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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복음 (Gospel of Thomas) 41-50절
1. 원문 구조 분석
예수께서 말씀 하셨다(41a)
가진 자는 더 가지게 될 것이요(41b)
없는 자는 있는 것마저 뺏기리라(41c)
예수께서 말씀하셨다(42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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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자 (나그네?)가 되어라(42b)
제자들이 물어 여쭈었다(43a)
우리에게 이러히 이르시는 당신은 누구입니까?(43b)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것 가지고는(43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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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구인지 너희들은 이해 못한다(43d)
오히려 너희가 유대인과 같아졌으니(43e)
그들은 나무는 사랑하되 열매는 미워하며(43f)
또는 열매는 사랑하되 나무를 미워하느니라(43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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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말씀하셨다(44a)
누구든 아버지나 아들을 모욕한 자는(44b)
용서받을 수 있으나(44c)
성령을 모독한 자는(44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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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나 천당에서나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44e)
예수께서 말씀하셨다(44f)
포도가 가시나무에서 나오랴?(45a)
무화과가 엉겅퀴에서 나오랴?(45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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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한다(45c)
착한 자들은(45d)
그들이 쌓아놓은 것들로부터 좋은 것을 내고(45e)
나쁜 자들은(45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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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가슴에 쌓아놓은 사악함으로 나쁜 것을 내며(45g)
나쁜 것들을 말한다(45h)
그들의 마음이 흐르는 대로(45i)
악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45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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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말씀하셨다(46a)
아담부터 세례요한까지(46b)
여자들에게서 난 자들 중(46c)
세례 요한보다 큰 자가 없으니(46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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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서 눈길을 돌리지 말라(46e)
그러나 내가 이르노니(46f)
누구든 어린아이와 같이 되는 자는(46g)
천국을 인식 할 것이며 요한보다 크게 되리라(46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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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말씀하셨다(47a)
사람이 한 번에 두 말(horse)을 탈수 없고(47b)
두 활(bow)을 휠 수 없다(47c)
노예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으니(47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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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러면 한 주인은 높이겠으나(47e)
다른 주인은 기분 상할 것이다(47f)
아무도 오래 묵은 포도주를 마신 직후(47g)
새로 담근 포도주를 마시지는 않을 것이다(47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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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포도주를 헌 포대에 넣지 않느니(47i)
포대가 찢어 질 수 있겠고(47j)
묵은 포도주를 새 포대에 넣지 않음은(47k)
포대가 썩을 수 있음이라(47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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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헌 겁을 새 천에 꿰매지 않음은(47m)
찢어질 수 있음이라(47n)
예수께서 말씀하셨다(48a)
한 지붕 아래 사는 둘이서 평화로울 수 있다면(48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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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들이 산에게 '옮겨져라' 명해도 그대로 될 것이다(48c)
예수께서 말씀하셨다(49a)
홀몸으로 선택된 자들을 축하하노니(49b)
그들이 천국을 발견 할 것이요(49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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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그 곳에서 왔고 다시 그리로 돌아가리라(49d)
예수께서 말씀하셨다(50a)
그들이 너희는 어디서 왔느냐? 묻거든(50b)
우리는 빛에서 왔으며(50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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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스스로 존재하기 시작하여 형성되고(50d)
그들의 형상에 나타난 그 곳에서 왔노라" 하라(50e)
그들이 '당신이 그입니까?' 하고 묻거든(50f)
우리는 그것의 자녀들이며(50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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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계신 아버지의 택함을 입은 자들이라' 하라(50h)
만약 그들이(50i)
'당신 안의 아버지에 대한 증거가 어디 있느뇨?' 하면(50j)
그 들에게 말하라(50k)
그것은 움직임과 멈추어 있음 it is motion and rest.이라고(50l)
2. 주해
1)본문
"41.예수가 말하기를,“손에 무엇이라도 가진 자는 더욱 받게 될 것이요, 그리고 가지지
못한 자는 그가 조금 가지고 있는 것마저 빼앗기게 될 것이다. "
2)해석 -
첫 줄에서 예수가 말하는 가지다라는 것의 의미는 물질적인 것이 아닌 정신적인 깨달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두 번째 줄에서 조금 가지고 있다는 것의 의미는 관직이나 물질적 의미
재산을 의미한다. 예수는 깨달음이 아무리 적더라도 일단 조금이라도 깨닫는다면 그것의
가치는 큰 물질이나 관직을 가진 것보다 훨씬 크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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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살아 있는 자신에게서 말씀을 듣고 깨달음을 조금이라도 얻은 이는 더 많은 것을
깨닫게 될 것이며, 그러하지 못한 자는 자신의 재산이나 관직마저 잃게 될 것이라 말하고
있다. 재산이나 관직은 자신이 영원히 가질 수 없으나, 깨달음은 영원히 그리고 온전히
자신이 소유할 수 있게 된다.
1)본문
"42.예수가 말하기를, 방랑하는 자들이 되어라."
2)해석 -
42절을 이해하려면 도마복음은 전체적으로 당시 예수를 따르던 도반들을 가르치기 위해
하신 말씀을 기록한 것이라는 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당시
살아 있는 예수는 도마복음 전체를 통하여 도반들에게 도반 자신들의 내면과 밖에 존재
하는 것(나라, 빛)의 가치에 대한 깨달음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것을 한결 같이 말씀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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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전제로 42절을 본다면 예수가 말하고자 했던 방랑자가
되라는 말씀은 물질 우선주의 삶보다는 정신 수양을 통한 해탈이나 정신적인 깨달음을
추구할 수 있도록 끊임없는 영혼의 방랑을 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도올 선생은 이
때의 깨달음을 70강에서 동양사상의 "유여 열반" 즉, 불완전한 깨달음의 상태에 해당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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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고 있다. 마태복음 7장에 다음의 구절이 있다. "구하는 이미다 얻을 것이요"
이 구절을 도마복음에 나타난 예수의 말씀을 빌어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끊임없이 탐구와 정신 수양을 통한 깨달음을 추구하면 누구나 그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1)본문
"43. 그의 따르는 자들이 그에게 여쭈었다. 당신이 도대체 뉘시길래 이 같은 일들을 우리
에게 말씀하시나이까?(예수께서 대답하시었다:)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 것으로부터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차리지 못하는도다. 차라리 너희는 유대 사람들처럼 되어버렸구나.
그들은 나무를 사랑하면서 그 열매를 증오하기도 하고, 열매를 사랑하면서 그 나무를 증오
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2)해석
도반들의 무지를 깨우치기 위한 통합적 사고의 반증. 예수는 도반들에게 이르기를 예수
자신의 말의 의미, 진위, 가치를 보려 해야지, 그 말을 하는 자신이 어떠한지 등에 관심을
두면 안 된다고 하고 있다.
1)본문
"44.예수가 말하기를, "누구든지 아버지에 대해 모독하는 자는 용서받을 수 있다. 그리고
누구든지 아들에 대해 모독하는 자도 용서받을 수 있다. 그러나 누구든지 성령에 대해 모독
하는 자는, 이 땅에서도 저 하늘에서도 용서받을 수 없다.(그러나 누구든지 거룩한 영혼
(정신)에 대해 모독하는 자는, 이 땅에서도 저 하늘에서도 용서받을 수 없다.)
2)해석
훗날 학습에 보탬이 되고자 도마복음 전체를 나름대로 해석함에 있어 도올 선생의 강의를
기초로 하고 있으나, 44절의 번역(원 번역분 수정 - 괄호부분)은 본인의 생각이 약간 반영되어
있음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나는 44절에서 도마복음 영문을 참고하여 약간 다르게 해석을
해볼 필요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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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바로 도마복음 한글 해석본 전체를 통틀어 이 구절에서 유일하게 등장하는 "성령"이라는
단어를 말한다. 때문에 44절을 해석하기 위하여는 최소한 콥트어를 영어로 번역한 문구를
반드시 참고해야 할 필요가 있다. 도마복음 44절 마지막 줄에 등장하는 "누구든지 성령에 대해
모독하는 자"라는 부분은 영어로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whoever blasphemes against the holy spirit
-
위 영문을 있는 구글 번역기에서 돌리면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이라 번역이 되며 또한 구글
번역 역시 문장 전체의 번역에 있어 "holy spirit"가 성령이란 문구로 번역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holy spirit" 만을 떼어서 두 개의 단어를 각각 별도로 번역을 하면 매우 다른 표현을 발견
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거룩한 정신(정기, 기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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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더 들어가서 우리는 성경에서 자주 등장하는 표현인 "성령"이라는 단어가 '성스러운
영혼'의 줄임말이며, 여기에서 "영혼"은 곧 정신과 같은 의미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만약 영혼이
없다면 인간은 죽은 시체와 다름없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영혼은 종교와 상관없이 이미 그
자체로 인간의 생명과 동급인 '거룩하고 성스러운 존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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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거룩한 정신"(성스러운 영혼, 내면의 빛)은 인간의 생명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교회와 목사들이 흔히 말하는 '성령의 감동' '성령의 은혜'라는 것이 실상은 대부분의 사람
들이 지금껏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던 영혼의 교감 혹은 내면의 감동이라 표현할 수 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교회와 목사들이 "영혼의 교감"을 "성령의 감동"이라 부르고, 마치 예수나 하나님과 특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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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이 있는 것 마냥 포장하면서 궁극적으로는 교인들의 교회 충성을 유도하고, 재물을 바치도록
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다시 "holy spirit"
로 돌아와 다시 보면 holy에는 "거룩한"이라는 의미가 있으며, spirit에는 정신이라는 의미가 있음을
이해할 때 우리는"holy spirit"를 해석함에 있어 "성령"이라 해석하기보다는 "거룩한 정신" 또는 "거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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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기상)"로 이해하는 것이 문맥에 매우 잘 맞지 않나 라는 판단을 하게 된다. "왜 이렇게 해석을 해야
하는가"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그분의 강의에 담긴 숨은 뜻을 완전하게 이
글에서 재현할 수는 없으나 도올 선생은 도마복음 강의에서 다음과 같은 표현을 사용한 바 있다.
"석가모니나 예수는 당시 포교활동을 하거나, 도반이나 대중을 상대로 예수운동을 하는 등의 말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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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할 때에 두 분 다 공통적으로 종교라는 생각을 염두에 두고 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인간
예수가 천국운동을 하던 당시, 종교라는 생각 자체를 머릿속에 두지 않았던 예수가 성령이라는 의미를
입에 올렸을 리가 없거니와, 표현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라 보는 것이 합리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예수의 천국운동은 유대인들의 율법(현재의 구약성경)에 저항하는 성격을 갖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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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었다는 사실에서도 예수가 유대인들의 유대교 경전(현재의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성령을 추종하거나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라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 생각하다. 또한 예수는 도반들에게 도마복음 전체를 통
하여 지속적인 탐구와 노력을 통하여 정신적인 수양을 통한 해탈과 같은 정신적인 깨달음을 얻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이 44절을 내가 도올 선생과 다르게 해석하게 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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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적으로 이와 같은 관점에서 44절은 다음과 같이 해석하여 볼 수 있다. 44절의 아버지나 아들은
말 그대로 가족의 개념이라 보는 것이 합리적인 해석이다.(도마복음은 살아 있는 예수가 하는 말씀이다.
따라서 성령. 아버지, 아들이란 단어가 등장한다고 하여 성경의 아버지, 아들, 성령과 연결시키려 드는
순간 그 해석은 안드로메다로 가 버릴 우려가 발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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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간에 잘못을 한 것이 있다면 용서를 구하면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의 혹은 자신의 거룩한 정신을 부정하거나, 더럽혀 욕되게 하는 일은 누구에게도
용서받을 수 없는 일임을 도반들에게 예수가 말씀하시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추가로, 말씀을 거룩한
정신의 표현이라 한다면, 만일 예수의 말씀을 들은 도반들이 43절과 같은 질문을 하였다면 예수로서는
자신의 거룩한 정신을 모독하는 것처럼 느껴졌을 법한 경우일 것이다.
1)본문
"45. 예수가 말하기를, 포도는 가시나무에서 수확되지 않고, 무화과는 엉겅퀴에서 수확되지 않나니,
이것들은 열매를 맺지 않음이라. 선한 사람은 창고로부터 선한 것을 내온다. 나쁜 사람은 가슴속에 있는
나쁜 창고로부터 나쁜 것들을 내오고 또 나쁜 것들을 말한다. 왜냐하면 나쁜 사람은 가슴에 쌓여 넘치는
것으로부터 나쁜 것들을 내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해석
선한 행동과 선한 마음을 쌓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예수의 말씀이다. 이는 도마복음 내내 예수가
강조하고 있는 바와 같이 정신 수양을 통한 해탈이나 정신적인 깨달음을 계속해서 추구할 때 비로소
내면에 선한 기운이 가득 차고 비로소 그것에 의한 선한 표현이 가능해짐을 의미한다.
1)본문
"46. 예수가 말하기를, " 아담으로부터 세례 요한에 이르기까지 여자가 낳은 자 중에서 세례 요한보다 더
위대한 이는 없도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의 눈길은 돌려져서는 아니 된다. 그러나 이미 나는 말했노라,
너희 중에서 누구든지 아기가 되는 자는 나라를 알 것이요, 요한보다 더 위대하게 되리라.
2)해석
"46절에서의 "나라"는 계속적인 탐구를 통하여 마침내 도달하게 되는 아이와 같은 매우 순수한 정신의
세계로써 자기 자신을 스스로 정신적으로 절제하고, 통제할 수 있는 해탈의 경지에 도달했을 때의 정신
적인 공간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정신적으로 자신이 자신을 통제하는 것이 가능한 정신적인
세계라는 개념으로 나라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kingdom을 한글로 번역을 하면 세계라는 의미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본문
"47. 예수가 말하기를, 한 사람이 동시에 두 말 위에 올라탈 수 없고, 한 사람이 동시에 두 활을 당길
수 없다. 그리고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그렇게 되면 그 종은 한 주인은 영예롭게 할 것이나
또 한 주인은 거스르게 되리라. 그 어느 누구도 오래 묵은 (양질의) 포도주를 마시고 나서 금방 새
포도주를 마시기를 원치 아니한다. 그리고 새 포도주는 낡은 가죽부대에 부어 넣지 않는다. 낡은 가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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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가 터져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래 묵은(양질의) 포도주를 새 가죽부대에 쏟아붓지도
않는다. 그(양질의 포도주의) 맛을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낡은 천조각을 새 옷에다가 기워 붙이지
않는다. 그것은 새 천에 안 맞아 다시 터질 것이기 때문이니라."
2)해석
두 말, 두 활, 두 주인, 오래 묵은 포도주와 새 포도주, 낡은 가죽부대와 새 가죽부대, 낡은 천조각과
새 천조각...여러 가지의 예를 들고 있으나 결국 한 가지의 뜻을 전하기 위한 것이다. 그 한 가지의 뜻
이라 함은 자신의 설교를 유대인의 율법에 맞추려 하거나, 율법의 기준에서 해석하려 하지 말라는
의미로써, 예수가 당시 유대인들의 율법을 비판하고 있었던 점과 일맥상통하는 구절이다.
그리고 예수에게 있어 유대인들의 율법은 동시에 양립할 수 없는 대상이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는 구절이기도 하다.
1)본문
"48. 예수가 말하기를, 한 집안 속에서 둘이 서로 평화를 이룩할 수 있으면, 그들이 산을 보고 ' 여기서
움직여라!'라고 말하면, 산이 움직이리라."
2)해석
48절의 "집안"은 눈에 보이는 형태의 구조물이라기보다는 한 인간의 영혼, 정신의 세계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한 집안 속에서 둘이 서로 평화를 이룩할 수 있으면 이라는 의미는 29절에 등장하는 세속적인
탐욕에 대한 욕망을 극복함으로써 영혼이 육신의 모습으로 존재케 된 상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 부분과 유사한 표현을 61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평화"라는 단어는 61절의 "분열되지 않는
-
전체"와 유사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보인다. 48절의 후미 부분은 실제로 산이 움직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정신적인 깨달음을 얻게 됨으로써 그 정도로 놀라운 경험을 체험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1)본문
"49. 예수가 말하기를, 복이 있을지어다! 홀로 되고 선택된 자여! 왜냐하면 너희는 나라를 발견할 것이기
때문이라. 왜냐하면 너희는 나라에서 왔고, 또다시 나라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니라."
2)해석
세속적인 욕구를 극복할 수 있도록 자신을 다스리고, 깨달음을 구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는
복이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자신의 세속적인 욕구를 제어할 수 있는 상태, 분열되지 않은 상태, 하나 된
상태에 도달함으로써 순수한 자아에 대한 깨달음을 얻은 자는 자신의 안(내면)과 밖에 애초부터 존재하고
있었던 또 다른 자신의 정신적인 세계(나라)를 볼 수 있는 혜안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또한 인생의 시작과 끝을 통틀어 최고의 가치, 가장 우선해야 할 핵심적인 부분은 애초부터 자신과 항상
함께하고 있었지만 인식하지 못하던 자신의 내면의 세계를 볼 수 있는 혜안을 되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강조하면, 49절에서 중요한 사실은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던 그 순수한 자아를 다시 회복하도록
노력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자연의 이치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전달하려는 구절로 해석이 된다.
1)본문
"50. 예수가 말하기를, "만약 그들이 너희에게 묻기를, '너희는 어디서 왔느뇨?' 하면 그들에게 말하라:
우리는 빛에서 왔노라. 빛이 스스로 생겨나는 곳에서 왔노라. 빛은 스스로 존재하며, 자립하며, 그들의
형상으로 자신을 드러내는도다. 만약 그들이 너희에게 묻기를, '그 빛이 너희뇨?' 하면 그들에게 말하라:
우리는 빛의 자녀들이다. 그리고 우리는 살아있는 아버지의 선택된 자이다. 만약 그들이 너희에게 묻기를,
'너희 아버지께서 너희 속에 계시다는 증표가 무엇이뇨?'라고 하면
그들에게 말하라: '그것은 운동이요, 안식이로다.'"
2)해석
도마복음 3절에서 예수는 안식 또는 나라는 살아 있는 자신의 밖과 안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고 하고
있다고 하고 있다. 추가로 설명드리면 도올 선생은 강의를 통하여 예수가 말한 "안식"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유여 열반, 해탈, 불완전한 깨달음의 상태와 같다. 그러나 나는 50
절의 안식을 운동과 반대되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고 본다. 이럴 경우의 안식은 '완전한 죽음' 혹은 '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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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반'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빛은 외면의 빛과 내면의 빛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우리 눈으로
물체를 볼 수 있도록 해주는 외면의 빛은 그 자체로 인간은 물론 인간이 접촉 가능한 모든 공간에서, 모든
물체들에게 생명이나 다름없는 존재다. 인간의 내면에서 항상 움직이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아의
세계가 존재하는 것 또한 살아 있기에, 생명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보이지 않는 그러므로 이것을
-
내면의 빛이라 표현할 수 있다. 이처럼 빛은 인간의 존재 이전부터 세상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또는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에 이미 그의 내면에 함께 하고 있었기 때문에 빛은 스스로 존재하고,
자립하고 있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인류를 구성하는 모든 개인에게 있어 빛은 곧 아버지와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는 것이다. 50절의 마지막줄에서 "아버지께서 너희 속에 계시다는 증표를 예수가 "운동과 안식"
이라는 단어로써 표현한 것을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다.
운동=생명=내면의 빛=깨달음=유여열반
-
안식=죽음=무여열반
빛=아버지=하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