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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대전광역시 및 충청북도 옥천군의 식장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 2018년 02월 04일 (일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하루 종일 흐리고 싸락눈이 내렸으며 강한 바람이 불어 강추위를 느꼈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 영하 06도에서 영하 01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세천공원 버스정류장(세천공원로 4차선 포장도로, 경부고속도로 지하도로)-식장산삼거리(4번 8차선 포장도로)-청매실농원-시멘트 포장도로-폐 가축사육장-철조망지대-176 무명봉-잡목과 잡풀지대-
매실과수원-201 무명봉-비룡동 시멘트 포장도로-줄골고개(비룡동고개, 대청호수로 2차선 포장도로, 형제농원)-장승 이정표(새울약수터 0.87 Km, 절고개 6.0 Km, 세천공원 1.0 Km)-비룡마을 복지회관-
능선진입-227 무명봉-28번 송전탑-갈고개 돌탑과 이정표(갈현성 150m와 능성 2.17 Km, 새울약수터 0.23 Km, 줄골 0.63 Km와 세천공원 2.3 Km)-나무계단-갈현성(기념물 제12호)-262 무명봉-
벤취쉼터2봉-비룡임도(표지석과 대전둘레산길 안내도) 이정표(능성 0.9 Km, 갈현성 0.2 Km, 대전대학교 1.4 Km, 줄골 1.6 Km)-이정표(능성 1.38 Km, 줄골 1.44 Km, 군부대 0.27 Km, 비룡동)-
나무계단과 로프구간-278 무명봉(타이어와 바위, 3번, 32번 송전탑)-안부이정표(능성 0.2 Km, 갈현성 0.9 Km, 용수골약수터 0.7 Km)-전망바위-이정표(길치고개 1.53 Km, 갈현성 1.6 Km,
용수골약수터 0.59 Km)-능성(삼각점, 이정석과 설명판, 운동기구)-313.8 삼각점봉(사각정)-남간정사 갈림삼거리 이정표(길치고개 1.3 Km, 능성 0.21 Km, 남간정사 0.62 Km)-이정표(가양임도 1.4 Km,
능성 0.2 Km)-옥정사 갈림삼거리 이정표(질현성 1.6 Km, 능성 0.1 Km, 옥정사 0.4 Km)-이정표(계족산성 7.1 Km, 세천공원 3.0 Km, 옥정사 0.6 Km)-밭탕골 갈림삼거리 이정표(가양임도 0.7 Km,
세천공원 4.0 Km, 밭탕골약수터 0.2 Km)-안부 이정표(비룡동 0.5 Km, 밭탕골약수터 0.6 Km, 능성 0.8 Km)-안전목책과 로프구간-287미터 헬기장-경부고속도로 대전터널 위 통과-송전탑 공사
무명안부-10번 송전탑-길치고개(시멘트 포장도로, 대전둘레산길 안내도, 화장실) 이정표(질현산성 0.4 Km, 추동 1.5 Km, 밭탕골약수터 0.5 Km)-질현성(기념물 제8호)-이정표(질현성 0.1 Km,
밭탕골약수터)-동래정공 묘지석들-335봉-안부 이정표(계족산성 5.4 Km, 질현산성 0.3 Km, 밭탕골약수터 1.0 Km)-고봉산(돌탑3)-가양공원 갈림삼거리 이정표(계족산성 5.1 Km, 질현산성 0.6 Km,
가양공원 1.2 Km)-391봉 전망대 안내판-384 돌탑봉-현위치 번호 계족산1호 시설물-353 팔각정자봉-안부 이정표(절고개 0.2 Km, 가양공원 3.1 Km, 가양임도)-377 팔각정자봉-373.4봉(절고개봉?)-
안전목책과 로프구간-이정표(절고개 0.1 Km, 가양공원 3.2 Km, 팔각정자 0.1 Km)-절고개(계족산공원 에코힐링 맨발코스 안내판, 대전둘레산길 제5구간 안내판) 이정표(계족산성 2.3 Km,
장동산림욕장 8.4 Km, 가양공원 3.3 Km, 비래사 0.4 Km, 천개동입구 1.6 Km)-안부 사거리-계족산성 갈림삼거리(헬기장과 벤취쉼터 2개)-바위를 품은 부부나무-성재산(399봉, 삼각점, 전망데크)-
계족산의 거북바위-이정표(계족산성 0.8 Km, 육각정자 0.4 Km, 임도삼거리 1.0 Km)-목책과 로프-이정표(계족산성 0.4 Km, 육각정자 0.1 Km, 임도삼거리 1.4 Km)-이정표(계족산성 0.3 Km,
임도 0.4 Km, 임도삼거리 1.5 Km)-안전목책과 로프-이정표(계족산성 0.1 Km, 절고개 1.7 Km, 효평동 임도)-계족산성 남문터-대전 계족산성-봉수대-계족산성 갈림삼거리 복귀-
이정표(임도3거리 0.5 Km와 봉황정 1.8 Km, 계족산성 2.2 Km와 장동산림욕장관리소 4.4 Km, 절고개 0.4 Km와 가양공원 3.7 Km)-산초나무 설명판-367.9봉(천개봉?)-임도삼거리(사각정자, 매점,
계족산종합안내도) 이정표(봉황정 1.2 Km, 가양공원 4.8 Km, 법동소류지 1.6 Km, 장동산림욕장 3.3 Km)-325 벤취쉼터2봉-이정표(봉황정 0.6 Km, 임도삼거리 황토길 0.4 Km)- 355봉(작은계족산?,
벤취쉼터2봉)-계족산(423.6미터 정상석, 묘지1기, 헬기장) 이정표(봉황정 0.2 Km와 죽림정사 1.4 Km, 용화사입구 1.1 Km, 임도3거리 0.9 Km와 계족산성 3.7 Km)-봉황정(육각정자)-계족산 복귀-
404 무명봉(벤취쉼터2)-안전목책과 로프구간-벤취쉼터2 안부-378 전망데크-332 무명봉-295 무명봉(벤취쉼터2)-안전목책과 로프구간-비포장 임도(사각정자, 화장실, 운동시설)
이정표(장동고개 2.1 Km, 계족산성 5.3 Km, 봉황정 1.2 Km, 한국수자원공사)-216.5 삼각점봉 이정표(장동고개 1.9 Km, 봉황정 1.4 Km, 연축주공아파트 0.8 Km)-나무계단-이정표(장동고개 1.8 Km,
봉황정 1.5 Km)-임도-능선진입-1차선포장도로 이정표(장동고개 1.5 Km, 봉황정 1.8 Km, 장동산림욕장 1.1 Km, 한국수자원공사 0.5 Km)-안전목책과 로프 계단-172 공터 벤취쉼터3봉-
새뜸고개(비포장 임도 안부) 이정표(장동고개 1.2 Km, 봉황정 21. Km, 장동산림욕장 1.0 Km, 대덕예비군훈련장 0.8 Km)-묘지지대-222봉(벙커와 벤취쉼터3) 이정표(장동고개 0.8 Km,
봉황정 2.5 Km)-안전목책과 로프구간-이정표(신탄진 4.7 Km, 봉황정 2.6 Km)-장동고개(장동로 2차선 포장도로)-1차선 포장도로-능선진입-이동통신탑-이정표(신탄진 정수장 5.2 Km, 봉황정 3.2 Km)-
장동갈림삼거리 이정표(와동, 장동고개 0.2 Km, 신탄진정수장 5.1 Km, 장동)-16번 송전탑-182 무명봉-묘지지대-묘지지대2-비포장 임도안부-2차선 포장도로(전국특송화물)-만도샾-NS 레이저-
양철식당-광림자동차공업-한일바이오파마-2차선 포장도로-상서교(경부철도 통과)-신탄진로(2차선 포장도로, 경부고속도로 신탄진휴게소)-선바위 버스정류장-수닭이울면식당-상서삼거리-산막석재-
상서육교 통과-상서1교(경부고속도로)통과-1차선 포장도로(경부철도의 신부터널)-이정표(등산로, 목상동)-녹색철망(묘지보호용)-75 사각정과 운동기구-99 바위암릉등로-벤취쉼터2-안전목책과
로프구간-장고개 이정표(목상동, 등산로)-나무계단-안전목책과 로프구간-2차선 포장도로(덕암축구센터)-녹색철망-잡목 가시등로-안정나씨 묘지지대-비포장 임도-1차선 포장도로-대덕국민체육센터-
다사랑아파트-대전목상초등학교-빌라지대-설악추어탕-한국타이어 앞 사거리(32번 8차선 포장도로)-대덕대로(6차로 포장도로)-한국타이어대전공장 정문-경남케미칼-로얄알미늄방충망-해피창-
새론 케미칼-송도목재-한국타이어서문-금강 둑방길-금강하천-갑천 합수점-식장지맥 산행종료-한국타이어-한국타이어 버스정류장-목상동주민센터-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22.76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산행시간 : 잘 정비된 제도권 등로를 따라 여유있게 진행하며 07시간 11분 (06시 54분부터 14시 06분까지)
산행트랙 : 2018-02-04 식장지맥 제3구간 세천공원-갑천합수점.gpx
교통편 : 갈때 - 06:25 대전복합버스터미널 앞 정류장에서 06시 25분 발 611번 버스에 탑승하여 06시 52분 쯤 세천공원 버스정류장 도착 (1,250.
올때 - 14:10 갑천 합수점에서 한국타이어 버스정류장 지나 목상동 주민센타 버스정류장까지 도보로 이동
14:55 묵상동 주민센타 버스정류장에서 2번 급행 버스에 탑승하여 대전역 도착 (2,500.-)
16:15 대전역에서 KTX로 서울역 도착 (20,100.-)
식대 : 새벽 대전복합버스터미널 뒤 병천순대집에서 순대국으로 아침식사 (7,000.-)
산행 둘쨋날 총비용 : 30,850.- 원
식장지맥이란 ???
금남정맥의 대둔산 남동쪽 인대산(661.8봉)과 백령고개 사이에 있는 무명봉(약610봉)에서 북동쪽으로 분기하여 월봉산(543봉), 금성산(439봉), 만인산(537봉), 지봉산(464봉), 망덕봉(439봉), 식장산(598봉), 고봉산(335봉), 계족산(423봉)을 거처 대전 대덕구 문평동 갑천이 금강에 합류하는 지점에서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 56.1 Km의 산줄기로 금산과 대전지방을 지나며 최고봉인 식장산의 이름을 따 식장지맥이라 한다.
좌측으로 흐르는 물은 유등천과 갑천을 거쳐 금강에 들고 우측의 물은 봉황천과 추풍천이 되어 금강으로 흘러 든다.
잘 정비된 제도권 등로를 따라 싸락눈을 맞으며 강하게 불어 오는 찬바람 속에 식장지맥 산행을 마무리했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어제 강하게 불어 오는 찬바람속에 원래 계획했던 거리를 기대했던 시간에 무탈하게 마무리를 하고 시내버스를 이용해 대전복합버스터미널 뒤쪽에 있는 찜질방에서 생각보다 잘 자고 새벽에 일어 나 간단하게 샤워 후 아침식사를 위해 찜질방을 나서는 시간이 새벽 5시 30여분이 지나고 있다.
처갓집이 이곳 복합버스터미널에서 그리 멀지 않기에 그곳에서 하룻밤 자고 나왔으면 더 좋았겠지만 연세 드신 장모님이 홀로 장거리 산행에 대한 걱정과 새벽 식사 및 점심 도시락 준비로 고생하실 것 같아 찜질방을 이용하다 보니 괜시리 미안해지는 마음 뿐이다.
특히 2년 전까지 대전에서 살던 막내 동서도 세종으로 이사를 해 어제 저녁에 불러 삼겹살에 소주 한잔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거리도 멀어 포기하고 나니 마음은 서운해도 몸은 아주 좋은 상태로 아침을 맞으며 식장지맥 마지막 구간에 대한 기대도 커지는 시간이다.
오늘은 대부분 제도권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하게되니 잡목에 대한 걱정도 없이 산행거리와 시간에 대한 고민도 필요 없이 그저 즐기며 걸어가면 될 것 같은 그런 느낌으로 산행을 준비하며 따뜻한 순대국 한그릇으로 뱃속을 데우고 어제 이용했던 611번 시내버스를 이용해 세천공원에 내리니 오늘 역시 이 산객 홀로 어둠속에 찬바람이 강하게 불어 오는 들머리에서 조금은 외롭고 쓸쓸한 기분으로 또 다른 하루를 맞이하는 시간이 되었다.
기온은 많이 내려가지 않은 듯 한데 찬바람이 강하게 불어 와 체감온도를 현저히 떨어 뜨리고 있어 생각보다 많이 추위를 느끼며 힘들게 걸어 진행을 하니 드디어 해가 중천을 지나고 있는 시간에 금강과 갑천이 만나는 합수점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셀카 놀이를 하면서 추억 한장 남기는데 바람이 얼마나 강하게 불고 있는지 스틱을 세우고 카메라를 올려 놓은 후 타이머를 작동시켜 사진을 찍는 사이에 몇번인가 카메라가 떨어져 다시 세팅을 하면서 추위에 손끝이 잘려나가는 통증을 느끼는 시간이다.
그래도 어렵게 좌측의 갑천과 우측의 금강이 만나 이 산객 뒤로 흐르는 그 합수점 앞에서 추억 한장 남기고 식장지맥 산행을 잘 마무리한 다음 다시 걸어 버스정류장으로 나가는 시간은 스스로에게 대견함을 느끼며 또 하나의 산줄기 이어가기 산행을 완주했다는 뿌듯함에 그동안 느꼈던 추위도 잊은채 혼자만의 시간을 즐겨보는 순간이 되었다.
이제 다음주부터는 또 어디로 가야 좋을지 행복한 고민을 하면서 오랫동안 대전을 오가면서도 마무리하지 못했던 숙제를 해결하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콧노래도 불러 봤던 시간으로 남겨 본다.
찜질방에서 나와 그 옆에 보이는 병천순대국집에서 따뜻한 국밥 한그릇으로 아침식사를 해결하며 몸을 데우니 추위가 사라지고 그 기운으로 다시 대전복합버스터미널 앞 도로를 건너 세천공원행 611번 버스를 기다리니 6시 21분 쯤 드디어 오늘 탑승을 해야 할 버스의 번호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정확히 3분 후 도착하는 611번 버스에 탑승을 해 오늘 산행 들머리인 세천공원 종점에 도착을 하니 새벽 6시 52분이 지나고 있다.
세천공원은 결혼 후 젊은 시절에 처재들과 여름 피서를 위해 자주 들렸던 곳이기에 많은 추억과 기억이 남아 있는 곳으로 그 이후에도 몇번인가 산행을 위해 다녀간 곳이기에 잠시 어둠속에 그 추억을 꺼내 보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세천공원 버스정류장에 도착을 해 버스에서 내리니 생각보다 찬바람이 강하게 불어 산행 준비를 하는 동안에도 한기가 밀려오기 시작하는데 하늘에선 싸락눈까지 내려 더욱 침울하게 만들고 있다.
이곳 세천공원은 대전에서 가장 높은 산이자 대전 8경 중 하나인 식장산(623.6미터)에 있는 도시자연공원으로 1976년 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1996년 6월 세천공원의 487만m² 구역이 세천생태보전림으로 지정되어 자연생태계를 보존하고 있다.
울창한 숲에는 토종식물 800여 종을 비롯하여 약 6000여 종의 식물이 자라고 있는데 주종은 굴참나무이며 그 밖에 은수원사시나무와 물오리나무, 갈참나무, 밤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세천생태보전림은 지상조류서식지, 먹이식물식재지, 갈대초원, 늪지대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노루와 다람쥐, 살쾡이, 너구리, 여우 등 포유류 약 45종도 서식한다.
공원은 식장산에서 흘러내린 맑은 물을 댐에 가둬 1934년 조성한 세천수원지(세천저수지)를 끼고 있는데 이 수원지는 1980년 대청호가 조성되기 전까지 대전 지역의 주요 상수원이었다.
숲으로 둘러싸인 저수지와 계곡의 경치가 빼어나고 봄이 되면 공원 일대에 진달래와 벚꽃이 흐드러져 상춘객들로 북적이는데 특히 공원에서 철탑사거리를 지나 구절사까지 이르는 약 4 Km의 길은 전국에서도 이름난 아카시아 꽃길이다.
식장산 등산로는 2006년 정비한 세천공원 주차장(175면)에서 시작되는데 주차장에서 세천수원지 오른쪽 길을 따라 새절골 계곡을 타고 올라가면 잘 정비된 등산로 옆에 군데군데 쉼터가 마련되어 있다.
그 후 계곡의 징검다리를 건너면 구절사로 가는 갈림길이 나오며 이곳에서 계속 오르면 조선 태조 2년(1393)에 창건됐다고 전해지는 구절사가 나온다.
구절사에서 독수리봉(586.5미터)에 올랐다가 하산하는 길에 암반으로 이루어진 전망대를 거치고 새절골 합수지점을 지나 다시 세천공원 주차장으로 되돌아오는 코스의 거리는 약 9.9 Km이며 약 3시간 40분이 걸리고 세천공원 근처에는 궁도 시설과 테니스장을 갖춘 세천체육공원이 있다.
앞으로도 또 여름 피서를 위해 이곳으로 들릴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 알 수는 없지만 조금 더 친숙해졌으니 자주 들려보는 세천공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도로를 건너 바람막이가 설치되어 있는 정류장에서 산행 준비를 마치고 경부고속도로 아래 도로를 통과하여 4번 8차선 포장도로가 보이는 식장산삼거리 방향으로 걸어가며 식장지맥 마지막 구간 산행을 시작하는 시간이지만 아직도 세상은 어둠속에 묻혀 고요하기만 하다.
생각보다 차량통행이 많지 않은 4번 8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식장산삼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렸다 횡단보도를 통해 도로를 건너 우측으로 걸어 올라가니 좌측으로 청매실농원 입간판이 보이고 곧이어 커다란 철대문이 굳게 닫혀 있다.
계속 이어지는 4번 도로를 타고 걸어 진행을 하니 도로 좌측으로 시멘트 포장도로가 보이고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오르니 어둠속에서도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잠시 후 등로는 좌측 능선으로 이어지고 사라지는 등로를 찾아 오르니 오래 전 가축을 길렀던 작은 사육장들이 보이고 그곳을 지나 오르니 무명묘지를 지나 녹슨 철조망을 만난다.
그 철조망을 좌측에 두고 오르니 잡목속에 커다란 소나무가 보이는 176 무명봉을 넘고 잠시 후 지독한 잡풀들이 자랐다 말라죽은 잡목과 잡풀이 무성한 등로를 찾아 조금은 어렵게 진행을 해 본다.
다시 매실과수원을 지나 능선으로 오르니 묘지들을 지나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있는 201 무명봉에 도착을 해 서서히 밝아 오는 여명의 빛을 받아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을 해 본다.
그 무명봉을 넘어가니 다시 등로가 사라지고 잡목들과 잡풀들이 앞을 가로막아 진행에 어려움을 느끼지만 짧은 거리를 조심해 내려가니 민가 옆으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로 내려간다.
민가 사이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가니 갈림삼거리를 만나고 그곳에서는 좌측 도로를 타고 걸어 내려가며 진행을 이어가니 형제농원이라는 커다란 이정석이 보이고 곧이어 대청호수로라는 2차선 포장도로와 만나 우측으로 조금 걸어 올라 비룡고개 일명 줄골고개에 도착을 한다.
줄골마을은 비룡동에 있는 옛 자연마을 중 한곳으로 지금은 비룡동도 대청동의 한 마을로서만 존재하고 있어 옛 이름들은 많이 사라지고 있는 실정이다.
비룡동은 대전광역시 동구에 잇는 동으로서 추동의 남쪽 끝자락에 있으며 동쪽으로는 세천동, 서쪽으로는 용운동 및 가양동과 접하고 북동쪽은 대청댐 건설로 물에 잠겼다.
백제시대에는 우술군, 신라시대에는 비풍군, 고려 초기에는 회덕현, 1018년(현종 9) 이후에는 공주부, 조선 초기에는 회덕현, 1895년(고종 32)에는 회덕군 동면에 속하였다.
1914년 덕치리와 주동을 합하여 비룡리라 하였고 1935년 11월 대덕군에 편입되었다가 1989년 대전시의 직할시 승격에 따라 행정적으로 추동 관할이 되었으며 1998년 추동이 대청동과 통합되면서 행정동인 대청동 관할이 되었다.
동 이름은 용이 하늘로 올라간 들판이 있다고 해서 붙여졌다.
비름들과 줄골 등의 옛마을과 덩지산과 큰봉, 거미알 등의 야산, 곰남골과 덤벅골, 물방아골, 설양골, 승절골 등의 골짜기가 있다.
유물로는 팔작지붕을 얹은 안평이씨정려와 줄골마을에 장승 2기가 전하는데 해마다 대보름 전날 이곳에서 거리제를 지내며 거미알산은 거미가 알을 칠 정도로 작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곰남골은 골짜기에 고욤나무가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곳 비룡고개 일명 줄골고개에서 장승이 보이는 좌측 시멘트 도로를 타고 오르며 산행을 이어가 본다.
비룡고개 일명 줄골고개를 지나 절고개까지 6.0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의 방향을 따라 걸어 오르니 민가들이 보이고 잠시 후 도로 우측으로 비룡마을복지회관 건물도 통과를 한다.
계속 이어지는 민가를 지나 밭 경작지로 오르고 잠시 후 키 큰 조리대가 빼곡하게 자라고 있는 능선으로 걸어 진행을 하니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있는 잡목 등로로 이어지며 방향만 보고 오르게 된다.
그렇게 한동안 오르니 묘지지대가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니 커다란 참나무가 서 있는 227 무명봉에 도착을 해 잠시 심호흡을 하고 다시 출발한다.
하얀 눈이 살짝 쌓여있는 등로를 따라 낙엽을 밟으며 걸어 내려가니 등로는 다시 평이한 잡목등로로 바뀌고 곧이어 28번 송전탑 밑을 통과한다.
송전탑을 지나니 등로는 좌측으로 살짝 올려다 보이는 봉우리로 오르지 않고 우측 사면 등로를 타고 짆ㅇ이 되고 그렇게 잠시 더 걸어가니 벤취쉼터들과 이정표가 서 있는 갈고개 갈림사거리 안부에 도착을 한다.
이정표 옆에는 작은 돌탑 위에 누군가 소원을 빌었던 흔적도 보이는 곳으로 이곳 갈고개는 대전광역시 동구 용운동에서 세천동과 비룡동으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이다.
갈고개를 지나 설치된 사각나무 계단을 타고 길게 올라가니 등로 우측으로 기념물 제12호 갈현성이라는 이정석이 보이고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등로 양쪽으로 허물어진 선벽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무너진 성벽을 넘어 걸어가니 등로 우측으로 갈현성에 대한 설명판이 서 있어 잠시 읽어 보고 가기로 한다.
갈현성은 대전광역시 동구 용운동에 있는 백제시대의 성곽으로 1990년 5월 28일 대전광역시기념물 제12호로 지정되었다.
노령산맥의 북서쪽에 자리잡은 대전은 예부터 백제와 신라의 접경지대로 지리적인 요충지였기에 따라서 중요한 지역의 산등성이마다 계족산성을 비롯한 이현동산성, 장동산성, 성치산성, 노고산성 등 산성이 유난히 많다.
갈현성은 대전광역시 동구 용운동에서 세천동과 비룡동으로 넘어가는 갈고개 북쪽 산봉우리(263봉)를 중심으로 마치 테를 두른 듯이 쌓은 석축산성이다.
둘레는 약 350미터이며 동쪽 성벽 부근에서 삼국시대의 토기와 기와조각이 출토되었고 성벽은 대부분이 무너져 원래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우며 동쪽 성벽에 네모난 돌로 앞면을 맞추어 쌓은 높이 2미터 가량만 남아 있다.
서쪽 성벽은 자연암반을 그대로 이용하여 부분적으로만 성벽을 쌓았다.
성의 형태는 남북으로 긴 타원형이며 성문은 폭 4.8미터 정도의 남문터만 남아 있고 또 산 정상부 중앙에 폭 4미터의 구덩이와 군데군데 돌로 쌓은 듯한 흔적이 있는데 이는 저장시설 유적이다.
이곳 대전 지방은 예전에 국경을 이루고 있던 지역이다 보니 많은 성터 흔적들과 국경과 관련된 유적과 유물들이 많이 발굴되는 지역이기도 하다.
갈현성에 대한 자료를 읽어 보고 다시 천천히 걸어 오르니 소나무가 정상에 서 있는 262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잠시 주위를 둘러보고 다시 눈이 쌓여 있는 바위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 본다.
체인젠을 착용하기에는 눈이 적지만 낙엽과 바위 위에 살짝 쌓여 있는 눈 때문에 미끄럽기에 여간 조심스러운 산행이 아니다.
무명안부를 지나고 다시 오르니 벤취쉼터 2개가 설치되어 있는 무명봉을 넘고 진행 방향으로 살짝 올려다 보이는 마루금을 조망하며 진행하니 금새 대전둘레산길 잇기 안내도가 서 있는 대전시 동구 용운동 비룡임도에 도착을 한다.
용운동은 대전광역시 동구에 있는 동으로서 북쪽에 갈고개가 있어 비룡동과 세천동과 접경을 이루고 남쪽 구릉을 넘어 판암동과 인접해 있으며 동쪽에 성재가 있어 판암동·삼정동과 경계가 되고 서쪽의 자양동과 대동과 인접한 동구의 중북부 구릉 지역이다.
동명의 유래는 옛날에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는 용숫골(용수동) 아래가 되므로 용방리와 용방 및 용뱅이라고 하였다.
회덕군(회덕현) 외남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선랑리(선암·신선바우)와 모오리(모리) 및 초동(새울)을 병합하여 용방리라고 하여 대전군 외남면에 편입되었다가 1940년에 대전부에 편입되어 선랑리의 신선바우(선암)의 이름을 따서 선암정이라고 부르다가 1946년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정을 동으로 고칠 때 용운동이라고 개칭하였다.
1971년 대전시 출장소의 설치에 따라 동부출장소의 관할 구역이 되고 1977년 구제 실시로 동구에 편입되었으며 1993년에 일부 지역을 판암동에 넘겨 주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행정동인 용운동은 행정동명과 법정동명이 같다.
주거에 비해 임야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편이며 번화가는 중앙부를 가로지르는 도로변에 있다.
용운동파출소와 용운소방파출소 및 대전대학우체국, 용운아파트 우편취급소, 동구용운도서관 등의 공공기관과 대전대학교가 있으며 상수도 용운가압장이 있으며 주요 간선도로는 중앙부를 가로지르는 지방도로가 있다.
문화재인 문충사(대전문화재자료 4)는 용운동 356-1번지에 있는 을사조약의 폐기를 주장하다가 순국한 문충공 연재 송병선과 국권피탈의 비보에 울분을 못 이겨 순절한 그의 아우 심석재 송병순 형제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입구에 홍살문과 그 옆에 정면 5칸 및 측면 1칸의 솟을대문인 외삼문 안에 용동서원 현판이 걸린 강당이 있으며 그 뒤의 내삼문 안에 정면 3칸과 측면 2칸의 사당이 있다.
갈현성(대전기념물 12)은 용운동에서 세천동·비룡동으로 넘어가는 갈고개 북쪽 봉우리(263미터)에 있는 테뫼식 석성으로 둘레는 약 350미터가 되는데 성벽은 거의 헐어지고 동쪽 성벽 일부만 남아 있다.
높이는 5미터쯤 되나 현재는 2미터만 남아 있고 서쪽 성벽은 자연 암반을 이용하였으며 너비 약 4.8미터의 남문터가 있고 동쪽 성벽 부분 평지에서 삼국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토기와 기와 조각들이 출토되었다.
용운리 비룡임도를 지나 능성 방향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타고 천천히 걸어 오르니 등로는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제도권 마루금으로 이어지고 조금은 빠르게 걸어가니 등로 좌우측으로 군부대와 비룡동 갈림사거리 이정표도 만난다.
그 갈림사거리를 지나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몇기의 묘지들이 보이는 곳을 지나 저 멀리 하루해가 솟아 있지만 두꺼운 구름으로 인해 해가 뜨지 못하고 하늘만 붉개 물들이고 있다.
굵게 날리던 눈은 이제 싸락눈으로 변하며 진행에 어려움은 없지만 바람이 강하게 불어 두 뺨이 붉게 얼어가는 느낌으로 걸어 진행해 보는 시간이다./
다시 길게 이어지는 사각나무 계단을 타고 한동안 걸어 오르니 계단이 끝나는 지점 좌측으로 군부대 훈련용 타이어 시설물들이 보이고 잠시 평이한 낙엽 위에 살짝 깔려 있는 눈을 밟으며 걸어 오르니 바위와 계단들 그리고 타이어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곳을 지나 계속 완만하게 이어지는 등로를 타고 걸어 오르니 바위와 벙커 위에 타이어들 그리고 3번과 32번 송전탑이 보이는 278 무명봉에 도착을 해 추억 몇장 더 남겨 본다.
그 좌측으로는 대전시내와 그 회색도시 넘어 보문산이 우뚝 솟아 있는 풍경이 색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시간이다.
그 무명봉을 지나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넝쿨식물들이 자라며 타고 오를 수 있는 인공구조물 지나 좌측으로 용수골약수터 하산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보인다.
다시 이어지는 사각 나무계단을 타고 가파르게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전망바위가 나타나고 그곳으로 가 뒤돌아 보니 강렬하게 구름을 뚫고 막 떠 오르기 시작하는 햇살 아래 어제 걸어 넘어 온 식장산이 박무속에 희미하게 올려다 보이고 그곳에서 이곳 전망바위로 이어지는 식장지맥 산줄기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그 우측으로는 거대 도시인 대전광역시의 동구가 바로 옆으로 내려다 보이고 있다.
눈을 돌려 식장지맥 마루금 우측을 살펴보니 대전대학교의 대운동장이 하얀 눈이 깔린 상태로 내려다 보이고 그 우측으로는 우송대학교 캠퍼스도 보인다.
대전시 동구와 중구를 지나 저 멀리 우뚝 솟아 있는 보문산이 그 옛날 추억을 들려주며 다시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어 조만간 다시 한번 올라 볼 수 있기를 기대도 해 본다.
대전광역시는 충청남도 남동부에 있는 시로서 대한민국 중부권의 중추기능을 담당하는 광역시이다.
경부고속도로와 인접해 교통이 편리하고 상권이 넓고 공업용수가 풍부해 공업발전에 유리했으며 풍부한 노동력과 시장조건으로 중부공업지대의 핵심으로 발전해 온 대전시는 보문산공원과 유성온천 등은 연중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명소이다.
그렇게 한동안 그곳 전망바위에서 대전광역시와 식장지맥 마루금을 조망하고 즐긴 후 다시 전망바위를 지나 정상 마루금을 타고 걸어 진행을 이어가 본다.
두꺼비를 닮아 있는 바위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 좌측으로 계속 이어지는 용수골약수터 이정표도 만난 후 가파른 바위너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많은 운동기구들이 설치되어 있는 능성에 도착을 해 주위 풍경을 살펴보고 그곳 정상에 벌써 올라 와 있는 대전 시민에게 부탁을 해 추억 한장 남겨 본다.
능성은 대전광역시 동구 가양동에 있는 백제시대의 성곽으로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11호로서 대전광역시 동구 가양동에서 비룡동 비름들 마을로 넘어가는 속칭 비름들 고개 위에 있으며 표고 310미터의 정상부에 축조된 테뫼식 산성(산 정상을 둘러 쌓은 성)이다.
성의 둘레는 약 300미터이고 성벽은 성안에 있는 남과 북 두 봉우리를 지나고 있으며 그 가운데 동쪽 성벽은 표고 300미터 부분까지 내려와 축조되었다.
성벽의 대부분은 무너져 내려 원상을 파악하기 어렵고 성안을 출입할 수 있는 통로는 동문지와 서문지이다.
동문지는 너비 5.1미터에 성벽의 두께는 3.4미터이고 남문지는 너비 3미터에 성벽의 두께는 5.4미터 정도이며 성벽에는 치성(성벽에서 돌출시켜 쌓은 벽)이 부설되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되었다.
성 안에서는 별다른 시설물을 확인하지 못하였으며 정상부의 평지부분에서 선조문의 경질토기편을 몇점 수습할 수 있었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고 있으니 방금 전 사진을 담아 준 대전 시민 한분이 불러 고개를 돌리니 어디에서 왔느냐며 자기들 산악회에 가입을 해 줬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서울에서 내려 가 대전 산악회에서 산행이 어렵다고 하니 아쉽다면 안전 산행을 빌어 준다.
능성 산성 위에서 잠시 등로 좌측을 살펴보니 여전히 대전광역시의 동구와 중구 마을이 아름답게 내려다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대전 시민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보문산이 우뚝 솟아 있다.
그 우측 옆으로는 검정색 쌍둥이 빌딩 같은 고층 빌딩 두개서 서 있는 대전역도 빤히 내려다 보이고 있다.
그렇게 한동안 더 그곳 능성에서 시간을 보내며 많은 사진을 남기고 조망을 즐기다 보니 찬바람이 불어 와 한기를 느끼기에 다시 배낭 둘러메고 빠른 걸음으로 자체 열을 내보는 시간이다.
하지만 출발에 앞서 등로 좌측으로 북서쪽을 살펴보니 대전광역시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고 그 뒤로 희미하게 보이는 황적산과 계룡산 줄기가 추억을 달래주며 그 우측으로는 관암지맥을 이루고 있는 우산봉과 갑하산 줄기도 희미하지만 그 존재감을 알려주고 있다.
조만간 다시 내려 와 유성의 반석역에서 시작되는 저 과암지맥 산줄기를 타고 오늘 만날 수 잇는 금강을 다시 만나야 하는 곳이기에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지만 불어오는 강한 바람과 차가운 기온에 비해 박무로 인한 시야가 제한되어 보고 싶은 산줄기들을 만나지 못하니 아쉬움이 큰 시간이었다.
이제 추위에 온 몸이 떨리기 시작해 더 이상 그 능성에 머물지 못하고 빠르게 출발해 본다.
능성을 지나 빠르게 걸어 진행을 이어가니 여전히 많은 운동기구드이 설치되어 있고 잠시 후 커다란 참나무 한그루를 지나 사각정자도 만나는데 등로는 그 사각정자 좌측으로 나 있는데 사각정자 넘어에도 시멘트 사각 마ㅣㄹ뚝이 보여 들어가 보니 지도 상 표기된 313.8 삼각점봉이다.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사각정자 방향으로 나와 좌측의 등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해 본다.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남간정사 하산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는데 찾아보니 남간정사는 대전광역시 동구 가양동에 있는 조선 중기의 별당건축이며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호이다.
조선 숙종 때의 거유 송시열이 강학하던 유서깊은 곳으로 낮은 야산 기슭의 계곡을 배경으로 남향하여 건립되었다.
경내의 입구에는 정면 3칸과 측면 2칸에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된 기국정이 있고 뒤편 높은 곳에는 정면 4칸과 측면 2칸에 홑처마 맞배지붕으로 된 남간정사가 있다.
남간정사는 정면 4칸 중 중앙 2칸 통칸에 우물마루의 넓은 대청을 드린 후 그 좌측편에는 전후 통칸의 온돌방을 드렸다.
그 우측편에는 뒤쪽 1칸을 온돌방으로 하고 앞쪽 1칸은 온돌아궁이의 함실(방바닥 밑에 직접 불을 때게 만든 방)을 설치하기 위하여 대청마루면보다 조금 높여 누마루로 꾸몄다.
대청에는 4분합띠살문 또는 판장문을 달았고 온돌방에는 쌍여닫이 또는 외여닫이 띠살문을 달아 출입하도록 하였다.
구조는 건물 전면으로는 8각 장초석을 놓았으나 계곡의 물이 흐르는 대청 밑에는 장초석을 놓고 원형기둥을 세웠으며 또한 건물의 네귀에는 활주(추녀 뿌리를 받는 가는 기둥)를 세워 길게 뻗은 처마를 받쳐 주고 있다.
기둥 상부에 건물의 내외방향으로 꽂혀 있는 양봉의 끝을 익공뿌리처럼 깎아 마치 초익공처럼 보이며 지붕틀은 5량가구로서 겹처마 팔작지붕을 이루고 있다.
뒤편 기슭에서 흐르는 계곡 물을 이 건물의 대청 밑을 통해, 앞에 마련된 넓은 연당에 모이도록 하여 경내의 운치를 한층 더하여주고 있는 남간정사는 조선시대 별당건축의 양식적인 측면과 함께 우리나라 정원 조경사에 있어서 독특한 경지를 이루게 한 계획으로 그 의의가 크다.
전혀 알지 못했던 남간정사에 대해 공부도 해 보는 시간이다.
다시 조금 더 걸어 진행을 하니 벤취쉼터 하나가 설치되어 있는 무명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오르고 다시 만나는 이정표에는 가양임도라는 단어가 보이기 시작한다.
커다란 바위들이 보이는 곳을 지나 경부고속도로 위 대전터널을 통과하니 리끼다 소나무가 멋지게 서 있는 평이한 등로를 따르고 조금 더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 좌측으로 옥정사 갈림삼거리 이정표도 보인다.
다시 뚜렷한 넓은 등로를 따라 조금은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니 벤취쉼터 2개가 설치되어 있는 갈림삼거리에서 우측 등로를 따르고 잠시 후 무명봉을 넘어 바위지대를 통과하니 좌측으로 밭탕골약수터 하산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보인다.
가양비래공원에서 길치터널과 꽃산 사이에 있는 골짜기에 위치한 밭탕골약수터는 대전시 동구와 인접해 있어 다른 약수터 보다 이용인원이 많으며 이곳을 한번 이용한 사람들은 다시 찾을 수밖에 없는 건강한 맛을 자랑하고 있다.
비룡동과 밭탕골약수터 갈림사거리 안부를 지나 커다란 참나무들이 보이는 평이한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바위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잠시 후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된 등로를 따라 그 바위봉으로 올라본다.
그 바위들을 좌측에 두고 우측 사면 등로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진행을 하니 갑자기 눈 앞에 헬기장이 나타나는데 고도가 287미터의 곳이다.
그곳에서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이제부터 길치고개 넘어 올라야 할 387봉이 우뚝 솟아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이제 눈이 그쳤지만 약간의 싸락눈이 계속 흩날리고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어 더 이상 지체하지 못하고 헬기장을 떠나 출발을 해 본다.
산행을 진행하며 살펴보니 가끔 사각시멘트 말뚝들이 보이고 살펴보니 한쪽면에 대청이라는 글자가 보이는데 무슨 용도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제 등로 우측으로는 나뭇가지 사이로 햇살에 비춰 반짝이는 대청호가 내려다 보이는데 방해꾼들이 있어 제대로 된 조망과 그 아름다운 풍경을 살펴보는 것은 쉽지 않다.
다시 가파른 내리막 등로에 설치된 나무계단 옆으로 안전목책과 로프를 따라 걸어 내려가니 무명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올라 바위무명봉을 넘는다.
다시 가파르게 내려가니 최근에 송전탑 공사를 하다 중단된 무명안부를 지나 10번 송전탑을 통과하니 다시 안부로 내려서는데 이곳이 바로 경부고속도로 상 대전터널을 통과한 지점인 길치고개이다.
길치고개(질치, 길치터널)는 대전광역시의 동쪽 대덕구 비래동에서 동구 주산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경부고속도로 대전 터널 북쪽에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회덕)에 질현은 현 동쪽 12리에 있다고 하여 관련 기록이 처음 등장하고 이후 여지도서, 충청도읍지, 호서읍지, 해동지도, 조선지지자료 등에서는 질치로 기록되어 있다.
일설에는 땅이 유난히 질퍽거려서 질티고개라 했다고 하는데 고개가 길다 하여 길치고개 또는 길티고개로도 불리고 있다.
과거의 경부고속도로 노선에서 이 부분을 지나는 터널을 길치터널이라고 하였으며 고개 위쪽에 백제 시대에 축조된 질현산성이 있고 동쪽 가까이 고봉산 정상에는 고봉산성이 대응하고 있다.
길치고개는 시멘트 포장도로가 올라와 있고 우측으로는 화장실도 구비되어 있으며 도로 옆으로는 대전둘레산길 안내도와 이정표도 보인다.
그 길치고개에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건너 보현사 가는 방향을 알려주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 오르니 등로는 다시 낙엽이 푹신하게 떨어져 쌓여있는 활엽수 등로로 변하고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오르니 등로 옆으로 기념물 제8호 질현성이라는 이정석이 보인다.
질현산성(질현성)은 대전광역시 대덕구 비래동에 있는 삼국시대의 산성으로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8호로 지정되었으며 지정면적 11107 m2에 둘레 약 800미터로 현재 문지, 수구지, 우물터 등이 남아 있다.
이 성은 안으로는 흙을 다져 쌓고 밖으로는 돌을 쌓는 내탁외축한 규모가 큰 테뫼형산성(산 정상을 둘러쌓은 성)으로 동쪽 성벽 일부는 안팎으로 돌을 쌓는 협축을 하였다.
이 성은 오늘날의 대전과 회덕 방면에서 동쪽으로 충청북도 회인과 문의 방면으로 통하는 요로를 지키기 위하여 백제 때 쌓은 것으로 보이는데 성벽의 높이는 1.5미터이고 석루의 상부 너비는 4.2미터이며 남문지의 너비는 약 6미터에 동문지의 너비는 약 3.5미터이다.
성안에는 지금도 사용할 수 있는 좋은 샘물이 나오고 있으며 성의 동북쪽 성벽은 0.9미터에 0.2 미터 정도의 석재를 사용하여 축조되어 있다.
성안에서는 백제시대 토기조각을 비롯하여 신라시대 토기조각과 조선시대 자기조각까지 출토되고 있어서 삼국시대부터 조선 말엽까지 계속해서 사용하여 온 산성으로 추정되는 이 산성에는 주위에 7곳의 보루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가 백제를 멸망시킨 뒤 665년(문무왕 5)에 문무왕은 웅진도독 부여 융과 더불어 웅진 취리산에서 백마를 잡아 피를 나누어 마시면서 맹약을 하였다는 기록이 보이는데 그 웅진의 취리산은 현재의 공주(웅진)지방에 있다고 알려져 왔다.
그러나 이 성의 부근에 주산리(줄뫼)와 비룡리(줄골)가 있고 질현은 곧 질티이므로 이곳이 취리산이라는 견해도 있다.
그 이정석을 지나 질현성을 알려주는 이정표 방향으로 올라가 보지만 결국 질현성은 정확하게 확인도 못하고 그 아래 누군가 밭을 경작했던 모습만 확인할 수 있어 씁쓸한 기분으로 걸어 보는 시간이었다.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등로를 따르니 동래정공 묘지들이 보이는데 봉분은 없이 오석으로 표기만 해 놓은 묘지들이었다.
약간의 잡목을 헤치고 오르니 우측으로 우회하며 올라오는 뚜렷한 등로를 남나 좌측으로 걸어 오르고 곧이어 약간의 바위들이 등로에 박혀있고 커다란 참나무들이 보이는 335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여전히 밭탕골약수터 하산 갈림삼거리 안부에 이정표가 서 있다.
그 안부를 지나 오르니 통나무계단이 나타나고 바위와 참나무 낙엽 등로를 타고 꾸준하게 걸어 진행을 하니 벤취쉼터와 커다란 돌탑3개가 보이는 387미터의 고봉산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어느 지도에는 이곳이 아닌 우측으로 조금 떨어져 있는 304미터봉을 고봉산이라 표기한 곳도 보인다.
하지만 다른 자료들을 살펴보니 또 다른 봉우리를 고봉산이라 표기하고 있어 정확한 고증이 필요해 보이는데 어찌되었든 고봉산성이 있는 정상이 고봉산이 아닐까 추측도 해 보는 시간이었다.
고봉산성은 대전광역시 동구 주산동고봉산에 있는 백제시대의 성곽으로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21호이고 둘레 약 250미터이며 질현성에서 동쪽으로 약 300미터 떨어진 지점에 있는 표고 304미터의 고봉산 정상부에 석축으로 축조된 테뫼식 산성(산 정상을 둘러 쌓은 성)이다.
동쪽의 암석부에는 너비 10미터에 길이 30미터 정도를 석축으로 보축한 부분이 남아 있고 서쪽 돌출된 부분에 너비 3.5미터에 길이 4미터 정도의 치성(성벽에 돌출시켜 쌓은 성벽)이 부설되어 있다.
이 산성의 입지적 조건이 남쪽에 질티고개를 두고 질현성과 위치하고 있어 이 고개를 감시하기 위하여 축조한 산성으로 판단되며 질현성의 자성(아들 성) 구실을 했을 산성으로 판단되고 있다.
산행 당시에는 잘 구분하지 못하고 산행에만 몰두하다 귀가하여 산행기를 정리하다 보니 고봉산과 고봉산 정상부를 다녀오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 있는 곳이다.
고봉산인지 아니면 그냥 387미터봉인지 헷깔리는 돌탑봉을 넘어 내려가니 무명안부를 통과하고 다시 평이한 등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가양공원 방향으로 내려갈 수 있는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나타난다.
그 갈림삼거리 안부를 지나 가파르게 오르니 벤취쉼터와 전망대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는 391미터의 전망대에 도착을 하는데 부부가 그 벤취쉼터에 앉아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있어 인사 나누고 잠시 등로 우측을 살펴보니 이제서야 제법 뚜렷한 대청호가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대청호는 대전광역시와 충청북도 청주시 및 옥천군 그리고 보은군에 걸쳐 있는 인공호수로서 저수면적 72.8 Km2에 호수길이가 80 Km이고 저수량은 15억톤으로 한국에서 3번째 규모의 호수이다.
1980년 대청댐이 완공되면서 조성되어 대전광역시와 청주시의 식수와 생활용수와 공업용수를 공급하고 있으며 호수 위로 해발고도 200에서 300미터의 야산과 수목이 펼쳐져 드라이브 코스로 잘 알려져 있다.
철새와 텃새가 많이 날아들어 여름에는 상류에서 백로를 쉽게 볼 수 있고 전망대에 오르면 주변 경관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며 1998년에 개관한 물홍보관은 입체 영상관과 수족관 등을 갗추고 있고 주위에 잔디광장이 있다.
주변에 금강유원지와 장계관광지(대청비치랜드) 및 문의문화재단지 등이 있어 연계 관광이 가능하고 찾아가려면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신탄진 인터체인지로 나와 신탄진 4거리에서 대청댐 방면으로 가면 되는데 호수를 한 바퀴 돌아보려면 승용차로 3시간 정도 걸린다.
그 대청호 좌측으로 내려다 보이는 추동마을이 너무나 아름답게 보여 자료를 찾아보니 추동은 대전광역시 동구에 있는 동으로서 서쪽으로 대덕구 비래동과 남쪽으로 주산동과 북쪽으로 효평동 및 마산동과 접한다.
동쪽으로는 대청호 수몰지역을 경계로 신촌동과 신하동과 이웃하고 동쪽 수몰지역을 빼고는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지역으로 서쪽에 성재산(398.7미터)이 남쪽에 고봉산이 북쪽에 한각산(314.5미터)이 솟아 있다.
삼국시대에는 백제 우술군에 통일신라 때는 비풍군에 고려 때는 회덕현과 공주부에 속하였다가 조선 초기에 다시 회덕현에 속한 뒤 1895년(고종 32) 회덕군 주안면 관할이 되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대전군 동면에 편입되었다가 1935년 대전읍이 대전부로 승격하면서 신설된 대덕군 동면에 편입되었다.
1989년 대전직할시 동구에 편입된 뒤 1995년 대전광역시 동구 추동을 거쳐 1998년 행정동인 대청동의 법정동이 되었다.
추동은 원래 가래나무(추목)가 많아 가래울로 부르던 지역이나 한자의 뜻은 무시하고 소리만을 취해 가래나무추를 가을추로 쓰면서 전혀 다른 한자로 바뀌었다.
자연마을로는 가래울(큰말), 감람말, 교촌 등이 있고 교육기관으로 동명초등학교가 있으며 대청호를 끼고 있어 자연경관이 빼어나다.
해마다 정월 14일 밤부터 며칠씩 정월 대보름축제가 열린다.
잠시 더 그 전망대에 머물며 아름다운 대청호와 그 주변 풍경들을 살펴보고 많은 사진을 남겨 본다.
그렇게 대청호를 둘러보고 출발하려는데 그 대청호와 추동마을 좌측으로 개머리산 일명 견두산과 좌측 저 멀리 계족산성 정상부가 보이기 시작하여 잠시 발걸음 멈추고 조망을 즐겨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견두산 일명 개머리산은 대전광역시의 동쪽 동구 효평동과 마산동 및 추동 경계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363미터이고 산의 모양이 개머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산 정상부에는 테뫼식으로 축조된 석축산성인 개머리산성(견두성)이 있고 이 산성 서쪽에는 계족산성이 북쪽에는 이현동산성이 북동쪽에 성치산성과 노고성이 동쪽으로는 마산동산성 그리고 남쪽으로는 질현성과 고봉산성이 동남쪽으로는 백골산성이 서로 연결되고 있다.
앞으로도 올라 볼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오른다 해도 언제 오를 수 있을지 기약조차 할 수 없는 견두산이기에 사진으로만 남겨보는 안타까운 시간이었다.
저 멀리 좌측 뒤로 보이는 계족산성은 가능하면 잠시 들렸다 진행하며 그곳에 들렸을 때 잠시 더 자세히 알아 보기로 한다.
아름다운 조망과 풍경을 즐기고 그 앞에 설치된 전망판에 쌓여 있는 눈을 헤치고 살펴보지만 아크릴판이 탁색되어 내용물이 전혀 보이지 않으니 포기하고 쉬고 있는 부부에게 인사하고 먼저 출발을 한다.
진행 방향으로 살펴보니 잡목과 소나무 가지 사이로 진행해야 할 계족산이 좌측으로 우뚝하고 안부로 내려 왔다 우측 끝자락에 민둥의 머리를 하고 있는 계족산성이 빤히 올려다 보인다.
잠시 후 커다란 소나무가 보이는 무명봉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또 다른 돌탑 하나가 쌓여 있는 384봉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기고 곧바로 출발한다.
그 돌탑봉을 지나니 뚜렷하게 나 있는 등로 위에 하얀 눈이 깔려있어 그림같은 풍경이 펼쳐지고 그 그림속으로 걸어 들어가니 등로는 다시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는데 저 멀리 앞쪽으로 빨간 등산복을 입은 중년 여성이 총총 걸음걸이로 빠르게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잠시 후 현위치 번호 계족산1호라는 시설물을 지나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353미터의 팔각정이 보이고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하니 등로 좌측으로 가양임도로 내려갈 수 있다는 이정표들을 계속 만나며 진행이 된다.
다시 바위지대를 지나 등로 우측으로 희미하게 내려다 보이는 대청호를 살펴보며 좌측으로 나 있는 우회 등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보이는 정상 마루금을 따라 홀로 오르니 로프구간을 넘어 또 다른 팔각정자가 설치되어 있는 377미터봉에 도착을 해 잠시 심호흡 한번 해 본다.
그 팔각정자 우측으로도 대청호가 내려다 보이는데 박무 현상으로 인해 제대로 된 깨끗한 풍경이 보이지 않아 조금은 아쉬움도 남아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 대청호 좌측으로 개머리산 일명 견두산과 그 뒤로 이어지는 산줄기를 살펴보고 조금 더 진행하다 등로 좌측을 보니 이제는 대전광역시가 내려다 보이는데 그곳 역시 박무 현상으로 희미한 풍경만 눈에 들어 오는 조망이 아쉽기만 하다.
잠시 후 봉 따먹기의 대가이신 박건석님이 절고개봉이라는 종이코팅지를 걸어 놓은 373.4미터봉을 넘고 안전목책과 로프를 타고 조심스럽게 걸어 내려가니 좌측으로 가양공원 하산 갈림삼거리 안부를 지나 약간의 운동기구들과 사각정자 그리고 대전둘레산길 안내도와 이정표들이 줄지어 세워진 비포장 임도의 절고개에 도착을 하니 많은 등산객들이 운동도 하고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는 풍경들도 보인다.
절고개(260미터)는 대전광역시의 중앙부 동쪽 대덕구 비래동과 동구 추동 사이에 있는 고개로서 응봉산 중턱에 자리 잡은 비래암이라는 절 때문에 절고개라 불렀다고 하는데 비래암고개 또는 용자암고개라고도 부른다.
매우 큰 고개로 현재에도 휴일이면 등산객이 이 고개를 이용하여 계족산이나 질치 및 질현성 쪽으로 간다.
사진 몇장 남기고 그 비포장 임도를 건너 나무계단이 설치된 오르막 등로를 타고 빠르게 그 절고개를 통과한다.
계족산성까지 2.3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의 방향과 거리 표시를 확인하고 나무계단을 따라 오르니 뚜렷한 평이한 등로가 열려있고 잠시 편안하게 걸어 오르니 또 다시 나무계단이 보인다.
그 계단을 타고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자꾸만 멀어지는 대전광역시의 전경이 이 산객의 발걸음을 붙잡고 잠시 둘러 본 후 큰 고도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등로를 따르니 갈림삼거리 안부도 통과를 한다.
그 무명안부를 지나 오르니 갑자기 눈 앞에 헬기장이 나타나고 그 헬기장 위에는 벤취쉼터2개와 깃대가 서 있는데 그곳에서 잠시 지나온 방향을 살펴보니 환상의 식장지맥 산줄기가 그곳에 펼쳐져 있다.
그곳 헬기장에서 잠시 발걸음 멈춰 뒤돌아 보니 어제 마지막으로 걸어 내려 온 식장산이 우측 저 멀리 희미하게 솟아 있는 모습으로 보이고 그 앞으로 오늘 이 산객이 걸어 넘어 온 식장지맥 마루금이 도토리 키재기를 하듯 일렬로 쭉 늘어 선 형태로 펼쳐져 있다.
그 마루금 좌측으로는 대청호의 물길에 강렬한 햇살이 반사되며 밝게 빛나지만 역시나 박무로 인해 조금은 아쉬움도 남긴 시간이다.
그렇게 한동안 지나온 식장지맥 산줄기를 살펴보고 우측으로 갈라지는 계족산성을 잠시 다녀올 것인지를 두고 고민하다 시간을 보니 충분 할 것 같아 제법 긴 거리이지만 계족산성 방향인 우측으로 진행을 이어가 본다.
좌측으로 이어지는 계족산쪽 마루금을 잠시 버리고 우측 계족산성 방향으로 걸어 진행을 하니 바위를 품은 부부나무 안내판과 그 바위 및 나무가 바로 옆에 보인다.
백제시대의 부부와 그 부부의 정이 깃들어 있는 전설을 읽어 본 후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무인산불감시카메라와 전망데크가 설치되어 있는 399미터의 성재산에 도착을 해 잠시 사진 몇장 남겨 본다.
자료를 찾아 보지만 찾을 수 있는 자료도 없어 아쉬움만 남기고 삼각점을 확인한 후 잠시 전망대로 가 보지만 역시나 박무로 인해 아름다운 대청호와 그 우측으로 지나온 식장지맥이 희미하게만 하다.
제일 뒤쪽으로 어제 다녀 온 식장산이 희미하게 가물거리고 그 앞쪽으로 오늘 이 산객에 걸어 온 식장지맥의 마루금이 환상으로 펼쳐져 있지만 박무 현상으로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다.
그 우측으로는 대전시가 살짝 보이지만 역시나 희미한 실루엣으로만 남겨지고 좌측으로는 구름속에 숨어 있는 햇살이 비추며 반짝이는 대청호가 아름답지만 역시나 박무로 인해 분간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이기에 사진만 몇장씩 남겨 보는 시간이다.
그렇게 아쉬움만 남기고 다시 발걸음을 돌려 계족산성 방향으로 조금은 빠르게 걸어 내려가 본다.
계족산의 거북바위 설명판도 잠시 읽어 보고 낙엽진 낙엽송 등로를 타고 힐링하듯 자연을 즐기다 보니 우측으로 육각정자 가는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보이지만 보이는 것도 없이 이곳 역시 정상 마루금이 아닌 계족산성을 다녀와야 하는 접속구간이기에 육가정은 포기하고 계족산성 방향으로 진행을 이어가 본다.
잠시 후 안전목책과 로프구간을 따라 진행하니 식재된 듯한 키 작은 잣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벤취쉼터2개가 설치되어 있는 낙엽송 안부를 지나 안전목책과 로프를 타고 가파르게 오르니 금새 대전계족산성에 도착을 해 잠시 설명판을 읽어 본다.
계족산성은 대전광역시 대덕구 장동에 있는 백제시대의 산성으로 사적 제355호이며 지정면적 8만 5501㎡에 둘레 1037미터이고 높이는 399미터의 계족산 위에 있는 테뫼형 산성(산 정상을 둘러 쌓은 성)으로서 현존하는 성벽의 안쪽 높이는 3.4미터에 외벽 높이는 7미터이며 상부 너비는 3.7미터이다.
가장 잘 남아 있는 북쪽 성벽의 높이는 10.5미터에 서쪽 성벽의 높이는 6.8미터이며 성의 동, 서, 남쪽에 너비 4미터의 문지가 있으며 또 길이 1.1 미터에 너비 0.75미터 높이 0.63미터의 장방형 우물터가 있는데 그 아래로 약 1미터의 수로가 있다.
상봉에 봉수터로 추정되는 곳이 있으며 건물터와 주춧돌이 남아 있으며 금강하류의 중요한 지점에 있고 백제시대 토기조각이 많이 출토되고 있어 백제의 옹산성으로 비정되고 있다.
백제가 멸망한 뒤 백제부흥군이 이 산성을 근거로 한때 신라군의 진로를 차단하기도 하였고 조선 말기 동학 농민군의 근거지가 되기도 하였다고 전한다.
성벽은 대개 7×30㎝의 납작한 자연활석을 석재로 사용한 내탁공법으로 축조하였으나 동쪽 성벽 약 200미터 정도는 안과 밖으로 석재를 쌓아올리는 내외협축공법을 이용하였다.
현재 남문지 밖에는 지름 0.12미터에 깊이 0.12미터의 구멍이 뚫린 문초석이 있다.
성안에서 백제시대는 물론 신라, 고려, 조선시대의 토기와 자기조각이 출토되고 있어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계속 사용된 산성임을 증명해 준다.
이 산성은 그 아래에 견두성과 같은 보루가 있는 것이 특징이며 부근에 질현성, 능성. 내사지성, 우술성, 진현성,사정성 등이 있다.
1992년부터 2011년까지 계족산성 보수정비사업(1단계 사업)이 추진되어 2011년에 전체 산성 1037미터 가운데 원형보존구간 246미터를 제외한 791미터가 복원되었다.
이후 2012년부터 2016년까지 2단계 사업인 계족산성 종합정비활용사업이 추진되었다.
올라가는 입구쪽에는 제법 산성으로서의 복원 작업이 마무리가 돤 듯 보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아직도 많은 부분이 보안 수정되어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다.
계족산성을 지나 오르니 성 내부로 올라서고 잎이 진 거대한 활엽수들을 살펴보며 등로 좌측을 살펴보니 저 멀리 대전광역시의 회색도시가 내려다 보이고 그 좌측 옆으로는 조만간 다시 계족산성 갈림삼거리로 복귀한 후 걸어 넘어야 할 계족산이 우뚝 솟아 있는 모습으로 다가와 있다.
그 계족산과 계족산성 사이에는 장동마을이 내려다 보이는데 늘 화려한 유성구의 도심만 생각하다 이곳 역시 유성구의 일부임을 알고난 후 얼마나 얼굴이 뜨겁던지.
장동은 대전광역시 유성구에 있는 동으로서 면적은 3 Km2이고 서북쪽으로는 자운동과 방현동, 동쪽으로는 화암동과 가정동, 남서쪽으로는 신성동과 접하며 백제시대에는 소비포현, 신라시대에는 적오현, 고려시대에는 덕진현 및 공주부에 속하였다가 조선 초기에는 공주군 탄동면에 속했으며 1895년(고종 32) 지방관제 개정에 따라 회덕군 탄동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정삼리, 상초리, 신대리, 세동 일부를 합하여 장동리라 하고 대전군 탄동면에 속했다가 1935년 11월 대덕군 탄동면에 편입되었고 1984년 7월 대전시 유성출장소 관할이 되었으며 1989년 1월 대전시의 직할시 승격과 함께 대전직할시 유성구 장동이 된 뒤 1995년부터 대전광역시 유성구 장동이 되었다.
행정동인 신성동 관할 아래 있으며 장동이라는 명칭은 부자가 살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예전에는 장자울이나 장재울 또는 장자리라 불렀다.
새터, 새뜸, 장재울, 정상골, 황충미 등의 옛마을과 두루봉과 생금봉 등의 야산 그리고 삼골, 언남뭇골, 오리골, 임천골 등의 골짜기가 있으며 새터는 1907년에 형성되었는데 지금은 대덕연구단지가 들어섰으며 정상골에는 한국화학연구소가 들어섰다.
주요기관으로 한국기계연구원, 한국화학연구소, 한국에너지기술연구소, 대전광역시 지방공무원교육원 등이 있고 교육기관으로는 대덕공업고등학교와 대덕대학이 있다. 유적으로는 충렬사가 전하는데 충렬사는 한일합병을 전후해서 독립운동을 펼친 민영환, 최익현, 안중근, 이준, 윤봉길 등을 모신 사당으로 1971년에 세워졌다.
오늘 이곳에 오지 않았으면 전혀 알지 못했을 장동에 대한 자료도 찾아 보는 시간이 되었다.
계족산을 살펴보고 북쪽으로 이어지는 산성 내부를 둘러보려다 특별한 것이 없어 다시 남쪽으로 방향을 돌리니 대전 계족산성에서 바라보는 전망 안내도가 보여 그 형상을 보고 사진을 담아 보지만 역시나 박무로 인해 아쉽기만 하다.
그래도 남쪽으로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식장지맥 마루금이 전부 보이고 그 끝자락에 희미하게 식장산까지 보이지만 흐릿하고 그 좌측으로 대청호가 살짝 얼굴만 보여 주지만 그조차 분간이 쉽지 않은 지독한 박무가 껴 있는 오늘 하루이다.
그렇게 한동안 그 계족산성 위에서 제한된 시선으로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긴 후 다시 걸어 왔던 등로를 따라 계족산성 갈림삼거리까지 빠르게 걸어 복귀한다.
이제 계족산 정상 옆에 서 있는 봉황정까지 1.8 Km 남아 있다는 방향과 거리 표시가 반가운 이정표를 만나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그 헬기장 안부를 지나 오르니 산초나무에 대한 설명판 지나 억새포가 깔려 있는 넓고 뚜렷한 등로가 열려있어 진행에는 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시간이다.
잠시 걸어 오르니 나뭇가지에 봉 따먹기의 대가이신 박건석님이 367.9미터봉에 천개봉이라는 종이코팅지를 걸어 놨기에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하니 다시 사각 평상이 설치되어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다시 하얀 눈이 소복하게 깔려있는 나무계단을 타고 내려가니 이곳 등로에도 역시 낙엽진 낙엽송들이 길게 이어지고 잠시 후 임도갈림 삼거리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많은 인공 구조물들이 보이는 임도 안부이다.
스토리가 흐르는 녹색길과 송여익/송요년/회덕황씨의 미륵원에 대한 설명판 및 대전둘레산길 잇기 안내판 그리고 계족산종합 안내도가 보인다.
그 한쪽에는 운동기구들과 사각정자도 보이고 그 우측으로는 간이 매점이 보여 잠시 들어가 쌀국수에 탁배기 한잔으로 허기를 달래며 잠시 쉬어 가는 시간도 가져 본다.
그렇게 그 간이 매점에서 배를 채우고 따뜻한 국물로 몸도 데운 후 나와 봉황정 방향으로 이어지는 나무계단을 타고 오르니 커다란 참나무 한그루와 벤취쉼터 두개가 보이는 325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봉황정까지 600미터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서 있는 무명안부에 도착을 한다.
이곳부터 등산객들이 많아지기 시작하고 잠시 이어지는 나무계단을 타고 빠르게 걸어 오르니 벤취쉼터 하나가 보이는 무명봉을 넘어 355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역시 박건석님은 작은계족산이라는 종이코팅지를 나뭇가지에 걸어 놨다.
벤취쉼터 2개가 보이는 그곳 355봉에서 잠시 심호흡 한번 더 하고 조금은 빠르게 계족산 정상을 향해 걸어가는 시간이다.
다시 안전목책과 로프가 보이는 나무계단을 타고 오르니 용화사 입구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보이고 그곳을 지나 오르니 금새 커다란 묘지가 보이는 계족산 정상에 도착을 해 주위 풍경을 사진에 담고 주위에 머물고 있는 등산객에게 부탁을 해 추억 한장 남겨 보는 시간이다.
계족산(419봉)은 대전광역시의 동쪽 대덕구 읍내동과 연축동 및 장동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424미터이다.
세종실록지리지(회덕)에 계족산은 현 사람들이 진산으로 삼았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산줄기가 닭발 모양으로 퍼져 나갔기 때문에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이나 동국여지지, 회덕읍지 등에서도 계족산은 현 동쪽 3리에 있는데 현의 진산이며 세상에 전하기를 가물 때에 산이 울면 반드시 비가 온다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여지도서, 충청도읍지, 호서읍지에는 계족산은 현 동쪽 3리에 있는데 진산의 대둔산으로부터 와서 현의 주맥이 되었다고 하여 풍수상 회덕 읍치의 주산이었음도 기록하고 있다.
이렇듯 계족산은 회덕현의 진산이자 주산으로 그 실제적이고 상징적 의미가 남달랐던 산이다.
여지도서, 충청도읍지, 호서읍지의 회덕현지도, 해동지도, 1872년지방지도 등 회덕현 관련 고지도에서는 계족산을 모신다는 의미로 보통 북쪽으로 인식되는 지도의 위쪽에 현의 동쪽에 위치한 계족산을 배치시키기까지 하였다.
지명 유래와 관련해 예로부터 가뭄이 심할 때 이 산이 울면 비가 온다고 전하여 비수리 또는 백달산이라 부르기도 했다고 하고 산의 생김새가 봉황과 같다고 하여 봉황산이라 했다고도 한다.
정상에는 봉황정과 전망대가 세워져 있고 동북쪽에는 백제와 신라의 격전지로 유명한 계족산성이 축조되어 있다.
이곳 계족산 정상에서 좌측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봉황정이 있어 잠시 다녀 오기로 한다.
원마루금은 계족산 정상에서 우측인 북쪽으로 진행을 해야 되지만 좌측인 서쪽으로 봉황정이 서 있어 걸어 진행을 이어가니 금새 팔각정이 보이고 살펴보니 이곳을 봉황정이라 부르고 있다.
봉황정은 계족산의 오똑하게 도드라진 봉우리 위에 정자(봉황정)가 날아갈 듯 앉아 있는 정자로서 더욱 까마득하게 느껴지는데 봉황정이 있는 곳이 계족산 정상(423봉)이지만 지금은 계족산성이 있는 봉우리가 더 높아 그 봉우리를 정상으로 치는 것 같다.
잠시 그 봉황정으로 올라 주위를 살펴보니 서쪽인 좌측으로 대전광역시가 내려다 보이는데 그곳 조차도 박무가 심해 잘 보이지 않고 희미하게 내려다 보이니 참으로 아쉬웠던 시간이다.
계룡산과 관암지맥 그리고 보문산과 향적산까지 시원하게 조망이 될 것 같은 데 보이는 것이라곤 바로 발 아래 펼쳐진 뿌연 회색빛 고층 빌딩들 뿐이다.
그래도 그 아ㅣ쉬움을 달래며 지나 온 방향으로 남쪽을 살펴보니 소나무 가지 위 저 멀리 어제 넘어 온 식장산이 동서쪽으로 길게 이어진 능선이 희미하게 보이고 그 앞쪽으로 오늘 걸어 온 식장지맥 마루금이 조금 더 선명한 모습으로 다가 오지만 이제는 좌측의 소나무 가지들에 막혀 그 아름다운 모습은 전부 보여주질 못하고 있다.
언제 다시 이곳 계족산에 올라 멋진 마루금을 살펴보며 오늘을 기억이나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한번쯤은 더 찾아 오를 수 있는 기회가 있으리라 기대도 해 보는 시간이다.
이제 눈을 서쪽으로 돌리니 보문산이 희미한 박무속에서도 보이고 그 우측으로 대전시가지 전체와 그 대전시를 넘어 저 멀리 계룡산 자락이 보이지만 사진으로는 잘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래도 그 희미한 박무속에 계룡산과 우측 장군봉까지의 능선이 보이고 그 계룡산 좌측으로는 향적산 자락도 보일듯 말듯 다가와 있지만 분간하기 어려운 시야 때문에 안타까운 마음만 내려 놓는다.
그래도 이렇게나마 그 아쉬움을 달래고 이곳 계족산과 봉황정에서의 추억을 남긴 후 다시 금강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옮겨 보는 시간이다.
봉황정을 내려 와 다시 계족산 정상부 좌측 우회 등로를 타고 계족산을 통과한 후 조금 더 걸어 진행을 하니 벤취쉼터 2개가 보이는 404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그 무명봉을 지나자마자 길게 이어지는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나무계단을 타고 한동안 걸어 내려가니 나뭇가지 사이로 안부로 내려갔다 다시 가파르게 올라야 할 378 전망데크봉이 제법 뾰족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다시 커다란 참나무 한그루와 벤취쉼터 2개가 설치되어 있는 무명안부를 지나 가파르게 걸어 오르니 드디어 할머니와 할아버지 부부가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378 전망데크봉에 도착을 해 지나온 방향으로 계족산과 좌측으로 이어지는 식장지맥 마루금을 살펴보니 제법 길게 이어진 모습이 아름답게 다가온다.
지나 온 등로를 확인하고 이제 전망데크 좌측으로 가 그 아래 펼쳐진 풍경들을 살펴보니 바로 발 아래로 대전시 대덕구 쪽 마을들이 펼쳐져 있고 그 넘어 대전의 젖줄인 갑천이 휘돌아 지나는 모습도 선명하게 다가온다.
그 갑천을 지나면 대덕연구단지의 거대한 모습이 눈에 들어 오고 그 넘어 오래 전 진행하다 중단된 관암지맥의 우산봉과 갑하산 줄기 좌측으로 장군봉에서 계룡산 주봉인 천단으로 이어지는 라인이 박무속에서도 확실한 조재감을 알려 주고 있다.
참으로 많이도 올랐던 계룡산인데 이제는 이렇게 맥 잇기 산행이나 하면서 오르던가 아니면 멀리에서 그리움 달래며 조망으로나마 만나야 한다고 하니 많이 아쉬운 지점이기도 하다.
그곳 전망데크에서 조금 더 시간을 보내고 노년 부부와 헤어진 후 뚜렷한 소나무 등로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니 다시 하얀 눈이 쌓여 있는 내리막 등로에 나무계단이 나타나고 그 계단을 타고 한동안 걸어 내려가니 등로는 다시 평이하게 이어지고 있단.
무명안부를 지나 오르니 332 무명봉을 통과하고 다시 길게 이어지는 나무계단을 타고 걸어 내려가니 등로는 다시 평이한 소나무와 참나무가 혼재되어 있는 등로로 바뀌고 있다.
그렇게 조금 더 걸어 진행을 하니 벤취쉼터 2개가 설치되어 있는 295 무명봉에 도착을 해 잠시 심호흡 한번 하면서 쉬어가는 시간도 가져 본다.
그 벤취쉼터가 보이는 무명봉을 지나 길게 이어지는 안전목책과 로프 구간을 타고 조금은 가파르게 걸어 내려가니 눈 앞 나뭇가지 사이로 이제부터 걸어 진행을 해야 할 식장지맥 마지막 합수점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길게 펼쳐져 있고 그 풍경에 마음을 빼앗겨 잠시 내려가던 발걸음 멈추고 몇장의 사진으로 남겨 본다.
마루금 좌측으로는 대덕구의 산업단지가 펼쳐져 있고 우측으로는 신탄진쪽 마을들과 공장들이 드넓게 분포하고 있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진행 방향으로 식장지맥의 마지막 산줄기의 흐름을 확인하고 계속 이어지는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나무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갑자기 화장실과 사각정자 그리고 운동기구들이 설치되어 있는 비포장 임도 안부에 내려서고 잠시 주위를 둘러보고 그 임도를 건너 이정표에서 장동고개 방향으로 능선을 타고 걸어 진행을 이어가 본다.
이곳 역시 약간의 눈이 등로에 흩뿌리듯 쌓여 있지만 진행에는 전혀 지장을 주지 않는 뚜렷한 등로를 타고 걸어 진행하니 금새 216.5 삼각점봉에 도착을 하고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준.희님의 이정판을 사진에 담고 다시 진행을 이어가 본다.
잠시 후 장동고개까지 1.9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지나 나타나는 내리막 계단을 따르니 다시 커다란 참나무가 서 있는 무명안부를 지나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로 진행이 되고 있다.
편안하게 뚜렷한 등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가니 상수리나무에 대한 안내판과 벤취쉼터 하나를 만나고 잠시 멋진 잣나무 지대를 통과하니 등로는 우측으로 내려가는 임도를 버리고 좌측 잡목들이 약간 보이는 능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능선을 타고 잡목을 헤치며 커다란 소나무들이 보이는 무명봉을 넘으니 다시 1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새뜸고개에 도착을 하는데 포장도로는 최근에 포장된 듯 보인다.
그 1차선 포장도로에서 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조금 걸어 고개를 넘으니 도로 우측으로 이정표가 서 있고 장동고개까지 1.5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의 방향을 보고 능선으로 걸어 오르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잠시 후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오르막 등로를 지나 묘지 가장자리에 심어진 파란 동백나무를 바라보며 마루금을 걸어가니 멋진 소나무 등로가 나타나고 이제 그 소나무 등로 우측으로는 장동마을이 아름다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그러고 보니 이 장동마을은 방금 전 게족산성에 올라 좌측인 서쪽의 계족산을 바라보며 그 사이에 놓여 있던 마을과 같은 동인데 마을만 다른 것을 이제서야 인지하게 되었다.
장동은 대전광역시 유성구에 있는 동으로서 면적은 3 Km2이고 서북쪽으로는 자운동과 방현동, 동쪽으로는 화암동과 가정동, 남서쪽으로는 신성동과 접하며 백제시대에는 소비포현, 신라시대에는 적오현, 고려시대에는 덕진현 및 공주부에 속하였다가 조선 초기에는 공주군 탄동면에 속했으며 1895년(고종 32) 지방관제 개정에 따라 회덕군 탄동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정삼리, 상초리, 신대리, 세동 일부를 합하여 장동리라 하고 대전군 탄동면에 속했다가 1935년 11월 대덕군 탄동면에 편입되었고 1984년 7월 대전시 유성출장소 관할이 되었으며 1989년 1월 대전시의 직할시 승격과 함께 대전직할시 유성구 장동이 된 뒤 1995년부터 대전광역시 유성구 장동이 되었다.
행정동인 신성동 관할 아래 있으며 장동이라는 명칭은 부자가 살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예전에는 장자울이나 장재울 또는 장자리라 불렀다.
새터, 새뜸, 장재울, 정상골, 황충미 등의 옛마을과 두루봉과 생금봉 등의 야산 그리고 삼골, 언남뭇골, 오리골, 임천골 등의 골짜기가 있으며 새터는 1907년에 형성되었는데 지금은 대덕연구단지가 들어섰으며 정상골에는 한국화학연구소가 들어섰다.
주요기관으로 한국기계연구원, 한국화학연구소, 한국에너지기술연구소, 대전광역시 지방공무원교육원 등이 있고 교육기관으로는 대덕공업고등학교와 대덕대학이 있다. 유적으로는 충렬사가 전하는데 충렬사는 한일합병을 전후해서 독립운동을 펼친 민영환, 최익현, 안중근, 이준, 윤봉길 등을 모신 사당으로 1971년에 세워졌다.
그렇개ㅔ 장동마을을 살펴보며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넓은 공터에 벤취쉼터 3개가 설치되어 있는 172 무명봉에 도착을 해 조금 더 선명하게 장동마을을 내려다 본다.
잠시 그 벤취쉼터 3개가 보이는 공터봉에서 쉬었다 산행을 이어가니 등로 우측으로 짧은 구간 발목 후 유실수를 식재한 모습이 눈에 들어 오고 그렇게 꾸준하게 발걸음을 옮기니 좌측으로 대덕에비군훈련장으로 내려갈 수 있는 갈림사거리 안부에 도착을 해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장동고개까지 1.2 Km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가 반가운 시간이다.
안부 아래에 새뜸마을이 있어 새뜸고개로도 불려지는 안부를 지나 오르니 등로는 여전히 멋진 소나무와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는 뚜렷한 등로로 이어지고 잠시 후 등로 좌측으로 잘 관리되고 있는 묘지들이 나타나는데 그 묘지 아래 저 멀리 갑천과 대덕연구단지 넘어 관암지맥의 갑하산과 우산봉이 제법 뚜렷한 산줄기를 그리며 보이기 시작한다.
조만간 저곳으로 가 반석역에서 금강 합수점까지 이어지는 마지막 구간을 걸어야 하기에 잠시 발걸음 멈추고 관암지맥의 산줄기도 확인해 보는 시간이다.
그렇게 조망을 즐기고 그 묘지지대를 지나 걸어가니 이제는 등로 우측으로 길게 이어지는 묘지지대가 나타나고 그 묘지들을 우측에 두고 좌측 능선을 따라 묘지지대 상단부로 올라 배낭 벗어 놓고 잠시 뒤돌아 보니 그곳에도 역시 환상의 풍경들과 조망이 펼쳐져 있어 잠시 쉬어 가기로 한다.
등로 우측 뒤를 살펴보니 가운데 장동마을의 산디마을 생태공원캠핑장으로 이어지는 도로와 좁은 들판이 보이고 그 좌측으로 계족산성이 그리고 그 우측으로는 계족산과 식장산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많은 사진을 남기며 지나온 식장지맥 마루금을 넘어 저 멀리 이어지는 계족산과 그 좌측으로 흐르는 계족산성을 마음속에 담은 후 다시 배낭 둘러메고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그 묘지지대를 지나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그림같은 소나무 등로가 열리고 무심으로 걸어 진행을 하니 벤취쉼터와 벙커 그리고 이정표가 서 있는 지도 상 222봉에 도착을 해 주위 풍경을 사진에 담아 본다.
이제 봉황정에서 2.5 Km 진행해 온 곳으로 장동고개까지는 800미터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가 반가운 곳으로 몇장의 추억을 남기고 그곳 222 무명봉을 출발해 본다.
커다란 소나무 세그루가 보초를 서듯 등로만 열어 주고 있는 곳을 통해 걸어 내려가니 등로는 여전히 낙염이 살짝 깔려있는 큰 고도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평이한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한동안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고 다시 낙엽송 등로를 타고 빠르게 전진하니 등로는 이제 완만한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잠시 후 다시 나타나는 안전목책과 로프구간을 따라 내려가니 2차선 포장도로가 좌측으로 내려다 보이고 곧이어 좌측으로 신탄진까지 4.7 Km 거리라는 이정표가 서 있는 장동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장동고개에 도착을 한다.
장동고개(3차선 포장도로)는 대전광역시의 중앙부 북동쪽 대덕구 와동에서 장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로서 장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므로 장동고개라고 하고 또 옛날 이 고개를 이용하여 장을 다녔기 때문에 장고개라고도 전한다.
고갯마루에는 남녀 장승 한 쌍과 돌탑이 조성되어 있다.
지나다니는 차량이 많지 않은 장동고개에서 도로를 건너 콘테이너 박스가 보이는 곳으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좌측 능선 방향으로 산행을 이어가 본다.
장동고개를 건너 반대편 콘테이너 박스가 보이는 곳 앞으로 나 있는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을 이어가니 등로는 다시 좌측 능선으로 이어지고 곧이어 이동통신탑이 보인다.
뚜렷한 오르막 등로를 따라 잠시 걸어 오르니 다시 등로는 평이한 등로로 변하고 등로 우측으로는 여전히 장동마을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잠시 후 신탄진정수장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를 지나 한동안 걸어가니 좌측으로 와동 그리고 우측으로 장동이 갈리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해 여기에서 우측의 장동가는 등로를 버리고 좌측의 와동 방향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따라 산행을 이어가 본다.
갈림삼거리를 지나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16번 송전탑을 통과하고 별 특징없는 1892 무명봉에 도착을 해 포인트만 확인을 해 본다.
그 무명봉을 지나 교통호 같은 내리막 등로를 따르고 다시 커다란 소나무와 그 아래 자라고 있는 잡목이 혼재되어 있는 뚜렷한 등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가니 등로 우측으로 드넓은 묘지지대가 펼쳐져 있고 그 묘지 지나 저 멀리 대덕구 신탄진쪽 공장 건물들이 빼곡하게 내려다 보이는 산업단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 뒤 저 멀리에는 오늘 식장지맥을 마무리해야 하는 합수점 근처의 고층아파트가 보이는듯 한데 아직 그쪽 방향인지 확신은 하지 못하는 시간이다.
열차들이 정차되어 있는 신탄진 기지창도 내려다 보며 그렇게 묘지지대를 걸어 내려가니 다시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선답자들 트랙마다 모두 제각각 다른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하였기에 원 식장지맥 마루금을 띄워 놓고 그 마루금과 가장 유사한 등로를 따라 진행을 해 보기로 한다.
우측으로 내려가니 뚜렷한 등로를 버리고 좌측 잡목이 우거진 능선으로 들어가니 생각보다 등로는 잘 나 있고 그렇게 한동안 능선을 타고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 우측으로 또 다른 묘지지대가 나타난다.
묘지를 우측에 두고 걸어 진행을 해 다시 능선으로 들어가고 무명안부를 지나 묘지 몇기를 지나니 커다란 소나무들이 보이는 비포장 임도가 지나는 무명안부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통과해 진행을 이어가 본다.
그 비포장 임도를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등로는 다시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와 만나고 그 등로를 따라 편안하게 걸어가 본다.
잠시 후 묘지를 지나고 계속 이어지는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눈 앞에 도로 위 절개지가 나타나고 지도를 살펴보니 이곳은 최근에 변한 지형인 듯 지도에도 특별한 표기가 없는 곳이었다.
절개지를 피해 우측 사면 등로를 따라 내려가 드디어 2차선 포장도로와 만나는데 최근 지도를 살펴보니 이곳이 바로 상서평촌재정비촉진지구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곳이다.
도로 좌측 위로는 전국특송화물 ThermoFisher Scientific이라는 커다란 입간판이 서 있는데 지도에도 잘 표기가 되지 않는 최신 건물이다.
이곳에서 도로따라 우측으로 걸어 내려가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새로 지은듯한 건물을 좌측에 두고 우측에 플라스틱 공장 건물이 보이는 곳 갈림삼거리에서 좌측으로 나 있는 1차선 포장도로를 따르니 만도샾이라는 입간판이 보이고 곧이어 좌측으로 NS 레이저라는 공장 건물도 보인다.
계속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진행하니 좌측으로 양철식당을 지나 광림자동차공업 건물 앞에서 도로는 우측으로 크게 휘어져 이어지고 있다.
잠시 후 한올바이오파마라는 공장 건물을 지나고 2차선 포장도로를 만나 걸어가니 신호등이 있는 갈림사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지도에는 상서당1길로 표시된 곳이다.
그곳에서 도로를 건너 좌측 상서교 방향으로 90도 꺽어 걸어 오르며 그 아래 지나는 경부철도를 통과하는 시간인데 그 도로 육교 위 도로 표지판에는 좌측으로 시청과 대전역 방향을 그리고 우측으로는 청주와 신탄진 방향을 표기한 표지판이 걸려 있는 곳이다.
그 상서교라는 육교도로를 건너 경부선 철도와 17번 6차선 포장도로를 통과하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덕암로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도 좌측의 시청과 대전역 가는 방향의 도로를 버리고 우측인 신탄진 방향으로 방향을 틀어 진행을 이어가 본다.
잠시 후 도로 좌측으로는 경부고속도로가 지나는데 바로 상향선 신탄진휴게소 건물들이 바로 옆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덕암로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신탄진 방향으로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선바위 버스정류장이 보이고 701번 버스 노선도가 붙어 있다.
선바위 버스정류장을 지나 계속 이어지는 덕암로를 따르니 도로 좌측으로 경부고속도로의 신탄진 휴게소가 함께 붙어 있고 도로 우측으로는 수닭이울면 이라는 닭요리 전문점이 보인다.
그렇게 계속 더 걸어 진행을 하니 저 멀리 산막석재라는 입간판이 건물 위에 보이고 상서육교에서 도로 좌측 아래로 지나는 6차선 산업단지로를 통과하며 살펴보니 그 산업단지로 지나 저 멀리 경부고속도로가 빤히 보이기 시작한다.
그 덕암로 상 상서육교를 통과하자 마자 보이는 산막석재 건물 앞에서 좌측으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방금 전 내려다 봤던 6차선 산업단지로 방향으로 걸어 내려가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는 시간이다.
산막석재 건물을 우측에 두고 산업단지로 방향으로 걸어 내려가니 산업단지로와는 상관 없이 경부고속도로를 통과할 수 있는 두개의 지하통로가 나타나고 그 지하통로를 통해 어렵게 경부고속도로를 통과한다.
하지만 이 좁은 지하통로를 통해 운행하는 차량들이 생각보다 많아 주의가 필요한 도로이기도 하다.
도로를 지나 우측으로 나 있는 1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경부고속도로를 우측에 두고 그 경부고속도로와 나란히 걸어 오르며 산행을 이어가 보는 시간이다.
잠시 더 그 1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 오르니 도로 좌측으로는 KTX 철로가 보이고 우측으로는 경부고속도로가 보이는 그 가운데 도로를 따라 진행하는 시간이다.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도로 좌측에 신부터널이라는 커다란 입간판이 보이고 그 앞으로는 밭 경작지 지나 녹색철조망이 보이는데 살펴보니 그 안에 모셔 둔 묘지들을 보호하기 위한 철망으로 그 철망이 시작되는 지점에 이정표 하나가 서 있다.
도로를 타고 직진해 오르면 목상동이고 이 산객은 녹색 철망이 있는 좌측 등산로 방향으로 틀어 그 철망을 타고 걸어 능선으로 오른다.
잠시 걸어 오르니 많은 운동기구들이 보이고 사각정자도 보이는 75 미터 장소이다.
그 운동기구를 지나 뚜렷한 소나무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벤취쉼터 2개가 보이는데 등로는 얼마나 많은 등산객들과 산책객들이 지나다녔는지 관악산처럼 반질거리고 있다.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제법 큰 바위암릉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트랙을 확인해 보니 99미터 바위봉이다.
불을 냈던 흔적이 있는 바위를 지나니 등로는 다시 참나무가 제법 굵게 자라고 있는 평이한 등로로 변하고 있다.
떨어진 낙엽들도 모두 날라가 버린 반질거리는 등로를 따라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니 다시 벤취쉼터 2개가 설치되어 있는 장소를 지나 안전목책과 로프가 보이는 등로도 통과한다.
한동안 뚜렷하게 나 있는 소나무 등로를 타고 발걸음을 빠르게 진행하니 등로 우측으로 밭 경작지와 건물이 보이는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바로 장고개이다.
이곳 장고개에 관한 자료는 찾지 못하였는데 대부분 장고개라는 의미는 이 고개를 이용하여 장을 봤기 때문에 붙여진 경우가 많아 이곳도 그런 이유가 있지 않을까 추측을 해 보는 시간이다.
이곳에서 동네 주민 한분을 만나 잠시 인사 나누고 곧바로 산행을 이어가 본다.
장고개를 지나 나타나는 나무계단을 타고 오르니 등로는 다시 우측에 밭 경작지를 두고 좌측 사면 등로로 이어지듯 걸어가 본다.
다시 나타나는 안전목책과 로프구간을 지나고 나무 계단을 오르니 또 다른 안전목책과 로프구간이 나타나는데 등로 우측으로는 철망 넘어 거대한 체육시설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 내려가니 밭 경작지를 지나 목상동 일원 등산안내도를 만나고 곧이어 2차선 포장도로 위에 도착을 하는데 도로 우측 위에는 덕암축구센터라는 커다란 입간판이 보인다.
이곳에서 지도를 살펴보니 마루금은 좌측 도로를 타고 내려가도 될 듯 한데 우측 덕암축구센터쪽 철망을 타고 진행하는 것이 조금 더 마루금과 비슷한 등로처럼 보여 우측 능선으로 진행을 한다.
한동안 녹색 철망을 우측에 두고 그 옆으로 나 있는 등로를 따르니 등로 좌측으로는 목상동의 거대한 산업단지들이 바로 발 아래로 내려다 보이고 하얀 수증기가 쉴새 없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다시 계속 이어지는 철망 옆 등로를 따르니 등로 바로 좌측으로는 측백나무 조림지가 나타나고 그 아래 밭 경작지 지나 민가들과 거대한 산업단지가 언발란스한 상황에서도 잘 어울리며 존재하고 있다.
다시 안부로 내려갔다 오르고 좌측에 많은 묘지들을 두고 계속 이어지는 녹색 철망을 따르니 밭 경작지와 억새 군락지를 지나 주능선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녹색 철망을 우측으로 보내고 좌측 잡목과 가시나무가 혼재되어 있는 능선으로 들어가며 어려운 마지막 산행을 이어가 본다.
약간의 아카시아 가시에 찔려 비명을 지루며 통과하니 드디어 그 가시나무 지대를 벗어 나 잘 관리되고 있는 묘지 앞으로 이어지고 있다.
안정나씨 가족묘지를 지나 내려가니 밭과 논들이 보이는 비포장 임도와 만나고 그 논 경작지 넘어로는 몇동의 아파트 단지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지도를 보니 다사랑과 상록수 아파트로서 이제 등로는 저 다사랑아파트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다.
논과 밭 사이로 나 있는 비포장 임도를 따르니 다시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나 그 도로를 타고 우측 아파트 단지 방향으로 갈어 진행을 이어가 본다.
한동안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과수원이 보이고 곧이어 대덕국민체육센터를 지나 다사랑아파트 앞 색동유치원에서 좌측 도로를 타고 걸어 진행을 이어가 본다.
잠시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대전목상초등학교와 병설유치원 정문이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면서 부터 한국타이어 도로 앞까지는 정답이 없을 정도로 주택 골목을 이리 저리 돌고 돌아 진행을 해야 하니 가능하면 직진으로 걸어 진행하는 것이 좋을 듯 싶다.
이 산객은 직진으로 진행하려다 막힌 골목으로 들어가 한동안 헤매다 어렵게 한국타이어 앞 도로로 이어갔던 시간이다.
주택들과 상가들 그리고 연립주택들이 밀집해 있는 골목을 돌고 돌아 어렵게 걸어 보는 시간이다.
지도만 보고 방향을 잡아 걸어가니 갑자기 골목길이 끊겨 뒤돌아 나오고 또 다른 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꾸불꾸불 돌고 돌아 한참을 돌아가야 하는 도로도 있었다.
스패츠까지 차고 도심을 돌아 다니니 아주머니들은 이상한 눈초리로 힐끔힐끔 처다보고 그렇게 힘들게 그 골목길을 빠져 나오니 드디어 설악추어탕과 방일해장국 입간판들이 보이는 32번 6차선 도로가 지나는 한국타이어 앞 대덕대로에 도착을 해 긴 심호흡을 해 보는 시간이다.
그 대덕대로를 건너 한국타이어 정문 방향으로 나 있는 4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 들어가니 드디어 한국타이어 대전공장 정문을 통과하고 경남케미칼과 로얄알미늄방충망 건물을 지나 해피창과 새론케미칼 옆 좁은 골목길을 통해 어렵게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는 시간이다.
지독한 화학 냄새를 맡으며 좁은 골목길을 지나니 이동통신탑이 보이고 다시 우측으로 한국타이어 담벼락을 두고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송도목재와 가스공장을 지나 한국타이어 서문 정문에 도착을 한다.
그곳에서 한국타이어를 우측에 두고 이어지는 1차선 포장도로를 따르니 금새 금강둑에 도착을 한다.
드디어 식장지맥 마지막 도로인 금강둑방에 도착을 해 금강을 바라보며 금강이라는 커다란 입간판을 사진에 담아 본다.
2년하고도 4개월이 지나 드디어 식장지맥 산행을 마무리하는 시간이다 보니 그동안 지나 온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대전 처갓집에 내려오면 오르려고 남겨 뒀던 산줄기였는데 2년이 넘도록 들리지 못하는 그 약속도 스스로 지키지 못해 이렇게 별도의 시간으로 마무리를 하는 순간이다.
도로를 타고 계속 금강이 흐르는 쪽으로 걸어 가 갈대와 억새가 자라는 늪 지대를 지나 비포장 임도를 타고 갑천과 금강이 만나는 합수점으로 걸어 가 본다.
다시 강하게 불어 오는 바람이 얼마나 차갑던지 지금까지 걸어 진행을 하던 시간과는 달리 손끝이 아려오기 시작하고 그렇게 걸어가며 자꾸만 눈길은 합수점으로 향한다.
우측의 금강과 좌측의 갑천이 만나 저 뒤로 흘러가며 금강이라는 이름이 붙은 식장지맥 산줄기의 마지막 지점이다.
드디어 합수점에 도착을 해 강하게 불어 오는 바람 앞에 어렵게 추억 한장 남기고 잠시 대전의 물줄기인 좌측의 갑천을 생각해 본다.
갑천은 충남과 전북의 경계인 대둔산(논산시 벌곡면 수락리)에서 발원하는 벌곡천과 계룡산(암용추와 숫용추)에서 발원한 신도천을 합한 두 계천이 대전광역시 서구 용촌동 야실 마을에서 합류하여 갑천을 이루게 된다.
계속해서 북류하면서 구봉산 뒤편 흑석동과 괴곡동 일대를 구불구불한 모양으로 통과하다 가수원동부터는 완만하게 흐르기 시작하고 다시 북쪽으로 흐르면서 진잠천, 유성천, 탄동천을 합하며 드넓은 갑천들을 펼쳐 놓고 서구와 유성구, 대덕구가 맞닿는 둔산 북쪽에서 대전천과 합류한다.
이후 회덕 서쪽을 흐르는 갑천은 규모가 대전의 3대 하천 중 가장 크며 대전의 모든 물길을 갑천이란 이름으로 합하여 시의 북쪽 유성구 봉산동에서 금강에 유입하게 되는데 그 사이에 신대들(새일들)이라는 대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충적지가 형성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회덕)에 갑천은 현 서쪽 5리에 있는데 전라도 진산군 신현에서 발원하여 현 서쪽 3리에 이르러 선암천이 되고 아래로 흘러 형각진과 합류한다거나 신증동국여지승람(공주)에 성천은 유성현 동쪽 7리에 있는데 연산과 진산 두 현 경계에서 발원 합류하여 진잠현을 지나 유성현 동쪽에 이르러 성천이 되고 (중략) 이상 세 개의 하천(유포천, 성천, 대전천)이 합류하여 회덕현의 갑천이 된다고 하여 관련 기록이 처음 등장한다.
이후 동국여지지, 여지도서, 회덕읍지(18세기 중반), 공산지(1859), 대동지지, 호서읍지 등에서도 갑천이란 명칭을 계속해서 확인할 수 있는데 그 규모와 지명도 때문인지 구간별로 다른 이름이 주어져 있기까지 하였다.
가령 유성 동쪽을 지나는 갑천을 성천이라 하고 대전천을 합한 후 북류하는 회덕 부근의 물길을 갑천 또는 선암천이라 구분하고 있다.
해동지도(진잠)에는 대천, 1872년지방지도(진잠)에는 개수천이라는 낯선 이름이 확인되기도 한다.
여기서 갑천에 붙여진 갑은 십간의 첫 번째 명칭으로 제일의 또는 첫 번째라는 의미를 갖는 말이다.
이렇듯 붙여진 이름을 보더라도 갑천은 이 지역의 중심 하천으로 그 규모나 상징적 의미가 남다르다 하겠다.
조선 후기 이중환의 택리지에도 들판에 자리 잡은 마을 중 당시 공주목에 속한 갑천이 제일의 살 만한 곳으로 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대전 처갓집을 들리면 늘 만나는 갑천의 지천들이었는데 이렇게 식장지맥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걸어 그 합수점에 도착하고 보니 또 다른 감흥이 이 산객을 사로 잡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그렇게 고운 추억을 남기고 다시 걸어갔던 비포장 임도를 타고 한국타이어 공장쪽으로 걸어 나가며 앞을 보니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며 늘 봤던 신탄진의 거대한 고층 아파트들이 바로 코 앞으로 다가와 있고 그 임도 좌측으로는 도도히 흐르는 금강이 아름답게 내려다 보인다.
금강은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면 용계리 일대의 수분치에서 발원하여 충청남도의 연기군 일대에서 미호천을 합류하고 남서류하면서 공주시와 부여군을 지나 서천군 일대에서 황해로 유입하는 하천이다.
충청남도의 젖줄 역할을 하며 하류에서는 전라북도와 경계를 이루는데 다른 큰 하천에 비해 발원지의 고도가 높지 않으나 유로가 길어 우리나라 하천 중 경사가 가장 완만하다.
또한, 하상계수(최대 유량과 최소 유량과의 비율)가 낮아 홍수의 가능성이 적어 금강 유역은 규모가 큰 평야를 이룬다.
이들 평야는 공주, 부여, 강경 등의 오래된 도시 뿐만 아니라 대전 등 일제 강점기 이후 발달한 도시의 입지 기반을 제공한다.
금강은 오랫동안 충청도를 대표하는 지명으로 사용되어 왔는데 물길이 굽이치며 흐르는 것이 비단결 같다는 뜻으로 지명이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금강 외에 호강으로도 불리나 발원지부터 종점까지 금강 지명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고려말 이후부터 이다.
삼국사기의 남쪽은 웅천을 경계로 삼고라는 기사에서 웅천은 당시의 금강을 지칭하는 지명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지리지의 사비하의 북쪽 포구에서 연회를 베풀고 놀았다라는 기록에서 볼 때 부여 일대의 금강은 사비하로 불렸음을 보여준다.
이후 백강, 백촌강의 지명 등은 금강의 일부를 지칭하는 명칭으로 사용되었으며 고려 초 웅진이 공주라는 명칭을 갖게 되면서 공주강, 공주하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으나 아직 금강 명칭은 사용되지 않고 있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금강 지명을 사용하나 아직 유로 전체의 지명은 아니었고 공주 일대의 유로만 해당되었다.
조선 후기 자료인 연려실기술에서 웅천 대신 금강을 발원지로부터 서천까지 서술하여 지명이 부분칭으로부터 전칭으로 변하고 있음을 보인다.
성해응이 편찬한 연경제전집에서도 장수군 수분치로부터 서천포에 이르는 유로를 상세하게 서술함으로써 전칭으로서의 금강 지명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후 동국문헌비고에서도 금강 지명은 전칭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으며 조선 전기까지 전칭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발원지에서 최하류까지를 하나로 인식할 필요가 적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조선 후기 들어 산줄기 인식처럼 금강을 한 줄기로 이해하면서 전칭으로 사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어릴적부터 늘 금강의 지류와 함께 자라고 커 왔던 산객이기에 금강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남다를 수밖에 없다.
합수점을 다녀 와 다시 한국타이어 서문과 정문을 지나 한국타니어 버스 정류장에서 대전역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주민 한분이 한정거장 더 걸어 가 2번 직행버스를 타라고 알려 줘 천천히 그 17번 6차선 도로를 타고 걸어 가 목상동 주민센터 버스정류장에서 잠시 기다렸다 드디어 2번 버스에 탑승하여 대전역으로 이동을 한다.
얼었던 몸을 녹이며 버스 의자에 앉아 있으니 졸음이 솟아지고 그렇게 졸다 깨다를 반복하니 드디어 오후 4시를 넘겨 대전역 버스정류장에 도착을 해 대전역으로 이동을 한다.
대전역에 도착을 해 KTX 기차표를 확인하니 오후 4시 16분 서울역 발 KTX 입석표가 있어 그 표를 저렴하게 구매한 후 곧바로 탑승하여 귀경을 하니 생각보다 일찍 집으로 돌아 와 가족들과 함께 저녁을 먹으며 식장지맥 산행을 완전히 마무리 해 본다.
이제 진행하다 중단된 지맥 산행 몇군데만 더 마무리하고 원래 계획했던 남도의 긴 산줄기를 올라 볼 수 있기를 희망해 보는 시간이다.
하지만 일이 바빠지기 시작하면 이 산줄기 종주 산행도 가능이나 할지 조금은 걱정도 되지만 그것은 닥치면 다시 생각을 해 보고 바빠지기 전까지는 가능하면 많은 지맥 산행에 오를 수 있기도 기대해 보는 시간이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첫댓글 갑천의 금강 합수점까지이어지는 식장지맥 완주를 축하드립니다.
거침없는 발길이 올 겨울의 추위를 녹이는듯 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수헌님
남미와 미국은 잘 다녀오셨나 봅니다
산줄기 종주 산행에 속도가 붙으니 정신없이 오르고 있네요
일주일에 하나의 산줄기 종주 산행을 마무리하다 보니 그 재미에 빠진 듯 보이기도 하구요
늘 성원 주심에 감사 드리며 수헌 운영자님도 늘 건강하게 즐거운 산행 이어 가시기 바람니다
세번에 걸친 식장지맥을 마무리하시느라 수고많으셨습니다.
갑천 합수점에 이르신 감회가 느껴집니다.
보만식계의 식장산 줄기는 대전을 아우르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 다녀가고픈 곳이기도 합니다.
덕분에 즐감합니다.^^
대전은 제2의 고행 같은 곳이라 친숙하고 친구들도 많지만 만나면 이슬이와 친구를 하다보니 산줄기 종주 산행을 하면서는 자꾸만 홀로 지내게 되네요
덕분에 이른 시간에 무탈하게 완주 후 일찍 귀경도 할 수 있었고요
등로는 좋았는데 굴곡이 심해ㅔ 약간은 어려움도 느꼈던 식장지맥이었네요
좋은 계절에 한번 다녀 오시기 바람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