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낙동강 연작 제4 시조집
강마을 불청객들
서태수
호 : 운경(韻耕), 김해 출생
부산대학교 국문학과,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석사)
[시조문학] 천료(‘91), [문학도시] 수필 신인상(‘05)
<한국교육신문> 신춘 수필 당선(‘06)
한국문협, 한국시조시인협, 김해문협 회원
한국시민문학협회 고문, 부산문인협회 자문위원, 부산시조문학회 부회장, 부산수필문학협회 회장, 부산강서문인협회 회장(전), 부산시조문학회장(전)
부산강서문화원 문학 강사, 부산강서문화원 이사, 고교 교사(전)
성파시조문학상, 청백리문학상, 낙동강문학상, 부산수필문학상, 대구신문 선정 명시상(‘13), 문예시대 작가상, 을숙도 문학상, 녹조근정훈장
낙동강연작 시조집 1집 [물길 흘러 아리랑]
2집 [강, 물이 되다]
3집 [사는 게 시들한 날은 강으로 나가보자]
4집 [강마을 불청객들]
수필집 : [부모는 대장장이]
논저 : [고교 엘리트 문학], [논술의 논리], <현대시조의 사적 연구> 외
제자 증정 퇴임문집 [쥐꼬리 해부학 교실]
부산시 강서구 상덕로 97번가길 50호(강동동)
010-4813-2956, seotsoo@hanmail.net
===========================
<시인의 말>
강가에 처음 서 보는 사람의 눈에는
시퍼런 물만 보인다.
10년쯤 강가에 살다보면
도도히 흐르는 물길이 보인다.
20년쯤 살면
들판을 가로지르는 강이 보인다.
30년쯤 살면
강과 더불어 흐르는 만상萬象이 보인다.
40년쯤 살면
강이 되어 흐르는 만상이 보인다.
그리고 하구河口를 지나면서
강이 물이 되는 것을 본다.
나는 이 시집에서
강에 빌붙어 살면서 강이 되어 흐르는
사소한 존재들의 생태를 통해
우리네 삶의 옆모습을 변주變奏하고자 한다.
2014. 봄. 청락헌聽洛軒에서
서태수
[차례]
시인의 말
제1부 청락헌聽洛軒 프롤로그
문서방蚊書房 보시게나 1
집수리하세요
방 안에 강물 흐르다
문서방蚊書房 보시게나 2
제2부 쥐
서생원鼠生員님전 上書 1
서생원鼠生員님전 上書 2
서생원鼠生員님전 上書 3
서생원鼠生員님전 上書 4
서생원鼠生員님전 上書 5
서생원鼠生員님전 上書 6
서생원鼠生員님전 上書 7
서생원鼠生員님전 上書 8
서생원鼠生員님전 上書 9
서생원鼠生員님전 上書 10
서생원鼠生員님전 上書 11
서생원鼠生員님전 上書 12
제3부 지네
네 이놈, 토충土蟲 1
네 이놈, 토충土蟲 2
네 이놈, 토충土蟲 3
네 이놈, 토충土蟲 4
네 이놈, 토충土蟲 5
네 이놈, 토충土蟲 6
네 이놈, 토충土蟲 7
네 이놈, 토충土蟲 8
네 이놈, 토충土蟲 9
네 이놈, 토충土蟲 10
제4부 뱀
뱀 1
뱀 2
뱀 3
뱀 4
뱀 5
뱀 6
뱀 7
뱀 8
뱀 9
뱀 10
뱀 11
제1부 청락헌聽洛軒 프롤로그
*청락헌聽洛軒:필자의 옥호屋號
문서방蚊書房* 보시게나․1
-낙동강․326
무더운 여름밤을 딱 한 놈이 애먹인다
천지간 고요한 밤 잠 살풋 들만하면
귓전에 스치는 칼날
소름 같은 한 줄 굉음轟音!
네놈 꼬시려고 한 팔만 꺼내놓고
탁! 하고 냅다 친들 내 살만 멍이 들 뿐
눈에다 불을 켜지만 흔적조차 묘연하다
내 몸의 그 많은 피 아까워서가 아니니라
쬐끔만 달라든지, 아님 몰래 퍼가든지
화들짝 잠 깨워놓곤
메--롱 하듯 사라지니……
곤고困苦한 인생살이 이 밤 지나 또 겨운데
강바람 살랑대도 푹푹 찌는 열대야를
문 꼭꼭 쳐닫고 잔다, 날 밝으면 그때 보자
천장에 모로 누워 붉은 배 두드리며
이 풍진 세상 만나 격양가擊壤歌를 부를 네놈
육시戮屍로 분忿 풀어봐야 내 피로만 칠갑일 터
먼지 같은 벌레[虫]이나 글월문文 들었으니
인정에 약한 내 맘
피를 나눈 인연因緣으로
축문祝文을 몇 줄 섞어서 향불 가득 피워주마!
*모기 문(蚊)
집 수리 하세요
-낙동강․233
귀찮아 못 살겠다, 허구헌 날 들볶으니
심야전기, 지붕 개량에
대문도 고치란다
비 새고 방도 춥다만 아직 쓸만한 시골집
전단지로 날아들고 스티커로 달라붙고
모처럼 쉬는 날엔 잠 깨워 쑤시더니
어디서 알아냈는지 전화로도 찔러본다
전망 좋고 공기 좋아 불편해도 정이 든 집
천장에 물 새는 건 아들놈도 모르는데
방송도 안 탄 사연을 어떻게들 알았을까
서낙동강 언저리의 아늑한 동산 기슭
철 따라 꽃을 피워 그림 한 폭 앉혀놓은
지붕도 꽃물이 배인 대숲 속의 빨간 집
방 안에 강물 흐르다
-낙동강․234
간밤엔 폭우 내려 물대야 두엇 받쳤는데
출근 후 전활 거니 지류支流 몇 개 더 생겼단다
천장의 흙물 난리에
차단기마저 나갔단다
금이 간 슬레이트집은 수업授業 중에도 걱정이라
태풍 매미* 날갯짓에 핸드폰을 다시 여니
풍경風磬도 다 떼어놓고 뒷산 물꼬도 틔웠단다
수화기에 넘쳐나는 나뭇잎 부딪는 소리
바깥은 포기한 채 섬처럼 앉았으니
마누라 날아갔는지 수시 확인을 하란다
남해상南海上 태풍이사 이제 겨우 시작인데
나무도 흔들리고
활자活字도 흔들리고
세상이 다 흔들리니 아내 맘도 흔들릴라
늦은 귀가 미안해서 손전등을 목에 걸고
비바람 거친 속을 누전漏電 될 곳 찾아 나서
니퍼를 재깍거리며 전깃줄을 더듬는다
의심 가는 구석구석 이음새를 살펴본다
외등도 풀어보고 창고 선도 잘라보다
큰방의 선을 자르니 차단기가 바로 선다
방안에도 홍수가 져
물바가지 각오한 오늘
부엌이 다행이라며 늦은 저녁을 차리는 아내
이 밤도 우리 방에는 맑은 강이 흐를 것 같다
*매미 태풍:2003.9.12. 퇴근 무렵 부산에 상륙한 초강력 태풍
문서방(蚊書房) 보시게나․2
-낙동강․327
낙동강 강바람이 잔잔한 날 있었더냐
실낱 같은 바람에도 이리저리 날리는 몸
우리네 미물微物의 삶이 편한 날이 있었더냐
한 세상 사는 일이 이다지도 험난하랴
껍질이 단단하나
덩치가 크길 하랴
허공에 풀풀 날리는 티끌 같은 내 신세야
타고난 팔자 좋아 복福 많은 족속들은
회전의자 빙글빙글
두 발 뻗어 기댄 채로
손가락 까딱거리며 비스듬히 산다던데
내, 무슨 협혈귀랴
종족보전 일념一念일 뿐
피 한 톨 얻기 위해 하나뿐인 목숨 걸고
온몸이 파르르 떠는 내 팔자를 누가 알랴
실패도 약藥이라는 여유작작餘裕綽綽 인간들은
성공의 어머니라며 숱한 기회 노리지만
우리들 한 번 실패는 영락없는 저승행
우주를 덮어오는 시꺼먼 그림자로
천둥 같은 소리 내며 손바닥 덮치는 땐
만고萬古의 악형惡刑 중에도 이런 형벌 없더라
새남터 붉은 땅의 망나니 칼도 아닌
사방에서 말[馬]로 찢는 능지처참陵遲處斬 그도 아닌
짙푸른 손금에 끼인 흔적뿐인 박살搏殺이라
모기 같은 운명들이 어디 한둘이리
아찔한 고공高空이나
아차! 하는 컴퓨터나
한 순간 발끝 손끝에 운명을 건 우리네 삶
바늘귀 구멍만한 주린 배 채우려고
비 오고 바람 부는 샛강을 넘나들며
한 목숨 내맡긴 생애
아슬아슬 눈물겹다
제2부 쥐
서생원鼠生員님 전前 상서上書․1
-낙동강․237
네놈들,
날 밝으면 3족을 멸할테다
쥐 죽은 듯 고요하단 말 오죽해서 생겼겠냐만
천장에 바스락대며 날밤을 새게 하다니!
빗자루로 치다 못해 고양이 소리도 내보지만
지붕 밑 딴천장이 난공불락 요새라고
꼭지 끝 약 올려 놓고 살아남길 바라느냐
터앝에 구멍 판들 내 언제 뭐라더냐
내 담장 드나든들 집세 한 번 내라더냐
네놈도 아파트 좋아 흙마당집 버렸구나
얄미운 녀석들이 풍광風光 보는 안목은 있어
강마을 꽃 피는 집
청락헌聽洛軒* 찾은 인연
기특고 가상도 하여 내 못 본 척 나뒀더니……
내일, 날 밝자마자 <톰과 제리>* 쥐약을 사
그릇그릇 듬뿍 담고, 구멍구멍 쑤셔 넣어
같잖은 콧수염털이 춤을 추게 만들 테다
그 알약 먹고 나면 온 몸 나른하여
눈알이 어리벙벙
세상만사 다 귀찮아
배 밖에 간肝을 내놓고 섬돌 밑에 앉았을 터
동고동락同苦同樂 한 지붕의 미운 정도 정이라니
능지처참 분忿을 참고 고통 없는 염殮을 하되
쾌재快哉라!
상여노래하며 수목장樹木葬을 시킬 테다!
*청락헌聽洛軒:필자의 옥호屋號
*쌀알 같은 쥐약, 눈이 어두워져 밝은 곳으로 나와 죽게 됨
서생원님 전 상서․2
-낙동강․238
귀를 막고 생각하니 네놈들이 괘씸하다
편리한 아파트 붐boom 이해는 한다마는
남의 집 천장에 살면 염치 하나는 있어야지
네놈들 방바닥이 천장인 줄 몰랐더냐
무슨 놈의 경기인지 밤새껏 시합이냐
네 새낀 몇 두름이며 팀team은 또 몇 개더냐
리그전 풀게임full game에 공소리, 아이소리
그래도 어른이라고
간간이 들리는 호통
평소에 무너진 권위, 영令이 설 리 있을 테냐
저런 아이 밖에 나가 식당서도 동동 뛸 터
길 잘못 든 아이들은 낮밤도 바뀌느니
밤새운 오락娛樂 폭주족暴走族
이런 버릇 키울테냐
김해벌 너른 들에 태풍이 휩쓸던 밤
물길이 곧추서서 강둑을 내리쳐도
강마을 옹알이 삼아 토끼잠은 들었느니
서일필鼠一匹의 경천동지驚天動地
잠 못 들어 하소연하니
제 바닥 제 뛴다고 눈 흘기는 버르장머리
내 천장 드릴로 갈까, 예끼 이놈 돌상놈들!
서생원님 전 상서․3
-낙동강․239
네놈들 짓거리가 미련하고 한심하다
이빨이 고장나면 치과로 가야할 일
오색실 친친 동여서 망치질을 하느냐
꼴에, 들은 건 있어
치아 관리 한답시고
써까래는 치간치솔 전깃줄은 치실 삼아
소리도 못 살겠지만 멀쩡한 집 다 부순다
지붕이 폭삭하거나 누전漏電으로 불이 나면
아래층 사는 나야 문만 열면 땅이지만
위층에 갇힌 네놈들 압사壓死 아니면 통구이라
네놈들 죽은 후에 무엇을 남기려느냐
새앙쥐 네 주제에 이름이 남겠느냐
엉성한 네 몰골 보면 가죽인들 쓰겠느냐
네놈도 축생畜生이라 고기는 남겠지만
만고강산 먹거리들 샅샅이 다 뒤져도
발 달린 쥐포는 없고
쥐바베큐 없더니라
너 갉는 이 집도 알고 보면 복福 덩어리
물도 땅도 풍광도 좋아 네놈들 모여든 곳
강마을 그림 한 폭을 네 이빨로 망칠테냐
요즘 치과 기술 좋아 교정에서 의치義齒까지
복지福祉도 다양해져 보험 되고 보호 되어
옥탑방 다자녀多子女 가구
웬만하면 공짜니라
서생원님 전 상서․4
-낙동강․240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벽돌로 쌓은 벽을 어찌 뚫고 들었으며
단단한 천장 바닥은 또 왜 그리 울리는지
강변 낡은 동네
집 잘 짓기 무엇해서
내, 돈도 좀 아낄 겸 싼 자재 몇 끼웠다만
영악한 네놈 아니면 어느 뉘 눈치 채리
이 동네 집짓기는 가시나무 연鳶줄 풀기
그린벨트, 절대농지, 도시계획, 고도제한을
원주민* 가옥대장으로 첩첩 난관 뚫었노라
네놈들 망쳐 놓은 상하수도 전기공사
이 공사 하나에도 천만 서류 찍은 도장
돈 사정 뻔할 뻔자에
어찌 다 책冊대로 하리
부실不實에 날림공사 하고많은 아파트도
쥐들이 날뛴단 말 듣도 보도 못했는데
공짜로 세든 놈들이 집주인을 못살게 한다
*원주민 가옥대장이 있으면 다소 쉽게 건축 허가가 난다.
서생원님 전 상서․5
-낙동강․241
돌아누워 생각하니 네놈이 불쌍하다
딸 아들 구별 없이 하나만 낳더래도
골첩첩 험난한 세상
키우기가 버거울 터
포도송이 DNA인지 줄줄이 새끼 달아
삑, 하면 후벼 뚫고
찍, 하면 물어 뜯어
전셋집 얻기 힘들어 내 천장에 들었겠지
집 없는 드난살이 그 설움 내 알기에
방세는 고사하고 변소세도 안 받건만*
축생畜生이 배신背信한 일은 인간사에 첨이로다
내 집서 나가라면 끽 소리 못할 놈들
계약서가 있길 하냐
확정신고確定申告*를 알길 하냐
국회國會가 아무리 미쳐도 쥐 보호법 안 만들 터
겨울철 비싼 전세, 공짜 집 쫓겨나면
같잖은 털가죽에 온 식구 오르르 떨며
강마을 거친 바람에 풍찬노숙風餐露宿 될 말이냐
네놈도 알다시피 내 직업이 선생先生에다
무자년戊子年 자시생子時生에 성姓마저 서가徐哥이니
천생天生의 인연이 중重해 딱 한 수만 가르쳐 주마
‘무턱대고 낳다 보면 거지꼴 못 면한다’*고
아이 셋 낳는 백성 야만인 취급할 때
나 또한 예비군 시절
바지 잠시 벗었노라*
*과거 셋방살이는 변소세를 따로 내었다.
*확정신고를 하면 전세금 우선 보호 대상이 된다.
*60-70년대의 정부의 산아제한 홍보 표어
*당시 정부에서는 예비군을 상대로 온갖 감언이설로 정관수술을 유도하였다.
서생원님 전 상서․6
-낙동강․242
오호라, 쾌재快哉로다
네놈이 잡혔구나!
구르고 내달리고 똥 싸고 기둥 갉고
밤낮을 못살게 굴던 만고역적萬古逆賊 죄값이라
네 한 놈 잡으려고 곳곳이 놓은 지뢰
알약, 가루약에 벼락틀, 끈끈이까지
그물망 용케 피하다 쥐틀 속에 갇혔구나
네 쬐끔 학문 있어 벼슬이 생원生員 되어
신책神策이 구천문究天文이요
묘산妙算이 궁지리窮地理라도*
내 재주 칠종칠금七縱七擒이라 내 계략을 피할소냐
드물게 얻은 기회 요리조리 살펴보니
소문보다 긴 꼬리에 소문과 달리 동그란 눈
뾰족한 앞니 한 쌍에 콧수염이 가소롭다
어떻게 요리할까, 코를 쥐어박을까
주리를 틀어줄까
물고문을 시킬까
망나니 고양이 불러 목을 뎅강 자를까
오라를 칭칭 동이고 큰칼 목에 씌워
동네방네 다니면서 돌림매를 치게 할까
때마침 난타*를 불러 특별공연 하게 할까
떼거리로 사는 놈들 한 놈 죽여 무엇하리
털 뽑고 발톱 빼고
수염은 불로 지져
흉측한 몰골 만들어 다시 살려 보내자
네놈 살아가면 온 이웃이 다 보고는
이집 주인 악질이라고 샛강 타고 소문 퍼져
제 족속 몽땅 데불고 이민이나 가게 하자
쥐틀에 갇힌 놈을 꼬챙이로 갖고 놀다
아차, 내 손가락!
깜짝 놀라 잠을 깨니
천장엔 쥐들의 천국, 남가일몽南柯一夢 허사로다
*<여수장우중문시(與隋將于仲文詩)>의 일부, 을지문덕이 수나
라 장수 우중문의 전략이 천문지리에 통달했노라고 조롱한 구절
*칼과 도마로 하는 난타식(亂打式) 연주가 그룹
서생원님 전 상서․7
-낙동강․243
야호, 걸렸구나!
이번엔 틀림없다
간밤엔 샛강둑에 벼락이 때리더니
영악한 네놈 잡으려 하늘이 도왔구나
구석을 다니거든 흔적이나 남기지 말지
네놈들 길목길목 감쪽같이 숨겨둔 덫
아무리 신출귀몰해도 벼락틀은 못 피하지
그래도 꽤는 있어 목이 뎅강 안 찍히고
약게약게 건드리다 발목이 잡힌 꼴에
아직도 건재하다고 호기까지 부린다
네 이놈, 괘씸한 놈
한 방에 끝내주마
단매에 때려잡을 몽둥이 뒤지다보니
쾌재라, 겹경사로다! 고물고물 새끼 있네
포근한 이불 속에 옹기종기 엉긴 녀석
자상仔詳히 살펴보니 기쁨도 순간일 뿐
아무리 웬수라지만* 새끼는 다 아픈 법
그래, 그랬구나
문짝을 갉은 사연
발목을 엮은 쥐틀 피 흘리며 끌어당겨
제 품에 새끼 품으려 가시밭길 걸었구나
추적추적 내리는 비 온몸에 맞으면서
밤새워 뚫은 구멍 쇠덫에 걸려 있어
새끼를 코앞에 두고 발목뼈가 앙상하다
새끼들 뱃가죽은 등짝에 붙었는데
어미 배 살펴보니 젖이 퉁퉁 불었구나
쥐약을 먹여야 하나
어미젖을 물려야 하나
이 세상 애완동물 낱낱이 뒤져봐도
쥐 데리고 사는 사람 어디 그리 흔하던가
살려도 웬수 될 인연, 저 핏덩일 또 어쩔꼬
*웬수:원수의 시속어時俗語
서생원님 전 상서․8
-낙동강․244
죽은 너도 어이없겠지만 잡은 나도 황당하다
창고는 그렇다 치고 보일러엔 왜 숨었다가
아무리 다급하기로 옷소매로 들오느냐
구멍을 좋아하는 네 천성은 안다마는
예고도 없는 돌진突進
언감생심 내 품이냐
숨겨 논 꽃각시*라도 화들짝 놀랄 일을……
내 만약 숨이 가빠 입이라도 벌렸다면
구절양장 긴긴 창자
굽이굽이 감돌다가
생각도 아찔하여라, 항문으로 나올테냐
독수공방 어젯밤은 왠지 더 춥다했지
외줄 타기 광대놀음 싫증이 났던 놈들
전선을 마구 갉아서 냉방을 만들었구나
따뜻한 내 창고를 본거지로 삼았으면
기름이 새는지나 눈여겨 살펴야지
주인은 동태 만들고
혼자 성히 살렸더냐
아닌밤중 비명횡사 내 탓은 아니다만
너는 죽어 놀라고
나는 살아 놀랐으니
강언덕 전망 좋은 곳의 땅속 깊이 묻어준다
*꽃각시:애첩愛妾
서생원님 전 상서․9
-낙동강․245
네 이놈, 고얀놈들
맘껏 날뛰거라
지구가 멸망해도 네놈은 산다더라만
네놈들 씨 말릴 묘책妙策 천만 가지 더 되니라
모두들 배고프던 후진국 그 시절에
달마다 날 잡아서 전국민 단결하여
쥐꼬리 자르던 운동*
실패한 일 나도 안다
자고로 쥐와의 전쟁, 성공한 적 없다 해도
새로운 병법兵法 개발 낱낱이 알게 되면
네놈도 털이 곤두서 고슴도치 될 거다
별주부 토끼 꾀듯 감언이설 유혹하기
장끼를 홀려놓는 진수성찬 차리기는*
우아한 고전古典 수법이나 네놈한테는 과분할 터
가루약 묻히기에 알약 쳐먹이기
가두고 나꿔채고 끈적끈적 붙이는 건
손쉬운 전통 방법이나 시대 역행의 폭력수단
바야흐로 이 시대는 첨단과학 전성시대
바이오bio 생명공학
전자칩 로봇공학
의학적 정신 분석에 행동제어行動制御 기술도 있다
다양한 기술 중에 어떤 것을 선보일까
네놈들 게놈genome 구조 이미 다 그렸으니
고양이 유전자 심어
네놈 형질形質 바꾸리라
생각만도 소름 돋는 고양이털 송송 심어
자나깨나 밤낮으로 온몸이 근질근질
가시는 걸음걸음마다 알레르기 일게 할까
뾰족한 고양이 발톱 네 발등에 나게 한 후
이놈의 발톱들이 틈만 나면 솟구쳐서
제 몸에 구멍을 내서 벌집으로 만들까
아니다
차라리 고양이 본성을 이식하여
피아간彼我間 구분도 모른 적과의 동침同寢으로
쥐새끼 동족상잔시켜 멸종하게 만들자
서로 잡아먹다 마지막 남은 한 놈
허기진 어느 날 밤
자기 살 제 갉아먹어
뼈대만 앙상히 남아 앞강물에 떠가겠지
*5,60년대에는 학생들이 쥐꼬리를 잘라 학교에 갖고 갔고, 매월 25일에는 [전국민 쥐잡는 날]로 정하고 정부에서 대대적 홍보와 함께 쥐약을 나눠주었다.
*고전소설 [별주부전], [장끼전]의 내용을 원용함
서생원님 전 상서․10
-낙동강․246
이놈의 쥐새끼들!
잔뜩 화가 나서
천장을 북-찢어서 쥐약을 확- 뿌렸더니
놈들이 바닥을 치며 밤새도록 곡哭을 한다
무도한 인간들이 쥐를 못살게 군다!
멀쩡한 제 천장을 갈기발기 찢어놓고
쥐약에, 온갖 쥐틀에 불쌍한 쥐 씨 말린다!
아-고, 원통해라!
지뢰밭 우리 팔자八字
알약, 가루약에 벼락틀, 끈끈이까지
그물망 촘촘촘 놓아 죽은 식솔食率 얼마던고
먹다 죽고, 묻혀 죽고, 찍혀 죽고, 갇혀 죽고
끈적끈적 달라붙은 생목숨이 얼마더며
인간들 마당어귀에 수목장樹木葬이 얼마더뇨
영악한 인간들이 ‘서생원鼠生員’ 벼슬 주곤
고양이 없는 세상 화평천지和平天地 만든다고
십이지十二支
맨 앞에 서서 속은 세월 또 얼마뇨*
뱀巳에게 감겨 죽고 닭酉에게 쪼여 죽고
개戌에게 물려 죽고 돼지亥에게 뜯겨 죽고
운수가 사나운 놈은 소丑 뒷발에 밟혔구나
호랑이寅는 고양이과科
말午 발굽이 소 발굽이라
뱀보다 더 무서운 용辰트림에 박살나니
교활한 인간 심보를 어느 누가 당해내랴
세상에! 그뿐이랴
‘쥐볶이 날’ 정해 놓고
정월달 쥐날[子日]에는 집집이 콩을 볶고
온 세상 쥐불을 놓아 금수강산 다 태운다!
임진년壬辰年엔 왜놈들이 귀와 코를 베가더니
대명천지大明天地 이 시대에
쥐꼬리 모은다고
애꿎은 오징어다리만 절단이 났더구나*
애고-배고!
가슴 치며 밤새워 구르는 통에
핏발 선 내 눈알이 아침해로 솟았는지
태양도 산산조각 나 앞강물에 떠가더라
*子丑寅卯辰巳午未辰酉戌亥에 고양이는 없다.
*쥐를 못 잡은 학생들이 쥐꼬리 대용으로 가져감
서생원님 전 상서․11
-낙동강․247
밤마다 겪는 전쟁
정말, 신물이 나
와지끈! 천장을 뜯고 비몽사몽 누웠는데
쥐들이 벽을 갉으며 꺼이꺼이 울음 운다
야속다, 인간 심보!
서러워라 드난살이!
고대광실 넓은 집에 이왕지사已往之事 텅 빈 공간
방 한 칸 빌려주는 게 이다지도 인색하다
원통절통 억울하다!
악질적 비방욕설
잡다잡다 못 당하니 생트집이 다반사라
인간들 어거지 사연 낱낱샅샅 들어봐라
‘쥐새끼’는 약은 자에 ‘쥐포수’는 옹졸한 자요
‘쥐정신’은 건망증에 하찮은 건 ‘쥐코밥상’
같잖은 일을 벌이면 ‘쥐구멍에 홍살문’이네
벼룩이 옮기는 병을 ‘서역鼠疫’*이 웬 말이냐
인간들 저들끼리 에이즈 옮기거늘
너네들 그 잘난 책에 ‘인역人疫’이라 썼더냐
갈수록 태산이라
근거 없는 허위날조虛僞捏造!
동그란 예쁜 눈을 샐쭉하게 그리더니
길고도 멋진 꼬리도 ‘쥐꼬리’라 헐뜯구나
제 집이 없는 짐승 세상천지 어디 있는지
안분지족安分知足 몸에 배인 우리네 단칸방을
허다한 구멍 다 두고 ‘쥐구멍’이라 비웃는다
그래, 한번 따져보자
쥐구멍 없는 세상
겉으로 멀쩡한 자者, 숨긴 악행惡行 들통날 때
인간들 구겨진 체면 어디 숨어 피할테냐
오늘도 또 내일도 힘겨운 세상살이
행여나 대박 터져 쥐구멍에 볕이 들까
두어 장 복권 사들고 애타는 이 한둘이냐
자지 말고 더 들어라!
‘쥐뿔도 모른다’는 말
실상은 뿔 아니고 수컷의 양물陽物인즉*
쥐 좆도 모르는 인간이 아는 체 하는도다
조물주 천지 창조
제 각각 뜻 있는 바
그 뜻을 못 살릴까 성철스님 하신 말씀
‘산은 산, 물은 물’이라고 억지소리 질타했지
끝없는 하소연에 잠자기는 영- 글러서
신새벽 강언덕에 오척 단신短身 올라보니
강물엔 산이 들앉아 그림자만 흐르누나
*서역:페스트
*민담에 전승되는 ‘쥐뿔’의 유래
서생원님 전 상서․12
-낙동강․248
우리,
이러지 말고
다시 한 번 생각하자
조물造物의 천지 창조 물물物物마다 뜻을 두어
유인唯人이 최귀最貴란 그 말 틀렸음을 나도 안다
갉아대고 쫓아가고 그 무슨 소용이랴
꼬리 잘려 상처 받고 옷깃이나 더럽힐 뿐
너와 나 귀한 일생一生도 남은 삶이 몇 날이랴
허공에 둥둥 떴는 구름장을 보아라
때로는 엉겼다가 이내 곧 풀리는 뜻
우리네 짧은 한생이
뜬구름 아니더냐
앞들에 흘러가는 강물을 또 보아라
파도는 파도대로 잔물결은 물결대로
부딪쳐 솟구치다가
유유한 게 장강長江이라
쥐구멍에 볕들려면 마당에서 살아야지
제 각각 본성대로 전원田園 넓게 터를 잡고
가까운 이웃이 되어 멀찌감치 보며 살자
무심코 부딪히면 서로간 놀랄 테니
이따금 궁금하면
기별하고 찾아와서
눈인사 가볍게 던져 안부라도 전하자
꽃 피는 봄날부터 꽁꽁 언 겨울까지
내 즐겨 먹은 음식 터앝에 남길 테니
내 눈치 살피지 말고 마음 놓고 즐기거라
북망北邙으로 사라지는 천하의 영웅이나
풀섶으로 사라지는 티끌 같은 미물微物이나
한 세상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요
100년도 수유須臾인 것을……
제3부 지네
네 이놈, 토충土蟲*․1
-낙동강․306
으악! 지,지,지네!
파리채! 에프킬라!
온몸 오그라들고 머리는 혼비백산
앞강도 파랗게 질려 물비늘이 곤두선다
누가 너를 두고 벌레라 이름하리
곤충도 아닌 것이
금수禽獸도 아닌 것이
한집서 마주치기엔 너무너무 끔직한 짐승!
검붉은 철갑껍질 마디마디 겹쳐 입고
관운장 언월도偃月刀를 어금니로 곧추세운
바이오bio 첨단 시대의
살아 있는 청동제품靑銅製品
고금古今의 전쟁 갑옷 실밥을 다 뒤지고
만고萬古의 철갑동물 관절까지 다 살펴도
너처럼 이음새까지 쇠로 된 놈 못 봤니라
독하고 무섭기야 전갈도 그렇지만
그나마 그 녀석은 새우인 듯 가재인 듯
우리네 먹거리 닮아 눈에라도 익었느니
먹거리 나온 김에 한 말씀 더 보태자
사람들 별난 식성食性
전갈인들 예외랴만
네놈들 튀겨 먹는 자 세상에는 없더니라
이 세상 떠도는 소문 거짓 아님 과장인데
소문보다 흉한 너도 조물造物의 솜씨라니
그 뜻을 알 수 없괘라
어찌 이리 만들었을꼬
*토충(土蟲):지네
네 이놈, 토충․2
-낙동강․307
서산에 해가 지고 대숲에 새 깃들면
서낙동강 카누 젓듯
남해바다 거북선 뜨듯
수많은 노를 저어서 출렁이며 오는 짐승
저다지 촘촘한 발은 어찌 다 움직일꼬
어지러운 걸음에도 엉기지 않는 비법秘法
초정밀 자동제어칩自動制御 chip이 네 머리에 박힌거냐
우리네 인간들은
기껏 두발 달고서도
길 하나 바로 걷기 이다지 어려워서
흙탕에 나뒹군 영웅 어디 한둘이러냐
한 세상 걷는 길은 형형색색 가시덤불
뾰족한 돌부리며
깊이 모를 웅덩이며
가슴 속 비운 유혹誘惑도 그냥 넘기 어렵느니
생각이 둔한 이는 되는 대로 살아가고
머리만 영리한 자, 발길이 따로 걷고
가슴이 영악한 놈은
말言도 발足도 따로 기고……
무념無念이 순리順理라던 노자老子 어른 말씀대로*
바람 불면 부는 대로
물결 치면 치는 대로
구름에 달 가듯* 걷는 행운유수行雲流水 보법步法인가
한 순간 생각만도 끔직한 네놈 두고
내 족적足跡 생각하며 두 발 훑어보다
이 하루
무위無爲로 앉아 긴 사색思索에 잠기노라
*개구리의 두 발과는 달리 지네의 걸음은 무념無念의 행위라는 노자老子의 말
*박목월 시 <나그네> 일부
네 이놈, 토충․3
-낙동강․308
김해벌 강변 야산江邊野山
왕대숲 욱은 마을
마디마디 대나무가 지네로 변신하여
밤이면 거룻배 저어 방안으로 납신다
너, 무슨 뜻을 품어 집안으로 들오느냐
축축한 땅을 뒤져 지렁이나 먹는 놈이
식성이 같기를 하냐
잠자리가 같으냐
사공이 너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더니
너도 나도 모두 잘나 전문가 넘치는 세상
네 발도 사공이 많아 뒤죽박죽 되었느냐
때는 바야흐로 초첨단 전자시대
고전적古典的 네 수학數學이 전자파 장애를 받아
헷갈린 정밀회로精密回路가 제 갈 길을 놓쳤느냐
어쩌면 모르겠다
네 보법步法이 엉긴 까닭
요즘같이 바쁜 세상 기계처럼 도는 인생
노자老子의 무위자연無爲自然은 이빨 빠진 톱니일지……
네 이놈, 토충․4
-낙동강․309
강마을 뒷마당에 댓잎 한 장 일렁인다
으스럼 달빛 아래
천족千足 지네 배舟를 저어
동굴 속 어둠을 끌고 세상 밖을 출타시다
스스로 어둠 되어 햇빛을 등진 뜻은
두꺼운 철갑옷에 속살이 뜨겁더냐
흉측한 네 생김새가 빛을 보기 민망터냐
만고의 역사 속에 요즘같이 좋은 빛깔
형형색색 삼라만상
호화찬란 부귀영화
황홀한 세상살이를 어둠 속에 보려느냐
흉물스런 네깟놈도 <님의 침묵> 읽었더냐
눈앞에 보이는 건 모두가 다 허상(虛像)이라
스스로 그림자* 되어 더듬이를 세우느냐
자나깨나 폼생폼사form生form死* 우리네 인간이사
눈으로 그려보고 손으로 만져보아
속이야 썩고 비어도 겉멋으로 빛나거늘……
하긴, 그럴 테지
색色이란 허망해서
밤에 본 그 모습이 만상萬象의 본질이라
한밤중 공空으로 보는 네놈 뜻도 옳으려니*
영웅의 생명이든 미물의 목숨이든
한 세상 사는 길이 생노병사生老病死 한 길이라
색色으로 겉치장한들 무한영광無限榮光 이어지랴
얼굴에 색칠하고 이마에 별을 달고
옷깃의 금뱃지며
수첩 속 금빛 명함
눈감고 생각해 보면 부질없는 무지개라
치떨리는 불청객을 강둑 너머 내던지고
낙동강 강바람을 허위허위 거닐면서
이 한밤 가로등 저 쪽
빛으로 된 세상을 본다
*그림자:만해의 시집 <님의 침묵> 서문 내용을 원용함
*폼생폼사form生form死:외형만 추구하는 세태 풍자의 시속어時俗語
*색즉시공色卽是空
네 이놈, 토충․5
-낙동강․310
정말, 재주도 용타
어떻게 들어올꼬
방충망 이중창에 숨구멍도 막았는데
출몰이 변화무쌍하니 저놈이 007이냐
곤고困苦한 하루 일과 세상 모른 잠을 자다
손등에 스쳐가는 스믈스믈 기는 감촉
화들짝, 뿌리치는 밤
‘출-렁’하는 긴 느낌!
세월은 영락없어 변소 출입 잦은 나이
밤마다 마루에서
화들짝! 발을 드니
내 지금 이 늦은 나이, 발레춤을 배울 때냐
무심코 걸레를 쥐면 네놈이 끼어 있어
신발을 신을 때는 속창을 뒤지는데
풀잎이 어른거려도
화들짝! 다리를 턴다
걸레나 신발이야 또 그렇다 치더라도
압력밥솥 손잡이가 어디 네놈 구멍이냐
마누라 혼절시켜서 홀아비를 만들테냐
너, 정히 괴롭혀서
내, 집을 팔아버리면
요즘 같은 맑은 세상 나 같은 주인 있어
낡은 집 잡초 마당을 그냥 둘 것 같으냐
불도저로 밀고 당겨 네놈들 땅에 묻고
최신식 자재들로 철옹성 집을 지어
기발한 방범장치로 어김없이 다 잡을 거다
전깃줄 울타리 넘다 프르르번쩍 타서 죽고
현관문 빼꼼 열면 세콤secome이 미융-미융
운 좋게 들어온 놈도
CCTV에 다 걸릴 터
서낙동강 굽이지는 김해벌 동산 자락
꽃 피고 새도 울고 풀숲에 벌레 노는
대숲 속 고요한 집을 들썩이게 하지 마라!
네 이놈, 토충․6
-낙동강․311
오뉴월 긴긴 해를 조선한량朝鮮閑良 유람 간다
어슬렁 출렁출렁
8자 걸음 걸으면서
온몸이 뼈대로 굳은 양반어른 행차시다
수많은 발을 저어 더듬이 슬슬 흔들면서
방안을 이리저리 산천경계山川境界 구경하다
들켰다!
눈치 챈 순간 잽싸게 튀는 동작
길을 막고 물어봐라
너 좋다는 사람 있는지
이 세상 별난 세상, 별의별 애완용愛玩用 중
네놈을 키우는 사람 단 한 명만 데려와 봐라
모양만 무섭다면 난들 왜 치를 떨랴
네놈 독이 워낙 독해 쌓아논 숱한 것들
먹는 약, 바르는 약에
감자, 부황, 닭똥오줌……*
네놈들 씨를 말릴 닭이라도 키우련만
비좁은 마당어귀 어디다 닭장 짓고
어느 뉘 이 바쁜 세상 삼시세때 모이 주랴
강마을 풍광 좋아 온갖 이웃 어울린 집
독하디 독한 약을 집 주위에 뿌린다면
죄 없는 개구리하며 개미, 여치 몰살할 터
자식들 훌쩍 떠난
텅 빈 시골 마당
풀섶에 어울리는 이들마저 없어지면
달밝은 외로운 밤에 어느 뉘가 벗할꼬
*지네 물린 데 좋다는 민간 치료법들
네 이놈, 토충․7
-낙동강․312
생각만도 소름 돋고 마주치면 섬뜩하고
한 주먹도 안 되지만 주먹으론 절대 못 쳐
너 한 놈 때려잡을 일도 적지 아니 난감한 일
빗자루로 메어친들 겹겹이 갑옷이요
다리를 분지르자니 어느 다리 겨냥하며
발톱을 뽑으려 한들
하세월何歲月에 끝을 보랴
토막을 내자 하나 애초부터 토막진 놈
헷갈리는 마디에다 어설피 동강내면
제 각각 개체분열個體分裂하여 떼거리로 달려든다
자연시간 배운 공부
곤충의 신체구조
<머리, 가슴, 배>로 익힌 철없는 초등생도
생물은 3등분하면 ‘죽-는-다’고 하였니라*
두들겨도 못 잡고 토막 내면 더 날뛸 놈
조물造物의 삼긴* 대로 집게로 곱게 집어
저놈들 제일 싫어하는 햇볕에다 내다널자
강언덕 양지볕에 훌쩍 던져두면
소슬한 강바람이 마디마디 스며들어
몽롱한 한나절이면 저도 몰래 송장 될 터
더듬이, 눈알, 이빨
숱한 다리 다 살리고
발톱 하나 안 다치게 빳빳하게 염殮을 하여
만고萬古의 흉물전람회에 일등상을 받게 하자
*[곤충을 3등분하면?=( ) ( ) ( )]라는 초등학교 자연 시험문제에서
어떤 학생이 [(죽)(는)(다)]고 썼다고 함. 정답은 [(머리)(가슴)(배)]
*‘만들다, 생기다’의 옛말
네 이놈, 토충․8
-낙동강․313
어-화 어화넘차
꽃상여 나가신다
늘어진 몸뚱이에 오색실 단단 묶어
흉악범 목을 걸었다, 처마끝의 풍장風葬이라
이승의 인연을 접어 긴 몸 편히 뻗고
대롱대롱 매달려서 지난날을 돌아보면
한 세상 맺고 또 끊은 숱한 사연 생각날 터
하늘이 네 만든 뜻 어찌 다 알랴마는
만물이 넉넉한 계절
여름에만 기어나와
으스름 달빛 마루에 소름 돋게 하던 중생衆生
스치는 바람이며 몸에 닿는 햇살 아래
가을 겨울 보내면서 네 한 생生을 돌아봐라
오가는 숱한 물생物生들 사는 모습 어떠하냐
사계절四季節 사는 일이 달력에만 있겠느냐
허허한 강변 들판
씽- 하고 부는 바람
우리네 돌아길 길을 미리 보는 것 아니더냐
풍장 후 긴 세월에 무엇이 남을는지
바람에 흔들리는 부질없는 물길에는
청명淸名도 유유하지만 오명汚名 또한 흐르더라
네 이놈, 토충․9
-낙동강․314
너, 토충 아니더냐? 약재상藥材商엔 웬 일이냐?
살아 흉물이던 너가
죽어 인술仁術 베푸니
조물造物의 속 깊은 뜻이 여기에 있었구나
그대, 오공蜈蚣* 선생
그 한 몸 다 바쳐서
날 궂어 쑤시는 몸, 허리 아파 누운 사람
뼈 속에 편작*이 되어 깊은 시름 더는구나
천지天地 삼기실* 제 명물名物만 삼겼으리
흉물 있어 명물 있고 부귀빈천도 얽혔으니
사는 건 한 줄기 강물
한데 섞여 흐르는 것
그래, 그랬었지
흙에서 청자靑瓷 났지
돌 다듬어 부처 되고 개똥도 약이 되듯
하찮은 미물微物이라도 제 소용所用은 다 있느니
살아 있는 널 만나면 온몸에 쥐내리고
죽은 너를 만나는 건 내 허리 고장일 터
토충土蟲도 오공蜈蚣선생도
연緣을 맺기 난감하다
우연偶然히 스친 옷깃도 천만겁千萬劫 인연因緣이라
만나고 헤어짐이 필연必然이라 하더라만
한 생애生涯 피하고 싶은 그런 연緣도 있는 것을……
*오공:한방韓方의 말린 지네, 허리병에 좋음
*편작:중국의 전설적 명의名醫
*삼기다:‘만들다, 생기다’의 옛말
제4부 뱀
뱀․1
-낙동강․315
으잉, 웬 새끼줄?
으악! 배배배-뱀!
한가한 휴일 아침, 무심無心한 마당 어귀
발 앞에 한 줄 긴 끈이 죽은 듯이 살아 있다
엉성한 머리칼이 안테나로 쭈뼛 서서
앵앵앵 적색경보
발길질을 하려는데
아뿔싸, 슬리퍼로다! 급제동을 밟는다
얼핏 스쳐봐도 알록달록 꽃뱀이다
산골에 사는 놈이 김해벌에 어찌왔나
홍수에 떠내려 왔나, 소문 듣고 찾아왔나
강마을 동산자락 잡초 욱은 우리 집은
밤이면 온갖 물생物生 달빛 아래 합창이라
개구리 노니는 첩보諜報
네놈 용케 훔쳤구나
대숲 속 족제비는 무얼 하고 있었느냐
주지육림酒池肉林 풍진 세상
냉전시대 종식終熄이라
주적主敵도 천적天敵도 없이 평화공존 태평이냐*
멍청한 저 멍멍개는 보초서다 졸았느냐
발 없이 기는 뱀이 소리야 있으랴만
냄새도 못 맡는 코로 경계근무 가당하냐
강마을 청락헌聽洛軒이 흉물들 민박집이냐
두 발 텃새, 네 발 짐승, 여섯 다리 곤충이야
철 따라 음악회 열어 내 어울려 즐겼느니
천장 갉는 쥐란 놈이 귀찮게는 하지마는
생각만도 끔직한 놈
천족千足 지네, 무족無足 꽃뱀
흉측한 저 물생物生들을 누가 불러 들였더냐
뻥- 뚫린 방공망防空網에
초동제압初動制壓 실패에다
최신식 장비는커녕 막대 하나 없는 마당
저 뱀을 못 잡는다면 이 집에서 어찌 살리
허둥대는 내 발 밑의 저놈 거동 한번 보소
내가 저를 겁내는 줄 뻔-히 꿰뚫는 듯
긴 몸을 스르르 풀고 하품 한 번 늘어졌다
비무장非武裝한 날 놀리듯 혓바닥 낼-름 하곤
꽃물결 느릿느릿 뱀 기듯이 사라지고
돌담엔
온몸 징그러운 긴 구멍만 남았다
*족제비는 뱀의 천적임
뱀․2
-낙동강․316
진정 모를레라, 저놈의 참 모습을
징그런 몸뚱아리
치떨리는 흉물이나
긴 역사 곳곳마다엔 신성神聖으로 섬겼으니
꿈틀, 생각만도 소름 돋는 너를 두고
저주의 상징象徵 너머 숭배崇拜는 또 웬 말인고
온몸을 부르르 떨며 네 형상을 살펴본다
험난한 세상살이 CCTV로 감시하려
절대로 감지 않는 눈알 두개 박아놓고
최첨단 주요 부품은 몸통 속에 숨겼구나
귓구멍도 막아버린 매끈한 머리통에
음흉한 안테나는 입속에다 내장하고
어드메 콧구멍 있나
뿔과 털은 왜 없는고
가기는 간다마는 무엇으로 기는 건지
소리 없는 네 이동에 다리 흔적 묘연하니
두둥실
자기부상열차磁氣浮上列車도 네 기술을 본떴것다
안으로 옥은 이빨, 걸리면 꼼짝 못해
쩍 벌린 아가리의 턱뼈를 빼는 솜씨
로봇의 분리합체分離合體도
네 특허特許를 훔쳤구나
바퀴 달린 자동차며 철로 위 KTX
물보라나 일으키는 쾌속선 꽁무니야
디지털digital 네 기술 앞엔
낡고 낡은 아날로그analogue
아하, 그렇구나
바이오bio 첨단공학尖端工學
초정밀 기기器機들은 몸속에 내장內藏하고
유선형流線型 날씬한 몸매 디자인design도 완벽하다
생김새만 그러하리
더 기찬 건 걸음걸이
낙동강 흐름법을 제 몸에 접맥接脈시켜
S자 굽이진 이동, 수륙양용水陸兩用 보법步法이라
흉측한 네놈에게 저주詛呪, 외경畏敬 품은 것은
인간들 잠재능력 네놈 혼자 다 갖추어
부러움, 미움이 엉긴
양가감정兩價感情 심리로다
뱀․3
-낙동강․317
샛강변 바위틈에 짜리몽땅 뱀 한 마리
곤히 자는 놈을 꼬챙이로 살살 치니
‘귀찮게, 건들지 마라!’
뒤척이곤 다시 잔다
이런, 간 큰 놈이!
몸통을 꾹꾹 찌르자
똬리를 반쯤 풀어 머리를 쳐드는데
아뿔싸, 독사 대가리! 오금 먼저 저려온다
삼각형 대갈통에 <나, 독사!> 딱, 새기고
빤히 쳐다보다 혓바닥 쏙, 내밀며
‘어쩔래?’
당당한 몸짓!
도대체가 겁이 없다
통통한 몸매에다 두어 뼘 남짓한 놈
암갈색 무늬들이 비단결로 흐르더니
성가신 아침이라며 중얼증얼 몸을 푼다
작은 고추가 더 맵다고 속담에 이르더니
쬐끄만 게 독毒 있다고
보이는 게 없는 거동擧動!
징그런 몸뚱이 보며 내가 약이 살 오른다
시골 생활 수십 년에 저런 놈 처음 본다
노루든 산돼지든 지레 놀라 제놈 튀고
나보다 몇 배 큰 덩치
황소까지 몰았거늘
하기사 저놈 맹독猛毒
이 강자락 최강자最强者라
개[犬]들도 부잣집 개는 팔자걸음 걷는다니
느긋한 몸동작에도 어느 놈이 대적하랴
돈이든 권력이든 손아귀에 쥐었다면
애탕개탕 아동바동, 눈치 볼 일 뭐 있으리
폼 잡고 실눈만 뜨도
제 알아서 기는 세상……
뱀․4
-낙동강․318
휘 - 이, 물렀거라
배암 나리 행차시다
소리 소문, 진동도 없는 무한궤도無限軌道 몸짓으로
구름에 강물 흐르듯 뱀 스르르 납신다
금수禽獸도 아닌 것이 어류魚類도 아닌 것이
꺾어진 막대 같은
토막 난 새끼 같은
외가닥 미끈한 흉물 이동법移動法이 괴이하다
다리도 지느러미도 날개도 바이 없이
물이면 뱃길 열고 뭍이면 철길 열고
나무에 오를라치면 나선螺旋으로 소용돌고
물길 뭍길 가는 짐승 어디 한둘이랴
아무리 새겨봐도 도무지 가당찮은
어랏차, 떴다 보아라!
고공낙하高空落下도 선보인다
변칙적 행동으로 상식을 뭉갠 저놈
골 싸맨 학자들의 분류법分類法은 있겠지만
실인즉 육해공군陸海空軍의 분리합체 동물이라
돌부리든 구덩이든, 또 천길 절벽이든
천하를 주유周遊하는 한량들 긴 옷고름
유유한 저 팔자걸음!
경이로운 저 여유!
인간들 사는 길은 분초分秒를 다투는 일
순간의 장애물들
암초, 벼락, 돌부리에
화들짝! 급정거에도 침몰, 추락, 전복이라
쇠가죽 신발끈을 단단 묶은 대낮에도
넘어지고 자빠지고
우지끈! 부러져도
비명悲鳴은 꼴깍 삼킨 채 표정 관리 먼저인 삶
제 한 몸 사는 것도 골첩첩 버거운데
자식 걱정, 살림 걱정, 온 세상 떼[衆] 걱정에
긴 한숨 깊은 수심에 짧은 밤을 설치느니
세상은 불공평해 팔자 좋은 사람도 있어
물길 뭍길 공중길을 땅 짚고 헨다지만
평생에 한두 번쯤은 무너질 일 생기거늘
길게 늘인 배암이사 무너질 일 없으리니
징그럽게 만든 흉물
조물주도 미안해서
완벽한 세상 적응법을 저놈에게 주었나 보다
뱀․5
-낙동강․319
양지바른 강언덕에
저놈 저, 동작 보게
유연柔軟한 몸뚱이가 붓으로 변신터니
몸으로 서각書刻을 하듯 온갖 글자 다 새긴다
뱀이 학문 있다는 말 얼토당토 않겠지만
저놈들 척추뼈는 회전回轉 나사螺絲 공법工法인지
일거수一擧手 또 일투족一投足이 영락없는 글자로다
문맹율文盲率 영퍼센트(0%) 한글이사 워낙 쉬워
방향만 슬쩍 틀면 ㄱ, ㄴ, ㄷ, ㄹ
뾰족한 ㅂ, ㅅ도 궁서체宮書體로 쓰는구나
세상은 글로벌global시대
영어는 기본이라
꼬부랑 필기체筆記體는 제 타고난 몸짓이요
인쇄체印刷體 MNPQ도 이텔릭체로 휘어진다
기왕에 하는 공부 한자漢字 없이 학문하리
그냥 기면 한일一이요 돌아가면 새을乙이요
아차차!
되돌아가면 기己자 쓴 후 활궁弓이라
속도가 성공인 세상, 이놈이 내달리면
일필휘지一筆揮之 종횡무진縱橫無盡
초서체草書體로 휘갈겨서
내로라! 유식자有識者들도 글자 몰라 난감難堪쿠나
온몸에 배인 공부 잠잔다고 책 놓으랴
실사糸로 감았다가 똬리 틀어 원圓을 쓰고
꿈속에 승천昇天하는지 용자龍字로도 꿈틀댄다
주제에 언감생심焉敢生心 용龍 될 생각 아예 마라
부귀빈천 없는 세상
법 앞에 평등이나
네 등에 찍힌 낙인烙印은 단 한시도 잊지 마라
네놈이 용꿈 꾸면 발기발기 까발려서
저놈 근본 배암-배암
개천에서 태어난 놈!
온 세상 손가락질로 네 성공을 헐뜯으리
출세를 할라치면 인물, 가문 좋아야지
개천가 흉물 너는 이무기도 못 되느니
운運 좋게 용 났다 해도
아-나 곶감*, 영웅 대접!
비운悲運의 뱀 한 마리 강물을 건너가니
세월에 굽이진 뱀
천삼백리 낙동강도
온몸에 강바람 불러 초서체로 일렁인다
*아-나 곶감: 경상도에서 상대를 놀리는 행위로 ‘김칫국 마시지 말라‘는 뜻
뱀․6
-낙동강․320
뱀딸기 붉게 익는 돌담장 수풀 사이
어둠에서 흘러나온 허연 껍질 마른 강이
먼동빛 붉게 적시며 샛바람에 반짝인다
온 몸에 두른 허물 남몰래 벗어 놓고
매끈하게 차려입은 어둠의 긴 뿌리는
문어발 촉수觸手를 뻗쳐 어느 물길 맴돌까
흉물들 세상살이 세탁 솜씨 기발하여
돈 세탁, 학력 세탁, 얼굴, 이름, 국적 세탁
환생還生한 완벽한 모습
거침없는 저 몸놀림!
어디, 요즘 세상 완전범죄 가당터냐
세탁기 틈에 스민 저놈들 DNA는
청문회聽聞會
단 한 방에도 낱낱샅샅 까발린다
탈세, 투기, 사기, 협잡
종합회사 들통나고
벼룩 간肝 긁어모은 금고金庫도 탄로나고
귀하신 신의 아들딸* 제조과정製造過程 폭로된다
한 세상 사는 길에 엇길 어찌 없으랴만
한 점 허물로도 부끄러운 우리네들
양심은 송곳이 되어
속살 콕콕 찌르거늘……
기어이 명품名品이라고 낼름대는 저 꼴 보소
새빨간 혓바닥이 마이크 선을 타고
전파電波로 흐르는 강에 황톳물로 섞여드네
*신의 아들딸 : 각종 불법, 편법으로 병역, 금융 등의 특혜를 누리는 특수층의 자식을 이르는 시속어時俗語
뱀․7
-낙동강․321
저놈, 뱀대가리!
구멍으로 들어간다
혓바닥 길게 뽑아 바위를 쓱 - 핥으며
잡초들 욱은 사이로 돌담 깊이 빨려든다
풀잎 곧추선다
돌부리 긴장한다
잎사귀 파르르 떨고 붉은 씨방 부푼다
닫혔던 꽃봉오리가 속잎 열어 마중한다
땅 속 나무뿌리 알몸으로 엉겨든다
용틀임 시작된다
바람소리 거칠다
지축地軸이 흔들리면서 겹겹 지층地層 갈라진다
지하수 솟아난다
자갈 소리 들린다
빗줄기 쏟아지고 앞강이 꿈틀댄다
나무들 부르르 떨며 아랫도리 쭉 뻗친다
새들 숨죽인다
정적 깊어진다
가지들 늘어지고 엉긴 뱀 몸을 풀면
꽃잎 진 씨방 깊숙이 푸른 강이 꿈틀인다
뱀․8
-낙동강․322
뱀에 기겁도 하고 뱀도 때려잡으면서
뱀 같은 강줄기에 평생 붙어 살다보니
에덴의 뱀 이야기도 이제야 좀 알 것 같다
저놈 대가리의 원초적原初的 생김하며
은밀히 몸을 꼬는 촉촉한 유혹하며
달콤한 입술에 배인 붉은 맛도 알 것 같다
전설을 잃어버린 선남선녀善男善女 후예들이
속옷에 가리어진 낙원樂園 찾는 사연이란
뱀으로 엉겨 흐르는 강의 향연饗宴 아닐러냐
별빛 총총 내린 밤을 실바람에 살랑대다
산자락 굽어 돌 때 속살 슬쩍 맞닿으면
옆구리 은근히 찔러 한 굽이로 엉기고
칼로 물을 베다 앵돌아 누운 날도
싸늘한 물줄기를 긴 밤 내내 다독거려
꽁꽁 언 이부자리를 출렁이게 만든다
향연은 엄숙하지만 뱀이 지닌 맹독猛毒도 있어
제 한 몸 다 던져서 주야장천 엉기다 보면
육신肉身이 물속에 녹아 황톳물로 넘치느니
시윗물 흐르는 것은 준엄한 강의 심판
호색好色의 욕정欲情으로 폭풍우 몰아치면
홍수로 굽이치면서 강둑마저 무너지리
뱀이 가르쳐준 선악과善惡果 깊은 의미
강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낙원을 얻고 잃음이 강의 향연饗宴에 있나보다
*성경 구절 원용
뱀․9
-낙동강․323
역시 뱀이란 놈은 느낌만도 섬뜩한지
무덤덤한 담장 틈에 으스스한 낌새 있어
혹시나? 눈여겨보다
딱, 마주친 뱀 대가리!
침착, 진정, 흥분 말고!
스스로 다독이며
저놈들 출몰 이후 곳곳 세운 막대 찾아
대갈통 꾸-욱 눌렀으니 너는 이제 죽은 목숨
젖 먹던 힘을 다해 아동바동 누르는데
온몸을 비비틀며 막대를 감는 괴력怪力
어둠을 휘감는 힘이 무한궤도無限軌道로 조여온다
허벅지 휘어감는 개여울 물살 같은
썰물에 빨려드는 샛강물 조류潮流 같은
강둑에 태풍 불던 날 등 떼미는 바람 같은……
저놈과 한판승부 인간이 유리한데도
눈앞에 맞닥뜨리면 오금 먼저 저렸으나
이번엔 승리의 예감!
요리법料理法이 즐겁구나
살아있는 비아그라 네놈이 특효라니
장작불 무쇠솥에 와글바글 뱀탕 끓여
오늘은 참, 오랜만에 밤에 힘 좀 써 볼까
막대를 칭칭 감은 이대로 들고 가서
시뻘건 장작불에 곱슬곱슬 구워먹으면
고소한 입내도 좋아 임도 보고 뽕도 딸까
삼각형 대갈통에 열십자 칼금 그어
껍질을 꽉 잡고서 홀라당 벗긴 후에
속살을 회膾 쳐 먹고는 알몸 사냥 나가볼까
온몸 오그라드는 힘겨루기 끝나는지
팽팽한 허연 배에 바람이 빠질 무렵
막대기 묵직한 끝의
천근 쇠가 떨어진다
물결무늬 긴 몸통이 허물허물 늘어지자
온몸이 땀에 절인
내 다리도 접질리고
늦가을 하류下流를 기는 샛강물도 풀어졌다
뱀․10
-낙동강․324
보개산 산등성에 짙붉은 노을 지면
사계절四季節 변신하며 함께 흐른 낙동강이
제 몸을 발갛게 풀어 새끼 뱀을 낳는다
길가에 늘어서서 왕방울눈 부릅뜬 놈
붉은 반점 깜빡이며 일렬로 달리는 놈
층층이 똬리를 틀어 고층으로 앉은 놈
어둠이 짙을수록 빛이 더 빛나는 세상
몸통에서 튕겨나온 꽃뱀의 비늘들이
스스로 반짝이 되어 온갖 춤도 선보인다
긴 몸 휘어지며 꼬리 슬슬 흔드는 춤
양팔을 곧추세워 허공을 찌르는 춤
바닥에 나뒹굴면서 막무가내 날뛰는 춤
두 주먹 불끈 쥐고 눈 부라려 다투는 춤
빌딩과 빌딩 사이를 외줄 타고 건너는 춤
오로지 일등을 향해 전속력으로 내닫는 춤
춤추지 않고서는 살아날 수 없는 세상
의자에서, 바닥에서, 고공에서, 지하에서
사람은 꽃뱀이 되어 생목숨을 내건다
뱀․11
-낙동강․325
싫어서, 저놈 싫어
징그런 뱀 싫어서
김해공항 비행기로 공중에 도망을 가니
또 한 놈 거대한 뱀이 몸을 틀며 일어선다
햇살에 반짝이는 바람물결 비늘 세워
한반도 산과 들에 용틀임 후리치며
낙동강 천삼백 리가 뱀이 되어 따라온다
태백산 깊은 골에 꼬리를 적셔놓고
구미龜尾 찍고 남지 밟고
삼랑진 휘돌아서
길고 긴 몸뚱아리로 산과 들을 감고 온다
형님 이쪽, 아우 저쪽
서낙동강 휘어지니
구포龜浦 너머 강서江西 들[野]은 저놈 머리 되어
눈알로 단단히 박힌 칠점산七点山과 덕도산德島山
제 무슨 용龍이라고 여의주如意珠 굴리는 듯
을숙도를 입에 물고 아가리 쫙- 벌리자
하구河口의 모래섬들이 혀가 되어 낼름대고
남해바다 물길에는 파고波高도 높게 일어
호시탐탐 기웃대는 외적들 노려보며
가덕도 용뿔로 세워 한반도를 막아섰다
아침 저녁 은빛 금빛, 밤에는 달빛 별빛
봄 여름 가을 겨울
화사花蛇 흑사黑蛇 독사毒蛇 백사白蛇
때 맞춰 변신變身을 하며 굽이굽이 흐르는 강
강마을 감돌아서 옹기종기 알을 품고
물머리 치켜들고 바다로 가는 저놈
남해와 백두대간의 생명줄을 잇는구나
그래, 그랬구나
저 강이 뱀이구나
도랑이든 개천이든 샛강이든 대하大河이든
사람은 뱀 옆구리에 꽃[花]이 되어 사는구나
<후기>
[강마을 불청객]은 미완未完의 작품집이다.
새천년 초입, 나의 샛강물에는 황토시위가 일었다.
이 무렵 철저한 정격 형식에 사설시조의 내용과 분량을 접목한 시형 ‘장연시조長聯詩調’에 몰입했다. 총 800연이 넘는 장연시조 70여 수는 명랑한 물길 위에 강바닥까지 뒤집혔던 내 인생 소용돌이의 부산물들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해학과 풍자의 폭포수 사설은 그 당시 내 서정의 자연발생적 소산물이었다. 그래서 제재에 대한 애증愛憎의 교차가 생성된 것 같다.
강마을 불청객은 애초 강변의 온갖 생물들, 이들테면 바퀴벌레, 그리마(일명 심바리), 거미, 거머리 등을 섭렵하며 인간사의 단면을 그리려 했지만 <애완견 사설> 40수 이후 모기[蚊]에 이르러 불청객 리듬이 중단되어 버렸다.
뒤집혀진 강의 허파도 시간과 더불어 흉터로 굳어가는 모양이다. 다행히 불청객 서정이 소진된 것 같다.
흐르는 강물의 힘인가 보다.
너무 오래 묵혀두면 고사목枯死木이 되겠기에 미완의 시집을 엮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