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충제를 먹었다. 매년 한 번씩 먹는 구충제지만 먹을 때마다 옛날 어린 시절의 기억이 아련히 되살아난다.
그때는 아이들 얼굴을 보면 그 집의 형편을 알 수가 있다. 가난한 집 아이는 몰골이 볼 폼이 없었다. 영양이 부족하고 목욕을 자주 하지 못하여 머리에는 부스럼이나 기계충이 나 있다. 얼굴에는 마른버짐이 피고 몸에는 종기가 나기도 했다. 머릿니와 몸에 기생하는 이蝨, 몸속에 사는 기생충은 남녀노소 다 몸에 지니고 있었다. 이런 종류의 병이나 기생충은 요즘처럼 잘 씻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적당히 운동을 하면 생기지 않는 것들이다.
1950년대 기생충 감염률이 세계 1위로 국민 누구나 기생충을 몸에 지니고 있었다. 생활환경이 나쁘고 마땅히 구충할 약이 없다 보니까 기생충이 많아 기생충 왕국이라는 달갑잖은 별명을 얻었다. 아이들 뱃속에도 여러 가지 기생충이 득시글거렸다. 그중에서도 회충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었다.
기생충이 많은 원인은 가축의 인분이나 사람의 인분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인분을 충분히 썩혀서 사용하면 되는데 거름이 부족했으므로 썩히지 않은 인분(쌩똥)을 사용했다. 이런 관계로 채소 같은 것을 제대로 씻지 않거나 손을 잘 닦지 않고 음식을 먹으므로 감염이 되었다.
산토닌이라는 구충제가 나오기 전에는 민간용법으로 비자열매, 석류, 들깨풀, 꽈리 등 기생충에 약효가 있는 식물을 달여 먹었다. 휘발유가 시중에 판매되면서 어떤 사람은 휘발유를 마시기도 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산토닌이라는 구충제를 먹였다. 산토닌은 회충을 마비시켜 체외로 배출시키는 약이다. 그런 이유로 먹기 전날에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아침을 먹지 말고 등교를 하라고 했다. 아침을 거르고 약을 먹으면 배 속에 있는 회충이 음식물인 줄 알고 넙죽 받아먹고는 기절을 한다. 회충이 기절해 버리면 대변과 같이 배출이 되었다. 안 그래도 먹는 것이 부실한 아이들은 아침 한 끼를 굶으면 더 비리비리하다. 선생님의 말씀이 법인지라 누구 하나 어기지를 않고 빈속으로 등교를 한다.
선생님은 노란 주전자에 물을 가득 받아놓고 약을 교탁 위에 놓은 후 아이들을 번호 순서대로 부른다.
아이들은 약을 먹어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아기 때 아프면 숟가락에 영사를 개어서 먹었다. 간혹 약을 먹을 때도 가루로 만들어 먹었지 알약을 통째로 먹어보질 못했다. 산토닌은 한 알도 아니고 여러 알을 먹어야 한다. 약을 보고 지레 겁을 집어먹고 주춤거린다. 선생님이 약과 물을 한 컵 주면 눈을 질끈 감고 입에 떨어 넣고 물을 마신다. 물만 넘어가고 약이 목구멍에 걸려 캑캑거린다. 아이는 놀란 눈으로 선생님을 쳐다보면 선생님은 눈을 부라린다. 아이는 선생님의 표정에 겁을 먹고 꿀떡 삼킨다. 그리고 물을 한 컵 더 마신다.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다. 선생님은 잘했다고 엉덩이를 두들겨 준다. 어떤 아이는 물을 3컵 4컵 마시고도 약을 넘기지 못해 선생님이 가루로 만들어 먹이기도 했다. 아침을 먹지 않아서 꼬르륵 소리가 나던 뱃속에 물이 들어가면 현기증이 가신다.
산토닌은 독한 약이다. 많이 먹으면 사람이 죽는다. 잘 먹지도 못하는 아이들에게 한 끼를 거르고 독한 약을 먹여놨으니 뱃속에서 회충이 요동을 친다. 산토닌을 먹고 한 시간쯤 지나면 약에 취한 아이들 얼굴이 핼쑥해진다. 눈에 보이는 사물은 온통 노랗게 보이고 오줌을 누면 색깔이 노랗다. 하늘이 노랗게 맴을 돌아 책상에 엎드린다. 평소 같았으면 수업시간에 엎드리면 야단이 나지만 그날만큼은 선생님은 관여치 않고 아이들 편한 데로 내버려 두었다. 공부를 마치고 집에 갈 때 다리까지 허정거린다.
아침을 거르고 약을 먹는 것까지는 괜찮았다. 그다음이 문제다. 선생님은 회충이 몇 마리 나왔는지 마릿수를 세어오라고 하신다. 아이들은 난감한 표정을 짓지만 지엄한 선생님의 말씀을 거역할 수가 없다. 아이들은 변소에 가지를 못하고 거름짜리에서 볼일을 보고 난 후 막대기로 몇 마리가 나왔나 헤아려서 선생님에게 보고를 한다. 대부분 창피하니까 마릿수를 줄여서 말한다. 개중에는 더덜이 없이 나온 대로 말하는 아이도 있다. 더덜이 없이 말하는 아이에게는 선생님은 정직하다는 칭찬의 말씀도 잊지 않으셨다. 이처럼 선생님은 아이들이 속이고 있다는 것을 다 알고 있지만 모른 척하고 넘어간다.
선생님에게 말할 때도 아이들 개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큰소리로 반 전체가 다 듣도록 말하는 아이, 작은 소리로 이야기하는 아이, 선생님 귀에다 대고 소곤소곤 말하는 아이, 대체로 남자아이는 시큰둥하게 헤아린 마릿수를 말한다. 여자아이는 얼굴이 빨개져서 남이 듣지 않도록 선생님 귀에다 소곤소곤 말을 한다. 선생님은 교무수첩에 일일이 기록을 한다. 교탁하고 가까이 앉은 녀석이 정신을 집중해서 여자아이가 선생님에게 말하는 마릿수를 공책에다 기록해놓는다. 쉬는 시간에 누구누구는 몇 마리 나왔다고 까발리면 그 아이는 울고불고 야단이 난다.
약을 기생충이 있어나 없어나 누구나 먹이던 기생충 구제도 과학적으로 발전이 되었다. 채변검사를 하여 아이의 뱃속에 어떤 종류의 기생충이 들어 있는가를 검사한 후 약을 주었다. 채변검사를 하자면 자신의 대변을 콩알만큼 때어 봉투에 넣어 가지고 와야 한다. 콩알만큼만 가지고 와도 되는데 한 덩어리를 가지고 오는 아이도 있었다. 미쳐 가지고 오지 못한 아이는 많이 가지고 온 아이의 대변을 나누어 낸다. 친구나 내 몸에 들어있는 기생충이 비슷해서 괜찮았지만 머리가 둔한 아이는 동물 똥을 넣어 선생님에게 야단을 맞기도 했다. 지금은 기생충 구제는 개인위생이므로 학교에서 채변검사를 하지 않을 뿐더러 약도 주지를 않는다.
아이들은 횟배를 자주 앓았다. 아이의 배를 보면 회충이 뭉쳐 탁구공 같은 것이 볼록 튀어나와 있다. 이러면 배가 아프다. 할머니나 어머니는 이런 현상을 알기 때문에 아이를 무릎에 눕혀놓고 할미 손이 약손이다. 엄마 손이 약손이다. 하면서 배를 슬슬 문지르면 뱃속에서 요동치든 회충이 스르륵 풀려 배가 아프지 않았다. 아이는 따듯한 손길에 스르르 잠이 들었다.
그 따뜻한 손의 촉감이 꿈을 영글게 하는 자양분이 되었다. 이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힘의 원천이 되었다. 그리고 부모님과 고향을 그리게 하는 추억의 손길이 되었다.
구충제를 먹으면서 그때 그 시절이 생각난다. 어머니의 따뜻한 손의 촉감이 남아있는 배를 슬슬 문질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