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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병원에 가면 존재감이 쪼그라드는 거 맞지요? 내가 땀이 없는 편인데 뒤통수에 땀이 나고 미세하게 어지럼증이 있어서 병원에 찾아갔습니다. 혈압 120/70, 체온 36.5 다 정상인데 무슨 일일까요? 청진기를 갖다 대도 특이 사항이 없는지 술 담배 하느냐고 물어서 담배만 30년 피웠다고 했지요. 당장 담배를 끊으라고 해서 속으로 그 딴 소리는 나도 하겠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발설하지 않았고, 담배가 폐 말고 또 어디에 영향을 주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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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신은 담배를 끊었냐고 묻자, 자기는 담배 끊은지 30년 됐다고 하더이다. 수명이 60-70세 일 때는 피워도 되지만, 100세 시대엔 무조건 금연이 답이라고 강조하는 의사 소견을 믿어야겠지요. 병원 온 김에 국가 건강 검진 예약을 위해 심전도 검사를 했어요. 목걸이 팔찌 다 빼고 누우라고 해서 시키는 대로 했어요. 가슴과 발목을 메탄올로 문지르는데 "염하는 것 같아요" 했더니 간호사가 무슨 그런 소리를 하냐고 받아줍니다. 9.4.fri.am 9:30 예약했는데 벌써부터 내시경 할 일이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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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특선으로 <김 군>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mbc에서 보았습니다. 증인이 당시 18세인데 46년이 지나 64세가 되었더이다. 5.18을 담은 글을 서너 번 썼기 때문에 그냥 넘어갈 생각이었는데 ‘김 군’이라는 다 큐에 쏙 빠져 몇 자 꿀쩍거려봅니다. 그 무렵 주변에 대학생은 없었지만 실재 희생자들은 내 또래들이 많았어요. 나도 광주를 들락거리던 사람 중에 한 명이었고요. TV 보면서 심쿵 하더이다. 질풍노도 시절 나대기를 좋아한 고 삐리이었는데 아찔합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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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하면 휘말리지 않고 몸을 보존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겁니다. 도청 앞에 있는 보이스카우트 연맹에 단복을 찾으러 서너 번은 다녀갔을 것이고 대인 동, 황금 동, 충 장로는 일주일이 멀다 하고 왔다 갔다 했는데 말입니다. 광주에서 통학하던 학교 친구들은 몇 명 죽었지만 불알친구 중엔 일도가 유일한 5.18희생자입니다. 당시 담양공고 앞에 임시 검문소를 설치하고 불심 검문을 했고 절친 일도가 잡혀가서 몇 달 만에 나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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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팔뚝에 담배 빵 하나만 있어도 잡아갔으니까요. 워낙 야문 놈이라 삼청교육대에서도 17살 나이에 살아 돌아왔습니다. 장하다. 친구야! 친구가 소년원에서 징역 삼 얘기를 영웅담으로 곧잘 했지만 삼청교육대 얘기는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어요. 그가 일찍 생활을 접었고요. 놈이 왜 생활을 접고 반 건달이나 하는 제비족이 되었을까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김 군’이라는 영화를 보고 나니 조금은 이해가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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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원은 지가 무슨 군사평론가라고 나와서 똥 밟는 소리를 하는지 욕 나올 것 같습니다. "김일성의 지령을 받고, 김대중의 자금을 받았다"라는 둥 귀신 쉰 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는 걸 언제까지 들어야 할까요? 연병, 귀신은 뭐하나 몰라. 80년 5월, 광주 도심 곳곳에서 포착된 한 남자, 군용 트럭 위 군모를 쓰고 무기를 든 매서운 눈매, 그가 북한 특수 군 '광수'랍니다. "에라, 내가 광수(광산 김씨 문정공파)다!" APC처럼 생긴 차 '페퍼포그'에 M60 같은 '캐리버'를 달고 있는 사진은 새로운 사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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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 인물이 누구냐? 지 씨는 '광수'라는 것이고 감독은 그가 양동 시장에 머물던 넝마 중 한 사람인 '김 군'이라는 것을 300분 인터뷰를 통해 증명하려는 것 같습니다. 당시 사진 속 인물들은 카빈을 썼기 때문에 캐리버를 사용할 줄도 모른다는 말을 하더이다. 내가 본 것도 '카빈'이었고, 실재 '아세아 자동차'에서 나온 버스가 담양 경찰서를 들이 박은 것도 제 눈으로 보았어요. 교도소 무기 탈취는 당시 소문이 돌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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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해 보면 누군가 계엄군의 사주를 받고 북한 개입설을 조각한 인물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놈이 '팩트와 거짓을 적절히 섞어 만들었기 때문'에 엉킨 실타래처럼 꼬인 그날 광주의 진실이, 지금까지도 새로운 의문들로 꼬리 잇기를 계속하는 것 같습니다. 격세지감입니다. 스크린 속 흑백 사진이 벌써 46년 됐다니 말입니다. 아,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붉은 피 서리는 건 저만 그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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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휴가 5>입니다. 민우, 진우 신애가 다니는 성당의 김 신부(송재호)는 5.18의 배경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는 해설 역 같은 사람입니다. 나이, 신분의 영향인지 전투와는 거리가 멀 것처럼 보였지만 "뭐해요? 나도 총 한 자루 주세요. 좋은 놈으로."라고 말하며, 자신도 전투에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고, 전투에서는 죽어가는 인봉 옆에 앉아서 인봉의 유언을 들어줍니다. 모티브는 천주교 광주 대교구 조철현(비오 몬시뇰) 신부로 2016년에 선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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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인 아주머니(나주댁/나문희)는 군인들에게 잡혀가다가 겨우 탈출한 강민우가 어쩌다 자기 집에 뛰어들게 되자, 밥을 해주고 아들의 옷을 빌려줍니다. 창수라는 이름의 아들이 있는데 계엄군이 미쳐날뛰기 시작한 후로 창수가 집에 안 들어와 노심초사하고 있었어요. 나중에 창수 친구들의 도움으로 상무관에 와서 창수의 죽음을 알고 "내 아들이 어떻게 폭도냐"라고 울부짖는데 내 눈물 샘도 터져버렸습니다. 주인공을 도와준 것 외엔 스토리에 어떤 영향도 안 미치는 캐릭터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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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계엄군의 무자비한 탄압과 폭거로 인해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슬픔을 리얼하게 보여주었다고 봅니다. 창수의 친구인 동규의 부축을 받으면서 애국가 총격 때 사망한 시민들 장례식에 와서 죽은 아들의 얼굴을 더듬으며 "얜 창수 아니야. 우리 창수는 코도 오뚝하고 잘생겼어. 얘는 창수 아니여."라며 현실을 부정하다가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맙니다. 나중에 도청 진압작전 직전 마지막 밤 장면에서 아들의 영정을 안고 울고 있는 모습으로 한 번 더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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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수는 사실 김 닥터가 "피 확보되는 대로 수혈하라"고 지시한 장면에서 나온 피투성이 환자입니다. 삭제 장면에서 자기 죽냐고 물어보고 신애가 자신의 목걸이를 풀어서 손에 쥐여주며 "이걸 쥐고 있으면 창수 씨는 어머니를 만날 수 있을 거예요"라고 말해주는데, 얼굴을 자세히 살펴본다면 모를까 본 영화에서는 편집됐다고 합디다. 억울함이 너무 많아도 말을 할 수 없는가 봐요. 엔딩 그리고 결혼사진, 아! 아직까지 살아있는 제 마음도 신애처럼 암울하고 답답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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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와 정의와 정직(28;9) “은 잠언 서각 말하는 지혜입니다. 5공화국이 출범하기 전, 10.26이후 광주를 무력 진압하고 통이 된 전 통이 맨 먼저 한 일이 '정의 사회 구현'이라는 타이틀을 내 걸고 깡패 소탕 작전을 했습니다. 1차 삼청 교육대, 2차 순화 교육대를 했는데, 삼청교육대는 4천 명가량의 성인들로, 순화 교육대는 나 같은 고등학생들이 주로 받았습니다. 다른 학교는 모르겠는데 우리 학교에서는 자원 형식으로 8명이 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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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장은 '충남 아산'이었습니다. 학교에서 학생과장이 순화 교육대에 들어가라고 내게 열나 추천을 했습니다. 물론 나는 가지 않았습니다. 나중에서야 안 일이지만 정부에서 학교별로 할당량이 나온 것입니다. 다녀오면 퇴학을 안 시키는 조건으로. 염병, 이것이 국가인가? 누구에게 나라를 맡길 것인가는 지금도 중요한 일입니다. 칼로써 통치하겠다는 사고방식을 갖은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선포되고 있습니다.(시 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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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행 악하여 무고한 피를 땅에 흘리게 하면 땅의 소유주인 창조주가 그들도 똑같이 진멸하시며 살육 당하게 하신답니다 (시 34:2). " 다~죽었어! 이 나라와 이민족을 불쌍히 여기사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을 경험케 하옵소서. 칠흑 같은 어두움이 물러갈 것 같지 않았던 조국의 낡은 체제와 질서를 바꾸시고 주의 빛을 비춰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지금 내가 주의 이름을 부르면 성령으로 내 안에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오늘도 주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살겠사오니 이 나라를 새롭게 하옵소서.
2.
누가 죽은 자의 이름을 빼앗는가? 역사적 폭력은 사람을 죽이는 것으로 끝나는가, 아니면 죽은 사람의 이름과 기억까지 빼앗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가? 그리고 46년 뒤 살아남은 사람의 증언은 얼마나 진실에 가까이 갈 수 있는가? 5·18 특선으로 다큐멘터리 『김군』을 보았습니다. 이미 광주 이야기를 여러 번 썼으니 이번에는 그냥 지나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흑백사진 속 한 청년을 찾아가는 영화에 그만 붙들리고 말았습니다. 사진은 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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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도 늙었습니다. 1980년에 열여덟 살이었던 사람은 이제 예순을 훌쩍 넘겼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진 속 청년만 늙지 않았습니다. 역사는 그래서 잔인합니다. 살아남은 사람에게는 세월이 흐르지만 사진 속에서 죽은 사람에게는 시간이 흐르지 않습니다.『김군』은 바로 그 멈춰버린 시간 속으로 들어갑니다.
1. “저 사람은 누구인가?"
영화는 단순한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찍힌 한 무장 시민군의 사진. 지만원은 그 인물을 북한 특수군, 이른바 ‘제1광수’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강상우 감독은 반대로 묻습니다. "정말 그런가?" 그리고 사진을 확대하고, 당시 사람들을 찾아가고, 수많은 증언을 듣습니다. 한국영상자료원도 영화의 출발점을 바로 이 사진과 ‘제1광수’ 주장, 그리고 그 인물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추적으로 설명합니다. 이것이 『김군』의 철학적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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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은 처음부터 답을 들고 광주로 가지 않습니다. “북한군이 아니었다”고 외치는 대신, 그러면 저 사람은 누구였습니까?” 라고 묻습니다. 좋은 역사학과 좋은 철학은 대개 여기에서 시작합니다. 확신보다 질문에서.
2. 사람을 죽이는 두 번째 방법 ― 이름을 바꾸는 것
사진 속 청년에게는 본래 이름이 있었을 것입니다. 어머니가 불렀던 이름, 친구들이 불렀던 별명, 시장에서 사람들이 알아보던 얼굴.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광수’가 됩니다. 여기서 끔찍한 일이 벌어집니다. 사람 한 명이 존재에서 기호로 바뀝니다. 에마뉘엘 레비나스라면 인간의 얼굴은 그 자체로 “나를 죽이지 말라”고 명령한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얼굴은 통계나 이념으로 환원될 수 없는 한 사람의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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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치적 이데올로기는 얼굴을 견디지 못합니다. 얼굴 대신 딱지를 붙입니다. 폭도, 빨갱이, 간첩, 광수. 그 순간 한 사람의 복잡한 인생은 사라지고 정치적 주장에 필요한 증거물만 남습니다. 그래서 역사왜곡은 단순히 사실 하나를 틀리게 말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죽은 사람에게서 자기 인생을 되찾아 말할 권리를 빼앗는 행위입니다.
3. 『김군』은 거대한 영웅을 찾지 않는다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김군을 영웅으로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는 유명한 정치인도 아니고 학생운동 지도자도 아닙니다. 사람들의 희미한 기억 속에서는 넝마주이 청년으로 나타납니다. 감독은 약 4년에 걸쳐 시민군 등 많은 사람을 만나 증언을 모았고, 그 과정에서 5·18이 국가적으로 정리된 ‘과거사’이면서 동시에 일부 생존자에게는 여전히 사회적 낙인과 트라우마로 남아 있음을 확인했다고 말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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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늘 지도자의 이름을 기억합니다. 장군의 이름, 대통령의 이름, 정치인의 이름. 그런데 거리에서 죽은 사람은 흔히 ‘신원 미상’이 됩니다.『김군』은 그 순서를 뒤집습니다. 위대한 사람의 역사가 아니라 이름 없는 사람의 역사를 찾습니다. 발터 벤야민이라면 이것을 ‘패자의 역사’라고 불렀을 것입니다. 역사의 천사는 승리자의 개선행렬보다 그 뒤편에 쌓여 있는 잔해를 바라봅니다.『김군』이 바라보는 것도 바로 그 잔해 속 한 얼굴입니다.
4. 46년 된 기억은 믿을 수 있는가?
그러나 여기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가 생깁니다. 46년 전 기억입니다. 증언자들은 늙었고 세부 기억은 서로 어긋납니다. 누군가는 그날의 옷을 기억하고, 누군가는 차량을 기억하고, 누군가는 얼굴을 기억하지만 다른 사람은 전혀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증언은 믿을 수 없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폴 리쾨르는 기억을 녹음기처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기억에는 망각과 착각과 재구성이 섞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한 사람의 기억을 절대화하지 않고 여러 기억과 문서와 사진을 서로 대조합니다.
-『김군』도 바로 그렇게 움직입니다. 사진 하나, 증언 하나, 신문자료 하나, 또 다른 증언 하나. 완벽한 퍼즐 한 조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불완전한 조각들을 서로 맞추면서 진실에 가까이 갑니다. 이것은 개인의 기억을 다룰 때도 중요한 원칙입니다. 46년 전 내가 보았던 버스와 총과 검문소의 기억은 소중합니다. 그러나 기억이 생생하다는 사실과 세부사항이 모두 객관적으로 정확하다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증언의 진실성을 존중하는 것과 증언의 사실성을 검증하는 것은 서로 반대가 아닙니다. 오히려 기억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검증합니다.
5. “팩트와 거짓을 섞으면 더 위험하다”
글에서 가장 날카로운 직관은 이것입니다. 거짓말은 전부 거짓일 때보다 사실 몇 조각을 섞을 때 훨씬 강해집니다. 광주에 무장한 시민이 있었다. 맞습니다. 차량을 사용했습니다. 맞습니다. 일부 무기고에서 총기가 반출되었습니다. 그런 사실 조각을 꺼내놓고, “그러므로 북한 특수군이 지휘했다.” 라는 결론으로 넘어가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논리학에서는 이것이 바로 ‘사실’과 ‘추론’을 구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현재 법원의 판단도 명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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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은 2026년 2월 12일 5·18 관련 북한군 개입 등의 주장을 포함한 출판물 사건에서 하급심 판단을 확정했고, 광주고법 역시 북한군 개입설 등 다수의 서술을 허위사실로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계엄군 누군가가 북한개입설을 사주해서 만들었다”는 식으로 한 단계 더 나아가는 주장 역시 별도의 증거 없이는 사실로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역사왜곡을 비판하면서 우리 역시 증거 없는 추론을 사실처럼 말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김군』이 가르쳐주는 중요한 태도입니다. 적을 닮지 않는 것.
6. “내 아들이 어떻게 폭도냐”
『화려한 휴가』의 나주댁이 죽은 아들의 얼굴을 더듬으며 외칩니다. “얘는 창수 아니여.” 아들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는 어머니의 부정입니다. 그러다가 결국 묻습니다. “내 아들이 어떻게 폭도냐.” 이 한마디가 국가폭력의 가장 깊은 곳을 찌릅니다. 어머니에게 그는 폭도가 아닙니다. 아들입니다. 친구에게는 친구이고, 연인에게는 연인이며, 누군가에게는 동생입니다. 그래서 국가가 시민을 ‘폭도’라고 부르는 순간 유족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이름을 되찾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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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은 폭도가 아닙니다.” “내 아들입니다.” 철학적으로 애도는 바로 이 일을 합니다. 죽은 자를 익명의 사망자에서 다시 고유한 인간으로 돌려놓습니다. 그래서 장례식에서 우리는 이름을 부릅니다. 숫자를 장례 치르지는 않습니다. 사람을 장례 치릅니다.
7. 정의를 말한 권력이 왜 폭력을 사용했는가
“정의사회 구현.” 참 역설적인 구호입니다. 권력은 스스로를 악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대부분 정의라고 부릅니다. 독재도 질서라고 말하고, 탄압도 사회정화라고 말하며, 강제교육도 순화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조지 오웰이 『1984』에서 가장 두려워한 것은 총보다 언어였습니다. 권력이 언어를 지배하면 사람들은 폭력을 보면서도 그것을 폭력이라고 부르지 못합니다. 여기에서 “정의”라는 단어는 완전히 뒤집힙니다. 진짜 정의는 권력이 자기 행동에 붙이는 상표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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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힘없는 사람에게도 같은 인간의 지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좋은 민주주의는 자신이 정의롭다고 계속 외치는 체제라기보다, “우리가 혹시 잘못하고 있지 않은가?” 라고 스스로 질문할 수 있는 체제입니다.
8. 살아 돌아왔는데 왜 말하지 않았을까
친구의 이야기도 여기에서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소년원 경험은 무용담처럼 이야기했지만 삼청교육대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습니다.왜 그랬을까요? 우리가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이후 삶을 특정 경험 하나로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김군』에 등장하는 생존자들의 침묵은 한 가지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어떤 고통은 너무 커서 자랑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말하면 다시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트라우마는 “기억이 너무 많다”는 뜻만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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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기억은 존재하지만 말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40년 동안 침묵합니다. 철학자 장 아메리는 고문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고문당한 사람에게 세계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다고 말했습니다. 어제까지 나를 보호한다고 믿었던 사회와 제도가 나를 때렸다면, 그 뒤에는 누구를 믿어야 합니까? 몸은 살아 돌아와도 세계와 맺었던 신뢰는 돌아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점에서 살아남음과 회복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9. “김군”이라는 제목이 아름다운 이유
그래서 영화 제목이 좋습니다. 영웅적인 이름이 아닙니다. 그냥 김군입니다. 김씨 성을 가진 어느 청년. 대한민국 어디에나 있을 법한 이름입니다. 어쩌면 그래서 더 무섭습니다. 김군은 특정한 한 사람이면서 동시에 수많은 평범한 청년을 가리킵니다. 그날 우연히 광주에 있었던 사람, 그날 총을 들었던 사람, 그날 살아남은 사람, 그날 사라진 사람, 그리고 그 근처를 오가다가 우연히 사건에 휘말리지 않았던 사람까지.한 사람의 인생은 때로 아주 작은 우연 때문에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그래서 “나도 그곳을 들락거렸는데 어떻게 살아남았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 아찔해지는 것입니다. 역사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내가 지나간 골목 하나 옆에서 역사가 갈라집니다.
10. 기억하는 사람의 윤리
그렇다면 산 자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분노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잊는 것도 아닙니다. 가장 어려운 것은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입니다. 내 기억이 틀릴 수도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확인된 폭력을 흐리지 않고, 죽은 사람을 정치적 도구로 만들지 않으며, 새로운 증거가 나오면 내 생각을 수정하는 것. 이것을 나는 ‘기억의 윤리’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벤야민의 말처럼 과거의 죽은 자는 현재의 우리에게 무언가를 요구합니다. “나를 영웅으로 만들어달라”는 요구가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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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훨씬 단순할 것입니다. “내가 실제로 어떤 사람이었는지 함부로 지우지 말아달라.” 바로 그것입니다. 『김군』이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이유는 거대한 진실을 새로 폭로해서만이 아닙니다. 사진 속 사람을 오래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너는 누구였느냐?” 그 질문을 계속합니다.그 질문 하나가 정치적 선동을 인간의 이야기로 되돌립니다. ‘광수’가 아니라 김군으로. ‘폭도’가 아니라 아들로. ‘희생자’가 아니라 한때 웃고 먹고 사랑하고 돌아다녔던 청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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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폭력이 인간에게서 생명을 빼앗았다면, 역사왜곡은 그 사람에게서 기억까지 빼앗으려 합니다. 그렇다면 산 자의 책임은 분명합니다. 기억을 신화로 만들지 않고, 분노를 허위로 보태지 않고, 증언을 기록과 대조하면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시 이름을 돌려주는 것. 그래서 46년 뒤 우리가 광주를 기억한다는 것은 과거로 돌아가는 일이 아닙니다. 현재의 인간을 함부로 ‘적’이라는 이름으로 지워버리지 않기 위한 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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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가슴이 붉어지는 까닭도 결국 그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죽은 자가 아직 과거가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죽음이 오늘 우리에게 묻고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이제 사람을 사람으로 부르고 있는가?” <김군>은 북한군 한 사람을 찾아내는 영화가 아니라, 정치적 이념이 빼앗아간 한 인간의 얼굴과 이름을 증언의 조각들로 다시 돌려주는 영화입니다. 진정한 애도는 죽은 자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실제로 누구였는지를 끝까지 묻는 데서 시작된다고 동의해 주시라!
2026.8.29.sat.악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