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인음악의 미의식

이 논문은 지난 5월 19일 한국예술미학회 주최의 홍익대학교에서 발표한 논문입니다. 조선조 중인음악의 미의식 전 인 평(중앙대 음대 교수) Ⅰ. 머리말 Ⅱ. 중인과 중인음악 1. 중인음악시대의 시대 상황 2. 중인의 개념 3. 중인음악 Ⅲ. 증인음악의 두 가지 미의식 1. 중인음악의 예악사상적 미의식 2. 중인음악의 신명사상적 미의식 Ⅳ. 맺음말 Ⅰ. 머리말 필자는 한국음악사 시대 나눔에서 1610년부터 1754년까지를 중인음악 부흥시대라고 분류한 바 있다. 1610년은 대표적 중인음악인 가곡 중심의 {양금신보}(梁琴新譜)를 편찬한 해이다. 1754년은 대표적 서민음악인 판소리 문헌인 {만화집}(晩華集)을 유진한(柳振韓)이 편찬한 해이다. '중인'이란 계급의 본격적 형성은 세습적인 중인 가문이 형성되기 시작한 17세기 초 이후의 일이다. 조선의 양반 사대부들은 도학(道學) 지상주의를 추구하는 정치를 펴 왔다. 그래서 양반 사대부는 정치 이념의 제공이나 정책 입안을 담당하고 실무는 중인 계급이 담당하였다. 즉, 기술직은 좁은 의미의 중인층이 세습하고, 일선 행정은 아전을 가업으로 세습한 사람들이 맡은 것이다. 이 글은 조선조 양반과 서민의 중간 계층을 이루던 중인이 즐기던 영산회상에 나타난 두 가지 미의식을 살펴보는 것이 목적이다. Ⅱ. 중인과 중인음악 1. 중인 음악 시대의 시대 상황 17-18세기는 사상적으로 실학이 일어난 시기이고, 중인계급이 상당한 재력과 세력을 얻어 새로운 음악 향수층으로 떠 오른 시기이다. 17세기 이후 벼농사가 새로운 농사 방법이 널리 보급하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직접 볍씨를 심는 직파법을 써 왔는데, 이것을 개량하여 못자리를 하여 모를 기른 후 옮겨 심는 이앙법이 보급된 것이다. 이 새로운 이앙법이 보급되면서 생산량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이러한 이앙법의 보급은 개발은 수리 시설을 통하여 모내기 시절에 충분한 물을 공급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앙법은 당시 수리 시설이 어느 정도 구비되었기에 가능하였다. 이앙법은 비가와야 모내기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수리 시설이 없는 상태에서 비가 오지 않으면 모내기를 못하면 완전히 일년 농사를 망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적극 장려하지 못하던 형편이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피폐한 농촌 사회는 복구에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18세기 후반, 정조(正祖)대에는 큰 강의 물을 관개수로 활용하려는 시도가 있었고, 수리 시설이 크게 확장되었다. 이앙법이 실시되면서 집약적인 경지 이용이 가능하게 되었다. 즉, 벼와 보리를 번갈아 심어 1년에 2번의 농사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일반 농민 사회가 크게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농경지의 집약적인 이용이 실시되고 생산량이 늘어나자, 자작농 가운데는 늘어난 경제력으로 신분을 양반으로 상승하는 부류도 적지 않게 나타났다. 또한 18세기에는 두레 조직이 나타났다. 이것은 서민층이 양반 관료층의 통제로부터의 이탈을 뜻하고, 대신 농민들이 스스로의 노동 조직을 새롭게 구성한 것이라 하겠다. 이 두레 조직이 생기자 농촌 사회는 경제 형편이 좋아지고, 노동의 효율성이 매우 높아졌다. 이 조직은 한편으로는 양반 상인의 신분제적 틀이 해체되는 바탕이 되었다. 왜냐하면, 이 두레 조직은 신분적인 특권이 거의 개입하지 못함으로 양반 중심 사회의 종말을 예고하는 것이어서 농업 기술 자체의 발달에 못지 않게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이와같이 근대에 접어들면서 벼 이앙법의 개발로 농사 소출이 늘어났고, 자연스레 서민들도 음악을 즐길 만큼의 여유가 생긴 때이기도 하였다. 2. 중인의 개념 중인은 조선 후기에 이르러 생성된 양반과 서민의 중간 계층을 말한다. 좁은 의미의 중인은 의관(醫官)·역관(譯官) 등의 기술직을 의미하고, 넓은 의미의 중인은 첩의 자식인 서얼과 말단 행정 실무자인 경아전(京衙前)·외아전(外衙前) 등을 말한다. 이 중인층은 실무 일에 밝았기 때문에 조선조 후기에 이르러 사회 변동과 함께 상당한 재력을 쌓고 또한 신분적 상승도 따랐다. 특히 대동법(大同法)이 시행되면서, 상품 화폐 경제의 발달과 상공업의 발전은 이들에게 생활의 여유를 누리고 취미를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었다. 이들은 시회(詩會)와 악회(樂會)를 열어, 시를 지으며 음악을 즐겼다. 이들의 활동은 시와 음악뿐 아니라, 그림과 서예도 즐겼으며, 수준은 자못 높은 수준이었다. 이들은 지배 세력인 양반 사대부와 일반 평민의 사이에 자리하여, 높은 관직(官職)에 진출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지만, 일반 평민에 비하여는 사회 정치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었고, 또한 상당한 교양도 지니고 있었다. 3. 중인음악 가. 중인음악의 개념 중인음악이란 조선조 후기(17-19세기)에 새로운 신분 계층으로 형성된 "중인"이라는 신분을 가진 사람들이 만들어 내고 즐기던 음악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조선 후기 중인문화 창출의 주인공은 중인, 즉 기술직 중인을 포함하여 서얼, 서리 모두가 해당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인음악이란 '중인이라는 신분을 가진 집단이 만들어 내고 즐기던 음악'을 말한다. 줄풍류와 가곡·가사·시조를 중인음악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조선 후기에 새로운 신분 계층으로 형성한 중인에 의한 풍류 활동이 바로 줄풍류·가곡·가사·시조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음악은 다양한 변주곡을 낳았고, 조선 후기에 새로운 음악으로 자리잡았다. 이와같이 중인음악이란 가곡(歌曲)·가사(歌詞)·시조(時調)·현악영산회상·보허자 등을 말한다. 오늘날에는 흔히 영산회상·가곡을 '정악'이라고 부른다. 이 정악은 비직업 음악인이 음악을 즐기되 오락(娛樂)을 위한 목적보다는 마음을 정돈하는 정인심(正人心)의 의미가 강한 음악이었다. 영산회상은 원래 청중을 위한 음악이 아니고, 몇 사람이 모여 즐기기 위한 것이었다. 이와같은 형편은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 속편에 나오는 "음률이니 풍류니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라는 항목을 보면 알 수 있다. 음률과 풍류는 다 국어(國語)로 음악을 이르는 말이요, 줄풍류는 곧 현악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근세에 특정적으로 쓰는 음률·풍류·줄풍류라는 말은 다 현악기를 중심으로 한 일종의 실내악반(室內樂班)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보통 말의 풍류 또 줄풍류는 곧 거문고·가야고·양금·해금 등 현악기를 주체로 하고 거기에 장고·젓대(橫笛)·단소(尺八)를 반주 격으로 얹어서 동호자(同好者)끼리 조용히 '엔조이'하는 실내악입니다. 오늘날에는 흔히 정악(正樂)이라고 흔히 부르지만, 20세기초만 해도 정악이라는 말 대신 '음률'(音律)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1916년에 편찬한 {조선음율보}(朝鮮音律譜)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정악이라는 말은 음란한 음악(淫樂)의 반대말인 '정악'에서 나온 것인데, 이 용어는 1911년 발족한 조성정악전습소(朝鮮正樂傳習所)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나. 영산회상의 전개 양상 영상회상은 원래 석가여래가 설법(說法)하던 영산회(靈山會)의 불보살(佛菩薩), 즉 영산회상불보살(靈山會相佛菩薩)의 일곱자를 노래하던 불교음악이었다. 이것은 1759년에 간행한 {대악후보}(大樂後譜)의 영산회상에 앞의 7자 노랫말이 붙어있음으로 알 수 있다. 이와같이 불교음악이 점점 세속화하여 노랫말이 없어지고, 오늘날과 같은 관현악곡으로 발달한 것이다. {양금신보}(1610)에 의하면 영산회상은 오늘날과 달리 춤반주 음악이었다. 곧 영산회상은 삭대엽·여민락·보허자와 더불어 춤반주에 사용하였었다. 영산회상의 악곡을 담은 거문고 악보 가운데 {양금신보}보다 늦고 {신증금보}(1680)보다 빠른 악보로 {송씨이수삼산재본금보}(宋氏二水三山齎本琴譜, 1651?)와 {증보고금보}(增補古琴譜, 1610-36)가 있다. 1680년이라는 연대가 확실한 {신증금보}에는 영산회상이 노랫말이 없고, 거문고 악보로만 적혀 있어 17세기 후반에는 이미 기악곡으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18세기 전기에 이르러 영산회상은 차츰 변주곡을 낳기 시작하였다. 숙종과 영조 무렵에 명성을 떨치던 거문고의 명인 김성기(金聖器, 1654-1727)의 가락을 제자가 편집한 악보인 {어은보}(漁隱譜)에는 영산회상의 첫 번째 변주곡인 갑탄(甲彈)이 나온다. 이 영산회상 갑탄은 오늘날 중영산에 해당하는 곡으로 18세기 전기에 이미 영산회상의 변주곡이 출현하였음을 보이고 있다. 영조대의 악보로 보이는 {한금신보}(韓琴新譜)에는 영산회상 환입(還入)과 영산회상 제지(除指, 　락더리)라는 새로운 변주곡이 보인다. 정조(1776 - 1800) 말엽(18세기 후기)에 연주한 음악을 수록한 것으로 보이는 {유예지}(遊藝志)의 영산회상은 오늘날 영산회상 곡목과 더욱 가까워진다. 즉 {유예지}에는 영산회상·영산회상 이층제지(二層除指)·영산회상 삼층제지(三層除指)·삼현회입(三絃回入)·삼현회입 이장 머리(二章頭)·삼현회입 4장 끝(四章末)·염불타령(念佛打令)·육자염불(六字念佛)·타령·군악유입타령(軍樂流入打令)·우조타령(羽調打令)·군악타령(軍樂打令) 등의 곡으로 늘어났다. 19세기에 이르러 영산회상은 오늘날의 것과 거의 비슷하게 변화하였다. 이것은 {삼죽금보}(三竹琴譜, 1841)·{현금오음통론}(玄琴五音通論, 1886)·{학포금보}(學圃琴譜, 1919) 등으로 알 수 있다. {삼죽금보}의 영산회상은 본영산·중영산·세영산·가락환입·하현환입·염불·타령·군악과 권마성(勸馬聲)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렇게 하여 영산회상은 19세기 후반쯤, 현행 영산회상의 체제로 갖추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Ⅲ. 중인음악의 두 가지 미의식 1. 중인음악의 예악사상적 미의식 예악(禮樂) 사상에 관한 것은 중국의 {악기}(樂記)에서 볼 수 있다. {악기}는 는 예악과 사회의 관계를 윤리적으로 논하였다. 음악은 개인이 수양하고 백성과 국가로 이어지는 교화의 수단으로 생각하였다. 군자가 이르기를, 예(禮)와 악(樂) 두 가지는 잠시도 우리 몸에서 떠나게 할 수 없다. 음악을 철저하게 알아 마음을 다스리면 화이(和易)하고 정직하며 자애(慈愛), 순양(順諒)한 마음이 우연히 일어난다. 화이, 정직, 자애, 순양한 마음이 일어날 때에는 곧 마음이 화락해 진다. 마음이 화락해 지면 곧 신체가 편안하다. 신체가 편안하면 수명이 길고 수명이 길면 그 덕이 하늘과 같다. 덕이 하늘과 같으면 위엄이 귀신같다. 그 덕이 하늘같으면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믿고 귀신같은 즉 화내지 않아도 위엄이 있게 된다. 이것이 음악을 알아서 마음을 다스리는 효과이다. 다음은 {예기}(禮記)의 악기(樂記)에서 '여유있고 움직임이 온화한 음악을 권장하고, 속도가 빠르고 난잡한 음악을 음란한 음악이라' 하여 배척한 사상을 찾아 본 것이다. 金華邵氏曰: "惟君子知樂, 故審　殺之聲, 則知其爲志微　殺之音. 審　緩之聲, 則知其爲　諧慢易繁文簡節之音. 如此之類, 所謂審聲以知音也. 審寬裕肉好順成和動之音, 則知和樂興焉. 審流　邪散狄成滌蕩之音, 則知淫樂興焉. 若此之類, 所謂審音以知樂也. 審樂之和, 則知其政之和. 審樂之乖, 則知其政之乖. 若此之類, 所謂審樂以知政也." "吾能自知音以至於知政, 倫理貫通, 則於爲治音樂不敢缺一. 苟一有缺, 則聲與音, 音與樂, 必形見於此矣. 故不知聲, 不可與言音. 不知音, 不可與言樂. 苟能知樂, 則於禮爲幾. 蓋禮者理也, 樂通倫理, 故於禮爲幾. 論至於此, 則禮樂豈二理哉." 공자의 음악관은 {논어}(論語)에 나와 있다. 관저(關雎) 편에 "공자가 말하기를 관저(關雎)는 즐거워도 음하지 않으며(不淫) 슬퍼도 상하지 않는다(不傷)."라고 하였다. 이러한 사상은 {시경}(詩經)에도 나오고 우리나라의 {삼국사기}(三國史記)에도 나온다. {삼국사기}에는 음악의 지나치지 않음을 "즐거워도 흐르지 않고 슬퍼도 비통하지 않으니 바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불음과 불상은 무엇인가? 주자(朱子)는 집주(集注)에 설명하기를 "즐거워도 즐거우이 지나쳐 그 바른 바를 잃지 말아야 하고, 슬퍼도 슬픔이 지나쳐 화(和)에 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사상은 우리나라 문헌에도 나온다. {세종실록}(世宗實錄)의 기록과 1780년(정조 4년) 왕명으로 규장각에서 편찬한 {시악화성}(詩樂和聲)의 글을 보면, 음악은 성정(性情)을 바르게 기르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사상을 이성천(李成千)은 '중절'(中節)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리고 중절의 음악으로 영산회상의 상영산을 예로 들었다. 예악사상이란 음악은 마음을 바르게 가다듬고(正心) 정치를 바르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음악은 빨라서는 안되고(不淫), 간이(簡易)하고 단순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 음악의 전개 수법 가곡과 영산회상의 전개는 변주적 수법을 이용한 것이다. 즉, 가곡은 처음에 만대엽·중대엽·삭대엽이 있었는데, 이 중에 삭대엽만 남았다. 1724년 편찬의 {한금신보}를 보면, 삭대엽은 삭대엽1(현행의 우조 초삭대엽 해당)·삭대엽2(현행의 우조 두거 해당)·삭대엽3(현행의 우조 삼삭대엽 해당)·삭대엽4(현행의 우조 이삭대엽 해당)로 변주하고, 삭대엽3은 삼삭대엽·언롱·엽·우락·계락·편락·언락·편수대엽으로 변주하였다. 편수대엽은 언편·편수대엽·태평가로 변주하였다. 영산회상은 처음에는 영산회상 한 곡이었는데, 지금은 9곡의 변주곡으로 발전하였다. 그러면 왜 이처럼 새로운 선율을 만들지 않고, 변주곡을 많이 만들었을까? 결코 우리 조상들이 창의성이 없어서 새로운 선율을 만들지 못한 것이 아닐 것이다. 이것을 필자는 유교 사상에서 기원한 것으로 본다. 그 근거는 {예기}(禮記)에서 볼 수 있다. {예기}는 유교 경전 중 오경(五經)의 하나로 일컬어진다. 진(秦)나라 이전에는 육경(六經)이라 하여 {악경}(樂經)을 포함하였으나 진 시왕의 분서갱유 이후에 없어지고 오경만 남았다. 한대(漢代)에 편찬한 {예기}에는 49편의 목록이 있는데, 이 중에서 제19편이 {악기}에 해당한다. 이러한 {예기}의 악기가 그 옛날의 {악경}의 일부일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므로 {악기}의 음악사상을 통하여 고대 유학의 음악관을 살펴 볼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예기}에 의하면,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을 성자(聖者)라하고, 보통 사람은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다음에 {예기}(禮記) 악기(樂記)의 원문을 소개하겠다. 故知禮樂之情者能作識禮樂之文者能述作者之胃聖述者之胃明明聖者述作之胃也 이 말을 살펴보면, 성인만이 새로운 것을 창작할 수 있고, 사리를 잘 아는 밝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설명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학자들이 공자의 사상을 설명하는 일에 열중한 것은 이러한 생각에서 비롯한 것이다. 더구나 공자도 술이부작(述而不作)이라 하여 새로운 것을 창작하지 않았다. 하물며 범인들이야 새로운 것을 만들 생각을 애초부터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음악가가 같은 선율만 계속해서 연주한다는 일은 지루한 일이다. 그러나 새로운 선율을 만드는 것을 금기시 하였다. 이 경우 창의력이 있는 음악가는 새로운 것을 만들지 않고, 같은 선율만을 연주하는 일은 괴로운 일이다. 그렇다면 할 수 있는 가능성은 무엇인가? 변주곡을 만드는 일 이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우리나라 음악사를 보면, 고려시대만 해도 많은 곡목이 있었음을 {시용향악보}나 {대악후보}를 통하여 알 수 있다. 그러다가 조선조에 들어오면서 유학이 정치 이념으로 심화되면서, 새로운 선율의 창제를 삼가 왔다. 세종도 수많은 곡을 새롭게 지었지만, 선율까지 새롭게 만든 것은 아니고 선율은 고려시대의 음악을 이용하고, 노랫말만 새로 지었다. 이러한 현상은 바로 유학 사상을 음악에 적용한 것이라 하겠다. 나. 선비음악과 거문고 음악 음악은 조선조 사회에서 선비들이 갖추어야 할 중요한 교양 중의 하나였다. 선비라면 갖추어야 할 여섯 가지 교양을 육예(六藝)라고 하였는데, 육예란 예(禮)·악(樂)·사(射)·어(御)·서(書)·수(數)의 여섯 가지를 말한다. 이 중에 악은 물론 음악을 말한 것으로, 악의 의미는 비단실(絲)을 나무(木)에 매달았다는 뜻이다. 이것은 중국에서는 금(琴)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거문고를 이르는 말이다. 그래서 선비라면 서재에 거문고를 마련해 두었다가 책을 읽는 쉬는 틈에 거문고를 연주하곤 했었다. 사실 공부를 하는 동안에 긴장감을 가지고 오랜 시간 독서를 지속할 수 없음으로 가끔씩 쉬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쉬는 틈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청히 지낸다면 잡념에 빠지게 되고 사심(邪心)에 젖게 됨으로 무엇인가 이런 쉬는 틈을 유용하게 지낼 필요가 생긴다. 이 때에 유용하게 선비들이 이용했던 것이 거문고였다. 그러므로 거문고 연주는 공부의 연장이요 자기 수양의 연장이었기 때문에, 자연히 연주하는 음악도 이러한 목적에 합당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러한 자기 수양과 교육의 목적으로 흔히 사용되던 것이 영산회상이었다. 그래서 이런 음악은 정악(正樂)이라고 해서 마음과 몸을 바르게 하고 엄격한 자기 절제와 통제를 최상의 목표로 삼았다. 영산회상을 다른 말로 거문고회상이라고도 하는데 이것도 거문고를 중시했던 생각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거문고로 영산회상을 연주하는 것은 선비의 여가 활동도 되고 또한 자기 수양이 되기도 했다. 정악은 감정의 표출을 절제하는 음악이다. 중절(中節)이 바로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감성의 음악은 감정이입(感情移入)이 필요하겠으나, 반대로 중절의 표출을 요구하는 음악은 이성이입(理性移入)을 필요로 한다. 1724년 편찬의 {한금신보}(韓琴新譜)에 보면, 오불탄(五不彈)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거문고 연주에서 지켜야 할 다섯 가지 금기 사항을 밝힌 것이다. 오불탄의 첫째는 질풍폭우(疾風暴雨) 불탄으로, 빠르고 요란스런 음악을 거문고로 타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는 대속자(對俗子)불탄으로, 교양 없는 속된 사람 앞에서는 타지 않는다는 것이고, 셋째는 진시(塵市)불탄으로 장거리 즉, 장터에서는 연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넷째는 불좌(不坐)불탄으로 정좌해서 바르게 자리잡은 후가 아니면 타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섯째는 불의관(不衣冠)불탄으로 의관을 바로 하고 정장한 상태가 아니면 타지 않는다는 뜻이다.또한 같은 책에 오능탄(五能彈)이라는 것이 있다. 좌안(坐安)·시전(視專)·의한(意閑)·신선(新鮮)·지견(指堅)이다. 이와같이 질풍폭우 불탄과, 둘째는 대속자(對俗子)불탄과 불좌(不坐)불탄, 불의관불탄에서 금기로 좌안(坐安)·시전(視專)·의한(意閑)·신선(新鮮)·지견(指堅)의 오능탄은 바로 선비음악에서 보이는 모습이다. 이것은 거문고음악을 조선조 선비들이 어떻게 대하였는가를 알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거문고 음악으로 대표적인 것은 영산회상과 가곡(歌曲)이다. 선비들은 '노래하며 선하면 화(和)한다'는 뜻을 알고, 예술에 노닐고(　於藝) 음악으로 이루는 것(成於樂)을 알았기에 정악으로 수신(修身) 수기(修己)하였던 것이다. 이와같이 조선조 선비들이 거문고 음악을 중요하게 여긴 것은 거문고 음악을 통하여 당시 철학 사상인 예악사상을 생활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 영산회상 연주자의 2중 구조 영산회상은 합주곡이다. 현악기로는 거문고·가야고·양금을, 관악기로는 대금·피리·해금을, 그리고 장구가 함께 연주한다. 이 곡을 합주로 연주할 때는 주인이 거문고를 타고, 해금·젓대·장구는 장악원에서 악공(樂工) 즉, 직업 음악인을 청하여 연주하도록 하였다. 그래서 영산회상을 거문고회상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와같은 음악상황에서 생긴 이름이다. 연주자를 보면, 거문고 연주자는 양반이나 중인이었고, 대금을 비롯한 관악기 연주자는 양반이 아닌 서민 출신이었다. 그래서 선율을 보면 거문고의 선율을 꾸밈음을 넣지 않고 간이(簡易)하고 담담하게 연주하지만, 관악 선율을 보면 꾸밈음을 많이 넣어 화려하게 한다. 이러한 영산회상 연주자의 이중 구조는 음악으로도 이중 구조로 나타난다. 라. 영산회상의 두 가지 장단 영산회상 악보로 가장 오랜 것은 1759년 서명응(徐命膺) 편찬의 {대악후보}(大樂後譜)이다. 이 {대악후보}에는 선율만 있고 장단이 없다. 영산회상 장단으로 가장 연대가 오랜 것은 {동대금보}이다. 이 {동대금보}의 영산회상 장단 장구형을 예로 들어보면 다음의 세 가지이다. 즉 3박, 2박, 1박의 세 가지 장구형이 나올 때, 2박과 긴음이고 1박은 짧은 음이 되고, 늘어난 음이란 3박을 말한다. 그래서 장구형 네 점의 비율이 6:4:4:6, 3:2:2:3, 2:1:1:2인 것은 장단단장(長短短長)으로 해석하였고, 2:2:1:3 도는 3:3:2:4는 장장단증(長長短增)으로 해석하였다. 다음에 예를 들어 보인다. 길고 짧은 조합(長短短長)은 다음의 세 가지이다. a) {동대금보}의 만영산 : 雙鞭鼓鞭이 長短短長 6:4:4:6 b) {동대금보}의 삭영산 2장 : 雙鞭鼓鞭이 長短短長 3:2:2:3 c) {동대금보}의 염불도드리 : 雙鞭鼓鞭이 長短短長 2:1:1:2 길고 짧은 것, 그리고 늘어난 것(長短短增)은 다음 두 가지가 있다. a) {동대금보}의 평조타령 : 長長短增으로 2:2:1:3 b) 현행의 타령 : 長長短增으로 3:3:2:4 <악보 1> {동대금보}의 영산회산 장단 이와같이 영산회상 장구형은 長短短長과 長長短增의 두 가지 유형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은 {동대금보}의 영산회산 장단뿐만아니라 오늘날의 영산회상 장단도 이 두 가지로 나뉜다. {정악가야금보}(正樂伽倻琴譜)는 선율과 장단이 각 각 다른 자료를 합한 문헌이다. 선율은 이창규(李昌奎)의 것을 김정자가 채보하고, 장단은 1936-7년경에 만들어진 김진환(金鎭煥, 1918-1937)편 장고보(杖鼓譜)를 인용하여 합성한 악보이다. {정악가야금보}의 영산회상 장구형은 다음과 같다. 20정간에 적은 것은 상영산(上靈山, 긴영산)·중영산(中靈山)이고, 10정간에 적은 것은 세영산(잔靈山)·가락(加樂)·삼현도드리(上絃還入) 첫째 장단까지이고, 6정간에 적은 것은 삼현도드리 둘째 장단 이하·하현도드리(下絃還入)·염불도드리(念佛還入)이다. 그리고 12정간에 적은 것은 타령·군악·계면가락도드리·양청도드리·우조가락도드리의 5곡이다. <악보 2> {정악가야금보}의 영상회상 장구형 a) 20정간 장단 雙鞭鼓鞭 (6 : 4 : 4 : 6) b) 10정간 장단 雙鞭鼓鞭( 3 : 2 : 2 : 3) c) 6정간 장단 雙鞭鼓鞭( 2 : 1 : 1 : 2) 이와같이 {정악가야금보}의 20박 장단·10박 장단·6박 장단의 장구형과 장구형의 정간 비례는 {동대금보}와 같다. 다른 점은 b)의 10정간 장단의 제9정간에 굴림(搖)이 첨가되어 있을 뿐이다. 이것으로 영산회상 장단은 20박 장단을 축소하여 10박 장단·6박 장단을 만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정악가야금보}의 장단을 살펴본 바를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영산회상 장단의 구조는 장단단장(長短短長)과 장장단증(長長短增)의 두 가지이다. 이 중에서 장장단증의 장단은 탈춤 장단에서 흔히 나오는 장단으로 다음 신명사상적 미의식에서 자세히 다르겠다. 그러므로 1813년의 {동대금보} 장단과 1936년경의 장단인 {영산회상가야금보}의 장단은 간점이 약간 들어 있어서 변화를 보이지만, 뼈대는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長短短長 장구형은 여민락 등의 음악에서 사용하고 있다. 여민락(與民樂)은 세종 창제 음악으로 궁중에서 봉래의(鳳來儀)라는 정재(呈才, 궁중 무용곡)에서 사용한 대표적인 궁중음악이다. 오늘날 연주하는 여민락은 장단단장(長短短長) 장단만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여민락은 자연스레 예악사상에 물들어 음악이 점점 느려지게 되었다. 다음 악보는 15세기 세종 창제의 여민락이 후세로 내려오면서 점점 간점을 넣어 음악의 속도가 느려진 것을 보이는 것이다. 여민락은 정재(呈才, 궁중무용)에 사용한 음악으로 이 음악은 후세로 오면서 변주하지만, 다른 곡을 받아들이지 않고 여민락 선율 만으로 변주를 하였다. 이에 비하여 영산회상은 원래의 영산회상에 곡에 여러 가지 성격의 곡을 첨가하였다. 이것은 여민락은 궁중음악이었기 때문에 순수성을 유지하여야 한다고 생각한 반면, 영산회상은 그 수용층인 중인의 성격처럼 서민적인 요소를 받아들이는데 주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악보 3> 여민락의 변천 2. 중인음악의 신명사상적 미의식 글쓴이는 중인음악의 양면성의 하나를 영산회상의 끝 부분 타령·군악에서 연주하는 타령장단에서 찾아보겠다. 우선 타령 장단의 구조가 앞의 상영산 장단과 어떻게 다른 구조이지를 살피고 다음에는 타령장단이 나타내는 신명성에 대하여 논의하기로 한다. 가. 타령 장단의 구조 글쓴이는 중인음악 영산회상이 두 가지 장단의 구성이라는 것을 이미 논하였다. 이 중에서 장단단장(長短短長)의 것은 네 장구점의 비율이 6:4:4:6, 3:2:2:3, 2:1:1:2인 것을 알았다. 그리고 뒤에 나오는 타령(打令) 이후의 장단은 장장단증(長長短增)임을 말하였다. 이번에는 타령 장단에 관하여 살펴 볼 차례이다. 이 타령 장단을 따로 떼어 살피는 이유는 이 장단이 탈춤에서 흔히 나오는 장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타령 장단은 이름에서 풍기듯이 앞의 상영산 장단보다는 훨씬 율동적이어서 흥이 나는 장단이다. 우선 여러 가지 타령 장단을 적어보고 이 장단을 분석하겠다. 그래서 이 장단이 과연 장장단증(長長短增)의 장단인지를 살펴 볼 것이다. 다음은 김정자 채보 {정악가야금보}의 영산회상 장단을 적은 것이다. 숫자는 이 책의 쪽 수를 나타낸다. 다음 표에서 ○은 정간이 비어 있는 것을 나타낸다. 알아보기 쉽게 하기 위하여 12정간을 3정간씩 /로 넷으로 나누어 표기한다. 1 2 3/ 4 5 6/ 7 8 9/ 10 11 12 / a) 타령 장단(55쪽) : 雙○点/ 雙○点/ 鼓○鞭/ ○○点/ b) 군악 장단(58쪽) : 雙○○/ 鞭○点/ 雙○鞭/ ○○点/ c) 계면가락도드리(63쪽) : 雙○○/ 鞭○○/ 鞭○鞭/ ○○○/ d) 양청도드리(68쪽) : 雙○○/ 鞭○○/ 鞭○点/ ○○○/ 앞의 네 장단은 여러 가지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각 정간의 장구형을 조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제1정간은 모두 雙이다. 제2정간은 비어 있고(○), 제3정간은 모두 鞭이다. 제4정간은 雙이 1회, 鞭이 3회 나온다. 제5정간은 모두 비어 있다. 제6정간은 点이 2회이고, 나머지는 비어 있다. 제7정간은 鼓가 1회, 雙이 1회, 鞭이 2회이다. 제8정간은 모두 비어 있다. 제9정간은 鞭이 3회, 点이 1회이다. 제10정간·제11정간은 모두 비어 있다. 제12정간은 点이 2회, 비어 있는 것이 2회이다. 정리해 보면, 네 가지 모두 장구형이 들어 있는 것은 제1정간·제4정간·제7정간·제9정간이다. 이것을 모아 보면, 3:3:2:4의 비율이 된다. 이것은 앞 {동대금보} 타령의 2:2:1:3의 확대형으로 해석할 수 있고, 장장단증(長長短增)의 구조이다. 다음 악보는 현행 여러 타령 장단을 보아 본 것이다. 역시 장단단증의 장단임을 알 수 있다. <악보 4> 여러 가지 타령 장단 영산회상의 타령·군악은 원래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고 18세기 말에 영산회상에 들어간 음악이다. 영산회상이 타령을 받아들이면서 그 음악은 뒷부분은 한층 흥청이고 속도가 빨라진다. 이처럼 아정한 음악의 뒤에 흥청이고 빠른 음악이 붙게 된 것은 서민적인 신명사상의 영향으로 보고 싶다. 나. 타령 장단의 신명성 신명이란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로는 '흥겨운 신이나 멋'이다. 그래서 '신명나다'의 움직씨로 사용하면 '흥겨운 신이나 멋이 나다'를 볼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 '신명난다'라는 말을 흔히 쓰고 있고, 굿에서 '신이 나야 일을 하지,' 또는 '신명이 지펴야 굿을 하지'하는 말도 사용한다. 또한 신명은 '신지핌 순간의 정신·심리상태이자 신지핌에 따르는 양분된 혹은 도취된 정신·심리 상태'이기도 하다. 신명은 접신한 무당과 박수의 신지핌의 정신 내지 심리적 상태인 동시에 신명이 신바람의 집단적 무의식의 측면에서는 참서자들의 정신 내지 심리적 상태이다. 신명이나 신바람은 굿의 주재자와 차석자의 엑스타시가 동질의 것이다. 탈놀이는 성속의 세계관의 대립과, 반상(班常)의 사회관의 모순을 제시 폭로하고 성속의 대립에 기인하는 이원적 대립의 극적 해결을 제시하는 축제의 양식을 뛴 것이 굿놀이다. 그래서 굿과 탈놀이의 춤은 신바람이 있는 춤이고 그 신바람이 참여자들에게 절달되어 신바람으로 합일한다. 신명은 신바람이고, 신바람이 '미치려는 의식'이라고 할 때 신바람의 강도에 따라 다음과 같이 음악 양식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표 1> 음악의 장르와 신바람의 강도 신바람의 강도 진함 ----------------------------------------- 여림 민속악 ⇒ 풍류 ⇒ 정악 ⇒ 궁중음악 이를 종합하여 보면, 흥겨움·멋·신비현상(theraphany)의 종합적이 상태가 신명이 아닌가 싶다. 신명은 삶의 한과 고통을 풀어 헤쳐 생활에 활력을 준다. 대립적인 요소를 풍자(諷刺)로, 웃음으로 적을 공격한다. 그래서 탈판은 웅크린 몸이 웃음의 해학으로 되살아나 삶의 생동성을 높이는 놀이판이다. 그래서 신명이란 비현실을 현실로 만들고, 창조 행위의 원천적 기운이라 하겠다. 탈판은 바로 생활의 현장이고, 신명은 탈춤의 현장에서 집단적 신명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탈춤은 개인 문제가 집단 문제로, 개인적 신명이 집단적 신명으로 공유화하게 한다. 이러한 집단적 대중의 신명은 공동체의 형성에 큰 기여를 하게 된다. 이러한 집단적 신명은 집단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순환하며 확대된다. 탈춤을 추는 놀이 마당은 사람은 해방시키고 자유화한다. 굿에 신을 모시고 그를 즐겁세 하기 위하여 노래와 춤을 추며 놀이가 벌어진다. 여기에서 사회의 모든 금기가 풀어지고 일상의 질서가 깨지고 기존 관념이 무너져 온통 뒤집힌다. 이러한 난장판의 해방감열중·도취·황홀감 등은 한편으로는 정화의 기능을 갖는다. 무당은 무병(巫病) 체험으로 신명을 얻기도 한다. 그래서 탈춤을 비롯한 민중 연희자를 흔히 '신명이 많은 사람,' 또는 '끼가 있는 사람,' '끼가 많은 사람,'이라고 한다. 신명이 많다는 것과 끼가 많다는 것은 신명과 끼가 다른 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탈춤꾼은 공동의 민중의 신명을 갖춘 사람이다. 한 춤꾼이 지니는 신명이 민중 공유의 내재된 신명과 일치하여 이를 대행하여 민중적 공감대를 형성한다. 탈춤에서 나오는 타령 장단은 마지막에 '얼쑤'하고 추임새를 넣는다. 즉 장장단증의 마지막 긴음에 '얼쑤'라는 추임새를 넣는 것이다. 이 추임새는 바로 흥겨움에 넘쳐 자연 발생하는 추임새라 하겠다. 탈춤의 리듬은 사람을 흥분하게 하고 집단적인 엑스타시로 이끌어 간다. 그러나 영산회상의 타령 장단은 속도가 탈춤의 타령보다 훨씬 느려 흥겨움을 걸러 내고 있다. 이것은 탈춤 장단이 영산회상에 수용되면서 예악사상에 훈습된 결과라 할 것이다. Ⅳ. 맺음말 이 글은 조선조 후기 양반과 상인의 사이에 존재하던 중인 그룹이 즐기던 음악 영산회상의 미의식에 관한 고찰이다. 조선조 후기 사회에서 중인은 사회 변동으로 인하여 상당한 재력과 지위를 획득하였다. 중인은 신분적으로는 양반과 서민 사이에 있었던 것처럼 그들이 즐기던 음악도 이와같은 이중 구조의 음악인가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중인이 즐기던 영산회상은 사상적으로는 예악사상의 구현을 위한 음악이었다. 그러나 뒤로 가면서 점점 빨라지고 흥겨운 장단을 사용함으로써 서민 취향의 욕구를 충족하였다. 장단은 앞부분에서 느린 장단으로 시작하여 예악사상의 음악 요건을 갖추었으나, 19세기 말 뒤에 첨부한 타령·군악은 흥겨운 타령 장단을 덧붙였는데, 이 또한 서민 취향의 욕구 충족의 결과라 하겠다. 영산회상의 편성에서 거문고는 철저하게 예악사상적 표현을 하였으나, 대금·피리 같은 관악기는 장악원 악사들이 담당하였기 때문에 관악기는 예악사상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장식음을 넣어 서민 취향을 충족하였다. 이와같이 중인이 양반과 서민의 중간 계층인 것처럼, 중인음악 역시 양반의 예악사상과 서민 취향의 신명사상의 두 가지 미의식을 조화한 음악이라 하겠다. 참고 문헌 자료 {論語} {三國史記} {世宗實錄} {詩經} {梁琴新譜} 권오둔. {新譯樂器}. 서울: 홍신문화사, 1980. 金靜子採譜. {正樂伽倻琴譜}. 서울: 수문당, 1979. 成百曉 역주. {論語集注}. 서울: 傳統文化硏究會, 1990. 宋芳松. {韓國音樂通史}. 서울: 一潮閣, 1984 宋芝媛. "朝鮮後期中人音樂의 社會史的硏究," 서울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92. 안동문화연구소. {하회탈과 하회탈춤의 美學}. 서울: 사계절, 1999. 이성천. {한국·한국인·한국음악}. 서울: 도서출판 풍남, 1997. 李惠求. "正樂의 槪念," {韓國音樂論攷考}. 서울: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5. 李惠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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