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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칼럼, 장재언 칼럼 원문보기 글쓴이: 나그네 가는길
세계의 테러조직 단체
911 테러사건 생생 화보
2001년 9월 11일 발생한 미국 뉴욕의 110층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과 워싱턴의 국방부 건물에 대한 항공기 동시 다발 자살테러 사건.
Ground Zero에 새로 지어질 Freedom Tower
혹 이렇게 지을 수는 없을지...
1. [팔레스틴] 아부 니달(Abu Nidal/ANO 2. [팔레스틴] 팔레스타인 해방인민전선(PFLP) 1967년 6월 전쟁에서 아랍이 대패한 직후, 외과의사 출신인 하바시(George Habash)가 기존에 있던 군소단체인 아랍민족주의 운동의 돌아온 영웅(Heroes of Return), 팔레스타인 해방 국민 전선(National Front for the Liberation of Palestine), 그리고 독립 팔레스타인 해방전선(Independent Palestine Liberation Front)을 통합하여 PFLP를 결성하였다. PFLP는 결성 초창기에는 상당히 많은 대원들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이데올로기의 비유연성에 따른 내부 갈등으로 조직이 와해되어, 현재 약 1,000여명의 대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PFLP의 무자비한 테러리즘 전술은 전세계적 비난은 물론 동구 공산 사회주의 국가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3. [팔레스틴] 팔레스타인 해방인민전선 총사령부(PFLP-GC) PFLP-GC는 PFLP에 가담하여 대이스라엘 투쟁을 전개했던 아메드 지브릴(Ahmad Jibril)이 조지 하바시의 지도력에 반감을 가지고 1968년 탈퇴하여 결성한 무장 테러리스트 단체이다. 이스라엘을 파괴하고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을 최종 목표로 삼고 있는 PFLP-GC는 이스라엘 본토에 대한 테러리스트 공격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재래식 군사능력을 갖추고 있다. PFLP-GC는 육상, 해상은 물론 항공침투 능력을 갖춘 준 군사조직으로, 구소련제 SA-7 대공 미사일, RPG-7 대전차 로켓트, 중화포, 경항공기 등 최첨단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특히 PFLP-GC는 테러리즘 자행을 위한 우편폭탄, 플라스틱 폭탄을 다량으로 보유하고 있고, 대형 폭탄을 탑재하여 공공건물을 공격할 수 있는 무인 동력 행글라이더 등을 보유하고 있어 이스라엘 보안당국을 긴장하게 만들고 있다 지브릴은 군사전략 및 전술에 뛰어난 시리아 육군장교 출신으로 시리아 군부와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하면서 시라아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고 있다. 시리아는 PFLP-GC에게 기지제공 및 대원들에 대한 훈련 등을 지원하는 댓가로 PFLP-GC 요원들을 대리전에 투입하고 있다. PFLP-GC는 국제 테러리스트 단체들과 긴밀한 연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아르메니아 해방군 등에게 테러리즘 전술을 전파하기도 했다. 대원은 주로 이스라엘 점령지인 서안지구에 거주하고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을 모집하여 훈련시킨후 이스라엘 공격에 투입하고 있다. PFLP-GC는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기법으로 폭탄을 장착한 열기구와 헹글라이더를 이용하기도 한다. 4. [팔레스틴] 하마스(HAMAS)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는 가자지구와 웨스트 뱅크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과격 테러리스트 단체로, 1987년에 무슬림 형제당(Muslim Brothers)에서 분리되어 창설되었다. 하마스를 조직한 사람은 무슬림 형제당에서 활발히 활동을 했던 아마드 야신(Ahmad Yasin)이며, 1987년 인티파다(Intifada)라고 불리는 팔레스타인 민중봉기가 발생한 후 모습을 나타냈다. 하마스는 이슬람 전통과 혁명사상을 강조하면서 지지세력의 기반을 적극적인 조직활동을 통하여 확대하고 있으며, 실제로 고도로 발달된 행정조직과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다. 하마스는 중앙의 지도부인 3개의 위원회와 조직의 활동분야별로 독립조직형태로서 4개의 하위조직을 두고 있다. 즉 하마스는 웨스트 뱅크 지역에 3명의 지역 책임자를 두고 있으며, 가자지구에 1명의 책임자를 두고 있다. 각 지역마다 지역 책임자의 리더쉽하에 계속적인 세분화된 세포조직 체제를 가지고 있다. 하마스는 군사조직으로 에즈 에딘 알 까삼(Ezz Eddin al-Qassam)를 두고 있는데, 하마스의 모든 테러리즘을 계획하고 자행하는 행동조직이다. 1992년 한해동안 14회의 테러리즘을 자행했으며, 초기에는 칼 등을 이용한 원시적 방법을 사용했으나, 최근에는 정밀한 무기를 사용하거나 차량을 이용한 폭탄공격, 그리고 자살 특공대를 이용한 테러리즘을 저지르고 있다. 이스라엘에 이슬람 팔레스타인 국가(Islamic Palestinian State) 건설이라는 정치적 목표달성을 추구하고 있는 하마스는 1991년 마드리드 중동평화회담을 시발점으로 1993년 워싱턴 중동평화조약등 모든 정치적 협상에 반대하고 있고, 협상에 적극적인 PLO 지도자에 대한 공격도 서슴지 않고 있다. 하마스는 이란과 사우디 아라비아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고 있으며,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동정적인 여론이 형성되어 있는 북미와 유럽지역의 국가들에서 정치적 선전을 통해 자금모집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5. [팔레스틴] 팔레스틴 인민해방민주전선(DFLP) DFLP는 1969년에 창설된 막스-레닌주의 추종 테러리스트 단체로 팔레스타인 민족 목표는 노동자 계급의 혁명이 없이는 불가능하며,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최하층 민중이 사회주의로 무장될 수 있도록 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내세우고 있다. DFLP가 주창하고 있는 정치적 목적은 중동지역에서 아직도 유지되고 있는 왕조의 폐지를 포함한 아랍국가의 혁명달성.아시아.아프리카.남미의 해방이라는 전세계적 개념과 일치한 팔레스타인 문제해결,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민족해방운동 단체간의 유대를 강화하고 중동지역에 대한 미국의 대외정책의 전면적 반대 등 이다.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을 위한 어떠한 평화적 협상도 거부하며, 이스라엘과 점령지역 내에서 수류탄 및 폭탄 공격을 주로 자행하고 있는 DFLP는 때로는 인질을 납치하여 선행작전에 투입되어 체포된 동료 테러리스트의 석방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대원수는 500여명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구소련 붕괴 이전에는 소련의 지원을 주로 받았고, 현재는 쿠바의 지원을 받고 있다. 6. [레바논] 헤즈볼라(Hezballah) 헤즈볼라는 이란의 호메이니(Ayatollah Khomeini)의 무슬림 군국주의 노선에 크게 영향을 받아 1983년에 조직된 정치.군사조직으로, 3,000여명의 대원을 거스리고 있는 중동지역 최대 테러리스트 조직이다. 시아 무슬림(Shia Muslim) 이데올로기와 일치하지 않는 국가와 개인에게 극심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헤즈볼라는 이란 호메이니의 혁명을 모델로 삼아 레바론에 시아 이슬람 국가를 건설하며, 서구 국가의 어떠한 영향력 행사도 배제하며, 레바론내의 이슬람 운동의 선구자 역할을 하는 것을 정치적 목표로 삼고 있으며, 이러한 목표달성을 위해 테러리즘을 전술로 활용하고 있다. 헤즈볼라는 후세인 무사위(Husayn Musawi)가 이끌고 있던 이슬람 아말(Islamic Amal)과 다와 파티(Dawa Party) 레바론 지구당이 합쳐져서 탄생되었는데, 레바론 동부의 베카 계곡(Bekaa Valley)에 본부가 있다. 정치, 군사, 이념적으로 이란과 매우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란의 혁명군이 훈련과 교리교육은 물론 물적지원도 하고 있다. 이란의 지원을 받고 있는 헤즈볼라는 테러리즘 수행에도 이란과 상호 긴밀한 협조아래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모든 작전에는 각기 다른 코드네임을 사용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이슬라믹 지하드(Islamic Jihad), 혁명정의기구(Revolutionary Justice Organization) 그리고 지구상의 억압받는 사람들의 기구(Organization of the Oppressed on Earth)등이 있다. 헤즈볼라는 주로 미국과 미국인에 대한 공격을 자행하고 있으며, 이 단체가 자행한 주요사건은 1983년의 베이루트 미 해병대 사령부 차량폭탄 공격 그리고 1992년의 아르헨티나 이스라엘 대사관 폭탄 공격사건 등이다.
7. [스페인] 조국과 자유(ETA) 서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테러리스트 단체중의 하나인 ETA는 스페인 정부에 대한 무차별적 테러리즘 공격을 통해 맑스주의 바스크 국가를 건설한다는 목표에 따라 1959년에 조직되었다. 지도부의 이데올로기는 맑스주의이지만 근본적인 동기는 민족주의이며 ETA는 단일 조직이 아니고 느슨한 동맹관계를 가진 여러개의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조직마다 독립적인 행동지침을 가지고 있다. 이들 조직중에 가장 공격적인 조직은 ETA-Military Wing(ETA-M)으로, 스페인 정부에 대한 직접적인 테러리즘 캠페인을 자행하고 있다. ETA-Political·Military Front(ETA-PM) 역시 테러리즘을 주 전술로 사용해왔으나, 최근에는 혁명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 대중을 위한 사회혼란 책동에 주력하고 있다. ETA-M은 정치정당인 헤리 바타수나(Herri Batasuna-HB)를 통해 정치권과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 ETA는 스페인 정부 각료, 군지도자, 그리고 바스크 중도주의자들을 제거하는 것을 주목표로 삼고 있으며, 아울러 정부 및 공업시설에 대한 폭탄공격을 통해 막대한 재산상의 피해를 입히기도 한다. 1968년이후 약 600여명 이상이 ETA의 테러리즘 공격으로 사망했다. ETA는 조직의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자체적으로 조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자금조달 역시 인질납치, 무장은행강탈 등 테러리즘을 통해서 이루어 지고 있다. ETA의 조직구조는 매우 정교하고 고도의 은밀성 유지가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조직 구성은 3∼4의 세포조직으로 되어 있어 경찰에 거의 노출되어 있지 않고, 작전에 투입되고 나서는 일정기간 동안 Basque 지방에 잠적했다가 활동을 시작한다. 신분이 노출된 조직원들은 철저하게 지하로 숨어들어 버리고, ETA를 지원하는 지역주민들의 도움으로 은신처를 제공받고 있다. 또한, ETA의 활동에 필요한 정보, 통신, 기타 분야의 지원을 담당하는 하부구조를 가지고 있다. ETA의 국제적 연계 또한 매우 광범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민족주의에 바탕을 두고 독립을 추구하는 정치적 목적이 동일한 북아일랜드의 아일랜드 공화군(Irish Republican Army-IRA)과 긴밀한 협력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ETA는 또한 중동 지역의 테러리스트 단체 기지에 조직원들을 파견하여 테러리즘 교육을 시키고 있고, 니카라과이에서도 ETA 조직원들이 파견되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ETA에 대하여 지원을 해주고 있는 쿠바는 ETA 테러리스트에게 은신처 제공은 물론 자국의 훈련기지에서 고도의 군사교육을 이수하도록 협조하고 있다. 바스크 지역은 민족주의 감정이 널리 확산되어 있고, 주민 상당수가 ETA의 정치적 목적에 찬성하고 있어, ETA의 테러리즘 캠페인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8. [아일랜드] 아일랜드공화국군(IRA) 1921년 아일랜드 공화국이 독립을 쟁취하여 영국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북아일랜드와 분리되자, 북아일랜드에 거주하고 있던 로마 카톨릭계 아일랜드인들은 영국 본토에서 이주하여 정착한 신교도가 정부를 장악하고 소수민으로 전락한 아일랜드인에 대한 차별정책을 실시하는 것에 대한 반발로 비폭력 대항과 더불어 폭력 캠페인을 시작했다. 1960년대 말 부터는 정치적 수단을 동원하거나 혹은 폭력적인 항거를 통해 카톨릭 시민권 캠페인이 시작되었고, IRA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1969년에는 영국의 차별정책에 대항하는 방법론의 차이로 내부갈등이 일어나, IRA는 두개의 조직, Official Irish Republican Army(OIRA) 와 Provisional Irish Republican Army(PIRA)로 분열되었다. OIRA와 PIRA는 초창기에 모두 호전적인 조직이였으나, OIRA는 비폭력 대항을 선언하였다. 이에따라, PIRA가 북아일랜드 독립운동을 주도하게 되었다. IRA 구성원들은 대부분 아일랜드 민족주의자 혹은 공화주의 주창자들로 전투경험이 있는 베테랑들이지만, 핵심요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자들은 북아일랜드 출신의 좌익성향의 청년들이다. 이들은 IRA가 추구하고 있는 양동정책(Armalite and Ballot Box), 즉 한편으로는 테러리즘을, 또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세력화 노력을 추구하고 있다. IRA의 합법적인 정치세력화 전략은 정치정당인 신 페인(Sinn Fein)의 결성과 소속 지도자들이 의회에 진출함으로써 달성되었다. IRA가 그들의 목표달성을 위해 테러리즘 전략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간주하고 있는 이유는 북 아일랜드 및 본토에 거주하는 영국인들을 공격함으로써 영국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압력을 유도하여 영국군이 북아일랜드에서 철수하고, 영국의 간섭없이 북아일랜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다. 뿐만 아니라 폭력을 사용함으로써 북아일랜드 문제에 대한 국제적 여론을 환기시켜 영국 정부에 압력을 유도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IRA의 전략은 1980년대 중반부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무력과 폭력에 의한 방법으로 그들이 원하는 목표달성이 불가능하며, 군사적인 수단을 이용해서 월등히 앞서 있는 영국군을 제압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테러리즘을 자행하는 것 자체가 영국군의 북아일랜드 배치 구실을 주며, 영국 정부에 대한 국제적 지원을 강화시켜 주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러한 변화는 최근 게리 아담스가 이끌고 있는 신 페인과 영국 정부간의 북아일랜드 문제에 대한 평화적, 정치적 협상의 기초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최근 북아일랜드 문제해결을 위해 영국정부와 IRA의 정치기구인 신 페인간에 협상이 진행되고 있어 IRA에 의한 테러리즘은 줄어들고 있다. IRA는 초창기때부터 최대의 희생자가 발생하도록 하는 테러리즘 공격유형을 주로 구사했다. 그 이유는 피의 물결로 영국인을 북아일랜드에 철수하도록 하겠다는 그들의 결의를 표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의 공격유형은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사격, 폭탄공격, 박격포 공격 등이 주종을 이루며, 주공격목표는 영국군인, 보안요원, 정치지도자들이다. IRA의 모든 공격은 주로 북아일랜드에서 일어나며, 때로는 영국 본토 및 유럽국가에서도 자행되기도 한다. IRA의 지원세력은 다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아일랜드 주민과 북미 지역에 거주하는 아일랜드계 사람들이 재정적 지원을 하고 있고, 리바아는 거액의 재정적 지원은 물론 무기를 암암리에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리바아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IRA는 아주 간단한 재래식 무기는 물론 여러가지 지대공 미사일(Surface-to-Air Missile-SAM) 등과 같은 최첨단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9. [독일] 적군파(RAF) 1968년에 조직되어 가장 악명 높은 테러리스트 단체중의 하나로 기록되고 있는 독일의 Red Army Faction(RAF)은 1960년대 학생들의 반전운동의 일환으로 모습을 드러냈었다. 원래는 바더-마인호프 갱(Baader-Meinhof Gang)으로 불리웠던 RAF는 전세계적 맑스주의 혁명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반체제주의 활동과 테러리즘을 수단으로 활용했다. RAF가 내세우고 있는 정치적 목적은 자본주의를 무너뜨리고, 미국의 존재를 독일에서 완전히 제거하는 것인데 이를 위해 테러리즘을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RAF를 결성했던 초창기 핵심요원들은 1970년대 중반에 체포되어 투옥되거나 국외로 탈출한 상태이다. 하지만 더욱더 폭력적 성향을 가진 조직원들이 충원되어 아직까지도 암약하고 있으며, 이들 대부분이 고학력자들이며 전문직 종사자 출신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RAF의 조직개념은 다단계 구조로 되어 있다. 핵심요원은 20∼30의 전투요원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들은 지하에서 활동하며 치명적인 테러리즘 공격을 담당하고 있다. 핵심요원 주위에는 연락지원, 은신처 제공, 자금지원을 담당하는 요원들이 있고, RAF의 이념적 논리를 제공하고 법률적 자문을 담당하는 동조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RAF는 프랑스, 벨기에, 스위스, 스페인의 테러리스트 조직들과 긴밀한 연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1980년 중반에는 프랑스의 Direction Action과 합동으로 테러리즘을 자행하기도 했다. RAF는 테러리즘을 자행하기 전에 특정사건을 통해서 어떠한 세부목적을 달성할 것이며, 어떠한 공격수단을 이용하는 것이 최대의 효과를 올릴 것 인지를 철저하게 준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이들이 보유하고 있는 장비는 구소련제 RPG-7 등 최첨단 무기들이며, 여러가지 치명적인 살상력을 갖춘 폭탄제조 능력도 가지고 있다. 핵심요원들이 대부분 체포되어 휴면기에 있는 상태이지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므로, 이들의 존재를 무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10. [이탈리아] 붉은 여단(RB) 유럽의 테러리스트 단체중에 가장 위험한 단체로 유명한 이태리의 붉은 여단(Red Brigade)은 1970년에 결성되었다. 붉은 여단이 주로 사용하는 테러리즘 유형은 니케핑(Kneecaping: 사람을 죽이지 않고 총기류 따위로 무릎부근을 쏘아 불구자로 만드는 테러리즘 기법), 인질납치, 살인 등 이다. 주요 공격대상은 사회 지도층에 속하는 기업체 간부, 경찰간부, 법조인, 정치지도자 등이며, 이들을 공격목표로 삼는 이유는 대중에 대한 억압자라 논리에서 그 근거를 찾고 있다. 혁명을 통해서 이태리 정부를 전복하고,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에 대한 반대, 그리고 제국주의 표상으로 간주하고 있는 다국적 기업에 대한 파괴 등을 정치적 목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붉은 여단은 비슷한 정치적 목적을 표명하고 있는 중동과 서유럽의 테러리스트 조직과 긴밀한 연계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RAF 그리고 프랑스의 Direct Action 과는 합동으로 테러리즘을 자행하고 있다.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에 붉은 여단의 핵심요원들이 이태리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고, 근거지에 감추어져 있던 무기들이 회수되었지만, 아직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붉은 여단에서 기반을 다진 Fighting Communist Party(PCC), Union of Fighting Communist(UCC)등이 독자적인 작전을 수행하고 있는데 이들 조직은 붉은 여단과 동일한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있다. BR이 자행한 주요 테러리즘 사건으로는 1978년의 알도 모로 전수상 암살 그리고 1981년의 제임스 도지어 미육군 준장 암살사건 등이 있다. 11. [페루] SL 남미의 테러리스트 단체중에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SL은 페루 공산당(Peruvian Communist Party-PCP)에 반대하는 당원들이 탈당하여 대학교수 출신인 아비마엘 구즈만(Abimael Guzman)이 중심이 되어 1969에 결성되었다. 네오 마오이스트(Neo-Maoist)임을 주창하고 있는 SL은 남미에서 가장 폭력적인 성향을 나타내고 있는 테러리스트 단체이며, 소작농민을 이용하여 농촌지역에서 먼저 무장봉기를 일으키고, 점차 대도시 주변으로 확대하여 정부전복을 기도하는 반란 단체이다. SL은 동시 다발적인 테러리즘 공격은 물론 도시 게릴라전을 자행하고 있는데, 군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은 삼가하고 있다. 정부 타도를 부르짖는 다른 여타의 남미 테러리스트 단체와는 달리 SL은 쿠바의 지원을 받지 않고 있으며, 주로 은행강도와 금전강탈을 통해, 그리고 그들이 영향권에 두고 있는 지역의 주민들에게 전쟁세(War Tax)를 부과하여 단체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SL은 농촌지역에서 공세적인 사상교육을 단행하여 12∼15세의 소년들을 단체에 끌어들이고 있는데, 상대적으로 교육정도가 낮고 이성적으로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소년들을 이용하는 반인륜적 만행을 자행하고 있다. SL은 테러리즘 자행시 셀 조직(Cellular Structure)을 활용하고 있는데, 각 셀(Cell)에는 적어도 한명의 여자 테러리스트가 포함된다. 이들 여자들은 주로 정보원, 메시지 전달원으로 활용되는데, 때로는 공격조에 포함되기도 한다. SL이 가장 잔인한 테러리스트 단체로 알려진 이유는 소름끼치는 암살행위 때문이다. 희생자들의 신체를 절단한 후 시체는 공공장소에 버려둠으로써 테러리즘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SL은 농촌, 소작농 중심의 혁명을 신봉하고 있지만 지도층은 중산층 출신의 지식인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대중운동의 이미지를 교묘하게 유지하여 농촌지역의 지지를 이끌어 내는데 성공했다. 1992년 9월 페루정부의 소탕작전때 SL의 지도자 구즈만이 체포되었고, 1995년에 상당수의 다른 지도급 요원들이 체포되어 SL은 타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여전히 후지모리 대통령 정권에 대항하여 테러리즘을 자행하고 있다.
12. [콜롬비아] M-19 M-19는 1970년에 결성되었지만 1973년 혁명주의자들이 콜롬비아 사회를 공격하기 위한 자금원을 조달하기 위해 은행을 강탈함으로써 모습을 나타내었고, 1974년 1월에 보고타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던 시몽 볼리바르의 칼(Sword of Simon Bolivar)을 훔쳐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M-19란 단체명은 1970년 4월 19일 선거에서 대통령 구스타보 로하스 피니라(Gustavo Rojas Pinilla)가 패배하자 권력의 재장악을 위해 무장투쟁을 촉구하면서 비롯되었다. M-19는 1977부터 급격하게 세력을 팽창하여 대원들이 1,000여명에 이르게 되었고, 아르헨티나, 우르과이, 쿠바로부터 훈련지원을 받아 공격능력을 크게 향상시켰다. 핵심요원들의 충원은 주로 중류층 지식인과 학생이 주가 되었으나 1980년대 중반이후에는 노동자 계급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요원충원의 변화는 1985년 M-19가 소수의 게릴라 공격에서 정식 군작전으로 공격 유형을 전환하는 시기와 일치하고 있다. M-19의 주요 공격유형은 도시지역의 점령은 물론이고 고위급 군 지도자 암살, 군사시설에 대한 무장공격 등 다양하며, 자금조달을 위해 외국인 회사의 근무자, 그리고 기업인을 납치하기도 하고 대규모의 마약거래를 하고 있다. 남미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거의 모든 테러리스트 단체와 상호 긴밀한 연계를 가지고 있는 M-19는 1980년대 중반이후 국제적 연결을 강화하기 위해 스페인의 ETA와도 훈련과 자금의 상호지원 약속을 맺기도 했다. 13. [미국] US 민병대 1995년 4월 오클라호마 연방건물의 폭파사건이 민병대의 소행으로 최종적으로 밝혀지면서 세상에 구체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미국의 민병대는 대부분 몬태나, 텍사스, 아이다호, 인디애나 등 벽지에 근거를 두고 있다. 미국내에 활동하고 있는 극우 민병대는 809개로 47개주에서 조직되어 있으며 2만명이 넘는 대원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에 준군사조직의 구조를 가지고 반사회적 활동이 예상되는 민병대만도 400여개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연방정부에 대한 극도의 반감과 증오심을 가지고 각종 반정부 행위를 펼치고 있는데, 강력한 연방정부가 미국의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주범이므로 이에 저항해야 하며 무장한 애국시민들 만이 앞으로 다가올 폭정을 저지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또한, 그들은 UN의 존재에도 반대하고 있는데, UN은 세계지배를 획책하는 전체주의자들의 음모의 결정체라고 주장하고 있다. 오클라호마 연방정부 건물 폭파로 이름이 알려진 미시간 민병대는 1994년 침례교회 목회자인 노먼 올슨이 조직했고, 대원들은 자영업자, 기업체 간부, 간호원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미시간 민병대는 현재 1만 2천여명의 대원을 확보하고 있으며, 전용 훈련소까지 갖추고 군대식 계급으로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특히, 수년전 부터 미국의 여러 주(州)에서 등장하기 시작한 수십개의 군대식 무장조직 중의 하나라는 뜻으로 자신들을 4사단 14연대로 지칭해 왔다. 대원들은 여러 종류의 권총과 반자동 소총, AK-47 자동소총 등으로 무장하고 있고, 강력한 폭탄의 제조능력도 갖추고 있다. 미국의 민병대는 기본적으로 인종차별주의적 성향이 뚜렷하며 구성원의 대부분이 백인으로 지도부는 백인우월주의 단체인 Ku-Klux Klan(KKK)과 긴밀히 연계되어 있다는 것이 통설이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민병대들이 과거의 단순한 방어적 극단주의에서 적극적이고 무차별적인 테러리즘의 자행으로 투쟁방법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14. [일본] 일본 적군파(JRA) 일본 공산당 연맹에 탈퇴한 후사코 시게노부에 의해 1960년대말에 창설된 JRA는 1970년 4월 일본도로 무장한 9명의 테러리스트들이 요도호를 납치하여 북한행을 요구하는 항공기 납치로 세상에 실체가 드러났다. 테러리즘을 통해서 맑스-레닌주의 전세계 혁명을 달성하고, 일본의 제국주의에 반대한다는 정치적 목표를 내걸고 무차별적인 공격에 가담했다. 이러한 활동은 세계혁명을 위한 투쟁의 일부분으로 간주하고, 1971년 JRA는 수차에 걸쳐 폭탄공격과 은행강탈등을 자행했다. 그러나 1972년에는 조직내부의 극심한 분열로 10여명의 요원을 고문하여 사망케한 사건이 발생한 직후, 일본 경찰의 포위망이 가까워지자 대부분의 JRA 요원들은 해외로 도주하였다. JRA는 요도호 납치후 북한에 남아있던 요원들을 통해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 단체인 PFLP와 연계되었으며, 이후 PFLP을 대신해 대리 테러리즘을 자행하기 시작했다. 1972년 이스라엘의 로드 공항에서 고조 오카모토를 포함한 3명의 테러리스트들은 성지순례자를 포함한 이스라엘 항공기 이용객에 대한 무차별 무장공격으로 25명을 살상했다. 이후 JRA는 해외에서 수차례의 충격적인 테러리즘을 자행하여 악명을 떨쳤다. 1975년에는 쿠알라 룸푸 주재 미국 영사관을 점거하고 52명을 인질로 잡아 일본에 수감중인 5명의 동료 테러리스트들을 석방시켜 리비아로 탈출시켰다. 1977년 9월에는 일본항공 소속 항공기를 봄베이에서 납치하여 159명의 인질석방 대가로 600만불을 일본정부로부터 받아냈고 5명의 동료 테러리스트를 석방시키기도 했다. 1970년대 중반이후 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JRA에 의한 테러리즘은 사라지는듯 했지만 1987년에 발생한 로마 주재 영국 대사관에 대한 미사일 공격을 필두로 고개를 들기 시작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15. [스리랑카] 타밀엘람해방호랑이 ( LTTE/Liberation Tigers of Tamil Eelam) 인도의 남부 해안에 위치한 스리랑카는 지리적 위치로 인해 인도의 영향을 많이 받아왔다. 전체 인구의 70%를 점하고 있으며 불교를 믿고 있는 상할리족과 북동지방에 주로 거주하고 있는 힌두교의 타밀족 사이의 관계는 늘 긴장되어 있으며, 특히 타밀 이주자들이 분리독립을 주장하기 시작하면서 더욱 긴장되었다. 이러한 긴장의 결과로 발생한 일련의 폭력사건은 통상 공동체 상호간의 투쟁형태를 보였으나 1970년대에 이르러 타밀족 사이에 이람독립국(State of Eelam) 창설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게 되었다. LTTE는 소규모의 테러리스트 단체를 결성하고 1977년에 스리랑카 북부에 이람국 창설을 목표로 출현하였다. LTTE는 그들의 정치적 목표인 이람국 건설에 장애가 된다고 간주하는 온건 타밀족의 정치인들을 주로 암살했으며, 스리랑카 정부와 인도 정부간의 어떠한 평화적 협상도 거부하고 있다. 초기의 공격목표가 온건 타밀족에 한정되었지만 1983년 대규모의 반정부 투쟁이후에는 스리랑카 정부군, 경찰에 대한 공격은 물론 무고한 시민에 대한 무차별적 공격을 자행하고 있다. 스리랑카에 근접해 있는 인도의 타밀나두주에 근거지를 두고 활동해온 LTTE는 일반적으로 인도내에서는 테러리즘 캠페인을 하지 않았으나, 이들의 활동이 인도정부에 대한 대항세력으로 성장하자 1987년에는 LTTE의 근거지를 공격하여 LTTE의 세력은 많이 축소되었다. 16. [필리핀] 신인민군(New People's Army/NPA) 1968년에 창설된 NPA는 필리핀 공산당(Communist Party of the Philippines)의 군사조직으로 노동자 및 농민 혁명을 통해 집권정부를 전복한다는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위해 게릴라전의 전단계로 테러리즘을 활용하고 있다. 특히 무자비한 테러리즘을 통해 정부의 과도한 대응정책을 유발시키고, 정부의 무능을 증폭시켜 보다 폭넓은 대중적 기반을 다진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노동자 및 농민을 끌어들이기 위해 NPA는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이들 지역에서는 상당한 영향력을 확보하고 있다. 특히 초기에는 마르코스 대통령의 부정과 부패가 농민과 노동자들의 NPA 지원을 촉진시켰다고 할 수 있다. 창설초기에 NPA의 대원 수는 2,000여명 이였으나 현재는 약 20,000여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점차 세력이 성장하자 NPA는 공산당 활동에 대해 비판적이거나 비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는 지방정부 지도자들에 대한 암살시도는 물론 보안군, 경찰간부, NPA 정보를 제공하는 자들에 대한 살해 및 협박 등을 통해 도시지역으로까지 영향력을 확대하게 되었다. 17. [필리핀] 아부 사야프(ASG) 아부 사야프(Abu Sayyaf Group: ASG)는 필리핀 남부에서 활동하는 이슬람 분리단체중 가장 규모는 작지만 과격한 단체로 일부 대원들은 중동에서 공부를 했거나 일한 경험이 있으며 아프가니스탄에서 전투에 참가한 경력이 있거나훈련을 받으며 무자헤딘(Mjuahidin)과 연결되어 있다. 이 단체는 Abdurajik Abubakar Janjalani이 이끌고 있으며, 1991년 Moro National Liberation Front에서 분리되었다. 창시자인 Abdurajik Abubakar Janjalani는 1998년 12월 필리핀 경찰과 교전중 사망했으며, 현재는 그의 동생인 Khadafi Janjalani가 여러 당파로 구성된 이 단체의 지도자로 추정되고 있다. ASG는 이슬람교도가 많이 살고 있는 남부 필리핀 지역인 서부 Mindanao와 Sulu Archipelago을 독립 이슬람 국가로 만들기 위해 폭탄, 암살, 납치, 강탈을 자행하고 있다. 이 단체한 자행한 주요 사건은 1995년 4월 Mindanao의 Ipil 마을을 습격(첫 대규모 테러), 2000년 미국 시민을 포함한 30명 이상의 외국인들을 납치한 사건 등이 있다. 규모는 약 200명의 핵심 전투원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주로 필리핀 남부에서 활동하며, 종종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외부의 지원은 중동 지역/아시아 남부지역의 회교 과격분자들로부터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8. [알제리] 이슬람무장그룹(Armed Islamic Group/GIA) 이슬람 과격 단체인 GIA는 비종교주의 알제리 정권을 전복시키고, 이슬람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목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GIA는 1991년 12월 입법부 1차 선거에서 최대 이슬람 정당인 이슬라믹 구제 전선(Islamic Salvation Front: FIS)의 승리가 알제리 정부에 의해 무효 선언된 이후 1992년초부터 본격적으로 폭력적 활동을 시작했다. 주로 민간인, 언론인, 외국인 거주자들에 대한 공격을 주로 자행하고 있는 이 단체는 지난 수년 동안 연쇄적인 테러리즘을 펼쳤고, 그들의 활동 지역내에 있는 마을 전체의 민간인을 학살하는 인종청소를 자행하기도 했다. 1993년 9월에는 알제리에 거주하는 외국인에 대한 연쇄적인 공격을 선언한 이후 본국에서 추방된 알제리에 거주하는 외국인 100명 이상을 살해하기도 했다. 자동차 폭탄 공격 포함하여 주로 암살과 폭탄 공격이 이 단체의 공격 유형이었으며, 인질을 납치하여 무자비하게 목을 자르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GIA는 1994년 12월에 알제리행 에어 프랑스 소속 항공기를 납치하였다. 그리고, 1995년 프랑스에서 발생한 연쇄적인 폭탄 공격의 배후로 지목되어 이들 단체 소속의 테러리스트 수명이 프랑스 법원에서 유죄를 선고 받기도 했다. GIA의 세력 규모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으며, 알제리 정부에 대항하다 국외로 추방된 서유럽 거주 GIA 추종자들이 재정적 지원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울러, 알제리 정부가 1993년에 이란과 수단이 GIA를 지원하고 있다고 비난한 것으로 보아 이들 국가의 직간접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19. [아프가니스탄] 알카이다 / 알카에다(Al-Qaida/Al-Qaeda) 알-케이다(al-Qaida) 혹은 알-카에다(Al-Qaeda)는 1980년대에 구소련 침략당시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여했던 아랍인들간의 협력을 이루기 위해 오사마 빈 라덴이 설립하였다. 이 단체는 아프가니스탄 저항세력을 위한 수니(Sunni)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을 징집, 수송, 훈련시키고 경제적 지원을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단체의 목표는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와 협력하여 '이슬람이 아닌' 체제들을 타도시키고' 회교도 국가에서 서방인들 및 회교도가 아닌 이들을 추방함으로써 세계적인 범회교 칼리프 지위을 구축하는 것이다. 모든 미국 시민 및 군인 그리고 미국 동맹을 유지하고 있는 이들을 살해하는 것이 회교도인들의 임무라고 주장하며' 1998년, '세계 이슬람 전선의 반(反)유태인 및 반(反)십자군 지하드' 기치 하에 성명을 발표하고 테러리즘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 단체가 자행한 사건에는 천년 성찬식에 참가하기 위해 요르단을 방문하는 미국 및 이스라엘 관광객에 대한 테러 작전을 수행하기 위한 음모를 계획했지만 사전에 탄로가 난 바 있고, 1998년 8월 최소 3백1명의 사망자와 5천명 이상의 부상자를 발생시킨 바 있는 나이로비, 케냐, 다르 에스 살람(Dar es Salaam), 탄자니아 주재 미국 대사관 폭격 사건을 획책했고, 2001년 9.11 미 테러 사건도 이들 단체의 소행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울러, 1995년 초, 필리핀 방문당시 클린턴 전 대통령 암살을 계획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단체는 동일한 목적을 가진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훈련, 재정, 병참 등을 지속 제공해왔으며, 규모는 수백에서 수천 명에 이르는 일원을 보유하고 있고, 이집트 이슬람 지하드(Egyptian Islamic Jihad), 알-가마앗 알-이스라미야 (al-Gama'at al-Islamiyya), 우즈베키스탄 이슬람 운동(Islamic Movement of Uzbekistan), 그리고 하라캇 울-무야히딘(Harakat ul-Mujahidin)과 같은 다수의 수니(Sunni) 이슬람 과격단체들과 긴밀한 협조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알-케이다(Al Qaida)는 전 세계에 걸쳐 세력을 뻗치고 있으며, 많은 국가들에 조직 세포(cell)을 가지고 있으며, 수니 과격단체 조직망과 유대 관계를 갖고 있으며 이들로부터 대원의 증원을 받고 있다. 빈 라딘(Bin Ladin) 및 주요 참모들은 아프가니스탄에 주재하며 테러 훈련 캠프를 운영해 왔다. 사우디 아라비아 출신 빈 라딘은 그가 보유한 막대한 재산을 바탕으로 조직을 이끌어 왔으며, 또한, 알-케이다는 뜻을 같이 하는 지지자들에게 기부금을 요구하는 자금 조잘 기구를 운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 [스코틀랜드] 스코틀랜드 국민해방군(SNLA) 스코틀랜드 국민해방군(Scottish National Liberation Army)은 스코틀랜드의 과격 분리주의자 단체로 독립 스코틀랜드 공화국 건설과 고대 켈틱어(ancient Celtic language)인 게릭어(Gaelic)를 스코틀랜드의 국어로 부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SNLA는 윌리엄 왕자가 올 스코틀랜드의 세인트 앤드류스 대학에 입학하기로 결정한 이후 "윌리엄 왕자가 대학에 입학하면 그를 죽일 수 있고, 또 그렇게 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는데, 이들은 영국 왕위 계승자가 스코틀랜드 최고(最高)인 이 대학에서 공부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분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SNLA는 전역 군인 출신인 애덤 버스비(Adam Busby)가 주도하여 1980년에 결성했으며, 주로 스코틀랜드에 정착한 잉글랜드 인들에 대해 낮은 강도의 폭력행위를 저질러 왔다. 조직 규모는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지만 매우 작은 조직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난 83년 마거릿 대처 당시 총리와 찰스 왕세자에게 우편 폭탄을 보낸 것을 포함해 모두 30여건의 공격행위가 기록되어 있다. 이 중에 1983년 우편 폭탄 공격은 대처 전 총리가 100여명의 보수당 출마자들에게 연설하고 있던 북부 런던의 한 호텔로 배달된 사건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SNLA의 지도자 버스비는 이 우편 폭탄 공격 이후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으로 피신했으며, 그곳에서 아일랜드 공화군(IRA)과 제휴를 모색했으나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버스비는 지난 97년 더블린에서 체포되어 수감되었다. SNLA는 스코틀랜드 분리주의 그룹(Scottish Separatist Group: SSG)과 밀접한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SSG는 1995년 10월에 전직 스코틀랜드 국민 해방군(Scottish National Liberation Army: SNLA) 소속 대원들과 추종자들이 만든 단체이다. 이 단체는 SNLA에 대한 정치적 후원을 하고 있다. SSG는 SNLA와 마찬가지로 잉글랜드인들의 대규모 스코틀랜드 유입 정착 반대, 스코틀랜드의 국어로 게릭어(Gaelic) 사용, 독립 스코틀랜드 건설 등 세 가지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이러한 목표 달성을 위해 우선적으로 SSG는 영국(British State)에 반대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아울러, 스코틀랜드 민족주의당(Scottish National Party)을 포함한 민족주의자들에 대한 비판과 반대를 하고 있다. SSG는 특히, SNP는 스코틀랜드를 위해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으며, 이들이 원하는 것은 하원 의원에 당선되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위해 스코틀랜드인들의 순수한 민족주의 영감을 이용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21. [인도네시아] 제마 이슬라미아(Jemaah Islamiah) 제마 이슬라미아(JI)는 1990년대 중반에 조직된 과격 이슬람 테러 단체이다. 이들의 목표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폴,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Mindanao), 브르나이, 태국남부를 합하여 "독립 이슬람 국가"(Independent Islamic State)을 수립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들이 주로 활동하고 있는 말레이시아와 필리핀 지역에서 은행 강탈, 하이제킹 및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적 테러 행위를 자행해 왔다. 이 단체는 활동 영역이 인도네시아에 국한하지 않고, 싱가폴,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전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실제로 싱가폴 국가보안부(ISA)는 2002년 1월5일, 아프가니스탄 알 카에다(Al-Qaeda) 테러리스트 캠프에서 훈련받은 이들 중 15명을 긴급 체포하였다. 이들의 집과 사무실을 급습, 수색하여 폭탄 제조법을 상세히 기록한 문서, 폭파목표 물에 대한 사진, 감시망, 위조 여권 등을 압수하였다. 말레이사에서는 말레이시아 공대 교수들을 포함한 150여명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난 바 있다. 특히, 이들 단체는 전 세계에 걸쳐 이슬람 단체들과 지속적인 연대를 추진해 왔고, 실제로 이슬람 원리주의자들과는 초국가적, 초지리적 연대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지난해 발생한 미국 9.11 테러 사건의 배후 세력인 알 카에다와는 미국 테러 사건이전부터 연대를 해 왔다. 미국의 대테러 전쟁 개시 후 알 카에다 핵심 요원들이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서 도피하여 동남 아시아로 재집결하고 있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사실은 쿠웨이트인으로 인도네시아에서 체포된 알-파루크(31)에 의해 밝혀졌다. 알 파루쿠는 동남아의 여러 지역의 테러 단체들을 연결시키는 활동해왔다. 알 파루크는 필리핀에 들어가 모로 이슬람해방전선(MILF)과 연결시켰으며, 인도네시아의 아부 바카 바씨르라는 단체와 밀착하여 활동하며, 인도네시아, 필리핀, 말레이시아, 싱가폴, 태국과 미얀마의 과격 단체와 연대시키는 활동을 해왔었다. 알 파루크에 의해 알카에다 테러 단체가 아프가니스탄에서 동남아로 이동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아울러, JI는 말레이시아와 싱가폴 등 긴밀한 유대관계를 유지하는 국가들에 대한 공격을 통해 국가간의 분쟁을 야기하고 혼란을 틈타 그들의 범 이슬람 국가를 건설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혐의로 18명이 말레이시아에서 체포되기도 했다. 2001년 12월에는 C-4 폭탄을 이용하여 싱가폴, 자카르타, 쿠알라룸프의 미국 대사관 공격을 획책하기도 했지만, 이 공격 계획은 인도네시아 정보부에 핵심 요원들이 체포되어 무위에 그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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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칼럼, 장재언 칼럼 원문보기 글쓴이: 나그네 가는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