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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진 작가는 시작 후 9분 40초부터 15분까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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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면서 여러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다. 머리 모양을 바꾸려면 미용사를 만나고 피아노를 배우려면 피아노
선생님을 찾아가고 아프면 누구나 의사를 만나 보게 된다. 하지만 집이나 빌딩은 매일 이용하고 간혹 구매를
하게 되더라도 경비원이나 공인중개사만 만나면 된다. 보통 사람들은 평생 건축사를 만날 기회가 한 번도
없을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건축사는 일반인들에게는 매우 은밀한 직업처럼 보이기도 한다. 뒤에 숨어 있는
부지런한 손이라고 할까.
다행인지, 특혜인지 나는 몇 분의 건축사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그분들을 만나기 전에 내가 먼저
건축 쪽 전문가로 인식한 분들은 '십장'이었다.
우리 어머니는 1980년대에 서초동에서 두 채, 성수동에서 한 채, 도합 세 채의 집을 지으신 경력이 있다.
그 집들을 차례차례 짓고 살다가 팔고 또 짓고 하는 동안 나의 청소년기는 다 지나갔다. 어머니는 아버지
없는 자리를 메우느라 은행빚으로 집을 지어 일부는 세를 주고 살다가 집값이 좀 오르면 팔고 또 새로
빚을 얻어 짓고 하시면서 우리 딸 넷을 기르셨다. 아무튼 그 과정에서 나는 어머니가 건축가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은 들어본 바가 없었고 늘 십장에 대한 이야기만 들었다. 집을 얼마나 알뜰하게 잘 짓느냐는
십장의 손에 달렸다 했다. 아 그리고 다음으로 중요한 건 집을 짓는 기술자들이 밥을 먹는 함바집이었다.
‘공구리’를 치는 문제로, ‘도끼다시’를 가는 문제로, ‘타이루’을 붙이는 문제로, 정화조와 기름탱크를 묻는
위치 문제로 어머니는 끊임없이 십장과 의견이 달랐고 간신히 어머니와 십장의 의견이 맞으면 인부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집을 지으면서 건축설계가 얼마나 잘 되었느냐에 대해서는 어머니가 걱정하는
건 들어본 적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떤 건축사였는지 모르지만 아마 우리 어머니가 원하는 대로
설계를 해 주신 게 아닐까 싶다.
딸들을 가르치고 시집보내느라 어머니는 그 집들을 결국 차례로 다 팔아버렸지만 나는 아직도 그 집들의
형태와 내부 구조를 기억하고 있다. 서울에서 줄곧 살아온 나는, 남들이 말하는 푸근한 ‘고향’의 이미지를
내가 살았던 집들에 대한 기억으로 가까스로 대체하고 있는 생각이 든다. 특히 1970년대, 어릴 적에 살던
성수동 조립주택은 내 추억의 창고이다.
조립주택 단지는 한 골목에 같은 모습의 집들이 10채씩 다섯 줄 정도 늘어서 있었는데 지붕의 기와색은
몇 가지가 있었지만 집안 구조는 다 같았다. 작은 마당에는 집집마다 라일락이 심겨져 있었고 레일이 깔린
연탄 아궁이가 있는 목욕탕이 있었고 부엌은 깊었고 역시 레일 깔린 연탄 아궁이와 부뚜막이 있었다.
화장실과 장독대는 별도 건물이었고 장독대 아래는 창고였지만 거의 모든 집이 그 창고를 개조해 부엌으로
만들어 세를 주었다. 마루와 방 세 개로 구성된 집이었다. 공장서 만든 벽체를 가져와 조립해서 지었다고
했는데 한국 최초의 조립식 주택이라고 했다. 주택단지 이름이 그냥 조립주택이었고 우리 집은 8호집이었다.
2007년도에 새건협에서 주최한 건축답사를 따라다니다 50여 채였던 조립주택 중 딱 한 채 원형대로 남은
조립주택을 발견하고 참으로 기뻤다. 그날은 답사를 함께 했던 경동국민학교 동문인 안창모 교수,
박철수 교수와 뚝섬의 이야기를 마음껏 나누었다.
대학에 가서야 나는 집을 짓는 일이 설계와 시공,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진다는 걸 눈치챘다.
그리고 내가 보아왔던 철근과 합판과 전선, 시멘트를 떡 주무르듯 하던 그 전문가들 말고 다른
전문가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건축과에 다니는 친구들을 보았더니 그들은 T자와 로트링펜을
무기 삼아 밤을 새우면서 트레싱지나 트레팔지에 고개를 처박고 무언가를 그려대고 있었다.
그들이 그린 평면 속의 그림들이 결국은 입체가 된다는 걸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평면 위의
주사위 전개도를 잘라서 주사위를 만드는 건 배웠지만 나는 주사위를 만들기 위해 주사위 전개도를
그리는 그 두뇌 구조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일단 존경하기로 하였다. 그러면서 내가 살았던
그 집들은 어떤 건축사가 어떤 생각으로 설계를 했을까 조금 궁금해지기도 하였다.
우연히도 나와 내 동생은 둘 다 건축과를 나온 남자와 결혼하였다. 하지만 둘 다 건축사는 아니었다.
건축과를 나와도 건축사가 안 되는 사람이 많다는 걸 그때 알았다. 한 남자는 구조기사 자격증을 들고
취직한 건설회사에서 만날 설계도 안의 벽돌 개수를 세어서 원가 정보 책을 보고 계산기를 두들겨 돈이
얼마나 드는지 계산한다고 했다. 그 후엔 그는 건축과에서 갈고 닦은 어떤 힘으로 모형 비행기를 만들었다.
다른 한 남자는 건축과에서 배운 어떤 힘으로 만화를 그렸다. 그 두 사람을 보면서 건축과에서 배우는
게 참 여러 모로 응용할 바가 많구나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2년간 과자회사에 다닌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들과
함께 큰 방에서 같이 근무했는데 그들은 근무 시간의 반은 설계하고 반은 현장에서 목수들을
지휘하느라 목이 쉬었다. 총무과에서 텅 빈 가게를 계약하고 나면, 그 뒤는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다 알아서 해결해야 했다. 보름에서 한 달 남짓 뚝딱거리고 나면 아늑한 빵집이 오픈되었다.
나는 그때 또 헷갈렸다.
인테리어 디자이너와 건축사는 대체 어떻게 다른 일을 하는 거지? 같은 일을 하는 거 아니었나?
궁금해진 나는 만만한 인테리어 디자이너에게 물었다.
“그대가 하는 일이 결국은 작은 건축 아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난 내력벽이나 기둥은 못 건드려. 저 기둥과 내력벽을 만드는 건 건축이 할 일이지.
난 그 이후를 책임지는 거야. 건축에서 큰 틀을 짜주면 난 그 안에서 재미나게 놀아보는 거지.”
아. 난 그때 또 건축의 영역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
나에게 건축사(建築士)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말해 보라고 편집부는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보기는요? 우러러보고 있지요. 난 그 말만 하고 끝내고 싶었지만 너무 성의 없어 보여서
그럴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정말이다.
세상에 많은 물건을 사람들이 만들어 내고 있지만 그 어떤 것도 집만치 멋지지 않다.
사람이 만든 것 안에 사람이 들어가서 살다니 그게 얼마나 멋진가 말이다.
사람을 품어주는 집을 짓는 사람들은 아마도 조물주의 특별한 부탁을 받고 일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성의 있게 보이려면 질문에 대해 되도록 길게 대답해야 했다. 그래서 난 내가 아는 몇몇 건축사를
떠올려보았다. 그 인물들을 떠올리면서 나는 대답을 정리해 보았다.
건축사는, 철학자였다. 그들은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며 일하고 있었다.
건축사는, 정치가였다. 그들은 건축주와 건축법과 자신의 꿈과 돈 사이에서 기적 같은 타협점을 찾아내야만 했다.
건축사는 예술가였다. 그들은 선 하나로 미학적 기준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믿었고
늘 새로운 작품을 내놓으려고 애썼다. 그리고 건축주가 예술을 이해 못 하는 걸 자주 슬퍼했다.
건축사는 몽상가였다. 그들은 땅과 바람과 햇살과 사람의 역사가 한 공간에서 행복하게 만나는 세상을 꿈꾸었다.
건축가는 은둔자였다. 그들은 건물이 준공되어 열리는 큰 잔치에 초대받지 못했다.
건축가는 혁명가였다. 그들은 더 좋은 건축이라는 게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 곳으로 사람들을 끌고 가려고 애썼다.
나의 존경하는 건축가들은 동화 속에도 있다.
그들은 과자로도 집을 지었고, 계단 없는 성탑도 지었고 누우면 별이 보이고 머리와 발이 벽 밖으로
나가는 흥부네 집도 지었다. 나는 <지붕 낮은 집>이라는 청소년 소설로 집을 지은 바가 있다.
그러니 같은 업종의 이 분들을 어찌 멀리 생각하겠는가.
다음 달 건축답사도 따라가야 할 것이다.
- 끝-
(계간 건축과 사회 2010 여름호 특집-
건축계 외부의 시선으로 바라본 건축사(建築士) 수록 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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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그 누구보다도 재미있는 동화도 많이 쓰며, 다양한 문화 분야에 깊은 관심을 보이는 임정진 작가,
다음엔 또 어떤 글을 보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