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지금이나 점희씨는 씩씩 하데요.
지난 30여 년의 시공時空을 못 느낄 정도로 늘 입는 일상복처럼 그렇게 편하더라고요.
부군과 함께 제조회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윙윙윙윙 돈 찍는 기계소리가 전화를 통해 들리더라니까요.
(큰) 딸은 스물 아홉인데, 오 년 째 프랑스 유학 중이고요, (작은)아들은 스물 일곱 살 먹었다니더!
집은 마포구에 있고, 회사는 인천에 있다니데이.
목소리만으로도 그 세련미가 담뿍 전해 오는 정순씨도 여군 출신인지? 거침없데요.
통화 중에 정덕희 교수와 가수 황보가 연상되는 시원시원한 그의 말투에 내 가슴도 따라서 확 트이더라고요.
모친(신당댁)을 모시고 있는데, 이 어른이 여든이 넘은 연세에도 아주 건강하시다는 전언에 우리 어메 소식처럼 정말 반가웠지요.
그래서 내가 자당님께 꼭 꼭 내 안부말씀을 올려 달라고 부탁 했니더.
부천 원미구에 산다는데, 내 생각에 지금 통장統長을 하고 있거나 주민들로부터 통장을 맡아 달라는 간곡한 졸림에 시달리고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드네요.
미희씨는 몸살인지, 감기인지, 목소리가 많이 잠겨 있었어요.
사람(특히 여자)들은 모두 나이 들면 스스럼이 없어 지는건지, 고통에서 클 때 걸에 나올 때면 고개를 왼 편 아래로 살포시 돌렸던 이 여인도 여군장교 출신인지, 그간 정치에 몸 담았었는지? 박근혜씨처럼 매우 노련 하네요. 서울 은평구에 산다니더, 지금.
원촌댁 손녀 갑연씨는 동계학교 때 나하고 동창 아이껴!
그 기억만으로 말을 까불다가, 알고 보니 나이는 내보다 무려 세 살 위, 우리 작은누이하고 동갑이네요.
바로 꼬랑지를 내리고, 누님으로 모셨지요. 큰 아들이 서른 한 살이고, 지금 성남 분당에 둥지를 틀고 있습니다. 우리 집 뒤에 살았는데, 창원(도수) 형님 외에 따님이 7형제라는데, 워낙 오래 돼서 그 모습들이 기억이 안 나네요.
오희씨는 지금 안산 상록구에 살고 있니더!
고통에 살 때는 內外하느라고 말도 잘 안했는데, 오십이 넘어서니 그런 거리감은 햇살에 안개 사라지듯이 없어지고, 그저 반갑디더.
자녀들이 우리집하고 비슷 하던데, 혹시 아니껴? 나중에 사돈지간이 될지... 아이라꼬 장담할 수는 없니데이. 시커먼 내 꼬라지만 생각하고 우리 아이들까지 아비하고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는데...
오윤씨 소식은 지난 번에 잠깐 올린 바 있는데, 오늘 다시 통화 했는데 집은 인천이나, 부인과 함께 청주에서 자영업을 하고 있답니다.
그런데, 심장의 혈맥이 약해서 지난 번에 두어 번 수술 했는데, 오는 7월 2일에 한 번 더 해야 된다네요.
늘 활기 찬 그의 모습을 기원합니다.
첫댓글 원길이 진짜로 재미있네 수사반장 인가봐 오윤이는 걱정이여 사람이 살만하면 이런저런일이 생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