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님이 우리 부부를 현대판 노래자로 만드셨네!
김종훈
저는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하지만 교회를 나갑니다. 딱딱한 의자에 앉아서 하릴없이 눈만 껌벅껌벅하는 게 쉽지는 않아요. 다행히도 가끔 아는 찬송가가 나오면 열심히 부릅니다. 목사님 말씀도 귀 기울여 들어보기도 하지만, 영 어렵습니다. 읽고 읽어도 졸리기만 한 성경책을 여기저기 뒤적거리기도 하고요. 이렇듯 교회는 저에게 익숙한 장소가 아닙니다. 하지만 열심히 다니려 노력하고 있어요. 혼자 가는 게 아니고 올해로 희수(喜壽: 77세)이신 장모님을 모시고 다니기 때문입니다.
처음 제가 교회에 모시고 갔던 날, 장모님께서 조용히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이제야 소원을 풀었다며 눈물이 난다고 하셨어요. 그러면서 주변 할머니들에게 막내 사위 데리고 왔다고 자랑 자랑하셨습니다. 잘나지 않은 외모이지만 다들 잘생겼네, 듬직하네, 한마디씩 하셨습니다. 제가 다니는 교회는 꽤 규모가 크지만 신도 대부분이 노인들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손에 꼽혀요. 그래서 그런지 이목이 쏠렸습니다. 낯이 좀 부끄러웠어요.
하지만 덕분에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장모님께서는 당신께서 소천(召天)하실 때 꼭 틀어야 하는 찬송가가 바로 620장 [여기에 모인 우리]라고 알려주셨습니다. 또, 그 옛날 장모님이 어렸을 적 어머니가 힘들 때마다 부르시던 찬송가는 [주여! 이 죄인이]라는 것도 알고, 같은 아파트에서 친하게 같이 다니는 할머니가 누구인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가끔 제 차로 친구 할머니를 함께 모셔다드리면, 장모님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게 보입니다.
제 처가는 형제가 많아요. 효도를 잘하는 가족이죠. 매일 전화드리고, 건강검진에, 각종 영양제에, 세세하게 잘 챙겨드립니다. 다들 가정을 이루고, 손주들도 큰 문제 없이 잘 자라고 있어요. 심심치 않을 정도 자주 모이고, 경조사에는 손발이 척척이죠. 큰 갈등 없이 가족 구성원 모두가 화목하게 지냅니다.
그래서 막내 사위인 저는 드릴 게 없었습니다. 용돈을 챙겨드려도 모아두었다가 다시 돌려주시고, 영양제는 넘쳐난다며 필요 없다 하시고요. 평생을 아끼기만 하면서 살던 습관인지 모든 선물은 그저 부담스러운 사치품이 되나 봅니다.
고민 끝에 물건 대신 시간을 드리기로 했습니다. 테레사 수녀는 여유 하나 없이 바쁘게만 사는 우리들에게 ‘서로에게 미소 짓고, 가족끼리 서로를 위한 시간을 만드세요.’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요즘 시대에 진정 필요한 건 돈 주고 사는 물건이 아니라, 한 공간에서 함께하는‘시간’이 아닐까 합니다.
또, 어린왕자의 작가 생텍쥐페리는‘사랑이란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입니다.’라고 했어요. 아끼는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것도 좋지만, 상대방이 바라보는 곳을 같이 바라봐 주면서 그 사람의 관심사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주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상대에 대해 더 잘 알게 되고, 그러면서 관계가 더 깊어질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장모님의 소원인 함께 교회를 나가드리는 겁니다.
지난주에는 아내가 장모님을 모시고 교회에 나갔습니다. 아내도 저와 같이 신앙인이 아닙니다. 그 동안은 절대 교회에 나가지 않을 거라 했죠. 그런 아내에게 우리 장모님과 함께 교회 나가는 시간을 만들어 보자 했지요. 조금이라도 건강하실 때 소원을 들어드리자고 말했습니다. 자칫 만시지탄(晩時之歎)이 될 수도 있다고 설득하니 아내의 마음도 움직였어요. 절대로 교회를 가지 않겠다고 버티던 딸이 먼저 교회에 같이 가자고 하니, 장모님은 마치 아이처럼 좋아하셨습니다.
자식들로 인해 기뻐하시는 장모님의 모습을 보니 반의지희(斑衣之戲) 고사에 나오는 ‘노래자’가 떠오릅니다. 초나라의 노래자가 나이 일흔에 노부모님을 위로하며 기쁘게 해드리려고 색동저고리를 입고 유희를 했다는 고사 말입니다. 교회 나가기 싫어하던 저희 부부가 특별한 것도 아니고 교회 나가는 시간으로 장모님께서 그렇게 기뻐하시다니 저희 커플은 현대판 노래자가 된 것 같은 심정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 모시고 가는 시간은 단지 한두 시간에 불과한데 그리 기뻐하시고 좋아하십니다. 반포보은(反哺報恩)의 효를 실천하는 같아 저희 부부도 마음으로 기뻐하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교회 나가는 시간을 함께 해서 장모님을 평생 기쁘게 해드려야겠습니다.
장모님이 우리 부부를 노래자로 만드셨네!
장모님 감사합니다.
저희 부부를
노래자로 만드셨으니
기쁨이 주식이 되게 해드리겠습니다.
백유읍장(伯兪泣杖)이 무색하도록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