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나무》 2019년 제16호
막차 / 남정언
수영으로 이사 온 후 나들이가 편리해졌다. 동래구에 거주했을 때 버스를 탔는데 수영구 주민이 된 후 주로 지하철을 이용한다. 평소 볼일이 많은 내가 애용하는 수영역은 도시철도 3호선의 출발역이며 종점역이고, 2호선의 환승역이기도 하다.
나는 오후에 출근하여 막차를 타고 퇴근한다. 동래에서 연산역을 거쳐 종점인 수영역을 0시 20분에 도착하는데 막차를 놓치지 않으려 항상 종종걸음을 친다. 막차를 타기 위해서는 꼭 시간을 확인해야 한다. 그나마 앞차는 여유라도 있어 다음 차를 기다릴 수 있지만, 막차는 제때 타지 못하면 난감해진다. 버스가 끊기고 새벽 첫차까지 5시간 정도 공백이 생겨 할증 택시를 타거나 피시방에 가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첫차의 반대는 막차다. 새벽 지하철 첫차는 몸을 실은 사람들의 하품이 잠을 몰아내고 피곤을 털어낸다. 일터로 향하는 소시민의 바쁜 하루가 시작된다. 첫차를 타는 것이 생생하게 하루를 연다는 의미라면 막차를 타는 것은 무사히 하루를 갈무리했다는 의미다. 열두 시를 넘기고 다음 날로 이어가는 막차는 알고 보면 첫차보다 새로운 날을 먼저 맞이한다.
막차를 타면 공기가 다르다. 고달픈 직장인이 뿜어내는 알코올 냄새와 종횡무진 뛰어다닌 셔츠에 밴 시큰한 땀 냄새가 섞여 있다. 군데군데 비어있는 좌석 위에는 대낮에 보이지 않던 피곤과 한숨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시간의 무게에 눌려 졸고 있는 사람, 휴대전화만 보는 사람, 골똘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차지한 공간은 시간의 방에 갇힌 공기 같다.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는 감정과 이성도 축약되어있다.
더러 막차에서 건강미를 느낀다. 뒤숭숭한 하루를 잘 마무리하고 뿌듯해하는 젊은이 얼굴을 보면 축하할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으로 희망이 생긴다. 열심히 일한 대가가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며 소곤거리는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 있어 엿듣는 타인도 흐뭇하다. 시험 기간에는 빼곡히 적힌 노트를 부지런히 보고 익히는 학생들에게 응원을 보내며 ‘나도 옛날에 그랬었지’ 하며 잠시 생각에 잠긴다.
첫차든 막차든 대중교통은 몸이 건강해야 탈 수 있다. 몇 해 전 다리뼈가 부러져 한참 대중교통 이용을 하지 못했다. 건강을 잃으면 자가용과 달리 주변의 힘을 빌려야하기에 편리한 지하철도 일순간에 불편해진다.
막차를 탔다는 말은 마지막 차를 탔다는 뜻이다. 무엇이 끝나갈 무렵에 뒤늦게 뛰어든다는 의미와 늦게 뛰어들거나 기회를 잡을 때 막차를 탔다고도 한다. 그러고 보면 막차에는 긍정의 의미와 부정의 의미가 함께 한다.
나는 막차 타기를 꺼리지 않는다. 오히려 기회를 잡은 일이라 생각한다. 아침형 인간으로 살다가 저녁형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처음 막차를 탈 때는 허둥거렸다. 이제는 학생들과 놀면서 시간이 저절로 입력되어 신체 무리 없이 다니고 있다.
도시철도를 타려면 지하로 내려간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다시 땅 위에 올라온다. 어느 영화에서 지하가 품어내는 특별한 냄새를 행주 삶는 냄새라거나 빈곤의 냄새, 외로움과 고독의 냄새, 서민의 냄새로 표현했지만 『나는 지하철입니다』에서 지하철은 매일 같은 시간, 매일 같은 곳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덜컹거리며 실어 나른다. 삶의 씨앗이 되는 지하철 소음은 우리가 희망과 꿈을 잃지 않고 살아갈 때 위로의 소리가 된다고 그려놓았다. 삶이란 특별한 것이 아니다. 나 역시 누군가가 나를 찾으며 필요한 도움을 요청해 올 때 공존하도록 이어주는 건강한 교통수단을 막차 지하철이라 여긴다. 도시철도는 끈끈한 생명력이 살아있는 도시의 잡풀 같기만 하다.
지상과 지하는 다르다. 지상은 밝다. 일터로 학교로 바쁘게 뛰어다니는 젊은이가 힘을 발산하면서 눈이 부신 햇빛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지하는 어둡다. 나이 지긋하신 어른들이 도시철도를 즐겨 타고, 지하 광장도 그들의 휴식공간으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땅 위와 땅 밑을 걷는 다양한 시간과 주름진 표정의 연령대에서 분명한 차이를 느낀다.
가끔 역에 내려 밤바다로 직진하고 싶을 때가 있다. 한 번쯤은 막차의 경로를 벗어나고 싶지만 아직은 그러지 못해 아쉽다. 막차는 일과를 끝냈다는 표면적 목표를 달성하고, 꿈을 이루기 위해 내가 모르는 곳을 가보고 싶은 내면의 목표가 꿈틀거린다. 간절히 원하는 그 무엇은 집을 나서 돌아오기까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가 예상치 못하는 어느 순간에 찾아와 갈등을 만든다.
“이 열차의 마지막 역입니다.”
안내방송이 승객의 귀가본능을 자극한다. 내 귀엔 한밤중이니 얼른 집으로 돌아가 편히 쉬라는 소리로 들린다. 그래야 역무원이나 전동차도 쉴 수 있을 것이다. 승객들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텅 빈 종점에 도착한 막차는 멈추었지만, 첫차보다 하루를 일찍 여는 출발점이다.
막차에서 내린다. 서둘러 역을 빠져나가는 사람들의 걸음걸이가 빠르다. 가까이 있지만 보이지 않는 소중한 것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눈빛이 맑아진다. 세상살이가 쉽지 않다는 이치를 깨달은 사람들은 지상을 향해 계단을 오른다. 나는 매일 비상하는 새의 날개를 단 양 15번 출구 에스컬레이터 위에서 힘차게 새날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