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시작은 육십 넘은 한 지인의 사고로부터 시작된다
전날 교회에서 함께 웃으며 식사를 나누었던 임 집사님이 다음날 높은 사다리에서 떨어져
머리를 다쳐 병원에 실려 가서 의식을 못 차린 채 중환자실에 누워 있다면서 기도 부탁 연락을 받았다
며칠 후 옆지기와 함께 바닷가에 있는 Seaside 병원을 찾아 병문안을 갔다
뇌진탕인데 왜 수술을 안 하고 이렇게 시간을 보내느냐고 물었더니
다친 부위가 민감한 신경들이 밀집한 곳이라 수술을 할 수가 없다는 게 의사의 소견이란다
여러 개의 선으로 이어진 각종 측정기와 호흡기를 코에 단 채 누워있는 그분은
얼른 보면 자는 듯 평온해 보였다
하지만 수일 내에 정신이 돌아오지 않고 오래 무의식으로 지내게 되면
신체 속에서 장기들이 손상을 입을 수도 있고 이대로 영영 깨어나지 못하고 갈 수도 있다는 걱정에
그 부인과 자녀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날짜는 자꾸만 지나고 환자는 깨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보험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경제적으로 상당히 어려워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교회에서는 몇 가지 음식을 준비해서
바자회로 모금 활동을 해 병원비를 돕자는 의견이 나와 여전도회에서 일을 추진하게 되었다
필요한 음식 재료들을 조금이라도 싸게 사기 위해서 이곳보다는 큰 도시인
San Antonio 에 가서 사 오기로 하고 두 분 집사님이 화요일에 다녀왔다
난 이곳에 온 지 반년밖에 되지 않아 여러 가지 상황도 잘 모르고 또
그동안 몇몇 봉사 활동을 해 봤지만, 음식 바자회는 처음이어서 일단 보조를 하겠다고 했다
수요일 오후부터 음식을 준비하기로 했었지만, 이런저런 형편상 목요일부터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수요일 저녁 예배 시간에 맞춰 교회에 가니 몇몇 집사님들이 벌써 양파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고기 양념 깍두기 양념들 각종 양념을 믹서기에 갈면서 준비를 하고 계셨다
왜 안 불렀느냐고 물었더니 여러 사람이 할 만한 일이 별로 없어서 다음날부터 해도 된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달랜다
목요일 점심을 함께 먹고 일한다고 해서 낮 열두시 조금 지나 도착해보니 벌써
여러 사람이 와 있었고 점심 준비로 바쁜 전주 출신 김 집사님은 메밀국수 하신다더니
메밀 면은 이미 삶아서 일 인분씩 사리지어 놓고 새우와 각종 튀김을 튀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거기에 모밀전병까지 준비해 평소에는 돈이 있어도 먹을 수 없었던 고급스러운 점심을 함께 나누었다
점심을 배불리 너무나 잘 먹고 드디어 일 시작, 무엇을 할까 사모님께 물으니 무를 맡으라고 하신다
난 여덟 상자나 되는 무를 다듬어 물에 씻고 깍두기로 써는 작업을 맡았다
물론 혼자서는 아니고 서너 명의 여 집사님들과 나의 옆지기 그리고 전도사님까지,,,
거의 김장하는 수준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될 것이다
한참 무를 다듬고 씻어 드디어 깍두기로 써는데 이게 웬일인가, 무가 바람이 들고 상태가 영 좋지 않다
한두 개도 아니고 많은 양이 그러니 이미 씻어 준비해 둔 유리병들이 무색할 지경이다
여기저기서 한숨이 이어지고 그래도 할 수 있는 만큼 해 보자고 하면서 이리저리 돌려가며 무를 썰었다
원래 예상했던 깍두기 양의 반 정도 무를 썰어놓고 거의 반이나 남긴 무가 아까워서
아쉬운 대로 무생채를 해 보자고 해서 채칼로 무를 채 치는데
옆에서 목사님의 무채 써는 솜씨가 웬만한 주부 뺨칠 지경이다
깜짝 놀란 옆지기가 이렇게 목사님이 이렇게 무를 잘 써느냐고 묻길래
옆에서 내가 농담으로 신학교에 가면 뭐든지 다 가르쳐 주니
거기서 배웠을 거라고 한마디 거들어 모두가 웃음바다가 되었다
전날 준비한 양념으로 깍두기를 버무려 유리병에 담아 한쪽으로 치워놓고
무생채도 새콤달콤 버무려 내일 용기에 담기 위해 한쪽으로 밀어놓았다
옆에서는 다음날 구울 녹두 빈대떡도 미리 한번 구워보자고 녹두를 조금 갈아 후다닥 몇 개 부쳐서 시식을 했다
그 와중에 간에 맞다 아니다 짜다, 고기를 더 넣어야 씹는 맛이 좋다 등등 의견들이 분분했다
참을 먹을 시간, 부엌에서 목사님이 잘 발효된 반죽으로 수제 호떡을 구워 맛보라고 한 접시 들고 나오셨다
오, 달콤하고 고소한 바로 그 맛, 성직자가 칼질도 잘하고 호떡도 잘 굽고, 완전 만능이다
거기에 올갱이 묵이라는 정말 야들야들한 묵까지 쑤어 얌전히 유리그릇에 담아 내놓으니 더이상 할 말이 없다
우리가 이 일을 하는 사이 부엌에서는 솜씨 좋은 집사님이 저녁에 먹을 된장국을 구수하게 끓이고 있었다
불고기 한 주먹 양념에 무쳐서 볶고 낮에 먹던 튀김도 다시 나오고 무생채와 함께 한 그릇씩 먹은 후
다음날도 점심 전에 모이자고 확인을 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금요일 점심 전에 교회에 가니 오늘도 역시 여러 집사님들이 벌써 도착해서 준비를 하고 계셨다
새싹 채소와 오방국수로 비빔국수를 맛나게 한 그릇씩 점심으로 나누어 먹고 바로 일을 시작했다
내가 맡은 일은 또다시 채소 손질, 불고기에 함께 볶아 먹을 양파 양배추 당근 파를 다듬고 씻고 자르고
양념 된 불고기와 같은 크기의 봉지에 하나씩 넣어 옆에 두고 원하는 사람들이 가져가도록 하는 것이었다
양파 세 망과 양배추 여섯 통 그리고 당근과 파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고루 섞은 후 봉지에 담는 일도 꽤 오래 걸렸다
결국 요령 없는 나는 칼질로 생긴 물집이 터져서 반창고를 붙여야 했고
칼 가는 기구를 들고 와서 칼갈이로 나선 옆지기는 실수로 엄지를 크게 베는 사고를 쳤다
우리 옆에서 다른 팀은 불고깃감으로 앏게 썰어온 돼지고기를 두어 번 더 자르고 일일이 펴서
매운 양념 불고기와 간장 양념 불고기, 두 종류로 고루 섞어 저울까지 동원해서 정량에 맞게 봉지에 담았다
얼마나 맛있는지 궁금하다고 얼른 프라이팬에 구워 여기저기 한점씩 입에 넣어주기도 하였다
중간중간 알아서 쉬라며 우리 교회 만능 집사님이 쥐포를 불에 구워 주시고 또 기름에 튀겨 주시기도 했다
어디선가 달콤한 찹쌀떡도 등장해서 하나씩 포장을 벗겨 하얀 분을 입가에 묻히며 나누어 먹기도 하니,
봉사하러 나왔다가 넘쳐나는 먹거리에 체중이 엄청 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쑤욱 내려간 깍두기 병에 아귀까지 두어 주걱씩 더 채워 넣고 깨끗이 닦아 예쁘게 정렬해 놓았다
바로 쓸 수 있게 손질이 다 된 꽃게 몇 상자는 양념게장을 무치기로 했는데 저녁이 다 되도록 해동이 안 되어
결국 못하고 내일 아침에 하자고 하고 상위에 벌려 놓은 채 일을 마무리해야만 했다
녹두 빈대떡 또한 미리 만들어 포장해도 넣어둘 냉장고 공간이 없다면서 내일 아침 일찍 나와서 만들기로 했다
이것저것 먹어서 배도 안 고픈데 그래도 그냥 가면 섭섭하다고 기어이 피자를 시켜서 나누어 먹고
푹 쉬고 아침에 일찍 모이자는 약속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드디어 바자회를 하는 토요일 아침,
열 시 부터 판매를 한다고 광고를 했으니 늦어도 일곱시에는 빈대떡을 시작해야 했다
아침에 알람에 맞춰 일어나 준비하는데 옆지기도 따라 일어난다
딱히 할 일도 없을 테니 집에서 쉬다가 느지막이 데리러 오겠다고 했더니
그래도 뭔가 할 일이 있을 테니 자기도 함께 가겠다고 한다
교회에 도착하니 새벽 네시에 오셔서 양념게장을 다 만들어 놓으신 김 집사님과
목사님 사모님 여러 집사님들이 벌써 오셔서 분주하시다
벽에 붙인 테이블에는 언제 포장을 했는지 묵과 무생채 그리고
무말랭이 무침과 오징어 젓갈이 얌전히 자리하고 있었다
장 집사님이 집에서 직접 만들어 가져온 식혜도 용기에 담겨 한자리 차지하고 있었다
커피 한잔으로 목을 축이고 바로 빈대떡 부치기에 들어갔다
휴대용 불판이 줄줄이 나오고 그 위에 프라이팬과 뒤지개가 자리하고
기름병과 고기와 채소가 적당히 들어간 녹두 반죽과 완성품을 꺼내어 놓을 채반까지,,,
고운 꽃장식을 위해 조그마하게 자른 빨강 피망과 쑥갓까지 자리하니 준비 끝
불판 불 조절하고 기름 두르고 아담하고 곱게 꽃도 올리며 정성 들여 빈대떡을 부쳤다
프라이팬 두 개에 세 개 또는 네 개를 한꺼번에 부쳐 내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약간 탓거나 모양이 제대로 되지 않는 빈대떡은 바로 시식용으로 잘라서 여기저기 보내졌다
시간 내에 안되면 어쩌나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열 시 조금 전에 모두 완성
네 명이 부쳐대니 엄청난 양의 빈대떡이 완성되어 세 개씩 포장되어 나온다
우리 옆지기의 숨은 재주를 오늘 발견했으니 그건 바로 랩(포장)
오늘부로 그는 코퍼스 크피스티의 래퍼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따끈하게 구워서 바로 팔기로 한 호떡은 아홉 시쯤 만들기 시작했는데
이 호떡이 오늘의 불티나는 인기상품일 줄 누가 알았으랴
우리 목사님 큰 키에 맞춰 전기 프라이팬을 빈 상자 위에 높이 올려놓고 만드시는데
옆에서 두 사람이 보조를 해도 오래 천천히 구워야 하는 까닭에 진도가 안 나간다
나도 돕겠다고 손에 기름 바르고 몇 개 만들었는데 자꾸만 실패작이 되면서
별로 도움이 안 된다고 정중하게 퇴짜를 맞았다
일착으로 온 손님은 미국 아저씨, 둘러보시고 몇 가지 사 가시면서 호떡 맛보기도 한 입
더러 맛보기로 잘라 먹고 더러 포장해서 진열하기가 바쁘게 팔려 나가더니 급기야는 예약 주문이 쇄도한다
오시는 손님들이 대부분 아는 얼굴들이라 반갑게 인사도 나누고 진열된 물건을 팔며
상자에 하나 가득 담아 들고 나가시는 고마운 동네 사람들
한쪽 테이블에는 아예 자리 잡고 판을 벌여 나누어 먹기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인기 짱 호떡은 마지막까지 하나까지 다 팔려 우리들이 미리 사 두었던 것까지
소문 듣고 찾아온 손님에게 다시 꺼내어 팔아야 하는 웃지 못한 사태까지 벌어졌다
애초에 계획은 아침 열 시 부터 오후 세 시까지 판매를 하기로 했는데
한 시쯤에 물건이 동나서 나중에 오신 분들은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바쁘니까 번갈아 가면서 점심을 먹으라고 해서 어제부터 준비한 우거지 갈비탕을
커다란 대접에 하나씩 떠 주어서 밥 한술 말아 후루룩 먹었다
오전 내내 이것저것 시식용 음식을 집어 먹었는데 또 이렇게 국밥이 들어가는 게 신기했다
바자회가 끝나고 마무리하는 일은 힘들어도 모두들 웃는 얼굴이었다
우리의 형제인 임 집사님을 위한 일이고, 또한 각자 받은 달란트를 주 님앞에 바로 쓴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피를 보면서까지 사흘간 아픈 몸으로 봉사에 함께한 옆지기에게 고맙다고 하니
손사래를 치면서 낚시 친구가 어서 일어나 다시 함께 낚시 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우리 모두 가슴에 팔을 모두어 양 어깨 토닥토닥 두드리며 잘했다고 스스로를 칭찬했다
이제 이 작은 도움이 큰 힘이 되어 임 집사님 가정에 위로가 되고
또 전능하신 능력자의 힘으로 어서 털고 일어나시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