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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을 다녀오다(1편)
이 명순
3년 전부터 꿈꾸어 오던 유럽 여행, 친구가 보낸 한 통의 문자메시지를 받고 모든 일정을 뒤로한 채 여행채비를 서둘렀다. 2009년 3월 22일 오후 2시, 대한항공 독일 뭔헨행에 몸을 실었다. 여행자 45명이 한 팀이 되어 인솔자와 함께 패키지여행을 떠난 것이다. 탑승을 하자 먼 길을 떠난다는 긴장감과 8박9일이라는 긴 여정이 가족들 때문에 좀 부담스러웠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설렘과 기대감으로 모든 것을 떨쳐버렸다.
저녁 무렵 기내식 비빔밥을 먹고 나서 서너 시간을 잤을까. 컴컴한 밤이려니 생각하고 창문에 달린 덧문을 열어보았더니 쏟아지는 햇살에 눈이 부시다. 아래를 내려다보자 시베리아 항공을 나는지 사막 같은 황무지 물결이 망망대해 같다. 또, 대여섯 시간을 날았을까. 눈 아래 설경이 펼쳐진다. 보일 듯 말 듯 굽이굽이 얼어붙은 강줄기는 끝이 없는 하얀 기찻길 같다. 엄지손가락으로 눈 아래 시야를 가렸더니, 그 넓고 널은 풍광이 한 번에 가려진다. 비행 고도가 도저히 가늠 되지 않는다. 이국땅의 장관에 연거푸 소리 없는 탄성을 질렀다. 황무지와 설경, 에메랄드빛을 발하는 겹겹이 쌓인 구름사이로 천지가 한데 어우러져 부조화 속의 조화를 이룬다. 화판에 옮겨보고 싶은 충동이 인다.
11시간의 비행 끝에 독일 뭰헨 공항에 비행기는 내려앉았다. 8시간의 시차가 생겨서 어리둥절했지만 그만큼의 시간을 되돌려 산다고 생각하니 신기하고 감사하다. 독일은 알프스 산맥과 외곽 능선부터 북쪽까지 중앙고원의 여러 지역과 북독일 평야 등 유럽 대륙의 주요 자연경계선을 가로지르며 펼쳐져 있다. 북쪽으로 발트 해, 덴마크 북해, 서쪽으로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프랑스, 남쪽으로 스위스, 오스트리아, 동쪽으로 체코, 폴란드와 접경한다. 그래서 동유럽인 오스트리아, 헝가리, 슬로바키아, 폴란드, 체코 6개국을 여행하기에는 안성맞춤인지라 비행기가 뮌헨에 착륙했나 보다. 우리는 예약된 숙소에 도착하였다. 호텔 로비에 들어서자 여러 개의 추상화 액자가 한눈에 들어온다.아담한 분위기는 숙소가 아니라 작은 갤러리에 온 듯하다. 짐을 풀고 다음 날 일정을 위해 잠을 청했다. 시차 때문에 깊은 수면은 취할 수 없었으나 새벽이 된 듯싶어 눈을 떠보니 아직도 밤 12시다. 할 수 없이 잠자는 친구를 깨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새벽녘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감기약에 취한 것처럼 정신이 몽롱하고 피곤해서 반신욕을 하고 욕조에서 나오자 화장실 바닥에 물이 잔뜩 고여 있다. 아뿔싸! 바닥에 개수구가 없다는 사실을 몰랐다. 한국인의 이미지가 실추될까봐 물을 퍼내고 닦아내느라 혼쭐이 났다. 여행 첫날부터 침착하지 못한 웃지 못 할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23일, 아침식사에 빵조각과 버터, 한 잔의 우유가 나왔다. 된장과 김치에 길들여진 토속적인 입맛이 여행하는 동안 현지식이 입에 맞을지 좀 걱정스럽다. 원래 밀가루음식을 싫어하는데다 소화가 잘 안 되는 까닭에 마음이 놓이지 않았지만 다이어트를 하는데 일조를 할 것 같아 기분 좋은 마음으로 대충 허기를 달랬다.
<미라벨정원> <잘자흐 강>
우리는 일정에 따라‘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지인 오스트리아 짤츠부르크로 가기 위해 투어버스에 올랐다. 유럽인들은 동양인들보다 키가 크고 몸집이 커서 의자 간격이 넓을 줄 알았는데 차체는 높았으나 예상이 빗나갔다. 서양인들이 등치치고는 작은 것을 좋아한다더니…. 그걸 확인하는데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오스트리아는 땅의 크기가 남한의 5분의 2밖에 되지 않는 작은 나라이며, 알프스 산지가 3분의 2나 된다. 서쪽은 스위스와 리히텐슈타인, 북서쪽은 독일, 북쪽은 체코, 동쪽은 슬로바키아, 헝가리, 남쪽은 슬로베니아와 이탈리아 등 8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독일어를 사용하는 독일인(97%)이 대부분이며 9개 연방주로 구성되어 있다. 독일어가 공용어이나 영어를 많이 쓰는 것 같다.
투어버스는 짤츠부르크로 가기 위해 히틀러가 개설한 아우토반을 달리기로 했다. 아우토반은 독일 전용 자동차 고속도로로 독일 대부분 지역이 아우토반에서 50㎞ 이내에 위치한다. 이 도로는 1m의 땅을 파고 반은 자갈을 넣고 열기를 보존하는 코팅제로 마감을 했기 때문에 아무리 추워도 빙판이 되지 않을뿐더러 쌓인 눈도 빨리 녹아 안전운행을 할 수 있다. 아우토반에 진입하는 도중 운전기사가 길을 잘못 들어서서 다시 돌아가야 하는 번거로움을 예상했으나 진입할 수 있는 곳이 세 곳이나 있어 다행이었다. 알고 봤더니 아우토반은 운전자들의 실수를 감안한 설계를 한 것이다. 또 우리나라와는 달리 통행료를 징수하지 않으며, 차량끼리 접촉사고 시 뒤차가 잘못을 하더라도 무조건 앞차가 잘못이라고 한다. 이유는 앞차가 무제한 고속으로 달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자동차 질주 광들은 이곳이 천국이 아닐까 싶다.
'Sound of Music'의 무대로도 유명하다는 짤츠부르크는 옛것과 새것이 조화로운 화합의 도시로 모짜르트가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여행자들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입을 모은다. 무엇보다 서울과 다르게 거리가 한산하고, 산과 호수가 한데 어우러진 그림 같은 집들, ‘아~ 멋지다’ ‘아~ 아름답다’고 연신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여성들이 좋아한다는 미라벨 정원으로 갔다. 디리띠리 주교가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서 만들어 준 공원이다. 성직자 주교는 한 여인을 사랑한 이유로 비난을 받으면서도 16명의 아이들을 낳고 그 가족들을 위하여 잘자흐강 주변에 성을 지었다. 그러자 카톨릭 종교단체와 시민들의 시선은 차가웠고 결국 말년에는 요새에 감금당해 죽음을 맞았다. 연인을 얼마나 좋아하고 사랑했으면 정원을 만들어 선물했을까. 오히려 부럽다기보다는 믿겨지지 않는다. 후대 주교들은 이사건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궁전의 이름을 아름다운 전경을 뜻하는 미라벨이라고 불렀다. 사면에 세워진 네 개의 동상은 물, 불, 흙, 빛을 상징한다고 한다. 추측하건데 조물주가 창조해 준 이 네 가지에 대한 감사함을 표한 것이 아닐까 싶다. 미라벨 정원 계단에서 도레미 송의 마지막 부분을‘Do-re-mi-fa-sol-la-ti-do-sol-do!' 콧노래로 가만 가만 불러봤다. 'Sound of Music'에 등장하는 아이들이 하나둘 나타날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아직은 바람이 쌀쌀한데 형형색색의 작은 꽃들이 앙증맞게 우리를 맞는다. 화단의 모양을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바로크와 해초 무늬를 띠고 있다. 사진 속 주인공이 되어 예술성이 가미된 정원과 분수대를 배경으로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다.
‘소금의 성’이라는 뜻을 가진 짤츠부르크는 바바리아의 공작들로부터 라이헨할 소금광산의 소유권을 넘겨받았다고 한다. 부와 명성의 상징인 듯 부드럽게 휘어진 잘자흐강을 따라 즐겁게 산책할 수 있도록 집들이 쭉 배열되어 있다.
교외에는 동화 속에서나 볼 수 있었던 아름다운 마을들, 미라벨 정원에서 올려다 보이는 호헨 짤츠부르크 성의 멋진 경관, 세계에서 제일 아름답다는 게트라이드 거리는 가슴을 설레게 한다.
<게트라이드 거리> <전동차>
게트라이드 거리는 간판의 도시로서 글을 모르는 시기에 물건을 상징하는 그림을 그려서 간판을 만들었다고 한다. 구둣가게는 구두모양을, 우산가게는 우산모양을, 시계가게는 시계모양을, 그런데 맥도날드 가게는 햄버거 모양이 아닌 어울리지 않게 M자가 쓰여 있어서 한참을 웃었다. 구 시가지를 노부부들이 한손에는 시장바구니를 또 한손은 서로 맞잡고 산책을 하듯 도심을 여유롭게 거닐며 쇼핑을 한다. 미래의 노후 모습을 소망하며 부러워했다. 상점들은 분위기 있는 카페처럼 작은 편이나 여행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어이 그냥 지나칠까. 명품가게인 이곳저곳을 들러 구경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어느 노점 앞에서 무명화가가 그리는 그림에 심취되어 멈춰 섰다. 주머니 사정을 눈치 채기라도 한 듯 20유로짜리 그림을 5유로나 할인해 주겠다며 사기를 권한다. 사전 정보에 의하면 물건 값이 정찰제이며 속이거나 바가지요금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웬일일까. 아마도 한국 사람들은 무조건 물건 값을 깎아 줘야만 산다는 소문을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좀 의아했지만 배려라 생각하고 기분 좋게 그림 한 점을 샀다. 거리를 활보하다 보니 세기의 작곡자이자 음악의 신동이라 불리었던 음악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태어난 생가, 노란색 5층 건물이 눈에 띤다. 1757년 1월에 태어나 열일곱 살까지 살았다는 곳이다. 그 외에도 세계에서 가장 작은 집, 기네스북에 올랐던 시계가게도 만날 수 있다. 잘자흐강 주변에 아기자기한 수공예품들이 좀 고가이지만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짤츠부르크는 크기가 아담하지만 음악과 꽃이 가득하여 한 번 다녀오면 다시 찾고 싶을 정도의 곳이다.
중국식으로 점심식사를 한 후, 차량으로 짤츠캄머굿으로 향했다. 초원이 끝없이 펼쳐지는 짤츠부르크에서 30여 분쯤 달리자 호수가 보인다. 생길갱 마을이다. 이곳은 모차르트 외가댁이 있는 곳이며, 이 마을을 배경으로 볼프강제가 흐른다.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파노라마를 디카에 담았다. 모짜르트는 원래 빈 외곽의 성 마르크스 묘지에 묻혔으나 무덤의 위치를 알 수 없다고 한다. 이유는 이곳에 더 많은 묘지를 수용하기 위해 거듭 이장을 하였기 때문이지 아무렇게나 묻은 까닭은 아니라고 한다. 환경이 인격과 자질을 형성하듯 환상적인 마을이 낳은 모차르트는 음악가가 될 수밖에 없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아름다운 풍광에 젖으면 누구라도 화가가 되고 시인이 되는 것처럼 잠시 동안착각에 빠졌다. 모차르트의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가 귓전을 맴돈다.
<몬트제> <생길갱마을>
짤츠캄머굿은 알프스의 빙하가 녹아 형성된 76개의 호수와 산들이 어우러져 여름에는 피서지로, 겨울에는 스키장으로도 유명하단다.
6개국을 장시간 버스로 이동하다 보면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놓칠세라 잠시라도 눈을 감고 쉴 여유가 없을 것 같다. 그림 같은 아름다운 호숫가에는 우리네처럼 어지럽게 늘어 서 있는 횟집이나 매운탕 집은 찾아 볼 수가 없고, 캠핑카들이 줄지어 서 있다. 자연의 선물을 그대로 간직하고자 노력한 정부 정책과 국민성이 대단하다. 신선한 공기와 자연을 좀 더 느끼려면 며칠 더 묵으면서 도보로 돌아보면 매우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쉽지만 몬트제로 길을 재촉했다.
파스텔 빛의‘달의 호수’라 불리는 환상적인 몬트제(Mondsee), 몬트 호수와 접해 있는 마을로 영화 'Sound of Music'의 결혼식 장면을 촬영한 곳이다. 776년에 지어진 몬트제 성당은 주인공 마리아와 트랩 대령이 결혼식을 올렸던 장면을 촬영한 곳이다. 알프스의 아름다운 자연에 둘러싸인 짤츠부르크 수도원의 견습 수녀 마리아는, 노래를 좋아하고 쾌활한 성격으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다. 그러던 중 원장 수녀가 마리아를 명문 트랩가의 가정교사로 추천을 하고, 7명의 자녀를 군대식으로 키우던 홀아비 트랩 대령의 가정에 많은 변화를 일으킨다. 언제부턴가 트랩 대령을 사모하게 된 마리아는 딱딱한 퇴역 해군 대령까지 변화시키고 이들은 온갖 역경을 이겨내며 따뜻한 가정을 이루게 된다.
이곳은‘도레미송 Do-Re-Mi’‘에델바이스 Edelweiss’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긴 곳이며, 뮤지컬 영화로 손꼽혀 온 장소이기도 하다.1966년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음악상 등 5개 부문을 휩쓴 이 영화는 나치의 지배를 피해 조국을 떠나 망명했던 트랩 가족 합창단의 실화가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거쳐 영화로 옮겨졌다. 눈 쌓인 알프스 산을 넘는 마지막 장면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초승달을 닮았다는 수채화 같은 호수 몬트제, 가끔 눈을 감고 그곳에 몸을 날려본다. 그곳이 그리워지면 다시 한 번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감상해야겠다. 차안에는 노르웨이 가수 시크릿가든의 음악과 모차르트의 세레나데, 피가로의 결혼이 흘러나온다. 한껏 고조된 분위기이나 곤한지 자꾸 눈꺼풀이 내려앉는다.
다음 날 그곳의 수도인 빈의 거리를 관람하기 위해 차를 이동하여 지정 호텔에서 여장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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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 멋진 여행, 누구나 시인이고픈, 음악가이고픈 나라 오스트리아... 아름다운 묘사를 담은 다음 편이 기대됩니다...즐겁게 감상하였습니다.
아름다운 추억이 될 8박 9일의 쉽지않은 유럽여행! 축하합니다.멋진 영상,멋진 글 감상 잘 하고 갑니다.
예술의 도시 동유럽여행 잘 다녀오심, 축하드리며 부럽습니다 감상 잘했습니다
제가 덕분에 한편의 동유럽 여행을 마첨표 했습니다. 숨이 가쁩니다.ㅎㅎ 이명순 선생님은 과거세에 지리선생님이셨나 봐요. 어쩜 그렇게 지명과 에피소드까지 줄줄이로 이어집니까? 감탄! 언제 한번 그 고운 목소리로 "에델바이스" 한곡 들려 주시겠어요?~^^