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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나] 세종이 눈병, 임질을 앓았다고?기사입력 2015.10.01 8:48 AM
/하늘땅한의원 장동민 원장
문1. 자, 매주 목요일은 <조선왕조실록>과 <동의보감>을 통해 <왕의 건강법>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입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4대 임금 세종의 질환에 대해서 2부를 말씀해주신다고 하셨죠?
답1. 네, 맞습니다. 지난주에 미처 말씀드리지 못한 부분들이 제법 있어서 이른바 ‘세종 2부’를 해야만 합니다. 이로 미루어 보면, 세종대왕은 역시 질병에서도 대왕이십니다. 자, 특히 세종을 말하면서 꼭 언급해야할 부분이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눈병입니다.
문2. 저도 웬일로 눈병이 빠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래도 세종의 눈병은 당뇨로 인한 합병증으로 보아야 할 것 같은데, 실제 어떻습니까?
답2. 네 말씀하신 대로 당연히 당뇨도 원인에 포함되는데요, 세종의 경우에는 하나 더 추가로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세종이 세자시절일 때부터 너무 책에만 열중하여, 아버지 태종이 건강을 해칠까 매우 우려하여 책을 다 치워버렸다는 얘기인데요. 세종은 그 정도로 글을 너무 많이 읽었기에 눈이 나빠질 수밖에 없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실제 세종 24년 8월 24일의 기록을 보면, 왕 스스로 서류를 볼 때 “반쯤 읽고는 눈을 감고 쉬어야 다음을 펴 읽을 수 있을 정도”라고 언급한 것을 미루어 볼 때, 눈을 너무 혹사해서 생겨난 증상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실제로 <동의보감>에서도 독서로 눈이 나빠진 경우에 대하여 언급을 해놓았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사람이 눈을 많이 사용하면, 혈(血)을 상하게 되고, 눈도 따라서 손상된다고 하였고요, 또한 글을 과도히 읽으면 간(肝)을 상하게 되는데, 간이 상하면 풍열(風熱)이 나고 열기가 상승하여 눈을 침침하게 만든다고 하였습니다. 실제로 피로와 가장 연관성이 깊은 곳은 바로 ‘눈’이라 할 수 있으므로, 눈은 피로를 재는 척도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문3. 아, 한의학에서는 책을 많이 보는 것도 눈이 나빠지는 원인으로 보았군요. 그럼 원장님, 여기서 나빠지는 것이 시력인가요, 아니면 염증이나 백내장, 녹내장 같은 안과질환을 의미하는 것인가요?
답3. 원칙적으로 모두 다 해당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세종 21년 6월 21일의 기록을 보면 세종 스스로 자신의 증상을 비교적 상세히 기록해놓았는데, ‘왼쪽 눈이 아파 안막을 가리는데 이르고, 오른쪽 눈도 어두워서 한 걸음 사이에서도 사람이 있는 것만 알겠고 정확히 누구인지를 모르겠다’고 얘기하면서, 세자에게 강무를 위임하겠다는 뜻을 밝힙니다.
다시 말해 왼쪽 눈은 통증이 느껴지고, 오른쪽 눈은 시력이 떨어져 가까운 사람도 분간이 안 된다고 호소한 것이지요. 세종은 결국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7월 2일에 세자로 하여금 강무하게 하는 전지를 초하도록 하는데, 이때도 이유는 안질 즉, 눈의 병 때문이라고 적어 놓았습니다.
세종 23년 2월 20일의 기록에는 ‘임금이 안질로 인해 공사업무 축소를 승정원에 전지하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같은 해 4월 9일에는 “내가 안질을 얻은 지 이제 4, 5년이나 되었는데, 금년 정이월에는 왼쪽 눈이 거의 실명하다시피 하였었다. 목욕한 뒤부터는 매우 신효(神效)가 있어 실명하는 데에 이르지 않았다”고 얘기해서 일반적인 눈병 정도가 아니라, 시력을 잃고 실명할 위기까지 갔다가 가까스로 치료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문4. 세종의 눈병 증상은 참 다양했었군요. 이런 세종의 눈병은 치료 예후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네요. 당뇨 즉 소갈 같은 경우에는 평생토록 세종을 괴롭혔다고 되어있는데, 눈병은 어떻습니까?
답4. <왕조실록>을 보면, 세종은 이러한 눈병을 치료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합니다. 세종 23년 윤11월 20일에는 중국에 약을 구하는 기록이 나오고, 세종 25년 1월 10일의 기록에는 눈 치료를 위해 온천욕을 세 번이나 했다는 기록이 나오며, 26년 1월 27일의 기록에는 질병을 치료한다는 초수(椒水)라는 물이 있는 곳을 아뢴 자에게 목면을 하사하고 거둥하여 안질을 치료하고자 행궁(行宮)을 세우게 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또한 같은 해 6월 10일의 기록에는 인천에 있는 샘물이 안질과 종기를 치료한다는 보고를 받고 신하를 보내 살피게 했다는 기록이 나오며, 윤7월 23일의 기록에는 안질을 앓고 있는 신하들에게 초수의 효과를 시험해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다음해인 27년 3월 16일에는 안질약을 바친 백성에게 물품을 하사한 기록이 나오는데, 드디어 세종 31년 12월 3일의 기록에 “나의 안질은 이미 나았다”라는 말이 나와서, 드디어 안질이 모두 치료되었다고 선언합니다.
문5. 당뇨와 달리 눈병은 치료가 되었다니 다행이네요. 자 원장님 이 밖에 세종이 앓았던 주요한 병증은 또 없을까요?
답5. 물론 있습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세종은 과도한 스트레스로 고생했었는데요. 이로 인한 병증 중에서 젊은 나이에 흰 머리카락이 생겨 고민했던 기록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세종 13년 8월 18일의 <왕조실록>을 보면, 세종이 자신의 관자놀이와 귀 사이의 머리카락이 하얘진 것을 언급하면서 한탄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내 나이가 33세인데 머리카락이 갑자기 세었으므로, 곁에 모시는 아이들이 놀라고 괴이히 여겨 뽑고자 하기에, 내가 말리며 말하기를, ‘병이 많은 탓이니 뽑지 말라’고 하였다. 나의 쇠함과 병이 전에 비하여 날마다 더욱 심하다”고 말해서, 세종대왕이 젊은 나이에 흰 머리카락이 나타난 점에 대해 심히 걱정했을 볼 수 있습니다.
문6. 아, 젊은 나이에 흰 머리가 나는 원인을 스트레스로 보고 있군요?
답6. 네 맞습니다. 예전에 <백발마녀전>이라는 영화가 있었는데요, 그 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심각한 고민 때문에 하룻밤을 꼬박 새고 났더니 머리가 하얘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래서 ‘백발마녀’라는 별명이 붙게 되는데, 이렇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되면 머리가 빨리 하얘지게 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문학작품에도 심각한 고민 끝에 ‘하룻밤 새 머리가 하얘졌다’는 표현이 많이 나타나는데, 스트레스와 조기 백발과의 관계를 실생활에서 증명해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세종대왕의 경우에도 건국초기 수많은 스트레스가 조기백발의 원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실 원래 조기백발의 경우에는 비뇨생식 계통이 약해진 것이 원인인 경우가 더 많지만, 이렇게 스트레스가 원인인 경우에는 누적된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심기를 보강시켜주는 치료를 하게 됩니다.
문7. 과도한 스트레스뿐만 아니라 비뇨생식 계통의 약화가 조기 백발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얘기가 재미있네요. 원장님, 말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주위에서 이런 말들을 해요. 성군인 세종대왕이 “성병에 걸렸었다”고 하는데, 이런 오해를 하시는 분들을 위해서도 한 말씀 해주시죠.
답7. 세종 20년 4월 28일의 <왕조실록>기록을 보면, 세종이 세자로 하여금 섭행(攝行)해 다스리게 하려는 기록이 나오는데요, 신하들이 이 지시에 대해 극렬 반대를 하자, 세종 스스로 자신이 앓고 있는 병을 나열하면서, 세자가 섭정하는 것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합니다. 그런데 이 때 나열된 질병 중에 자못 특이한 질환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임질(淋疾)입니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이 바로 이 조문을 보고, 성군인 세종대왕이 성병을 앓았다고 잘못 오해하게 된 건데요. 이는 용어에 대해 잘못 이해를 했기 때문에 생겨난 오해입니다. 실제 성병은 <동의보감>에서는 ‘양매창(楊梅瘡), 천포창(天疱瘡), 하감창(下疳瘡), 신장풍창(腎臟風瘡)’ 등의 이름으로 불렸는데, 임질이라 불리는 질병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현대 성병의 대명사로 사용되는 ‘임질’과 조선시대에 사용된 ‘임질’이라는 병명은 서로 다른 질환인 것입니다.
문8. 결국 세종대왕이 앓았던 ‘임질’이란 병은 성병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군요. 그렇다면 그 당시의 임질은 어떠한 병이었는지요?
답8. <동의보감>에서 임질(淋疾)은 소변이 좁쌀 같고 아랫배가 당기며 아픈 증상을 말하는 비뇨생식기 질환입니다. 임질의 발생은 그 원인이 모두 비뇨생식기능을 담당하는 장기인 신(腎)의 기운이 허약하면서 방광에 열(熱)이 생겨난 데에 그 원인을 둔다고 되어 있는데요, 결국 소변에 이상인 생긴 모든 경우를 통틀어 임질이라고 합니다.
<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기를, 이 병을 앓은 자가 모두 말하기를, ‘비록 나았다가도 다시 발작한다’ 하며, 또 의원이 이르기를, ‘이 병을 치료하려면 마땅히 희로(喜怒)를 하지 말고 마음을 깨끗이 가지고 화락하게 길러야만 한다’고 해서 육체적 정신적 피로가 임병의 원인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