당마을이다.
90도 우틀합니다.
장례식장 들어가 화장실 물을 받으려 하니깐... 아줌마가 어찌 오셨냐고 물어 지나가는 과객이 물한잔 얻으마실까 하고 들렸다고 하니... 화장실 물을 드시면 되겠습니까 하며 500cc 청양 생수를 건네 주십니다. 요 근처에 밥먹을 데는 없나요? 하고 염치없이 붙어보았지만 잘못하다간 밥달란 소리로 알아들을까봐 얼른 나왔습니다. 주유소 옆에 조그만 구멍가게가 있어 문을 열고 들어서며 "게 누구 없소~" 큰소리로 불렀더니 주인 마님 문을 벌쩍 열더니 "여긴 술 파는 곳이지 밥은 팔지 않소!" 하더라고요. ㅋ 식당은 청양방향으로 10분 걸어가야 있다는데 식당이 걸어오지 않는한 바쁜 나그네가 걸어갈 이유도 없고,,, 바빠서 그만... 빵만 먹고 갑니다.
♤ 학당(鶴塘) 고개
충남 청양군 청양읍 학당리 학당2리 회관 옆에 위치하며, 청양과 예산을 잇는 29번 도로이다. 신도로명은 충절로이다.
제법 넓게 잘 다듬어진 임도가 구불구불 마을로 향해 갑니다.
♤ 오류골 고개
좌측으로 청양군 청수리 오류골과 우측의 청양군 비봉면 용천리 방죽골을 있는 고개로 우측은 시멘트도로, 좌측은 비포장도로이다. 고개 직전 185m봉에서 청양읍에서 비봉면으로 진입한다.
일산봉 정상도 이렇게 허접합니다. 여긴 정상도 아닌데 트랭글 뺏지가 요란스럽게 들어오네요.
조금 더 올라가니 소나무가 있는 전망대도 있고, 여기가 정상이 맞지 싶습니다.
♤ 일산봉(334m)
일산봉(334봉)에는 공터가 있으며 공터의 삼각점 옆에 외톨이 소나무와 벤치가 있다.
여주고개에 도착했습니다. 주유소에는 임대한다는 횡단막이 내걸렸네요.
막 문을 닫을려는 주인장을 밀고 들어섰지요. 간판 불좀 켜보소! 청양읍에 사시는 분인데 휴게소자리를 인수해 고덕갈비 분점을 냈답니다. 약간 비싼게 흠이라면~ 갈비 먹고싶으면 코스트코에서 장봐와 신문지 깔고 소금찍어 배터지게 먹어도 얼마 들지 않거든요. ㅎㅎㅎ
기본 밥그릇 두개, 맥문동 갈비탕, 콜라, 식혜도 공짜길래 두잔 마셨습니다. 식혜와 커피가 무한리필인줄 알았더라면 콜라는 주문을 안했을건데... ㅎㅎ
♤ 여주재(210m)/ 주유소, 구봉산휴게소
36번 국도(2차선 포장도로)로서 청양군 청양읍 장승리 여퇴골과 청양군 화성면 신정리 사이를 이어주는 고개이다. 신도로명은 대청로이다. 여주재(여두재) 직전 290m봉에서 청양군 비봉면에서 화성면으로 진입한다.
정맥상 봉우리가 봉에서 산으로 다 승격을 한 모양입니다.^^ 가만 그럼 일산봉은 강등 먹었나???^^
♤ 천마봉(天馬峰/420m)
충청남도 청양군 화성면 매산리(梅山里)와 청양읍 장승리(長承里) 및 군량리(軍良里)에 걸쳐 있는 산으로 높이는 422.1m이다. 청양읍에서 가장 높은 산봉우리로 주위에는 성이 있고 성 안에는 옛날에 수십 채의 집이 있어서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고 전해진다. 산에는 천마봉 산성이 있다. 충청남도 청양군 청양읍 군량리(軍糧里)에 있는 토축산성이다. 삼한시대부터 축조되기 시작한 테뫼식 산성이다. 능선을 삭토(削土)하여 만든 산성으로 추정한다. 천마봉 아래 능선으로 동·남·북벽을 세우고 천마봉과 연결되는 다른 능선에 북서벽을 쌓았다. 북서벽은 능선을 삭토하여 3m 높이로 20m 길이로 축조하였다. 이 중 석축으로 쌓은 것은 25m 규모의 남벽뿐이다. 훼손이 심해 성곽과 관련한 시설물이나 성벽의 통과지점을 찾을 수 없다.
천마봉에서 오봉산까지의 거리가 3.5km랍니다. 도로 아래로 건물이 있어 조금 내려가보니 보신탕집 간판이 있네요. 쩝쩝 입맛만 다시고~
♤ 매산리도로(큰골 도로)
청양군 청양읍 군량리와 청양군 화성면 매산리를 이어주는 1차선도로. 좌측 아래 큰골, 우측 아래 매산리라는 이름을 따서 불리어 지는 도로이다. 신도로명은 식물원길이다.
잠깐 서서 청양읍 야경을 한참 감상합니다. ㅋ~
♤ 고운식물원
청양읍 군량리에 조성되어 있는 식물원인데요. 정맥꾼들은 입장료 7,000원 벌고 지나가는 겁니다.^^
오봉산과 구봉산이 따로 있다고도 하고 같은 봉우리라고도 하고...^^
♤ 구봉산/오봉산(九峯山/五峰山/498m)
매산리고개에서 임도따라 3.4km 지난 422m봉에서 청양읍에서 남양면으로 진입한다. 충남 청양군의 화성면과 남양면의 경계에 위치한 산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청양현의 서쪽 5리'에 자리하고 있으며, 『조선지도』, 『해동지도』, 『동여도』 등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구한말지형도』, 『한국지명총람』에도 역시 '구봉산(九峯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산의 봉우리가 아홉 개라는 의미에서 지명이 생겨났다. 화성면 구재리(九才里)에 구수동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의 이름은 구봉산 굽이굽이 흘러오는 계곡물 때문에 마을의 산수가 아름다운 곳이라 하여 생겨났다.
공덕재에는 보이는게 아무것도 없네요.
공덕재를 소개하는 안내판은 간티에 서있습니다.
♤ 공덕재(610번 지방도/240m)
청양군 화성면 화암리(花岩里)에 위치하고, 청양군 화성면과 남양면을 이어주는 610번 2차선 지방도가 지나는 한적한 고개로 높이는 240m이다. 이 고개의 동남사면에 공덕마을이 있어서 공덕재라 한다. 신도로명은 구봉로이다.
삼거리더군요.
♤ 간티(126m)
백월산 정상에서 공덕고개 방향으로 진행하면 청양군 남양면 신왕리(우측방향)와 청양군 화성면 정자리(좌측방향)를 잇는 고개마루 안부이다.
양쪽 바위가 있는 틈새를 배가 드나들었다고 배문이라 합니다. 돌에 몽돌이 박혀있어 특이하더군요.
바람이 세차게 불고 안개가 기어올라옵니다. 바닷바람이 먼저 부딪치는 곳이니 일기변화가 심할듯~
♤ 백월산(白月山/571m)/ 삼면봉 (보령시 청라면, 청양군 남양면, 화성면)
충청남도 보령시의 청라면에 위치하는 산이다. 동쪽으로는 청양군 남양면과 경계를 형성하고 북쪽으로는 청양군 화성면과 경계를 형성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백월산(白月山)은 "보령현의 동쪽 25리에 있으며, 이 산에서 대천(大川)이 발원하여 해소포(蟹所浦)로 흘러간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사나사(舍那寺)가 백월산에 있다. 한편, 『신증동국여지승람』(청양)에서는 백월산(白月山)을 '비봉산(飛鳳山)'이라고도 부른다고 기록되었다. 『여지도서』에 의하면, "백월산은 청양의 월산(月山)에서 산줄기가 이어져 오서산(烏棲山)과 성주산(聖住山)으로 각각 이어진다."고 기록되어 있다. 『대동지지』에서는 "보령현의 동쪽 30리 지점에 있으며 대흥현을 바라보고 있다."는 기록이 있다. 『해동지도』, 『여지도』, 『광여도』, 『1872년지방지도』, 『조선팔도지도』를 비롯한 여러 지도류에서 백월산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백월산은 현재 '월산(月山)'이라고도 불리며, 청양군 남양면에는 산자락에 월산사(月山寺)가 자리하고 있다.
♤ 백월산(白月山/571m) 유래
남양면에선 그 산 위로 달이 지는 것을, 청라면에선 그 산 위로 달이 뜨는 것을 늘 보아 왔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현지에선 그저 월산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 백월산 산세가 북쪽 화성면 쪽으로 머리를 숙이는 모양이어서 화성면에서 인물이 많이 난다는 전설이 있고, 그러나 남양면에서도 걸출한 인물이 많이 배출됐다고 한다. 백월산 주능선이 북쪽으로 바위벼랑을 이루고 있어 어찌보면 고개를 숙이는 모양 같기도 하다. 남양면의 전 이름은 사양면(斜陽面)이었다. 해가 기운다는 뜻의 '사양'이 고을 이름이 된 유래도 재미있다. 백월산 자락이라 할 수는 없지만 남양면 금정리에 매우 좋은 물이 나오는 우물이 있었다. 그래서 이 마을 이름도 '황금우물'이란 뜻의 '금정리'가 되었는데 이 우물은 물이 좋아서 백제의 왕들도 왕도 사비성(부여)에서 90리(36Km)나 되는 이 금정에서 물을 길어다 마셨다 한다. 물을 짊어지고 가는 왕궁 사람들이 남양면의 온직리와 부여군 장평면 거전리 사이에 있는 고개를 넘을 때 해가 기울어서 그 고개 이름을 사양치(斜陽峙)라 했고 이 사양치의 '사양'이 남양면의 이름이 된 것이다. 그런 사양의 뜻이 '지는 해'로 좋지 않다 해서 1987년 이름을 '남양면'으로 고쳤다. 지금도 사양치 고개이름은 그대로 남아 있다.
언젠간 다시 올 기로, 여기서 만납니다.^^ 스무고개까지 2.9km면 딱 한시간 거리네요.
♤ 호서정맥/ 금북기맥 갈림길
산경표상 금북정맥이 백월산을 지나 북진하는 곳이고, 신 산경표상 호서정맥이 남진하는 곳입니다.
정맥은 입해처(강하구)를 향해야 된다. 그 원칙을 벗어나 금강의 하구인 장항읍으로 내려가지 않고 안흥진으로 올라갑니다. 원인은 백월산 북쪽으로 산맥이 더 뚜렷해 생활권 구분이 확연하다는 현실적인 면을 고려한 때문 아닐까요?
♤ 다리재/ 월치(月峙), 월재
성태산 정상도 산안개가 뿌옅습니다. 오름에 뒤돌아보니 백월산 정상에 시커먼 먹구름이 잔뜩 몰려 있더군요. 아마도 눈 왔을듯~
여기까지 왔는데 만세봉을 안가볼 수 없고,,,
♤ 성태산 천세봉(624m/ 千歲峰) 삼군봉/ 성주지맥분기봉
(보령시 청라면 나원리, 청양군 남양면 백금리, 부여군 외산면 수산리) 세개 시군에 걸쳐있는 산으로 1919년 만세운동 당시 청양, 보령, 부여 3개 시군 주민들이 모여 봉화를 올리고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만세운동을 하였다고 하여 이곳 정상을 만세봉(631m/ 萬歲峰)이라 하고 다음 봉우리를 천세봉이라 명명하였다 한다.
♤ 성주지맥이란? / 금북성주지맥
신 산경표 호서정맥 성태산(624m)에서 남서쪽으로 분기하여 성태산 만세봉(631m), 문봉산(633m), 성주산(677m), 왕자봉(515m), 바래기재, 옥마산(597m), 말재, 이어니재, 봉화산(323m)과 진미산(417m), 진등삼거리, 통달산(184m)을 지나 보령시 웅천읍 소황리 장안마을 앞 웅천천으로 맥을 다하며 서해로 흘러드는 길이 약 38.5km의 보령지역을 흐르는 산줄기로 좌로는 웅천천을 우로는 대천천을 흐르게 한다.
♤ 성주지맥 개념도
♤ 옥과실고개
이 산줄기 남쪽 마을이 옥가실마을이다. 그래서 명칭이 생긴듯...
거인산악회 기맥종주대에서 정성드려 표지판을 다는 산행기를 보았기에 땅에 떨어져 있는 표지판을 잘 걸어두었습니다. 삼각점이 있는 곳에 가보니 백세봉이란 말뚝 이정표가 뽑혀져 버려져 있네요.
♤ 행여봉(백세봉)
국립지리원 지도에도 백세봉으로 나온다. 봉우리에 ‘행여봉’이란 정상 표지판이 2개나 걸려있다. 이정표(만세봉1.2km/백금리/옥가실1.4km)가 있다.
신나게 가파른 내리막을 밟으니 널찍한 임도가 나타납니다. 벌써 반고개에 온지 알았다는...
멀리 보이는 산아래 불빛을 보고 바닥 도로까지 내렸다가 다시 올라가야 합니다.
아스팔트 도로로 잘 떨어져야 하는데 무덤이 잔뜩 있는 곳에서 옆으로 새서 논두렁을 밟고 다녔네요.
트랭글 어플을 돌리고 넓히고... 방향을 맞추느라 요리저리 지관이 패철 돌려보듯 했습니다.^^
♤ 반고개
606지방도(만수로) , 청양군 남양면 수신리와 흥산리 사이 고개마루에서 부여군 외산면의 경계이다. 청양쪽에 반고개가든이 있다.
♤ 구루고개
청양군 남양면 매곡리에서 부여군 외산면을 넘어가는 고개이다.
♤ 치앙재
반고개가든에서 우측으로 시멘트 도로를 따라 구루고개를 넘어야 하는데요. 밤중이라 잘 보이지 않아 우측으로 반고개 식당 옆으로 들어가 산밑에 빌라가 있던데 그 뒤로 대나무숲을 헤집고 길위로 올라섰다는... 새벽 세신데 옆에서 반고개가든 개는 짖어대고..., 도로를 따르다가 치앙재에서 다시 산으로 달라붙습니다.
조공산 갈림길에 경주김씨와 안동김씨의 합장 무덤이 있습니다. 기온 변화가 급격하니 비석이 절반은 젖었습니다. 조공산은 내려섰다가 봉우리로 다시 올라서는 200m 다녀와야 한다나봐요. 가다가 그만 너무 멀게 느껴져 돌아서서 왔습니다.
♤ 조공산(399m)/ 삼면봉
청양군 남양면, 부여군 은산면, 외산면의 경계인 삼면봉이다. 이후 부여땅으로~
여기도 거인산악회가 설치한 안내판이 바닥에 떨어져 있네요. 가는 철사로 묶어서 고정했던데 조금 약한것 같았습니다.
♤ 구신이재/ 부여고개
벌목지 아래로 은산면 나령리 일대가 내려다보인다.
마동재에서 임도길로 우회를 해도 된다던데 산길로 접어들었습니다.
♤ 마동재
좌측 산길 우측 임도로 우회 가능, 이후 생각보다 넓은 밤나무단지를 지난다.
밤나무단지 생각보다 거리가 꽤 길어보였습니다. 하지만 끝을 보려면 끈기있게 걸어야죠. 이 건물이 그 밥값 못하는 개가 지킨다는 밤나무단지 관리동인가 봅니다. 신새벽인데 불이 환하게 켜져 있네요.
새재고개가 나오면 얼추 밤나무단지가 끝나간다는건데... 이후로도 포장도로에서 흙길로 임도를 바꿔 한참을 걷습니다.
♤ 새재고개
새재는 옛날 날아가는 새들만이 넘었다는 높고 험한 고개로 숫한 전설과 유래를 남긴 고개이다. 새마을운동으로 새 길이 개척되었다. 대은(大恩)도로이다. 옛날 백제 광복군이 이 길을 넘나들며 나라에서 입은 큰 은혜를 잊지 않고 광복을 이루려고 한 숭고한 충성심을 되새김과 아울러 대천과 은산을 연결한다는 의미도 있다. 각대리 감봉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형적인 중산간 지역이다. 동북쪽에는 합수천이 흐르고, 남쪽에는 수목천이 남류한다. 백제시대에는 사비군, 신라시대에는 부여군, 고려시대에는 공주군에 속하였고 조선시대에는 부여군 가좌면의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숭각리와 대대리 일부를 병합하여 숭각과 대대의 이름을 따서 각대리라 하고 은산면에 편입하였다. 자연마을로는 숭각(숭각리)가 있다. 숭각은 숭각사가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거칠고개
월하산 아래 한 뜸에 일곱 가구씩 모여사는 동네가 있는 고개랍니다.
날도 밝았고 월하산은 봉우리가 가깝게 보입니다. 배낭 놔두고 얼른 다녀왔습니다.
♤ 월하산(423m)
충남 부여군 외산면 화성리(花城里)와 내산면 온해리(溫海里) 경계에 있는 산이다. 이 산을 중심으로 안쪽은 내산면, 바깥쪽은 외산면으로 갈라져 있다. 들을 내려다보고 높이 솟아 달아래 우뚝 솟은 산이라 해서 월하산이라고 한다. 『조선지지자료』에는 홍산군의 외산면에 월하산이 기록되어 있다. 한글로 '달아산'이라 쓰고 소재지는 복동리(福洞里)이다.
♤ 외산면 화성리
백제 때 대산현에 속했고 조선시대는 홍산현 외산면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개혁 때에 조치리(鳥峙里), 마동(馬洞), 신성리(新城里), 화암리(花岩里), 전장리(前庄里) 일부를 병합하여 화암과 신성의 이름을 따서 화성리라 하였고, 부여군 외산면에 편입하였다.
화성리에 처음 정착한 씨족으로는 김해김씨로 추정되며 절골에는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89호로 지정된 고려 때의 탑으로 오층석탑을 개인이 절터에 복원하였고 화엄사(花嚴寺)라는 개인 불당을 세웠다. 자연마을로는 화암, 마동, 조치 마을이 있으며 뜸별로는 항상 일곱 가구가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해서 거칠이라 부르다가 변하여 것칠, 월하산 아래 마을이 있으므로 달래산, 달하산, 월하산이라 부르고, 마동 마을은 마을 중심으로 구들골, 질마재, 오양골, 통매, 등으로 부르는데 옛날 지관이 이르기를 구들골의 말이 먹이를 먹는 구두이고, 오양골은 말이 잠자는 장소이고, 통배는 먹이를 나르는 통과 같은 형태이며 질마재는 말이 먹이를 먹고 달려가는 형국이다. 즉, 말과 인연이 있는 마을이라 마동, 꽃 같은 바위가 장엄하게 서있는 마을이라 화암이라 부른다.
밤새 한잠도 안잤더니 무지 졸려서 월하산 내리고 다음 봉우리 올르는데 입으로 올랐는지 코로 올랐는지 모르겠더군요.
날이 밝으니 점점 기운이 돌아옵니다. 다시 정신 바짝 차리고 지티고개에 내려섭니다. 저런 조형물이 어떤 의도로 누구에 의해 설치되었는지 궁금했습니다. 뒤쪽으로 조각공원 같은게 보이기는 하던데 그쪽으로 초입 들머리를 잡아도 되던데 바빠서 자세히 살피지를 못했습니다.
♤ 지티고개
충남 부여군 내산면에 지티리란 마을이 있다. 지티리는 괴목 마을과 지티 마을로 이루어져 있는데 985년쯤 안동 장씨가 이주해 마을을 이루었다고 한다. 지티는 외산면 반교, 가덕리와 경계 고개라하여 지티라 하며 40번 국도가 지난다. 구한말 의병 활동과 깊은 연관이 있다. 을미의병의 대표적 인물 민종식의 처남 구룡 죽절리 살던 이용규가 흩어진 의병을 모아 봉기한 곳이 지티이다.
괴목 마을은 마을 입구에 500년 쯤된 느티나무가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466년쯤 남원양씨가 개촌했다. 이후 차씨 등이 마을에 입촌해 융성했다. 하지만 임진왜란으로 마을의 젊은이들이 모두 징집돼 현재 두 성씨는 한집도 남아있지 않다.
마을사람들은 해마다 느티나무 앞에서 노신제를 지낸다. 다른 곳과 좀 틀린점이라면 남성은 제를 올리는 한 사람이고 여성들이 주를 이루워 제를 지낸다. 그리고 재미난 점은 짚으로 말 형상을 만들고 그 말에 여러가지 음식과 제물을 얹어서 다른곳에 가서 태운다. 말이 마을의 모든 액운을 짊어지고 간다는 믿음 때문이다. 느티나무는 왜구와 싸우기 위해 전쟁터로 나간 남편을, 아빠를, 자식을 기다리는 수 없는 눈물을 지켜보았으리라. 젊음 남자들이 씨가 마른 마을에서 느티나무는 두려운 긴긴밤을 보내는 아녀자들에게 너무나 든든한 수호신이었으리라. 느티나무가 500년 넘는 세월동안 죽지 않고 살아 남은 건 이 때문이었으리라.
금지암 임도 삼거리... 금지사라고도 하고 월명사라고도 하고 그런가 봅니다. 금지리가 부여쪽의 동네이름이니 월명산에 절이 금지사로 불리는게 반대쪽인 보령에서 보면 마땅할 리가 없겠죠.
여기서 물뜨러 가면 그냥 죽음입니다.^^ 산으로 오르면 정상 넘어서서 월명사에 근접합니다.
살짝 힘들게 오릅니다. 오름 중간에 삼면봉(보령 미산, 부여 내산, 외산)인 장군봉 갈림길이 있다는데 못 본건지 특별한 표지가 없어서 그냥 통과했습니다. 여기까지도 비득재에서 그만 둘 의향은 없었습니다. 월명산 내림에 보니 산굽이가 말발굽 모양으로 동네를 빙돌아갑니다. 지도를 연상하고 여기가 거기로구나 하며 신나게 마지막 힘을 쏟아부었습니다.
♤ 월명산(544m)/ 삼면봉 (보령시 미산면, 부여군 내산면, 외산면)
월명산은 부여군 내산면 금지리, 외산면 가덕리, 보령시 미산면 도흥리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부여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알려져 있다. 월명산을 지나 417봉과 405봉을 지나면 이후부터는 400m 넘는 산을 볼 수 없으며, 호서정맥 부시치고개를 지나 서천의 월명산(276m)을 다시 만날 수 있다. 보령시의 새로운 관광명소인 보령호 동쪽에 위치한다. 1998년 보령댐 완공과 함께 보령호반을 한바퀴 도는 도로가 생기면서 점차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정상은 세개의 봉우리로 되어있는데 주봉은 해발 544m이다. 건교부 2등삼각점이 있고 주봉에서 남쪽으로 가면 주봉보다 낮은 봉우리에 묘지와 폐기된 것으로 보이는 헬기장이 있으며 동쪽으로는 금지사가 보인다. 제2봉에서 다시 남으로 5분 정도 가면 주봉과 거의 같은 높이의 제3봉에 이른다. 다른 봉우리와 달리 주변에 큰 나무가 없고 다른 산으로 시야가 가리지 않아 동서남북이 훤하게 잘 보인다. 동북으로는 부여군, 남으로는 서천군(舒川郡)을 비롯한 옛 장항제련소(LG산전 장항공장) 굴뚝이 멀리 보이고, 서로는 서해바다와 보령시 남부 일대를 한눈에 볼 수 있으며 크고 작은 보령시 연안의 섬들과 중부화력(구 보령화력본부)까지 잘 보이고 맑은 날은 동쪽으로 계룡산 연천봉이 아득히 보인다. 주봉을 중심으로 대략 남북으로 능선이 형성되어 보령시와 부여군의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부여군 내산면 금지리에 금지마을, 외산면 가덕리에 가리정골, 손사, 손대 마을이 있다. 남쪽과 서쪽으로는 몇 갈래의 능선과 계곡을 형성하여 도흥리(都興里)를 이루고 있는데 백재골, 도장골, 자명마을이 있다. 또한 남쪽 능선을 따라가면 부여군 홍산면 상천리와 아홉사리고개와 연결되는 상기리가 위치하며 도흥리와 비득재로 연결된다.
♤ 405m봉/ 삼면봉
보령시 미산면 도흥리, 부여의 내산면 금지리와 홍산면 상천리 삼면의 경계가 만나는 봉이다.
조선낫 왜낫은 알겠는데 큰낫 작은낫은 듣느니 처음입니다. 뭔가 연유가 있겠지만은요.
지리산 날나리봉이 낫의 날같이 생겨 낫날봉인 것을 날나리봉으로 알아들었다는 말은 들었어도....
♤ 큰낫고개
♤ 작은낫고개
작은 천덕산은 부여와 보령의 경계입니다. 산중에 오거리이네요.
큰천덕산은 삼면봉입니다. (보령시 미산면, 부여군 옥산면, 홍산면)
♤ 천덕산(天德山/363m)
천덕산은 충남 보령시 미산면과 부여군 홍산면의 경계에 위치한 호서정맥상에 있는 산이다. 호서정맥의 후반부가 청양의 백월산에서 장항의 용담으로 이어지면서 월명산을 지난 405m봉에서 두 갈래로 갈라지게 되는데, 이 중에서 북서쪽으로 가지를 친 산줄기는 천보산을 일구고, 남서쪽으로 가지를 친 산줄기가 천덕산을 일군다. 부여군 옥산면 상기리의 아홉사리고개와 홍산면 상천리의 지티고개 및 상천2리 마을 그리고 미산면 자명리 등에서 산행을 시작할 수가 있다.
♤부여 홍산리 아홉사리 고개
♤ 비득재
보령의 미산면 도흥리와 부여의 옥산면 상기리 경계를 이어주는 편도1차선 아스팔트 도로이다. 절개지를 비켜 내려선다.
공주시 유구, 신풍, 예산군 대술, 신양, 청양군 비봉, 청양읍, 화성, 남양, 보령시 청라, 미산, 부여군 외산, 은산, 내산....
무지원 단독 장거리는 무게로 인해 보온병과 불질도구는 언감생심입니다. 따라서 찬물로 요기를 하니 떨려서 바로 출발하든지 걸으며 먹어야 합니다. 아니면 먹으며 걷든지...
비득재를 수일내 다시 찾아야 합니다. 새끼 발가락 발톱이 말썽을 피워 발이 많이 부었습니다.
|
첫댓글 경자년 1월의 마지막을 멋지게 마무리하셨네요 엄청한 이동거리만큼이나 산행기의 방대한 자료에 감탄입니다 하루종일 두문불출 노력하셨을듯~ 고생하셨습니다
네~~happy마당쇠님!^^
자료는 미리 80% 이상 모아둡니다. 현지에서 확인하고 첨삭하는 식이라서 대여섯 시간 정도면 만들어지네요. ㅋ~
주말보다는 날씨가 좋아서 당겨서 다녀왔습니다. 이제 여유를 가져도 되고, 여건이 잘 받쳐주면 2월에도 세번 다녀보겠습니다.^^
산행기 읽으면서 놀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장거리 그것도 초장거리 산행에 자세히 거의 모든 것을 담은 산행기에,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악산님 지금도 해외에 게신가요?
일단은 전염병 조심하십시요~ 워낙에 방송매체에서 떠들어대니 조금 신경쓰입니다.
저도 100km를 한번쯤 돌파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멘탈이 약한가 봅니다.
80km 육박하면 오만간데가 다 쑤시고 내려가서 먹고싶은게 많아져서 그만두곤 합니다.^^
이번엔 남은 거리를 계산하고 여기서 마쳐도 어차피 한동가리니 또오마고 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금북기맥 나홀로산행 다녀 오셨네요
산행기 잘 보고 갑니다
산행에 안산 즐산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독도는우리땅선배님!^^
다음구간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보령에서 도흥리보다는 부여에서 상기리종점으로 비득재 어프로치가 나아보입니다.^^
이틀동안 주야없이 거침없는 행보는 이어지셨네요.
박배낭 메고 진행되는 모습도 상상이 되구요.~
덕분에 지난 금북길의 추억들을 떠올려 봅니다.
너무 수고많으셨구요.~
이어지는 멋진 마루금 답사길 기대됩니다.
화이팅!!
네 방장님!
자투리가 50km 좀 안 되는것 같습니다.
서천읍내 숙소에서 쉴까, 텐트 지고갈까, 늦게 출발할까 고심 중입니다.^^
금북기맥을 하셨군요 대단하십니다
체력도 대단하시고 담력도 대단하시고^&^
덕분에 다시한번 금북기맥에 있는 산들 구경 잘하고 갑니다
항상 즐산+안산 하시길 빕니다^&^
넵! "홀로 깊은 산중을 헤매며" 란 도요새님 노란 시그널을 볼 때마다 기분업 되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꾸뻑
저는 원점회귀 형태여서 산줄기하시는 분들깨 누를 끼칠까봐 시그널도 조심스레 달도 다닙니다
잘 못 부착한 곳은 다시 되돌아가서 떼고 그렇습니다 ㅎㅎ
행여 다니시다가 누가 될 것 같다는 제 시그널은 제거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퐁라라님 산행기를보면 지난날의 추억이 많이 떠오름니다.
산행후 학당마을 정자에서 삼겹살도 구워먹은적이 있고 청양농협장례식장에서 차박을했던 추억도 있었네요.
백월산에서 금북기맥으로 이여 가셨고 다음주엔 금북기맥도 졸업을 하겠군요,
장거리 산행에 수고 많으셨습니다.
네 부뜰이 운영자님!^^
신산경표가 호서정맥을 규정하고 나머지 부분에 금북기맥의 지위를 주었으니 산경표상 금북정맥을 말한다면 이 부분은 금북기맥이나 호서기맥이 되겠군요.^^ 출정할 날은 아직 잡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