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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명 |
운행 시간 |
출발 간격 |
순환 시간 |
1층 버스 |
도심 순환 코스 |
9:00~ 21:00(막차 19시) |
30분 |
약 2시간 |
야경 코스 |
20:00(1회 운행) |
- |
약 1시간 반 | |
2층 버스 |
청계천 • 고궁 코스 |
10:00~17:00 |
1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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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경 코스 |
20:00(1회 운행) |
- |
약 1시간 반 |
각 코스 모두 광화문 동화 면세점 앞을 기점으로 순환
월요일은 휴무(다만,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는 정상 운행)
여름휴가(방학) 기간(7월 제 4주부터 8월 15일)은 휴무 없음.
야경 코스는 논스톱 운행(중간 정류장에서 승차와 하차 불가)
청계천•고궁 코스는 이용객이 많은 시기(1/2/4/5/7/8/10/12월)는 아침 9시부터 운행
청계천•고궁 코스는 매주 토요일(14:00이후), 공휴일, 행사시 청계광장 차량 출입제한으로 덕수궁, 청계광장은 지나가지 않음
도시 순환 코스는 여름휴가(방학) 기간 중은 20분 간격으로 출발
이용 요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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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명 |
성인 |
고교생 이하 |
1층 버스 |
도심 순환 코스 |
10,000원 |
8,000원 |
야경 코스 |
5,000원 |
3,000원 | |
2층 버스 |
청계천 • 고궁 코스 |
12,000원 |
8,000원 |
야경 코스 |
10,000원 |
6,000원 |
할인 안내 (중복할인 불가)
10인 이상 단체 이용시 10% 할인
보호자가 동반하는 5세미만 어린이 1명 무료탑승
티머니카드로 결제 시 5%할인 (티머니카드 고급형만 가능.)
KR패스소지 외국인 15%할인
현금 영수증 발급가능
승차권 구입처
시티투어 버스탑승시 가이드에게 직접 구입
광화문 코리아나호텔옆 티켓박스 (02-777-6090)
크라운호텔 (02-797-4111)
타워 호텔 (02-2236-2121)
소피텔엠버서더 호텔 (02-2270-3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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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보이호텔 (02-776-2641)
용산전쟁기념관 (02-709-3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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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光化門] -경복궁 남쪽에 있는 정문-
1395년 경복궁의 기본구조를 갖춘 다음 1399년 그 둘레에 궁성을 쌓을 때 세웠다. 처음에는 사정문(四政門)으로 불렀으나 1425년(세종 7) 집현전에서 광화문으로 바꾸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865년(고종 2)에 재건했다. 1927년 일제 총독부가 경복궁의 동문인 건춘문(建春門) 북쪽으로 축소 이전시켰다. 현재의 문은 6·25전쟁 때 소실된 것을 1968년 석축(石築) 일부를 수리하고 문루를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중건한 것이다. 석축기단 위에 3개의 무지개문[虹霓門]을 만들고, 그 위에 앞면 3칸, 옆면 2칸의 중층 우진각지붕으로 된 문루를 두었다. 숭례문과 비슷한 구조를 하고 있으나 세부장식이 많이 가미되었다. 외이출목(外二出目)· 내삼출목(內三出目)의 다포계 건물로 지붕의 마루에는 취두·용두·잡상을 놓았다. 목재가 아닌 콘크리트로 만들었기 때문에 처마의 선이 자연스러운 곡선을 이루지 못하고 직선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어 원래의 모습과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덕수궁 [德壽宮]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 5번지에 자리한 조선시대 궁궐-
사적 제124호. 조선의 5대 궁궐 중에서 가장 규모가 작은 것으로 조선말 고종이 살던 곳이다. 궁궐의 자리는 원래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집이 있었던 곳으로 선조가 임진왜란 직후 임시거처로 사용하면서 행궁(行宮)이 되었다. 광해군은 이곳에서 즉위한 뒤 1611년 10월 경운궁(慶運宮)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615년(광해군 7)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빈 궁궐이 되었으며 1618년 인목대비가 이곳에 유폐되면서 서궁(西宮)으로 불렸다. 인조는 이곳 별당에서 즉위했으나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기는 바람에 다시 빈 궁궐이 되었다. 1896년 아관파천(俄館播遷)으로 왕태후와 왕태자비가 이곳으로 옮겨와 생활했으며 1897년 고종이 러시아 영사관에서 이곳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본격적인 궁궐건물의 건립이 이루어졌다. 그해에 역대 임금의 영정을 모시는 선원전(璿源殿), 침전인 함령전(咸寧殿), 보문각(寶文閣) 등이 지어졌으며 9월 17일 고종이 황제 즉위식을 하고 소공동의 원구단(圜丘壇)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냄으로써 정궁(正宮)이 되었다. 1900년(광무 4) 담장공사가 완공되었고 정문인 인화문(仁化門) 및 돈례문(敦禮門)·회극문(會極門)·영성문(永成門) 등의 전문(殿門)이 완성되었다. 그해에 선원전이 불탔다. 1902년 정전인 중화전(中和殿)과 관명전(觀明殿) 등이 새로이 건립되었으며 1904년 대규모 화재로 많은 건물이 불타버렸으나 즉조당(卽祚堂)·석어당(昔御堂)·함령전 등이 중건되었다. 이때 정문의 이름을 대안문(大安門)이라 했다. 1905년 중화전을 다시 짓기 시작하여 이듬해 완공되었으며, 이때 대안문도 수리하여 대한문 (大漢門)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907년 고종이 순종에게 왕위를 이양하고 이곳에 살면서 현재의 이름인 덕수궁으로 바꾸었다. 순종이 이곳의 즉조당에서 즉위한 뒤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고종의 거처가 되었다. 1910년 근대건물인 서양식의 대규모 석조전(石造殿)이 건립되었으며, 1919년 고종이 함령전에서 죽었다. 1921년 중화전에 봉안했던 고종의 영정을 창덕궁 선원전으로 옮겨 현재에 이르고 있다.
건물의 배치는 중앙에 정전인 중화전이 남향하여 있고 정전의 뒤편에는 석어당과 즉조당이 있으며, 정전의 동편에 침전인 함령전이 있다. 함령전의 서쪽에 덕홍전(德弘殿)이 있으며, 북쪽에 서양식 건물인 정관헌(靜觀軒)이 있다. 정문인 대한문은 궁궐의 동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정전인 중화전의 주위에 회랑이 없어 다른 궁궐에 비해 격이 떨어진다. 현재 정문인 대한문과 정전인 중화전을 비롯하여 중화문·함령전·즉조당·준명당(浚明堂)·석어당·덕홍전과 근대식 건물인 석조전과 정관헌 등이 남아 있다. 서양식으로 세워진 석조전과 정관헌은 주변의 한식건물들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건축양식에 많은 변화를 주었다. 특히 석조전의 남쪽에 일본인들이 미술관을 세우고 그 앞에 서양식 연못을 만들면서 궁궐의 본래 모습이 상당히 손상되었다. 전통목조건축과 서양식 건축이 함께 남아 있는 조선왕조의 궁궐로 본래 일반사가의 집을 궁궐로 꾸몄기 때문에 규모도 가장 작고 전체배치가 정연하지 못하다.
청계천복원사업이 이루어지던 2005년 3월 서울특별시에서 지명위원회를 열어 확정한 명칭으로, 청계천의 시작 지점인 세종로 동아일보사 앞 광장을 가리키며, 청계천으로 진입하는 공간으로서 삼색 조명이 어우러진 촛불 분수와 4m 아래로 떨어지는 2단 폭포가 설치되어 있습니다.2단 폭포 양옆에는 8도(道)를 상징하는 석재로 팔석담(八石潭)을 조성하였는데, 밤이면 불빛과 물이 어우러져 멋진 경관을 빚어내고 있습니다. 또한 청계천 전 구간을 100분의 1로 축소한 미니어처가 있으며, 4월부터 11월까지 주말마다 '청계천 문화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습니다.
동대문시장 [東大門市場]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5·6가 일대에 걸쳐 있는 시장-
1904년 7월 14일 개장했으며, 그해 11월에 시장관리를 위해 광장주식회사가 설립되면서부터 '광장시장'이라 불리기도 했다. 1970년 12월 종로6가 맞은편에 기존의 동대문시장보다 훨씬 큰 규모로 개설된 동대문종합시장과 청계천이 복개되면서 인근에 생긴 평화시장까지 아울러 동대문시장이라 한다.
동대문시장에는 전국 최대 규모의 혼수품 전문상가가 있으며, 3개동 건물에 약 2,391개의 점포와 신관 쇼핑타운에 345개의 점포가 있다. 동대문시장은 남대문시장과 함께 서울에 있는 한국의 대표적 시장으로서 최대 규모의 종합시장이며, 다음과 같은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첫째,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고,
둘째, 도매를 주로 하고 있어서 백화점이나 일반 소매시장에 비해 저렴한 가격으로 물건을 구입할 수 있으며,
셋째, 어물전·건어물·포목·야채 등 일반 백화점에서 대규모로 취급하기 힘든 품목들을 다양하게 취급하고 있고,
넷째, 거래망이 전국적인 규모이기 때문에 지방 상인들과의 거래가 활발하다.
모든 경제활동이 위축되었던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체제에서는 고객이 30% 이상 줄어 케이블TV 홈쇼핑업체를 통한 판매를 모색하기도 했다. 1998년 거평 프레야, 밀리오레, 1999년 두산타워 등 대형 쇼핑 매장이 들어섬으로써 동대문 시장은 기존 재래시장의 이미지를 벗어나 패션 전문 시장으로 변신했으며 일본·중국 등 외국인 관광객의 명소로 이름이 높아졌다. 2000년 서울특별시는 을지로5가에 서울패션디자인센터를 개관하고 동대문시장과 남대문시장을 국제적인 패션 메카로 만들기 위한 지원을 하고 있다.
동대문운동장은 일제 강점기였던 1926년 서울성곽을 허물고 일제가 건립한 공설운동장으로 축구장은 2003년 풍물시장 및 주차장으로 이용되면서 체육시설로서의 기능이 상실되었고, 야구장 또한 시설이 노후하여 개보수가 시급한 실정이었습니다. 주변지역 유동인구의 수용 및 활동을 위한 공연, 전시, 휴식 공간 등 오픈스페이스가 부족하여 즐거운 쇼핑공간으로서 필수적인 쾌적한 보행환경을 제공하지 못하는 실정이었습니다.
주변지역은 서울 의류ㆍ패션산업의 중심지이며, 서울을 방문하는 외국 관광객의 절반인 연간 약 210만 명이 들르는 서울의 중요한 관광거점으로 성장해왔으나, 최근 수년 사이에 군소업체간 과당경쟁, 중국산 저가 봉제 상품의 공급과잉, 주력 바이어인 중국 바이어 구매력 감소 등에 따라 상권 전체가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따라서 서울시에서는 패션상권의 중심에 위치한 옛 동대문운동장의 기능대체를 위한 지속적인 논의와 자문수렴을 거쳐 공원화로 방향을 설정하고 휴식, 녹지, 문화 복합공간으로서의 동대문디자인파크를 조성하되, 동대문상권의 부활과 높은 부가가치 창출효과를 가진 디자인산업의 역량 강화를 위해 디자인전문종합인프라인 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함께 건립하는 사업을 추진하게 된 것입니다.
서울풍물시장(-風物市場)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신설동에 위치한 시장-
황학동 벼룩시장과 신설동 서울풍물시장, 한때 황학동이 메카인 시절이 있었다면 여전히 황학동의 잔재는 남아있지만 이젠 대부분 신설동 풍물시장으로 옮겨간 듯합니다. 서로 골동품이라는 구성은 같지만 기계공구 쪽이 여전히 강하게 남은 황학동, 반면에 외국인의 눈길을 끌만한 것들로 좀 더 체계적으로 재무장한 신설동 서울풍물시장은 서로 닮은듯하면서도 많이 달랐습니다. 이 두 곳은 그다지 멀지 않으니 출사나 구경을 위해서라면 하루쯤 투자해 한 번에 돌아보는 것도 괜찮은 듯합니다.
대학로 [大學路] -종로구 혜화동 사거리에서 이화동 사거리에 이르는 길-
총연장 1㎞. 1985년 5월 5일에 이 이름을 붙였다. 낙산을 뒤로 한 이 길은 옛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시절부터 대학생과 젊은이들이 많이 모였던 곳으로 서울대학교의 캠퍼스가 관악산 아래로 이전함에 따라 문예회관·문예진흥원·미술회관·동숭미술관·한국학술진흥재단·파랑새극장 등 문화예술 단체들이 들어섰다. 대학로 옆 옛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과 법과대학 자리에 있는 마로니에 공원을 비롯하여 시민 휴식 공간과 현대적인 찻집 등이 있어 젊은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 되었다.
서울특별시는 이 일대의 특성을 살려 문화·예술의 거리로 조성하기 위해 기존의 도로 폭 25m를 40m로 확장하고, 주변의 조경을 정비했다. 문예진흥원 앞 231㎡ 규모의 도로광장에 노천극장식 야외공연장과 풍류마당을 만들어 각종 야외음악회·시낭송회·연극 등을 공연할 수 있도록 했으며, 조각품과 벤치 등을 설치했다. 또한 혜화동 로터리에서 남쪽으로 200m, 이화동 사거리에서 북쪽으로 200m 구간에는 3줄로 플라타너스·가죽나무 등의 대형 수목 터널을 만들었다. 지하철 4호선이 이곳을 지난다.
창덕궁 [昌德宮] -종로구 와룡동에 있는 조선시대 궁궐-
사적 제122호. 1405년(태종 5)에 이궁(離宮)으로 조성되었으며,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607년(선조 40)부터 다시 짓기 시작하여 1610년(광해군 2)에 완공되었다. 그러나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때 인정전(仁政殿)을 제외한 대부분의 건물들이 불타 1647년에 다시 짓기 시작했다. 그 후에도 크고 작은 화재가 있었으며, 특히 1833년(순조 33)의 큰 화재 때 대조전(大造殿)과 희정당(熙政堂)이 불탔으나 곧 다시 중건되었다.
1908년에 일본인들이 궁궐의 많은 부분을 변경했으며, 1917년에 큰 불이 나자 일제는 불탄 전각들을 복구한다는 명목 아래 경복궁의 수많은 전각들을 헐어내고는 이 가운데 극히 적은 재목들을 사용하여 창덕궁을 변형·복구했다. 이 궁궐은 창경궁과 이어져 있고, 뒤쪽에 후원이 조성되어 있다. 조선시대의 정궁은 경복궁이었으나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뒤 1867년에 복원되었기 때문에 광해군 때부터 300여 년 간 정궁으로 사용되었다.
궁궐의 배치는 지세에 따라 자연스럽게 전각들을 배치하여 조선시대 5대 궁궐 가운데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 원래 정문인 돈화문을 들어서 북쪽으로 가다가 동쪽으로 꺽인 곳에는 북쪽으로부터 남쪽으로 흐르는 금천(禁川) 위에 금천교가 놓여 있고, 이 다리를 건너면 진선문(進善門)과 그 양옆에 월랑(月廊)이 있었다. 그러나 일본인들이 이것을 모두 헐어버려 지금은 볼 수 없다.
인정문은 정전의 정문이며 그 양쪽에 있는 월랑은 'ㄷ'자형으로 인정전을 감싸고 있다. ㄷ자형의 마당 안에는 인정문으로부터 시작된 어도(御道)가 있고, 그 북쪽 끝에 있는 중앙의 높은 월대 위에는 정전인 인정전이 자리 잡고 있다. 인정전 월랑의 동북쪽에는 편전(便殿)인 선정전이 위치해 있다. 선정전의 주위에는 여러 행각이 있는데, 그 남쪽에 있던 여러 칸의 행각들은 일본인들이 모두 헐어버렸고, 뒤쪽에 있는 행각만 남아 있다. 동북쪽에는 희정당과 내전인 대조전 영역이 서남향으로 지세에 맞추어 배치되어 있다.
〈궁궐지〉에 희정당은 편전으로, 또 〈동궐도〉에는 중층 누각으로 되어 있어 현재의 모습과 다르다. 희정당으로부터 구름다리 모양의 행각이 북쪽으로 뻗어 희정당 자리보다 높게 자리잡은 대조전은 침전으로 장방형의 행각이 둘러싸고 있고, 이 뒤쪽으로는 아름다운 후정이 조성되어 있다. 대조전 영역의 동남쪽에 내의원이 있었던 자리에 지금은 낙선재(樂善齋), 승화루(承華樓), 백칸 안쪽에 이르는 행각들만 남아 있다.
창덕궁의 북쪽에 있는 넓은 터에는 금원(禁苑)이라고 부르던 후원이 있다. 현재 이 궁궐 안에는 건물 13동과 후원의 건물 28동 등 모두 41동의 건물이 남아 있다. 그중에서 인정전(국보 제225호)·돈화문(敦化門:보물 제385호)·인정문(보물 제813호)·선정전(宣政殿:보물 제814호)·희정당(보물 제815호)·대조전(보물 제816호)·선원전(璿源殿:보물 제817호) 등은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인사동(仁寺洞, Insa-dong) -
인사동(仁寺洞, Insa-dong)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법정동의 하나이다. 주요 거리는 조선시대 형성된 길이 0.7㎞의, 너비 12m의 인사동길이 있으며, 서울의 주요 도심로와 연결돼 있고, 청계천, 경복궁 등 주요 관광명소와도 가깝다.
인사동은 조선왕조(1392-1910) 때부터 근 600년 동안 서울의 심장부에 있다. 이곳은 또한 문화체육관광부 주관의 아리랑종합지원센터가 건립될 예정이다. 인사동은 인사동네거리를 지나 안국동 로터리로부터 종로2가의 탑골공원까지의 구역을 말한다. 인사동은 외국인에게 인기 있는 쇼핑 명소이자 매리의 골목(Mary's Alley)라고도 알려져 있다.
이곳에는 골동품상점이 모여 있는 곳이기도 하다. 가격은 주로 10,000원부터 수백만 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거의 모든 상점은 오래된 책이나 사진, 서예, 기념품, 사진, 도자기, 목제품, 보석 등을 판매한다. 도자기들은 신라시대 질그릇부터 조선시대 백자까지 다양하게 존재한다. 하지만 인사동 물품들의 90%가 중국산이라는 통계가 있다.[1] 인사동은 일본, 중국, 프랑스, 미국 등 많은 외국에서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곳이다. 특히, 봄과 가을에 인사동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의 숫자가 절정을 이룬다.
서울역사박물관 [Seoul Museum of History, 歷史博物館]
1997년 12월 31일 서울특별시립박물관으로 준공했다. 2001년 9월 29일 서울역사박물관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2002년 5월 21일 사적 제271호인 경희궁 내에 개관했다. 설립 목적은 서울의 역사와 전통문화를 정리해 보여줌으로써 서울에 대한 이해와 인식을 심화하는 한편 서울시민 및 서울을 찾는 내외국인들에게 서울의 문화를 느끼고 체험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전시공간은 상설전시실, 특별전시실, 기증유물전시실 등으로 나뉜다. 상설전시실은 1, 2, 3, 4존으로 나뉜다.
1존(조선의 수도 서울)은 조선왕조의 수도였던 서울의 모습과 역할에 대해 전시해 놓았다.
2존(서울사람들의 생활)은 조선시대 서울사람들의 일상생활과 경제생활을 전시한 공간이다.
3존(서울의 문화)은 서울의 궁중문화, 학술문화, 예술문화를,
4존(도시서울의 발달)은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서울의 모습을 도시사의 시각으로 전시해 놓고 있다.
특별전시실은 서울의 역사·문화 관련 기획전시 및 국제 교류전을 개최하는 공간이다. 기증유물전시실에서는 시민들이 기증한 유물을 4개의 전시실에 주제별로 전시하고 있다.
개관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토·일·공휴일은 하절기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동절기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휴관일은 매주 월요일, 신정, 관장이 정하는 휴관일이다. 관람료는 무료이다. 시설은 대지면적 7,448㎡, 연면적 2만 166㎡ 규모의 지상 3층 건물이며, 전시실 외에 문화정보센터, 교육실, 강당 및 시청각실, 뮤지엄숍, 카페, 휴게실 등이 있다. 2002년부터 매년 국내외 도시역사박물관 관련 전문가들을 초청해 학술교류의 장을 마련함으로써 국제문화교류 및 협력을 활성화하고 있다. 또한 어린이·청소년·성인·가족·외국인을 위한 체험 및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 55번지에 있다.
농업박물관 [農業博物館]
농업협동조합중앙회가 한국 농업의 역사와 농업 문화의 연구, 자료의 발굴 및 보존·소개를 위하여 설립한 농업전문박물관.
1987년 11월 18일 개관했으며, 서울특별시 중구 충정로1가에 있다. 연건평 1,047평의 지상 2층 지하 1층 건물의 3개 전시실에 2,000여 점의 전시물이 진열되어 있다. 이 박물관에는 선사시대로부터 현재까지 변화·발전해 온 농업 기술, 농업 도구, 전통 농가와 장터의 모습, 농협의 역사 등 농업의 유물과 역사가 소개되어 있다.
농업박물관에는 농업역사관, 농업생활관, 농협홍보관 등 3개의 전시관이 있다. 각 전시관별로 살펴보면, 농업역사관에는 농업사연표 및 신석기·청동기·철기·삼국시대의 농업 유물과 고려시대·조선시대 재래농업의 기술·도구·기계·서적 등이 전시되어 있다. 농업생활관에서는 논밭의 사계를 비롯하여 전통 농가의 생활 모습과 장터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고, 농협홍보관에서는 농업협동조합의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현재 농업박물관에서 하고 있는 주요사업으로는 농업 관련 유물의 보존·연구·전시, 각종 사회교육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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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이 소중합니다.
뜻을 세웠으면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합니다.
후회 없는 인생을 만들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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