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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해서 "야매"의 뜻을 찾아보면 이렇게 나오는데 대체로 실생활에서는 남이 하는 것은 "야매"라 부르고 내가 하는 것은 "꿀팁"이라 부르고 있다.
90년대 초반 군대를 전역하고 다시 산악부 활동을 시작할 무렵 폐츨사에서는 새로운 빌레이 장비인 "GriGri" 를 출시하였다.
입대전 고교 산악부, 대학 산악부 활동을 하면서 줄기차게 애용하던 8자 하강기와는 차원이 다른 획기적인 빌레이 장비라고 소개가 되었다.
일부 클라이머들은 이를 두고 "신의 축복"이라고 까지 하였으니 GriGri의 유명세는 대단하였다.
지금도 구글링으로 "Petzl" 이라고 치면 뒤이어 자동완성으로 따라 오는게 GriGri 일 정도로 GriGri는 클라이머들에게는 스테디셀러 장비가 되었다.
그전까지 빌레이 장비겸 하강기로 마르고 닳도록 사용하던 8자 하강기가 수동장비라면 GriGri는 요즘 나오는 자율주행 차량의 "충돌방지 자동제동장치" 같은 차원이 다른 장비였던 것이다.
복학을 준비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 거액(?)을 들여 GriGri를 입양하고 먼저 사용하던 선배들의 기술지도(?)를 받으며 실전등반에 사용하면서 어느덧 나 자신도 "GriGrir교"의 신봉자가 되어 있었다.
이후 20년 가까이 이어오던 GriGri는 "GriGri2", "GriGri Plus"로 개량되면서 성능과 기능이 향상되어 갔다.
나는 초창기 구입한 GriGri를 근 20년 가까이 사용하다가 전문등반을 접으면서 암벽에 입문하는 후배에게 물려주기까지 제법 유용하게 사용하였다.
사실 내가 지금 GriGri 썰을 푸는 것은 GriGri에 대해서 이야기 하려는 것이 아니라 서두에 언급한 "야매"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자 함이다.
자주 강조하는 이야기지만 체계적인 이론과 시스템 교육 없이 스킬과 경험만을 가지고 등반을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할 수 있다.
내가 후배들에게 등산학교나 정통 산악부 교육을 추천하는 이유도 바로 그런 연유다.
특히 등산기술은 배워서 남주는게 아닌, 확실히 자기에게 남는 기술이니 더욱 그러하다.
2007년 어느날 평소 함께 자일을 묶던 등산학교 동문들과 인수봉을 등반하기 위해 도선사 주차장에 집결 하였다.
처음 보는 클라이머 A씨가 참석하였는데 그는 우리팀의 리더인 B선배의 게스트로, 비록 동문은 아니었지만 오랜 실전등반 경험과 실력있는 등반가라 소개 받았기에 큰 망설임 없이 자일을 묶었다.
사실, 전통적인 자일 파티는 같은 시스템을 교육 받고 같은 스킬을 사용하는 익숙한 파트너가 아니라면 함께 자일을 묶는 것에 대해서 신중할 수밖에 없다.
요컨대, 그가 전설적인 등반가 이본 취나드(Yvon Chouinard)라고 해도 결코 같은 시스템과 같은 용어, 같은 스킬을 공유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한번쯤 꺼려지는게 사실이다.
어쨌든 우리팀은 취나드B길에 붙었고 선등이 나가고 빌레이어가 "신이 내린 축복" GriGri로 Lead belay(선등자 확보)를 보고 있었는데 빌레이어가 초보이기도 했지만 자일이 10.5mm 쯤 되어 두꺼워서인지 GriGri에서는 자주 "탁탁" 줄이 걸렸고 선등자에게 부드럽게 줄을 내어주질 못하고 있었다.
그걸 지켜본 A씨는 줄을 빨리 내주지 못하면 선등자의 체력 소모가 심하고 심지어 자일텐션으로 추락할 수도 있다며 빌레이를 보는 후배에게 짜증을 내었다.
한 피치를 끝내고 잠시 오아시스에서 한숨을 돌리고 있으니 A씨는 아까 빌레이를 본 후배에게 자신만의 노하우라며 GriGri로 빠르게 선등자에게 줄을 내어주는 비법(?)을 설명하고 시범까지 보여주었다.
오랜 실전등반과 경험으로 제조사도 모르는 자기만의 "꿀팁"이라며 GriGri의 레버를 확(?) 열어 제끼고 자일을 내주는 "듣보잡" 스킬을 시전하면서 수 십 년 실전등반을 하다보면 이런 경지에 이르게 된다고 자랑스럽게 말하여 주었다.
친절한 페츨사의 매뉴얼을 살펴보면 글을 모르는 문맹자도 쉽게 알아 보라고 해골그림으로 표시하는 절대 금기행위인데, 그것을 오랜 실전등반의 노하우라며 떠들고 제조사도 모르는 자신만의 꿀팁이라고 하니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항상 죽는데는 연습이 없다고 떠들고 다니는데 이게 바로 죽는 연습이 아니면 무어겠는가.
매우 촌스럽고 매우 어리석은 "야매"라고 생각한다.
우여곡절 끝에 그날의 등반을 끝내고 참기름바위(인수봉 정상 커피 자판기 아래의 매끌매끌한 돌덩이?)를 지나 정상의 커피 자판기(?)에 둘러 앉아 다방커피를 마시며 다시금 기본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만든 날이었다.
이론과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 스킬과 경험은 위험할 수 있다.
70년대 초반 탄생한 걸출한 장비회사 페츨이 오랫동안 전문가들의 지식과 경험, 축적된 기술에 의해 오늘날 글로벌 스탠다드를 리드하고 있는 이유가 뭐겠는가.
가끔 등반을 하다보면 자신만의 노하우라며 생소한 매듭법이나 매뉴얼에도 없는 장비 응용법을 자랑스럽게 알려주려는 사람들이 있다.
대부분 자신의 등반 경험이 오래 되었음을 내세우며 가장 탁월한 자신만의 비법이라고 주장한다.
나는 대부분 그런 사람들을 멀리하고 귀담아 듣지 말 것을 후배들에게 조언한다.
검증되고 널리 활용되고 있는 장비나 스킬로도 충분히 안전을 담보할 수 있다면 굳이 알려지지 않고 검증되지도 않은 스킬을 따로 사용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내 주변에는 검증된 맛집을 놔두고 항상 새로운 집을 찾아가서 낭패를 보는 지인이 있다.
웨이팅이 귀찮기도 하고 항상 새로운 것을 탐구(?)하는 열정이 강한 그 친구를 따라가면 항상 맛집은 실패였다.
요약하자면 "야매"는 꿀팁이 아니며 스킬과 경험은 체계적인 이론과 교육을 기반으로 하지 않으면 결코 완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하나, 자신만의 "통밥", "유도리"는 결코 "꿀팁"이 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2024년 1월 버티고 배상
첫댓글 저는 항상 새로운게 좋다구요
박순자 할매 서운하다고 카톡 왔더라 ㅎㅎㅎ
조금만 기다리고 먹고 가면 될것을 하면서 ㅋㅋㅋㅋ
박순자 꿀팁 맞습니다 ㅎㅎ
좋은글 감사합니다!
새기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