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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 嶺(죽령) 癸丑(1673)
▶八吾軒 金聲久(팔오헌 김성구, 1641-1707) : 전적·현감·지평·수찬·부승지·정언·수원부사·여주목사·대사성·강원도관찰사 등을 지내신 숙종조의 문신.
[詩作 배경]
팔오헌공께서는 31세 되시던 1671년 여름, 내직에서 외직인 무안현감(務安縣監)으로 나가셔서 백성들을 다스리고 아전들을 단속함에 위엄과 은혜를 함께 행하셨다.
그런데 고을에 간사한 아전이 있어 나라 곡식을 많이 훔치고 정사를 더럽혔음에도 적발하지 못한 것을 공께서 비로소 바닥까지 들추어 모두 회수하셨다.
마침 어사가 고을을 지나다가 그 아전의 말만 듣고 그대로 장계(狀啓)를 올려 이로 인해 파직되셨다. 고을 사람들이 사대(使臺)에 호소하여 유임시키기를 청하였으나 공께서는 이미 탄핵을 받으신 뒤였다. 늦게서야 어사가 듣고는 속은 것을 알고 경솔히 행동한 것을 후회했다고 한다.
이 시는 공께서 33세시던 그 1673년(癸丑, 현종 14) 파직되어 고향으로 돌아오실 때 죽령을 넘으며 지으신 시인데, 억울하게 파직을 당하고 낙향하시면서도 외려 유유자적하는 심정으로 진세(塵世)와의 결별을 고하고 있다.
그러나 무죄가 밝혀져서 이 해에 다시 임금님의 부르심을 받아 형조원외랑(刑曹員外郞)으로 서용되시고 춘추관(春秋館) 벼슬을 겸하셨다.
특히 이 시에서 '죽령'의 음을 생각하여 '백복'의 '백복령'과 '황령'의 '죽대 뿌리'란 한약재를 끌어와서 '죽령'과 연계시킨 발상은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무궁화無窮花
八雲 金炳基 八雲
시들었던 무궁화 소낙비 만났으니
새싹이 돋으려고 꽃송이 지을 적에
난데없는 악풍이 못 살게 하는구나
아서라 반만 년에 깊이 든 그 뿌리가
그다지도 쉽사리 넘어질 리 없도다.
하늘이여 피바람 만주벌 몰아내고
차라리 한 방울의 비라도 더 뿌려서
삼천리 금수강산 무궁화 꽃 피우고
백두산 상상봉에 태극기 높이 꽂아
세상에 자랑하며 자유로 살아보세.
1950. 6.25가 일어나고 아배 지으신 詩
<윤동원 작 '소 타고 피리 부는 아이'>여보게 예술촌으로 오게 碧波 金哲鎭 碧波 여보게 목이 마르면 茶를 마시고 영혼이 메마르면 藝術村으로 오게 詩書畵 맑은 墨香 예서 흐르고 白雲靑山 보름달도 예서 뜬다네 여보게 自然이 그리우면 여행을 떠나고 사람이 그리우면 藝術村으로 오게 술잔에 넘치는 情을 마시며 때로는 世事 잊고 취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은가 1998.8. <봉화문학>(1999, 3집)
시인詩人 개똥이 碧波 金哲鎭 碧波 먹고 살기 어렵던 시절 시詩 쓴다면 부모님들 하시던 말씀 시詩는 써서 뭐 할라꼬 밥이 나오나 돈이 나오나 시방 생각해도 맞는 말씀인데 지금은 살기 좋은 세상 시詩도 액세서리인가 정서법도 모르면서 시詩를 쓴다 시인詩人, 그거 아무것도 아닌데 사람 먼저 될 생각은 않고 힘 안 들이고 등단해서는 시인詩人 개똥이 명함부터 만든다 W-80611 <문학공간>(2008.12. 통권 229호) <藝術村> 금천의 낭만이 되라 ㅡ '예술촌'을 넓혀 새로 옮긴 날에 樺山 변세화 속아 산다는 세상, 마음 비우고 허허 웃으며 살 일 식도락이 으뜸이니 분수대로 잘 먹고 잘 마시고 살 일 젊음도 지키기 나름, 청춘을 노래하며 즐겁게 살 일 세상사 뜻 같지 않을 때는 잠시 짐 벗고 쉬었다 갈 일 '인생은 짧고 비극적인 종말을 가진 긴 희극'이라는 둥 이곳에 와서는 남들 따라 섣불리 인생을 말하지 말 것 그저 내가 본, 내가 아는 세상, 내 못난 점을 말해 줄 것. 질박한 민속주 익듯 희로애락이 절로 곰삭는 곳 그 누구라도 이곳 금천의 '예술촌'에 와서는 마음놓고 호방한 너털웃음을 웃어도 좋다. 속없는 허풍에다 숫된 거드름을 피워도 좋다. 나라님도 흉본다는데, 허튼 이 안주 삼아 씹어도 좋다. 혹은 솔개처럼 떠돌다 시대의 돌팔매에 맞아 버린 새 박인환, 그 갓 서른의 생애를 추억하여도 좋다. '목마와 숙녀' 그 한 소절을 읊어도 좋다. ㅡ 목마는 하늘에 날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이는데 가을 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ㅡ * 그 때 그 많던 별들, 지금은 죄다 어디 가고 말았는가. 우리 멀고도 낯선 곳으로 가서 별사탕 같은 별을 담아 와 여기 '예술촌'에 다시 모여 서로의 술잔에 띄워 주자. 세월이 갈수록 아릿한 가슴에 유성의 섬광도 새겨 주자. 시대의 아픔과 삶의 고뇌가 어디 명동 그 시절뿐이었으랴. 사랑과 낭만, 열정과 시와 애국과 불타는 예술혼이 어찌 그 때 그 시절에만 흘러 넘쳤으랴. 오늘의 문화의 거리가 어디 인사동, 대학로뿐이랴. 이제 새로이 문화의 꽃불 타오르는 금천구에 그도 시가지 중심의 구청 옆 훤희 트인 골목 어구, 문화 빌딩 2층에 시인묵객이요 극작가요 수석인인 벽파(碧波)선생 그 내외가 저기 새로운 천년을 일백 십 여일 앞에 두고 오늘 문화와 인정의 터를 넓혀 새로 옮겨 열었으매 때로 삶이 버겁거나 밋밋하거나 눈물겹게 아름다울 때 우리 자주 발걸음 하여 문학을, 노래를 살리리라. 인생을 살찌우리라, 마음놓고 이상과 청춘을 구가하리라. 사람과 인정을 따르고 묵향 곁에 더러는 돌을 벗하며 취흥 나면 벽 한 녘에 속엣말 두어 마디 긁적여 놓으리라. ...하여 텁석부리 촌장의 새로운 '예술촌' 이여. 살아 있는 맛과 살아가는 멋이 오롯이 한데 어우러진 금천의 새로운 명소로 이 시대 낭만의 본향이 되라. 1999.9.3 제25회 시문학상 수상 시인 변세화 시집 <악수 또는 포옹>에서 ☞변세화:시문학으로 등단 <碧波 김철진> 절반은 道士 ㅡ 예술촌 촌장 碧波 선생 金承奎 禿山洞 골목 골목 술이란 술 다 바닥내고 白羊 담배 줄연기 속, 목소리 쉬어빠지도록 날이면 밤 이어 퍼내어도 다 못 퍼낸 詩心을 아예 일터를 작파하고 문을 연 藝術村 긴 수염 한복에 고무신, 이미 절반은 따논 道士 脫俗한 高談竣論이야 차차 두고 들을 일. 2001.6.23 ☞金承奎:본명은 김명길(金明吉). 중앙일보/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태백산 각화사>태백산 각화사 은촌 하덕조 각화사는 공중에 떠 있는 그림인 듯 저승처럼 솔잎향 조용하더라. 법당 뒤에 천 년의 절벽이 내놓는 물 두 모금 마시니 저승에 다시 태어난 듯 앞뜰에 이끼 낀 삼층 석탑 이승의 그리움을 그리워하지 말아라 한다. *각화사:경북 봉화군에 있는 고찰 <동국시집>(vol.23) 발표 [註]이 시는 하덕조 시인이 2002년 2월 봉화 예술촌에 보름 머물 때 지은 詩임 예 술 촌 은촌 하 덕 조 봉화군 면소골에 가면 예술촌 현판을 달고 벽파가 촌장인 고풍한 집이 까치집처럼 높이 있다 양지바른 뜰에 겨울바람이 박새처럼 놀다 가면 까치는 은행나무 높은 곳 촌장이 잠든 새 촌장 수염을 뽑아다 까치집을 짓는다 까치집에는 세상을 여닫는 촌장 마음 촌장집에는 아침을 여닫는 까치 마음 바래미 垠村 河德祚 목을 걸고도 굴하지 않던 선조의 혼이 샘물 되어 마르지 않고 있었다 하늘에서 하늘빛으로 살던 혼은 이승이 근심스러워 밤이슬로 내려와 바래미 뒷산 청청한 소나무 뿌리에 머물다가 샘물 되어 있었다 세월이 이끼 되어 고풍스런 내리사랑이 끊이지 않는 마을 죽어도 눈감지 못한 혼은 이승에 까치로 태어나 아침마다 감나무에 내려앉아 까악까악 후손의 영혼을 흔들어 깨운다 임오년 새해 *바래미:봉화군 ‘해저리’의 고유어. 뜻은 바다 밑 -시집 '바람이 말하는 소리'에서 ☞河德祚:현대문학/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국화 꽃잎 베개 베고 난 아침 김영미 그대 한 발자욱만 물러나 있어 다오 멀어지는 가슴에 무수한 할 말 끝내 감추며 기약 없는 별리를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나는 바라보아야만 했다 그립다 말하는 것은 그리움의 주검을 보는 것 같아 진정으로 만나지기 위해 멀어져야만 하듯 시간 밖의 시간 속으로 물러나온... 국화 꽃잎 베개 베고 난 아침 맑은 향내 가득한 가슴에 그리움 문질러 아프도록 고운 이별 하나 심어 두었다 <문학세계>(2008.) 浮 遊 김영미 내성천 햇살 건너 침묵하며 다가오는 가을은 왜 이리도 잔인하게 아름다운 것인가 바래미 돌아 곰삭은 천 년 그리움은 폐가의 기왓장에 이끼처럼 돋아 있고 이름도 묻지 못한 화가 순결한 아내의 언가슴 불 지피는 오미자 차 한잔에 예술촌의 밤은 시리도록 향긋한 달빛만 홀로 서서 미쳐 가는데 국화 꽃잎 베개 베고난 아침 가슴에 묻히는 이 등 뒤로 흐르는 슬픔 봉화의 가을이 저무네 S-021013 ☞김영미:크리스찬문학/문학세계로 등단 내가 아는 벽파碧波 시인은 湖堂 김순아 묵묵하나 부드럽고 점잖으나 풍류風流를 안다 바쁘지만 허둥대지 않고 두 몫을 마셔도 흐트러짐 없다 고요 때문에 "치앗뿌라 마~" 목마름 때문에 "치앗뿌라 마~' 해도 한 개비의 담배 연기에 영원을 이어 나를 줄 알고 빈 주머니 속에서도 시詩를 꺼낼 줄 안다 가슴 울리는 그리움의 시인詩人 ㅡ 벽파碧波 김철진 시인을 생각하며 湖堂 김순아 세상에 외롭지 않은 삶 어디 있으랴 이 세상에서 나 혼자만 외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경북 봉화군 봉화읍 면솟골 예술촌으로 가 보라 굽이굽이 산모롱이 돌아 춘양목 빛바랜 고가에 가면 늘 그리움에 젖어 사는 수염 허연 시인의 외로운 기침소리 들려올 것이다 그리워 술을 마시고 그리워 거푸 담배에 불을 붙이며 그리워 시를 쓰다 그대로 한 편의 시가 되는 시인이 생애 절반을 온통 그리움으로 보내고 있을 것이다 가슴속을 철사처럼 파고드는 그리움 견디며 홀로 아침을 맞고 저녁이 오면 홀로 등불을 켜며 쓸쓸한 아침 달 저 혼자 산 넘어가듯 그렇게 그리움 마시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오직 혼자만 외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면솟골 예술촌 촌장 벽파碧波 시인을 찾아가 보라 날마다 책상다리를 하고 허리 꼿꼿이 펴고 앉아 행여 누구 오는가 기척 없는 빈 하늘만 바라보다가 처마 끝 외로운 풍경 되어 가슴 울리고 있을 것이다 그대 외로운 영혼이거든 벽파碧波 시인을 만나 보라 일생에 한번쯤은 저 풍경처럼 아름답게 울고 가리니 <해동문학>(2009.가을호) 그리움의 무게 湖堂 김순아 어둑해 오는 예술촌 담벼락 아래 주인 마음 닮은 능소화꽃 한 송이 그리움 이기지 못하고 떨어져 눈물처럼 반짝거리고 있다 오지 않는 님 기다리다 꽃이 되어 조금이라도 더 멀리 보려고 돌담 위로 기어오르며 너울거리던 노을 빛 능소화 송이째 떨어져 눈물처럼 반짝거리는 그 까닭은 사무치고 또 사무치는 그리움의 무게 무게 때문일 게다 *예술촌:경북 봉화군 봉화읍 내성1리에 있는 벽파 김철진 시인의 집 ☞김순아:한국문인으로 등단 경남 양산 출생 새한국문인․ 한국문인협회 ․ 경남문인협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양산지부 부지부장 부경대학교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수료 시집- <푸른 파도에게> (정은출판사, 2004) 수필집 - <기억 저편의 풍경> (도서출판 학마을, 2005) 홍매화 김상윤 봉화읍 내성리, '예술촌' 문패 달린 집이 있지 나지막한 산등성이 골목 새, 기와지붕 보이고 담장 가엔 지금쯤 홍매화, 붉은 입술 내밀며 노래연습 할 터인데 인터넷 예술촌에서 소식 들으니 아래채 구들공사 했단다 그 집 풍경들 한 편 뮤직비디오처럼 지나가니 베레모 쓴 수염 한 자 되는 노 시인* 새하얀 기침 콜록이고 선 산목련 아래 종일토록 서서 차곡차곡 구들 놓이는 모양새 지켜보는 그사이 진달래 꽃망울 더 큰소리 웃어젖혔을 테고 은행나무 까치 날아들었다 다시 날아갔을 테고 집 뒤 오죽 숲 바람은 두어 번 잠들었다 깼을 테고 지붕 위엔 꽃구름 떼, 시인을 내려보다 갔을 테니 어둑어둑 해 질 녘에야 다 만들어진 구들, 장작불 들여보냈는데 어이쿠, 노 시인 하루 종일 그 광경 시중들다 그만 홍매화가 되었네 가슴엔 장작불 타오르고, 머리엔 빨강 베레모, 걸어다니는 홍매화 한 그루 *봉화의 벽파 김철진 시인 <문학세계>(2004.11) ☞김상윤:문학세계로 등단 예술촌 문학의 밤 雪蓮 한영미 면솟골 봉화 예술촌(藝術村)엔 세상사 근심 모두 접고 각 지역에서 찾아든 맑은 그리움만이 은어 떼처럼 고운 빛으로 모여 있어라 툇마루 앉아 깊이 우러난 예향주에 목 축이며 주거니 받거니 밤 새워 시를 낭송하고 사랑을 이야기 하다 보니 어느새 하늘도 비를 뿌리며 서너 평 남짓 가난한 시인의 마당 위에 내려앉아 어울려 시를 읊고, 자리 떠날 줄 모르던 객(客)들의 마음 끝내 그 빗소리에 젖어들고 마는데 사랑이 어찌 거짓일까 멀어졌다 해도 이렇듯 다시 가슴에 되살아나 삶을 뜨겁게 사랑하게 하는 것을, 만남의 시간은 짧고 이별의 시간은 언제나처럼 길고도 또한 길테지만 만남이 아닌 이별이라 해도 내 이제는 사랑이라 말할 수 있으리 20050806 ☞한영미:문학세계로 등단 <바래미 남호구택> 종살이 성백원 바래미 남호구택이 불구덩이를 지나서 살아 있는 건 주인과 종을 잇는 핏줄에 콜레스톨이 쌓이지 않아서다 * 남호구택 : 봉화 바래미에 있는 독립유공자 김뢰식의 옛집 1876년 건립되어 문화재 자료 385호로 지정되어 있다 ☞성백원: 어떤 이별 香茶 박순영 예술촌에는 예슬이도 지빠귀도 바람도 지조 높은 노송 같은 촌장도 혼자다 그리하여 나무마다 파랑 같은 슬픔이 피는 걸까. 파랑 같은 슬픔의 맛은 알싸하고 나 지금 그 나무 차마 바라보기에도 가슴 시린데 물수제비 뜨듯 참방대던 지빠귀가 푸른 그 나무 그늘에서 이슬처럼 운다 흔들리는 물고기 지느러미처럼 바람이 운다 노송의 시름 알 리 없는 난봉꾼 바람 실실 눈치 보며 여인네 치마 속 들추고 처마 밑 풍경 둘이서만 정겨운데 마른 몸 흔드는 늙은 나무의 시름은 왜 그리 깊은가요 바래미 香茶 박순영 의성김씨 종택 팔오헌(八吾軒) 현판 그늘에 앉아 자연인으로 살고팠던 청렴한 선비의 기백 년 녹녹한 세월이 얼마나 희고 고운지 덩달아 탐욕의 빗장 푸는 것도 순간이었네 툇마루 아래 방 한 칸 얻은 맥문동 오도독 바람을 깨물고 이엉 대신 기와 위에 올린 박꽃을 오래도록 바라보는 종부 마음이 따갑다 마당에 풀 포기 초록비단 깔고 울타리 나무에 내어주니 풍광명미한데 산그늘 짙어가는 바래미 하늘 끝으로 펼쳐지는 학의 군무 지긋이 내리밟는 생의 그늘 위에 혼불로 핀다 그게 인생이야* 香茶 박순영 달도 잠든 팔월 스므여드렛날 주거니 받거니 차진 얘기꽃이 소담한 예술촌의 밤 장대마냥 어둠을 떠받치고 있는 감나무 대청마루 훔쳐보느라 얼굴 붉어지고 뭇 소리 소리마다 기울이는 술잔엔 솔향이 깊은데 "그게 인생이야" 노시인 말씀 한마디에 파르르 가슴 떨려 여름날 소나기 속을 마구 달리듯 줄기차게 익어 가는 밤 그게 인생이야 *벽파 선생님 말씀 ☞박순영:한비문학으로 등단 피안彼岸 정설연 날갯짓하는 푸른 바람이, 풍경風磬 물고기 꼬리지느러미를 흔들면 명치께에서 풍경소리를 빨아 들이고 가슴에 몽올몽올 거품이 인다 예술촌藝術村* 앞마당이 푸른 물 꾹꾹 눌러 짜내어 가슴속으로 흘려 넣어 주는데 서울여자는 그것마저도 삼키지 못하고 마루 끝에 걸터앉아 자꾸만 가슴 밖으로 게워 낸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고독으로 속살이 오르고 달거리하며 성장했을 풀과 나무, 거미줄 위로 두툼하게 올라앉은 햇살은 내 안으로 자꾸 마음을 들이민다 고독으로 만물을 젖 먹여 키워내는 예술촌藝術村 마당이 피안 같다 *예술촌藝術村:碧波 김철진 시인의 古家 ☞정설연:대한문학/한비문학으로 등단 혼숙混宿 餘雲 손성미 급하게 나선 아침 지방으로 향하는 고속버스는 만원이었다 맨 뒤, 가장 높게 위치한 좌석 출발할 때부터 덜컹이는데 모르는 사람끼리의 친밀한 거리와 통성명 없이도 장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삭막함이 눈인사 한 번 없이 고요 속을 달리는데 분 냄새 묻은 여자의 숨소리, 갑자기 그녀의 어젯밤이 궁금해진다 기다리겠다던 애인의 가냘픈 말처럼 덜컹 흔들림 속에 툭 떨어지는 손 차창 밖 붉은 해 오르면 커튼을 치고 누운 사람들 나만 잠들면 혼숙混宿이다 ☞손영미:한비문학/문학세계로 등단 보리밥 心園 박부경 시인의 아내는 시보다 성스런 보리밥을 짓는다 고슬고슬한 보리밥에 원고지 칸만한 무우를 넣은 짭짤한 된장찌개 세상 사는 법도 짭짤함으로 다스린다 시인은 벽에 보리밥 같은 시를 걸어 놓았다 어메, 한매寒梅 이야기 놋그릇에 푸릇푸릇한 푸성귀를 넣고 오른편의 놋수저를 들어 치열함 뒤의 고슬고슬한 땀을 쓱쓱 비빈다 시인은 벽 속에서 죽어도 끝나지 않을 장편의 그리움을 토해 내고 시인의 아내는 부엌에서 성스런 생生을 다스린다 구월 어느 날 언제 길이 될 지 모르는 봉화 예술촌 소나무 두 그루가 절을 하듯 옛이야기 하며 촌장의 고독한 수염으로 달인 차 한잔 마주 할 사람 있으면 그게 인생이지 사는 게 뭐 별 것인가요 사랑이 뭐 별 것인가요 백련차 白蓮茶 잘 구운 도자기에 백련화 한 송이 띄우니 은은히 저물어 가는 청량산 심장 가까운 곳으로 기운다 송이 松栮 이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운 것은 송화처럼 고운 사랑이 먼 듯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까닭이지요 이 세상이 이렇게 쓸쓸한 것은 축축한 소나무 등걸처럼 늙고 휘어진 손바닥만 한 가슴에 눈물 같은 인연의 송이 하나 다스리며 그리운 솔바람 소리 토하며 살아가는 일이지요 ☞박부경: 귀소歸巢 破卵 심영숙 이른 새벽 툇마루에 바람 무늬로 앉아 지나간 세월을 가만히 불러 본다 한때는 내가 아는 모든 것의 존재 언어로 다가왔을 당신 듣고 있나요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당신 때문에 오래 사모했던 오목한 가슴 뼛속까지 멍이 든 채 이울어 가는 것을 당신, 알고 있나요 아주 먼 데서 오는 바람 죄다 몰려와 쓸쓸히 닳아 가는 기억, 간절하게 불러 본다 당신, 외롭지 않으냐고 예술촌을 사랑하게 된 여자 한빛 내가 사랑하는 맨하탄 바다가 내게 조용히 이르더라 아니 때론 격렬하게 철썩 철썩 때리기조차 하면서 시 한 줄도 못 쓰는 주제에 예술촌에서 얼쩡거리는 이유가 뭐냐고 병신이 아니면 뭐냐고 자꾸만 자꾸만 약을 올리더라 태평양 건너 그 먼 나라에 목을 빼고 살지 말고 가까운 바다를 사랑하라고 고향은 가까이 있어도 좋지만 가슴에 품고 멀리서 바라보는 것도 좋다고 시인 일기 석심 이신남 키 높이 맞추어 장독대에 나란히 앉은 금강송, 단풍나무, 느릅나무, 오죽... 빗줄기보다 더 가녀린 솔잎에도 톡 통 통 통 빗방울이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 낸다 원추리 꽃잎 마당 가득 향기 뿜어내고 잎 넓다고 잘난 체 앵두나무 밀치고 무대 한 가운데 자리한 천사의 나팔 하얀 소리, 마당에 울려 퍼지는 윤오월 비 내리는 날 사람이 그리운 예술촌 마루에 앉아 매혹적인 관객이 되었던 하루 ☞이신남:문학세계로 등단 예술촌-김철진 시인 김경덕 봉화군 면솟골에 '예술촌'이라는 현판이 붙은 집이 있다. 삼백 년쯤 전 춘양목으로 지은 기와삼간에, 제법 운기가 돈다. 이곳에 김철진 시인이 혼자 산다. 아니, 대문 들어서면 시커먼 개 한 마리 마당 입구에 붙들려 있다. '예슬이'라는데, 억지 같다. 꼬락서니가 이름과 전혀 안 어울린다. 늙은 시인을 닮아서인지, 개나 개밥그릇이나 찌그러졌다. 손 안 대어도 문이란 문들, 찌그럭 찌그럭거린다. 마루에 걸터앉자니, 목련 떨어지고 어제 함박꽃이 솟아올랐다며 노老시인이 곧바로 자랑을 늘어놓는다. 그런데 꽃송이도 마찬가지, 찌그럭하다. 내겐 이 집 새소리마저 죄, 찌그럭하게 들린다. 그래서 김철진 시인은 꼭다리 떨어진 주전자 같은, 쭈글쭈글한 시만 쓴다. 未堂이 주신 '無等'이라는 호를 사랑방에 그냥 걸어두고, 시인 맘대로 자칭 '碧波'다. 부연 끝에 매달린, 시퍼렇게, 녹슨 풍경風磬이 시도때도없이 찌그덕, 찌그덕, 찌그덕, 푸른 물소리 쏟아낸다. 쪼글쪼글, 대문을 기어오르는 담쟁이덩굴이 뜯어볼 것 없이 요목조목 새파랗다. ☞김경덕:한비문학/문학저널/문학세계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