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면은 본래 소천부곡(小川部曲)으로 태백시 황지 본적산(本寂山),대박산(大朴山)까지 그 영영이었고, 반이군(潘伊郡)이라는 부족국가가 있었다고 한다. 안동부 춘양에 예속되어 있다가 고종 43년(1906)에 봉화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에 소천면 현동(縣洞), 분천리(汾川里) 일부를 현동리(縣洞里)로, 고선리(古善里)를 고선리로, 대현리(大峴里)를 대현리로, 석포리(石浦里 일명 石峴里), 승부리(承富里) 일부를 석포리로, 승부리 일부를 승부리로, 서천리(西川里)를 서천리로, 분천리 일부를 분천리로, 두음리(斗音里)를 두음리로, 남회룡리(南回龍里), 분천리 일부를 남회룡리로, 임기리(林基里), 재산면 갈산리(葛山里), 중춘양면 매산리(梅山里) 각 일부를 임기리로 하여 소천면으로 개편했다.
지역 면적이 넓어 1963년 4월 1일 석포 출장소를 설치하여 대현,승부,석포리를 관할하게 하다가 1983년 2월 15일 석포면이 설치되어 대현,승부,석포리가 석포면으로 편입되어 행정구역이 축소됐다.
토질은 비습(卑濕)하고 돌이 많아 약초와 잡곡 재배에 적합하다.
소천면은 봉화군의 동북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으로는 석포면, 울진군 서면, 남으로는 영양군 수비면, 재산면, 서로는 춘양면, 북으로는 영월군과 경계한다.
현재 법정리는 현동(縣洞), 임기(林基), 서천(西川), 두음(斗音), 분천(汾川), 고선(古善), 남회룡(南回龍)이다.
■현동리
◇현동(縣洞) :
小川部曲의 중심지였다, 小川 石城이 남아 있다.
창마을,창촌(倉村) :
옛날에 군량미를 보관하던 창고가 있었다 하여 창마을로 부른다, 소천중고등학교 자리다.
◇장터 :
신구 장터로 나눈다. 구장터는 현동 서쪽이고, 신시장은 현동 소재지이다.
◇시동,싸라리골(柴洞,時羅里洞) :
골이 깊고 숲이 무성하여 전쟁시에는 피난처 역할을 했다고 하는데 여기 저기에 억새가 많아 이곳을 지나는 사람은 억새풀에 베어 쓰라림을 맛 봐야 한다는 데서 "씨라리골"이란 말이 생겨나고 세월이 지나면서 씨라리골로 변혔다
◇살피재 :
임진란시 봉화 의병대장 류종개가 김인상, 윤흠신, 윤흠도와 더불어 의병을 거느리고 이 고개에서 역전하다가 모두 흉봉(凶鋒)에 죽었다
부근에 살피터, 높은터, 절골이 있다
◇자작정(自作亭) :
옛날부터 이곳에는 자작나무가 많아 하늘을 덮을 정도였다고 하는데 파평 윤씨 집안에서 지나는 행인들을 위하여 자작나무 정자를 지어 쉬어가게 했다한다
◇열람,연남(淵南) :
옛날 마을의 남쪽 산기슭에 조그마한 연못이 있어 농업용수로 사용하였다 하여 "연남"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암돌(岩突,岩湖) :
마을에 크고 작은 돌이 많아서 지나 다니는 사람들이 돌을 안고 돌아갔다고 하여 암돌이라 했다는 이야기와 마을 앞 하천과 주변이 부서진 돌로 이루어졌다고 하여 암호하고 하기도 한다
◇한밤이,대율동(大栗洞) :
오래전에 마을 공동 소유인 큰 밤나무가 있었는데 밤이 굵고 많이 열어서 마을사람 모두가 나누어 먹고도 남았다 한다.
■ 고선리
◇ 황평,황정평(黃坪,黃亭坪) :
조선시대에 궁궐을 지을 떼 이곳에서 생산되는 황장목을 베어다가 재목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황장목의 자생지라 하여 황정뜰이라고 했다
◇백병,흰병이(白屛) :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이곳에 빈병 형국의 명당이 있다하여 백병이라는 지명이 생겼다
◇강시골,강서동(江西洞) :
이곳은 개울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른다하여 강시골이라 하였다하며 겨울에 약초를 캐러온 사람이 길을 읽고 헤매다가 얼어 죽었다하여 강시골이라 하였다 하나 상고할 수 없다
◇소현(小峴) :
소현은 중리(中里)를 지나 마방으로 가는 길목이며 강원도와 경북 내륙을 오가는 중요 교통로다. 이 곳에서 춘양,법전으로 가다가 보면 고개가 2개 있는데 법전 소로리 쪽의 고개가 큰 고개, 중리 쪽의 고개를 작은 고개라 한다
◇잔대미,백담(盞臺味,栢潭) :
이 마을의 중앙에 연못이 있었는데 주위에 잣나무가 많아서 백담이라 불렀다
◇간기(間基) :
구마동에서 큰 터와 새터 사이에 있다고 하여 간기라 한다
◇도화동 :
봄이 되면 이곳에 복숭아 꽃이 만발하여 아름답기가 무릉도원과 같다하여 도화동이란 명칭이 붙었다
◇벌바위골(蜂巖) :
바위에서 벌을 받아 번식시켰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마방(馬坊) :
말을 매어두고 쉬게 하던 곳이다
◇구마동(九馬洞) :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이 계곡 안에는 아홉 마리 말이 한 기둥에 매여 있는 형상인 구마일주(九馬一柱)가 있다고 하는데 아직까지 이명당을 찾지 못했다 한다
◇임기리
선당,서낭당(城隍堂) 마을 어귀에 성황당이 있다 옛날에 하늘에서 신선이 내려와 강어귀에서 장기를 두고 놀다 갔다는 정자가 있었다하여 선당(仙堂)이라고 부른다.
■두음리
◇군매리
마을이 움푹 들어간 구릉지에 자리잡고 있어 "군매로"라 하였으며 마을이 서향이어서 음매로라고도 한다. 강변에 갈매기들이 무리지어 날아와서 놀곤 하였는데 농작물에 해를 끼치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서천리
◇ 갯마을(浦村) :
임진왜란때 박씨 일가가 피난을 와서 살았다.
개펄이 생긴 자리에 마을이 형성되었다 하여 "갯마"라고 한다. 마을 어귀에 신선바위가 있어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이 치성을 드리면 잉태할 수 있다는 전설이 있다. 냇물이 서쪽으로 흐르고 있어 "서천"이라 하였다 .
◇한골,대곡(大谷) :
골짜기가 넓고 크다하여 한골이라고 한다 .
◇오미골(梧谷) :
오동나무가 많은 동네이다 .
◇개내,가천(桂川) :
항상 맑은 물이 흐른다하여 개내, 가천이라고 한다. 일제시대에 채굴을 시작한 "금호광업소"가 있었다 .
■남회룡리
◇솔안 :
옛부터 솔숲이 있는 동네라 하여 붙인 이름이다.
◇오소(烏巢) :
춘양목이 자생하고 있어 보호림으로 지정되어 있다.
용소가 있어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있다.
◇사전(沙田) :
마을에 있는 밭의 토질이 모래로 되어 있어 모래밭이라고 한다.
◇마당목 :
동네 지형이 말의 목과 같이 생겼다하여 붙인 이름이다.
◇개내골 :
옛날에 "개내사"란 절이 있었다.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남회룡 :
일월산맥이 동네 남쪽으로 돌아 앉아 있으므로 마치 용이 남쪽으로 돌아 않아 있는 것 같아서 남회룡이라고 한다.
◇분천리
황목,쑤안,숲곡(黃木) :
숲으로 뒤덮여 있는 이곳을 개척하고 숲곡이라 불렀다.
◇풍애(豊厓) :
물가에 있는 풍성한 마을이란 뜻이다.
◇능호(凌湖),역전마을 :
마을 주위를 낙동강이 감돌아 호수 같다고 하여 능호라고 불렀고 분천역이 있다.
◇비동(肥洞) :
화전민이 개척한 마을이다.
토질이 기름지다하여 붙인 이름이다, 가까운 곳에 尺邱가 있다.
◇자마리(紫馬里) :
지형이 옛날 중국의 제(齊)나라 영기(英起)가 타던 용마(龍馬) 노류마(老留馬)의 형국이라 하여 자마리라 부른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마을 뒤 계곡은 임진왜란시 이 계곡에서 막을 치고 피난하였다 하여 왜막골(倭幕谷)이라고도 한다.
◇광비 :
100여년전만 하여도 싸리나무로 광주리를 만들어 아낙들이 전국을 돌아 다니며 팔았다고 하여 광비라고 부른다.
◇맷재,매현(梅峴) :
산의 음인 뫼가 변하여 맷재라고 하기도 하고, 옛날 한쌍의 매가 날아와 둥지를 틀고 새끼를 쳤는데 그 수가 헤아릴 수 없었다 하여 맷재라고 부른다는 이야기가 있다.
◇평지,분천(汾川) :
여우천에서 흘러 내려오는 냇물이 갈라져 낙동강으로 흐른다하여 부내라고 부르며 하천 옆으로 토사가 쌓여 평평한 들을 이루었다하여 평지라고 한다.
◇도호(島湖) :
부족국가 시대에 작은 왕국이 있었다는 전설이 있다. 명당지로서 1석계, 2도호, 3하회라 한다.
◇옥방(玉房) :
중석 광산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