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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보지맥 1구간
2014. 11. 22(토)
산길 : 삼승령~덕인리
사람 : 조진대 무심이 이희중 조은산
거리 : 16.7km
(접근 : 조금리 신기마을~삼승령 7.4km)
△748.5~4.5~잔두목이~2.5~원수목이~2.3~칠보산~7.4~덕인고개 / 16.7km
Cartographic Length = 28.9km Total Time: 10:40
전날(금요일) 조고문님이 일찍 내려오셔서 임도 답사를 마쳤다. 영양읍 기산리 저시마을에서 아랫삼승령으로 가는 임도가 시멘포장 공사중이라 접근이 안된단다. 저시마을부터 걸어서 올라간다해도 아랫삼승령까지 1.2km 정도로 분기봉 접근에 최단거리가 되지마는, 차량회수를 생각하면 도무지 계산이 안나온다. 응봉산 아래 덕인리에서 마칠 경우 차량회수 문제를 아이나비한테 물어봤더니 53.2km에 1시간 47분... 왕복하면 100km에 3시간 반이라.
전속기사가 없으니 이 방법은 고려대상이 될 수가 없다. 들머리와 날머리 사이에 낙동정맥이 가로 놓여있어 교통은 구주령 혹은 창수령을 넘어 돌고 돌아야 된다. 그렇다고 온정에서 택시를 타고 영양 저시마을까지 가는것도 우리 형편에는 가당찮은 일이라 삼승령 서쪽 조금리에서 접근하기로 했다. 물론 원수곡에서 삼승령 바로아래까지 임도가 나 있지만 신기마을에서 1.3km 지점에 굵직한 차단기가 길을 막고 있다. 나머지는 오로지 두 발로 밟을 수밖에 없는 상황.
결과적으로 출발점까지 approach에만 7.4km를 2시간 8분 걸렸다. 전체를 이틀동안 조지려면 첫 구간을 응봉산 언저리까지는 끊어야 가능하다. 응봉산을 넘어 볕내마을까지 간다면 다음날이 많이 수월하겠지만 들머리 접근이 이렇게 멀어서는 볕내마을까지 갈 수가 없어, 응봉산 직전 덕인마을로 잡았다.
다해놓고 보니, 첫날 30km에 10시간이 넘었고 다음날도 18km 넘게 뛰었으니 이틀간 거의 50km를 진행했네. 근래 드문 강행군으로 고생 직싸게 했다. 들머리 삼승령 접근도 그랬지만 원수목이에서 칠보산 오름은 고도 500을 올리는 초울트라빡쎈 비탈이라, 넷 모두 칠보산 정상에서 쌧바닥을 한 발이나 뽑은 채 숨을 거두고 말았으니... 그리하야 칠보산 정상에는 다리 짧은 산꾼 무덤 네 개가 나란히 생겼다는 카슴아푼 전설이 생길뻔 했다.
전속기사인 사모님이 예식장 참석차(그것도 고문님 대타) 빠졌으니, 할 일없는 우리집 마눌님 데불고 갔어도 되었지만 운전을 할 줄 알아야재. 집 밖에서는 별로 쓸 일(!)이 없다. 그래서 안사람이 되었는가도 모르겠다만, 누구든 그렇지만 앞에 있을 때는 고마운 줄도 모르다가 없고 아쉬울 때 그 고마움을 제대로 알게된다. 요 앞의 몇 개 지맥 하면서 사모님이 그렇게 수고를 해 주셨는데도 정작 그 고마움을 오늘에사 물팍 시리게 느끼고 있으니... 언제 시근이 들라카노?
삼승령 임도탐구를 위해 척후병으로 나선 고문님으로부터 실시간 상황을 하달받고 목적지를 온정면 덕인1리 마을회관으로 찍었다. 퇴근하고 부리나케 챙겨 달려나가니 희중아우 먼저와 기다린다. 도시고속도로 진입부터 막혀 대연동으로 돌아 올리고, 구서 톨게이트를 23시쯤 통과했는데 덕인리 고개를 넘으니 새벽 두시가 넘었고 원덕인마을 앞 거름무더기 옆에 고문님과 무심이님 차는 벌써 코를 골고 있다.
06:30 덕인1리
07:05 원수곡 임도
08:54 칠보지맥 분기봉 (△748.5m)
09:43 ×562.5
11:05 잔두목이
11:42 △566.9m
12:40 69번도로 임도삼거리
13:30 원수목이
14:13 ×636.3m
14:29 ×673m
14:50 칠보산
15:26 ×710.4
16:30 △358.5m
17:15 임도
17:45 덕인리
18:30 월송정
덕인1리
마루금 덕인고개 서편 아랫마을 원덕인이다. 차 두 대 그대로 두고 고문님 차로 이동을 하는데, 오늘은 당국(!)의 협조가 전혀없어 중간 보급이 없으므로 모두 배낭에 담고 가야된다. 점심도시락은 물론 물 두통에 간식을 넣으니 최근 몇 번의 산행에 비해 배낭이 많이 무겁다.
평해에서 들어오는 88번 도로를 타고 백암온천단지 온정리 입구에서 좌회전하면 지도에 푸른색으로 표시된 69번 아스팔트인데 이 도로는 원수목이를 넘어 가지만 원수곡마을에서 포장이 끊긴다. 울진군 온정면 조금리. 원수목이 삼거리에서 우회전하면 시멘트 길로 가다가 이 포장길도 신기마을까지이고 지도에는 삼승령을 돌아 영양으로 넘어가는 임도로 표시되어 있다. ‘갈데까지 가보자’ 했지만 십리는 고사하고 1.3km에서 막힌다.
길은 멀쩡하나 차단기가 막는다
임도 차단기 (240m)
신기마을에서 1.4km 지점. 차를 돌릴 여유도 충분치 않아 옆으로 바짝 붙여놓고 간다. 산림청에서 걸어놓은 경고문에는 산불방지기간동안 입산을 통제한다 했는데, 그 기간이 아니면 차단기를 열어놓는다는 소린지는 모르겠다. 얄팍한 차단기면 들이밀까 고민도 해보겠지만 81미리 박격포 포신같은 굵은 파이프에 수류탄 보다 큰 자물통이 달려있다. “이 놈들이 열쇠를 갖고 다닐까, 근처에 숨겨 놓을까...” 잔머리 굴려봐야 답이 나오나.
산행 중에, 더구나 지친 오후에 만난 임도라면 끌어안고 싶을 만큼 반갑기 그지없지만 아직 시작도 하기 전에 임도를, 그것도 한 시간이 넘도록 끝이 보이질 않으니 환장할 노릇 아닌가.
차단기에서 30분 거리에 임도는 왼쪽으로 크게 휘돌아가므로, 정면 계곡으로 치고 들어갈까 싶기도 했다만 여론은 ‘계속 임도’가 대세다. 임도를 따라 깊게 V자 형태로 들어갔다 돌아 나오니 정면에 삼승령 봉우리가 보인다. 왼쪽은 수직으로 깎인 모습이라 저기를 어떻게 내려오나 싶다.
분기봉 / 우측에서 접근하고, 점선따라 내려왔다
임도가 왼쪽 칠보지맥 능선에 가까이 접근할 때, 차라리 칠보 능선으로 올라 분기점을 찍고 내려오자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저렇게 수직으로 깎인 절벽을 쳐다보니, 가당찮다는 생각이 들어 포기를 했었는데 역시나 위에서 내려오면서 봐도 거꾸로 올라오기엔 거의 불가한 비탈이었다.
삼승령 임도따라 트레일(탐방길)을 냈다
임도 버리고 왼쪽 능선으로 (538m)
50분간 임도를 더 타고, 골과 능선을 따라 갈짓자로 들어갔다 나왔다 하면서 윗삼승령쪽으로 올라가는 임도를 버리기로 조율했다. 차단기에서 6km, 1시간20분 걸린 시간이다. 임도상태는 양호해 차단기만 없었더라면 내 차로도 충분히 올라올 만한 길이다. 낙동정맥에서 동으로 흘러내리는 지능선 한 가닥을 택해 기어오른다. 길은 없지만 그래도 양호하게 15분간 고도 170정도를 올리니 비로소 낙동정맥이다.
낙동정맥 (×700.8m)
분기봉에서 700m 북쪽이라, 왼쪽으로 꺾어 내려간다. 먼저 오른 희중아우는 퍼질러 앉았다만 저 봉우리 찍으러 고생한 오기가 발동하여 쉬지 않고 내쳐간다. 이 길을 언제 지났던지 기억이 날 리가 있나. 정면 절개지를 생각하며 왼쪽으로 내려갈만 한데를 살펴보나 만만한데는 없다.
칠보지맥 분기봉 (748.5m △병곡301)
영양군 영양읍, 울진군 온정면, 영덕군 창수면이 갈라지는 삼군봉이 된다. 지형도에 三僧嶺이라 표기된 △748.5m 이고, 어떤 지도에는 굴바위봉, 굴아우봉이라 표기한 것도 있더라만 근거를 모르겠다. 현재는 이 봉우리 아래 위 고갯길을 윗삼승령, 아랫삼승령으로 부르고 있는데, 대동여지도의 길 표시인 점선을 보면 아랫삼승령으로 부르는 고개가 원래의 삼승령이 아닐까 싶다.
1917 조선지형도에는 (평해도엽) 지명표기없이 ‘747.3’이다.
대동여지도에는 三乘岺. 해동지도에는 三升嶺
만기요람(萬機要覽)에는 三乘嶺, 목은집(牧隱集)에는 三升嶺
乘(탈 승), 升(되 승)이 서로 사용되었고, 광여도에는 ‘三僧山’으로 僧(중 승)자가 기록되었다. 요즘에야 지명위원회의 의결이라는 절차가 있기라도 하지만 예전에는 지도든 문서든 제작자의 주관이나 식견에 따라 작성이 되고, 한참의 세월이 흐른 후에 그 의도나 근거를 찾아내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지명유래라는 것도 현대에 들어와서 주변 민간에 흩어져 있는 것들을 수집 정리한 것이다 보니, 흔한말로 ‘카더라’ 그 이상의 신뢰성을 기대하는 것도 무리가 있다.
삼승령의 유래를 언제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르겠다만, 僧을 근거로 중 셋을 만들고, 또 乘을 근거로 세가지 탈 것을 만들기도 하고, 升을 근거로 쌀이나 콩 석 되를 주제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다수결로 정하자.
[탐구영역 한국지리] 다음 중에서 하나를 고르시오.
1. 三僧嶺 중 세 명이 도를 닦고 해탈해 바위로 변했다... (광여도)
2. 三乘嶺 고개가 높아 가마를 세 번 바꿔 타야 넘을 수 있다...(대동여지도, 만기요람)
3. 三升嶺 도둑이 많아 콩 석 되는 준비해야 넘을 수 있는 고개다...(해동지도, 목은집)
어느 것이든 그럴싸하게 지어내고, 또는 목소리 크게 내면 이기는 것이다. 우리 산꾼들은 또 이것을 아래 위로 두 등분 나누어 윗삼승령, 아랫삼승령으로 따로 이름을 붙였으니...
한국지명유래집 경상편 지명 / 삼승령(三僧嶺)
경상북도 영양군의 영양읍 기산리에 있는 고개이다. 주변의 산 정상부를 연결하는 안부에 해당하나, 사람들이 왕래하는 통로로서의 역할은 크지 않았던 것 같다. 『해동지도』(영해)에 '삼승령(三升嶺)'으로, 『광여도』(영해)에 '삼승산(三僧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1872년지방지도』(영양)에 기아리(其兒里, 지금의 기산동에 있는 자연마을) 우측에 '희리령(喜里嶺)'이 표시되어 있는데, 삼승령을 나타낸 것이다. 한편 『1872년지방지도』(영해)에는 영해 창수면에서 영양으로 연결하는 통로가 오현(烏峴, 지금의 옷재)을 거쳐 가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고, 삼승령은 생략되어 있다.
만기요람(萬機要覽) > 군정편 4 > 관방(關防) 【평해(平海)】
읍성 석축. 둘레 2,325척ㆍ월송진성(月松鎭城) 둘레 628척.
영로 : 주령(珠嶺), 삼승령(三乘嶺) 영양(英陽) 통로. 대현(大峴)ㆍ구리현(仇里峴). 모두 서쪽 통로.
목은집(牧隱集)
嶺對三升嶺 (이 고개가 삼승령과 마주했으니)
벽진이공 둘이 아침밥은 아메리칸 스타일이다. 집에서 싸온 샌드위치를 희중아우 하나, 나 하나. 샌드위치 내용물이 너무 많아 다 못 먹고 남겼다. 토마토에 햄에 계란후라이까지, 마누라가 내 배 터져 죽으라고 이리도 많이 포개 넣었나. 분기봉을 찍고 비로소 산행을 시작하는 시점이 되는데 현재시각 벌써 09시다.
절벽같은 비탈로 하강
지맥 출발
방향은 동해바다쪽인데 발아래는 바닥이 보이지 않는 절벽이라. 고문님이 우측 절벽 몇군데를 내려다보다가 돌아선다. 아무래도 왼편이 나아보인다 하니 모두들 한순간에 왼쪽으로 우루루 몰려 좌파가 되니 벼랑 위에서는 좌파 우파가 따로없다. 올라왔던 북쪽으로 30m쯤 내려가 우측 비탈로 거의 미끄러지듯이 내려가다가 바위 협곡을 아슬아슬 하강하고 우측 절벽 아래로 붙으니 삼승바위 바로 아래쪽이고 능선에 희미한 길이 나타난다.
삼승바위
영덕군과 울진군 경계선을 따라 내려가게 되는데, 삼승바위는 여기서는 쳐다봐야 큰 벼랑으로 보일뿐 어떤 형체도 나타나질 않고 나무도 아직은 낙엽을 다 털어내지 못해 조망도 전혀 안 나온다.
조심조심 삼승바위 아래까지 내려서면 이 후는 잔두목이까지 약한 오르내림은 있어도 대체로 순탄한 내림길이다. 길 흔적도 그런대로 뚜렷하나 숲이 울창해 보이는건 없다. 멋진 자태를 뽐내는 금강송도 보이지만 참나무가 대세다. 오래된 소나무에는 송진 채취흔적도 남아있다.
×531.4봉을 지나 내려가다 편편한 능선에 앉아 첫 휴식이다. 무심이님 배낭에서 야콘이 나온다.
20분 가량 더 내려가다 희미하게 능선이 두 갈래로 갈라진다. 직진은 우리 차 대놓은 조금리 신기마을로 내려가겠고, 지맥은 우측인데 왼편 바로 아래로 골짜기가 형성되면서 바닥이 보인다.
낙엽송
잔두목이 (390m)
이름은 특이하다만 길 흔적마저 덮혀버려 사람의 왕래가 끊긴지 오래된 고개다. 정면 우측으로 나있는 수렛길따라 올라가다가 능선에서 쉬었다 간다. 이번에는 고문님의 도시락에서 이쁘게 깎은 감이 나온다.
깎은 감 구멍을 통해
낙동정맥... 삼승령~ 백암산
×575.1봉 오름이 시작되는 비탈인데 왼편으로 피해 벌목지를 따라 올라가니 낙동정맥 능선이 조망된다.
566.9m (△병곡307)
길 흔적을 따라 오르다보니 우측으로 비켜가면서 삼각점봉과의 중간 안부를 향해 오른다. 그렇지 않아도 삼각점봉을 염두에 뒀는데 오히려 잘되었다 싶어 안부까지 오르고 우측에 비켜있는 삼각점봉을 찍고 돌아왔다. 조망없는 봉에 삼각점과 준희님 팻말이 걸려있고, 삼각점에 새겨진 번호는 302재설이나 지리원 고시는 병곡307이다.
×575.1m
삼각점봉에 다녀오는 동안 고문님과 무심이님은 먼저 가다가 575.1봉에서 쉬고 계신다. 넘어 내려가는 비탈에는 벌목잔해가 넓게 어지러이 덮혀있어, 밟을 만한데를 골라 내려가다보니 우측으로 자꾸 벌어진다. 나는 왼쪽으로 벌목 덤불을 타넘으며 마루금을 찾았으나 고문님 일행은 귀찮다고 그대로 내려간다. 임도로 내려가겠으니 원수목이에서 만나자는 고함소리가 들린다. 졸지에 이산가족 되는구나...
원수목이 직전의 544.3봉
벌목가지와 일전을 치루면서 안부에 떨어지고 보니 앞봉(×544.3)이 높아도 너무 높아 보인다. 150 정도의 고도차로 발딱 솟은 봉우리와 그 뒤편에 더 높이 솟은 칠보산을 보니 만정이 떨어지는거라. 예라이 나도 임도로 가자... 우측 골을 따라 내려가는 길도 보인다.
원수목이 직전의 544.3봉, 518.5봉을 빼먹고 임도로 내려가니 고문님은 길가 바위벽에서 떨어지는 물을 받고 있다. 나도 바위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로 빈 물병을 채웠다. 이 임도는 아랫삼승령에서 독경산(564.1)을 돌아 원수목이로 연결이 된다.
석간수 보충
69번도로 임도삼거리
지도상 69번도로와 만나는 삼거리에는 차단기가 막혀있어 차는 올라올 수가 없겠다. 임도 삼거리에는 우측으로는 [삼계], 왼편은 [조금], 우리가 나온쪽으로는 [수리] 이정표가 있다. 원수목이를 넘어 울진 온정으로 가는 69번 도로번호를 가진 임도지만 산중 임도와 다름없이 비포장이다.
임도 옆 계곡에는 물이 시원하게 흐르고 있어 여름철이라면 알탕도 하겠는데 괜히 바위벽에 졸졸 흐르는 물을 받느라 애썼네.
원수목이 정자
원수목이 고갯마루 150m 아래, 마루판을 깔고 정자를 지었다. 그 정자에 올라 점심상을 폈다. 낙동정맥 트레일 영덕구간이라는 안내판이 있는데 울진쪽에도 이름을 붙인 4개 구간의 트레일이 있더니 영덕쪽에도 있네. 산림청과 지자체 공동으로 낙동정맥 일대의 임도를 이용한 트레일코스를 정해놨다.
원수목
원수목이 (340m)
밥을 먹는 동안 1톤 트럭 한 대가 올라가더니 도로 내려온다. 어제 고문님이 넘어봐서 아는데, 원수목이에서 남쪽 창수면은 노면이 양호하나 북쪽은 상태가 불량해 승용차로 조금리쪽은 조금 무리란다. 칠보산 들머리는 고개넘어 북쪽에 있는 임도를 따라 올라간다. 임도는 얼마안가 막히고 칠보산(811m)까지 500을 올리는 어마어마한 비탈이다.
북쪽 조금리에 원수곡이 보인다만, 조선지형도에는 元師項(원사항)이다. 師(스승사)를 帥(장수 수)로 읽었나. 원사고개가 원수고개로 바뀌어 버렸다. 어쨌든 -김일성이 같은- 원수(怨讐)와는 상관이 없는 말이다. 이 고개에 와서 원수 갚을 생각일랑 말자.
수렛길 끝까지 따라 들어가니 마루금 왼편 능선이다만 마루금보다 어떻게하면 조금이라도 수월케 오를까 하는 생각뿐이다. 10여분 비탈을 오르니 돌을 두른 묘가 있고 오름은 계속된다. 오를수록 비탈은 더 급해지고 숨도 거칠어진다. 40여분 걸려 첫 봉인 ×636.3m봉에 퍼질러 앉는다. 아직도 200 남았네.
숨을 겨우 진정 시킨다음 한 차례 더 밟아대니 ×673m봉이고, 이후는 경사없이 길게 이어진다. 칠보산은 아직 멀어 보이고 그 우측으로 등운산도 윤곽이 잡힌다. 칠보지맥에서는 원수목이에서 칠보산 오름이 그 절정이면서 소위 마루가즘(!)을 맛볼 수있는 구간이랄까. 흔한 말로 얼반 죽는코스이고, 또 다른 말로는 홍콩갔다온 바로 그 느낌이다.
멋진 소나무에 리본이 주렁주렁... 사람도 달랑달랑...
칠보산 811.0m (△병곡428)
정상에 제법 멋스런 소나무 한 그루 있는데 그 가지에 무당집의 그것처럼 주렁주렁 달린 리본들이 흉측하기 그지없네. 그 옆에 사람까지 매달렸으니, 저 소나무 참 피곤도 하겠다
영덕군 창수면과 병곡면, 울진군 온정면이 갈라지는 삼면봉이 되겠다. 동쪽 멀리로 고래불해수욕장이 시야에 들어온다. 남쪽으로는 뚜렷한 등산로가 있는데, 칠보산자연휴양림에서 올라 온 길이다. 휴양림에서 유금치로 올라오고, 칠보산과 등운산으로 등산로가 열려있다.
단체사진
옛지도에는 지명표기 없이 810.2m
일곱가지 보물이 있어 칠보산이라 하나 그 일곱가지는 웬만한 산에는 거의 다 있는거라 보물이라 할것도 없고, 괴산에도 칠보산이 있지만 오리지날 칠보산은 함경북도 명천군에 있는 칠보산(1,103m)으로 유네스코 세계생물권보전지역에 등록된 산이다. 함경북도의 금강산이라 부르는 칠보산 송이는 유명해, 예전 북한 김정일이 김대중대통령과 노무현대통령에게 선물로 보내온 적이 있다.
대동여지도에는 칠보산은 없고 騰雲山(등운산)이 표기되어 있는데, 현재 지형도처럼 칠보산과 등운산이 따로 있는게 아니라 예전에는 현재의 칠보산이 등운산이었다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세종실록지리지에도 영해도호부편에 騰雲山이 기재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경상도(慶尙道) /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
등운산(騰雲山) 부의 북쪽 10리에 있다. 일월산(日月山) 영양현(英陽縣)의 북쪽, 강원도 울진현(蔚珍縣)의 경계에 있다.
세종 지리지 / 경상도 / 안동 대도호부 / 영해 도호부
등운산(登雲山)【부(府) 북쪽에 있다.】 사방 경계는 동쪽으로 바다에 이르기 10리, 서쪽으로 진보(眞寶)에 이르기 65리, 남쪽으로 영덕(盈德)에 이르기 18리, 북쪽으로 강원도 평해(平海)에 이르기 17리이다.
칠보지맥 칠보산에 올라서서 새로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현재 지형도에서 칠보산 아래쪽 창수면과 병곡면계를 따라 등운산(騰雲山)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태백산맥 표기가 남아있다. 낙동정맥도 아니고 칠보지맥도 아닌, 이보다 더 작은 능선이 태백산맥이라? 고토분지로가 태백산맥을 만든게 1903년 (조선산악론 논문발표)이고, 조선지형도는 그 후 10년이 지나서 발행되었는데도 몇개 산맥표기가 있지만 태백산맥은 없다.
산맥이라는 용어가 지도에 표기된게 언제부턴가?
우리가 현재 갖고 있고 보고 있는 옛지도, 즉 일제가 만든 지도는 1915~1918년에 제작된 지도이고 그 후에 제작된 지도는 없다
-일제가 그 후에 추가로 제작한게 있는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확보한 지도는 없다
종로도서관 홈페이지 http://jnliboldbook.sen.go.kr/web.do
태백산맥은 있다 ?
영진출판사 지도
그런데 광복 이후 우리나라 정부수립 후 대한민국 정부에서 만든 지도에 태백산맥이라는 표기가 등장을 한다. 우리 정부에서 최초로 지도를 발간한 때가 언제인지 모르겠다. 1958년~1960년 정도가 아닐까?
이거를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태백산맥은 없다”로 시작한 산맥 퇴출운동에 모든 산꾼들이 한 마음으로 뭉친 그 저변에는 산맥을 만든 원흉을 일본 -고토분지로- 으로 보고 있다. 물론, 산맥을 만든 놈이 일본놈이 아니라는 얘기는 아니다. 태백산맥, 소백산맥, 노령산맥 등 교과서에 등재된 모든 산맥은 일본의 잔재다.
‘산맥’은 보통명사로써 이미 고문헌에도 나오듯이 그 단어 자체는 배격의 대상이 아니고, 요는 우리 고유의 산줄기 인식체계인 백두대간 대신 태백산맥이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이라. 그럼에도 오늘 현재, 2013년에 새로 발행된 대한민국 지형도에 버젓이 ‘태백산맥’이 등장을 하니 통탄할 일 아닌가. 영진지도 역시 마찬가지이고, 동아지도에는 표기가 없다.
정작 태백산맥을 만들어낸 일본보다도, 아무 개념없이 이를 오늘날까지 충실히 답습을 하고 뿐만아니라 한술 더 떠, 설악산맥 백화산맥 지리산맥까지 더 세밀히 지도에 표시한 국토지리정보원은 어느 나라 지리정보원인지, 혹 고토분지로의 후손들이 아닌지 의심스런 생각마저 든다.
현재 지형도에 산맥 표기가 남아있는데를 보면 (5만도엽)
38814설악 : 황철봉 위, 한계령 아래 - 설악산맥, 태백산맥
37816태백 : 태백산 아래 백두대간이 아닌 문수봉 방향으로 태백산맥
36803영주 : 마당재 국망봉 사이에 소백산맥
36802단양 : 죽령 위, 아래 소백산맥
36708속리 : 장성봉에서 서쪽 군자산으로 소백산맥
36712관기 : 백화산(한성봉) 아래 백화산맥
35711운봉 : 덕평봉 옆 지이산맥
36906병곡 : 칠보산과 등운산 사이에 태백산맥
35709순창 : 임실군과 순창군계 능선에 노령산맥
일제가 만든 조선지형도에 표기된 산맥 - '태백산맥' 표기는 없다
창암점, 설악산 : 설악산맥
내성 (국망봉 위) : 소백산맥
단양 (죽령 위) : 소백산맥
영동 (포성봉) : 백화산맥
화개장 (벽소령) : 지리산맥
고래불해수욕장
×710.4봉에서는 우측으로 꺾이고, 10분 후 약 600봉에도 우측이다. 한번씩 응봉산, 그 우측으로 후포항까지 조망이 훤히 열리는 지점도 있다. 최근에 작업을 한듯한 소나무 벌목지대를 지나 희미한 길을 따르다보니 ×560.8봉은 우측으로 휘돌아 올랐다.
응봉산
벽암처사 김녕김공
대리석으로 둘레를 두른 묘인데 꼬리부분을 뒤로 길게 뽑은게 특이하다. 길은 더 넓어져 거의 임도 수준이다가 오름길은 우측으로 비스듬히 올라간다. 조은 길은 삼각점봉과의 사이 안부를 넘어가고, 삼각점 보러 우측으로 갔다
마루금에서 우측으로 벗어난 삼각점
358.5m (△병곡424)
마루금에서 비켜난 삼각점인데 번호 식별이 어렵다. 삼각점 찍고 돌아오니 안부에 앉아 기다리고들 있다가 고문님이 초코파이 하나 나눠준다. 북으로 올라가면서 영덕군계를 벗어나 온전히 울진군으로 들어간다
응봉산
380봉을 넘으니 아직도 응봉산은 멀어 보이는데 하늘은 어둑어둑하니 마음이 급해져 발 길은 더 바빠진다.
×263.7m에는 문패없는 묘가 있고 3분 더 내려가니 만량처사 평해황공인데 카메라 후레쉬가 자동으로 터진다. 평해황공을 지나 잠시 후 안부에서 마루금은 왼쪽 비탈이나 뚜렷한 묫길은 우측 사면으로 곧장 간다. 어두워지는 마당에 덤불을 헤칠까. 그대로 길따라 가니 평해황공이 연이어 나오고 △275.4봉으로 올랐던 마루금이 내려온다.
한송마을 임도
임도
한송마을 농로에 내려서고 마루금은 우측 산길로 들어가 ×263.5m를 덕인고개로 이어지나 우리는 그대로 농로를 따라 덕인리 마을로 내려간다. 13분 후 대곡마을에서 나오는 아스팔트 도로에 합류하고 20분을 더 걸어 원덕인 마을이다.
덕인1리
원덕인
울진군 온정면 덕인1리. 아침에 차 대놓은 곳에 왔다. 이미 주위는 어두워 가로등이 켜져있고 지나가는 차는 해트라이트를 비춘다. 고문님과 무심이님은 차 회수하러 가시고, 우리는 잠자리 보러 간다.
평해읍을 거쳐 월송정으로 가면서, 혹시나 평해읍에 목욕탕이 있나 물어봤더니, 온정리로 가면되지 뭘 그런걸 물어보냐 한다. 온정면 백암온천을 말한다. 그걸 누가 모르나, 이 근처에 있는 목욕탕 말이지. 결국 평해읍에 목욕탕은 없다는 얘기라.
월송정 주차장
월송정
평해읍 월송리에 있는 월송정 주차장으로 들어가니 그야말로 불꺼진 항구, 적막강산이라 우리같은 사람들 하루 유하기엔 거저 그만이다. 화장실에 따신물이 안 나오는게 흠이랄까. 씻고 텐트 펴놓고 있으니 고문님 차를 갖고 오신다.
무심표 훈제오리고기를 불판 가득 썰어놓고 근래 드문 강행군의 피로를 푼다. 지난주 크게 접지른 발목에 은근히 신경이 쓰여, 혹시라도 불편하면 도중에 산행을 접을 수도 있겠다는 계산이었는데, 별탈없이 30km를 완주했고, 내일의 18km 거리도 크게 염려되지는 않는다. 술꾼들의 썰이 너무 길어져 조용히 혼자 빠져나와 몸을 눕혔다.
무심표 훈제오리
첫댓글 두해 반 전의 지난 추억을 되돌려 보아도 새로운 느낌입니다.
그래서 추억은 항상 그리워지는 것 같습니다.
무심표 훈제오리 만 보아도 구미가 당기네요.^^
함께 하신 분들과 오고간 멋진 산행담은 늘상 정감스럽기만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