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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그램의 용기 - 한비야
세상에 지속가능한 행복이 있을까? 나는 있다고 믿는다. 남에게 행복해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나 스스로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말이다. 일생을 기다렸다가 단 한 번 느끼는 커다란 행복감이 아니라 매일매일 소소하게 느끼는 작은 기쁨과 만족감이 진정한 행복이란 걸 깨닫기만 하면 말이다
다행히 나는 그것만 있으면 하루 종일, 혹은 한 달 내내 충분히 행복한 몇 가지 ‘소소한 행복의 조건’이 있다. 들어보면 별것 아니지만 내게는 소중하기만 한 것들이다.
첫 번째는 아침에 눈 뜨자마자 마시는 밀크커피다.
밀크커피는 온 몸을 따뜻하게 데움과 동시에 잠을 번쩍 깨우며 단박에 내 몸을 활동모드로 전환시킨다. 달콤한 향기는 또 어떻고, 그래서 매일 아침 난생 처음인양 맛있다, 맛있다 하면서 마신다. 이렇게 해서 좋아진 기분이 하루 종일 간다
두 번째는 자기 전에 마시는 와인 한 잔
이 습관도 10년 은 넘은 것 같다. 혈전이 잘 생기는 체질이라 혈액 순환에 좋다는 와인을 약이라 생각하고 마시기 시작했는데, 긴장감도 풀리고 머리도 잘 돌아가고 글도 술술 나오니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와인 잔에 넉넉히 따라 딱 한 잔 마시면서 일기를 쓰는데 그때 마다 하루를 잘 마감하고 있다는 만족감과 행복감이 몰려온다
밀크커피와 와인이 내 하루의 시작과 끝을 책임지며 행복한 하루를 만들어준다면 한 달에 한 번씩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도 있다. 하나는 보름달이고 다른 하나는 매달 24일이다. 보름달은 언제 봐도 예쁘다.
마지막으로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말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클래식 음악이다.
TV프로그램(행복해지는 법)은 이렇게 결론내리고 있다. 매일 행복해야 평생 행복할 수 있다고, 행복은 멀리 있는 거창한 게 아니라 내 손안의 작은 새라고, 어쩌다 한번 맛보는 큰 행복이 아니라 매일 가까이에서 작은 행복을 느끼는 사람만이 진짜 행복할 수 있다고.
이 말대로라면 나는 썩 잘하고 있는 거다. 소소하기 짝이 없는 밀크커피 한 잔, 와인 한 잔, 보름달, 그리고 매달 어김없이 찾아오는 24일, 라디오만 켜면 언제든 들을 수 있는 클래식 음악이 나를 평생 행복하게 해주는 보물단지라니, 난 정말 삼팔광땡을 잡았다
남수단의 수도 주바에는 한국인 열댓 명 남짓이 각각 다양한 일을 하면서 서로 아끼며 살아가고 있다. 그중 제일 기억나는 분이 세분 수녀님이다. 물도 전기도 없는 주바 근교에서 극빈자들을 위한 무료 진료소를 운영하고 계시는데, 동네 사람들에게 인기만점이었다.
남수단으로 떠나기 전 우연한 기회에 수녀님들이 소속된 수녀원에 갔다가 이 수도원 수녀님들의 한 달 용돈이 2만 원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의식주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경비는 수녀원에서 대겠지만 이들도 사회 생활하는 여잔데, 소소하게 돈 쓸 일이 좀 많을까?
“어머, 한 달에 2만 원으로 어떻게 살아요?”
“호호호, 그래도 우리는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요”
내가 눈을 휘둥그레 뜨니까 같이 있던 20 여 명의 수녀님들이 생글생글 웃으면 앞다퉈 얘기한다
“저는 매달 책을 한 권 사요, 비야 자매님 책도 이 용돈으로 산거예요. 그리고 근사한 까페에 가서 우아하게 커피를 마시죠. 이런 호사는 한 달에 한 번이면 충분해요”
“저는 1만원은 공부하는 수녀님들에게 ‘김밥 장학금’으로 써요. 도시락만 먹으면 배고플 테니까요. 김밥 한 줄에 1000원 정도 하니까 열줄 값이죠. 나머지 1만 원은 가족이나 조카들의 생일 선물 값으로 모아둬요”
세상에, 200만원도 아니고 20만 원도 아니고 단돈 2만 원을 저렇게 풍성하게 쓰다니, 처음에 한 달 용돈이 2만 원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살짝 가엽게 생각했는데 그 쓰임새를 멋쩍은 듯 수줍은 듯 그러나 당당하면서도 재미있게 말하는 수녀님들이 오히려 부러웠다
돈 좀 실컷 써봤으면 좋겠다, 용돈이 두둑했으면 좋겠다, 돈 없으면 힘 빠진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언제 충분한 용돈이 있었던가? 그 충분이란 도대체 얼마일까? 그러니 손에 잡히지 않는 ‘충분한 용돈’때문에 속 끓이느니 이 수녀님들처럼 내 주머니 속 ‘작은 용돈’을 어떻게 풍성하고 만족스럽게 쓸까 연구하는 게 훨씬 속편하고 즐겁지 않을까?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 타고난 장점과 단점이 있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는데 사람이야 말해 무엇하랴. 우리가 이 둘 중 어디에 집중할 것인가는 순전히 우리 선택이다.
내가 굼벵이라면 타고난 단점인 느리게 가는 건 인정하고 대신 타고난 장점인 구르는 재주에 시간과 에너지를 집중할 거다. 한 가지만 잘해도 ‘굼벵이계’에서는 얼마든지 자기 몫을 할 수 있는 거니까
한정된 시간과 에너지를 못하는 것에 집중해서 중간이 될 것인가, 잘하는 것에 집중해서 최고가 될 것인가는 우리가 선택하기 나름이다.
어느 날, 꽃에 물을 주며 생각했다. 꽃도 각각 타고난 특성을 잘 파악해서 키워야 예쁜 꽃을 피울 수 있는데 하물며 사람은 어떻겠는가? 전 세계 70억 인구 한 사람 한 사람마다, 자기라는 꽃이 가장 예쁘게 필수 있는 조건은 다 다를 게 분명하다. 어떤 사람은 칭찬을 많이 해주어야, 어떤 사람은 가만히 지켜보아야 활짝 피어난다. 그러니 나라는 꽃을 활짝 피우기 위해서는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아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이 내 가슴을 뛰게 하고 내 피를 끓게 하는가?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가진 호랑이는 숲에 있어야만 제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며 동물의 왕 노릇을 할 수 있다. 그런 호랑이도 사막에 가는 순간 열등한 존재가 되고 만다. 사막에선 물이 없어도 견딜 수 있고 혹이 있고 넓적한 발바닥으로 모래 위를 걸을 수 있는 낙타가 동물의 왕이다. 그러니 능력과 특성의 최대치를 발휘하고 살려면 낙타는 사막에, 호랑이는 숲에 있어야 한다.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
오늘도 북한산을 오르며 생각했다. 세상에서 아름다운 것들은 다 공짜라고, 백 번 맞는 말 아닌가? 사랑, 우정, 의리, 신뢰 등은 천만금을 주어도 살 수 없다. 그 대신 노력과 시간을 들이고 온 마음을 쏟지 않으면 절대 가질 수 없는 것들이다. 눈만 돌리면 마주치는 자연도 마찬가지다. 돈이 들진 않지만 순응하고 감사하며 누리면 그 아름다운 것들은 고스란히 내 것이 된다. 내가 하늘도, 북한산도 만날 “다 내거야”라고 우기지만 사실 그것을 누리고 마음껏 즐기는 모든 이의 것이기도 하다. 세상 참 공평하다
일기장 속의 계획과 꿈을 현실로 만드는 나만의 독특한 방법이 있다. 방법은 의의로 간단하다. ‘동네방네 소문내기’, 계획 중인 일을 주위 사람들에게 마구 알리는 거다. 그럴 때마다 그 계획이 가시화되면서 내 의지도 굳어지고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된 일이니 꼭 이루어야 한다는 의무감도 생긴다
계획한 일마다 다 이룬 건 아니지만 단언컨대 내가 이룬 일 중에서 계획 없이 이룬 일은 단 하나도 없다. 옛 말씀에 ‘가다가 중지하면 아니 감만 못하리라’라고 했던가?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 말이 더 맞는 것 같다. ‘가다가 중지해도 간 만큼 이익이다’
살까 말까 할 때는 사지 말기!
이건 오랜 경험을 통해 깨달은 내 일상생활의 중요한 원칙이다. 살다 보면 할까 말까 망설여질 때가 많다. 그럴 때 꼭 해야 하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하는 게 있다. 내 경험상 ‘무조건 하지 말기’의 기준을 대야 할 때는 물건 살 때와 여행 가방 쌀 때다. 살까 말까 망설여지는 물건은 보나마다 1년에 한번 쓸까 말까 한 물건이기 쉽상이고, 가방에 넣을까 말까 하는 물건은 있으면 편하지만 없어도 상관없는 물건일 때가 많다.
그러나 반대로 할까 말까 망설일 때 꼭 하는 것도 있다. 바로 여행과 산책이다. 1박 2일 이상의 국내 여행이나 해외여행은 물론 30분짜리 동네 나들이까지 모두 그렇다. 갈까 말까 망설일 시간에 일단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가 동네 한 바퀴를 돌다 보면 몸과 마음이 시원해진다
일상생활에서 잠깐이라도 자연과 함께 있을 수 있는 기회, 눈요기 할 수 있는 기회, 걸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절대 망설이지 말고 꽉 잡는 게 상책이다.
할까 말까 망설일 때 꼭 하는 게 또 있다. 공부다. 대학교나 석·박사 학위만 그런 게 아니라 취미로 배우는 단소, 암벽등반, 외국어도 마찬가지다. 일단 시작만 해놓으면 매일매일 조금씩 느는 게 신기하고 재미있다
혹시 지금 무엇인가 할까 말까 망설인다면 이 기준으로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란다. 하기로는 마음먹었지만 끝까지 못하면 어쩌나, 두려워하지도 마시길. 한 만큼 이익이라니까요!
“여러분이 대학원을 다니면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학위를 받고 좋은 인맥을 쌓는 것이 아닙니다. 읽고 읽고 또 읽고, 그 읽은 것을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것입니다. 인터넷 시대에 필요한 정보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죠. 그러나 그 정보도 생각을 거치지 않으면 절대로 여러분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이곳에서 여러분 생각의 뿌리가 더욱 깊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터프츠 대학교 교수
어쩌면 우리 모두는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멋지고 잠재력이 풍부할지 모른다. 그러니 섣불리 나는 이 정도의 사람이라고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 해보지도 않고 자기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내 경험상 해보는 데까지가 자기 한계다.
‘도울 기회가 생기면 절대 놓치지 말 것’
이번 유학을 통해서 다시 한 번 다지게 된 커다란 인생 원칙이다. 알게 모르게 수많은 사람들의 친절 덕분에 살고 있으니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풀 기회가 오면 절대로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이다.
대학생 때 했던 영어 연극(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맨 마지막 장면, 내가 맡았던 주인공 블랑쉬의 대사가 생각난다.
“I have always depended on the kindness of stranges”(저는 항상 낯선 사람들의 친절 덕분에 살아왔어요)
지금 생각해도 명대사다
“맹자의 군자삼락 중 일락이 뭔 줄 아세요? 좋은 제자를 만나서 가르치는 기쁨이에요. 그 제자들이 커가는 걸 보는 기쁨도 있을 거고요. 저 역시 그 기쁨, 마음껏 누려볼 생각입니다. 오늘 이 강의는 한비야 ‘교수’로서 첫 강의이고, 여러분은 제 첫 학생이자 첫사랑이자 마루타입니다”
-2012년 3월 3일 이화여자대학교 첫 수업 녹취록에서
검색대신 사색을
“제가 뭘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어요”
얼마 전, 대학 새내기에게 받은 질문이다. 생각하기! 요즘 젊은이들은 이걸 참 어려워한다. 검색을 통해 남이 만든 답은 잘 찾는데 사색을 통해 스스로 답을 찾는 데는 영 서툴다. 생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사춘기 때 스스로에게 물어야 하는 질문, 나는 누구인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언제 기쁘고 무엇을 할 때 행복한가? 등을 치열하게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사회에서나 한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딴 생각 말고 공부나 해!”
자기 삶에 대해 단 한 번도 고민해보지 않은 아이들이 뭘 하고 싶은지 모르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생각하라! 생각만이 네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게 해줄 뿐 아니라, 그걸 찾아가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견디게 해줄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하며 견뎌야 하는 시간은 늘 생각보다 길고 험하다는 것을, 대신 그 시간이 아무리 길어도 반드시 끝이 있다는 것을, 할 가치가 있는 일은 잘할 가치도 있다는 것을,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라도 일단 하기로 작정하고 한 발짝만 나가면 그 순간 그 일을 되게끔 하는 알 수 없는 힘이 솟는다는 것을 배웠다
어떻게 하면 생각의 뿌리를 깊게 내려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사색도 연습이고 훈련이라고 생각한다. 몸의 근육을 키우려면 꾸준히 운동해야 하는 것처럼, 생각의 근육도 매일매일 연습하면 더 단단해지기 마련이다. 내가 수십 년간 쓰고 있는 ‘생각 훈련법’두 가지를 소개한다
첫째는 일기쓰기다. 그날 있었던 일 중 한 가지에 대해 될수록 길게 될수록 자세히 글을 쓰는 거다. 여기서 중요한건 단어의 나열이 아니라 주어와 동사로 된 문장을 쓰는 거다. 그렇게 차분히 일기를 쓰고 있으면 생각이 저절로 정리되면서 나와 내가 겪은 상황들이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이렇게 객관화한 나와 즐겁게 혹은 불편하게 만나는 과정 자체가 생각 나무의 뿌리를 깊고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기왕에 하는 거면 컴퓨터 자판이 아니라 공책에 손 글씨로 써보길 바란다
둘째는 여행과 산책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여럿이가 아니라 혼자 한다는 거다. 혼자 다니면서 부딪히는 사람들과 사건 사고를 통해 마음에 드는 나 또는 꼴 보기 싫은 나를 만나면서 조금씩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게 된다. 여행 중 최고로 좋은 여행은 혼자 걷는 여행이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생각 나무의 뿌리를 내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지금 내 배의 방향키를 누가 쥐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내 삶의 방향키를 맡기면 안 된다. 당신 배의 선장은 당신이다.
피정이란 피할 피, 조용할 정, 글자 그대로 일상생활을 피해 조용한 곳으로 가서 묵상과 성찰 기도 등을 하는 영적 수련이다. 피정은 성당에 열심히 다니는 천주교 신자라면 1년에 한 번 정도는 하게 된다. 보통 성당, 수도원, 피정의 집 등에서 하는 데 기간은 짧게는 1박2일, 길게는 40일 등 다양하다.
악플에 대처하는 맷집훈련3단계
가장 낮은 단계인 1단계는 유명해졌으니 유명세를 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다. 돈을 벌면 세금을 내야 하듯 세상에 알려졌으니 그에 따른 세금을 내는 게 마땅한 일이다. 안내면 탈세 아닌가? 유명세탈세. 그러니 이런저런 언짢은 소리를 듣는 건, 건강한 시민으로서 납세의 의무를 다하는 거라고 여기면 한결 마음이 편했다. 보통은 1단계에서 괴로운 마음이 반 이상 걸러진다
그래도 계속 억울하고 화가 안 풀리면 2단계에 돌입한다. 일명 ‘KTX와 짖는 개 이론’이다. KTX가 지나가는데 동네 개가 짖는다고 짖을 때마다 그런 게 아니고, 하면서 달리는 KTX에서 내려 짖는 개에게 일일이 설명할 필요가 없는 거다. ‘너는 짖어라, KTX는 갈 길을 간다!’ 이 얼마나 마음 편해지는 생각인가. 이 2단계에서 90%는 해소되는 것 같다
아무리 통 크게 생각하려고 해도 마음이 천근만근 무거울 때는 마지막 3단계로 내가 좋아하는 노수녀님의 진심어린 조언을 떠올린다. 유학에서 돌아온 직후 어느 여름날, 수녀원으로 찾아가 이런저런 악플로 마음이 몹시 괴롭다며 눈물을 펑펑 쏟으니까 수녀님이 내 눈을 똑바로 보며 두 손을 꼭 잡고 하시는 말,
“그 마음 잘 알아요.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요? 그러나 하느님이 아시는 죄보다 사람들이 아는 죄가 훨씬 적지 않을까요? 그렇죠? 그러니 사람들이 그 정도 일을 가지고 비난하는 걸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하세요. 나 역시 내 죄가 고스란히 다 드러나면 얼굴을 들고 다니지도 못할 거예요. 언제나 지은 죄보다 드러난 죄가 훨씬 적은 법이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수녀님의 이 따뜻하고도 본질적인 위로는 비난의 화살을 맞을 때마다 든든한 방패가 되고 맷집을 키우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이 세 단계를 거치면 상했던 마음이 98%정도 풀린다. 나머지 2%는? 그건 그냥 늘 가슴속에 가시로 남아있다. 괴롭지만 어쩌겠는가. 그것도 사회생활의 일부려니, 삶의 일부려니 할 수 밖에
한 사람의 인품과 성숙도는 자기보다 약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가에 따라 가름된다고 믿는다
“빨리 가라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여럿이 가라”
-아프리카 속담
“거미줄도 모이면 사자를 묶는다”
-아프리카 속담
아무리 작은 힘이라도 뭉치면 안 되는 일이 없다는 말이다
잔잔한 바다는 노련한 사공을 만들지 않는다. 우기에는 모기도 많다.
“동이 트면 가젤도 뛰고 사자도 뛴다. 동이 트면 가젤이든 사자든 전속력으로 달려야한다”
-아프리카 속담
한순간에 아프리카 대초원의 아침 풍경을 눈앞에 펼쳐놓는 이 속담의 뜻은 심오하다. 동이 트면 가젤은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사자보다 더 빠르게 전속력으로 달려야 하고, 사자는 굶지 않기 위해 무리 중 가장 느린 가젤보다 더 빠르게 달려야 한다. 즉 초원에서 제일 힘 약한 가젤이든 제일 힘센 사자든 살아남기 위해서는 최선의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뜻
“사자가 말하기 전에는 모든 사냥꾼은 영웅이다”
아프리카에서 지내다 보면 맨손으로 사자를 때려잡는다는 용맹한 부족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어느 부족 청년은 사자를 잡아와야만 비로소 결혼할 자격이 생긴단다.
이 속담도 두 가지 해석이 있다. 하나는 어떤 상황을 판단할 때는 양쪽 얘기를 다 들어봐야 한다는 거고 다른 하나는 확인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마구 허풍을 떠는 사람을 빗대는 말이다. 내가 보기에는 두 번째 해석이 압도적으로 많이 쓰이는 것 같다
기타 아프리카 속담
‘악어에게 먹히지 않으려면 무리지어 강을 건너라’
‘길을 잃는 것도 길 찾는 방법 중 하나다’
‘거친 강을 건널 때는 돌덩이를 안고 가라’
‘바나나는 원숭이가 먹고 싶다고 익지 않는다’
‘얼룩말을 쫓는다고 다 잡는 건 아니지만, 쫓은 사람만이 얼룩말을 잡을 수 있다’
서양속담에 ‘노인 한 사람이 죽는 건 도서관 하나가 불타버린 것과 같다’
모리타니에는 아직까지도 수백 년 전 이곳을 정복했던 갈색 피부의 무어인이 피정복지 주민이었던 흑인 노예를 거느리고 있는데, 인구의 약10~20%, 그러니까 많게는 약60만 명 정도가 노예 생활을 하고 있다.
내가 방문했던 모리타니의 시골 동네에서도 노예로 짐작되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아저씨네 형편도 어려운데 저 사람들을 자유인으로 놓아주면 안 되나요?”
그런데 아저씨 대답이 찬물을 한 바가지를 끼얹었다.
“이들이 원하지 않아요. 조상 대대로 노예였기 때문에 그 상태가 편한 거죠”
뭐라고? 그럴 리가 있나? 그러나 작년 말 이 나라 노예제도에 맞서 싸운 공으로 UN인권상을 받은 모리타니 노예출신 아베이드도 같은 말을 했다.
“우리나라 노예들은 이렇게 말하곤 하죠. 주인의 명령을 따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내가 자유인이 되면 굶어죽을 게 뻔하다고. 그러느니 차라리 노예로 사는 게 낫다고”
아베이드는 단언했다.
“이런 생각이 노예제도 척결의 가장 무서운 적입니다”
200~300년 전 고레 섬에서 족쇄와 사슬에 꽁꽁 묶여 총으로 중무장한 노예 상인에게 끌려간 흑인 노예는 그렇다 쳐도, 지금 모리타니 노예들은 왜 자유를 두려워하며 누군가의 노예로 사는 것을 더 편하게 생각하는 걸까?
그러다가 퍼뜩 이런 생각이 스쳤다. 나 역시 그 무엇의 노예는 아닌가? 늘 시간에 쫓기고 정신없이 바쁘고, 항상 뭔가 부족하다고 느끼면서 스스로 시간의 노예, 일의 노예, 욕심의 노예로 살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진실로 자유로우려면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에 누구를 주인으로 두어야 할 것인가? 주님, 오직 당신뿐입니다
기복염거. 천리마가 소금 마차를 끈다는 말로 훌륭한 인재가 그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걸맞지 않은 일을 한다는 뜻이다.
이 고사성어의 유래는 이러하다. 옛말에 말 감정사로 이름이 높아서 천마를 주관하는 별자리인 ‘백락’이라 불리는 손양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말을 보는 안목이 어찌나 높고 유명한지 평범해서 주목받지 못하던 말도 그가 한번 눈길을 주면 그 자리에서 말 값이 열 배로 뛰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난 인재라도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으면 세상에 드러날 수 없는 법, 그래서 당나라 한유도 천리마는 항상 있지만 백락은 항상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던 거다.
“당신의 백락은 누구십니까?”
중국 사람들끼리 자주 묻는 말이다. 특히 정치인이나 연예인 등 유명인들은 자신의 백락이 누구라고 말하는 걸 좋아한다. 어느 유명한 영화제는 아예 백락상이라는 게 있어 무명인 배우를 처음 알아봐준 사람에게 주는 상이 있을 정도다. 한 사람의 일생에서 백락을 만난다는 건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주는 엄청난 사건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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