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 조절 장애
아청 박혜정
2008년 순수문학 등단, 한국 문협 회원
몇 년 전 우리 가족이 미국 메인(Maine)주의 외삼촌댁을 방문 할 때의 일이다. 새벽 비행기라 거의 잠도 못 자고 비행기를 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행기에 문제가 생겨 시애틀 공항에 착륙 한다고 했다. ‘새벽부터 힘들게 탄 비행기가 겨우 시애틀까지 밖에 못 갔다니… 그것도 새로운 도시도 아니고 언제라도 가는 밴쿠버 옆 도시라니….’
‘우리 잘못이 아니니까 알아서 다 잘 해 주겠지’ 라고 생각하면서도 다음에 갈아타는 비행기를 놓칠까 걱정이 되었다. 비행기에서 내리면서 모든 사람들이 아우성치는 장면을 상상했었다. 그런데 비행기에서 내린 승객들은 아무런 불평 없이 줄을 서서 다음 비행기를 알아보고 있었다. 우리 차례가 되어 보니 내 생각과는 다르게 시카고에서 갈아타는 비행기를 연결 해주는 것도 아니고 한술 더 떠서 오늘 연결 되는 것이 없으니 비행기를 내일 타고 가라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공항에서 기다렸다가 밤에 다른 도시로 가는 비행기를 타라고 했다.
한국이라면 항의하고 비행사 측에선 사과하고 할 상황인데 모두 고분고분하면서 비행사 스케줄에 맞추어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만 불평할 수도 없어서 그 분위기를 따라 거의 하루를 소비하며 다음 비행기를 타고 하루 늦게 삼촌 댁에 도착한 일이 있었다.
또 얼마 전에는 멕시코에서 밴쿠버로 오는데 비행기가 1시간이나 늦게 출발을 했다. 비행기를 갈아타는데 2시간 정도 여유가 있으니까 별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떤 학생들은 비행기가 도착하자마자 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갈아타는 곳까지만 걸어가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착오가 생겼다. 미국으로 입국 수속을 한 후 갈아타야하는 것이어서 시간이 엄청 걸렸다.
‘미니아폴리스’ 라는 도시가 비행기를 갈아타는 도시인지 입국 수속을 하는데 줄이 엄청나게 길었다. 아까 그 학생들은 비행기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고 양해를 구하면서 앞으로 앞으로 갔다. 기다리면서도 ‘설마? 비행기를 놓칠까?’ 라는 생각으로 기다렸다.
그런데 다시 입국 신고부터 짐 검사…. 갈아타는 비행기의 출발시간이 얼마 남지 않게 되자 비행기를 놓칠 것 같아 점점 초조해 왔다. ‘아까 그 학생들처럼 먼저 양해를 구하고 갔어야 했나?’ 이젠 비행기를 타야하는 시간까지 15분정도밖에 남지 않았는데 아직도 컴퓨터로 수속만 마친 상태였다. 입국 심사를 기다리는 줄은 줄어들지 몰랐다.
암만해도 시간 내에 비행기를 탈 수 없을 것 같아 구부러진 줄 앞에 서있는 분께 양해를 구했다. “다음 타야하는 비행기가 15분밖에 안 남아서 그런데 양보를 해주실 수 있어요?” 그랬더니 그 분은 “나는 5분밖에 남지 않았어요.” ‘다들 상황이 급한데도 이렇게 줄을 서 있구나!’ 라고 생각하고 나도 조용히 순서를 기다렸다. 짐 검사를 하고 입국 수속을 마치니 출발 시간보다 5분이 지나있었다. ‘설마 비행기가 떠나지 않고 기다리겠지.’
‘세상에!’ 인정 없이 비행기가 가고 없었다. ‘아니 뭐 이런 경우가 있지? 다른 비행기회사도 아니고 같은 항공사 것을 갈아타는 건데….’ 기가 막혔다. 터덜터덜 항공사 리셉션을 찾아 갔다. 그 직원은 단지 “I am sorry"라고만 했다. ‘이게 다야?’ 어이가 없었다. 게다가 오늘 가는 비행기는 없어서 내일 아침에 타야한다고 했다. ‘만약 중요한 약속이 있었으면 어떻게 할 뻔 했지?’ 무슨 보상도 없고 단지 오늘 하루 호텔비만 지불 해 준다고 했다. 별 도리가 없어 따져 보지도 못 하고 다음 날 비행기를 타고 밴쿠버로 왔다.
한국에서는 무슨 일만 생기면 엄청나게 시끄럽다. 예를 들어 기차가 늦거나 하면 직원에게 항의하고 표를 파는 창구가 부수어지고 하는 것을 뉴스에서 보게 된다. 또 ‘욱’ 하는 기분에 사건 사고도 많이 일어난다. 심지어 ‘묻지마 살인’ 이란 끔직한 일도 생겨나고 있다. 이런 것들이 분노 조절 장애에 의한 것들이다.
이곳 사람들은 앞의 사례처럼 자기 스케줄이 엉망이 되고 불편하고 해도 어떻게 이렇게 조용한지 궁금했다. ‘상대편의 입장에 서서 이해를 하기 때문에 분노 조절을 잘 하고 있기 때문일까?’ 화를 내서 일을 해결하려고 하는 것 보다 분노 조절을 잘 해서 일을 처리하는 것이 좀 더 성숙된 행동 같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를 하려고 노력해 보면 분노 조절이 잘되고 그렇게 함으로써 오히려 자기가 더 편해짐을 느낄 수 있다. 결국은 그렇게 하는 것이 자기 자신의 정신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