君是良醫
어떤 젊은 과부 하나가 강릉(江陵)기생 매월(梅月)이와 이웃삼아 살고 있었다. 매월은 그 자색과 명창으로써 한때에 이름이 높았으므로 일대의 재사(才士)와 귀공자들이 모두 그 문앞으로 모여들었다. 어느날의 일이었다. 때는 마침 여름철이었다. 매월의 온 집안이 유달리 고요하여 인기척이 없기에 과부는 괴이히 여겨 남몰래 창을 뚫고 엿보았다. 어떤 한 청년이 적삼과 고의를 다 벗은 몸으로 매월의 가는 허리를 껴안은 채 구진구퇴(九進九退)의 묘법을 연출하는 것이었다. 기생의 여러 가지 교태와 사내놈의 이러한 음탕을 평생 처음으로 본 과부인만큼 그 청년의 활기를 보자 음탕한 마음이 불꽃처럼 일어 억제하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과부는 스스로 애무하였다. 그의 코에는 저절로 감탕(甘湯)의 소리가 나는 것이었다. 그렇게 10여 차를 하고 보니, 목구멍이 막혀서 말을 내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 때마침 이웃집 할머니가 지나치다가 들어와서 그 꼴을 보고는 그 연유를 물었으나, 목멘 듯이 대답을 못하고는 다만 숨소리만 나는 것이 아닌가. 마음으로 반드시 무슨 곡절이 있음을 짐작하고 묻기를, 『색시, 만일 말이 나오지 않는다면 언문 글자로 써서 뵈는 것이 어때?』 하고 권고를 하는 것이었다. 과부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하나 빠뜨리지 않고 써 보였다. 할머니는 그 사연을 보고 웃으면서, 『상말에 이르기를 그것으로 말미암아 난 병은 그것으로써 고치는 방법밖에 없다 하지 않았소? 이 병엔 건강한 사내를 맞이하여 치료하는 것이 가장 빠를 것이오.』 하고는 문을 나섰다. 그 동네에 우생(禹生)이란 노총각이 살고 있었다. 그는 집이 가난한 탓으로 나이가 서른이 넘어도 아직 장가를 들지 못한 형편이었다. 할머니가 우생을 보고는, 『아무집에 이런 일이 생겼는데, 그대가 그 병을 치료할 자신이 있겠는가. 안일 그렇게 된다면, 그대는 없던 아내가 생기는 것이요, 그녀는 홀어미로서 남편을 얻는 것이니, 이는 실로 경사가 아닐 수 없네.』 하고 권유를 하였다. 우생은 크게 기뻤다. 곧 할머니의 뒤를 따라 과부의 방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우생은 곧 의복을 벗은 발가숭이 몸으로 촛불이 휘황한 밑에서 멋있게 일을 베풀었다. 그녀는 병이 곧 나아 일어나면서 다음과 같은 한 마디 말을 남겨었다. 『당신이야말로 참 양의(良醫)로군.』
執手掩口
어떤 한 청년이 이웃집에 살고 있는 예쁜 여인을 사랑하여 그 남편이 멀리 나간 틈을 엿보아서 억지로 달려들어 일을 치렀다. 그녀가 그 자취가 드러날까 보아 관가에 고발을 하였다. 원이 그녀에게 심문하기를, 『저놈이 비록 먼저 달려들었다 할손, 네가 받은 그 이유는?』 하였을 제 그녀는, 『그이가 한 손으로 저의 두 손을 잡고, 한 손으로는 저의 입을 막고, 또 한 손으로는……그래서 소녀의 약질로서는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답니다.』 하고 변명을 하는 것이었다. 원은, 『천하에 무슨 세 손을 지닌 놈이 있단 말야. 이년, 무고죄(誣告罪)를 면하기 어렵구나.』 하고 거짓 화를 벌컥 내었었다. 그녀는 크게 두려워하여, 『과연 손을 잡고 입을 막은 것은 그이의 손이지만 그것을 집어 넣은 손은 소녀의 손이었습니다.』 하고 바로 고백을 하는 것이 아닌가. 원은 그제야 책상을 치면서 크게 웃었다.
入寺缺耳
경주(慶州)에 나이가 겨우 열 여섯 살이 된 기생이 있었다. 그의 화용월태(花容月態)는 이름이 화류계(花柳界)에 드높았다. 고을 사또의 책방으로 온 총각이 그와 함께 사랑을 속삭였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돌아갈 제, 총각 역시 아버지를 따라가게 되었다. 기생이 서로 놓치기를 어려워하여 반일의 시간을 허비하여 따르다가 헤어지는 마당에 명주 적삼을 벗어서 주면서, 『뒷 기약이 아득하니, 이것으로 정을 표하리다.』 하기에 총각 역시 붉은 중의를 벗어서 주면서 서로 작별을 하였다. 기생이 눈물을 머금으면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릇 산길로 들어 해가 또 저무는 것이었다. 한 산사에 이르러 스스로 생각하기를, 『여인의 몸으로서 절간에 드는 것이 불편하리라.』 하고는 곧 아까 총각에게 받았던 옷을 갈아 입고 동자(童子)의 시늉을 하고 절에 들어갔다. 여러 중이 그를 보고는, 『어쿠, 예쁘기도 하이. 이런 동자가 어디에서 왔을까?』 하고 다투어 방으로 들었다. 밤이 되자 중이, 『동자는 산승이 후정(後庭) 놀음을 좋아하는 줄을 몰랐지. 어떤 스님과 같이 자려 하나?』 하고 묻는 것이었다. 그는 몸을 더럽힐까 보아서 이윽고 생각하기를, <저 늙은 중이 나이도 많고 기력도 쇠진하였을 테니 반드시 범하지 못할 것이야.> 하고는 드디어 입을 열어, 『저 선사(禪師)를 모시고 자려 하오.』 하는 것이었다. 여러 중들이 서로 돌아보면서 놀라운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드디어 밤은 깊었다. 늙은 중이 그를 껴안고 그 뒷장난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기생이 늙은 중의 활력이 대단함을 알고서 정념(情念)이 별안간에 일어나 그것에 응하였다. 늙은이는 정담이 극에 이르자 당황하여 기생의 귀를 씹어 버려 귀가 달아나 버렸다. 기생이 너무 부끄러워 얼굴을 가리고 도망하였는데, 이 일로 기생은 <대손(大損)>이라고 불리었다.
妓評詩律
부안(扶安) 기생 계월(桂月)이 시 읊기를 잘하고 노래와 거문고에 능하였다. 그는 스스로 매창(梅窓)이라 호(號)를 짓고 뽑혀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다. 수재와 귀공자들이 모두 다투어 먼저 맞이하여 시를 수창(酬唱)하고 논평하였다. 어느날의 일이었다. 유(柳)라는 선비가 그를 찾았을제, 김(金)·최(崔) 두 사람이 먼저 자리에 앉았는데 둘은 모두 광협(狂俠)으로 자부하였다. 계월이 술자리를 벌여 그들을 접대하였다. 술이 반쯤 취하자 셋이 서로 계월을 독점하려는 기색이 나타나는 것이다. 계월은 웃으면서, 『당신들이 각기 풍류장시(風流場詩)를 외어 한 차례 기쁨을 뽑는 것이 어떨까요. 만일에 제 마음에 드는 아름다운 글귀가 있다면 오늘 저녁에 모시기로 하리다. 먼저 천기(賤妓)들의 전통(傳誦)하는 시를 외어 드리리다.』 하고 다음과 같은 두 절의 시를 읊는 것이었다.
옥도곤 흰 팔은 여러 사내 베개요, 붉은 그 입술은 여러 손님 맛 보았소. 네 몸이 보아하니 서릿날이 아니어늘 어이하여 나의 애를 끊고 가는 거요. 三경 밝은 달엔 발굽이 춤을 추고 일진(一陣) 바람결에 이불이 펄렁이네 이때를 당하여 무한한 그 맛은 오직 두 사람만이 함께 누릴 것이오.
그들 세 사람은 모두 응낙하였다. 김이 먼저 칠언절귀(七言絶句) 한 수를 읊었다.
창 밖 三경에 가는 비 내릴 제 두 사람 그 마음을 둘이서만 아오리다. 새 정이 흡족하쟎아 날이 장차 새려 하니 다시금 소매 잡아 뒷 기약을 물었었소. 최가 그 뒤를 이어서 불렀다. 껴안고 사창(紗窓)을 향해 쉬지 못할 그 일에 반은 교태 머금은 채 반은 부끄럼을 짓는구나. 낮은 소리 물어 오되 나를 생각하려나요 금채(金釵)를 다시 꽂고 웃으며 머리 끄덕.
계월은 웃으면서 비평하기를, 『앞의 것은 너무나 옹졸하고, 뒤의 것은 약간 묘하긴 하나, 수법이 모두 낮으니 족히 듣잘 것이 없겠소. 대체 칠언절귀는 비교적 쉽지마는 율시는 더욱 어려우니, 저는 그 어려운 것을 취하려 합니다.』 하니 김이 먼저 물렀다.
아리따운 그 아가씨 나이는 겨우 열 다섯에 온 서울에 이름 가득 노래 불러 제일이라. 오입장이 맺은 정은 가득 바다보다 깊어 있고 화관(花官)의 엄한 영은 서리처럼 싸늘하이. 난초 창 다사로와 아침 단장 재촉하고 솔고개 바람 높자 저녁 걸음 바빳었소. 이별할 땐 많건마는 만나기 어려우니 양대의 비구름이 초양왕(楚襄王)을 괴롭히네.
이 시를 본 최는, 『이 시가 비록 아름답다 하나, 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없지 않아.』 하고,
강머리에 말 세운 채 이별 짐짓 더디어라. 양유 가장 긴 가지가 나는 몹시 미움고녀 가인은 인연 엷어 새 교태 머금고 오입장이 정이 많아 뒷 기약을 묻는고나. 도리꽃이 떨어지니 한식절이 다가오고 자고새 날아가니 석양이 비낄 때라. 남포에 풀이 많고 봄 물결이 넓을 제 마름꽃을 캐려다가 생각한 바 있었다오.
라고 읊었다. 이 시를 보고 계월은, 『이 시는 약간의 맑은 운치가 있으나, 족히 사람을 움직일 수 없겠소.』 하고는 유를 돌아보면서 이르기를, 『당신은 홀로 시를 읊을 줄 모르시오?』 『난 애초부터 글이 짧고 옛날 양구가 크기로 이름 높던 오독( 毒)의 수레바퀴를 궤던 재주가 있을 뿐이오.』 하는 것이었다. 계월은 웃으면서 답하지 않는다. 최가 화를 내면서 이르기를, 『오늘엔 의당히 시의 잘잘못을 논할 것이 아니야!』 하매, 이 말을 들은 김은 자부하는 빛이 있어 읊기를,
가을 밤 새기 쉬우니 길단 말늘 하지 마오. 등불 앞에 다가앉아 비단 치마 풀어 보렴. 외눈이 열리니 감은 동자 반짝이고 두 가슴 합해지니 땀 냄새도 향기로와 다리는 청구머리 물결에 헤엄치고 허리는 잠자리라 물에 바삐 잠기더군. 강건하기 짝이 없음 마음에 자부하기 사랑 뿌리 깊고 얕음 임에게 묻노매라.
계월이 이 시를 듣고는 잘되었음을 칭도(稱道)하는 것이었다. 그제야 유는 계월로 하여금 운자를 부르라 하고 운자가 떨어지자 다음과 같이 읊었었다.
봄빛 찾은 호탕한 선비 기운도 높을시고 비취(翡翠) 이불 속에 아름다운 인연 있어 옥 팔뚝을 버티니 두 다리가 우뚝하고 붉은 구멍 꿰뚫으니 두줄이 둥글고나. 눈매를 처음 볼 제 아득하기 안개같고 장천을 쳐다보니 돈보다 작아지네. 그 속에 별재미를 만약에 논하려면 하룻밤 높은 값이 천금이 되오리라.
계월이, 이 시를 듣고 나서 탄식하기를, 『이는 운자가 떨어지자 곧 부른 것이었으나 침석(枕席) 사이의 정태를 잘 형용하였을 뿐 아니라, 글이 극도로 호방(豪放)하고 웅건하니, 반드시 범상한 재주가 아니오니 원컨대 존어(尊御)를 듣고자 합니다.』 하는 것이었다. 유는, 『나는 곧 유모(柳某)라는 선비요.』 하고 대답을 하였더니 계월은, 『존공(尊公)께서 이런 누추한 곳에 왕림하실 줄을 몰랐소이다. 이제 다행히 만나 뵈는군요.』 하고 이내 잔을 드리고 웃으면서 이르기를, 『만일에 온 하늘로 하여금 작은 돈짝과 같이 한다면 그 값이 다만 천금에 그칠 것입니까?』 하고 또 두 선비를 향하여 이르기를, 『당신에의 읊은 바는 한 잔의 청량음료만도 못하구료.』 하고 핀잔을 주는 것이었다. 최·김은 모두 묵묵히 물러가 버렸다. 유는 드디어 뜻을 얻어 함께 그 밤을 세웠다.
設泡瞞女
어떤 중이 살고 있는 절이 인가에서 멀지 않은 지점에 있었다. 그 동네에는 박(朴)·김(金)·이(李) 등의 성을 지닌 천호가 살고 있었다. 중이 평소에 세 천호와 서로 절친하여 자주 오가곤 하였다. 어느날 중이 세 사람의 아내에게, 『내가 세 형수씨를 위해서 특히 두부 잔치를 열어 드릴 테니, 수고로움을 해이지 않고 절로 올라오실 수 있는지요?』 하고 묻는 것이었다. 세 여인은 모두 응낙을 하고 약속된 날에 갔더니 중이, 『무릇 절간에 장만하는 것은 반드시 부처님 앞에 드린 연후에 먹을 수 있답니다.』 하는 것이었다. 세 여인은 그의 말대로 부처 앞에 나아가 합장을 하고 엎드려 있었다. 중은, 『비단 절하고 엎드려 있을 뿐이 아니라, 반드시 평생 남몰래 한 일을 솔직히 부처님 앞에 실상으로 고하지 않는다면 부처님께서 반드시 무거운 벌을 내릴 것입니다.』 하고 가르쳐 주었다. 세 여인은 난색을 보이었으나 중은 먼저 사자(使者)를 시켜 부처님의 배후에 숨었다가, 『너희들의 간음(姦淫)한 일은 내 이미 잘 아는 바이니, 이실직고하렷다.』 하였다. 그들은 크게 놀라 박천호의 아내가 먼저, 『전, 출가하지 않을 때 춘흥(春興)을 이기지 못하여 매일 오가전 총각과 함께 숲 속에 들어 간통을 했는데 부모께서 덮으시고 박천호에게 출가시켰답니다.』 하는 것이다. 다음에는 김천호의 아내가, 『전, 처녀 때에 같은 동네 어떤 사내가 유혹하기를 <네가 장성하였으니 먼저 예법을 연습하여야지, 만일 그렇지 않고 첫날밤을 당하면 어떻게 감당하려나>하고 방으로 들어 일을 치렀으나, 애초엔 아무런 재미를 몰랐던 것이 날마다 연습하여 잉태가 되었을제 부모께서 산아(産兒)를 묻은 뒤에 김천호에게 출가시킨 것입니다.』 한다. 다음에는 이천호의 아내가, 『이천호의 친구 하나가 자주 오가게 되자 저절로 서로 친근하다 보니, 잉태 생남하여 남편이 자기의 아들로 인정하고 있는 만큼 이는 저의 죄가 아니고 남편이 친구를 좋아하는 데에서 나온 폐해라고 생각될 뿐입니다.』 하고 변명을 하기에 급급하는 것이었다. 『너희들의 음사를 내 장차 너의 남편에게 고발하련다.』 하니 그녀들은 크게 두려워하여 엎드려 애걸을 하는 것이었다. 중은 그녀들을 이끌고 내호(來戶)로 들어 차례대로 일을 치른 뒤에 보냈다.
郞言支歲
어떤 선비가 재취(再娶) 장가를 들었다. 나이가 이미 여든이어서 수염과 머리칼이 다 희었다. 이 꼴을 본 장인 영감은 크게 놀랐다. 그 이튿날이었다. 장인은 신랑에게, 『신랑의 나이가 몇이라지?』 하고 묻는 것이었다. 신랑은 서슴지 않고, 『스물이 넷이랍니다.』 하고 말소리가 겨우 들릴 만큼 하였다. 장인은, 『스물 네 살 되는 청년이 어지 이리 늙었는가? 참 엉터리로군.』 하고 화를 벌컥 내는 것이었다. 신랑은, 『그러면 마흔이 둘이랍니다.』 하고 이미 흐린 말을 짓는 것이었다. 장인은, 『마흔 둘, 그것 역시 참된 아니구료.』 하고 굳이 따지는 것이었다. 신랑은, 『그러면 사면이 다 스물이랍니다.』 하고 똑똑히 말하였다. 장인은, 『그럼 여든이로군. 뜻밖에 신랑의 나이가 나보다 높군그려. 내가 처음 물었을 제, 어찌 바로 대지 않고 두 차례나 회피하였단 말이오?』 하고 따졌더니 신랑은, 『내 애당초부터 실토하였으나 영감께서 잘 알아 듣지 못한 탓이지요. 마흔이 둘이면 여든이요, 스물이 넷도 여든 되지 않아요. 내 나이 비록 늙었지마는 아내가 잘 보양(補陽)을 하면 이해 안에 잘 부지(扶支)할 것이오.』 하고 자신이 만만함을 과시하는 것이었다. 때는 이미 그 해 섣달이 끝나는 작은 그믐날이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자 모두 허리를 잡았었다.
智計妻羞
어떤 권문(權門) 재상가(宰相家)의 규수 하나가 있었다. 그는 몹시 총명하고 영리하였으며 시서와 침공(針工)에 통하지 못한 것이 없었다. 그러나 그에게도 하나의 결점이 있었다. 성격이 몹시 비좁아서 외통으로 뚫린 그 고집은 만일에 제 뜻대로 아니될 때는 비록 부모의 앞에서라도 화를 발칵 내곤 하였다. 그러니 그 나머지 노복들에겐 더 말할 나위 없었다. 이러한 소문이 전파되자 문안의 수많은 귀공자들이 장가들기를 꺼리는 것이었다. 부모가 그의 혼사가 늦어짐을 걱정하여 그의 잘못된 성격을 책하면 그는 대답하기를, 『인생이 겨우 100년이어늘 어찌 부부의 낙을 위해서 자기를 굽히고 기운을 상(傷)하게 할 수 있으리까. 다만 길이 어버이의 슬하에서 모시려 합니다.』 하고 스스로 규중(閨中)에서 늙기를 원하는 것이었다. 부모 역시 사랑에 빠져 깊이 책하지도 못하였다. 그러나 딸을 규중에서 헛되이 늙히기에는 어려웠다. 이렇게 걱정을 하는 무렵이었다. 어떤 매파(媒婆) 하나가 통혼을 해 왔는데, 그는 가난이 심하고 의탁할 곳이 없으나 문벌이 서로 알맞았으므로 재상은 곧 허혼을 하였다. 화촉을 밝히는 그날밤이었다. 신랑이 생각하기를, 『어찌 사내로 태어나서 하나의 여자를 누르지 못할 수 있으리요.』 하고 한 계교(計巧)를 마련하였다. 원앙금침 속의 단꿈은 이루어졌다. 신랑은 가만히 신부의 이불 속에 똥덩이 하나를 묻어 두고 자기의 이불 속으로 돌아왔었다. 이윽고 신랑이, 『고이하이, 고약한 냄새가 어디에서 나는지?』 하고 중얼거렸다. 이러한 신랑의 말을 수면 중에 들은 신부는 홀로 냉소를 지었을 뿐이다. 그러다가 점차로 자기의 이불 속에서 똥덩이가 있음을 깨닫고 얼굴이 붉고 마음이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면서, 『내 잠이 몹시 포근하여 그것이 흘러나온 것을 깨닫지 못했어요.』 하고 머리를 굽혀 말이 없는 것이었다. 신랑은 웃으면서, 『젊은 나이에 잠에 곤하여 오물을 흘림은 역시 예사라고 생각하오. 하물며 우리 부부의 사이에 어찌 서로 혐의를 둘 것이 있겠어?』 하고는 이내 종년을 불러 께끗이 정리하였다. 이로부터 신부의 기질은 숙여들어 비록 종년들에게 책할 일이 있다 해도 마음에 그 첫날밤 일이 생각에 걸핏 떠올라 문득 함구무언하여 양순한 사람이 되곤 하였다. 신랑이 뒤에 과거에 올라 벼슬이 판서에 올랐다. 그 동안에도 부인이 더러 불손한 일이 있을 때에는 문득 그 일을 들어 입을 열고자 하면 부인은 곧 수두상기(垂頭喪氣)를 하여 일평생 기를 죽인 채 지나고 말았다. 전날의 신랑은 어언간 나이가 일흔이 넘어서고 아들 셋이 모두 정경(正卿)이 되었을 뿐 아니라 그 해에 회혼의 날을 맞이하였다. 자녀들을 앞에 세워 놓고 늙은 재상은 입을 열었다. 『내 이제 나이가 늙어 남은 시일이 얼마 없고 이런 기쁜 자리가 마련되었으니 무슨 은위(隱諱)할 일이 있겠느냐?』 하고 그의 아들을 가리키면서, 『너의 엄마가 처녀시절에 호방한 기개가 하늘을 찔러 그를 누를 사람이 없었으므로, 성중(城中)에 수많은 귀공자들이 모두들 장가들기를 꺼렸으나, 나홀로 구혼을 하여 첫날밤에 이러이러 하였으므로 여태가지 양순하기 짝이 없어 집안이 태평하였던 거야. 내 만일에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 사이에 몇 차례의 전쟁이 벌어져 부부가 제각기 흩어져 버렸을지는지도 몰랐을 거다.』 하고 말을 끝내자 박장대소를 하였다. 그의 부인은 애매하게도 5, 60년 사이를 기만 속에 살아 왔던 나머지에 이제 비로소 명백한 연유를 듣자 크게 노하여 재상의 수염을 잡아 힘껏 발악을 하여 수염이 다 빠지자 민숭민숭한 턱 밑에서 번쩍번쩍 광채가 나는 것이었다. 그는 부끄러운 한편 노염도 생겼으나 어떻게 할 길이 없어 일어나서 사랑으로 나가버렸다. 그 이튿날 조회차(朝會次) 조반(朝班)에 올랐을 때 임금이 그의 수염이 하나도 없음을 보고는 놀라 묻기를, 『경(卿)은 어인 일로 하룻밤 사이에 그 꼴이 되었는고?』 하였다. 재상은 곧 그 실사(實事)로써 어전에 주달하였다. 임금은 크게 노하여, 『대신의 체중한 처지에 어찌 이런 무례한 아내의 소위가 있을 수 있단 말인고?』 하고는 곧 사약을 내렸었다. 금부도사가 약사발을 받들고 그의 집에 이르렀다. 온 집안이 황황히 부인에게 여쭈었더니 부인은, 『나의 죄는 면하기 어렵고 위의 뜻을 어찌 거역하리.』 하고는 곧 뜨락으로 내려 꿇어앉아 달갑게 약그릇을 받아 한번 들켜 다하고 보니, 이건 곧 이진탕(二陳湯)이었다. 금부도사가 복명을 한 뒤에 재상은 그 지난 일을 상세히 주달하였더니 임금은 크게 웃으면서, 『참으로 여중호걸이군. 경의 슬기가 아니었던들 누르기는 어려웠을 거야.』 하고 차탄의 소리를 거듭하였다.
松茸接神
어떤 청상과부가 여종 하나를 데리고 있었는데, 여종 역시 남편을 여의고 가긍(可矜)하게 되었다. 어느날 과부는 여종에게 이르기를, 『넌 천한 몸이어늘 어찌 개가(改嫁)를 하지 않나?』 하였을 제 여종은, 『아씨께서 홀로 계시는데, 제가 어찌 사내를 얻어 홀로 즐길 수 있으리까. 이 몸은 죽도록 다시금 시집을 가지 않으렵니다.』 하고 맹세를 하는 것이었다. 과부는 그의 곧은 절개를 기특히 여겼었다. 때는 마침 중추의 가절이었다. 동네에 송이(松茸)장수가 지나치기에 과부는 여종으로 하여금 그 중 특히 길고 커다란 놈 서너개를 골라 잡아 갖고 오도록 했다. 그들 둘이 서로 송이의 생김새를 살펴보니 흡사 그 물건과 꼴이 같은 것이었다. 과부는, 『이야말로 커다란 송이의 값의 다과를 묻지 말고 모두를 사 갖고 오려무나.』 하는 것이었다. 여종은 곧 사 갖고 들어오자 춘정을 금하지 못한 채 피차 둘이 그것으로 놀음을 시작하여 마치 남녀간의 행사처럼 하고 보니, 그 흥취가 극히 아름다왔다. 곧 그놈을 시렁 위에 얹어 놓고 이름을 <덕거동(德巨動)>이라 불러 조금 한가한 짬이 생기면 둘이 서로 음농(淫弄)을 하곤 하였다. 이때 체 장수가 바깥에서 체를 고치고 있을 제 과부는 또 <덕거동>을 불러 내어 음농을 시작하였다. 체 장수가 일을 끝낸 뒤에 여종이 오래도록 나오지 않기에 스스로 생각하기를, 『안에서 아까 <덕거동>을 부르는 것으로 보아서 이는 필시 아이의 이름일 것이야.』 하고는 곧, 『덕거동아, 빨리 나오지 않느냐!』 하고 크게 고함을 쳤었다. 말이 끝나기 전에 어떤 물건 하나가 돌출하여 체 장수를 때려 누이고는 줄곧 그의 북도(北道)를 찌르는 것이 아닌가. 체 장수는 그 아픔을 이기지 못하여 크게 놀라 체 고친 값도 추심(推尋)하기 전에 몸만 빠뜨려 도주를 하였다. 그 뒤 어느날 그는 동료 체 장수를 만나서 그 이야기를 했다. 그 동료는 그의 말을 믿지 않고, 『자네, 그 말이 허망하이. 세상에 어찌 그럴 이치가 있나?』 하고 믿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자네, 만일에 내 말을 믿지 않거든 곧 그 집을 찾아서 앞날 체 고친 값을 받아 쓰더라도 난 조금도 불평을 하지 않을 테야.』 하고 소리치는 것이었다. 그 친구는 곧 그 과부의 집을 찾아서 곧 <덕거동>을 불렀더니 말이 끝나지 못해서 별안간 한 물건이 돌출하여 그를 때려 누이고는 방망이처럼 생긴 물건이 줄곧 그의 북도를 찌르는 것이었다. 그는, 『사람 살려 다오.』 라고 고함을 치는 것이었다. 체 장수가 멀리 서서 그 꼴을 바라보다가 비웃는 어조로, 『만일에 그다지 모질고 독하지 않다면 어찌 가벼이 체 고친 값을 네게 양보하겠다고 했을꼬?』 하고는 돌아보지도 않은 채 줄행랑을 쳤다.
因病奸婢
어떤 재상의 처가집에 어린 여종이 있었다. 이름은 향월(向月)이요, 나이는 一八세에 제법 자색을 지녔다. 재상은 늘 향월을 사랑해 보려 하였으나 기회를 얻지 못하였었다. 때마침 향월이 초학(草 )에 걸려 고생을 하는 중이었다. 그때 재상의 벼슬은 내국의 제조(提調)였다. 하루는 그의 장모가 사위인 재상에게 청하기를, 『우리 향월이 학질로써 이다지 고생하는데 내국에는 반드시 좋은 약이 있을 것이니 한번 약을 구해서 치료해 주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기에 그는, 『그럼 어느날 어느 때 그 병이 더 심해지는지요?』 하고 묻자 장모는, 『바로 내일이라네.』 하고 대답하니 그 재상은, 『그럼, 내일 공무를 끝낸 뒤에 좋은 약을 갖고 나올테니, 뒷동산 깊숙한 곳에 커다란 병풍을 둘러 자리를 만드십시오. 그리고 그 안에 향월을 눕히고 다른 사람들은 함부로 출입을 하지 못하게 하면 제가 곧 치료해 드리리다.』 하는 것이었다. 장모는 곧 그의 말과 같이 준비하였다. 그 이튿날 재상이 뒷동산 속으로 들어가 불문곡직하고 향월을 껴안았다. 향월이 크게 두려워하여 땀이 흘러 등을 적시는 것이다. 재상은, 『학질이란 몹쓸 병인만큼 이렇게 가혹히 다루지 않는다면 결코 고치기 어려운 법이니라.』 하고 거듭 일을 치르려 할 때 향월은, 『만일 부인께서 이 일을 아신다면 반드시 제게 벌을 내릴 것이니, 전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하는 것이다. 그는, 『그렇지 않아. 이 일은 부인이 시킨 일이니라.』 하고 일을 다시금 시작하여 흥이 무르녹아지자 향월은 재상의 허리를 부둥켜 안으면서, 『이젠 부인께서 알고 죽인다 하여도 아무런 원한이 없소이다.』 하여 학질이 모르는 사이에 나은 줄을 깨닫지 못했다. 그 후 그의 장모가 역시 학질을 만나서 사위로 하여금 치료를 하게 했더니 사위는, 『이건 장인 영감이 아니고선 결코 치료하지 못한답니다.』 하고 웃음을 머금었다.
嘲婦翁
어떤 집안에 벌어진 일이다. 장인과 사위가 위아랫방을 쓰고 있었다. 어느날 밤, 장인이 그의 아내와 함께 그 일을 시작하여 흥미가 바야흐로 짙어지게 되자 장인이 장모에게 하는 말이, 『난, 두 귀가 완전히 막힌 듯이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소그려.』 하자 장모는, 『난, 온 사지가 풀어지는 것 같군요.』 하는 것이다. 두 노인이 일을 끝내고 장모가 말하기를, 『우리들이 말한 것을 사위가 반드시 들었을 것인데 밖으로 새나가지 않도록 경계하는 것이 옳지 않겠소.』 하고 헌책(獻策)을 했다. 그 이튿날 장인이 사위더러 타이르기를, 『세속 사람들이 해학(諧謔)을 즐기는 모양이나 그대는 아예 그러지 않기를 바라네.』 하자 사위는 서슴지 않고, 『전 절대로 그런 것은 모릅니다. 남의 과실을 들으며 두 귀는 막힌 듯이, 사지는 풀어지는듯 하답니다.』 하는 것이 아닌가. 장인은 어이가 없어 다시는 말을 계속하지 못하였다.
自願稗將
그전에 어떤 사람이 언제나 집안에 들어박혀 있으면서 아무것도 하는 것 업이 술밥만 채우니 가계가 날로 곤궁하여졌다. 그 부인은 참다 못해 그 남편더러 말하였다. 『아 여보 옛날 말에 이르기를 남자는 동물이라. 동하면 득도 보고 해도 본다는데 당신은 밤낮 안방에만 들어박혀 있으니 참 딱도 하우. 첩이 듣기에 가까운 곳에 김판서 집이 있는데 그 집은 세도집이라 하니 한번 찾아가서 뵙고 그 문하로라도 들어가는 것이 어떠하우.』 부인은 그렇게 하라고 밤낮으로 졸랐다. 남자는 하는 수 없이 부인이 내어주는 옷으로 깔끔히 차려 입고 집을 나섰다. 집을 나오기는 하였으나. 아무도 주선해주는 사람도 없이 김판서 집엘 가기는 쑥스러웠고, 설사 가본들 요즈음 세상이 어떤 세상이라고 문하에 들어갔다고 하여 쉬 벼슬자리를 하나 내주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계집의 옅은 소견에 지나지 않거니와 쓸데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하여 집엘 돌아가면 또 계집이 들볶을 것이 아닌가. 다른 곳에라도 놀다가 해진 후에 돌아가서 김판서 집에서 놀다가 왔다고 하면 제가 어찌 알겠는가. 남자는 발걸음이 내키는 대로 걸어가니 약국이 하나 있는데 몇 사람이 모여 한가히 장기를 두며 놀고 있었다. 남자는 거기에 들어가서 주인을 찾아 인사를 하고, 『내가 놀 곳이 없어 심심하여 못 견디던 차에 어느 사람이 말하기를 이곳에 가면 주인장이 손대접을 잘한다기에 찾아왔으니 다음부터 소일코자 하온즉, 특히 허락해 주십소서.』 주인도 별로 하는 일이 없고 같이 소일할 사람이 없던 차에 그 사람을 보니 차림도 깨끗하고 상냥해 보이므로 쾌히 승낙하였다. 그곳에서 종일토록 한담을 바꾸면서 놀다가 해가 진 후에야 집으로 돌아갔다. 밤에 그 처가 그날의 상황을 물으므로 남자는 거짓말로 얘기했다. 『그대 말과 같이 김판서 대감을 찾아가 뵌즉, 한번 보시고 매우 반가이 하면서 전자무리보다 훨씬 좋다고 기쁨을 감추지 못하면서 사랑하기 비길 데 없더니 대감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평안감사로 나갈 때는 비장으로 데려가주마 하시니 그 후대가 이렇소.』 하니 그 처는 희색이 만면하여 그 후로부터는 자기 치마는 제대로 입지 못할망정 남자의 의복과 갓망근은 더욱 선명히 하여 주었다. 그러나 남자는 한결같이 김판서 집에는 가질 않고 약국집에서 소일하고 돌아오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수년 동안 계속하여 오는 터이라, 김판서 대문이 어느 곳 어디에 어떻게 생겼는지조차도 몰랐다. 하루는 그 처가 집에 있으니 이웃에 사는 표모(漂母)가 우연히 놀러왔다. 『요사이 살기가 어떠한가?』 하고 물으니 노파가 기뻐하면서, 『우리집 아이가 김판서댁 대솔(帶率)로 있더니 이제 대감이 평안감사로 승차하시니 그 애도 소망이 있어 보입니다.』 하였다. 그 말을 들은 처는 놀라면서, 『아니 김판서라니 아무 골에 사는 함자가 아무 자이고 연세는 예순이나 되었을까 하는 그 어른 말인가?』 『네, 네, 그럼요. 낭자가 어찌 그렇게 잘 아시나이까?』 『내가 어찌 그 어른을 모른단 말인가. 나으리가 익히 아는 양반이신데.』 처는 이제야 행운이 왔나 보다 하고 기뻐하였다. 그날밤 남자가 집에 돌아오자 치하하여 이르기를, 『대감이 이제 평안감사가 되었으니 당신도 또한 비장이 아니오.』 남자는 전혀 알지 못하는 일이라 어물어물 대답하였다. 『그대 말과 같이 되었소.』 처는 더욱 기뻐하면서, 『그럼 치행은 각자가 부담하여야 하우?』 『그럼요, 그 여러 사람의 치행을 대감이 다 당할 수 있겠어요? 기일이 촉박한데 무엇으로 당하겠소. 큰일났군요.』 남자는 내심, <설마 그 치행은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좋은 피할 구실이 생기지 않은가.> 생각하고 있은즉 처는, 『당신은 아무 걱정 마오, 친정집이 비장으로 수년 있었으니 거기 가서 의복을 얻어오리라.』 남자는 더 얘기하기가 싫었다. 며칠 후 처가 또 물었다. 『사또께서 어느날 부임하시우?』 『아직 택일하지 않았소.』 그로부터 남자는 밥이 제대로 목에 넘어가질 않고 잠도 제대로 이루질 못하였다. 어떻게 하면 이 난관을 면할 수 있을까 밤낮 생각하였다. 그리고 다음날부터는 수년 동안 드나들던 약국집에도 나가지 않고 김판서 집을 수탐하여 알고는 매일같이 김판서 집 근처에서 방황하면서 김판서의 동향을 살피기 시작하였다. 며칠 후 처는 또 물었다. 『부임할 택일이 되었우?』 『모레 떠난다우.』 남자는 퉁명하게 내어 뱉었다. 그러나 처는 일어서더니 시렁 위에서 상자를 하나 내려놓고 그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는 그 안에 있는 보로 쌓인 것을 내어 보를 풀었다. 거기에는 비장으로써 필요한 일체의 것이 갖추어져 있었다. 남자는 감사가 출발하는 날 일찍 일어나 비장옷을 차려 입고 대감댁으로 총총히 달려갔다. 가본즉 아직 날도 미처 새지 않았는데 문객이며 사령들 그외의 배속역졸들이 흥성대고 있었고 말도 많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 중의 역졸 하나가 말을 몰고 앞으로 나와서 말하였다. 『이 말은 성질이 순하오니 나으리가 타옵소서.』 남자는 그 말을 받아 타고 앞서가기 시작하였다. 흥재원에 이르러 쉬고 있으니까 감사 일행이 도착하였으므로 다시 출발하여 앞서가면서 말하기를, 『나는 전도비장(前導裨將)이다.』 하였다. 고양(高揚)에 이르니 해가 졌다. 그리고 감사일행도 밀어닥쳐 부득이 함께 자게 되었다. 숙소에 불을 밝히고 여덟 비장이 감사에게 입시하니 그때 남자도 섞여 있었으므로 감사는 처음 보는 사람이라 이상히 여기면서 다른 비장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이 사람은 누구인가?』 여러 비장들도 서로 돌아보면서, 『모르옵니다.』 하였다. 감사는 묵묵히 얼굴을 붉히고 앉아 있는 그 남자를 보고 다시 물었다. 『그대는 어느 대감의 청촉으로 왔는가?』 남자는 머뭇머뭇하더니, 『소인은 청촉비장이 아니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인고?』 남자는 무릎을 꿇며 떠듬떠듬 말하였다. 『소인은 명색 자원비장이옵니다.』 감사는 아무 말없이 그 남자를 바라보고 있더니 이윽고 다시 물었다. 『자원비장이라, 그럼 바라는 바는 무엇인고?』 『사또를 따라갈 뿐이오. 별다른 욕망은 없나이다.』 감사는, <그가 스스로 따라 왔고, 나에게 아무 해도 없는 바이니 그대로 두어보자.> 생각하고 그 남자에게 일렀다. 『그대의 정성이 갸륵하니 내 좌우에 따라 오도록 하라.』 그 남자는 하늘에라도 오를 듯이 좋아하면서 물러나왔다. 이로부터 모두가 그 남자를 부르기를 <자원비장>이라 하였다. 평양감영에 이르러 아침 저녁으로 비장들이 감사에게 문안할 때도 역시 한데 끼어 들어왔으나, 감사는 별로 물을 것이 없으므로 갑자기 싫어졌다. 하루는 자원비장을 불러 말하였다. 『그대는 본시 자원비장으로서 아무 일도 맡아 보는 것이 없고, 소임도 없으니, 어찌 괴로움을 참아가면서 문안드리러 올 것이 있는가? 지금 대동감관(大同監官)이 비어 있고 매년 먹는 바가 거의 五○금(金)에 이르므로 특히 차정하니, 이후부터 그대를 부르기 전에는 들어오지 않아도 좋으리라.』 자원비장이 그 명을 받들고 나온 후로 동원(東園) 뒤에 있는 적은 방에 들어박혀 있으면서 언감생심 출입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럭저럭 감사의 임기가 다 끝나가서 서너 달밖에 남지 않았을 즈음 이방(吏房)을 시켜 하기(下記-금전출납부)를 가져오게 하여 본즉, 가하(加下-예산초과)가 三만금인데 환하(還下-국고에서 도로 내어주는 것)없으므로 심중으로 몹시 고민하였으나,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하루는 한가히 앉아 이궁리 저궁리 하다가 갑자기 자원비장이 생각났다. <그때 쫓아 버리고 三년토록 한 본도 부른 일이 없고 또 아중(衙中)의 상하가 모두 업신여긴 터라 곤궁하였을 것은 당연하리라. 이러한 적악(積惡)의 소치로 그렇게 되었은즉 짊어진 가하가 비록 三, 四만이라 할지라도 또한 알 수 없는 일이다.> 비로소 자원비장을 불렀다. 자원비장이 명을 받고 들어온즉, 감사는 위로하였다. 『한번 보낸 후 三년이나 되도록 공무에 사로잡혀 한번도 불러보지 못하였구나. 그대의 소득이 불과 五○금인데 그대의 고생은 말할 수 없을 것인즉, 나의 허물이 적지 않구나. 그대는 그 사정 잘 짐작하고 용서하라.』 비장은 두 손을 모아 잡고, 『황송하옵니다.』 이어, 『뵈온즉 사또의 얼굴빛이 초췌하시니, 무슨 걱정이라도 있사옵니까?』 감사는 양미간을 찌푸리면서 말하였다. 『가히 三만냥을 갚을 길이 없으므로 밤낮 이렇게 고민하는 중이로세.』 『그러하오면 어찌 비장들과 상의하지 아니하옵니까?』 『비장들이 각기 자기 일에 바쁘니 어느 여가에 감사의 가하일을 돌보겠는가?』 『사또께서는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나이까? 비장의 소임은 사또를 도와 마땅히 꾀하여야 하므로 옛말에도 잊지 않사옵니까? 그 임금이 근심하면 신하는 죽는다고, 그렇지 않을지면 허수아비 비장보다 나을 것이 무엇이옵니까? 소인에게 한 꾀가 있어 사또의 걱정을 나눌까 하나이다.』 감사는 대단히 기뻐하면서 곧 물었다. 『어떤 꾀인고?』 『사또께서 만일 칙고전(勅庫錢-국고금) 三만 냥을 주시오면 좋은 꾀가 있을까 하나이다.』 감사는 그 말을 따라 출급(出給)하였으나 마음속으로, <자원비장이 본시부터 아는 사람이 아니니 중한 칙고를 헐어 주었다가 만약 뜻밖의 불칙한 일이 생기면 그 어찌 화상첨유(火上添油)가 되고 말지 않겠는가?> 생각하였으나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자원비장은 전주(全州) 어음을 하여 가지고 여러 비장과 이별한 후 담양(潭陽)을 가시 대를 샀다. 그리고는 배에 싣고 평양으로 오니 그 동안이 거의 한 달이나 걸렸다. 감사는 눈이 빠지도록 오늘이나 내일이나 기다리니 하루는 자원비장이 들어와 감사에 뵈었다. 감사는 반가와 못 견디면서 말하였다. 『그대는 어찌 그리 늦었는가? 내 간장이 다 끊어져 버릴 뻔하였구나.』 『이제 사또께서는 아무 걱정 마옵소서. 그리고 내일은 특히 분부를 내리시어 연광정(연光亭)에 잔치를 베푸시고 각 읍 수령을 부르시어 이러이러 하시면 꾀는 그 속에 있나이다.』 사또는 대단히 기뻐하고 다음날 곧 각 읍 수령을 연광정에 청하고 잔치를 하였다. 술이 몇 순배 돌아가고 취흥이 도도하여졌을 때 감사는 갑자기 말하였다. 『평양은 본시 가아면 고을이요, 또한 올해는 풍년이 들었으니 민간에 영을 내려 집집마다 죽룡(竹龍)에 불을 켜고 태평성대를 축하하되, 그대들은 본읍에서 반령한 후 그에 따라 각영(各營)에서는 본보기를 삼아라.』
여러 수령들은 그 명을 받들고 각기 돌아갔다. 영이 한번 내리자 성내 성밖 할 것 없이 백성들은 모두가 기뻐하며 칭송하였으나, 평안도는 대나무가 가는 데가 모두 적고 굽어서 등롱감이 되지 않았다. 대를 구하느라고 너도 나도 돌아다녔으나, 뜻같이 구하지 못하고 있던 차에 푸른 대를 실은 배를 본 사람들은 모두 <하늘이 내리신 대다>하고 서로 다투어 대를 사가지고 가는데 값의 대소를 묻지 않고 다만, 『천행으로 대를 구했다.』 라고들 하므로 어언간에 三만냥 본전에다가 거의 一○만냥이 되었다. 사또는 그런 줄은 모르고 칙고전을 준 후에 돈에 대한 아무 소식이 없으므로 근심 위에 의심이 더 하였다. 하루는 자원비장이 들어오더니 대를 사가지고 온 것과 三배의 이익을 얻은 것 등을 자세히 얘기하고 칙고전과 가하금을 갚은 증서와 七만냥 어음을 내어 놓았다. 감사는 크게 기뻐하면서, 『그대의 신기(神機) 묘산(妙算)은 옛사람도 미칠 바가 못되는구나.』 하면서 칭찬하여 마지않았다. 자원비장은 또한 말하였다. 『남은 돈 七만냥은 본댁으로 보낼까 하나이다.』 한즉 감사는 펄쩍 뛰었다. 『이 무슨 말인고? 그대의 꾀로 내 빚을 갚았으니, 그 은혜도 갚기 어렵거늘 거기에다 남은 돈이라니 말도 아닐세. 다시 여러 말 말고 자네나 쓰게.』 자원비장은 재삼 굳이 사양하고 마침내는 똑같이 나누기로 하였다. 이어, 『소인은 먼저 돈을 가지고 가겠사오며, 남은 일은 서울 가서 말씀드리겠나이다.』 하니, 감사도 승낙하고 자원비장을 먼저 상경케 하였다. 감사가 서울에 돌아와 본즉, 七만냥 돈은 모두 자기집에 와 있고 몇 날 며칠을 두고 자원비장 오기를 기다렸으나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그 후부터 감사는 사람을 만나면 의례히 물어보았으나 아는 사람이 없었다. 몇 해 후 감사는 적은 일로 계소(啓疏)를 만나 왕의 노여움을 샀다. 그의 관직이 삭탈되고 문 밖으로 추방되었다. 갑자기 당하는 일이라 어찌하지 못하고 문 밖의 안면있는 하인집에 가서 머물렀다. 그런 중에도 감사는 항상 자원비장을 잊지 않고 있더니 하루는 낯선 선비 한 사람이 들어와 인사를 하였다. 대감은 인사를 받으며 이상히 여겨 물었다. 『안면은 있소마는 댁은 뉘시오?』 『소인이 곧 자원비장이온데 오래도록 문안드리지 못하와 황송하기 그지없나이다.』 대감은 깜짝 놀랐다. 『아니 이 사람아! 어찌 그리 무정한가? 자네를 보낸 후 그리는 마음을 스스로 억제하지 못하고 밤낮 만나기를 원하였더니 천도가 무심칠 않아 드디어 만나게 되었구나.』 하며 반가움을 숨기지 못하였다. 『많은 일에 얽매여 몸을 빼내지 못하와 이제와 겨우 틈을 얻게 되었사옵니다.』 『내가 쫓겨나 여기와 있으매, 아는 사람 하나 없더니 그대가 이제 왔구나.』 『대감은 여기에 계시지 마시고 소인과 함께 소인의 처소로 가심이 어떠하시오니까?』 『그대 말이 좋기는 하나 다만 목하에 치행할 돈이 없으니 어찌하는가?』 『그걸랑 염려마시고 내일 소인이 인마를 주선하여 오겠사오니 청하옵건대 대감께서는 내행과 함께 가사이다.』 앞일은 알지 못하였으나 자원비장이 하자는 일이라 틀림이 있겠는가. 생각한 대감은 그가 하자는 대로 하였다. 이튿날 아침에 비장은 말과 수레를 준비하여 가지고 와서 대감과 그 내행을 태워가지고 길을 떠났다. 어디로 가는 것인지 몰라 시종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으나 역시 몰랐다. 그러나 가는 곳마다 인마가 준비되어 바꾸어 타고 갈 수가 있었다. 며칠을 그와 같이 가다가 한 곳에 이르니, 험한 산이 앞을 가로 막았다. 그곳에 이르러 비장은 타고 온 인마를 모두 보내고, 『이곳은 말도 없고 수레도 없사온즉 대감께서는 내행과 함께 부득이 걸으셔야 합니다.』 대감 일행은 비장이 하자는 대로 비장을 따라 산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얼마 아니 가서 차츰 숨은 차고 다리가 아프며 발은 부르터서 자욱마다 죽을 힘을 다하여 천신만고 끝에 산을 너댓 개 넘었다. 이제는 더 가지 못하고 대감은 대감대로 내행은 내행대로 길가에 나가 떨어져 신음하면서 촌보를 옮기지 못하였다. 다시 얼마를 더 걸어가니 무수한 마차가 와 맞이하였다. 비장은 일행을 수레와 말에 태워가지고 다시 갔다. 한 곳에 이르니, 골은 깊고 산은 높은데 큼직한 마을이 있고 고래등 같은 집들이 즐비하여 모두가 극히 풍성해 보였다. 대감은 놀라며 비장에게 물었다. 『종일 와도 사람 하나 못 보겠더니, 저 마을은 어디기에 저렇게 굉장한가?』 『이제 가서 보시옵소서』 어느 사이에 그곳에 이르러 본즉, 마을 한가운데 유독히 큼직한 고루거각이 있느데 모습은 서울의 재상의 집들에 손색이 없었다. 그 집옆에도 또한 그런 집이 있었다. 그들 집에 들어가니 우마·노비가 넉넉하고 겉뿐만 아니라 내면도 윤택하였다. 대감은 이상히 여기면서, 『이 집의 주인은 누구인가?』 비장에게 물었다. 비장은 곧 대감 일행을 그 집으로 모시고 그가 이 마을 개척하였다는 것과 거기 따른 여러 가지의 재미나는 얘기를 하고 이어 이 마을은 안심하고 피난할 만한 곳이니, 이 집은 대감님이 쓰라고 하였다. 대감은 꿈꾸다가 깨어나 사람 모양 놀라며 비장의 손을 잡고, 『이것은 다 그대가 준 것이니 형제인들 이보다 더 하겠는가? 우리가 오늘부터 의형제를 맺고 지냄이 어떤가?』 이로부터 비장과는 의형제가 되어 아무 일없이 편안히 지냈다. 어느날 비장이 대감에게, 『오늘은 날씨가 청명하니, 높은 곳에 올라가 울화를 푸심이 어떠하시오니까?』 대감도 오래도록 아무 하는 일 없이 적적하던 터라 대단히 기뻐하고 함께 뒷산으로 쉬어쉬엄 올라갔다. 한낮이 겨워서 산정에 올라가니, 사방이 확 트여 전망이 장관이었다. 대감은 정신없이 전망에 사로잡혀 있는데, 비장이 멀리 보이는 산을 가리키면서 먼저 말하였다. 『대감은 저 산을 아시니이까?』 『모르겠는걸』 『그러면 그 옆에 검은 연기가 하늘을 가리었는데 그것은 보이시오니까』 『흡사 검은 안개가 끼어 해가 진 것 같구먼』 『세 산이 높게 솟은 것을 삼각산이옵고, 연기가 자욱한 곳이 서울이옵니다. 지금 왜놈들이 쳐들어 와서 팔도가 크게 어지러운 것 같은데 저것은 병진이옵니다.』 대감은 그 말을 듣고 놀랐다. 『그러면 어찌 여기는 무사하단 말인가?』 『여기는 지명이 삼척이온데 퇴계 선생이 계셨던 곳이옵니다. 당초에 왜놈들이 노략질할 양으로 평의(平義)란 밀정을 몰래 보냈는데 퇴계 선생이 그 놈을 잡아서 죽이려고 하셨더랍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시고 그놈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한 놈을 죽이더라도 조선의 八년 영화를 면할 수 없어 그런 것이 아님을 알아라.〉그러므로 왜장이 발병에 앞서 부하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들이 삼척을 범하면 반드시 예측하지 못할 우환을 당할 것이니, 특히 명심하라〉고 하셨다 하므로, 이곳은 피난할 만한 곳이온데 아무도 모르옵니다.』 대감은 그의 달견에 더욱 놀랐다. 그리고 임진왜란 八년 동안을 무사히 지내고 평란 후에야 두 집은 서울로 올라와서 벼슬살이를 하였는데 한 집은 백병사(白兵使)의 조상이니 곧 자원비장이고 한 집은 연동(淵洞)이씨 집이라고 한다.
忠婢全生
임진왜란때 얘기다. 어느 집에 三대가 같이 살다가 그 난리를 당하니 자손들이나 노비가 늙은 노인을 돌보지도 않고 각자가 제 살 길을 찾아서 뿔뿔이 도망가고 한 사람도 남지 않았다. 노옹(老翁)이 혼자 있으매 비록 염장과 쌀이 있으나, 손수 밥을 지어먹지 못하니 굶어 죽을 길밖에 별도리가 없는 것이었다. 자손들도 그런 것쯤 뻔히 알면서 그런 짓을 하였으니, 늙은 것은 죽으란 말과 같다. 노옹은 세상 인심을 탓하고 앉아 있으니, 계집종 하나가 돌아왔다. 노옹은 놀라며 반가운 낯으로 맞이하여 물었다. 『너는 어찌 피난 가지 않고 돌아왔느냐?』 계집종은 울면서 아뢰었다. 『소비(小婢)는 주인마님의 덕을 입사옴이 태산 같고 바다 같사온데 비록 도망가서 생을 도모할지라도 어찌 주인마님이 굶어 세상을 떠나심을 참을 수 있사오니까? 그러므로 돌아와서 제가 모시고 같이 죽어 주인마님의 덕을 갚을까 하나이다.』 노인은 그 말을 듣고 기뻐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야! 기특하고 착하구나! 너는 반드시 한평생 잘 살겠구나. 그리고 얘야, 네 방에 들어가 벼루와 붓을 가져오너라.』 계집종은 이상히 여기면서 방에 들어가 벼루를 가지고 와서 놓은즉, 노옹은 주머니속에 주사(朱砂)를 내더니 벼루에 갈았다. 그리고 주사를 붓에 묻히더니 종이에다 벌겋게 부(符)를 하나 그리었다. 옆에서 보고 있는 계집종을 돌아 보면서 일렀다. 『네 이것을 대문 위에다 갖다 붙이고 오너라.』 계집종은 영문도 모르고 노옹이 시키는 대로 갖다 붙이고 돌아왔다. 노옹은 계집종을 보면서, 『네 난리를 구경하고 싶은가?』 『예 보고 싶습니다.』 『그럼 저 대문 안에 구경할 것이지 절대로 밖에 나가지 말아라.』 『지금이 어디 난리오니까? 아직 왜병이 아니 온걸요?』 『응 그래도 보고 싶거던 한번 가보려무나』 종년은 더욱 의심이 나고 호기심에 끌려 아무 생각없이 대문으로 나가 보았다. 이 어쩐 일인가? 고요하다고 생각한 집 앞에는 무수한 왜병들이 떼를 지어가고 먼지가 자욱히 끼어 있는데 햇볕에 창칼들이 번쩍번쩍 비치고 여기저기서 아우성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왜병들은 보이지 않는지 그저 그 앞을 지나가고 지나올 뿐 그 집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계집종은 호기심이 더욱 부쩍 동하여서 좀더 가까이 가서 얘기서만 듣던 왜놈이 어떻게 생겼는지 건지 보고싶었다. 계집종은 부지불식중 대문 밖으로 나왔다. 이 또 웬 일인가? 대문 밖엔 만경창파(萬頃蒼波)가 바람따라 구비쳐 꿈틀거리며, 산더미 같은 파도가 곧 삼킬 듯이 밀려오지 않는가? 계집종은 허겁지겁 고함을 지르며 살려달라고 했다. 그 소리를 들은 노옹은 작지를 끌면서 나와 계집종을 부축하여 끌어들이며 말하였다. 『대문밖에는 나기지 말라고 했는데 무엇하러 나갔어?』 계집종은 울면서 말하였다. 『주인마님이 이런 기술(奇術)을 아시면서 어찌 작은주인나으리와 가족들과 함께 계시지 않나이까?』 『그것들은 다 횡사할 무리들이니, 마음이 부량하여 제 살 것만 꾀할 뿐 늙은이는 굶어 죽는 것도 생각않으니 어찌 사람의 자식이라 하겠는가? 그러므로 내어 버리고 구하지 않는 것이니, 무릇 사람은 마음이 선량하면 반드시 하늘이 도울지니 너는 이후로 나쁜 짓을 하여 스스로 상하지 말라.』 하더라.
- 야담 기문을 새로 띄웁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