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12월1일 대기업 H그룹에 입사를 했다. 1개월간 그룹연수를 받고 12월말 H해상화재보험(이하 H사로 표현)에 인사발령을 받았다. 87년 2월에 대학교 졸업식을 했으니 아직 졸업전이었다. 위치는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이 있는 곳이었다.
당시 우리나라 자동차의 수요가 급속히 늘어나는 상황이어 자동차손해 사정인이 많이 필요해 H사입사동기생 50명중 25명이 이 업무를 맡았고 정확한 부서 명칭은 자동차 보상 사무소였다. 하는 일은 오전에는 주로 전화로 일을하고 상담을 하거나 documentation을 하고 오후엔 출장을 다니고 오후 늦게 돌아와 다시 서류정리하고 일과를 마치는 일이었다.
출장은 주로 경찰서, 병원, 장례식장이었고 가끔 사고현장에도 갔었다. 경찰서는 경찰이 사고 경위서 작성한거 열람하러 갔고 병원은 피해자 만나러 갔고 장례식장은 사망사고시 가족 유족위로를 위해 갔다. 사고 현장은 skid mark라고 해서 바퀴자국같은거를 볼 필요가 있을때 가서 사진을 찍고 현장 조사를 했다. 사회초년생이어 1월한달은 교육받고 사무실에서 선배사원들 일하는거 도와 주고 서류정리하는거 하면서 적응하는 기간이었다. 담배연기 자욱한 사무실에서 보상금이 작다고 흥분한 피해자와 가족들과 싸우는 모습을 쉽게 볼수 있었다. 급여는 상당히 높았다. 당시 대기업 S전자나 G사 대졸 초봉이 30만원대 초반이었는데 40만원이 넘었으니 많은 편이었다. 그런데 사회첫발을 내딛으며 vison을 갖고 입사한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직원들이 일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당시의 vision은 선글라스를 쓰고 007가방을 갖고 구두 발자국 소리를 내며 김포공항을 나서 비행기타고 미국,유럽등을 다니며 order수주하는 소위 종합상사나 제조업체의 해외영업업무를 꿈꾸던 시절이었으니 담배연기 자욱한 광화문의 사무실에서 소리지르면서 보상금 합의 못하겠다고 흥분한 고객을 달래는 일을 하는건 vision이 아니라 군대시절 극기훈련의 연장이었다.
잊지 못하는 인상깊었던 말이 몇가지 있었다. 첫째는 아침 출근 도장에 싸인을 9시전에 하는 건데 8시30분부터 회의를 했는데 과장이 '자~공산당회의 합시다' 라고 시작을 했고 모두들 자연스럽게 임하던 모습이었다. 과원은 과장1명, 대리 1명, 고참사원(3년~5년) 2~3명, 중급사원(2년이상) 3~4명, 신입사원 4명, 다른 과업무도 병행하던 여직원2명합하면 10명이 넘었다.
주로 다들 피곤한 모습이었고 아침엔 근처 광화문 별다방에서 주문한 커피한잔씩 마시며 회의를 했다.주로 지시였고 다들 불쌍한 또는 겸손한 표정으로 지시를 따랐다.
밤이 되었다.저녁을 같이 먹고와서 자리에 앉았다. 여직원은 6시 넘으면 보통 퇴근하는데 남자직원들은 다들 바쁜건지 바쁜척하는건지 주판으로 계산하거나 전자 계산기로 손해사정을 열심히들 하고 있었다. 밤 11시가 되자 10여명을 군대 하사관 처럼 통솔하던 Y대리가 소대장같은 J과장앞에 가서 '과장님 퇴근하겠습니다' 했다 그러자 과장이 ' 왜 이렇게 빨리 가나?' 했다. 그러자 Y 대리가'오늘 약속이 있어서" 하며 얼굴이 붉어지는게 보였다. 그러자 J과장 왈 '그럼 가봐; 학교다닐때 ROTC 3학년이 4학년한테 군기잡히는 모습이 연상되었다. Y대리는 54년생 J과장은 51년생이었다.
11시 30분에는 나가야 길건너편 교보문고앞 출발하는 목동 아파트가는89번 버스를 막차를 탈수 있었다. 11시25분에 '과장님 퇴근하겠습니다'. 그러자 내일부터는 퇴근이란 말 쓰지 말고 집에 짬깐가서 돌보고 오겠습니다로 말을 바꾸라고 지시를 했다.
2월 어느날 금요일인데 그날은 all light를 하는날이라고 했다. 밤을 세웠다. 난 신입이어 고참 사원 소위 사수들이 쓴 품의서를 순서대로 품의서 진단서, 사고 경위서, 병원 영수증, 기타 영수증등 아주 두툼한 서류를 staple로 찍고 삐져나온 진단서등 습자지 같은 얇은 종이를 가위로 자르는 일을 밤세워 했다. 새벽 4시가 되자 다들 피곤해 했고 생산성이 급속도로 떨어졌다. 광화문 근처 목욕탕을 가서 더운물에 들어가 쉬다. 6시쯤에 아침 일찍 문연 해장국집에 가서 아침을 먹었다,
토요일 아침 , 자~ 공산당 회의 합시다' 하면 다 모여 인사고과권이 있는 과장앞에 모여 또 별다방에서 시킨 커피마시면서 회의를 했다. 당시 노동법상 금융기관이었던 손해보험회사는 평일 6시 퇴근 토요일 1시퇴근이었다. 그런데 토요일 아침 회의시 과장의 명언이 또 시작되었다. " 어제 밤 오늘 아침까지 수고 많었으니까 오늘은 2시까지만 하고 들어가 봐' 2시30분쯤에 사무실을 나온거 같다.
집에 가려고 하는데 사수가(56년생 으로 대리 진급이 안된 안타까운 고참사원) 내게 그런다. '내일 할일없으면 회사 나와'. 이때 다 그런건 아니지만 이당시 직장생활의 모습중 한컷이었다.
여기서 1~2년 잘 견디던 나는 썬글라스 쓰고 007가방들고 김포공항 나서는 꿈을 못버리고 80년대 후반 당시 국내 최대 가전화사G사 수출부로 전직을 했다.
지금은 상상을 할수 없는 조직문화 이겠지만 당시엔 그리 많이 어색하지 않던 조직 문화였다. 이때 같이 일했던 J과장이 대구지점 차장으로 승진되어 가고 대리에서 승진한 Y과장땐 all light가 없어졌고 밤 11시에 약속있다고 apologetically 퇴근하는 일은 없어졌다. 그래도 최소 8시20분에서 9시 30분시까지는 일하는게 보통이었다.
그런데 이문화가 G사에 가서도 큰 변화는 없었다. 과로사 하는일도 가끔 신문에 나던 시절인데 신문에 안나오는 경우도 많었다.
급속한 경제발전과 경쟁사회에 살아남기 위한 피하기 어려운 과정이었을 것이다. 요즈음은 모르겠는데 90년대에만해도 당시 우리나라가 40대 사망률이 가장 높은 나라라고 여러번 들은적 있다. 생산성이 높아지고 기술발전에 따라 이제 문화 수준도 높아졌다.
이젠 그런 문화가 아련히 떠오르는 추억이 되었다.
첫댓글 서울에 있을 때면
아침마다 달ㅈ리기 하면서 지나는 곳입니다.
지난 우리들의 시대가 선연히 기억되어 옵니다.
글 공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부전합니다
댓글 감사 드립니다.그시절로 돌아갈수는 없지만 영화를 보듯 그시절을 보고 싶을때가 많습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