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회 도봉문학상 신인상 :시 김정숙, 이영자 수필: 나선자>
<신인상1>-시 5 편
1) 사려니 숲길
김정자
삼나무 편백나무 산딸기나무 때죽나무
수직으로 쭉쭉 뻗은 사철나무들
하늘이 안 보일 정도의 빽빽한 숲길
높은 나무 기둥으로만 둘러싸인
어둠침침 감옥 같은 무서운 숲길
햇빛이 드는 곳엔 벤치를 만들어
아랫목처럼 따끈따끈 데워지고 있었다
꼬불꼬불 뱀 길처럼 끝이 없는 숲길
나무를 만져보니
융단처럼 뽀송뽀송한 곳도 있고
오줌 싼 아기 기저귀처럼
축축하게 물기가 배어있는 곳도 있었다
나무들은 모두 이끼로 화장을 하고
우울하다 명랑하다 추웠다가 더웠다가
무서웠다가 귀여웠다가
가깝고도 먼 사려니 숲길
2)멋있는 여행
김정자
이 세상에서 제일 멋있는 여행은
오십 년 이상 살아온 사람과의 여행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멋없는 여행은
오십 년 이상 살아온 사람과의 여행이다
생각하는 정원에 와 보니
나보다 훨씬 많은 세월을 살아온
분재 씨의 위대함에 고개를 떨군다
아무리 고되고 역겨운 환경에도
새싹을 틔우며 새 출발하는 모습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당당하게
중후한 모습으로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다시 태어난 생명은 더 곱고 튼튼한
아름다운 수형이 만들어진다는
진리를 보여주면서
3) 늘솔길
김정자
시작과 끝도 없는
하늘과 맞닿은 잔디 수평서
그네뛰기 거절하는 수양버들 달래며
팔짱을 끼고 강가를 거닐면
시나브로 그리운 사람이 내게로 달려올 것만 같다
지금쯤 그 사람 꽃잠에서 깨어났을까
천당에서 지옥을 오가며
정신없이 달리고 있을까
하느님을 만났을까
하늘 아래 어디엔가 살고 있겠지
연꽃이 피어있는 정원에서
매력적인 소리를 내는 벌과 친구 되어
모양만 커다란 큰 가방을 메고 걷다 보면
내가 좋아하는 늘솔길이 반겨주겠지
4) 좋은 친구
김정자
점심을 서로 산다며
마음의 길이 통하면 그만이지
더 이상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동백꽃보다 더 붉은 정열도 있었고
눈이 내리지 않아도
눈보다 어 아름다운 상고대도 보았다
찬란한 해돋이보다
황홀한 황금 노을도 보았다
이제는 녹음 우거진 꽃길을 걸으며
하늘이 보이는 높은 곳까지
쉬엄쉬엄 친구와 손잡고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걸어야겠다
<당선소감>-김정자
당선 소식을 듣는 순간 가슴이 뛰고 손에 땀이 나는 기쁨이 앞서 감사의 마음을 잊고 아이처럼 좋아했습니다.
담담하고 조용한 마음으로 시 부문에 참여했는데 뜻밖에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가슴에 담아두고 표현하지 못했던 많은 날들이 떠오르며 이제는 열심히 노력해서 그 답답함을 풀어야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칩니다.
부족한 저에게 분에 넘치는 상을 주셔서 이제부터는 예쁜 마음으로 봉사하며 존경하는 도봉문인협회 일원으로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신인상 2> 시 5편 -이영자
1)바다와 만난 민물은
(쇠소깍에서)
이영자
네가 너무 거칠어 당황스러웠고
내가 너무 작아 부끄러웠다
그러나
네게 흔들려야 하는
견딤과 견주어
나에게 흘러내려야 하는
참음이 있었다
세상은 나와 네게
녹록지 않으니
서로를 맞수지 않고
잉태한 듯이
품음이 마땅하니
우린 물 이러라
2)나이가 듦
이영자
얼굴에 주름이 늘어나고
흰머리도 드문드문 보이고
목이 쉬이 쉬고
사래도 자주 들리고
큰 병원을 여러 차례 다니고 나니
이제야 나이가 들었구나 싶다
주름만큼 참을성도 늘어나고
흰머리만큼 좋은 이도 보이고
견딜 수 없던 일들이 견뎌지고
사람이 아닌 사람 마음이 보인다
젊은 말 이리 나이가 들었더라면
덜 아프고 덜 고통스러웠으련만
더 잘 살고 덜 싸웠을 텐데
젊은이가 좋은 건지
늙은이가 좋은 건지
알 수 없구나
3)나무야 은행나무야
이영자
]
네가 사람이더냐
왜 그리 서둘러 변하는 것인지
급히도 바람에 흔들려
네 것을 내어 주는지
나는 한 자락도 이해하지 않으련다
네가 사람이더구나
미련에 못내 아쉬움에
다 떠나가도 끝끝내 떼어내지 못하고
누렇게 뜬 세월을 인고하며
실 한 가닥 몸 한 가닥을 붙여
은행나무로 존재하려 하는
너는 사람이더구나
너에게 배우는 대로
놓아야 할 것은 때에 맞게 놓아버리고
잡아야 할 것은 손톱에 힘을 주어 잡아내
삶의 존재의 부르심에 대답을 하려 한다
4)커피중독
이영자
향으로 느끼는 커피는
나를 미치게 한다
이 세계에서 세 발자국
떨어지게 한다
예쁜 찻잔 속의 커피는
나를 미치게 한다
현실이 현실이 아니라고
허구 속으로 나를 밀어 넣는다
한 모금의 커피는
나를 정신 차리게 한다
내 두려움 속의 작은 소망을 일깨우고
쑥스러운 미소를 짓게 한다
한 잔의 커피를 모두 마시면
지금 이 순간
이 시간에 감사할 줄 알며
너그러운 마음을 배운다
나는 그런 커피에 중독되어 간다
5)결핍의 만족
이영자
과거의 결핍은 모자람의 것이요
어리숙함과 부족함의 다른 말이라 여겼는데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 결핍임을 알고 난 뒤
가족 같이 애증의 마음으로 바라본다
넘치는 것보다 나음을 인정하니
이것이 나에게 있음을 어찌 감사하지 않을까
비워진 부분에 넣을 것이 많아
더 비워짐이 간곡하고
내 속이 터지지 않는 고무가 되어
마침내 내 사람을 지켜주다
어느 곳이 뚫어져 있어 휑하면
채우기의 급함보다는
왜 뚫려있는지의 이유를 들여다보자
인과에 맞게 넣을지 뺄지를 선택할 수 있게
결핍으로 인해 알게 되는
더 많은 누림을 깨닫는 나의 지금에 만족한다
<당선소감>-이영자
첫눈을 맞거나, 가을 낙엽을 보고 있자면 시 한 편을 읊조리게 된다. 그리고 나면 스스로가 꽤 멋져 보이기도 한다. 시는 힘이 있다. 낭독할 때면 나의 입과 마음이 정화되고, 시집을 들고 차 한 잔과 함께 적막한 시간을 보내고 있노라면 어느 영화 속 주인공이 되어 있는 듯하다. 나아가 내 속에서 올라오는 그 무엇을 토해내 듯 시로 승화시키자면 한순간 느끼는 그 희열감이 놀랍다.
그 감정을 알기에 어느 순간 연필을 들고 다시 온몸으로 느껴지는 생각과 감정에 몰입한다.
이런 과정으로 만들어 낸 나의 시들을 나 외의 이들이 공감해 준다는 것은 또 다른 희열을 알게 한다. 오롯이 나만 느꼈던 밀실의 공간을 이제는 많은 이들이 공유하며 쉼을 얻고 돌아가는 옹달샘의 광장이 되길 바라며 당선이라는 선물을 주심에 감사하다. 이 감사를 글로 다시 환원하여 더욱 글쓰기에 도전하고 싶다.
<신인상>수필-나선자
아름다운 사제동행
나선자
요즘 스승의 날 풍경은 과거와는 달리 삭막한 느낌마저 든다. 내가 경험했던 15년 전의 스승의 날을 회상하면서 그 시절로 떠나가 본다.
스승의 날에는 특별하게 운동장 조회를 하고 스승님께 감사의 꽃 달아드리기 순서와 스승의 은혜라는 노래를 전교생이 함께 부르기가 있었다. 수업 시간에는 감사의 편지와 기상천외의 기발한 선물을 받기도 하고 학생들이 준비한 축하공연을 관람하고, 때로는 학부형이 대신 수업을 하기도 했다.
스승의 날에 그동안 많이 받기만 한 것이 미안해서 퇴직하던 해인 마지막 스승의 날에는 내가 학생들을 위해 보답하는 것이 무엇인가 고민하게 되었다.
전교생에게 새롭게 맛보인 오곡 과자와 오란씨 음료수를 선물로 안겨주었다. 사랑하는 제자들이 너무 좋아하고 감사한 마음에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나와 만나면 웃으면서 다가와 말을 걸어온다.
“선생님, 부자예요?”
“선생님, 최고예요”
“너무 맛있고 감사합니다”
인사받기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많아서 여교사 휴게실에 숨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동료들의 반응이 별로 좋은 않은 느낌이었다. 대단하다는 인사가 없지는 않았지만, 왠지 진정성이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나름대로 퇴직 전에 뜻있는 일을 하면서 동료에게 피해의식을 안겨주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비슷한 이야기로 전체 동료에게 마지막 식사 대접을 하면서 석별의 정을 나눈 것 까지는 좋았다. 내가 제자들에게 소나무처럼 강한 신념과 푸른 기상으로 꿈을 이루길 바라는 마음에 교정에 소나무를 한 그루 심었다. 이것이 다른 퇴직자에게 부담을 주는 일로 회자되었다. 잘 한 일인지 잘못한 일인지 갈등을 느끼는 시간도 있었지만, 제자들이 소나무 사진을 찍어 잘 자라고 있다는 소식을 가끔 전해줄 때마다 흐뭇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다. 학교 행사에 초빙되어 교문에 들어서자마자 왼쪽 화단에 자리 잡고 있는 소나무를 확인하면서 많은 생각이 교차되었다. 살아오면서 참 잘 한 일중에 하나로 결론을 내렸다.
제자들과 만나면 자연스럽게 과거 수업시간에 있었던 이야기가 나온다. 가장 많이 나왔던 이야기는 첫 수업시간에 국어 공책 첫 페이지에 ‘하면 된다’를 빼곡하게 써 오는 숙제가 기억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수업시간에 선생님보다 더 늦게 들어오는 학생은 선생님 대신 수업하기를 강조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준다.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단추가 엄청 많이 달린 옷을 입고 오셔서 학생들이 단추를 세느라고 수업에 집중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웃으면서 전해준다. 나는 곧바로 반성 모드로 진입하며 변명 아닌 변명을 한다. 학생들 개개인의 능력과 환경,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인 교육으로 무조건 ‘하면 된다’를 강조했던 선생님, 그리고 수업시간에 특별한 사정으로 늦을 수가 있는데 시간관념을 키운답시고 벌칙으로 수업하기를 강조한 선생님으로 아이들 기억 속에 남아있었다.
“제자들아, 부끄럽다”
세월은 고장도 없이 그렇게 흘러 흘러 지금은 60대의 제자가 70대의 스승을 만나면 “옛날에는 무서워서 말도 못 걸었는데 지금은 너무 편하고 좋다”라고 한다. 제자들이 우리 집에 오는 날은 입과 눈, 그리고 마음까지 즐겁고 나 또한 그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라 좋기도 하지만 신경이 많이 쓰인다.
“선생님, 친정집에 다녀가는 것 같아요”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한가득 웃음꽃을 피우면서 “고마워, 그리고 복 많이 받을 겨”라고 덕담을 잊지 않는다.
다양한 직업을 가진 제자들과 만나 정보 교환도 하고 서로를 챙겨주고 소통하면서, 이제는 제자들에게 배우는 삶이 고맙고 행복하다.
학업 성적이 뛰어났던 제자는 장학사가 되어 교육 동지로 뿌듯하고 만들기 재능이 뛰어난 제자는 한지 공예가가 되어 의정부 예술의 전당 전시회에 달려가 축하할 수 있어서 자랑스러웠으며, 미용에 관심 많은 제자는 미용 기술자가 되어 점점 흐려진 나의 눈썹을 젊은 모습으로 바꿔주는 재능 기부를 하기도 했다. 다양한 음식점을 운영하는 제자들이 여럿이 있어서 제자 얼굴도 볼 겸 찾아가서 소통하는 삶이 즐겁고 행복하다.
제자들은 만날 때마다 인증 사진을 남기면서 기분 좋으라고 하는 말을 자주 한다.
“선생님, 친구라고 해도 될 것 같아요”
“제자들아, 너무 오버하지는 말아요”
이제는 함께 늙어가는 처지로 서로를 배려하고 격려하는 마음을 아끼지 않는다.
살면서 힘이 들 때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하고, 나를 믿고 힘들다고 고백하는 제자들을 위로해주기도 한다. 사제동행하면서 희희낙락하는 행복한 삶도 때로는 아쉬움과 그리움을 남기게 된다. 그럴 적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마음으로 ‘누구보다 더’가 아닌 ‘이전보다 더’ 사랑하며 배우며 감사하며 살고 싶다.
<당선소감>_나선자
부족함이 많은 저에게 창작의 새로운 길을 열어 주신 도봉문인협회와 심사위원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70이 넘어서 늦깎이 수필로 시작한 새로운 도전이기에 설레는 마음과 행복한 마음입니다.
사랑하는 지인이 손잡아 이끌어 주심에 용기를 얻었는데
뜻밖의 당선 소식을 듣고 수필로 등단하는 내 모습이 낯설기만 합니다
열심히 써 보라는 의미와 힘을 실어주심에 감사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며 소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사제동행하면서 사랑하며, 배우며, 감사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도봉문인협회와의 특별한 인연으로 동행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온기가 그리워지는 11월에 따뜻한 배려와 마음을 선물로 주신
도봉문인협회의 무궁한 발전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