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책꾸러미
일상을 잃어버린 아이들
우윤희 대구지회
아침에 창문을 열면, 두 팔을 높이 들어 기지개를 편다. 옆집 아이는 세수를 하고, 그 옆집 아이는 밥을 먹고, 또 그 옆집 아이는 학교를 간다. 학교로 가는 길에 친구를 만나고 어제 저녁에 본 텔레비전 프로그램 이야기를 나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친구들과 놀고, 저녁이 되면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안전한 잠자리에 든다. 우리네 일상이다. 모두 충족하지 못한다 해도 안전한 곳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고 학교를 다니는 것은 세상 모든 어린이가 가져야 하는 기본적인 권리다.
하지만 일상을 잃어버린 아이들이 있다. 전쟁이 나서 집을 버리고 떠나야 하고, 전쟁이 나지 않았는데도 살던 집을 떠나야 살 수 있는 아이들이 있다. 전쟁터에 끌려가 총을 들어야 하는 아이도 있다. 시리아에는 아미나가 있고 콩고민주공화국에는 미셸이 있다. 팔레스타인에는 아마니가 있고 과테말라에는 가비가 있다. 소말리아를 탈출한 사라가 있고, 칠레에는 프레디가 있다. 이렇게 일상을 잃어버린 아이들은 문학 속에만 있지 않다. 현재도 진행 중이고 가까운 미얀마도 예외가 아니다. 아이들은 일상을 잃은 것이 아니라 빼앗긴 것이다. 빼앗은 사람은 다 다르지만 모두 혼란한 정치 상황을 만든 어른들이다. 자기 이익에 눈이 먼 정치인들이다.
《제노비아》
모르텐 뒤르 글|라스 호네만 그림|윤지원 옮김|지양어린이|2018
아미나는 엄마와 숨바꼭질을 했다. 그렇게 놀고 나면 엄마가 사르마를 해 주었다. 포도잎을 끓는 물에 데쳐 양고기를 양념과 함께 소를 넣어 먹었지만 이제 쌀과 소금만 넣어서 먹어야 했다. 시내로 나간 엄마 아빠는 돌아오지 않았고, 대신 삼촌이 와서 집을 떠나야 한다고 했다. 폭격으로 폐허가 된 곳에서 잠을 자고 혼자 배를 타고 떠나야 했다. 삼촌이 가진 돈은 한 명만 배를 탈 수 있는 금액이었다. 엄마는 옛날 시리아 여왕 제노비아처럼 용감하고 씩씩하게 이겨낼 수 있을 거라 했지만 수용 인원을 심하게 초과한 난민선은 바닷속 깊이 처박혔다. 국내 실향민이 된 시리아 국민 1,000만 명 중 400만 명은 국외로 탈출했다. 어느 나라 바닷가에 안전하게 가 닿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탈출을 말이다.
《전쟁에 끌려간 어린이 병사》
미셸 치콰니네, 제시카 디 험프리스 글|클라우디아 다빌라 그림|마술연필 옮김|보물창고|2018
아미나는 총탄과 수류탄이 범람하는 도시를 떠나 난민이 되었지만, 콩고민주공화국에 살던 미셸은 텔레비젼을 보고, 축구를 좋아하고 학교에 다니면서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엄마는 시장에 나가 ‘비베’라는 아름다운 옷감을 팔았고, 맛있는 음식을 사서 동네 아이들에게 나눠 주었다. 하지만 독재자 대통령이 군인에게 월급을 주지 않고 ‘알아서 구하라’고 하는 바람에 저녁 길거리는 위험했다. 반란군은 아이들을 납치해 가기 때문에 아버지는 학교를 마치면 바로 집으로 와야 한다고 당부했다. 미셸은 학교를 마치고 축구를 하다가 반란군에게 잡혀 어린이 병사가 되었다. 반란군은 칼로 미셸의 손목을 긋고 상처에 마약을 뿌렸다. 눈을 가리고 친구를 죽이도록 시켰다. 동네를 약탈하러 나가는 길에 도망쳐 나왔지만 총을 들고 사람을 죽였던 그 기억은 그대로 남아 있다. 다시 일상을 되찾았지만 그 기억에서 도망칠 수 없다.
《팔레스타인의 양치기 소녀》
앤 로럴 카터 지음|박미낭 옮김|파라주니어|2009
아마니는 팔레스타인 서요르단 거주지에 사는 양치기 소녀다. 할아버지에게서 양치는 법을 배웠고, 학교는 갈 마음이 없다. 대신 새끼 양을 받아내고 돌보며, 여름에는 올리브를 따고 가을에는 포도를 수확한다. 밤에는 온 가족이 모여 화덕에 빵을 굽고 터키 커피를 디저트로 마신다. 가끔은 싸우기도 하지만 서로를 아끼고 의지하는 가족이다. 이스라엘은 알칼릴로 가는 도로를 막고, 통행 금지 시간을 만들어 팔레스타인 아랍인을 통제한다. 아마니네 포도밭을 지나가는 고속도로를 만들고, 양을 치는 목초지는 나날이 사라져 이스라엘 정착민을 위한 시설이 되었다. 자기 땅에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집도 사라져버렸다. 아버지는 잡혀갔다. 점령지에서 국내 실향민이 되어버린 아마니는 그래도 사랑하는 가족이 곁에 있으니 잃어버린 일상을 찾아 나설 수 있을 것이다.
《나무 소녀》
벤 마이켈슨 글|박근 그림|홍한별 옮김|양철북|2006
‘라 알리 레 하윱’은 과테말라에 사는 마야인 키체족 말로 ‘나무 소녀’라는 뜻이다. 나무를 잘 오르는 가비에게 동네 사람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15살이 되는 여자 아이가 생일날 신부님께 축복을 받는 킨세아녜라가 있던 날 가비는 또르디아를 굽고 닭고기 수프를 끓이고 돼지를 구웠다. 그렇게 행복한 날 오빠가 잡혀갔다. 군대와 반군이 쉴 새 없이 오가고 있었다. 누구에게 잡혀간 지도 알 수 없다.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죽었고, 집에서는 가족들이 총알에 죽어갔다. 뒤에서 총알이 날아온다. 무조건 달려야 한다. 어린 동생 알리시아와 길에서 만난 산모에게서 받은 신생아를 데리고 학살의 현장을 지나 멕시코 난민촌으로 가는 동안 가비는 엄마였고 선생님이었다.
《천국의 그림자》
로베르트 클레멘트 글|마리아 라이베버 그림|함미라 옮김|다림|2008
제노비아처럼 용감하기를 바랐던 아미나는 실패했지만 소말리아에서 탈출한 사라는 튀니스까지 숨어들어 꿈의 땅 유럽에 도착했다. 튀니스 바닷가에서 이탈리아 람페투사까지 70마일(약 110km)을 썩은 갑판과 옷을 벗어 꿰맨 돛을 달고 죽음의 항해를 한 뒤였다. 하지만 구사일생으로 들어간 유럽은 꿈의 땅이 아니라 노예와 같은 생활을 해야 하는 곳이었다. 사라가 살던 모가디슈는 ‘도시 속의 진주’라고 칭찬하던 산책로와 노천 카페가 있던 사랑스럽고 평화로운 곳이었다. 화려한 건물과 궁전, 극장, 박물관, 풍성한 과일이 있었고, 길거리 상인들이 돈다발을 탑으로 쌓아 놓아도 될 만큼 안전한 곳이었다. 당파 대 당파, 부족 대 부족, 개인 대 개인의 싸움이 지배하는 땅이 되기 전까지는. 어떤 땅이 천국일까.
《글짓기 시간》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글|알폰소 루아노 그림|서애경 옮김|미래엔아이세움|2003
칠레에 사는 프레디는 축구를 좋아한다. 가죽공이면 더 좋겠지만, 생일 선물로 받은 고무공으로 축구를 한다. 오늘도 멋지게 한 골을 넣었는데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다. 슈퍼집 미카엘의 아버지가 군인에게 잡혀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카엘은 아버지가 독재에 반대해서 잡혀갔다고 한다. 같은 반 친구 아버지도 군인에게 잡혀갔다. 선생님도 그랬다. 부모님은 밤마다 라디오를 듣는다. 아버지도 독재에 반대한다고 했는데. 어느 날 군인이 교실에 들어와 ‘우리 가족이 밤마다 하는 일’이라는 주제로 글짓기를 하라고 한다. 프레디는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가족의 일상을 써 내려갔다. 라디오를 듣는 대신 체스를 두는 가족의 일상으로.
칠레는 2020년 10월 25일 40년 군부 독재를 끝낼 헌법 개정을 위한 국민 투표를 했다. 헌법이 문제가 아니라 정부가 문제라는 사람도 있다. 시리아는 대선을 앞두고 지금도 주변 강대국들의 간섭이 여전하다. 미셸이 어린이 병사가 되었던 1993년에 내전 중이었던 콩고민주공화국은 2003년 평화 협정을 맺었지만 2021년 4월 6일 현재 주민 2700만 명이 극심한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고 UN 산하 기구들이 발표했다. 2021년 5월 13일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에 지상군을 투입했다고 한다. 소말리아에서는 며칠 사이 자살 폭탄 테러와 오랜 가뭄 끝에 홍수가 났다는 보도가 있었다.
프레디의 엄마는 이렇게 말한다.
“아이들은 그냥 아이들일 뿐이야. 네 나이 때는 학교에 가서 열심히 공부하고 놀고 엄마 아빠 말만 잘 들으면 돼.”
아이들은 안전한 장소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고,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면서 가족들과 함께 일상을 보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더 이상 아이들의 이런 일상이 빼앗기지 않기를, 문학에서 만난 아이들의 비일상적인 일들이 종식되기를, 지금 이 순간 ‘내가 라면을 먹을 때’ 이웃 나라 또 그 이웃 나라에서 ‘거짓말 같은 이야기’가 벌어지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