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금까지 생활해온 삶의 과정 속에서 가장 힘들었던 위기의 순간(혹은 어려운 과정들)을 간단히 기술하고 그 당시 자신을 다시 일어날 수 있게 (회복하게) 한 심리내적 자원과 사회 환경적 자원에 대해 기술하시오.
2002년 월드컵의 함성이 대한민국을 뒤덮을 때 아르바이트도 안 해 본 내가 친정어머니의 손맛을 닮았다는 자부심 하나로 겁 없이 식당을 개업했다. 장사는 예상외로 너무 잘되었지만 생각했던 현실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힘들고 고달팠다. 그리고 그때 구원의 손길처럼 아는 분의 식당 체인점 권유로 5억이라는 거액을 투자했지만 동업하던 사장님의 사다리 낙상사고로 투자비용은 물론이고 고스란히 동업자의 설비비용까지 떠안게 되었다.
은거하면서 숨만 쉬고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 달 동안 신발한번 신지 않을 정도로 은둔 형 외톨이처럼 살았다. 믿었던 사람에 대한 배신으로 사람이 싫었고 사람 목소리조차 듣기 싫어 전화기조차 끄고 지냈다. 모든 사람들이 내게 잘난 척 하더니 그럴 줄 알았다고 비웃는 것 같아서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 화장실 문을 열다 반대 편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아닌 내 모습. 퉁퉁 부은 얼굴에 초점 잃은 눈빛으로 멍한 무표정의 낯선 여자. 며칠 동안 씻지도 않고 헝클어진 머리칼은 사람의 형상이 아닌 영화 속의 좀비 같았다. 내 꼴은 고사하고 삶의 의지조차 놓은 초라한 모습에 누군가 정신 차리라며 뒤통수를 세게 후려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날이후 만약 내가 죽을병에 걸렸다 치고 보이지 않는 신에게 5억을 줘서 병이 깨끗하게 완치되었다고 스스로를 세뇌 시켰다. 그렇게 가까스로 일어설 수 있었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숨어산 지 꼭 2년만이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당시 군복역중이었던 두 아이들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공중전화로 내 안부를 물었다. 돌아보면 행여나 엄마가 안 좋은 선택이라도 할까 하는 염려에 매일 안부를 물었던 것이다. 지금도 아이들은 말한다. 그때 엄마의 잘못된 선택이 있었다면 자신들도 존재하지 않았을 거라고. 그만큼 아이들의 목소리가 나를 붙잡았고 아이들의 존재는 나 자신을 지탱할 만큼 컸다.
2. 그리고 앞으로 그러한 어려움이 생겼을 때 본인에게 좀 더 보완되어야 하거나 추가되어야 할 심리내적자원과 사회 환경적 자원에 대해서도 기술하시오.
아는 분이라고 사람을 너무 믿었다고 생각한다. 어릴 적부터 모든 걸 혼자 결정하고 이겨냈었다. 장사역시 너무 잘 되서 힘이 들었다. 그러나 그 많은 일도 힘든 결정도 나누려하지 않았고 혼자 처리해야만 직성이 풀렸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에 밑반찬부터 새벽 장보기까지 직접 확인해야 안심이 되었다. 애당초 나부터 사람을 믿지 못했기에 불신은 고스란히 내게 배신이란 이름으로 되돌아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지금은 직책부터 업무까지 무엇이든 사람들과 나누려고 노력한다.
빨리 결정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추진력이라고 믿었다. 생각해보면 그건 오만이었다. 무슨 일이든 신중하게 결정하는 아이아빠와 상의도 없이 혼자 결정하고 처리를 했던 것 역시 뼈아픈 후회다. 만약 같은 상황이 다시 생긴다면 무엇이든 한 번 더 생각하고 더욱 신중하게 결정할 것이다. 생각해보면 무엇보다 실패한 사업을 빨리 제자리로 돌려놓고 당당한 내 모습을 찾고 싶은 조바심이 실패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혼자 결정하는 것이 더 빠를 거라 믿었지만 혼자 고민하고 혼자 힘들어하고 모든 걸 혼자 이겨내기까지 너무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했고 잃었다. 지금은 돌다리도 두드려보라고 사소한 한 가지라도 성급하게 결정짓지 않는다. 느린 것이 가장 빠르다는 진리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많은 시간과 실패를 투자한 것이다.
지금은 하는 일이 건축인 만큼 투자를 결정하기까지 현장을 둘러보며 몇날며칠이고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그러면 현장에서 조금씩 마음의 눈이 떠지고 한 번 더 생각하고 한 번 더 돌아보고 한 번 더 의논하고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결정하는 편이다. 예전에는 절대 없던 습관이다. 그리고 다시 느리지만 천천히 한걸음 또 다시 과거를 털고 미래를 위해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