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째날 - 1998년 9월 7일
오늘도 새벽 4시가 조금 넘어서 눈을 떴습니다. 주변의 시크교와 힌두교 사원에서 들리는 시끄러운 소리때문입니다. 집에서는 보통 7~8시 사이에 눈이 떠지지만 긴장한 탓인지 시차때문인지 사원에서 들려오는 소리 때문인지 일찍 일어나게 됩니다. 일어나서 QT를 갖고 세면과 용변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아침에 식사를 하고 Tour를 하려고 9시 30분에 가보니 투어 차량이 오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델리 시내의 박물관들은 월요일은 문을 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환불해 달라고 해서 돈을 돌려 받고 최선교사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자초지종을 최선교사에게 설명한 후에 다시 집을 나와서 오토릭샤를 잡아 타고 국립박물관으로 갔습니다.(45루피) 그런데 문이 닫혀있었습니다. 오토릭샤 왈라(기사)가 못되먹은 것은 돈 벌기 위해 휴관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도착하니 다른 릭샤 왈라들이 들러 붙어서 어디를 가자고 야단을 하는 것입니다. 릭샤 하나가 5루피를 제시하며 간이 박물관이 열려있으니 그곳을 가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자고 하고서 그곳을 가서 5루피를 지불했습니다. 다 보고 나서 오토릭샤를 불러 코노트 플레이스까지 14루피를 주고 갔습니다.
여기서 식당을 찾으려니 지리를 몰라 헤매게 되었고 헤매다 보니 구두닦이들에게 사기를 당했습니다. 내 구두에 똥칠을 하고 구두를 닦은 후에 250루피를 요구했습니다. 그러면서 바람잡이 한놈이 와서 은근한 협박을 넣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15루피를 주고 자리를 떴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가양동에 28루피를 주고 전화를 했습니다. 아버지가 받으셨고 선경이 엄마는 집에 갔다는 것입니다. 전에 최선교사와 밥 먹던 장소를 간신히 찾아서 식사를 하고 코노트 플레이스 공원에서 1시간 가량 휴식을 취했습니다. 그리고 오토릭샤를 불러 최선교사 집으로 돌아왔는데 비용이 대략 60루피 정도가 들었습니다.
침대에 누워서 쉰 후에 나중에 Singh 목사가 와서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눈 후에 함께 기도하고 저녁 식사로 국수가 나에게 먼저 나왔습니다. 그래서 식사를 하고 짐을 정리해서 급하게 나와서 오토릭샤를 잡아서 뉴델리 역까지왔습니다. 비용은 70 루피가 들었습니다. 역의 차량 번호가 11번이었으며 그 차량에 붙은 내 이름을 한참 찾아서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열차를 잡아서 탔는데 내가 탄 열차의 같은 곳에 서양 사람들이 타서 영어로 물어보니 대화가 통하지 않았습니다. 의사소통이 되지 않으니 그 사람들이 어느 나라 사람들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내 자리의 번호는 35번으로 위층 침대였습니다. 내 자리는 흔들리는 자리여서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습니다.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하다가 잠에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