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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의 외교는 다음과 같이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스리랑카 개황, 2010.5, 외교부)
1. 스리랑카의 대외정책
스리랑카의 외교정책 기조는 비동맹 중립정책이며, 집권당의 성향에 따라 약간씩 다르다. 통일국민당(UNP)1) 정권은 전통적으로 친서방 경향을 나타내며, 인민연합(PA)2) 정권은 비동맹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스리랑카는 현실적으로 미국, 일본, 중국, 유럽연합(EU, European Union)의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편향적인 정책을 취하지 않고 「실리적인 외교노선」을 추구하고 있다.
2005년 11월 19일 출범하여 2010년 4월 제2기 집권을 맞이한 마힌다 락자팍사(Mahinda Rajapaksa) 정부는 비동맹 원칙과 개발도상국의 이익을 위한 외교노선을 견지하고, 전 세계의 국가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할 것이며 아시아 지역과 역내 국가와의 양자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한다는 외교정책 방향을 발표했다. 또한 오랜 외교적 전통에 입각하여 국제사회에서 컨센서스 빌더(consensus builder: 합의를 이끌어내는 사람)의 역할을 지속적으로 수행하겠다고 밝혔다.
스리랑카는 제5차 비동맹 정상회의를 콜롬보(Colombo)에 유치하였으며, 1976년 8월부터 1979년 9월까지 비동맹 의장국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것은 국제 정치 무대에서 스리랑카의 지위가 향상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스리랑카는 각종 비동맹 회의에서 인도네시아와 유고슬로비아를 비롯한 온건 노선의 국가들과 협력하였다. 그리고 쿠바를 비롯한 극단적인 친소련파 비동맹 국가들을 견제하면서 비동맹운동 본연의 원칙을 고수하였다. 스리랑카는 비동맹 중립국으로서 국제 분쟁의 중재자 역할을 증대하였다. 그래서 국제연합(UN, United Nations)이 주관하는 군축회의, 해양법 회의, 인도양 평화수역화를 위한 국제회의 조정자로서 강대국간의 이해 관계를 조정하였다.
그러나 미국과 러시아간의 냉전 구도가 종식된 이후 비동맹 회의는 국제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면서 국제 사회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이에 따라 마힌다 라자팍사(Mahinda Rajapaksa) 정부는 친서방 실리 외교를 추구하면서 비동맹국가인 친(親)이란, 베트남, 파키스탄, 미얀마, 리비아를 국빈 방문함으로써 친비동맹국가외교를 추구하였다. 2010년 4월 라자팍사 대통령 집권 2기 정부는 1956년부터 유지한 비동맹외교노선을 재천명하였다. 또한 판짜실라(Panchsheela) 이념에 입각하여 외국과의 평화공존, 영토와 주권의 존중, 불가침, 내정불간섭, 평등과 이익의 상호인정을 강조하였다.
2. 스리랑카와 주요 국가와의 관계
1) 스리랑카와 인도의 외교관계
스리랑카는 인도와 역사적·지리적·문화적으로 가장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 그러면서도 해양경계확정, 타밀문제, 영국 통치 기간에 유입된 인도인 처리 문제 때문에 강대국인 인도와의 관계가 한때 불편하였다. 스리랑카는 그간 인도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였다. 그러나 타밀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1987년 7월 29일 인도·스리랑카 평화협력 체결과 인도평화유지군(IPKF)1) 주둔으로 인도의 영향을 지속적으로 받았다.
1990년 3월 인도평화유지군이 철수되고 1991년 타밀나두(Tamil Nadu) 주 정권이 교체되면서 인도 정부와의 우호협력관계가 증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스리랑카에 대한 인도의 영향력은 여전히 강하였다. 1998년 12월 29일 인도와 스리랑카간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양국은 교역을 비롯한 경제 교류가 활발해지고 있다.
인도와 스리랑카의 협력관계는 2002년 6월 라닐 위크레메싱게(Ranil Wickremesinghe) 수상의 인도 방문과 2002년 7월 신하(Y. Sinha) 인도 외무장관의 스리랑카 방문을 계기로 강화되었다. 2004년 4월 4일 출범한 찬드리카 반다라나이케 쿠마르퉁가(Chandrika Bandaranaike Kumaratunga) 대통령의 통일인민자유연합(UPFA) 정부는 인도와 남아시아지역협력연합(SAARC) 지역이 스리랑카 외교정책상 ‘특별한 위치(special place)’를 점하게 될 것이라고 천명하였다. 그리고 고위 인사급들의 긴밀한 방문 활동을 실시하였다.
2005년 11월 19일 출범한 마힌다 라자팍사(Mahinda Rajapaksa) 신정부도 외교정책 방향에서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와의 관계를 우선시하겠다고 밝혔다. 2005년 11월 30일 ~ 12월 1일 망갈라 사마라위라(Mangala Samaraweera) 외교부 장관이 인도를 방문하였다. 2005년 12월 27일 ~ 30일 마힌다 라자팍사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으로 인도를 국빈 방문하였다. 양국은 스리랑카의 치안과 정치상황, 스리랑카 정부와 타밀엘람 해방 호랑이(LTTE)간의 평화협상과 정전협정(CFA), 스리랑카와 인도간의 경제협력에 대해 논의하였다.
스리랑카가 타밀엘람 해방 호랑이(LTTE)와 내전 중일 때, 인도는 타밀나두(Tamil Nadu)지역에 대한 국내정치문제 때문에 스리랑카 내전에 모호한 자세를 취하였다. 그러나 2009년 5월 내전이 종식된 후, 스리랑카와의 정치·경제·인권문제 협력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2010년 6월 라자팍사 대통령은 인도를 방문하여 2010년 말 체결이 목표인 인도-스리랑카의 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CEPA)에 대해 협의하고 7개의 경제분야 협력에 대한 협약을 체결하였다.
스리랑카는 파키스탄과 군사협력을 도모하며 큰 마찰 없이 유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서남아시아 지역정치구도내의 인도, 파키스탄 양대 주도 세력과의 관계에서 스리랑카가 전통적으로 취해온 균형적 입장을 견지하고자 파키스탄과의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1996년 양국의 외무장관은 스리랑카와 파키스탄의 외교부간 정례 차관급 협의를 매년 개최하는 의정서에 서명하였다.
양국의 경제 교류는 상호보완관계가 약해 활발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2001년 5월 파키스탄의 이슬라마바드(Islamabad)에서 개최된 양국간 제8차 무역협력공동위원회에서 경제·통상·과학기술·문화·스포츠 등 제반 분야의 교류를 넓히기로 합의하였다. 특히 무역협력공동위원회에서는 양국간 자유무역협정도 추진하였다.
2002년 7월 31일 ~ 8월 1일 무샤라프(Musharraf) 대통령은 스리랑카를 공식 방문하여 스리랑카가 추진하는 평화과정에 대한 파키스탄 정부의 지지를 재확인하였다. 2004년 11월 21일 ~ 23일 샤우카 아지즈(Shauka Aziz) 파키스탄 수상은 스리랑카를 방문하여 남아시아지역협력연합(SAARC)내 협력과 스리랑카와 파키스탄간 자유무역협정(FTA)을 비롯해 전반적인 양국 관계에 대해 논의하였다.
2005년 2월 7일 ~ 9일 찬드리카 반다라나이케 쿠마르퉁가(Chandrika Bandaranaike Kumaratunga) 대통령은 파키스탄을 국빈 방문하여 양국간 자유무역협정을 포함하여 5개의 협력협정과 양해각서에 서명하였다. 2010년 4월 28일 개최된 남아시아지역협력연합(SAARC) 정상회의에서 마힌다 라자팍사(Mahinda Rajapaksa) 대통령은 파키스탄의 유사프 라자 길라니(Yousaf Raza Gillani) 총리와 회담을 갖고 양국간 국방, 무역, 상업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하였다.
과거 스리랑카가 사회주의 노선을 걷고 비동맹 세력의 중추적인 역할로 활약할 당시, 스리랑카와 서방 국가들은 불편한 관계였다. 그러나 1977년부터 스리랑카는 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하면서 경제발전을 위한 원조를 유치하기 위해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European Union) 국가 등 서방제국과 우호친선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스리랑카는 독립공화국이지만, 영국연방 회원 자격을 유지하면서 영국연방 회원국과 긴밀한 유대 관계를 맺고 있다. 1991년 5월 글래드스톤(Gladstone) 영국대사가 스리랑카 지방의회 선거에서 국내문제를 간섭했다는 이유로, 스리랑카 정부는 글래스톤 영국대사를 기피인물로 보고 스리랑카에서 추방하였다. 이에 영국은 스리랑카에 대한 원조를 금지하고 무기 금수조치를 내렸으나 1992년 10월 양국은 정상관계를 회복하였다.
2010년 기준으로 스리랑카인 50만 명이 영국에 거주하고 있으며, 양국을 왕래하는 사람은 매년 약 20만 명에 달한다. 스리랑카는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래로 정치·경제·문화 분야에서 영국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은 2008년까지 스리랑카의 최대 원조공여국으로 스리랑카와의 교류를 증대하였다. 라닐 위크레메싱게(Ranil Wickremesinghe) 정권 이후 일본은 스리랑카 평화과정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였으며, 2003년 6월 9일 ~ 10일 스리랑카 원조공여국 회의를 도쿄(Tokyo)에서 주최하였다. 도쿄 회의 당시에 국제사회는 2003년부터 2006년까지 총 45억 달러를 스리랑카에 원조하기로 약속하였다.
락쉬만 카디르가마르(Laskshman Kadirgamar) 외교부 장관은 2004년 9월 12일 ~ 17일 일본을 방문하여 스리랑카의 평화과정 진전, 2억 6000만 달러 차관 도입과 10억 달러의 원조공여 약속 이행과 관련해 일본 정부의 협조를 구했다. 그리고 문화·지식교류와 관광협력을 통한 양국 국민의 이해 증진에 초점을 맞춰 활동하였다. 일본은 스리랑카의 쓰나미(Tsunami) 피해에 1억 7500만 달러를 지원하였다.
노르웨이는 스리랑카 평화회담의 협상촉진자(facilitator)로서 스리랑카 정부-타밀엘람 해방 호랑이(LTTE)1)의 평화과정에 적극 관여하였다. 2002년 2월 22일 스리랑카 정부-타밀엘람 해방 호랑이 간 정전협정 체결과 6차에 걸친 스리랑카 정부-타밀엘람 해방 호랑이간 평화회담개최에 기여하였다. 2006년 1월 25일 노르웨이의 중재로 스리랑카 정부와 타밀엘람 해방 호랑이는 정전회담을 개최하는 데 합의하였다.
스리랑카는 유럽연합(EU, European Union)으로부터 GSP(일반 특혜 관세) 혜택을 받는 수혜국 중 유일하게 남아시아 국가이다. 2005년 7월부터 유럽연합으로부터 GSP+ 지위를 부여 받아 7200개의 품목을 무관세로 유럽연합 시장에 수출해왔다. 그러나 유럽연합은 스리랑카가 GSP+ 지위의 연장조건인 국제인권·노동 관련 협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다는 부정적인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스리랑카의 GSP+ 양허 지위는 2010년 2월 15일부터 6개월간의 호혜기간을 거쳐 2010년 8월 15일부터 중단되었다
1957년 3월 스리랑카는 중국과 국교를 수립하였다. 그 후 중국은 스리랑카의 경제지원국으로서 스리랑카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스리랑카 정부가 서방과의 관계를 강화하면서 한때 양국 관계는 소원하였다. 그러나 1980년 1월 중국이 스리랑카와 3290만 달러 상당의 무이자 차관 공여협정을 체결한 후, 매년 이를 착실히 이행하면서 양국 관계는 밀접하게 유지되고 있다.
1984년 5월 자예와르데네(Jayewardene) 대통령과 1986년 4월 리셴녠(李先念) 주석의 상호방문과 경제기술협력 협정체결로 양국간 경제협력이 증진되었다. 찬드리카 반다라나이케 쿠마르퉁가(Chandrika Bandaranaike Kumaratunga) 대통령은 중국과의 정치·외교·경제협력을 중시하여 1996년 4월 중국을 방문하였다. 2001년 5월 주롱지(朱鎔基) 총리가 스리랑카를 방문함으로써 양국간 우호관계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다.
2005년 4월 8일 ~ 9일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스리랑카를 방문하여 찬드리카 반다라나이케 쿠마르퉁가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개최하였다. 원자바오 총리는 양국이 당면하고 있는 국내 정치상황과 관련된 3개 악인 테러주의, 분리주의, 극단주의를 반대하는 입장을 다시 한번 밝혔다. 또한 스리랑카의 평화협상 노력과 중국의 단일 중국정책에 대한 지지를 재확인하였다.
원자바오 중국 총리의 방문 동안, 스리랑카와 중국은 스리랑카의 쓰나미(Tsunami) 피해 복구와 재건지원사업을 구체화하여 6개의 어항을 복구하고 재난경보와 관련된 인력훈련을 실시하기로 합의하였다. 이외에도 6개 건설사업 지원, 3억 달러 상당의 우대수출 구매자 신용공여, 경제 및 기술협력 협정(약 600만 달러 무상원조 제공) 등 4개 협정 및 양해각서 체결을 통해 스리랑카에 대한 경제지원을 강화하기로 합의하였다.
찬드리카 반다라나이케 쿠마르퉁가 대통령은 2005년 8월 28일 ~ 9월 2일 중국을 공식 방문하였다. 이때 양국은 노라치초라이(Norachcholai)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을 포함한 협력약정 8개에 서명함으로써 스리랑카는 경제·관광·문화협력 분야에서 실질적 성과를 거두었다. 스리랑카 정부는 찬드리카 반다라나이케 쿠마르퉁가 대통령의 중국방문 성과에 대하여 스리랑카와 중국의 관계에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하였다.
중국은 2006년 말까지 스리랑카에 무상원조로 6억 3900만 위안, 신용수출 6억 4500만 위안, 차관 9600만 위안을 제공하였다. 이 기간 동안의 대표적인 지원 사업은 콜롬보(Colombo)에 소재한 국제회의장(BMICH)2), 대법원 단지 조성, 중앙우편교환국, 깅강(Ging) 홍수예방사업, 아동병원건립사업 등이다. 또한 중국은 스리랑카 쓰나미 재건복구 사업을 위해 항구 3개를 비롯한 3억 달러 상당의 지원금을 별도로 지원하였다.
2009년 중국은 스리랑카의 최대공여국으로서 무상차관, 유상차관, 수출신용을 합쳐 총 12억 달러를 지원하기로 서약하였다. 이는 전체 공여국과 국제기구가 서약한 총 22억 달러 중 54%에 해당하였다. 2009년 아시아개발은행(ADB)3)은 4억 2000만 달러, 세계은행(World Bank)은 2억 4000만 달러를 스리랑카에 지원하기로 서약하였다. 2010년 기준으로 중국이 스리랑카에 지원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업은 함반토타 국제항구 건설사업, 콜롬보-국제공항간 고속도로 건설, 기타 남부고속도로건설, A9지방국도 개보수, 제2국제 공항건설, 철도소송 개선사업이다.
3. 스리랑카의 지역주의 참여와 남아시아지역협력연합(SAARC)
스리랑카는 역내의 빈곤 추방, 참여와 분배가 공평한 경제민주화, 경제 개방과 자유화, 역내 교역·투자·기술교류 증진, 유럽연합(EU, European Union),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1)과의 경제협력모색, 보호주의 경계 등을 위해 남아시아지역협력연합(SAARC)2)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1991년 제6차 남아시아지역협력연합(SAARC) 정상회담을 콜롬보(Colombo)에 유치하였으며, 2001년과 2010년에는 남아시아지역협력연합(SAARC) 의장국을 수임하였다. 또한 2008년 제15차 남아시아지역협력연합(SAARC) 정상회의를 콜롬보에 유치하였다.
스리랑카는 남아시아의 빈곤 추방, 반테러주의와 경제개방화를 강력히 주장하면서 지역협력을 강화하려면 회원국 내 쌍방간 정치·인종·종교를 비롯한 비경제적인 문제도 함께 풀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스리랑카는 특히 지역주의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마힌다 라자팍사(Mahinda Rajapaksa) 대통령은 제16차 부탄 남아시아지역협력연합(SAARC) 정상회의에서 기후 변화에 대한 협력과 책임, 대(對)테러 협력, 부의 재분배, 농어촌 개발, 남아시아국가의 자주권 확보를 강조하였다
(스리랑카 개황, 2010.5, 외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